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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6화 (26/229)

26화 왕좌의 시련(2)

“여긴……?”

4층에서 내려온 J는 예상치 못했던 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피와 주검이 진동하는 참혹한…….

살의를 머금은 자가 혼자 있었다.

왕좌 근처에서 가만히 있었다.

“무슨 짓이지?”

J는 수상한 남자를 주목했다.

피 묻은 옷과 얼굴.

생기 없는 눈빛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감정이 사라진 듯했다.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눈동자는 소름 끼치도록 두려웠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남자의 모습보다 J의 눈을 더 끈 쪽은 따로 있었다.

3층의 왕좌였다.

“이럴 수가…….”

왕좌는 죽은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 녀석…….’

J는 살인마의 의도를 깨달았다.

탑의 시련은 다른 층을 제압해야 이길 수 있다.

승리 조건은 두 가지였다.

다른 층의 왕좌에 앉거나.

리더를 죽이거나.

살인마는 죽은 이들로 왕좌를 채워 버렸다.

이러면 다른 사람이 아예 앉지 못한다.

심지어 카드까지 하나 꽂혀 있었다.

‘봉인 카드겠지.’

무덤처럼 변해 버린 왕좌는 완전히 고정되었다.

왕좌에 앉는 건 불가능해졌다.

저 살인마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그쪽. 굉장히 악취미이네.”

J는 냉소적인 표정이 되어 상대를 노려봤다.

“그런가?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살인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어깨를 툭툭 몸을 털며 걸어왔다.

‘절그럭. 절그럭.’

옆에 뉘어놨던 검도 슬쩍 들었다.

서늘하게 피맺힌 칼날은 섬뜩하게 빛났다.

보통 검과 다르게 제법 가치가 있는 명품으로 보였다.

“혼자 내려와서 대화하려고 했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네.”

J는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오른손에 양날검, 왼손에 카드를 들었다.

화려한 검술과 다재다능한 카드를 이용해서 살인마를 제압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칼은 사람 베는 맛이 좋거든.”

살인마는 칼에 묻은 피를 자신의 소매로 살짝 닦았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녀석은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심장 박동을 늘려나갔다.

초조해진 긴장감이 팽배했다.

살인마의 육체는 이미 묘한 쾌감으로 지배당하고 있었다.

더 큰 자극을 원했다.

죽이고 죽이는 살의가 필요했다.

“당신의 붉은 머리카락. 핏빛으로 물들면 더 예쁠 것 같군.”

살인마는 강렬한 적의를 드러냈다.

기세 싸움에서 J는 물러서는 타입이 아니었다.

“원한다면 당신 피로 콜?”

“할 수 있다면 해 보든가.”

가벼운 신경전이 오가고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툭툭.

살인마는 쾌속의 사바톤 부츠로 서서히 스텝을 밟았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움직임이 그의 주특기였다.

단숨에 상대의 목을 베어 버리려고 빠르게 내달렸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였다.

콰앙!

뒤이어 폭풍처럼 몰아치는 풍압이 터져 나왔다.

마치 공기가 빠져 진공 상태가 되듯이 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살인마는 전속력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살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살인마의 쾌속에 맞서 J는 윈드 카드를 사용해서 바람처럼 옆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제법이군.”

살인마는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J를 노려봤다.

보통의 실력이 아닌 걸 확인했다.

J도 양날검을 굳게 쥐며 승부에 전념했다.

“그 신발. 쾌속의 부츠라고 본 적이 있거든. 당신 말고 그 물건의 원래 주인이 있어. 내가 아는 사람이지.”

“그런가. 내 손에 죽었는데…….”

“알아.”

J는 아까보다 더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지인을 죽인 자가 눈앞에 있었다.

복수의 상대였다.

동시에 저 사바톤 부츠를 돌려받을 기회이기도 했다.

“내 손으로 널 잡을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야.”

떨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살인마와 전력으로 맞서겠다고 다짐했다.

쾌속의 부츠.

바람의 카드.

서로 장기인 스피드를 활용하면서 두 사람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려왔고,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치열한 접전으로 들어갔다.

* * *

3층에서 J와 살인마 간의 일대일 숨 막히는 대결이 벌어지는 동안, 다른 층도 바빠지고 있었다.

1층 용병팀이 유진하가 있는 2층으로 침입했다.

“시간은 충분해요. 협의할 수도 있고요.”

유진하는 섣부른 대결을 피하고 싶었다.

상대의 왕좌에 앉거나.

리더를 죽여야 끝나는 승부.

탑의 시련은 모두에게 극한의 위기감을 주었다.

내가 살려면 남을 죽여라.

잔인한 룰이었다.

“제이슨, 당신이 그쪽 리더죠?”

유진하는 상대 쪽 리더와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다.

때문에 용병 대장 제이슨을 불러냈다.

물론 리더는 그가 아닐 수도 있었다.

속임수를 쓰려고 바지사장처럼 다른 누군가를 내세울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리더를 부르는 게 아니에요. 대화할 상대가 당신이니까 부르는 거죠.”

어차피 대화는 리더가 아니라 진짜 실세와 해야 했다.

용병은 당연히 고용주나 대장이 실세를 차지한다.

대화는 결국 그와 해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용병 대장 제이슨이 나섰다.

녀석은 이름난 실력자답게 많은 경험이 있었다.

그가 가진 신념은 하나였다.

자신의 실력만 믿어라.

모두가 죽더라도 혼자서 돌아왔다.

마치 사신처럼…….

그는 강인한 신념의 보유자였다.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모두가 같이 살아남을 방법이 있어요.”

유진하는 숙련자를 상대로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제이슨의 딱 부러진 성격을 알기 때문에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살아남는다?”

제이슨의 안색이 변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뚝을 움켜잡더니 건들거리듯이 비아냥으로 대꾸했다.

“속임수처럼 들리는군.”

그는 상대를 믿지 않는다.

배신당하느니 차라리 먼저 배신하는 쪽을 선택하는 스타일이었다.

협상이든 대화든 최소한의 신뢰 관계부터 구축해야 시도해 볼 수 있다.

제이슨은 어설픈 대화가 통할 사람이 아니었다.

후우.

유진하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그게 아니면, 2층으로 우르르 올라온 이유가 우리와 싸우기 위해서인가요?”

“룰이 그러니까…….”

제이슨은 짧게 말을 끊었다.

뻔한 얘기를 더 나눌 필요가 없다는 소리를 남겼다.

이미 주변의 용병들은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준비해야겠어.”

이소민은 빙룡의 가방에서 기다란 창을 꺼냈다.

M과 요원들도 각자 무기를 꺼내어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잠깐만요.”

에어리스만이 거대한 대검을 꺼내지 않았다.

유진하가 하는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승부로 결판을 내겠다면 그렇게 해요. 대신에 서로 피해를 좀 줄이는 쪽이 어떨까요?”

“원하는 방식이 있나.”

제이슨은 심드렁한 듯이 딴청을 부렸다.

‘너희가 어떤 방식을 제시하든 내가 이길 거다.’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여전히 유진하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어차피 모두가 싸우면 아마 서로 손해가 많을 거예요. 그러느니 차라리 일대일로 승부를 보고 이긴 쪽이 왕좌를 차지하면 어떨까요?”

“흐음. 일대일이라…….”

제이슨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용병팀은 1층에 있었다.

하나하나 올라가면서 4층까지 가려면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편이 당연히 나았다.

일대일 승부라면 가장 자신이 있었다.

“괜찮지. 그쪽에서 속임수를 쓰면 바로 전쟁이라는 걸 명심해.”

“약속은 지켜요.”

일대일 대결이 성립되자 유진하는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제이슨은 마음이 급한지 벌써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그쪽은 누구지? 하이에나, 너는 아닐 테고. M인가?”

M은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후. 나보다 더 적절한 상대가 있어.”

이미 유진하는 적임자의 곁에 있었다.

에어리스였다.

“제가 해도 괜찮을까요?”

오히려 에어리스가 더 불안한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괜찮을까라는 불안감이 에어리스의 눈빛에 머물렀다.

“당연히 충분하지.”

창을 꼬나쥔 이소민이 긴장감을 풀어 주려고 에어리스의 어깨를 살짝 토닥여 줬다.

“하던 대로 하면 될 거야.”

유진하와 M, 정부 요원들까지 모두가 격려해 줬다.

팀원들의 신뢰.

그 믿음이 전해지자 의지가 생겨났다.

에어리스는 진정된 감정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최선을 다할게요.”

긴장으로 굳었던 방금과 달리 한결 편해진 얼굴이 되었다.

“그쪽은 대검을 가진 여자인가?”

제이슨은 예상치 못한 상대를 맞이하자 약간의 비웃음을 머금었다.

“좋아. 그 대검이 장식품은 아니었나 보군. 후회하지 말라고.”

그는 쌍도끼를 꺼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도끼였는데, 오른쪽은 양날의 도끼였고 왼쪽은 검은 날을 가진 도끼였다.

양손으로 도끼를 휘둘러 몬스터를 썰어버리는 스타일이 제이슨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쪽에서 올 건가. 아니면 내가 갈까.”

제이슨이 선수를 양보하겠다며 여유를 부리는 동안, 에어리스는 얇게 호흡을 내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건틀릿 장갑을 낀 손에 힘을 주며 대검을 움켜잡았다.

“준비는 끝난 것 같군.”

제이슨은 손으로 도끼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다가왔다.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처럼 똑바로 에어리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야광처럼 날카로웠다.

카앙!

마침내 도끼와 대검이 맞부딪쳤다.

날카로운 마찰음과 번쩍이는 불똥이 튀더니 격렬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검 승부였다.

한 차례의 육중한 충격이 손에 전달됐다.

제이슨은 에어리스가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웃음기를 지워버렸다.

‘정말 그 대검을 휘두르다니?’

단순히 힘으로 몰아붙이려고 했는데 에어리스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빠르게 상대의 진짜 실력을 알아차린 제이슨은 바로 태세를 바꿨다.

도끼는 레어용 장비였고, 내재된 힘이 따로 있었다.

“개방.”

제이슨의 오른쪽 양날 도끼에 특유의 빛이 발생했다.

눈부신 섬광과 함께 도끼에서 발산된 오오라가 제이슨의 온몸을 휘감았다.

“이제 시작해 볼까.”

제이슨은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에어리스는 서둘러 대검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는데 아까와는 위력이 전혀 달랐다.

두 배에 육박할 만큼 강한 공격으로 내리쳤다.

“완력의 도끼. 개방하면 술사의 공격력을 두 배로 올려 준다.”

멀리서 지켜보던 유진하가 중얼거렸다.

제이슨의 무기는 꽤 유명했다.

제이슨 본인이 세계에 알려진 유명 인사였고, 그의 무기 역시 마찬가지로 각광을 받았다.

M이 수첩에다 제이슨의 전투력을 S로 표시한 이유도 도끼의 위력을 인정한 까닭이었다.

“아앗!”

에어리스는 아까처럼 도끼를 받아내기 어려웠다.

간신히 옆으로 쳐내고 뒤로 물러섰다.

“벌써 뒷걸음질이냐?”

제이슨은 완력의 도끼를 휘두르며 강하게 다가섰다.

근접전에서 불퇴의 위용을 자랑하는 완력의 도끼가 강력했다.

거칠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크윽!”

제이슨의 강해진 완력은 힘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에어리스를 몰아붙일 정도로 실력이 탁월했다.

날카로운 도끼는 마치 맹수의 발톱 같았다. 거침없이 휘몰아쳤다.

지금이 바로 결정타를 날릴 때였다.

“발현.”

제이슨은 왼손의 검은빛 도끼에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검은빛의 도끼.

후우우욱.

도끼에서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방을 뒤덮기에 일명 안개의 도끼라고도 불렸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이 안개는 특이한 성질이 있는데 발현자는 시야를 볼 수 있으나 상대는 앞이 전부 가려진다는 거였다.

순간적으로 장님이 되었다고 착각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에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제이슨은 무려 두 개의 레어 무기를 동시에 소유한 실력자였다.

출중한 완력에 우월한 무기까지 겸비했으니 에어리스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하의 생각은 달랐다.

“대책은 이미 알려 줬어요.”

제이슨은 유명한 공략자였다.

당연히 그의 도끼와 기술도 알려질 만큼 알려진 상태였다.

역습은 지금부터였다.

“라이트닝.”

에어리스의 건틀릿에서 번개가 감돌았다.

강렬한 번개가 대검에 감돌자 주변이 빛났다.

덕분에 검은 안개 속에서도 시야가 확보됐다.

“번개는 빛이죠.”

유진하는 미리 에어리스에게 제이슨 공략법에 대해 알려 줬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카아앙!

대검을 앞세워서 순간적으로 치고 나갔다.

“크윽!”

묵직한 느낌이 손에 전달됐다.

에어리스의 위력은 아까와 달리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완력의 도끼로 힘을 끌어올렸지만, 에어리스는 그럴 필요가 없어. 원래 가진 힘이 그 정도는 돼.”

에어리스는 더는 힘을 감추지 않았다.

유진하는 제이슨 공략법을 알려 줄 적에 한 가지 부탁을 해뒀다.

웬만하면 제이슨을 다치지 않게 잡아 달라고.

생포하기를 원했다.

“전력이 아닌 힘으로 싸워줘.”

그래서 에어리스는 처음에 모든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

상대가 가진 완력에 맞춰서 몰아붙일 계획이었다.

실제 힘은 에어리스가 제이슨보다 우위였다.

“말도 안 돼.”

제이슨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자 점점 뒤로 밀려났다.

완력의 도끼와 안개의 도끼를 가진 채로 이렇게 고전한 경험이 없었다.

당황스러워진 그가 큰 고함을 지르며 마지막 돌격을 감행했다.

“우아아아아!”

에어리스를 베거나.

자신이 베이거나.

하나의 결말만을 향해 치달았다.

에어리스의 판단은 달랐다.

카앙.

거친 파열음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제이슨의 쌍도끼는 전부 저 멀리 날아갔다.

에어리스의 대검이 날려 버렸다.

승자는 에어리스였다.

“승부는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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