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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54화 (54/229)

54화 비밀 암시장(1)

“처음 오신 건가요?”

암시장 입구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입장객 체크를 맡고 있었다.

정장과 미니스커트를 단정하게 입은 안내자들이 검문을 맡았다.

“확인된 분은 들어가시면 됩니다.”

암시장 경매장에 들어가는 손님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다.

경매장은 비밀 유지가 핵심이었다.

개최 장소부터 경매 물품 목록도 보안 사안이었고 참가자의 신원도 철저하게 감췄다.

“여기…….”

가면을 쓴 유진하가 조심스레 신분증을 건넸다.

신분증에는 경매장의 판매자 자격이라고 새겨졌다.

“확인되었습니다.”

여자는 냉철한 눈빛으로 유진하를 훑어보더니 신분증을 카드리더기에 넣고 인증을 확인했다.

“몸수색이 있습니다. 무기나 위험한 물건은 전부 금지거든요. 일행도 같은 검색을 받습니다.”

“그러죠.”

유진하는 에어리스, 이소민을 일행으로 데려왔다.

경매장은 신원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았다.

범죄자든 유명인이든.

최우선 요소는 비밀 엄수였다.

비밀 암시장은 돈만이 곧 전부이자 가치를 드러내는 세계였다.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네?”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니 꽤 넓은 무대가 드러났다.

샹들리에와 화려한 조명이 무대와 객석을 비추었고, 사전 여흥으로 남녀 댄서들이 멋진 군무를 추고 있었다.

암거래 무대이긴 하나 상류층이 참가하는 럭셔리 파티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런 데는 처음 오네요.”

에어리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계속 돌려가며 바라봤다.

이소민은 그런 에어리스 옆에 바짝 붙어서 은근히 신경을 썼다.

“이런 데는 에어리스한테 좋은 환경은 아니야.”

취기가 오르는 술과 화려한 춤.

순진한 에어리스에게 자극적인 환경이었다.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조금만 거북한 장면이 나와도 이소민은 얼른 에어리스의 눈을 가렸다.

“아아, 방금 뭔가 봤는데…….”

“다른 데로 데려가자.”

이소민이 에어리스를 챙기며 위험 요소를 피하는 동안, 유진하는 나름대로 바빴다.

평소처럼 장소부터 파악했다.

‘비상구와 탈출 루트는 저기구나.’

이동 통로를 파악한 다음에는 참가자 중에 수상한 사람을 미리 파악해 갔다.

주의할 인물을 알아 두면 대응이 한결 편해진다.

‘안에 손님으로 위장한 경호원들이 있구나.’

안전과 비밀이 철저한 경매장답게 보안 체계가 훌륭했다.

주변을 충분히 살핀 후에 유진하는 테이블에서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오늘 나오는 경매 물품이 있었다.

카탈로그를 살피다가 괜찮은 아이템을 발견했다.

“물리 면역 방어구?”

상반신 방어구.

물리적인 타격에 면역이 되는 놀라운 기능이 있었다.

초레어 물품이었다.

이런 물건만 있다면 전투에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가격이 문제겠군.”

레어급도 비싼데 이건 초레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어쩐지 귀티가 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했더니 경매에 출품된 메인 아이템이 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워낙에 좋은 성능이라 저걸 만약 에어리스에게 입혀서 공략전을 진행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적이려나?’

기대가 되는 조합이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돈이 넘치는 대부호들이 예의주시하고 들어온 비밀 경매장이었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게임도 안 되겠지.”

아쉬운 마음을 머금고 일단은 원래 계획대로 빛의 카드를 경매장에 등록하기로 했다.

“잠시 후,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안내 음성이 나오자 파티장의 분위기는 일순간 바뀌었다.

춤을 추던 댄서와 음악 소리가 사라지고 적막이 흘렀다.

스태프들은 빠르게 단상을 세웠다.

“자, 오늘도 좋은 물품이 많이 있습니다. 경매장의 규칙은 반드시 누구라도 따라야 하니 이 점은 양해드리겠습니다.”

말끔한 복장을 입은 진행자가 등장해서 본격적인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첫 번째 물품은 검이었다.

“보석이 장식된 무기라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물건입니다. 부여된 기능은 저주이죠. 이 검에 베인 자는 10초 동안 기력이 줄어듭니다.”

괜찮은 물건이면 경매도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부호들은 엄청난 금액을 경쟁적으로 제시했다.

“이제부터 호가를 억 단위로 올리겠습니다.”

순식간에 금액이 치솟았다.

불과 5분 만에 유진하가 가진 재산 전부를 아득하게 넘어선 수준에 도달했다.

“아, 이건 좀.”

자금력의 차이는 상당했다.

부호들의 재력은 돈이 무한정에 가까울 만큼 어마어마했다.

“암시장이라 더 비싸겠지만 금액이 너무하네.”

부호들은 무기와 카드가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모험가가 아니라 사업가였고 경매는 취미 컬렉션에 불과했다.

돈 많은 자들의 놀이였다.

암거래 시장의 본질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 우선이라는 진리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자, 뜨거운 열기와 함께 1부가 종료되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2부로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경매는 순서대로 진행됐다.

1부의 물품이 전부 낙찰되었다.

2부에는 유진하가 출품한 빛의 카드가 경매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유진하는 잠시 자리를 이동했다.

빛의 카드를 출품하려면 무대 뒤의 보관소로 가야 한다.

이때부터 계획은 시작된다.

유진하는 암시장에서 노리는 바가 따로 있었다.

“판매 등록하겠습니다.”

물품 보관소는 보안이 철저했다.

이곳은 경호원들이 10명이나 지키고 있었다.

하나같이 보안 업체 소속의 대단한 실력자들이었다.

“빛의 카드를 경매품으로 등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보관소에는 가면을 쓴 남자가 있었다.

다소 사무적인 말투로 용건을 진행했다.

“당신은 누구죠?”

유진하는 품에서 빛의 카드를 꺼낸 상태에서 질문을 던졌다.

“이 경매장의 총괄을 맡고 있죠.”

“그래요?”

유진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알겠다는 듯이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암시장을 운영하는 사람이군요. 누굽니까?”

“후후, 그건 비밀입니다.”

“그래요?”

유진하는 회심의 한마디를 던졌다.

“비밀 거래의 암시장. 이거 알카트로스가 운영하는 거잖아요.”

세계 3대 범죄 집단 중의 하나.

알카트로스 조직.

그들 중에서 클로버와 살인마 잭과는 부딪친 적이 있었다.

“뭔가 잘못 아신 듯한데 저희는 범죄 조직과 상관이 없습니다.”

“알고 왔어요. 당신은 클로버 가면이죠?”

유진하는 곧바로 몰아붙였다.

처음부터 암시장이 알카트로스의 소유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알카트로스는 훔치는 짓을 많이 하죠. 귀한 장물을 처분하다가는 까딱하면 추적당할 수도 있어요.”

경매의 총괄자는 침묵했다.

유진하는 상대의 침착함을 무너뜨리려는 듯이 깊이 파고들었다.

“그럼 발상을 바꿔서 암시장을 만들어서 장물을 팔아 버린다면 어떨까요? 쉽게 해결되겠네요. 그렇죠? 알카트로스의 클로버.”

정적이 흘렀다.

짧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기색을 살폈다.

“…용건은?”

총괄자는 의미심장한 첫 마디를 던졌다.

역시 녀석은 클로버 가면이었다.

에어리스와 치열하게 싸웠던 중력 카드의 소유자였다.

“판매자로 온 것은 위장이었나? 암시장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그래요. 빛의 카드가 출품되면 당신들이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죠.”

빛의 카드는 미끼였다.

유진하는 알카트로스와 만날 기회를 원했다.

“당신이 에어리스를 노렸죠.”

“그래서?”

“그때의 빚을 갚아 주려고 합니다.”

유진하는 눈앞의 적을 노려봤다.

알카트로스의 클로버로 정체가 드러난 상대 역시 기운을 서서히 발휘하고 있었다.

“다시는 에어리스를 노리지 못하게 해 주겠습니다.”

“후후, 제 발로 찾아와서 우리에게 경고인가?”

“경매장에 온 사람들을 살펴봤는데 알카트로스는 당신뿐이더군요. 더 있었으면 다 잡을 계획을 짜놨는데 아쉬워졌어요.”

유진하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부 요원들과 알카트로스가 이번 일에 개입하면서 에어리스를 닮은 여자를 빼앗겼다.

그녀를 되찾으려면 양측을 모두 막아야 했다.

“클로버 가면, 당신을 잡으면서 알카트로스 소탕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유진하는 양손에 카드 100장을 꺼냈다.

순식간에 카드들이 무수한 나비처럼 날아갔다.

온 사방을 가득 채운 카드.

유진하는 마술사처럼 카드를 다루며 클로버 남자를 압박했다.

“마술사라더니 광대에 가까웠나?”

클로버는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비웃음에 가까운 말투였다.

“카드를 많이 쓴다고 유리한 게 아니지.”

클로버는 한 장의 카드를 손에 쥐었다.

중력 카드였다.

“그라비티.”

발동 주문을 외치자 중력의 힘이 발동했다.

2배의 중력이 발동했다.

“큭!”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늘어난 중력이 가해지자 몸이 억눌리기 시작했다.

사방에 퍼진 100장의 카드는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다.

중력은 모든 물체를 밑으로 당겼다.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2부 경매가 곧 시작될 시간이야. 오래 끌지는 않겠다.”

클로버 남자는 여유를 부렸다.

중력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힘으로 막강한 위력을 드러냈다.

“3G.”

중력은 3배로 늘어났다.

유진하는 체중이 3배로 늘어나는 경험을 받았다.

클로버 남자는 차갑게 한 마디를 남겼다.

“4G.”

중력은 계속 강해졌다.

마치 땅이 빨아들이는 듯한 충격이 가해졌다.

“5G”

단계가 올라갈수록 유진하는 한계에 가까워졌다.

“으윽!”

이 위력이면 에어리스도 버티기 힘든 수준이었다.

“6G.”

클로버 남자는 틈을 주지 않았다.

유진하가 아예 손도 못 쓰게 막아 버리려고 중력을 계속 높였다.

“크으윽!”

엄청난 압력에 유진하는 고개마저 들기 어려웠다.

무릎은 모두 꿇었다.

6배의 중력 앞에서 팔 하나도 들기 어려웠다.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클로버 남자는 항상 사람들을 이렇게 무릎 꿇렸을 터였다.

중력 카드.

초레어 카드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그럴까?”

유진하는 작게 중얼거렸다.

반격은 이제부터였다.

“라이트닝.”

명령어가 발동하자 바닥에 떨어졌던 100장의 카드가 일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모든 카드에 번개가 감돌았는데 전부 같은 카드였다.

파지지직!

번개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번개 카드?”

클로버 남자는 거리를 두고 있어서 번개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신경 쓰이는 부분은 다른 거였다.

왜 하필 번개 카드일까?

“알려 줄게.”

유진하는 한 장의 카드를 꺼냈다.

이 카드를 위해서 100개의 번개가 필요한 거였다.

“여기에 모으기 위해서다.”

손에 든 비장의 카드.

번개의 힘을 모을 수 있는 단 한 장의 카드였다.

상성에서도 중력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빛이다.”

유진하는 빛의 카드를 높이 들었다.

빛의 카드를 사용하려면 태양이 뜬 낮이어야 한다.

지금은 밤이고 암시장은 지하였다.

빛은 없었다.

“번개는 빛이지.”

번개 카드 100장이 발동하자 사방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번개가 충분한 양의 빛을 발생시킨 거였다.

“하나의 빛으로.”

빛의 카드는 번개에서 발산된 빛을 전부 흡수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빛이 마치 프리즘에 비치는 무지개처럼 반사되어 모여들었다.

“빛은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어.”

중력은 빛을 끌어당길 수 없다.

6배의 중력으로도 빛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

완전한 상성이었다.

“이건?”

클로버 남자는 사태를 파악했다.

광활하게 집중된 빛은 마치 원형의 에너지처럼 강대해졌다.

빛의 카드를 가진 유진하가 모든 힘을 하나로 모았다.

클로버 남자는 뒤늦게 빛의 전략을 깨달았다.

“보여 주겠어.”

유진하는 빛의 카드를 내밀었다.

강대하게 모인 빛이 나아갔다.

빛은 최고의 속도였다.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막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커다란 충격파가 사방에 퍼졌다.

“크억!”

발산된 빛은 클로버 남자를 정확하게 직격했다.

일격으로 승부가 결판이 났다.

완벽한 상성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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