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마지막 시련(7)
빛으로 둘러싸인 최상층.
탑의 주인은 자신의 온몸을 감싸던 빛을 걷어내고 에메랄드 빛깔의 머리카락과 초록 눈동자를 드러냈다.
인간의 모습이었다.
놀랍지는 않았다.
이미 그의 실루엣을 보면서 형체를 짐작하긴 했으니까.
“당신이 탑의 주인…….”
유진하는 말끝을 흐리면서 천천히 상대를 바라봤다.
짐작은 했으나 확실히 인간과 비슷했다.
“그래. 너희와 비슷하지.”
탑의 주인이자 이 공간의 소유자인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는 레어 카드를 들고 있었다.
빛의 카드였다.
‘빛은 전부 카드에서 나온 거였어.’
마치 빛을 보호막처럼 온몸에 뒤덮었다.
- 사용자의 마음대로 주변의 빛을 조절하는 능력.
유진하는 카드의 능력을 금세 알아차렸다.
레어 등급. 빛의 카드.
최종 승부를 맞이하면서 장비는 간소하게 준비했다.
‘가진 건 100장의 카드인데.’
가방 하나만 더 있었다.
가진 무기는 이게 전부였다.
탑의 주인은 여유가 있었다.
한껏 여유로운 손짓으로 유진하를 가볍게 가리켰다.
“이제 시작하지.”
세트 스코어는 2:2.
최종전은 일대일 대결이었다.
승부가 다가오자 유진하는 매섭게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차분한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탑의 주인을 쳐다봤다.
손에 든 100장의 카드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발현.”
위치 지정 카드로 시작했다.
자신이 소유한 물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능력이 있었다.
카드 수십 장을 공중에 띄워 놨다.
마술사처럼 사방에 카드를 배치했는데, 이렇게 해놓으면 해당 카드를 전언으로 발동시킬 수 있다.
“활성화.”
탑의 주인도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손에 빛의 카드를 쥐었고 주변의 모든 빛을 모았다.
파아아.
하얀빛으로 뒤덮인 최상층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빛의 힘이 탑의 주인에게 모이더니 검의 형태가 되었다.
“하아압!”
탑의 주인은 기합을 지르며 검을 바닥에 내리쳤다.
빛의 파동이 땅을 스치며 앞으로 치달았다.
목표는 유진하였다.
“디펜스 월.”
유진하는 전언 카드를 사용했다.
공중에 있는 카드 중 하나를 원격으로 발동시켰다.
방어막 카드였다.
날아오는 빛의 파동을 막기 위해서 방어막 능력을 사용했는데 제법 쓸 만했다.
“흐음.”
일단은 막아냈다.
방어막 카드는 두 장이 더 남았고, 중요한 타이밍에 맞춰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반격이 필요했다.
“이걸로 해 볼까.”
유진하는 한 장의 카드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
현재 최대의 공격력을 가진 회심의 카드였다.
“소환.”
몬스터 소환 카드였다.
맹호를 불러냈다.
제이슨과 용병팀이 사투 끝에 카드에 봉인한 거대 몬스터.
서리의 빙룡과의 격전에서도 승리한 괴물이었다.
재소환 시간이 지났으니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
맹호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기세등등하게 나타났다.
유진하는 비장의 무기를 먼저 꺼내어 반격을 준비했다.
맹호가 등장했음에도 탑의 주인은 동요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빛의 카드는 여전히 많은 빛을 모으고 있었다.
“괴물 상대로는 괴물이 적격이지.”
녀석는 손 안에 모인 빛을 강하게 발휘했다.
스멀스멀 올라가는 빛이 형태를 이루더니 거대한 괴물이 되어 갔다.
“저런 것도 가능해?”
빛은 무제한의 형태로 변화가 가능하다.
가히 사기적인 능력을 지닌 빛의 카드였다.
쿵!
한 걸음이 묵직했다.
빛으로 만들어진 거인이 등장했다.
빙룡을 제압한 맹호는 이제 빛의 거인과 마주했다.
하얀빛으로 이루어진 거인은 맹호에 비해서 몸집도 두 배에 달했다.
“빛의 거인?”
유진하는 거대한 녀석을 마주하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괴력으로 빛나는 덩어리였다.
빛의 거인은 위압감을 드러냈다.
“크르르르르.”
맹호는 거인의 겉모습에 기죽지 않고 먼저 덤벼들었다.
돌격하면서 거인의 상체 쪽으로 달려들었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졌으나 빛의 거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빛은 송곳니로 물 수가 없었다.
크르르르.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이 무용지물이었다.
거인의 형체가 허상은 아니었으나 빛은 물리적인 타격에 면역이었다.
“통하지가 않아.”
유진하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맹호는 빛의 거인에게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
“크르르르르.”
기세 좋게 달려들었으나 오히려 버둥거리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크르릉.”
빛의 거인은 손을 들어 맹호의 등을 잡았다.
슬쩍 맹호를 떼어내 버렸다. 맹호는 꼼짝도 못 하고 잡혀 버렸다.
“카아아아아!”
맹호가 아가리에서 강한 고함을 터트렸다.
위기의 순간마다 사용한 괴력의 고성이었다.
하지만 빛은 무적이었다.
괴성은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했다.
거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쿠오오오오.
그대로 맹호를 땅으로 내던졌다.
있는 힘껏 내동댕이친 바람에 맹호는 저 멀리 튕겨 나가 버렸다.
“캬아아아아.”
고통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고통을 참아내던 백호는 처음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상대는 빛이었고 그 앞에서 모든 것이 미약했다.
“후우.”
비장의 무기였던 맹호마저 무기력하게 제압당하자, 유진하는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최상층은 광대한 빛이 뒤덮인 곳.
탑의 주인이 가장 유리한 무대였다.
녀석은 이곳의 지배자였다.
빛의 카드는 압도적인 위엄을 발휘했다.
“역시 그랬어.”
유진하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와 눈빛에는 아직 힘이 실려 있었다.
뭔가를 알아차린 듯이.
유진하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쳤다.
“빛의 카드도 한계가 있어.”
자신감 넘치게 또박또박 얘기했다.
흐트러짐이 없었다.
“빛의 한계라고?”
탑의 주인은 빛의 카드를 손에 쥔 채로 멈칫했다.
“그래. 약점이 있어.”
유진하는 손에 쥔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사방이 빛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왜 그럴까.”
최상층은 사실 온 적이 있었다.
첫 번째 왕좌의 시련에서 그랬다.
유진하는 이미 최상층의 이런 구조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 빛으로 뒤덮였을까.
어떤 원리일까.
혹시 그렇다면…….
“만약 빛이 없는 곳이면 어떨까.”
유진하의 예리한 지적이었다.
탑의 주인은 정곡을 찔렸는지 움찔했다.
질문이 올바르다면 정답도 찾을 수 있다.
“빛이 있을수록 더 강해진다. 이거 맞지?”
빛의 카드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이 카드는 빛을 발산하는 능력은 없다.
빛을 다른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갑옷이든 거인이든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나, 주변에 많은 빛이 있어야 한다.
더 많은 빛이 필요한 카드.
빛의 카드는 한계가 있었다.
“빛의 카드. 약점은 명확해.”
저런 카드는 역으로 빛을 차단한다면 무력해진다.
명백한 약점이었다.
“그럼 공략해 볼까.”
유진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행동으로 옮겼다.
최상층에 가득한 빛은 발광 장치로 만들어진 거였다.
전부 깨버려야 했다.
“지금이 기회야.”
유진하는 기회를 마음껏 활용했다.
위치 지정 카드로 사방에 화염 카드를 보냈다.
최상층에 있는 발광 장치를 전부 겨냥하더니 일제히 발사했다.
“파이어.”
전언으로 명령어가 전달되자마자 곧바로 불길이 발산됐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불꽃이 주변의 모든 발광 장치를 태워 버렸다.
조명이 꺼졌다.
빛의 방은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유진하는 계산에 들어갔다.
“원래 빛의 힘이 100이었다면 지금 확 줄었겠지. 그럼 이쪽도 승산이 있어.”
실제로 아까 빛의 거인은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크르르르.”
마침 맹호도 자세를 추스르고 다시 일어섰다.
빛은 줄어들었고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이제 해 보자.”
유진하는 모든 카드를 발휘했다. 전력투구로 싸울 준비를 마쳤다.
마술사 유진하.
카드를 적재적소에 보내서 공중에 휘날리도록 배치했다.
‘타이밍은 이제 온다.’
맹호가 돌격하는 순간에 승부를 걸어 보기로 했다.
탑의 주인도 빛의 검을 들었다.
아까보다는 확 줄어든 거인과 같이 있었다.
맹호 대 빛의 거인.
마술사 대 탑의 주인.
마지막 진검승부가 다가왔다.
“크아아아앙!”
맹호가 빛의 거인을 향해서 맹렬한 돌격을 감행했다.
그 신호에 맞춰서 격전이 벌어졌는데 유진하는 회심의 수가 있었다.
가방에 넣어놓은 비장의 무기를 결정적인 타이밍에 꺼냈다.
“무겁네. 검은 안개의 도끼.”
제이슨의 도끼를 빌려왔다.
쿵.
바닥에 무거운 도끼를 내려놓았다.
저걸 들기에는 힘이 부족했는데 사실 굳이 들 필요는 없기도 했다.
도끼의 발동 주문만 말하면 되니까.
“발현.”
무기 용도가 아니라 검은 안개를 내뿜으려는 의도였다.
빛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발광 장치를 깨기.
둘째는 어둠을 발산하기.
유진하가 최종 승부를 앞두고 준비한 작전이었다.
검은 안개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절반 이하로 줄어든 빛.
검은 안개가 더 강하게 압박했다.
“어둠이 빛을 삼키는 거야.”
한때는 100이었던 빛이 아까 50으로 줄어들고, 이제는 20까지 감소했다.
유진하의 계책은 철저히 약점을 파고들어 공략했다.
빛의 거인은 더 줄어들어 이제는 거의 인간 크기로 작아졌다.
맹호가 더 몸집이 커서 역으로 한때는 거인이었던 녀석을 가지고 놀게 되었다.
“크르르르릉!”
입으로 콱 물지는 못하니, 그냥 손에 확 가둬서 빛을 차단했다.
빛이 없으니 소환체는 스르르 사라졌다.
괴물끼리의 대결은 싱겁게 역전되어 승부가 갈렸다.
“자, 다음은 당신이다.”
이제 유진하와 탑의 주인 간의 대결만 남았다.
탑의 주인은 온몸을 빛으로 뒤덮어서 방어에 신경을 썼다.
유진하는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다.
“아이스.”
가지고 있는 모든 얼음 카드를 발휘했다.
녀석의 주변에 얼음을 계속 쌓았다.
빛이 줄어들면 열도 줄어든다.
확 줄어든 열기는 얼음으로 가둬 버릴 수 있다.
파아아아.
수십 장의 얼음 카드를 총동원했다.
어마어마한 냉기로 얼음의 벽에 꽁꽁 가둬 버렸다.
탑의 주인은 빛의 힘을 대폭 잃었고 기동력은 원래부터 느린 편이었다.
‘얼려 버리면 꼼짝없이 갇힌다.’
유진하는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공략했다.
탑의 주인은 빛의 카드만 믿었는지 다른 대책은 부족했다.
자만심.
탑의 주인은 자신의 계획만 믿고 방심했다.
승부는 거기서 완벽하게 갈라졌다.
“졌다…….”
탑의 주인은 온몸이 얼어 버리기 직전에 패배를 인정했다.
유진하는 공격을 멈추고 사방에 퍼뜨린 카드를 다시 이동시켰다.
촤라락.
마술사 유진하는 모든 카드를 자기 손에 모아서 정돈했다.
“이제 끝났나?”
지금까지 네 번의 시련을 거쳤다.
탑의 주인이 제시한 과제를 전부 거쳤고, 사투를 극복하면서 성장했다.
“후우.”
유진하는 고개를 들어 호흡을 가다듬었다.
서서히 모든 긴장감이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여러 개의 공간을 확보한 강적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서 마침내 이겨냈다.
승리의 감상에 빠지다가 이내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끝인 거지?”
유진하가 탑의 주인에게 물어봤다.
“그렇다. 규칙이었지.”
탑의 주인은 순순히 인정했다.
세트 스코어는 3:2.
결국 인간 팀이 승리했다.
얼음이 부서지자 탑의 주인은 다시 자유를 되찾았다.
그는 약속을 지키듯이 레어 등급인 빛의 카드를 도로 거두었다.
몸을 감싸던 빛이 사라지자 초록빛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다시 드러났다.
“너희는 정말 대단한 녀석들이다. 누군가 내 시련을 극복한 건 처음이지.”
의견을 솔직하게 표시했다.
탑의 주인은 의외로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였다.
자만심과 도발적인 자세는 전부 사라졌고 한 명의 작은 인간만이 남은 듯했다.
마침 맹호가 유진하에게 돌아왔다.
“오늘 기특했어. 고생했구나.”
유진하는 괴물의 머리를 만져 주며 칭찬해 주고는 도로 카드 속에 넣었다.
안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이제 끝났어.”
탑의 주인은 수긍했다.
“너희가 이겼다.”
작은 침묵이 지나갔다.
마치 지나가는 바람처럼 조용한 숨결만 흘러갔다.
탑의 주인은 오롯이 유진하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공간이 있다. 하나하나마다 전부 주인이 있지. 공간의 주인이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나 실상은 전혀 달라.”
그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주인이 전투에서 지면 공간도 전부 사라진다. 소멸해 버리지. 어쩌면 살아 있는 모두가 같은 운명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살아남는가. 사라지는가.”
탑의 주인은 카드를 건넸다.
“빛의 카드가 전리품이다. 너에게 주겠다.”
그의 손을 떠난 카드가 유진하에게로 날아왔다.
유진하는 양손으로 받았다.
마침내 전리품을 차지했다.
쿠구궁!
땅이 울리면서 진동이 시작되고 공간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차원문이 생겼다.
빠져나갈 유일한 통로였다.
탑의 주인은 가만히 있었다.
“세상에는 수십억 개가 넘는 공간이 있다. 공간끼리 서로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지. 강한 공간은 살아남고 약한 공간은 멸망한다.”
그는 체념한 듯했다.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더 강했을 뿐이야.”
유진하는 문득 인간 세계를 떠올렸다.
수년 동안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공략전이 유행했다.
인간들은 이것을 단순한 모험으로만 여겼다.
아니었다.
수많은 공간끼리 결전을 벌인다.
패배한 세력은 소멸하는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생존이 걸린 전쟁이었다.
“당신도 최선을 다한 거겠지.”
유진하는 왠지 미련이 남았다.
탑의 주인이 가진 마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약해서 내 공간을 지키지 못했다. 너희는 다른 운명을 갖기를 기원하마.”
탑의 주인은 감상에 젖었는지 문득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이 사는 세계에 자긍심과 사명감을 가졌던 걸까.
온 힘을 다해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발전시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녀석의 진정한 바람이 그랬을까.
“…알았어.”
유진하는 네 번의 시련마다 치열하게 싸웠던 상대를 바라봤다.
이제 승부는 끝났다.
“형에 대해서 알고 싶어.”
“후후, 그랬지. 네가 이기면 알려 준다고 했었나.”
탑의 주인은 씁쓸한 눈빛을 짓더니 순순히 대답했다.
“그 사람은 몬스터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이윽고 갑자기 열린 차원문을 통해 사라졌다.”
“차원문?”
“그래. 내가 푸른 갑옷의 기사를 데려오던 것과 같은 방법이었지. 너의 형을 데려간 녀석이 있다.”
유진하는 깨달았다.
형이 살아 있다!
“어디로 갔지?”
“그것까지는 모른다. 무사히 빠져나간 거만 봤을 뿐이지.”
“…그래.”
유진하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형의 행방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으나, 적어도 살아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형은 죽지 않았다.
살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숨이 가쁘도록 기뻤다.
쿠궁.
한편,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밑에 있던 동료들이 전부 최상층으로 올라왔다.
“진하.”
에어리스가 반갑게 다가왔다.
“우리가 이겼어!”
다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차례차례 차원문으로 들어갔다.
용병팀, 요원팀, 마지막으로는 에어리스와 유진하의 차례가 되었다.
차원문에 들어가기 직전에 유진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지막으로 탑의 주인이었던 그를 바라보고 싶었다.
승자는 가고 패자는 남는다.
그는 잠자코 기다렸다.
다가오는 소멸의 운명을 기다리듯이 침묵만이 남은 존재처럼 가만히 있었다.
“…….”
유진하는 알 수 없는 씁쓸함을 가진 채로 차원문에 들어갔다.
모든 인간들이 돌아가고 무너져가는 이곳에는 오로지 탑의 주인만 남았다.
그는 무너져 가는 공간을 보면서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모두의 운명을 가를 중대한 ‘선택’은 오게 마련이다. 누구나 그렇지. 너희도 올바른 선택을 하기 바란다.”
탑의 주인은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너의 형은 가까운 곳에 있을 거야. 그때 그 사람을 차원문으로 데려간 자는 너희와 같은 인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