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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2화 (22/229)

22화 성장하는 지역(1)

“배고프다.”

아침 햇살보다 먼저 이소민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마치 자명종 소리처럼 시끄러웠다.

그녀는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모두를 깨우려고 일부러 소리쳤다.

“다들 뭐 해?”

반응이 없자 일부러 냄비와 국자로 통통 소리를 내며 더 크게 소음을 냈다.

캉캉캉캉.

“저도 배가 고프네요.”

그제야 에어리스가 부스스한 눈으로 방에서 나왔다.

피곤한 듯이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배가 고프긴 한데 너무 졸리기도 해요.”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던 에어리스는 거실의 소파에 그대로 누웠다.

기절한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에어리스, 지금 10시야.”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이소민이 다가와서 엎어져서 누워 있는 에어리스의 옆에 앉았다.

상태를 보아하니 더 깨우기도 그랬다.

“고전하긴 했지.”

에어리스는 푸른 갑옷의 남자와 마주했다.

정면 대결에서는 그에게 밀려 승부를 내지 못했다.

에어리스가 처음 맞이한 과거의 사람이 적이었다.

시리안이라는 그 남자…….

뒤얽힌 과거의 고리가 에어리스에게 중압감을 주었다.

“하암.”

유진하가 나왔다.

가장 늦게 나와서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두 사람을 발견했다.

“오늘은 뭐 할까요?”

아침부터 열심히 깨웠으니 무슨 계획이 있나 알려 달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정해야지.”

이소민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최근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자연히 다들 각자 필요한 개인 생활만 했는데 유진하는 편히 쉬거나 책을 읽었고, 에어리스는 검을 휘두르며 훈련에 전념했다.

이소민은 부지런하게 집안일을 열심히 했다.

사실 유진하와 에어리스 둘 다 요리는 아예 못 했고, 빨래도 어설프게 하는 바람에 방해만 됐다.

차라리 이소민 혼자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맨날 집에만 있을 거야? 날씨도 좋은데 가끔 밖으로 나가서 놀아도 되잖아.”

급하게 오늘의 외출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외식도 하고. 시내 구경도 하고. 영화를 봐도 되고.”

소파에 기절하다시피 누워 있던 에어리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저는 구경하는 거 좋아해요. 아직 많이 못 본 게 많거든요.”

“에어리스는 혹시 가고 싶은 데 있어?”

이소민이 묻자 에어리스는 잠시 망설였다.

“잘 모르겠어요. 워낙 몰라서요.”

잠깐 머뭇거리던 에어리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는지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달려갔다.

금방 돌아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 가고 싶었어요.”

종이의 정체는 전단지였다.

정확히는 놀이공원 광고지였다.

“여기?”

이소민이 되물었다.

에어리스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기대에 찬 눈동자를 머금었다.

“티브이에서 봤어요.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이 정말 재밌어 보였어요.”

이소민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유진하를 바라봤다.

“어떻게 할 거야?”

이소민의 눈치와 에어리스의 기대가 동시에 다가오니 유진하는 상당한 부담을 받았다.

“그럼 가요.”

“와!”

기쁜 에어리스가 와락 유진하를 안아 줬다.

의외의 포옹을 받자 유진하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별거 아닌데. 하하.”

이소민은 조용히 두 사람의 어깨를 잡더니 살짝 사이를 벌려 놨다.

“아무리 기뻐도 우리끼리는 자제하자고.”

“네!”

에어리스는 활짝 웃으면서 좋아했다.

마치 소풍날 나가는 아이처럼 명랑하고 쾌활했다.

“어서 가요.”

에어리스가 앞장섰다.

던전에서는 저 뒷모습이 듬직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마냥 아이처럼 느껴졌다.

저 밝은 미소가 항상 함께하기를.

유진하는 에어리스에게 그런 바람을 담았다.

‘계속 옆에 남아 줬으면 좋겠어.’

그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원했다.

* * *

“여기 같이 타요.”

에어리스가 가리킨 놀이기구는 바이킹이었다.

“처음에 이거부터 타려고?”

유진하는 멈칫하며 바이킹을 쳐다봤다.

시계추처럼 힘차게 좌우를 왕복하는 놀이기구.

이게 에어리스가 가장 처음 선택한 거라니.

조금 놀랐다.

이소민은 찻잔이 잔잔하게 움직이는 놀이기구를 추천했다.

“에어리스, 이런 거는 어때?”

“저는 이게 더 좋아요. 짜릿하고 재밌을 거 같아서요.”

에어리스는 바이킹에 눈독을 들였다.

완전히 저기에 꽂혀 버렸다.

유진하는 ‘뭐, 괜찮겠지’ 하면서 같이 바이킹을 탔다.

“나도 타라고?”

이소민은 갑자기 딴청을 부렸다.

왠지 무서운 놀이기구는 싫어하는 듯했다.

“자유 이용권을 끊었는데 아깝잖아요.”

뒤로 빠지려는데 유진하가 이소민의 등을 떠밀어서 안에 넣었다.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은 안전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철컹.

서서히 바이킹이 움직였다.

유진하는 난간을 꼭 잡고 앞을 응시했다.

조금씩 반동을 주며 올라가던 바이킹이 순식간에 위로 치솟았다.

왕복 운동을 시작하자 거의 체감으로는 90도에 육박할 만큼 올라갔다.

“꺄아아아아!”

스릴과 흥분이 밀려들었다.

바이킹을 탄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에어리스는 달랐다.

“야호!”

한 손을 흔들며 여유롭게 하늘을 만끽했다.

너무나 신나고 해맑은 표정이었다.

반면에 유진하와 이소민은 죽을 맛이었다.

둘 다 이런 놀이기구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전 손잡이를 쥐었고 땀이 가득 찼다.

“진하, 한 손은 놔도 돼요.”

에어리스가 권유하자 유진하는 바로 정색했다.

“아니야, 나는 됐어.”

한 손만 놨다가는 아예 심장을 놓칠 것 같았다.

이소민도 같은 처지였다.

손은 덜덜거렸고 눈은 아예 감았다.

각자의 사정과 상관없이 바이킹은 계속 흔들렸다.

“벌써 끝났어요.”

에어리스는 숨을 가볍게 몰아쉬더니 반짝 웃었다.

“정말 좋았어요. 다들 그렇죠?”

“그럭저럭.”

유진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천천히 나왔다.

이소민의 모습은 더 심각했다.

평소처럼 당당하기는커녕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재밌지 않았나요?”

에어리스는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대한 몬스터를 상대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놀이기구에 취약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런 데는 좀 약해.”

유진하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진정했다.

이소민도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무서운 거는 질색이거든. 차라리 몬스터는 귀엽게 보이잖아.”

두 사람이 진정하기를 기다리면서 에어리스는 주변의 다른 놀이기구들을 살펴봤다.

맘에 드는 무서운 기구들이 잔뜩 남았다.

“그럼 두 사람은 좀 쉬어요. 저 혼자 타고 올게요.”

“그게 낫겠어.”

유진하와 이소민은 동시에 소리쳤다.

괜히 끌려가서 고생하느니 에어리스 혼자 즐기도록 놔두는 편이 훨씬 나았다.

덕분에 혼자서 청룡열차를 시작으로 자이로 드롭까지 완주하는 에어리스의 원맨쇼가 펼쳐졌고, 유진하와 이소민은 그녀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사진 찍을래?”

아이스크림을 먹던 이소민은 심심했는지 갑자기 제안했다.

옆에서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던 유진하도 추억이 될 거 같아서 그러기로 했다.

“에어리스, 그만 혼자 놀고 같이 사진이나 찍자.”

멀리서 그녀를 불렀다.

마침 에어리스가 먹을 아이스크림도 샀던 터라 너무 늦으면 녹아내리게 된다.

겸사겸사 세 사람은 각자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부탁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찰칵.

“감사합니다.”

놀이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행복하게 웃는 얼굴이 사진에 담겼다.

그런 세 사람을 건너편 2층 건물에서 몰래 보는 자가 있었다.

“평소에는 이렇게 쉬는군. 그냥 평범하네.”

검은 복장으로 얼굴을 숨긴 누군가 중얼거렸다.

유진하 일행을 아까부터 미행하던 사람이었다.

그자는 뭔가 속셈을 가진 듯했다.

추적 경험이 있는지 사람들 사이로 잘 숨어들며 따라왔다.

“가는 건가?”

밑에 보이는 세 명 중에 에어리스가 다시 놀이기구 쪽으로 향했다.

남은 두 사람.

유진하와 이소민은 가게로 향했고, 위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가려졌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잠깐 기다릴까.”

미행자는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렸다.

시간이 꽤 흘러갔는데 곧 나올 줄 알았던 두 사람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아까 놀이기구 쪽으로 갔던 에어리스 역시 사라졌다.

“우리를 찾는 건가요?”

미행자의 뒤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하…….”

어느새 미행자는 꼬리를 잡혔다.

유진하가 뒤에 있던 것이다.

눈치채지 못하게 따라간 줄 알았는데 이미 움직임이 들킨 거였다.

“우리를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네?”

옆에는 이소민도 같이 있었고, 에어리스도 함께였다.

미행자는 금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깨달았다.

“그렇군. 아까 사진을 찍던 거는 위장이었어. 실제로는 나를 잡으려고 작전 지시를 한 거였군.”

“맞아요.”

유진하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행이 붙은 거는 아까부터 알고 있었어요. 언제 틈을 봐서 잡으려고 한 거죠.”

“과연… 실력은 확실하구나.”

미행자는 자신의 얼굴을 가렸던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그 사람의 정체는 여성이었고, 긴 붉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J였군요.”

에어리스가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저번 공략전 이후로 다시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소민은 아는 얼굴이 나와서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

“당신이 굳이 우리를 미행할 필요가 없잖아요?”

“아아, 실력 테스트한 거야.”

J는 능청스럽게 웃음으로 때웠다.

“저번에는 우연일 수도 있잖아. 그래서 시험해 본 거지. 정말 눈썰미가 좋고 실력이 있다면 내 미행 정도는 눈치채지 않을까. 뭐, 그런 거?”

유진하는 탐탁지 않은 듯이 눈빛을 가늘게 떴다.

“유쾌한 경험은 아닌데요.”

“불쾌했다면 미안. 이쪽도 나름의 사정은 있어서 말이야.”

J가 먼저 사과를 해 버리니 어쩔 수 없이 받아 줘야 했다.

“장소를 옮기면 어떨까? 왁자지껄한 곳에서 얘기할 주제는 아니거든.”

유진하는 흔쾌히 받아 줬다.

J는 정부의 최정예 요원이었고, 직접 접근할 정도면 비밀스럽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M은 안 왔나요?”

에어리스가 슬쩍 J에게 물어봤다.

“그쪽은 따로 일이 있어서. 엄청난 대검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으니까 귀여운 아가씨였네.”

J는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주도했다.

전장에서는 냉철해도 평소에는 사교적인 성격이 분명했다.

분위기를 완전히 자신의 페이스로 만들어 가면서 상대와 소통했다.

아마 이런 말투와 처신이라면 낯선 사람들에게도 금방 신뢰를 얻을 만한 타입이었다.

사교적인 리더였다.

유진하와는 다른 스타일이었다.

“다 왔네요.”

모두 조용한 카페에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미리 빌렸어요. 안에 있는 바리스타도 우리 요원이죠.”

커피를 만들던 바리스타 요원이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일행은 테이블에 앉았다.

“다들 무거운 표정은 짓지 마. 그렇게 심각하게 있으면 무슨 말도 못 꺼내겠다.”

J는 일부러 웃으면서 딱딱한 분위기를 다독였다.

그녀가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감을 최대한 풀더니 종이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선물이야.”

유진하가 먼저 종이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사진이 있었다.

“우리 사진이네?”

이소민이 눈을 말똥말똥 뜨더니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사진은 유진하와 이소민, 에어리스가 함께 있는 모습으로 여러 장 찍혀 있었다. 예전에 공략전을 클리어하고 나올 때 사진들이었다.

다시 보니까 기억이 새롭게 나기도 했다.

“우리 요원은 항상 현장 촬영을 하거든. 거기서 몇 장 가져온 거야. 너희들에게 기념으로 삼으라고 가져왔어.”

J가 말하기도 전에, 다들 사진이 재밌다는 듯이 살펴봤다.

“마지막 사진이 진짜 용건이군요.”

유진하는 끝에 있는 사진 하나에 주목했다.

기념사진이 나오다가 마지막에 이질적인 한 장이 있었다.

마지막 한 장.

그것은 절벽 골짜기에 있는 소용돌이였다.

저번에 나온 타이푼급보다 무려 두 배는 더 커다란 어마어마한 크기의 에어리어였다.

“미국 그랜드 캐니언에 있는 거야. 발생한 지는 좀 됐지. 두 달 정도? 물론 외부에 공개된 적은 없어.”

유진하는 어떤 소용돌이인지 바라봤다.

단순한 차원문이 아니라 흉측한 기운이 사방에 전류처럼 퍼졌다.

사진으로만 봐도 몸서리치도록 두렵게 느껴지는 오오라였다.

“기밀이거든. 그러니까 비밀이지.”

마침 바리스타 요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J는 잠시 뜸을 들이며 커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우리 요원이 이미 들어갔었어. 결과는 안 좋았지.”

이소민이 중얼거렸다.

“설마.”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어.”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삽시간에 무서운 침묵이 공기를 삼킨 듯했다.

“저 에어리어는 달랐어. 처음에는 모기보다 작았는데 점점 커지더니 저렇게 된 거야.”

“성장형이군요.”

유진하는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맞아. 처음 나온 형태였지.”

다시 사진을 바라봤다.

보통의 공간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J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단도직입적으로 요청했다.

“너희한테 하는 의뢰야. 공략전에 같이 참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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