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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40화 (40/229)

40화 마지막 시련(4)

용암이 바닥에 흐르는 장소에서 두 번째 승부가 벌어지고 있었다.

10마리의 거대 몬스터들 사이에서 에어리스는 홀로 고군분투했다.

“하아압!”

대검으로 8마리의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이제 남은 둘.

전혀 예기치 못한 상대가 나타났다.

서리의 빙룡.

푸른 갑옷의 기사 시리안.

이전에 사투를 벌였던 그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당신은…….”

에어리스는 당혹스러웠다.

믿을 수 없었다.

예전에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던 상대였고, 전리품을 찾아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공간은 소멸했다.

당연히 이 사람도 빙룡도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여기에?”

눈앞에 나타난 푸른 갑옷의 기사.

자신이 시리안이라고 말한 그 남자가 분명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때 나는 같이 사라져야 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겼지. 그때 누가 들어왔다.”

그는 뒤를 가리켰다.

에어리스의 혼란스러운 시선은 건너편 뒤쪽의 대기석으로 향했다.

탑의 주인이 보였다.

팔짱을 낀 채로 하얀빛을 발산하며 조용히 침묵만 지키는 자.

시리안은 이어서 얘기했다.

“멸망해 가던 내 공간으로 들어왔지. 녀석에게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카드가 있었다.”

말끝을 줄이더니 잠시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나에게 제안하더군. 여기 나와서 같이 가겠나. 아니면 공간과 같이 사라지겠나.”

차가운 눈매의 시리안이 에어리스를 바라봤다.

분노에 찬 눈빛이었다.

“나는 받아들였다. 아직 내 운명이 남아 있다면 다시 기회를 잡기로.”

시리안은 기운을 서서히 모아갔다.

강적이 등장하자 대검을 든 에어리스의 손에도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공기가 바뀌었다.

시리안의 옆에 있던 빙룡도 차가운 냉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얼어 버린 얼음이 부스러져 내렸다.

“잠깐만 기다려라.”

시리안은 빙룡의 몸을 쓰다듬었다.

잘 알아들었다는 듯이 빙룡이 고개를 숙였다.

푸른 갑옷의 기사는 빙룡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서리의 빙룡은 내 애마로 활용했다. 불사신의 몬스터지.”

장외에서 지켜보던 J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예 요원과 함께 맞섰던 그 빙룡이 사실은 죽지 않는 존재였다니…….

불사신의 용.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 중에는 그런 괴물은 없었다.

“저걸 에어리스 혼자서?”

문제는 지금이었다.

에어리스는 불사신의 용과 푸른 갑옷의 기사 시리안을 동시에 적으로 마주했다.

최대의 위기였다.

“에어리스!”

이소민이 크게 소리쳤다.

에어리스는 그 목소리를 들었으나 여전히 시리안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긴장감 속에서 오로지 전투에만 몰입했다.

대기석에서 지켜보던 유진하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탑의 주인은 에어리스를 상대할 카드로 저 둘을 데려온 거야.’

탑의 주인.

저 하얀빛에 둘러싸인 존재는 시리안을 데려갔다.

미리 준비했던 것일까?

오늘 에어리스를 대적할 상대를 준비하려고.

“완전히 노렸어.”

탑의 주인은 대체 뭘 원하는 걸까.

힘의 시련.

마지막 승부에서 녀석이 진정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궁금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겠어.’

유진하는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서리의 빙룡과 시리안이 등장하자 상황은 급반전이 되었다.

밑에서는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더운 공기가 실내에 가득했다.

에어리스는 잔뜩 긴장한 자세가 되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시리안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들이 기억났다.

“당신은 제 과거를 알고 있다고 했어요.”

에어리스의 음성은 진지했다.

과거의 인연 혹은 악연일까.

시리안의 앞에 서면 에어리스는 이전보다 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운명이란 화살이 날아온다면 피하지 않겠다고 이미 결심한 뒤였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존재란 없어. 우리도 그렇다.”

푸른 갑옷의 기사 시리안은 조용히 에어리스를 응시했다.

그의 매서운 눈빛은 에어리스의 온몸을 얼려 버릴 듯이 차가웠다.

“나는 알고 싶어요. 과거를 알게 된다면 어떤 책임도 피하지 않겠어요.”

“원한을 받을 각오는 된 듯하군.”

시리안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차디찬 미소 속에서 경멸의 감정을 드러냈다.

“지금은 승부에서 만났으니 저도 피할 생각은 없어요.”

“그걸 원하고 있지.”

시리안은 눈꺼풀을 내리깔더니 조용히 에어리스를 응시했다.

에어리스의 허리띠에는 빙결의 장검이 채워져 있었다.

원래 시리안의 검이었으나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이번에는 에어리스가 출전하면서 가져온 물건이었다.

지금.

에어리스는 중요한 결심을 내렸다.

“이 검을 돌려줄게요. 대신 저와 약속 하나를 해요.”

빙결의 장검을 그에게 내밀었다.

시리안은 장검을 바라보다가 의문을 던졌다.

“조건이라……. 뭐지?”

“이 검을 받고 나랑 승부해요. 내가 이기면 과거를 알려 주세요.”

“그렇군.”

시리안은 가늘게 눈을 뜨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받아들이겠다. 과거를 매듭짓고 싶다면 말이지.”

“알겠어요.”

에어리스는 빙결의 장검을 던져 줬다.

시리안은 그 검을 받더니 검집에서 꺼내서 검날을 살펴봤다.

“원념이 담긴 검이야.”

시리안은 작게 중얼거리더니 검을 천천히 바라봤다.

“서리의 빙룡은 내 말을 따른다. 승부에 방해가 된다면 대기시킬 수 있다.”

“아니에요. 저도 준비한 게 있거든요.”

에어리스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카드였다.

“어차피 2번 방에서 이기려면 빙룡과도 결국 맞서야 해서요.”

몬스터 소환 카드를 꺼냈다.

아까 제이슨의 용병팀이 사투 끝에 사로잡았던 그 거대한 호랑이 몬스터.

카드 속에 봉인된 상태였다.

“소환.”

명령이 나오자 곧바로 호랑이 몬스터가 나타났다.

이쪽도 덩치가 커서 빙룡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이쪽은 맹호에게 맡길게요.”

에어리스는 호랑이 몬스터의 등을 토닥였다.

어느새 불사신의 용과 맹렬한 호랑이가 맞서게 되었다.

에어리스는 대검을 들어 천천히 푸른 갑옷의 기사 시리안을 겨누었다.

“좋다. 받아들이지.”

시리안은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빙룡이 빠르게 위로 치솟았다.

카드에서 소환한 에어리스의 맹호 역시 빠르게 벽을 박차고 올라갔다.

용암 지대는 넓었다.

호랑이와 용이 서로의 목덜미를 노리면서 엉겨 붙었다.

콰아앙!

격렬한 전투 속에서 송곳니와 발톱이 부딪치는 소리가 육중하게 전해졌다.

“우리도 시작할까?

그 아래에는 대검을 든 에어리스와 빙결의 장검을 든 시리안이 있었다.

검을 겨눈 채로 서로를 의식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안 올 건가?”

시리안은 장검에 서서히 기운을 발휘했다.

“약속은 지켜야 해요.”

에어리스는 단호했다.

과거의 원념과도 같은 푸른 갑옷의 기사와의 재대결을 맞이했다.

피할 수 없는 승부였다.

“그래.”

시리안의 몸에서 나오는 오오라는 차가웠다.

빙결의 장검에서 뿜어지는 차디찬 기운과 어울려 강렬한 위압감을 발산했다.

에어리스 역시 만만치 않았다.

평소의 밝은 얼굴은 사라졌고,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만 오롯이 집중했다.

승부는 찰나.

동시에 시작됐다.

카앙!

날카로운 금속음이 강렬하게 귓가로 들어왔다.

에어리스의 대검과 시리안의 장검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강력한 진동이 전해졌다.

전투는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밑에서는 검사들의 진검 승부.

위에서는 몬스터의 접전.

검과 검이 강렬한 파열음을 발산했다.

“하아압!”

에어리스는 대검을 위아래로 몰아치면서 더 빨라진 속력까지 활용했다.

“제법 실력이 늘었나?”

시리안은 에어리스가 전보다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힘이 실린 위력은 여전했으나 예전에는 둔탁하고 거친 면이 있었다.

에어리스는 힘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던 탓이었다.

야성적이고 거대한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최대한 온 힘을 다해 베어 버려야 했다.

‘몬스터와 사람의 승부는 다르지.’

검술은 기술과 심리전도 필요했다.

강약이 필요했다.

세게 파고들 때.

약하게 견제할 때.

기술적인 면모가 사람들한테는 훨씬 중요했다.

견제용 찌르기.

막고 베기.

옆으로 작게 베기.

“하압!”

에어리스는 예전과 달리 전력으로 휘두르기를 하지 않았다.

기술적인 대검의 활용과 경쾌한 스텝으로 상대했다.

강약을 조절하는 전투에 임했다.

덕분에 시리안과의 재대결에서 역공까지 할 수 있었다.

“발전했다는 건가.”

시리안은 장검으로 에어리스의 공격을 받아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은 백중세였다.

“단순 검술에서는 결판이 나지 않겠군. 그렇다면…….”

시리안은 장검에 기운을 집중했다.

에어리스가 만만치 않게 검술에서 성장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승부를 걸기로 했다.

빙결의 장검은 얼음 속성이었다.

차가운 냉기를 일으키거나 사방을 얼려 버릴 힘을 지녔다.

“하압!”

시리안이 장검에 힘을 주었다.

푸른 오오라가 살짝 검에 서리더니 이윽고 서릿발 같은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용암 지대에는 어느새 푸른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에어리스는 휘날리는 바람과 서리 속에서 천천히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시리안에게 당했던 기억을 되살려 치열하게 훈련한 보람이 있었다.

검술 실력을 증명했다.

푸른 갑옷의 기사에게 빙결의 장검이 있었으나 에어리스도 장비는 있었다.

용병 대장 제이슨에게 빌린 도끼였다.

완력의 도끼와 검은 안개의 도끼를 등에 메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도끼를 사용해도 될 거야.’

히든카드는 하나 더 있었다.

“하압!”

에어리스는 기합을 지르며 속성 부여 건틀릿에 힘을 주었다.

“라이트닝.”

얼음에는 번개가 상성 면에서 우위였다.

번개는 얼음을 제압하기 좋았다.

사방에는 시리안이 쳐놓은 서리가 깔려 있었다.

에어리스는 그 안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콰과광!

번개의 에어리스.

서리의 시리안.

둘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시리안은 얼음과 서리를 곳곳에 발휘하여 얼어 버린 기둥을 날렸다.

에어리스는 화살처럼 날아오는 얼음 더미를 피하거나 대검을 휘둘러서 깨버렸다.

“저 서리는…….”

몰아치는 냉기가 에어리스의 시야를 자꾸 방해했다.

시리안은 그 점을 공략하려는 듯이 들어왔다.

카앙!

시리안의 일격이 들어오자 에어리스는 대검으로 방어했다.

간신히 막긴 했으나 예리했다.

‘위험했어.’

반응이 조금만 느렸으면 찔렸을 수도 있었다.

시리안은 호기를 잡았다는 듯이 강하게 몰아붙였다.

빙결의 장검이 더욱더 매섭게 베거나 찌르고 들어왔다.

“으윽!”

에어리스는 서서히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라이트닝.”

다시 건틀릿에서 대검으로 번개를 발동시켰다.

파바밧!

막대한 번개가 발산되자 몰아쳤던 서리와 눈발이 일순간 터져 버렸다.

동시에 번개의 강한 빛이 얼음 조각마다 반사되어 이번에는 역으로 시리안의 시야를 방해했다.

“큭!”

눈이 부시자 시리안은 순간적으로 위축됐다.

기회였다.

“이야압!”

틈을 놓치지 않고 에어리스가 대검을 휘둘러서 시리안을 몰아세웠다.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됐다.

“아직이다.”

시리안은 호기롭게 장검을 고쳐 잡았다.

다시 반격의 기회를 잡으려는 의도였으나 에어리스의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대검을 최대의 힘으로 내리쳤다.

“으윽!”

그 일격을 받아낸 시리안은 살짝 비틀거렸으나 역으로 흘려내어 되치기를 시도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푸른 갑옷의 시리안이 기합을 내질렀다.

에어리스의 내려치기를 밀쳐내며 검을 강하게 들어 올렸다.

파앗!

에어리스는 힘에 밀려 순간적으로 대검을 놓쳐 버렸다.

“아차!”

에어리스의 손을 떠난 대검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어떠냐.”

무기 쳐내기.

가까스로 기술을 성공시키자 시리안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에어리스는 빈손이 되었다.

검술 승패는 결정되었다.

그런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뭐지?”

에어리스는 검을 놓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차분하고 냉정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여유마저 느껴졌다.

에어리스의 자세도 특이했다.

검을 놓친 그녀의 양손은 새로 꺼낸 무기를 잡고 있었다.

쌍 도끼였다.

“이야압!”

대검을 쳐버리느라 무리했던 쪽은 오히려 시리안이었다.

온 힘을 다해 대검을 위로 쳐내느라 자세가 완전히 크게 벌어졌다.

카가각!

순간적으로 무방비가 되었다.

빈틈을 보인 시리안에게 에어리스는 도끼를 휘둘렀다.

푸른 갑옷에는 진한 도끼 자국이 남았고 그 충격에 시리안은 뒤로 밀려났다.

“크윽!”

타격을 입은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갑옷에 생긴 자국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생긴 상처였다.

“타격을 입다니.”

그의 눈동자는 격렬한 분노를 머금고 이글이글 타올랐다.

에어리스는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완력의 도끼에 힘을 부여했다.

“개방.”

완력의 도끼는 공격력을 두 배로 증가시킨다.

방금 타격을 입은 시리안에게 아까보다 두 배에 달하는 도끼의 위력을 내리쳤다.

시리안은 큰 충격을 받자 무릎을 꿇으며 자세가 무너졌다.

“크으윽!”

위력적인 한 방에 의해 아까 갑옷이 깨어진 부분이 더 크게 망가졌다.

가슴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아아압!”

에어리스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목걸이’를 하나 걸고 있었는데 첫 번째 왕좌의 시련을 극복하며 얻은 전리품이었다.

특별한 힘이 있는 목걸이였는데, 바로 충격파였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목걸이에는 빛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 희미한 빛이 차곡차곡 모이다 보면 완연하고 영롱한 색으로 발산된다.

일종의 충전 개념이었다.

파아앗!

싸움을 거듭할수록 힘이 목걸이에 모인다.

완전히 차버린 힘은 강렬한 충격파로 발산할 수 있었다.

“발현.”

에어리스는 강한 힘을 가졌다

완력의 도끼는 공격력을 두 배로 끌어 올린다.

이 상태에서.

완전충전한 목걸이가 충격파까지 발산했다.

이 일격은 지금까지 에어리스가 보여준 위력 중에서 최대치였다.

“크으으으윽!”

시리안은 그 힘을 받아내지 못하고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완전한 파괴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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