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36화 (36/229)
  • 36화 전력 분석

    “하앗! 핫!”

    한창 활발해진 낮부터 유진하의 집은 기합 소리로 가득했다.

    집 마당에서는 에어리스가 평소처럼 대검을 들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파아앗!

    무거운 대검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에는 바람이 몰아쳤다.

    마치 폭풍의 눈에 있는 것처럼 에어리스의 움직임은 대검을 휘두르고도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았다.

    금발 머릿결이 춤을 추듯이 한 올 한 올 휘날렸다.

    촤악!

    에어리스의 발걸음이 멈추자 몰아치던 바람이 일순간 잦아들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한 번 더.”

    쏟아지는 햇볕이 에어리스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에어리스는 다시 다짐하고 대검을 움켜잡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네 번째 최종 시련을 앞두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싶었다.

    연습은 내내 계속됐다.

    “다들 밥 먹자.”

    이소민이 피곤한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사막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밖에 안 됐다.

    아직 여독이 남아 있었다.

    “에어리스만 쌩쌩하다니까.”

    체력 SS 등급을 받아낼 만큼 에어리스는 항상 기운차고 팔팔했다.

    “저도 배가 고팠어요.”

    운동을 마치자 대검을 벽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밥을 차리기는 귀찮고 나가기도 싫은 모양인지 배달 음식을 시키기로 했다.

    “난 짜장. 곱빼기로 먹을래.”

    빠르게 메뉴를 고른 이소민과 달리 에어리스는 무엇을 골라야 할지 난감해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으음. 어떤 음식이 맛있을까요?”

    메뉴판에는 맛있게 보이는 음식 사진이 가득했다.

    에어리스는 하나하나 음식을 살피다가 고민에 휩싸였다.

    “탕수육도 좋고, 짬뽕도 맛있고, 볶음밥도 괜찮고.”

    선택의 기로에 선 에어리스는 우왕좌왕했고, 그 사이에 유진하가 나타나서 메뉴판을 전부 가리켰다.

    “다 시켜도 돼.”

    “남기면 아까울 거 같아요. 과소비하고 낭비는 안 되잖아요.”

    일부러 다양하게 시켜줬는데 에어리스는 괜스레 염려했다.

    피자와 치킨을 비롯해 몇 번 배달 음식을 시킨 적이 있었다.

    에어리스는 알뜰한 성격답게 하나하나 쿠폰도 모아두었다.

    “다 먹을 거 같은데. 남으면 냉장고에 넣으면 되고.”

    이소민은 벌써 그릇과 숟가락을 준비해 놨다.

    다들 출출한 차에 배달 음식만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현관벨이 울렸다.

    “어? 방금 시켰는데 벌써 왔나?”

    유진하가 얼른 인터폰을 들어 현관에 누가 왔는지 확인했다.

    배달원은 아니었다.

    “다들 잘 있었어?”

    찾아온 사람은 J, 그리고 M이었다.

    붉은 머리의 요원 J는 특유의 활달함을 되찾은 채로 찾아왔다.

    “병원에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은가요?”

    에어리스가 기쁜 표정으로 가장 먼저 다가왔다.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반가워했다.

    “어라? 둘이서 많이 친해졌네?”

    유진하가 살짝 놀라서 두 사람을 살펴봤다.

    에어리스는 스마트폰을 슬쩍 꺼내서 들어 보였다.

    “SNS로 자주 연락했어요.”

    “아, 그랬구나…….”

    처음에는 인간 세계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에어리스였다.

    어느새 인터넷도 익숙하게 잘 활용할 만큼 빠르게 적응했다.

    “스펀지 같은 습득력이야.”

    이소민도 순순히 인정했다.

    예전처럼 하나하나 물어보지 않아도 될 만큼 에어리스는 훌륭히 적응했다.

    스마트폰은 물론 여러 물건을 쉽게 배워나갔다.

    “배달이요.”

    “아, 식사시켰구나. 같이 먹자.”

    마침 배달 음식이 도착하자 다들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많이도 시켰네.”

    J는 가장 먼저 거실에 앉았다.

    모두 다섯 명이 모였으니 식탁 자리가 부족했다.

    넓은 거실에서 둘러앉아서 식사하기로 했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까지 많이 시킨 덕분에 다들 풍족하게 먹었다.

    “잘 먹었다.”

    배가 부르자 식곤증이 왔는지 이소민은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했다.

    M과 J 역시 커피 한 잔까지 후식으로 마시며 소파에 앉았다.

    정부 요원이 여기에 와서 안부 인사나 할 생각은 아닐 터였다.

    유진하는 슬슬 본론을 물어봤다.

    “진짜 온 이유는요?”

    그동안 공략전을 함께 치르며 신뢰를 쌓은 동료였으나 어쨌든 두 사람은 정부 사람이었다.

    찾아온 진짜 의도가 궁금했다.

    “성질도 급해라. 천천히 하자.”

    J는 커피 한 잔을 마저 마시고 숨을 돌렸다.

    대신에 M은 조용했는데 아마 골치 아픈 부분을 떠넘기려는 듯했다.

    활달한 J와 조용한 M.

    유진하는 두 명의 요원이 어쩐지 서로에게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둘이 서로 잘 아는 사이 아닌가요?”

    “아아, 동기 사이야.”

    J는 살짝 웃으면서 M의 어깨를 툭 쳤다. 너무 세게 쳤나?

    M은 살짝 어깨를 만지더니 잠깐 화장실을 가겠다는 핑계를 대며 도망갔다.

    “서로 진짜 이름은 모르지만 어쨌든 같이 훈련받은 사이는 맞아. 동기라는 거지.”

    쾌활한 J와 근엄한 M은 확연히 성격이 달랐다.

    그런 두 사람은 동기인 데다 둘 다 오랫동안 공략전에서 현역으로 뛴 베테랑 요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병원에 있을 때, M이 문병 한 번도 안 오더라. 동기 사랑이라고는 전혀 없어.”

    “우리도 못 갔는데요.”

    “그야 병원 위치가 기밀이니까. 너희야 모르는 거고. 쟤는 알면서 안 왔다니까?”

    J는 주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곤 했다.

    마치 이소민과 비슷하게 환한 목소리와 힘찬 기운이 가득했다.

    비타민처럼 활력이 넘쳐흘렀다.

    그런 자세가 독특한 매력이 되었는데, 친밀한 리더쉽으로 발휘되곤 했다.

    “너희들이 다치면 나는 꼭 문병을 가줄게.”

    “병원 가라는 소리잖아요. 그거 실례 같은데요?”

    “하하, 그런 거는 아닌데.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가벼운 농담을 마치자 J는 슬쩍 서류를 하나 꺼냈다.

    “두 번째, 세 번째 시련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보고서로 봤어. 전부 검토했지.”

    “그런가요?”

    “너희들이 다 해냈던데? 역시 최고의 프리랜서들이야. 이제 남은 거는 네 번째 마지막 시련뿐이지?”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탑의 주인은 네 개의 시련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세 개를 통과했다.

    녀석은 우리가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인간 세계로 넘어와서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최악의 불상사는 막아야 했다.

    “드디어 마지막 시련이 나타났어.”

    사막에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지막 시련이라니.

    “어디죠?”

    유진하는 잠자코 J가 건넨 서류를 꺼내서 살펴봤다.

    성장형 에어리어가 조금씩 덩치를 키우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장소는 이곳이었다.

    서울.

    “가까운 곳이네요.”

    “그래.”

    J는 옅은 미소를 멈추고 눈빛을 가늘게 떴다.

    벌써 전투 모드에 들어간 듯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아까까지 농담하던 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늘 가면 되나요?”

    에어리스는 벌써부터 준비할 채비를 했다.

    “다른 정예 요원들이 집결하고 있어. 이틀 뒤에 돌입할 거야. 물론 이번에는 나도 참여할 거고.”

    J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J의 합류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빼어난 실력의 리더는 든든했다.

    소식을 들었으니 다들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그럼 짐부터 챙겨 볼까나.”

    M과 J는 소식을 전하고 돌아갔다.

    이소민은 공략전에 들어갈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레어 등급 빙룡의 가방과 푸른 갑옷의 기사가 지녔던 얼음 속성의 장검.

    그 외의 잡다한 무기와 장비, 카드도 몇 장을 챙겼다.

    “이쪽도 다 됐어요.”

    유진하는 카드 100장을 준비했다.

    가방 하나만 더 챙기면 충분했다.

    가장 짐이 많은 쪽은 에어리스였다.

    버스터 슬레이어 대검.

    속성 부여 건틀릿.

    빛나는 목걸이.

    에어리스는 전리품으로 얻은 장비까지 빠짐없이 장비하고 나왔다.

    처음에는 거의 맨몸에 불과했던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은 어느새 프로다운 전문 장비를 제법 가지게 되었다.

    정부 인맥까지 생기면서 명실상부 최고 수준의 프리랜서 공략자가 되었다.

    “바로 갈게요.”

    유진하는 앞장섰다.

    마지막 시련을 앞두고 어떤 위기를 맞이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실력과 협력, 신뢰만이 생존의 비결이었다. 세 번의 시련을 거치면서 유진하와 일행들은 모두 성장했다.

    그리고 마지막 시련으로 향했다.

    * * *

    원정대가 모인 곳.

    도시 외곽의 평범한 공원이었다.

    에어리어 차원문이 생겨난 곳은 정부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요원들 사이에는 M이 있었다.

    문득 자신의 수첩을 꺼내더니, 연합 원정대의 능력을 분석해 놨다.

    유진하 일행.

    M과 J의 요원팀.

    제이슨 대장의 용병팀.

    -연합팀 전력 분석표.

    지력: SSS

    (유진하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함. 빠지면 A로 하락.)

    전투력: SS

    (에어리스와 제이슨이 전력의 반. 둘이 빠지면 B로 하락.)

    민첩: B

    (이동 카드가 부족하면 C로 하락.)

    정신력: A

    (J와 이소민이 빠지면 B로 하락.)

    체력: S

    (전체적으로 훈련이 되어 있다는 점이 강점. 유진하와 이소민이 빠지면 SS로 등급 상승.)

    팀워크: A

    (호흡이 나아지고 있음. M과 J가 빠지면 요원팀 제어 불능. 제이슨이 없으면 용병팀 제어 불능. 이러면 팀워크가 F로 된다.)

    전원이 모이면 지략이나 전투력 면에서 약점이 별로 없는 팀이 되어있었다.

    몇 번의 공략전을 함께한 덕분에 팀워크도 괜찮았다.

    다만, 특정 분야에서 몇몇 핵심 인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문제였다.

    ‘모두가 모였을 때만 강한 팀이군.’

    강점이자 약점이었다.

    “이번에는 전원 집결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M은 수첩을 덮었다.

    J가 복귀했으니 지휘 자리도 양보했다.

    그녀가 선두로 나서서 모두를 이끈다면 요원들의 전투력과 팀워크에 훨씬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냉철한 분석가답게 M은 실리파였다.

    최선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빨리 와라.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M은 마지막 시련을 앞두고 사명감을 느꼈다.

    ‘해내고 말겠다.’

    세상에 드리운 이변을 잠재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맑은 하늘이 다들 반갑다는 듯이 맞아 주었고,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졌다.

    긴 여행을 앞두고 모든 이들은 각자의 각오를 다지며 햇살 속을 걸어갔다.

    * * *

    현장은 멀지 않았다.

    에어리어 차원문은 도심 공사 중인 건물에서 발생했는데, 이미 요원들이 와서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했다.

    “너희 왔구나.”

    용병 대장 제이슨이 다들 반갑게 맞아 줬다.

    서로의 실력을 잘 알았고 이제는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가 되었다.

    “용병팀은 다 준비됐나요?”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안부를 묻고 답할 만큼 가까워졌다.

    유진하가 제이슨에게 용병팀의 상태까지 확인할 만큼 서로 신뢰했다.

    “사제 물품이라도 가져와서 장비를 챙기는 녀석들이야. 용병들은 몸이 재산이니까 알아서 잘 챙기지.”

    “저도 그랬죠.”

    “잘 준비했나? 마술사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또 신기한 거 준비했나 궁금하군.”

    “그 별명, 제이슨 당신이 붙인 거잖아요.”

    “아아, 싫은가? 그럼 더 해야지.”

    제이슨은 농담을 곁들여서 마술사 별명을 언급했다.

    옆에서 듣던 에어리스가 크게 웃는 바람에 유진하는 민망해졌다.

    유진하에게 마술사 별명이 생겼다면 에어리스에도 하나가 있었다.

    “자네는 괴력의 전사라고 부르겠어.”

    “네? 방금 뭐라고?”

    에어리스는 방금 이상한 말을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다가 망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괴력의 전사라고, 내가 붙여준 별명이야. 커다란 대검을 무식하게 잘 휘둘러서 말이지.”

    “아… 그래요.”

    에어리스가 실망해서 푹 어깨를 떨구었다.

    별명이 왜 싫은지 바로 이해하고 말았다.

    “서로 별명으로 부르면서 친해지는 거지. 하하.”

    제이슨은 크게 웃은 다음에 용병팀에게로 돌아갔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이소민은 덩그러니 남아서 조용히 있었다.

    “이건 뭐. 나는 별명도 없네.”

    이소민은 관심 밖이라.

    문의 시련에서 나름 대활약했는데도 주변의 시선은 냉랭했다.

    더 큰 활약.

    더 돋보이는 역할이 필요했다.

    투지를 불태우는 이소민을 보면서 유진하와 에어리스는 둘이서 속닥속닥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자극이 된 모양이에요.”

    “그런가 봐. 그냥 놔두자.”

    저녁이 되자 전원이 집결했다.

    내일 낮에 출발이 예정됐다.

    그날 밤, 원정대 멤버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J는 계속 막바지 점검에 집중했다.

    혼자 천막에 남아 작전 계획과 편성을 거듭 살피며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이번 지휘는 정말 중요하니까.”

    최종 지휘관으로서 모두의 목숨을 책임지는 자리였기에 최선을 다했다.

    제이슨과 에어리스는 서로 대검과 도끼를 들고 진검승부로 연습했다.

    “괴력의 대련이나 해볼까?”

    “그냥 대련이 더 괜찮은데요.”

    거대한 대검이 크게 움직였다.

    바람을 가르는 위력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베기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마저 기가 질릴 만큼 두 사람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둘 다 체력도 최상인 만큼 서로 훌륭한 연습 상대가 되었다.

    유진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화톳불 앞에 앉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와중에 혼자만의 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탑의 주인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존재.

    이제 네 번째 시련이자 마지막 승부가 곧 벌어진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녀석의 목적. 정체. 이번에 알게 되겠지.’

    유진하는 짐작하고 있었다.

    이번 승부가 어쩌면 앞으로의 미래에 최대의 변곡점이 될 거라고.

    공략전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씩씩한 J의 집합 소리와 함께 원정대의 행동이 시작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