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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49화 (49/229)
  • 49화 침입자(3)

    차원문이 열렸고, 알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세계로 침입했다.

    정부 요원들은 비상사태가 걸렸고 간부까지 나서며 침입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다.

    가장 먼저 그 존재를 찾은 사람은 에어리스였다.

    “당신은……?”

    눈앞에 있는 침입자는 놀라울 만큼 에어리스를 빼닮았다.

    눈, 코, 입.

    은발의 긴 머릿결.

    마치 거울을 보듯이 똑같았다.

    “아…….”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당신은 누구인지.

    그런데 지금.

    “당신은 위험해요.”

    에어리스는 주변의 공기가 바뀌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낯선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찾았군.”

    절그럭. 절그럭.

    소름이 끼치도록 익숙한 금속의 발걸음 소리였다.

    쾌속의 사바톤 부츠.

    연쇄살인마 나주신이었다.

    “당신은?”

    에어리스는 상대의 살기를 눈치챘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모두의 앞을 막았던 자였다.

    녀석은 기사 문양이 그려진 백가면을 쓰고 있었다.

    J라고 적힌 표식이 선명했다.

    “트럼프의 잭?”

    그의 탈옥 소식은 들었다.

    다만 살인마가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고, 기괴한 가면까지 썼을 줄도 몰랐다.

    “에어리스라는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두고 있어. 돌려줄 빚이 많지.”

    “…….”

    “이제는 살인마가 아니지. 물론 탈옥수도 아니다. 잭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에서 다시 태어났지.”

    살기가 이전보다 강했다.

    녀석은 이제 연쇄살인마 나주신이 아니었다.

    살인마 잭이었다.

    잭은 말하면서도 목에 걸린 폭발형 목걸이를 의식했다.

    “지금은 개목걸이를 메고 있는 강아지 신세거든. 누군가의 애완동물이라고나 할까?”

    나주신은 자신의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목걸이는 GPS 위치 추적뿐만 아니라 녹음과 영상까지 기록되는 특수 장치였다.

    말과 행동이 전부 감시된다.

    잭의 옆에 있는 클로버 가면의 남자가 감시역이 분명했다.

    “…원하는 게 뭔가요?”

    에어리스는 아직 대검을 뽑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꺼낼 수 있도록 손잡이를 잡을락 말락 하게 유지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죽이려는 게 아니야. 잠시 우리와 같이 가 줬으면 한다.”

    클로버 남자가 나섰다.

    “…거부한다면요?”

    에어리스는 강한 압박감을 받았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에어리스는 작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자신을 닮은 여자에게 속삭였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일단 도망가세요. 지금 당신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에어리스는 결심했다.

    절대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다고.

    “제가 막을게요. 유진하를 찾아가세요.”

    “유진하……?”

    “근처에 있을 거예요.”

    에어리스는 유진하의 인상착의를 알려줬다.

    결정적인 특징은 하나였다.

    “카드 100장을 가진 사람이에요.”

    가장 큰 특성이었다.

    “…알겠어요.”

    쌍둥이처럼 닮은 그녀가 조용히 대답하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클로버 남자가 그쪽으로 가려고 하자 에어리스가 앞을 막아섰다.

    “보내지 않겠어요.”

    “…….”

    클로버 남자는 손을 들어 살인마 잭을 보내려는 수신호를 하려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나주신은 사냥개였다.

    한 번 물어 버리면 먹잇감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무는 도사견이었다.

    ‘암살’에만 녀석에게 목표를 주어야 했다.

    살인마이기 때문이었다.

    “둘 다 잡아야 하니 서두르지.”

    클로버 남자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결정했다.

    손에 카드 하나를 꺼냈다.

    얼핏 보이는 카드에는 금빛 실루엣의 장식이 드리웠다.

    “초레어 카드……?”

    가치가 높은 물건이었다.

    알카트로스는 세계 최대의 범죄 집단이었고 귀중한 물건은 무슨 수를 쓰든 가져갔다.

    저 카드도 그중 하나였다.

    “그라비티.”

    클로버는 초레어 카드의 주문을 읊었다.

    그라비티. 중력이었다.

    그때였다.

    에어리스는 몸에 강한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으윽!”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짐을 떠안은 듯한 압박을 받았다.

    땅에서 빨아들이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온몸에 압력을 받았다.

    “몸이… 무거워졌어.”

    마치 쌀가마니를 어깨에 받은 듯이 무거운 압박을 받자 에어리스의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자세는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라비티 카드에는 중력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클로버 가면은 카드 한 장만을 든 채로 차분히 말했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침착했고 상황을 지배했다.

    “중력에서 벗어난 존재는 없어.”

    “으윽!”

    에어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중력이 강해진 탓에 몸은 계속 억눌리고 있었다.

    에어리스를 닮은 쌍둥이도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데려가지.”

    클로버 가면은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강해진 중력에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

    혼자 자유롭게 걸어가면서 에어리스와 쌍둥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이대로는 꼼짝없이 당할 위기였다.

    “흐으읍.”

    에어리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중력이 약간 강해진 정도였다.

    이 정도는 완력을 발휘해서 억지로 버텨낼 수 있었다.

    “내가… 맞설 거예요.”

    쌍둥이처럼 닮은 그녀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 줘야 했다.

    에어리스는 혼신의 기력을 다해서 클로버 가면의 앞을 가로막았다.

    “3배의 중력으로는 부족한가.”

    클로버 가면의 남자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4G.”

    중력이 더 강해졌다.

    에어리스조차 걸음을 내딛기에 부담을 받을 압력이었다.

    위력은 계속 올라갔다.

    “5G.”

    중력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으윽!”

    에어리스는 결국 무릎을 꿇어 버렸다.

    벗어날 수 없는 감옥처럼 중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6G.”

    클로버 남자는 틈을 주지 않았다.

    “크으으으윽!”

    엄청난 압력에 에어리스는 주저앉아 버렸고 고개마저 들기 어려웠다.

    6G.

    중력이 6배로 증가했다는 소리는 몸무게가 6배 늘어났다는 소리였다.

    마찬가지로 손에 든 대검도 중량이 6배로 증가해서 120㎏이 넘어버렸다.

    “굴복하는 일도 처음에만 어렵지. 계속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클로버 가면은 변함없이 낮은 톤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해.’

    에어리스는 저항할 기력을 서서히 빼앗기고 있었다.

    중력의 능력자에게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었다.

    클로버 가면에게 다가서기조차 버거웠다.

    “아직… 이야…….”

    에어리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힘을 다해서 숙였던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주저앉은 무릎도 일으켜 세웠다.

    막강한 중력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에어리스는 필사적으로 기합을 내면서 일어섰다.

    절대 쓰러지지 않는 기사처럼 굳건했다.

    결의였다.

    에어리스는 6배로 무거워진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파앗!

    반원으로 크게 휘두른 대검이 클로버 남자의 가면을 살짝 스치면서 지나쳤다.

    그의 가면에는 검에 베인 상처가 남았다.

    “이건……?”

    예상치 못한 반격을 받았는지 클로버 가면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중력의 힘이 순간적으로 풀렸다.

    “도망가요!”

    에어리스가 소리쳤다.

    쌍둥이처럼 닮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곧바로 가 버렸다.

    “6배의 중력을 이겨내다니 대단하군.”

    클로버 남자는 가면에서 살짝 베어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만지다가 지그시 에어리스를 바라봤다.

    대검을 든 에어리스는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쉽게 지나칠 수준이 아니었다.

    “라이트닝.”

    에어리스는 손에 낀 건틀릿 장갑에 번개 속성을 부여했다.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 * *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에어리스와 쌍둥이처럼 닮은 그녀가 서둘러 달아나고 있었다.

    공사장을 나와서 골목을 내달렸다.

    에어리스가 벌어 준 시간을 아껴서 달아나야 했다.

    “유진하를… 만나라?”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에어리스를 찾기 위해서는 차원문을 열어 다른 공간에 가야 한다.

    그럼 반드시 흔적이 남고 만다.

    안에 있는 존재들은 침입으로 간주해서 공격할 거라고 의식했다.

    “경계 태세가 좋은 곳이었어.”

    혼자 공간을 넘어오면 차원문은 아주 짧은 순간만 열린다.

    방어가 미흡한 곳이면 이 정도는 놓칠 수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여기는 대비가 잘된 곳이었다.

    “…….”

    도망가다 보니 추격자들이 잔뜩 붙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추격자는 빨랐다.

    “당신들은?”

    그물망처럼 포위하듯이 옆과 뒤에서도 다가왔다.

    그녀는 두려운 마음은 없었으나 여기서 잡힐 생각도 없었다.

    에어리스와 겉모습이 같은 만큼 움직임도 뛰어났다.

    “침입자가 여기 있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요원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그물망처럼 몰아가는 실력이 확실히 프로였다.

    요원들은 정예다운 실력을 선보였다.

    “괜찮은 실력이야.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골목의 담벼락을 뛰어올랐다.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요원들은 인간이었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담을 넘고 지붕을 내달렸다.

    지붕과 지붕을 계속 넘었다.

    “허억. 허억.”

    숨이 가쁘도록 달린다면 충분히 요원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그들은 따라오지 못했다.

    카드를 사용하는 일부 요원도 있었으나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거의 다 따돌렸어.”

    적당한 호흡과 함께 여유를 찾아가던 그때였다.

    별안간 바람이 불어왔다.

    폭풍처럼 매서운 속도로 요원 하나가 날아올라 돌격했다.

    “큭!”

    깜짝 놀란 그녀는 몸을 돌려서 그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였다.

    붉은 머리칼의 인간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이 느낌.

    상대가 실력자라고 인식했다.

    “침입자, 맞지?”

    바람결에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한 명의 요원이 지붕에 도착했다.

    “나는 J. 당신을 잡으러 왔습니다.”

    한 손에는 검, 다른 손에는 카드.

    J는 양손에 장비를 들고 동시에 활용하는 정예 실력자.

    일반 요원보다 뛰어난 능력자였다.

    결국 요원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나는데 실패하고 최악의 상황과 마주했다.

    “우리 공간에 들어온 침입자는 전부 잡아야 하죠.”

    그것이 정부 요원들의 역할이었다.

    자신만만하게 등장한 J는 검을 들어 정확하게 침입자를 겨냥했다.

    “그런데 당신은?”

    J는 검 끝에 보이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당혹감을 받았다.

    ‘에어리스를 똑같이 닮았어.’

    금빛이 서린 은발.

    긴 머릿결.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 에어리스와 키와 몸매도 비슷했다.

    ‘쌍둥이일까?’

    정체는 알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제거 명령까지 내렸으나 생포하는 쪽이 더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누군지 모르나 당신은 우리 세계로 넘어온 침입자입니다. 정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위험 대상으로 보고 제거할 수밖에 없어요.”

    J의 자세는 위압적이었다.

    강한 자세로 기운을 발휘했다.

    “싸울 생각은 없어요. 개인적인 용건이 있었을 뿐입니다.”

    “에어리스를 만날 생각인가요?”

    “…….”

    J는 짐작한 대로 운을 뗐다.

    추측은 정확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한테 신변을 위탁해도 돼요.”

    “그럴 수 없어요. 당신들에게 의지하라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에어리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단 한 명만 알려줬다.

    ‘유진하’.

    오직 그 사람이라고 전했다.

    “서로 못 믿는 건 이해하죠. 하지만 내가 아니면 당신은 제거될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저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겠죠. 지나가겠어요.”

    혹시나 말이 통할까 기대했으나 아니었다.

    엄격한 조직에서 규율은 목숨처럼 중요했다.

    J는 원정대의 리더까지 맡은 사람이었다.

    규칙과 명령의 중요성을 알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단칼에 대응했다.

    “내 임무는 침입자를 막는 거죠. 항복하지 않겠다면 뒷일은 어쩔 수 없어요.”

    그 순간, 낯선 인기척이 한 명 더 느껴졌다.

    요원 M이 지붕 위로 올라와서 참전했다.

    “내가 조금 늦었나.”

    M은 중절모를 눌러쓴 채로 냉정한 낯빛을 드러냈다.

    임무에 들어선 요원들은 표정이 금세 차갑게 변하곤 했다.

    J의 활달한 성격과 달리 M은 기본에 더 충실한 편이었다.

    말이 훨씬 안 통할 스타일이었다.

    “도망갈 곳은 없어. 항복해라.”

    앞에는 J, 뒤에는 M.

    사방에서는 요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에어리스와 닮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저 둘의 실력은 뛰어난 편이었고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일단은 세이프라고 해 두죠.”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

    한 사람이 더 나타났다.

    “저 사람은?”

    에어리스를 닮은 그녀는 별안간 눈빛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번에 나타난 사람은 카드 100장을 양손에 나눠서 가지고 있었다.

    카드들은 마술사의 손아귀에서 생동하듯이 촤라락 움직였다.

    카드 100장의 마술사.

    에어리스가 알려준 그 사람의 특징이었다.

    “당신이… 유진하?”

    마침내 그가 도착했다.

    유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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