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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51화 (51/229)
  • 51화 침입자(5)

    크레인을 타고 높이 올라간 에어리스는 대검을 움켜쥐었다.

    ‘이번에 반드시…….’

    상대는 클로버 가면의 남자였다.

    자유자재로 중력을 조절하는 카드를 가진 강적이었다.

    마침내 얻은 한 번의 기회.

    에어리스는 원심력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크게 대검을 휘둘렀다.

    촤악!

    대검이 남자의 가면을 갈랐다.

    백가면은 알카트로스 조직을 상징하는 도구였고, 지금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툭.

    갈라진 가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후우욱.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에어리스는 속성 건틀릿 장갑에서 바람을 발휘했다.

    덕분에 하늘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크윽!”

    클로버 가면의 남자도 서서히 밑으로 내려왔다.

    그는 서둘러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는데, 손가락 사이에 얼핏 보이는 그의 보랏빛 눈동자에서 차가움과 서늘함이 발산됐다.

    “믿을 수 없어.”

    클로버 남자는 전투에서 가면을 잃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력 카드는 압도적인 힘이 있었고, 그의 공격엔 제대로 서 있는 자조차 거의 없었다.

    중력의 힘에 백중세로 맞선 상대는 오랜만이었다.

    “얕볼 수 없는 실력자였어.”

    클로버 남자는 얼굴을 움켜쥔 손에 점점 강한 힘을 주었다.

    분노가 서린 표현이었다.

    “더 승부하고 싶지만, 정부 요원들이 눈치챘어. 방해꾼이 오고 있으니 승부는 다음에 내도록 하지.”

    클로버 남자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수신호를 보내자 근처에 있던 살인마 잭도 따라붙었다.

    “당신들은 왜 저희를 노린 거죠?”

    돌아가는 두 사람을 향해서 에어리스가 소리쳤다.

    저들의 목표는 자신이었다.

    쌍둥이처럼 닮은 여자도 노렸다.

    “후후, 다음에 보자.”

    클로버 남자는 보랏빛 눈동자로 노려보더니 다른 카드를 꺼냈다.

    순간 이동이었다.

    “…….”

    둘은 사라졌다.

    에어리스는 강적을 상대하여 간신히 버텨냈다.

    “알카트로스…….”

    클로버 가면의 남자.

    잭 가면을 쓴 살인마 나주신.

    둘 다 만만찮은 강적이었다.

    앞으로 이런 실력자들과 싸운다면 고전할 거라 느꼈다.

    강한 적을 상대하면서 피부로 느껴지는 긴장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웅!

    에어리스가 가진 휴대전화에서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연락이…….”

    에어리스의 번호는 두 사람만 알고 있었다.

    유진하 아니면 이소민.

    신호는 네 번 오더니 뚝 끊어졌다.

    ‘이건?’

    에어리스는 전화벨의 의미를 금세 알아차렸다.

    비상 신호였다.

    유진하는 평소에도 위급한 경우에 사용할 몇 가지 신호를 정해 두었다.

    세 번이면 구원 신호.

    “지금은 네 번…….”

    네 번이면 퇴각 신호였다.

    ‘퇴각이라면… 집은 아니었어.’

    에어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당장 요원들이 수색하고 있으니 집은 안전한 장소는 아니었다.

    ‘집은 아니고…….’

    이번에 퇴각 지점은 약속해 놨다.

    쌍둥이 그녀가 넘어왔던 곳.

    차원문이 열렸던 장소가 따로 정해놓은 퇴각 장소였다.

    “후퇴 신호를 보냈다면 상황이 안 좋다는 걸까.”

    알카트로스가 나타났다.

    정부 요원은 사방에 깔려 있었다.

    이들을 모두 피해서 쌍둥이처럼 닮은 그녀와 안전하게 만나야 했다.

    “진하, 이소민 언니, 그리고……”

    에어리스와 똑같은 여인.

    쌍둥이처럼 닮은 그녀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마음에 응어리지는 감정이 있었다.

    “지금쯤 멀리 갔을까?”

    에어리스는 최대한 먼 곳을 시야에 담았다.

    그녀에게 유진하를 찾으라고 했다.

    아직 멀리 가지 못했다면 시야에 보일 수도 있었다.

    그때, 멀리서 큰 충격이 발생한 곳이 보였다.

    “저기 있는 걸까?”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였다.

    주택가 지붕과 골목에서 사람들이 몰려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에어리스는 서둘러 담벼락과 지붕 사이를 빠르게 날아가듯이 뛰어넘어 갔다.

    쌍둥이 그녀를 찾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서둘렀다.

    * * *

    “여기서 달아나야 해요.”

    유진하는 재촉했다.

    에어리스와 닮은 그녀는 요원들의 추적을 받았다.

    당장의 포위는 벗어났으나 그들은 프로였고 반드시 쫓아올 터였다.

    계속 도망갈 길은 없었다.

    “당신이 넘어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최선이에요.”

    그러려면 차원문이 열렸던 장소로 돌아가야 했다.

    먼 곳은 아니었다.

    “거의 다 왔어.”

    이소민은 숨이 가쁘도록 뛰었다.

    요원들의 추격은 일시적으로 막아냈으나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정작 에어리스를 닮은 그녀는 생각이 달랐다.

    “만나야 해요.”

    그녀의 의지는 분명했다.

    역시 이곳에 온 목적은 에어리스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에어리스와 만나고 싶어도 지금은 무리예요. 다음에 다시 오면 그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지금은 돌아가요.”

    유진하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설득했다.

    순간 이동 카드를 사용해서 도망가더라도 일시적인 회피에 불과했다.

    지금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려야 했다.

    “에어리스도 이쪽으로 올 거예요. 여기서 만나기로 신호를 보냈거든요.”

    방금 보낸 신호는 차원문으로 오라는 퇴각 표시였다.

    에어리스는 그 의미를 알았고, 차원문이 열렸던 장소에 오면 재회할 수 있었다.

    동시에 차원문을 열어서 그녀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

    “그게 마지막 방법이에요.”

    지금 도시에는 요원들이 너무 많았다.

    침입자를 척살하는 임무를 받았고 반드시 수행할 터였다.

    가능성은 반반.

    유진하는 여러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서 최선을 찾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유진하, 이소민, 그리고 그녀는 차원문이 열렸던 장소에 도착했다.

    나무가 우거진 공터였다.

    “이제 도착했어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공간이 열렸던 자국이 정전기처럼 남아 있었다.

    유진하는 시간이 없어서 재촉했다.

    “차원문은 열 수 있죠? 미리 열어두는 편이 좋겠어요.”

    “알았어요. 다시 문을 열겠어요.”

    그녀는 손을 들어 허공을 짚었다.

    예리한 칼날에 베이듯이 차원문은 갈라졌고, 열리기 시작한 틈 사이에서 번개가 흘러나왔다.

    공간이 벌어진 틈에서 푸르고 신비한 빛이 발산됐다.

    끼기긱.

    공간의 틈은 서서히 원형으로 비틀어지더니 기이한 소리를 토해냈다.

    ‘폭풍우 같아.’

    유진하는 차원문이 생성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푸른빛이 휘감기는 광경이 소용돌이처럼 비틀렸다.

    “열린다.”

    이소민은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원문만 열리면 그녀의 퇴로는 확보한 거였다.

    요원들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차원문이 조금씩 열려가던 무렵.

    알 수 없는 위화감이 흘러왔다.

    “후욱…….”

    낯선 자의 호흡이 다가왔다.

    작으면서도 진하게 전달되는 그 숨소리는 서서히, 그리고 은밀하게 전달됐다.

    “아직 늦지 않았군요.”

    간부 E였다.

    포마드를 발라 정갈하게 다듬은 헤어스타일과 은테 안경을 낀 그가 미소를 머금으며 등장했다.

    안경 안에는 날카로운 눈매가 숨겨져 있었다.

    경멸에 가까운 감정.

    마치 세균이나 병균을 바라보듯이 그 눈빛에는 증오마저 느껴졌다.

    온몸에서는 강렬한 오오라를 발산했다.

    “당신은…….”

    유진하는 간부 E를 의식했다.

    지금까지 어떤 몬스터나 적을 만나서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이었다.

    본능적인 경계심.

    긴장감 혹은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침입자는 제거가 원칙입니다.”

    간부 E가 불길하고 강인한 기운을 뿜어내며 다가왔다.

    차원문이 열리기 전.

    가장 큰 난적이 등장하고 말았다.

    “저의 임무는 침입자 처단이고, 정부의 규칙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E는 안경을 손으로 만졌다.

    동그란 안경알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내뿜는 기운이 강렬했다.

    유진하는 금세 의미를 알아차렸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야.’

    경계심을 올린 이소민은 검을 하나 손에 쥐었다.

    특별한 검은 아니었으나 몸을 지킬 정도는 되어서 거기에 의지했다.

    “유진하, 어떡할래?”

    이소민도 간부 E의 실력은 알고 있었다.

    에어리스의 대검조차 가볍게 받아내는 괴물 같은 실력자였다.

    이소민의 힘으로는 절대 녀석을 막아낼 수 없었다.

    “시간이 더 필요해요.”

    간부 E가 다가오는데 차원문이 아직 다 열리지 않았다.

    더 기다려야 했다.

    E와의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경고는 한 번입니다. 지금 물러나면 처벌은 최소화하겠습니다.”

    E의 압박감은 차원이 달랐다.

    뿜어지는 오오라가 조금씩 미묘한 흐름을 보였다.

    동그란 안경을 만지면서 기운을 천천히 끌어올리더니 진짜 힘을 발휘했다.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회유와 협박이 교묘하게 섞인 화법이었다.

    협상에 능숙한 프로였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말로 압박하거나 위협적인 행동으로 무력하게 만들면 유리하다.

    기선 제압.

    심리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만약 결렬될 시에는 전투를 감행하겠다는 선포였다.

    “시간을 벌어볼게요.”

    다른 수가 없었다.

    유진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양손에 카드 100장을 꺼내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상대는 최정예 정부 요원.

    간부 E의 진짜 실력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M과 J의 상관이고 에어리스를 가볍게 상대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괴수의 경지였다.

    “좋습니다. 상대해 드리죠.”

    E는 망설이지 않았다.

    유진하와 이소민의 반응을 보더니 거침없이 다가왔다.

    한 걸음.

    걸어오는 그 모습에서 마치 거대한 괴수가 다가오는 존재감마저 느껴졌다.

    ‘카드는 충분해.’

    유진하는 100장의 카드가 있었다.

    골목의 벽에는 이소민이 마구 붙여놓은 화염 카드도 가득했다.

    E가 오기 전에 준비한 함정이었다.

    “파이어.”

    전언 전송 카드를 사용했다.

    이 카드는 먼 곳에 있는 존재나 물체에게 메시지나 명령을 전달할 수 있었다.

    전언을 통해서 벽에 붙여둔 화염 카드를 발동시켰다.

    카드에서 일제히 불길을 발휘됐다.

    불지옥의 매서운 화염 지대가 펼쳐졌다.

    ‘시간만 버는 거야.’

    유진하의 작전은 간단했다.

    불꽃이 튀기는 지옥의 환경으로 앞을 막는다.

    다른 길로 돌아온다면 차원문이 열릴 만큼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불의 함정입니까?”

    E는 발걸음을 오히려 재촉했다.

    늦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빨라졌다.

    다가오는 불길을 눈으로 보면서 E는 상체를 옆으로 비틀었다.

    다음에는 다리 쪽으로 날아오는 화염마저 몸을 튕기듯이 뛰어올라 피했다.

    “뭐지?”

    동물적인 반응에 가까운 반사신경이었다.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단순히 빠르다는 말로 부족했다.

    “강한 위력이라도 피하면 그뿐입니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는 지옥 속에서 전후좌우로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전부 다 보고 피할 수는 없다.

    동체 시력과 몸놀림과 속도.

    E의 움직임은 잔상처럼 빠른 동작이었다.

    “엄청나다.”

    유진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살인마 나주신과는 느낌이 달랐다.

    쾌속의 사바톤 부츠는 가속이 빨랐으나 선회력은 부족했다.

    정면 가속은 좋으나 순간적으로 회피는 떨어졌다.

    E는 반대였다.

    제자리에서 순간적인 회피가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전 방향에서 몰아치는 화염의 사이를 기가 막히게 피해 냈다.

    완벽한 회피였다.

    “와, 저게 뭐냐.”

    이소민도 입을 떡하니 벌리고 E의 실력을 감탄하듯이 쳐다봤다.

    신속한 회피와 여유로운 몸놀림은 서커스를 하듯이 모든 화염을 피해냈다.

    “가벼운 수준이군요. 저는 이것보다 더한 것도 상대해 본 적이 있습니다.”

    화염 지대를 무사히 빠져나온 E는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이어서 안경을 만지더니 다시 눈빛을 매섭게 빛냈다.

    “다 된 겁니까?”

    E는 흩어진 머리카락도 살짝 쓸어 넘기더니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비웃음에 가까웠다.

    어느새 유진하와 이소민의 앞까지 당도했는데, 차원문은 아직 절반조차 안 열린 상태였다.

    E는 거침없었다.

    “저도 제압에 나서겠습니다. 방해자는 척살하죠.”

    당당하면서도 깔끔했다.

    그것만으로도 가만히 있는 유진하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 사람은 대체 뭐지?’

    지금까지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타입이었다.

    무슨 공격을 해도 다 피할 것만 같았다.

    ‘회피의 괴수.’

    간부 E의 실력은 진짜였다.

    “개방.”

    유진하는 양손에 든 100장의 카드를 모두 발산했다.

    마치 마술사가 뿌리는 수많은 카드와도 같았다.

    순식간에 100장 카드가 E의 주변을 포위하듯이 에워쌌다.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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