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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21화 (21/229)
  • 21화 미묘한 팀

    ‘에어리어 클리어.’

    전리품은 두 개였다.

    빙룡의 뱃속에 숨겨진 물건.

    그리고 푸른 갑옷의 남자가 지니고 있던 장검이 그것이었다.

    전리품 두 개를 모두 획득하여 에어리어 클리어 조건을 달성했다.

    덕분에 유진하와 일행들은 무사히 빠져나오게 되었다.

    “드디어 나왔다.”

    폭풍우처럼 매섭게 휘몰아치던 차원문은 이제 서서히 줄어들었다.

    에어리어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긴장감이 풀려서 물을 마시거나 앉아 있었다.

    탈진 증상이 있는 사람은 아예 땅바닥에 누워 있기도 했다.

    “어디 상태 좀 볼게요.”

    의료진이 다가와 상태를 체크했다.

    시끌벅적한 곳을 피해서 유진하는 공원 쪽으로 빠져나왔다.

    “저기서 잠깐 쉴까?”

    유진하는 벤치에 먼저 앉았다.

    손에는 푸른 갑옷의 남자로부터 얻은 검이 들려 있었다.

    이소민도 어느새 따라와 옆에 앉았고, 반대편에는 에어리스가 대검을 들쳐 멘 채로 가만히 있었다.

    “여긴 조용하네요.”

    에어리스는 현장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빠졌다.

    여태까지 다녀왔던 공략전과 달리 중요한 사건이 있던 탓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푸른 갑옷의 남자.

    이름을 ‘시리안’이라 밝혔다.

    ‘모르겠어. 기억이 나지 않아.’

    에어리스는 곰곰이 생각해 봤으나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두를 배신하고 죽게 놔둔 죄.’

    비수처럼 날아와서 심장에 꽂혔던 그 말…….

    에어리스의 눈빛은 내려앉았고 고민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과거에 누구였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을 거야.”

    유진하가 다가와서 어깨를 잡아주며 다독였다.

    “그 사람의 말을 너무 신경 쓰지 마. 분명 오해가 있을 거야.”

    기운을 주려는 말을 전달했다.

    유진하는 여전히 에어리스를 신뢰했고 비관적이기를 원치 않았다.

    “어떤 일이 있었든 우리가 있을 테니까.”

    유진하가 살짝 웃었다.

    그의 미소를 보면서 에어리스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어려운 위기를 맞았어도 유진하는 남보다 앞서 움직였다.

    순간적인 기지와 기발한 전략을 발휘해서 빙룡을 제압했고, 정확한 판단력으로 푸른 갑옷의 남자에게서 에어리스도 구해냈다.

    ‘진하는 정말 대단해.’

    힘과 기술이 아닌 지력과 판단력.

    유진하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무기로 전투의 패러다임을 바꿔갔다.

    모두가 위기에 빠지면 어느새 그에게로 시선이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부담감을 받고서도 유진하는 항상 기대에 부응했다.

    어느 누구와도 달랐다.

    “자, 끝났으니까 우리끼리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

    이소민은 양팔을 들어 기지개를 쭉 피더니 상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소민 누나는 기분이 좋은 거 같네요.”

    눈치 빠르게 유진하가 은근슬쩍 이소민의 반응을 찔러봤다.

    “당연하지. 오늘은 소득이 좀 있거든.”

    이소민은 굳이 숨기지 않고 기분이 좋은 이유를 밝혔다.

    손에서 뭔가를 내밀었다.

    푸른 비늘이 새겨진 가방이었다.

    “빙룡의 전리품이야.”

    빙룡의 뱃속에서 찾아낸 전리품이 이소민에게 있다? 유진하는 의아한 표정이 되어서 되물었다.

    “전리품을 누나가 받았다고요?”

    “그래. 정부 요원들한테 양보받았어. 물론 내가 받았으니까 내 거지.”

    “아, 그래요?”

    유진하는 시큰둥하게 입술만 한 번 내밀더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번에 가장 한 일이 없는 사람이 이소민이었으니까.

    뭐, 그래도 물건은 챙긴 사람이 주인이니 그녀의 차지가 맞긴 했다.

    먼저 가진 사람이 임자.

    에어리어 공략자들끼리의 공통된 규칙이었다.

    그런데 정부 요원들에게는 사실 이런 규칙이 통하지 않았다.

    전부 정부 것이다.

    이게 공식 입장이었다.

    그런데 요원들에게 양보를 받았다니?

    “유진하, 네 덕분이야. 고맙다, 이 녀석아.”

    이소민이 유진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자세한 내막은 이러했다.

    빙룡을 잡은 계기는 결과적으로 유진하의 전략 덕분이라 정부 요원들이 이번에 전리품을 양보했다는 거였다.

    지휘관 J의 결정이었다.

    “아, 그 붉은 머리의 요원.”

    불꽃처럼 빨간 머리를 가진 여성 요원 J가 생각났다.

    그녀는 양날검과 카드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막강한 실력을 뽐냈다.

    지휘와 작전에 능숙했으나 이번 공략에서는 유진하의 전략에 비해 명백히 미흡했다.

    J의 전략은 빙룡에게 통하지 않았고 유진하는 완벽히 적중시켰다.

    이번 실패는 그녀의 자존심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수치가 되고 말았다.

    덕분에 전리품을 양보받았다.

    ‘흐음. 그런 건가.’

    J는 자존심이 강한 요원이었다.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다시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뚝뚝한 M과 성취욕이 강한 J.

    앞으로 정부 요원들이 어떻게 나올지 흥미롭게 볼만했다.

    “처음으로 주인의 전리품을 얻었다!”

    이소민은 기분이 최고조로 올라서 빙룡의 가방을 끌어안고 좋아했다.

    “이소민 누나, 그 가방의 기능은 알아요?”

    “아직 모르는데…….”

    이소민이 순간 멈칫했다.

    유진하는 얼른 넘기라는 손짓을 보냈다.

    살펴봐 주겠다는 신호였다.

    “아아, 그런 거네.”

    몇 번 만지작거리던 유진하가 대략 사용법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가방과 비슷하네요. 크기와 용량에 상관없이 물건을 넣을 수 있어요.”

    에어리스는 조용히 빙룡의 가방을 내려다보더니 손뼉을 쳤다.

    “요원들이 가지고 다닌 것과 비슷한 거군요.”

    “맞아. 어떤 물건이든 개수만 맞으면 다 넣을 수 있어. 이런 가방은 코끼리도 한 개고. 연필도 한 개로 보거든.”

    유진하는 재밌는 비유를 던졌다.

    가방의 용량은 오로지 개수로만 정해진다.

    코끼리도 하나.

    연필도 하나의 용량이었다.

    즉, 최대한 무겁고 부피가 커다란 쪽을 가방에 넣는 편이 이로웠다.

    “전체 용량은 백 개. 요원들 가방보다 3배는 많네요.”

    이소민은 화들짝 놀라더니 금세 엄청 좋아하는 표정이 되었다.

    “와, 그 정도면 대박이잖아.”

    “던전 가방은 굉장히 귀해요. 저는 한 번도 못 얻었거든요.”

    정부 요원 중에서도 정예 급에만 지급되는 가방이었다.

    그것도 용량이 3배이니 굉장히 가치가 컸다.

    “이것만으로도 빌딩 하나 값은 나오려나.”

    “커억, 진짜로?”

    이소민의 눈동자에는 돈다발이 바로 보였다.

    기대하던 대박이 드디어 터졌다.

    로또 당첨!

    기쁨의 환호성과 몸부림이 튀어나왔다.

    이소민은 온몸이 따로 노는 정체불명의 춤을 추면서 마음껏 기쁨을 만끽했다.

    “기능이 더 있어요. 가방에 넣으면 빙결 속성을 부여할 수도 있어요.”

    “뭐? 그게 뭔데?”

    유진하는 찬찬히 설명했다.

    “예를 들어, 단도를 얻었다고 쳐 볼게요. 그걸 이 가방에 넣으면 빙결 속성을 붙일 수 있다. 뭐 이런 거죠.”

    이소민은 설명보다 금세 돈 냄새를 더 빨리 맡았다.

    “그러니까 대박 정도가 아니라 초대박이라는 거네.”

    “그렇죠.”

    이소민은 콧구멍이 넓어지며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초대박 확정이었다.

    빙룡의 가방은 이소민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줄 물건이었다.

    “이거면 빌딩도 꽤 큰 거를 사도 될 거예요. 이소민 누나, 어떻게 할래요? 팔까요?”

    유진하가 넌지시 의견을 물었다.

    이소민은 씨익 웃으면서 빙룡의 가방을 돌려받았다.

    “아니, 안 팔아.”

    그녀는 빙룡의 가방을 마치 명품백처럼 안아서 자신이 매었다.

    “앞으로도 에어리어에 더 들어갈 거잖아. 이제는 거기 물건을 싹 이 가방으로 쓸어올 수 있는데 왜 팔겠어?”

    이소민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앞으로 모든 물건을 마음껏 가져오겠다.

    부자 중의 부자가 되겠다.

    이소민은 베팅을 더 키우는 스타일이었다.

    역시 배포가 컸다.

    유진하는 한숨을 내쉬며 이소민의 꿈인지 욕심인지 그게 얼마나 요란한지 직접 보았다.

    “그럴 줄 알았네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에어리스와 시선을 마주쳤다.

    의기소침했던 아까의 에어리스는 사라지고 밝게 웃는 원래의 그녀로 되돌아와 있었다.

    “다행이에요. 어쨌든 모두 무사했잖아요.”

    “에어리스도 수고했어.”

    두 사람은 살짝 웃었다.

    유진하는 손에 들고 있던 장검을 에어리스에게 건넸다.

    에어리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진하……?”

    “이 검. 에어리스가 가져.”

    푸른 갑옷의 남자가 가졌던 검.

    빙결 속성이 있는 그 검을 에어리스에게 주었다.

    “제가 가져도 될까요?”

    “나는 원래 검은 안 들고 다니잖아. 가벼운 카드만 들고 다니고.”

    “그래도 잡화점 같은 곳에 팔아도 되잖아요.”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이 검이 어쩌면 에어리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잊어버린 과거로 안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푸른 갑옷의 남자가 남긴 말.

    과거의 원한과 복수.

    유진하는 에어리스의 과거 기억을 같이 걱정해 주고 싶었다.

    푸른 장검이 어떤 의미가 있을 수도 있었다.

    유진하는 던전에서 잃어버린 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에어리스가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가듯이 분명 언젠가는 자신도 형의 소식을 알게 될 거라고.

    “고마워요, 진하.”

    에어리스는 고맙게 양손으로 검을 받았다.

    “이번에는 대박이 많았네.”

    기분 좋은 이소민이 얼른 근처 카페로 달려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음료수를 가져왔고, 모두가 함께 마시며 공략전의 성공을 축하했다.

    유진하, 이소민, 에어리스.

    세 사람이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요원 M과 J였다.

    “어땠나? 저 녀석들.”

    M이 조심스레 의견을 물어봤다.

    J는 붉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공략전에서 그들의 활약상을 되짚었다.

    “확실히 묘한 팀이야. 대단히 훌륭했지.”

    리더 겸 작전 지휘의 유진하.

    공격 전담의 에어리스.

    정찰과 잡다한 일에 이소민.

    세 사람은 각자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묘한 협력을 이루며 서로 간의 호흡에 충실했다.

    “가장 눈에 띄는 녀석은?”

    M이 더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선글라스를 낀 J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너랑 비슷할 거 같은데? 네가 저들과 함께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런가?”

    M과 J는 정부 요원에서 동기였다.

    물론 서로에 대해 자세한 이력은 몰랐다.

    요원들은 부여된 코드명만 알 뿐.

    자세한 개인사는 서로 숨겼다.

    업무에 사적인 감정도 금지였다.

    “처음에는 무식하게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는 여자가 가장 관심이 갔어. 오히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작전을 단숨에 구상하는 저 소년이 더 궁금해졌지만 말이야.”

    하이에나라고 우습게 봤던 유진하의 활약에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M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곧바로 J에게 들켰다.

    “웃지 마. 기분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니야.”

    M은 웃음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게 웃었다.

    “웃지 말라니까.”

    J는 더 기분이 상했는지 M을 노려보다가 이윽고 발길을 돌렸다.

    “아니, 아니.”

    M이 말릴 틈도 없이 J는 빠르게 가버렸다.

    자리를 떠나는 그녀를 보면서 웃음이 자꾸 나왔다.

    최정예 정부 요원 J도 유진하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묘하게도 괜스레 본인이 더 기쁜 마음이 들었다.

    “과연. 그렇단 말이지.”

    M은 기록할 부분이 있으면 항상 체크하는 버릇이 있었다.

    얼른 수첩을 꺼내서 펜으로 해당 부분을 고쳐 썼다.

    유진하의 능력은 원래 이랬다.

    지력: S

    전투력: 불명

    민첩: B

    정신력: A

    체력: C

    원래 기록에서 새롭게 바꾼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지력: S → SS

    수정을 마치자 수첩을 도로 덮었다.

    “다음에 보자.”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그때는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타이푼급 두 개가 동시에 나타났던 공략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이소민은 각자 장비에 추가적인 변화가 생겼다.

    〈유진하〉

    순간 이동 카드.

    전언 전송 카드.

    화염 카드는 일회용이라 사라졌다.

    〈에어리스〉

    버스터 슬레이어 대검.

    속성 부여 건틀릿.

    빙결의 장검.

    생명의 반지는 푸른 갑옷의 남자, 시리안에게 당할 때 사용해서 망가졌다.

    〈이소민〉

    각종 초보용 무기와 잡다한 장비.

    빙룡의 가방.

    집으로 돌아온 유진하는 오늘의 일을 기록하며 새로운 전략에 대해 생각했다.

    방에서 머물던 에어리스는 벽에 푸른 갑옷의 남자가 지녔던 장검을 걸어 놨다.

    “시리안이라고 했는데.”

    계속 그 검을 바라보며 혼자 고민했다.

    이소민은 아무 생각 없이 과자를 먹으며 거실에서 티브이를 봤다.

    “하하하하.”

    그렇게 웃다가 소파에서 잠들었다.

    다들 힘들고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모처럼 휴일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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