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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48화 (48/229)
  • 48화 침입자(2)

    “…왔나?”

    도시 외곽의 빈 건물.

    사람의 눈길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범죄자는 남의 주목을 받길 꺼리는 법이다.

    물론 과거에 살인마였던 자가 머물기에는 적당한 장소였다.

    살인마 나주신.

    그는 목에 이상한 장치를 메고 있었다. 그것은 GPS와 폭약이 담긴 목걸이였다.

    마침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백가면의 남자였다.

    “잘 있었나?”

    나주신은 무표정하게 응대했다.

    백가면의 남자는 서류에 담긴 물건을 건넸다.

    “새 신분증이다.”

    살인마의 실력이 아까워서 신분 세탁을 해주는 거였다.

    백가면의 남자는 얼마 전에 직접 감옥에 있던 그를 탈옥시켜서 데려갔다.

    녀석을 알카트로스라는 조직으로 받아들였다.

    세계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범죄집단이었다.

    “널 우리 편으로 받아들인다는 소리이기도 하지.”

    나주신은 새로운 신분증을 받았다.

    안의 내용은 확인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 조직에서 내 역할은?”

    나주신의 궁금증은 하나였다.

    탈옥의 빚을 받았으니 대가를 갚아준 후에 독립할 생각이었다.

    주는 대로 받는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그게 철칙이었다.

    “역할은 리더가 정한다.”

    백가면의 남자는 차갑게 대답했다.

    나주신처럼 구제 불능의 범죄자는 조직의 일을 하기에 적합했다.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야생마이지만 위험한 만큼 실력은 쓸 만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지?”

    “정해진 지역을 벗어나거나 명령 불복종, 혹은 목걸이를 제거하려고 하면 폭발해 버린다. 잘 알고 있지.”

    나주신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이었다.

    살인마의 눈은 확실히 달랐다.

    백가면의 남자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더니 서랍에서 스위치 하나를 꺼냈다.

    “명심하고 있군. 조심하는 편이 좋아. 여차하면 바로 이걸 누를 테니까.”

    휴대용 폭발 스위치였다.

    여차하면 버튼 하나만 눌러서 녀석을 바로 처치할 수 있었다.

    굳이 살인마까지 합류시킨 이유는 실력이 아까워서였다.

    큰 범죄를 성공시키려면 출중한 자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다.

    능력 있는 사람은 한 명이라도 아까웠다.

    하지만 배신은 용납하지 않는다.

    “이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백가면의 남자는 선물을 하나 내밀었다.

    쾌속의 사바톤 부츠였다.

    “이걸 구했나?”

    이것만 있으면 나주신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

    “서비스가 좋군.”

    나주신은 순순히 부츠를 받았다.

    살인마 나주신에게 있는 악마의 재능을 완전히 꽃피워 줄 장비였다.

    그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딴생각은 하지 말고. 나만 널 감시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의 기대에 어긋나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지.”

    백가면은 살인마를 인간적으로 대우할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다.

    필요하면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여겼다.

    나주신은 부츠를 신어 봤다.

    “외출해도 되나?”

    “어디로?”

    “개인적인 용건이지. 꼭 죽이고 싶은 녀석이 있어.”

    대놓고 요구했다.

    살인마 나주신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백가면은 잠시 생각하더니 의외로 선선히 허락했다.

    “두고 보면 알겠군. 오늘만 허락하지.”

    “그 정도면 충분해.”

    여차하면 목걸이 폭발 버튼을 누르든 아니면 녀석을 직접 베어 버릴 마음도 있었다.

    배신하면 죽인다.

    낌새만 바뀌어도 단숨에 끝내 버릴 준비는 언제라도 해 두었다.

    “하나 더 주지. 이건 너의 가면이다.”

    가면에는 기사가 그려진 문양이 있었다.

    붉은 글자도 새겨졌다.

    J였다.

    “잭인가? 트럼프의 잭?”

    백가면의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검은 클로버가 새겨진 가면이었다.

    알카트로스는 트럼프 카드의 문양이 새겨진 백가면을 착용했다.

    그들을 상징하는 백가면과 트럼프 문양은 트레이드 마크였다.

    “잘 쓰지.”

    절그럭. 절그럭.

    나주신은 쾌속의 사바톤 부츠를 착용하고 걸었다.

    걸을 때마다 특유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운 소리였다.

    “드디어 돌려받았군.”

    나주신은 부츠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장은 만족스러웠다.

    나주신은 혼자 걸어가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차피 저 가면 녀석은 나중에 처리해도 되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언젠가 다가올 기회를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반드시 그날은 올 것이고 그때 선택하면 되었다.

    지금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 녀석들…….”

    나주신은 당장 기분에 따라 가장 처리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갔다.

    패배의 기억을 안긴 유진하와 에어리스였다.

    * * *

    햇살이 쏟아지는 낮.

    유진하는 에어리스, 이소민과 마당에 잠시 남았다.

    간부 E는 그들에게 새로운 의뢰를 맡겼다.

    지금까지 하던 공략전이 아니라 수색이었다.

    유진하는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차원문을 열고 침입했다고 그랬어요.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여기에 있을 거라는 거지?”

    이소민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유진하는 재빠르게 근방 지리에 대해서 생각했다.

    “단순히 닮은 사람이 아니라면 목적이 있을 거예요. 에어리스를 만나러 왔을 가능성이 높아요.”

    에어리스가 멈칫했다.

    자신과 닮은 사람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찾으러 왔다니.

    “진하, 정말 그럴까요?”

    “정부의 간부 요원이 직접 찾아온 이유도 그거였어. 우리가 그 사람을 만났는지 확인하려던 거겠지.”

    이제야 퍼즐이 맞아 들어갔다.

    이소민과 에어리스는 요원이 자신들을 탐색하려는 생각으로 왔다는 걸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에어리스는 벽에 세워둔 대검을 등에 멨다.

    “지금부터 할까요?”

    의욕이 앞서는 에어리스를 보면서 유진하는 볼을 간질거렸다.

    “에어리스, 우리가 준비 안 됐어.”

    “그럼 저는 혼자 연습하면서 기다릴게요. 천천히 장비 챙겨오세요.”

    에어리스는 방금 E와의 대결을 통해서 강한 자극을 받았다.

    간부 E는 괴물 같은 실력의 소유자였다.

    최대로 휘두르는 대검이었는데 한 손으로 가볍게 받아냈다.

    쉽게 받아낸 그 실력도 그렇지만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도 기억에 깊게 남았다.

    “더 열심히 수련해야 해.”

    에어리스는 자극을 잔뜩 받아서 연신 대검을 휘두르며 연습했다.

    밝은 햇살이 은은하게 쏟아지는 아래에서 대검의 날이 빛으로 반사되었다.

    대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바람이 한 번씩 몰아쳤다.

    더 빠르게. 더 힘차게.

    강해지겠다는 의지와 목표가 하나의 힘처럼 작용했다.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대검의 위력 속에서 에어리스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잠시 후, 모든 준비를 마친 유진하와 이소민이 마당으로 나왔다.

    “이제 준비됐어.”

    유진하는 100장의 카드 중에서 일부는 손에 쥐고 나머지는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소민은 빙룡의 가방에 카드와 무기를 잔뜩 집어넣었다.

    “가 보자.”

    수색은 집 근방부터 시작했다.

    유진하 일행은 나란히 골목길을 걸었다.

    수색 의뢰를 시작하면서 상황을 재점검해 봤다.

    “그냥 우연은 아닐 거야. 에어리스를 찾으러 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유진하는 그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침입자가 한 명이라면 왜 혼자서 왔을까?

    에어리스와 닮은 이유는?

    찾으러 온 이유는 대체 뭘까?

    “진하, 혹시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앞장서서 걸어가던 에어리스도 걸음을 멈췄다.

    유진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기까지는 알 수 없어.”

    추측은 가능했으나 어차피 가설이었다.

    예상을 초월한 무언가라는 짐작만 있을 뿐이었다.

    “정부의 간부들은 침입자를 항상 적으로 여겨. 이미 추적하고 있고.”

    당장 그녀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만약 정부 요원들이 먼저 찾으면 그녀는 제거당할 수도 있었다.

    요원들보다 먼저 발견해야 했다.

    이소민은 푸념하듯이 내뱉었다.

    “위험한 상황인데 대체 어디에 있을까?”

    에어리스도 걱정이 되는지 불안한 눈빛을 머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원들이 아직 못 찾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잘 숨는 거 같아요. 정말 저에게 용건이 있다면 직접 찾으러 올 수도 있고요.”

    혹시나 그쪽에서 에어리스를 찾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에어리스가 자주 다니던 카페와 음식점, 극장을 위주로 살폈다.

    하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허탕을 치고 골목을 나오자마자 대로변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오, 너희들도 왔구나.”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는 요원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J도 왔네요?”

    에어리스는 멀리서 J에게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같이 원정대도 한 사이잖아. 편하게 인사하자. 너희도 잘 지냈어?”

    특유의 친밀함을 무기로 가진 J가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보였고 평소처럼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J의 손에는 커피를 하나 들고 여유가 가득했는데 마치 햇살을 가득 받으며 경치를 구경하는 듯했다.

    “너희들도 수색에 나온 거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J가 반갑게 일행을 맞아 주었다.

    딱히 일한다는 느낌보다는 바깥에서 분위기를 만끽하는 듯한 기분으로 보였다.

    “일은 일이긴 한데, 어차피 주변을 살피는 거잖아. 일반인처럼 보이면 좋지.”

    즐기는 자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평소보다 더 경쾌한 느낌이었다.

    유진하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밖에 나와서 편하게 산책하는 사람처럼 보이길래 슬쩍 반응을 떠봤다.

    “부하 요원들을 쫙 깔아놓고 그냥 쉬는 거 아닌가요?”

    정곡을 찔렸는지 J가 멈칫했다.

    편안한 표정이 일순간 당황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렸다.

    “아니야. 나만 농땡이가 아니라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거야.”

    갑자기 눈에 힘을 주고 돌아보더니 슬슬 발걸음을 돌렸다.

    “근처에 M도 있어. 혹시 보면 안부 인사는 해 주고. 그럼 나는 일하는 중이니 가볼게.”

    커피만 들고 J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당황한 티를 남기지 않고 서둘러 떠난 듯이 보였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 하나는 확인했다.

    “요원들이 우리 곁을 수색하고 있어.”

    유진하는 중얼거렸다.

    요원들은 몰래 에어리스를 감시하고 있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J와 M도 왔어요. 안 되겠어요. 제가 요원들을 따돌릴 테니 일단 우리도 흩어져서 찾아요.”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에어리스는 감시하는 요원들을 피해낼 자신이 있었다.

    유진하도 동의했다.

    “알았어. 하지만 몇 가지 조심할 점이 있어.”

    중요한 부분을 알려 주고 곧바로 세 사람은 흩어져서 행동했다.

    침입자를 찾아내려면 우연과 운이 필요했다.

    하지만 유진하에게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찾는 게 어렵다면 그쪽에서 오게 하는 거야.”

    역으로 상대가 나오도록 유도해야 했다.

    에어리스라면 가능했다.

    꼭 빼닮은 그녀는 에어리스와의 만남을 원할 거고, 단둘이서 만날 기회를 바랄 터였다.

    “어설프게 하면 걸릴 거야. 제대로 둘이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해.”

    유진하는 둘의 만남을 의도할 계획을 준비했다.

    자신과 이소민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요원들의 추격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에어리스 혼자라면 따돌리기 쉬울 거야.”

    에어리스는 요원들보다 빠르고 날렵했다.

    그 실력이면 충분히 혼자 빠져나갈 수 있었다.

    “작전 시작이야.”

    요원들을 따돌리는 작전이 시작됐다.

    유진하와 이소민은 일부러 요원들의 시선을 분산시켰고, 그 틈에 에어리스가 빠르게 달려 나갔다.

    “아차!”

    빈틈을 찔린 요원들은 이내 에어리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담벼락을 넘고 골목을 달렸다.

    웬만한 거대 몬스터와도 맞서는 실력의 에어리스였다.

    당연히 일반 요원들로 추적은 무리였다.

    “후우.”

    가볍게 요원들을 따돌린 에어리스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집 근처 골목을 벗어나서 도시 외곽의 공사장으로 향했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없는 낯선 곳.

    잠시 공사가 멈춘 이곳이 근처에서 남의 눈이 없는 유일한 장소였다.

    “정말 오려나요?”

    오래 걸리지 않아 그 생각은 적중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아, 당신은?”

    몰래 다가온 낯선 자를 의식했다.

    그자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나랑 똑같이 닮았어요.”

    우리 공간으로 침입한 자는 에어리스와 완전히 같은 얼굴이었다.

    몸매나 체형 역시 동일했다.

    쌍둥이처럼 같았다.

    “오랜만이군요.”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에어리스는 낯선 자신과 마주치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답을 하기 어려웠다.

    반갑다고 할지.

    어떤 답변이 어울릴지 고민했다.

    “저를 아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저는 당신을 만나러 온 것이니까요.”

    짧은 대화가 오갔다.

    에어리스는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감정으로 의식했다.

    묻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누구인지.

    그때였다.

    “찾았군.”

    건너편 골목에서 예기치 못한 녀석이 나타났다.

    덜그럭. 덜그럭.

    기분 나쁜 발자국 소리였다.

    수없이 들어서 익숙했던 그 소리.

    불쾌하고 위험한 기운이 에어리스의 온몸을 휘감았다.

    “설마…….”

    불안함은 적중했다.

    쾌속의 사바톤 부츠를 신은 사람.

    트럼프 카드의 잭 문양이 그려진 가면을 쓴 자가 회색 양복을 입고 걸어왔다.

    연쇄 살인마 나주신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다.

    “두 명……?”

    회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자.

    클로버 문양이 새겨진 백가면을 쓴 사람도 같이 있었다.

    알카트로스 조직의 잭과 클로버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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