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두 번째 시련(1)
사하라 사막은 사방의 모래부터 이글이글 타올랐다.
여름에는 특히 살인적인 기온을 자랑했다.
막 도착한 사람들은 저마다 연신 물병을 들이키며 땀을 닦았다.
“진하, 여긴 바다도 없고 모래만 가득하네요.”
에어리스는 사막을 처음으로 보았다.
얼마 전에는 드넓고 푸른 바다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무더운 사막에 도착했다.
호기심이 많은 덕분에 사막의 광경에 관심을 가졌다.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듯이 사막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구경했다.
“안 지치냐?”
보다 못한 이소민이 중얼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어리스의 힘과 체력은 상상 이상의 수준이었다.
M은 자신의 수첩에서 에어리스의 항목을 다시 확인하고 변경했다.
지력: C
전투력: SS
민첩: A
정신력: B
체력: S → SS
어느덧 사막에 설치된 전진 기지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용병팀이 와 있었는데 대장은 어김없이 제이슨이었다.
“너희들 왔구나.”
제이슨은 먼저 튀어나와서 깍듯하게 유진하 일행을 반겼다.
“오, 마술사 유진하로군.”
그가 새로운 별명으로 유진하를 불렀다.
“마술사요?”
유진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이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이에나가 아니었나요?”
“아아, 그때랑은 다르지. 나는 실력이 있으면 인정하는 주의다. 확실하면 바로 인정한다고.”
제이슨은 양손을 들어 포커 카드를 섞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카드를 마음대로 촤라락 사용한다드만.”
마치 마술사처럼 양손을 들어 카드를 현란하게 움직였다.
“촤라락. 촤라락. 맞지?”
재미가 들렸는지, 손가락을 화려하게 돌리며 마치 카드 전문가처럼 재롱을 부렸다.
“너도 해 봐.”
“아니, 됐어요.”
유진하는 괜한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자리를 슬쩍 피했다.
옆에서 쭉 지켜봤던 이소민이 농담을 걸었다.
“그래도 하이에나보다는 마술사가 낫네.”
그런데 에어리스가 안 보였다.
“에어리스는 어디 갔어요?”
“저기에…….”
땡볕이 내리쬐는 사막에서 맹렬하게 연습하는 사람이 있었다.
에어리스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래에서 혼자 대검을 휘두르며 훈련에 열중했다.
“하나둘. 하나둘.”
타는 듯한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어도 연습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 제이슨의 눈에도 에어리스의 단독 연습이 들어왔다.
다른 용병들은 사막이 뜨겁다며 대충 널브러져 쉬기만 해서 영 거슬렸는데, 에어리스의 훈련에 자극받았다.
“뭐 하나? 우리도 연습하자고.”
제이슨은 단호하게 소리쳤다.
불호령이 떨어지자 하나둘 장비를 챙겨서 사막의 단체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었다.
40도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기온.
숨이 막힐 듯한 열기.
결국 모두들 픽픽 쓰러져갔다.
“약한 놈들은 버리고 가.”
거의 다 포기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에어리스와 제이슨 둘뿐이었다.
“근성이 부족하군. 어떻게든 해내는 거는 우리 둘인가.”
제이슨은 껄껄 웃으면서 수통을 에어리스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에어리스는 물을 한 모금 마신 후에 가볍게 웃었다.
“공략전에서도 잘 부탁하지. 수통은 선물이다. 가져.”
제이슨은 도끼를 챙겨서 도로 숙소로 돌아갔다.
수통의 물을 마시면서 에어리스 역시 일행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보던 M은 선베드 의자에 편히 누워 자신의 수첩을 살폈다.
-용병 대장 제이슨.
지력: A
전투력: S
민첩: B
정신력: A
체력: SS
과연 체력은 명성대로였다.
다만, 이 더운 땡볕에서 팀원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훈련을 감행한 점은 실수였다.
동료들의 체력은 물론 사기마저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이슨의 지력을 A에서 B로 낮췄다.
“다들 오랜만이군.”
저번 공략전에 참가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다시 재회의 인사를 나누며 첫날을 뜻깊게 마무리했다.
유진하는 혼자 잠깐 나와 있었다.
새롭게 나타난 에어리어 차원문이 사막 저편에 보였다.
“저게 그 녀석이 말한 시련인가?”
검푸른 차원문으로 들어갈 때마다 항상 긴장감이 느껴지곤 했다.
이번에는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초조했다.
탑의 주인.
그곳에 있던 의문의 존재.
최상층에서 내뱉었던 그자의 말을 가만히 떠올렸다.
“나에게는 세 개의 공간이 더 있어. 거기도 여기처럼 시련이 준비되어 있지. 그걸 너희가 극복해 봐.”
의문의 존재는 자신만만했다.
녀석이 던진 문제는 더 있었다.
“어차피 공간은 서로 같은 거다. 주인이 따로 있지. 그럼 너희 인간들의 세계의 주인이 누구지?”
우리들이 사는 공간의 주인.
녀석은 그것을 궁금해했다.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모르겠어. 정말 우리에게도 공간의 주인이 있는 걸까?’
녀석이 던진 이 질문은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답은 알아내야겠지.’
“벌써 준비하는 거예요?”
에어리스가 뒤에 다가왔다.
자리를 오래 비운 유진하를 찾으러 온 모양이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까 그냥 바라만 보는 거야.”
차원문을 바라보니 긴장감이 계속 느껴졌다.
마음에 좀 더 여유를 느끼도록 해야 했다.
“다들 식사 준비하고 있어요. 내일 아침에 공략전을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푹 쉬는 게 좋아요.”
에어리스는 모두와 함께 쉬어가기를 권유했다.
고민을 오래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막의 석양은 모래사장 너머부터 진한 그림자처럼 깔려왔다.
“하하하하하.”
저녁 식사를 하며 왁자지껄하던 전진 기지는 이내 어둠과 함께 잠잠해졌다.
보초를 제외하고는 다들 곤히 잠들었다.
약간의 코골이 소리가 텐트에서 흘러나왔다.
다음 날.
아침 날씨는 밝았다.
모래바람은 잔잔했고 덕분에 일행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일행은 한군데에 모였다.
이번 공략전에서 최종 지휘권을 받은 M이 모두에게 작전의 개요를 설명했다.
“팀은 제가 이끄는 정부 요원팀, 제이슨 대장이 이끄는 용병팀, 그리고 유진하 팀. 이렇게 세 군데로 편성되었습니다.”
저번 활약이 높이 평가받았는지 용병과 요원 중에서 유진하 팀에 오겠다는 지원자가 제법 있었다.
덕분에 유진하는 일개 프리랜서 탐험가에서 명실공히 리더 중에 하나로 인정받았다.
“다들 장비 챙기고.”
전체 지휘를 맡은 M이 모두에게 마지막 점검을 강조했다.
공략전에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
무슨 시련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들 긴장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서로 신뢰하는 동료와 자신의 실력, 무기와 장비만 가지고 들어가야 했다.
믿을 건 자기 자신과 동료들뿐이었다.
“돌입.”
순서대로 최정예 요원들과 용병들은 안으로 돌입했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이소민도 서로 가볍게 눈인사를 한 후에 차원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모든 멤버들은 검고 푸르스름한 차원문 너머에서 또 다른 난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여긴 또 뭐지?”
이소민이 불평하는 말투로 투덜거렸다.
발이 질척거리는 진흙탕에 착지한 탓에 불편하고 번거로웠다.
“정글 같은 곳이군.”
용병 대장 제이슨이 사방을 살펴보자 수풀이 우거진 환경이 사방에 있었다.
“어둡고 음침한 곳이야.”
정글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탓에 햇볕을 가렸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으니 낮부터 어둡고 시야를 방해받았다.
적이 기습한다면 최적의 요건이 다 갖춰진 곳이었다.
“주의해라.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어.”
전원이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했다.
정부에서도 최선의 지원을 약속하고 정예 중에서도 골라서 보낸 팀이었다.
M이 따로 명령하기 전에 멤버들은 이번 공략전이 가진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다.
뒤는 없었다.
오로지 살아남아 승리해야 했다.
“제가 먼저 가 볼게요.”
정글의 수풀 속에서 에어리스가 먼저 자청했다.
가장 전투력과 체력이 뛰어난 그녀가 나서자 일행은 약간의 사기가 올랐다.
이제는 나름 전문가 사이에서 유명해진 에어리스는 대검을 꺼내어 길을 가로막는 수풀을 베었다.
“크르르.”
짐승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일순간 모두가 긴장한 낯빛으로 잔뜩 경계했다.
에어리스는 달랐다.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더니 어디서 들렸는지 정확히 잡아냈다.
“제가 맡을게요.”
상대의 위치를 예상하고 빠르게 달려가서 몬스터를 잡았다.
선제 기습할 생각에 잔뜩 기대하던 몬스터들은 갑자기 역으로 공격받자 당황했다.
“하압!”
단숨에 에어리스의 대검이 그들을 모두 베어 넘겼다.
일격만으로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에어리스의 자세는 현란함을 넘어서 경지에 가까웠다.
전투를 거듭하면서 몸놀림은 훨씬 빨라졌고 유연성까지 갖추었다.
검이 부드럽게 물처럼 흘러갔다.
“오, 대단하다.”
에어리스가 몬스터를 처리한 덕분에 모두들 질척이는 진흙 바닥에서의 고생을 잠시 잊었다.
“저기, 조금만 더 가면 될 거 같아요.”
유진하가 멀리 손가락으로 저편을 가리켰다.
정말로 출구처럼 보이는 길이 눈에 보였다.
이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들자 다들 기운이 샘솟았다.
“가자.”
서로 의지가 샘솟아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출구로 빠져나왔다.
“다들 이상 없나?”
제이슨은 용병 대원들의 몸 상태부터 확인했고, 정부 요원들은 서로 파트너끼리 챙겼다.
“확실히 불쾌한 곳이었어.”
이소민은 가져올 만한 아이템이 하나도 없어서 짐짓 실망하고 있었다.
저번 공략전에서는 꽤 짭짤한 수익을 챙길 만한 물건이 많았는데, 늪지대와 정글에서는 그러지 못한 탓이었다.
“뭐, 나중에 큰 거로 가져오면 되겠지.”
이소민은 최대한 빠르게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쉽게 포기하거나 무력해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성격다웠다.
“에어리스, 등에 진흙이 묻었잖아. 닦아 줄게.”
손으로 탁탁 쳐서 진흙을 훌훌 털어 줬다.
에어리스도 이소민에게 묻은 흙을 닦아 줬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에 묻은 흙을 털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동안, 유진하와 M은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고 있었다.
“공간에는 들어왔어요. 문제는 아직 던전의 위치를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군. 수색해야 하는 걸까?”
유진하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아까 정글 수풀보다는 시야가 훨씬 나았으나 여전히 던전의 위치는 오리무중이었다.
“모두가 함께 다니도록 해요. 흩어지는 건 위험할 것 같아요.”
“그러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일행에게 시간이 얼마나 부여되었는지 알 수 없기에 강행군이 필요했다.
가는 길마다 유진하는 간단한 표시를 잊지 않고 해 뒀다.
나뭇가지를 꺾어 두거나 풀잎을 살짝 잘랐다.
길을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조치였다.
버릇처럼 항상 그렇게 행동했다.
“정면 이상 없습니다.”
일행들이 경계하며 걸어갔다.
중간중간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으나 에어리스와 제이슨이 앞장서서 모두 물리쳤다.
“괜찮았다.”
“아, 다행이네요.”
선봉에 선 두 사람은 대단한 실력도 훌륭했으나 호흡도 착착 맞았다.
일행의 피해는 제로였다.
세 시간이 지났다.
오래 지나지 않아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유진하가 가장 먼저 찾았다.
“여기 같아요.”
M은 주변을 돌아봤다.
부서진 잔해가 있는 걸 보니, 문명이 있던 자취처럼 보였다.
그래도 딱히 던전으로 보일 만한 곳은 아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일 따름이었다.
“이 잔해가 좀 이상해요.”
부서진 파편 하나하나에 집중하던 유진하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좀 이상해요.”
“뭐가 말인가?”
M이 살펴봤으나 아무리 봐도 무너진 건물 잔해였다.
흔한 파편들만 나뒹구는 곳이었다.
“잔해가 이상하게 너무 많잖아요. 그리고 이거랑 저거랑 합치면 딱 아귀가 맞을 거 같지 않나요?”
유진하는 두 개의 잔해를 가리켰다.
마치 b와 q처럼 보였는데 각도를 잘 맞추면 꼭 끼워질 것 같았다.
“에어리스, 제이슨. 둘이서 한 번 저 잔해를 맞춰 볼래요?”
다들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동안 유진하는 행동에 취했다.
에어리스와 제이슨을 불러서 같은 지시를 내렸다.
두 사람 다 긴가민가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딱히 다른 방법도 없어서 일단 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제이슨이 잔해 q를 들고 자세를 잡는 동안, 에어리스는 잔해 b를 가져왔다.
둘은 유진하 말대로 서로 맞춰 보기 시작했다.
“됐다. 어?”
서서히 b와 q가 맞춰지려는데 순간적으로 특이한 힘이 발동했다.
일순간 합쳐진 잔해에서 빛이 감돌았고, 빠르게 움직이더니 파편끼리 스스로 아귀에 맞게 결합됐다.
“방금 봤어?”
놀란 제이슨이 움찔해서 에어리스를 쳐다봤다.
에어리스도 그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
“진하 말이 맞았어요. 이거 서로 알아서 맞춰지고 있어요.”
유진하는 멀리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던전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잔해로 만든 퍼즐이 맞았어.”
M도 그제야 의심을 거두고 잔해를 퍼즐 조각처럼 바라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건물 조각 퍼즐이었군. 사람의 약을 올리는 듯한 퀴즈였어.”
다들 서둘러서 잔해끼리 맞추기 시작했다.
정답을 찾으면 서로 알아서 결합하는 성질이 먼저 발생하는 덕분에 잔해 퍼즐을 빠르게 맞춰 나갔다.
“됐다.”
이소민이 기지개를 켰다.
퍼즐이 완전히 맞춰지자 멀쩡해진 신전의 문이 드러났다.
“여기군요.”
완성된 신전은 서서히 문을 열더니 지하 계단을 드러냈다.
숨겨진 던전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유진하는 마침내 발견한 문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먼저 발길을 내디뎠다.
별안간 유진하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
유진하는 말없이 잠시 멈췄다.
“진하, 왜 그래요?”
에어리스는 유진하가 머뭇거리는 모습이 낯설어서 바로 물어봤다.
“아니야. 난 마지막에 들어갈게.”
유진하는 새파래진 낯빛을 숨기고 뒤로 물러났다.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다.
이유도 없이 가장 일행의 뒤로 물러서다니?
용병팀과 요원팀이 앞서 내려가는 동안, 에어리스는 유진하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았다.
“내려가야 해요.”
“에어리스, 먼저 가. 나도 따라갈게.”
“…알겠어요.”
불안한 생각은 들었으나 일부러 내색하지는 않고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유진하가 뒤에 남아서 따라오고 있었다.
‘약간 늦어지는 걸까.’
에어리스는 조금씩 뒤처지는 유진하가 신경 쓰였다.
앞에서 재촉하는 바람에 에어리스는 걸음을 재촉했다.
유진하는 저 뒤에 혼자 멀어졌다.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고민이 끝난 듯이 유진하가 계단을 따라 빠르게 뛰어내리며 달려왔다.
쿵! 쿠궁!
마지막으로 유진하가 내려왔을 때였다.
계단에서 막 지하 바닥으로 내려오자 유진하의 뒤가 곧바로 무너졌다.
산산이 부서진 바위 더미는 계단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출구가 또 막혔네요.”
에어리스는 조용히 무너진 계단 쪽을 바라봤다.
이제 돌아갈 길은 사라졌다.
“시련의 탑에서도 사람들을 가둬두는 악취미가 있었지.”
유진하도 씁쓸하게 말을 흐렸다.
그러더니 진지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내려가는 내내 평소와 달리 말수가 줄어들었다.
에어리스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유진하가 깊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만큼 어려운 난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여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옆을 지키던 누군가가.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