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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5화 (15/229)
  • 15화 아이템의 중요성

    “착용감은 어때?”

    유진하가 묻자 에어리스는 건틀릿이 자기 손에 꼭 맞는 느낌을 받았다.

    “편해요. 너무 잘 맞아요.”

    새 장갑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마루에 앉아서 지켜보던 이소민은 턱에 손을 괴더니 시큰둥했다.

    “그런데 이건 어떤 능력이 있는 건데?”

    “지금부터 알려 줄게요.”

    유진하가 순서대로 가르쳐 줬다.

    “일단 검을 들어.”

    “검이요?”

    에어리스는 옆에 세워 놨던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를 들었다.

    “준비됐어요.”

    “그럼 내가 말하는 대로 외치면서 건틀릿에 힘을 꽉 줘.”

    다음 단어는 간단했다.

    “파이어.”

    “…파이어.”

    에어리스가 외치자 건틀릿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더니 대검에 감돌았다.

    “와, 불이 나오네.”

    옆에서 심드렁하던 이소민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에어리스도 나중에는 신기한 듯이 몇 번 휘둘러 봤다.

    대검을 휘감은 불꽃이 잔상처럼 따라다니며 아른거렸다.

    “화염 검이 가능해진 거네요.”

    “그게 전부가 아니야.”

    유진하는 다음 단어를 알려 줬다.

    “아이스.”

    “…아이 …스?”

    에어리스가 엉겁결에 따라 말하자, 검에 감돌던 화염이 사라지고 대신 차가운 얼음 알갱이들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얼음이에요.”

    “맞아. 이 건틀릿은 사용자 자신의 무기에 속성을 부여할 수 있어.”

    에어리스의 대검에는 푸른 얼음의 힘이 서리고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다음 것도 되겠네요.”

    자신감이 붙었는지 에어리스는 알아서 다음 속성을 불러봤다.

    “라이트닝.”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음 기운은 사라지고 번개가 발산됐다.

    에어리스의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는 번개가 내리치는 위력을 자랑하듯이 전율의 위엄을 보여 줬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속성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요.”

    번개가 감도는 대검을 가진 에어리스가 전투 자세를 취했다.

    마당에서 가상의 적을 상대하듯이 빠르게 휘두르면서 속성 대검의 위력을 확인했다.

    “이야. 저런 사기 아이템은 에어리스만 주고.”

    이소민이 투덜거렸다.

    유진하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소민 누나한테 주면 팔아 버릴 거잖아요.”

    “저렇게 좋은 거는 안 팔지.”

    “어차피 누나한테 줘도 잘 못 쓰잖아요. 줘 봐야 인질로 잡혀서 다 뺏기겠죠.”

    “지금까지 한 번만 잡혔거든? 그 살인마 녀석 말이야.”

    “다음에 잘 어울리는 물건 나오면 누나가 가져요.”

    “걱정 마. 다음 에어리어가 열리면 주인의 전리품을 아예 내가 차지하고 말 거니까.”

    이소민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새로운 아이템을 보자 의욕이 마구 샘솟은 모양이었다.

    유진하는 건틀릿을 바라보니 사용법을 찾느라 고생했던 어제가 생각났다.

    “설명서가 없어서 고생했어요. 알아서 사용법을 잘 찾아야 하더라고요.”

    “정말 어려웠겠다.”

    “그래도 밤새 고생한 보람은 있었어요. 에어리스에게 나머지 사용법도 알려 줘야죠.”

    건틀릿은 전부 다섯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불, 물, 번개, 땅, 바람.

    언제든지 해당 속성을 말하면 발동되었고, 만약 속성을 해제하려면 무기를 잠시 손에서 떼거나 건틀릿을 벗어도 가능했다.

    물론 말로 하는 명령어도 있었다.

    “클로즈.”

    에어리스가 유진하에게 배운 명령어를 말하자, 대검에 부여됐던 번개 속성이 차츰 사그라지더니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정말 편하네요. 쉽게 사용할 수 있어요.”

    에어리스는 많이 만족한 듯이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본 듯했다.

    “저런 무기를 좋아하는 아가씨는 처음이야.”

    이소민이 조용히 말하자 유진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취향은 확실하네요. 다음에는 상점에 또 데려가 봐야겠어요.”

    “무기 사주려고? 그런데 너 이제 돈 없잖아. 용암에다 네 카드 전부 기부하고 왔으니까.”

    “소민 누나를 만난 이후로 계속 적자만 보다가 지금은 아예 빈털터리가 되었죠.”

    유진하가 뼈 있는 말을 날리자 이소민은 움찔했다.

    “방법은 있어. 그래도 너 이 집은 남았잖아.”

    “…설마.”

    “그거 맞아. 내가 좋은 은행 알거든. 집 담보로 대출받아.”

    유진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치 입에서 영혼까지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대출 권유하는 영업 같아요, 소민 누나.”

    “다음 에어리어 가려면 카드는 있어야지. 그냥 갈 거야?”

    유진하의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을 보면서도, 이소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유진하, 너의 인생 모토가 뭐야.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최우선으로 하자. 이거잖아.”

    “…그렇죠.”

    “이 정도 집이면 대출 잘 받을 수 있어. 나도 받았잖아.”

    이소민의 말은 굉장히 달콤하면서도 거절하기 힘든 뉘앙스가 있었다.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기도 했다.

    “대출이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해. 봐라. 이번에도 건틀릿 근사한 거 하나 얻었잖아. 로또가 따로 있냐? 이게 로또지.”

    “…….”

    “어차피 우리 셋은 또 갈 거야. 설마 저번처럼 살인마나 용암 몬스터가 있겠어? 쉬운 데도 나오겠지. 실패해도 괜찮아. 그냥 나오면 되고.”

    이소민은 슬쩍 건틀릿을 낀 에어리스를 흘겨 봤다.

    “정 안 되면 저 중세 장갑. 팔면 되고.”

    “아, 이건 안 돼요.”

    에어리스는 정색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제가 갖고 싶어요. 너무 맘에 들어서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돈이 없으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는 아니야.”

    이소민은 자기 배를 만지면서 한숨을 쉬었다.

    “돈이 없으면 굶주리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소중한 물건도 하나하나 팔아야겠지.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다음 에어리어에서 우리가 꼭 좋은 아이템을 챙겨오면 되는 거잖아.”

    “맞아요. 다음에는 저도 꼭 물건을 잘 챙겨보겠어요.”

    에어리스는 건틀릿을 혹시라도 뺏길까 봐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던 유진하는 문득 이야기가 이상하게 마무리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샌가 전부 이소민의 뜻대로 대출까지 받은 몰빵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누나는 에어리어 공략보다는 세일즈를 더 잘할 거 같은데요.”

    “아니야. 나는 지금이 천직이라고 생각해.”

    이소민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지금 가자.”

    “아침도 안 먹었는데요.”

    “그냥 대출받은 돈으로 바깥에서 사 먹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소민이 유진하와 에어리스를 동시에 밀면서 안으로 들여보냈다.

    “자자, 빨리빨리 먼저 씻으시고. 시간이 없어.”

    “시간 충분해요. 여기는 에어리어가 아니라서요.”

    “에어리어가 언제 나올지 누가 알아? 오늘 나올지 내일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거 나오면 은행에서 대출 언제 받냐.”

    유진하는 옷방에, 에어리스는 세면실에 넣어 버린 후에 이소민이 손을 흔들었다.

    “빨리 씻고 나와.”

    이소민이 유유히 사라지자, 두 사람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일단 소민 언니 말대로 해야겠죠?”

    “딱히 틀린 말은 없었지. 은행 같이 가자. 다음에는 상점 가서 나는 카드 좀 사고 에어리스도 검을 좀 살펴보고.”

    “제 검에 문제가 있나요?”

    “체크만 하려는 거야. 검날이 약간 무뎌졌을 수도 있으니까 날카롭게 갈아놔야지.”

    “네, 저도 그 상점 좋아해요. 아저씨도 친절하시고요.”

    에어리스는 서둘러 세면실로 들어가서 세수하기 시작했다.

    유진하도 방에서 간단한 옷을 꺼내 입고 준비했다.

    * * *

    “오랜만에 셋이서 외출이네요.”

    에어리스가 거리를 걸으면서 밝은 표정을 지었다.

    화사한 햇살이 거리를 따사롭게 비추는데 미세 먼지 없는 하늘이었다.

    “평상시에는 흔한 하늘인데, 막상 에어리어에서 나올 때면 정말 반갑단 말이지.”

    유진하가 하늘을 바라보자 이소민이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그야 죽다 살아났으니까 그런 거지.”

    “…그렇긴 해요.”

    세 사람은 바로 은행에 들어갔다.

    “무기 들고 출입은 금지입니다.”

    에어리스는 입구에서 보안 요원에게 막혔다.

    등에 멘 대검이 문제였다.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출입이 거부당한 에어리스는 하는 수 없이 밖에 남았다.

    유진하와 이소민만 들어가서 서류 심사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마 이소민이 잘 아는 은행으로 데려온 것 같았는데 덕분에 빠르게 처리되었다.

    “금방 끝나네.”

    “그럼 오래 걸릴 줄 알았어? 내가 미리 전화를 해 뒀지. 다 인맥이야.”

    이소민이 은행 계단을 내려오면서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소민 누나는 역시 이쪽이 천직 같아요.”

    “난 끝까지 에어리어를 따라갈 거야. 자꾸 나 빼버리려고 수작 부리지 말아 줄래?”

    평소에는 둔한 것 같았는데 이럴 때는 눈치가 또 빨랐다.

    “에어리스, 오래 기다렸어?”

    “아뇨. 그냥 조금이었어요.”

    은행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에어리스가 일어섰다.

    “이제 대출도 받았어. 상점으로 갈까?”

    그때, 모두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을 거르고 나온 바람에 모두 배가 고팠던 상태였다.

    “일단 밥부터 먹자.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갈까?”

    “좋아요.”

    근처에 있던 뷔페식 패밀리 레스토랑에 셋이 들어갔다.

    대검은 위험해서 카운터에 맡겨 놨고, 모두 음식을 접시에 가득 담아서 와구와구 먹어 치웠다.

    “저기, 천천히 먹어도 되는데.”

    “배고프잖아. 너도 먹기나 해.”

    이소민과 에어리스는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하듯이 먹어댔다.

    왁자지껄하는 바람에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 * *

    “아, 배부르다.”

    이소민과 유진하는 볼록 나온 배를 끌어안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만족했으면 됐죠.”

    두 시간을 꽉 채워서 먹고 나온 세 사람이었다.

    디저트와 커피, 아이스크림까지 모두 빠짐없이 가득 먹은 후라 배가 불러서 힘들었다.

    “진하야, 나 너무 먹어서 졸려. 집에 갈까?”

    이소민은 뒤뚱거렸다.

    유진하는 정색하며 길을 재촉했다.

    “대출 빨리 받아서 상점 가자면서요.”

    “아, 그랬지. 그럼 가야겠네.”

    이소민이 힘겹게 한 걸음씩 걸어갔고, 에어리스도 따라서 움직였다.

    “같이 가요, 소민 언니.”

    뒤뚱거리면서 걷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유진하는 식은땀을 흘렸다.

    셋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진짜 목적이었던 상점이었다.

    “안녕하세요.”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상점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 유진하. 오랜만이다.”

    “잘 지내셨죠?”

    “물론이지. 진하 같은 단골손님들이 아직 많이 찾아서 말이다.”

    주인아저씨는 콧수염을 만지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호, 그때 같이 왔던 아가씨도 오랜만이네. 잘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에어리스가 고개를 숙여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힘이 무지하게 좋았던 아가씨였는데. 역시 나의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의 주인답다고나 할까.”

    주인아저씨가 호탕하게 웃었다.

    “딱 보니 검 상태 확인하려고 왔지요?”

    “네, 검은 자주 상태를 확인해야 하잖아요.”

    유진하의 대답에 주인아저씨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렇지. 관리를 안 하면 전투 중에 검이 휘어 버리거나 부러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검을 두 자루나 갖고 다니는 사람도 그래서 그런 거야.”

    대검을 눈으로 슥 바라보더니 상태를 바로 파악했다.

    “거칠게 썼나 보네. 생각보다 날이 좀 나갔어.”

    “아저씨, 잘 해줄 거죠?”

    “당연하지. 아직 AS 기간이니까 공짜로 해줄게.”

    주인아저씨는 팔을 걷어붙이더니 본격적으로 일할 준비를 했다.

    “다만 옆의 아가씨가 좀 도와줘야겠어. 그 무식하게 큰 검을 내가 휘두르면서 조절할 수는 없거든.”

    “네, 제가 잘 잡을게요.”

    “그럼 유진하하고 옆에 누님은 같이 다른 물건 좀 보고 있어. 금방 처리하고 올게.”

    옆방에서 수리하려고 주인아저씨와 에어리스가 같이 건너갔다.

    캉캉.

    망치 두드리는 소리와 기합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소민은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유진하를 바라봤다.

    “꽤 요란하구나.”

    “원래 기합이 넘치는 아저씨거든요. 둘의 호흡이 좋네요.”

    상점에는 구경할 물건이 많았다.

    당연히 에어리어 공략전에서 쓸 수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채찍도 괜찮지만 다른 무기도 더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건 소민 누나 돈으로 사고요.”

    “치사하게 선을 긋네. 알았어. 사달라고 안 해.”

    입을 삐죽 내민 이소민이 여러 물건을 살피는 동안, 유진하는 카드 종류가 있는 카탈로그 책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필요한 카드라…….”

    은행 대출은 받았지만, 카드가 워낙 비싼 까닭에 많이 살 수는 없었다.

    “꼭 필요한 걸로만… 몇 장만 사야겠다.”

    유진하는 미리 생각한 카드를 고르기 시작했다.

    딱 세 장이었다.

    첫 번째는 비상용 순간이동 카드. 두 번째는 화염 카드. 세 번째는 처음으로 사는 거였다.

    “이게 회심의 카드가 될 수도…….”

    새로운 세 번째 카드를 바라보던 유진하가 처음으로 밝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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