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두 번째 시련(2)
빠져나갈 출구는 무너졌다.
용병팀과 요원팀 전원이 본격적인 탐사 전에 중앙으로 집결했다.
“넓은 장소로군.”
M과 정부 요원들은 빠르게 근처를 수색했다.
특별한 장식조차 없는 지하였고 군데군데 횃불만 벽에 켜져 있었다.
중앙홀 같았는데 앞에 긴 복도가 있었고 그 끝에는 굳건한 문이 하나 버티고 있었다.
“으스스하네.”
이소민은 눈치를 슬쩍 살폈다.
차갑고 묘한 경계감이 장내를 휘감았다.
제이슨과 용병 대원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사방에 표적이라도 나온다면 즉각 대응할 태세를 갖췄다.
에어리스 역시 언제라도 대검을 꺼낼 자세를 취했다.
“…….”
모두가 잔뜩 긴장한 상황에서 침묵이 흘렀다.
유진하는 팔짱을 끼고 한결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나, 눈빛만은 매섭게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두 번째 시련에 온 걸 환영한다.”
낯익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벽에 공명하듯이 귓가에 진동되었다.
탑의 주인.
녀석이 저번 왕좌의 시련 때처럼 목소리로 등장했다.
“너희에게 주는 두 번째 시련은 다음과 같다. 다들 손을 내밀어라.”
목소리는 이상한 요구를 했다.
다들 꺼림칙해서 눈치만 살펴보는데 먼저 나선 사람은 유진하였다.
파앗!
유진하가 손을 내밀자 공중에서 반딧불처럼 작은 빛방울이 하나 내려왔다.
손 안에 들어온 빛은 점점 덩어리처럼 커지더니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우왓!”
갑자기 환한 빛이 퍼지자 모두가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잠잠해진 빛은 하나의 형체를 드러냈다.
“열쇠?”
유진하의 손에는 어느새 열쇠가 놓였다.
금색으로 빛을 머금은 자태가 상당히 고급스러운 물건 같았다.
유진하의 첫 시작을 계기로 모두들 손을 뻗었다.
천장에서 빛의 방울이 쏟아졌고 탐험대 전원은 각자 열쇠를 하나씩 지니게 되었다.
“이번 과제는 문의 시련이다.”
준비가 마무리되자 다시 녀석의 음성이 들려왔다.
문의 시련…….
다들 속으로 그 말을 곱씹으며 ‘이제 시작이구나’라고 깨달았다.
“너희에게 준 물건은 여기서 생명줄과 같지. 이번에도 내가 있는 마지막 방까지 들어오면 끝난다.”
다음 말이 마지막이었다.
“제한 시간은 24시간. 너희들의 가능성을 보겠다.”
장내는 잠잠해졌다.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짧은 지시만을 남기고 시련이 시작된 거였다.
침묵이 끝나자 다들 눈치를 보며 자신들이 받은 물건을 살폈다.
“열쇠인가?”
제이슨은 열쇠를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금빛 장식은 화려했으나 특별한 무언가는 없어 보였다.
힘을 주면 부서질 것처럼 약해 보이는 이 열쇠에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다니.
“이런 거에 말인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던 제이슨이 금세 표정을 바꿔서 무덤덤하게 내보였다.
용병팀의 리더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팀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일단 다들 알았나?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서 알려 줘.”
제이슨은 호흡을 내쉬면서 정신을 다잡았다.
다른 사람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어리스나 이소민도 열쇠를 이모저모 살폈으나 역시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진하가 보기엔 어때요?”
에어리스가 물어봤다.
유진하 역시 특별한 무언가는 찾아내지 못했다.
“생긴 거는 열쇠이네.”
여운이 남듯이 묘한 말이었다.
유진하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이 말수를 줄였다.
“…….”
그가 생각하는 동안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만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지휘관을 맡은 M이 더는 가만있을 수 없었는지 눈치만 보던 모두에게 선포했다.
“다들 열쇠를 잘 가지고 있어. 마지막 방에 도착하면 된다니 일단 시간 끌지 말고 어디라도 가자.”
중앙홀의 긴 복도를 따라 M이 앞장서서 걸었다.
팀원 전부가 뒤를 따랐고 복도 끝의 거대한 문 앞에 곧 도착했다.
“튼튼해 보여요.”
에어리스는 문을 바라보다가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해 보려고 대검을 꺼냈다.
“잠깐.”
에어리스가 나서기 전에 유진하가 바로 만류했다.
“진하?”
“괜히 건드렸다가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몰라. 내가 먼저 살펴볼게.”
유진하는 거대한 문 앞에 먼저 다가갔다.
유심히 구석구석 살피더니 잠시 후에 뭔가를 찾아냈다.
“여기 구멍이 있어.”
유진하는 문에 난 작은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두운 곳에서 용케 찾아냈네, 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작고 비좁은 구멍이었다.
“문에 구멍이 있다?”
다들 멈칫하는데 이소민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열쇠 구멍이려나.”
그 생각에 동의하는지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민 누나. 정답.”
“오, 내가 처음으로 맞췄다.”
이소민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여러 무기를 다룰 수 있고, 정신력도 강한 덕분에 모두에게 비타민처럼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이소민 본인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그동안 공략전에서 특출난 활약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나도 이번에 여섯 번째 공략전이라고. 그쯤이면 대충 눈치라도 생기겠지.”
이소민이 밝게 웃자 모두가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긴장감이 풀어지고 서서히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았다.
이소민이 가진 큰 힘은 역시 긍정적인 에너지였다.
정작 본인은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몰랐다.
“네, 잘 알겠습니다.”
유진하는 귀찮다는 듯이 대충 대답하더니 열쇠를 바로 꺼냈다.
“그럼 해 보겠습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바라봤다.
열쇠 구멍이라고 추측했으나 아닐 가능성은 존재했다.
가짜일 수도 있다.
다들 그런 생각까지 떠올린 터라 먼저 나서서 열쇠를 제공하기는 꺼렸다.
“유진하, 정말 네가 할 생각인가?”
제이슨이 걱정되는지 만류했다.
“시간이 없어요. 여기서 누구의 열쇠를 사용할지 정하려면 시간이 질질 끌리고 말 거예요.”
제한은 24시간이었다.
시간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했다.
그런데 유진하가 가장 먼저 나섰다.
“진하, 괜찮을까요?”
에어리스는 걱정되는지 유진하의 뒤로 다가왔다.
“괜찮을 거야. 다가오지는 않아도 돼.”
에어리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방금 그 말.
묘하게 차가웠다.
유진하가 많이 긴장할 걸까.
평소보다 조금 더 말투가 줄어들고 생각이 많았다.
유진하의 뒤를 바라보니 부담감을 많이 느끼듯이 조용했다.
그런 에어리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진하는 고개를 돌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모르니까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이 좋을 거야. 뒤에 있어.”
“진하…….”
에어리스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다들 유진하의 판단을 지지했고, 주변에 멀리 물러섰다.
문 앞에는 어느새 유진하 혼자만 남았고 손에는 열쇠 하나만 들려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 했다.
‘너의 열쇠를 써라.’
‘아니다. 네가 먼저 해라.’
여기서 누구의 열쇠를 먼저 쓰는지 결정한다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탑의 주인은 어쩌면 인간들이 제한 시간까지 몰려가면서 서로 불신하고 싸우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
그런 악랄한 의도는 시작부터 잘라 줘야 한다.
불신이 생기면 팀은 무너진다.
누군가 앞장서면 내부 불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후우.”
서서히 열쇠를 구멍에 가져갔다.
일순간 모두가 숨을 멈추고 집중했다.
손에 들린 열쇠는 망설임 없이 정확하게 구멍에 들어갔다.
그 순간.
빛줄기가 문을 정확히 반 가르듯이 내려오더니 굳건했던 빗장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됐다.”
유진하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문이 열리며 나오는 빛이 너무나 밝아서 마치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진하.”
에어리스가 가장 먼저 달려왔고, 뒤이어 이소민이 따라왔다.
“됐어요. 문을 열었어요.”
“아직이야.”
유진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기쁜 얼굴로 달려오던 에어리스 역시 열려 버린 문 안의 장면을 확인하더니 바로 굳어버렸다.
“이건…….”
모두의 뇌리에 당혹스러움이 감돌았다.
문 안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게 뭐지?”
M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문 안에 문이 있다니.
이런 경우를 처음 마주해서 당혹스러웠다.
“겹문인가.”
알 수 없는 굴욕감이 느껴졌다.
탑의 주인.
‘문의 시련’이라 녀석이 부른 이유를 이제 알 만했다.
“더 해 볼게요.”
유진하는 다시 집중해서 두 번째 문을 샅샅이 살펴봤다.
에어리스와 이소민을 비롯해 모두가 함께했다.
“이번에는 구멍이 두 개야.”
용병 대장 제이슨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두 번째 문은 열쇠 구멍이 두 개였다.
“이번에는 우리 용병팀이 하지.”
제이슨이 나섰다.
그의 휘하에 있던 용병 대원도 곧 자청했다.
“알겠습니다.”
M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용병팀이 두 번째 문 앞에 서고 만약을 대비해서 나머지 전원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멀찌감치 뒤로 물러섰다.
“같이 하자.”
제이슨과 대원 한 명이 당당하게 열쇠를 내밀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구멍에 열쇠를 동시에 끼었다.
철컥.
두 개의 열쇠가 딱 맞게 들어갔다.
이번에도 빛줄기가 나오더니 문을 반으로 갈랐다.
거대한 섬광처럼 짧은 빛이 발산되며 두 번째 문이 열렸다.
“또 문이 있어?”
모두의 시선이 안으로 향했고, 곧 저마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문이 등장하다니.
모두의 표정은 망연자실하게 잿빛으로 변해갔다.
“세 번째 문?”
마치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선 듯했다.
출구는 막혔고 새로운 문은 계속 나왔다.
‘문의 시련’은 이제 시작이었다.
* * *
“이번이 마흔 번째 문이다.”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문은 열어도 열어도 계속 나왔다.
“다들 조금만 힘을 내요. 이제 40번째 문이잖아요.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어요.”
에어리스는 지친 모두에게 희망을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40번이 왜 마지막인지 모르겠다며 이소민이 되물었다.
에어리스는 천연덕스럽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볼을 간질거렸다.
“우리가 전부 40명이잖아요. 이번 문만 열면 딱 마흔 번째 문이니까 정확히 맞아요.”
일리는 있었다.
어쩌면 열쇠의 숫자만큼 문의 개수가 똑같이 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럴지도.”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이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나았다.
다섯 시간이 지나도록 지루하게 문을 계속 열어왔다.
다들 지쳤지만 공황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다.
아직은 정신력이 남아 있었다.
“다들 기운을 내라.”
제이슨 역시 정신적으로 피곤했으나 모두를 격려하며 우뚝 섰다.
마치 등대처럼 굳건했다.
등대는 표류하는 어선을 구원하는 존재였다.
“일단 해 봐야지.”
M도 지쳐가는 정부 요원들을 다독이며 의욕을 불어넣었다.
유진하와 이소민 역시 기운을 내고 마흔 번째 문 앞에 섰다.
“자, 마지막이다.”
모두가 열쇠를 손에 쥐었다.
이다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희망.
아니면 절망.
모두의 머리에 기대와 실망이 번개처럼 교차했다.
물러설 곳은 없었고 앞으로 가야 했다.
“제발!”
소망을 담아 열쇠를 구멍에 넣었다. 마흔 개의 열쇠가 정확히 문에 맞아들어 갔다.
파아아.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줄기가 언제나처럼 문의 정중앙을 갈랐다.
단단했던 문이 열리면서 밝은 빛이 발산됐다.
“이번에는…….”
짧은 섬광이 지나가더니 마침내 진실과 마주했다.
“아…….”
저마다의 입가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절망에 가까웠다.
“문이…….”
에어리스는 커다란 눈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까지 봤던 문보다 더 거대하고 커다란 것이 가로막고 있었다.
두 배 이상 커진 문이 있었다.
“제기랄!”
별안간 말문이 막혀 정적이 흘렀다.
차가운 침묵 끝에 유진하가 중얼거렸다.
“진짜 문제는 거기가 아니에요.”
문을 살펴보던 유진하는 짧은 한숨을 내쉰 후에 지금 처한 상황을 알려줬다.
“열쇠 구멍이 백 개예요.”
믿을 수 없는 개수였다.
참여한 사람들과 열쇠는 사십 개에 불과한데 갑자기 백 개의 열쇠가 필요해졌다.
“나머지 육십 개는 어디서 구하지?”
제이슨도 쓴 입맛을 머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기치 못한 새로운 수수께끼의 등장에 모두가 우왕좌왕했다.
다수의 공략전을 클리어한 경력을 가진 베테랑 최정예 대원들조차 이런 식의 농락이 뒤섞인 시련은 처음이었다.
“지옥에 온 거 같아.”
일순간 원정대의 사기는 완전히 떨어졌다.
마치 감옥 안에 영영 갇혀 버린 듯이 좌절의 순간을 맞이했다.
“아직이에요.”
유진하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
포기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듯이 평소보다 한결 단호해진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봤다.
“열쇠는 늘릴 수 있어요.”
“늘린다고?”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서 유진하의 얼굴만 쳐다봤다.
유진하는 한 장의 카드를 꺼냈다.
“복제 카드예요.”
그런 카드가 있었나?
다들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럴 만한 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격과 방어에 힘이 되는 카드나, 순간이동처럼 긴급 탈출하는 카드를 선호했다.
보조 카드 계열은 C급 취급받으며 버림받았다.
유진하는 달랐다.
카드를 보는 눈이 남들과 달랐다.
“보조 카드 중에는 잘만 사용하면 괜찮은 게 많아요. 복제도 그런 거죠.”
“그건 던전에서는 거의 안 쓰는 카드잖아.”
M이 소리쳤는데 사실이 그랬다.
복제 카드는 어떤 물건을 똑같이 만드는 능력이 있다.
말 그대로 복제였다.
다만, 길어야 한 시간만 효과가 있었다. 복제를 오래 유지하지 못 하고, 효율도 떨어져서 겉모습만 같은 정도에 불과했다.
“이 카드는 위장이나 기만용으로 쓸 수 있거든요. 원래는 그럴 생각으로 챙겨왔는데 마침 사용할 기회가 생겼네요.”
유진하는 말보다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다.
“복사.”
복사 카드는 정확히 유진하의 손에 있던 열쇠를 복제했다.
단숨에 두 개의 열쇠가 확보되었다.
다들 기력이 떨어지고 절망에 빠지려던 찰나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자 주목했다.
유진하가 주는 마지막 희망에 다들 집중했다.
“자, 얼마든지 열쇠는 늘릴 수 있어요.”
여유가 생긴 유진하는 본격적인 쇼케이스를 시작했다.
“놀라기에는 일러요. 이 카드는 한 가지 장점이 있는데 연속 발동이 가능하거든요.”
유진하는 속사포처럼 말을 되뇌였다.
복사라는 말이 연이어 쏟아지는 순간에 카드의 힘이 계속 발동되어서 열쇠가 무수히 늘어났다.
투두둑.
너무 많아서 손에 떨어진 열쇠들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와아.”
철그렁 금속 소리와 함께 모두가 금세 기운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유진하는 백 개의 열쇠를 바닥에 잔뜩 만들어 놓은 뒤에 다음 작전을 설명했다.
“모두 가만히 있어도 돼요. 이 열쇠는 제가 다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다음 카드는 위치 지정 카드였다.
이 카드는 사용자가 소유한 모든 물체를 반경 10미터 이내에서 자유자재로 배치하는 능력이 있다.
열쇠든 뭐든 자기 소유의 물체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바로 할게요.”
마술사 별명을 새로 얻을 만큼 유진하의 트레이드마크인 기술이었다.
곧바로 화려한 쇼가 펼쳐졌다.
모든 열쇠가 움직이더니 차곡차곡 문구멍에 끼워졌다.
달칵. 달칵.
무수한 소리와 함께 날아오른 100개의 열쇠들이 모조리 제 위치로 들어갔다.
“와아!”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려운 과제였으나 유진하의 활약 덕분에 이번에도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고 자축하고 있었다.
찬란한 빛줄기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렸고, 곧 새로운 진실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또 문?”
절망이었다.
누군가 아득한 비명을 토해냈다.
아까보다 더 큰 문이 등장했다.
열쇠 구멍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수백 개, 아니, 천 개에 육박할 만큼 문구멍의 숫자가 상상을 불허할 만큼 많았다.
“정말 감옥 그 이상이다. 여긴.”
또 다른 누군가 읊조렸다.
“지옥의 문이야.”
원정대 대부분은 혼이 빠진 것처럼 넋을 놓고 말았다.
다들 절망한 듯이 주저앉았고 절망감에 휩싸였다.
포기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나 소수에 불과했다.
특별한 자는 따로 있었다.
“…수상하네.”
그는 딱 한 사람을 주목했는데, 상대는 이번 시련에서 줄곧 수상한 행동을 취해 왔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 계속 위화감을 줬고 그래서 주목하게 됐다.
‘스파이? 배신자?’
40명의 원정대 중에서 정체가 의심되는 자가 있었다.
‘우리 중에 수상한 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