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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0화 (10/229)

10화 살의를 가진 자(1)

대검을 꺼낸 에어리스가 반대편에서 당당히 다가오는 상대를 쳐다봤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

정체는 무차별 살인마였다.

몬스터와 달리 인간을 상대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검을 쥔 에어리스의 양손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살인마는 양손에 든 검과 도끼에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절그럭. 절그럭.

천천히 거리를 좁히는 살인마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걸어오는 속도에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거침없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파앗!

가면 살인마는 높이 점프해서 에어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끼를 강하게 내리치는데 에어리스는 대검을 들어 간신히 방어했다.

‘빠르다.’

원래 사정거리는 대검이 더 긴 편이었다.

상대의 검과 도끼는 리치가 짧은 편이라 선제공격을 하면서 상대와 거리를 유지하는 전략이 가장 좋았다.

예상과 달랐던 것은 상대의 속도였다.

‘빨라.’

마치 바람처럼 빠른 움직임이었다.

후우욱!

예상보다 빠르게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왔는데,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첫 번째 도끼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을 터였다.

카아앙!

대검으로 방어했지만 도끼의 위력과 속도가 붙은 공격을 완벽하게 막지는 못했다.

조금 비틀거리며 에어리스가 뒷걸음을 쳤다.

“호오.”

오히려 놀란 쪽은 살인마였던 모양이었다.

“내 첫 타를 막아낸 녀석은 정말 오랜만인데?”

“확실히 위험했습니다만…….”

에어리스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집중력을 강하게 유지하도록 에어리스가 말했다.

이쪽이 공격할 차례였다.

“하압!”

에어리스가 대검을 가로로 크게 베었다.

지금까지 많은 몬스터와 에어리어의 주인을 향해 휘두른 검이었지만 이번 상대는 너무나 쉽게 피했다.

“너무 느린데?”

살짝 뒤로 백 스텝을 치면서 물러난 살인마가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렇게 무식하게 큰 검보다는 짧은 검이 더 빠르지 않을까.”

“충고는 고맙지만 이게 더 편해서요.”

에어리스가 대검을 연거푸 휘두르지만 전부 빗나갔다.

상대의 발걸음은 마치 사방으로 통통 튀는 고무공처럼 역동적이었다.

마치 줄넘기를 넘듯이 즐기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너무 빨라. 잡을 수가 없어.’

대검을 휘두르는 에어리스조차 상대의 빠른 움직임은 잡을 수가 없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하가 말했다.

“녀석은 부츠를 신고 있어.”

아까부터 채찍만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이소민이 움찔했다.

“부츠?”

“네, 평범한 부츠가 아니에요.”

살인마의 부츠는 여러 장식이 가미된 철제 신발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갑옷의 신발 같았다.

“사바톤. 중세 갑옷의 발 보호대로군.”

옆에 있던 M이 말했다.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금 더 말했다.

“평범한 신발은 아니죠. 아마 저것도 에어리어에서 얻은 걸 겁니다.”

이소민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신발에 관심을 보였다.

“저런 것도 있어? 대단하다. 나는 여기서 얻은 갑옷은 방어만 되는 줄 알았거든.”

“저건 레어 등급이에요. 갑옷만이 아니라 검 중에서도 저런 식으로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있죠. 물론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겠죠. 정말 귀하니까요.”

“그런 레어를 저 살인마 녀석이 가졌다고?”

“가졌다기보다는 빼앗았을 가능성이 더 클 거 같네요.”

유진하의 의견에 M도 동의했다.

“그렇게 보면 왜 녀석이 여기서 살육을 시작했는지 알 수 있겠군.”

“네, 원하는 물건이 여기 있는 겁니다.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이라도 자기가 갖고 싶은 아이템을 가졌으면 죽여서라도 가져가는 거죠.”

이소민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쳤다가 다시 의문이 생겼다.

“그럼 그 물건만 가져가든가. 누가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만 노리면 되잖아. 다른 사람들까지 죽일 이유는 없을 텐데.”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사이코패스는.”

유진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인마에게는 이유 같은 거는 의미 없어요. 살육 자체를 즐길 수도 있고. 목격자를 남기기 싫을 수도 있고. 의외로 많죠. 우리가 녀석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M도 동의했다.

“일단 녀석의 공격 스타일을 봤다. 저런 신발을 신고 습격을 하면 단숨에 여럿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대검을 휘두르는 에어리스를 바라보던 M이 선글라스를 만지면서 얘기했다.

“이 상태로 지켜볼 수는 없어. 저 여자 혼자라면 결국 당할 거다,”

“이쪽도 애초에 지켜볼 생각은 없었어요.”

유진하는 카드를 한 장 꺼냈다. 이소민이 옆에서 충고 한마디를 했다.

“오, 드디어 쓰는 거구나. 그런데 잘 던져야겠어. 잘못하면 녀석이 피할 수도 있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맞추려고 던지는 거 아니니까.”

아이스라고 외친 후에 유진하는 카드를 던졌다.

카드가 날아간 방향은 살인마 쪽이 아니었다.

땅바닥이었다.

빙결 능력이 발동하자 땅은 순식간에 얼음장으로 변해 렸다.

“아앗, 미끄러워.”

에어리스가 비틀비틀하다가 겨우 균형을 잡았다.

같은 상황은 살인마에게도 벌어졌다.

녀석에게는 고속의 부츠가 있었지만 얼음 바닥에서는 빠를수록 더 미끄러지기 쉬웠다.

“진하야, 제법인데.”

“칭찬은 나중에 해요. 지금은 녀석을 잡을 기회입니다.”

“알았다고.”

이소민은 아까부터 들고만 있던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은 정확히 살인마의 왼팔을 감았고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지금이다.”

M은 검을 꺼내더니 조심조심 살인마에게 걸어갔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빨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 버벅거리는 시간이 살인마에게는 대응할 여력을 줬다.

“이 정도로는…….”

살인마 녀석은 채찍이 묶인 왼팔 대신 반대쪽 오른팔을 사용했다.

오른손에 쥔 검을 버리더니 허리춤에서 곧바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유진하가 급하게 소리쳤다.

“소민 누나! 빨리 채찍을 버려요!”

“뭐?”

이소민이 미처 대응할 틈도 없었다.

살인마는 순간 이동을 외치면서 카드를 던져 버렸고, 채찍으로 연결된 이소민도 거기에 말려들었다.

순식간에 살인마는 물론 채찍으로 연결된 이소민까지 동시에 사라졌다.

“젠장.”

유진하는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M은 살짝 입술을 깨물더니 한숨과 함께 탄식했다.

“녀석은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하긴 죽인 사람들의 물건이 다 자기 차지였을 테니까. 카드 정도는 있었겠지.”

에어리스도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어떡하죠? 이소민 씨가 같이 가 버리다니.”

“붙잡힌 거나 다름없어. 최악의 상황이 되었군.”

유진하는 자책하듯이 토로했다.

살인마의 실력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결국 동료를 한 명 잃고 말았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찾겠어. 어차피 녀석은 아직 여기에 남아 있어. 소민 누나를 건드린다면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야.”

M은 차분했다.

“침착해라. 나는 정부 요원이야. 개인적인 복수는 허락하지 않아.”

“복수가 아니라 정당방위라고 해 주세요.”

“…….”

유진하의 말에 M은 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한다고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가자. 소민 누나를 찾으러.”

유진하와 에어리스, M은 다시 걸었다.

상황이 안 좋게 변했지만 걸어갈 길은 아직 멀었다.

용암 지대에서 벌어지는 승부는 조금씩 사이코패스 가면 살인마의 페이스로 넘어가고 있었다.

* * *

어딘지 모르는 장소였다.

이소민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채찍으로 살인마의 팔을 묶었는데 녀석과 함께 순간 이동까지 할 줄이야.

“정말 난 운이 없어.”

자조 섞인 한탄을 할 틈도 없었다.

살인마는 천천히 이소민 쪽으로 다가왔다.

“너희 네 명인가. 재밌는 녀석들이군. 오랜만에 내가 카드까지 써야 했어.”

“날 죽일 셈이냐?”

“그래도 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가면 속에 얼굴을 감춘 살인마.

녀석의 표정이 안 봐도 느껴졌다.

웃고 있을 거라는 것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것도 질리던 참이지. 오랜만에 재밌는 녀석들을 만났으니 전부 죽이고 가야겠어.”

살인마는 이소민에게 질문했다.

“너희 같은 녀석들은 동료가 중요하겠지? 반드시 구하러 오려고 할 거야.”

“이 자식…….”

이소민이 이를 악물었다.

“함정을 파겠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을 만들어야지. 반드시 녀석들이 걸려들겠지? 너희는 나방이잖아. 연약한 생물이지.”

“그냥 지금 죽이지 그래?”

“지금은 아니지만 그럴 거야. 미끼로 쓰고 버릴 거니까 그때까지는 얌전히 있어라.”

또 미끼인가?

이소민은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하의 말대로 어쩌면 자신은 미끼를 제일 잘하는 건지도 몰랐다.

살인마는 생각에 잠겼다.

‘아마 살인에 대한 생각이겠지.’

이소민은 살인마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녀석의 손아귀에 들어온 상황에서 발버둥은 의미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왔군.”

살인마가 고개를 돌려 방 입구를 바라봤다.

멀리서 보이는 20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

에이전트 요원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 게 너냐?”

요원들의 대표가 나왔다.

G는 이번 공략전의 지휘를 맡은 정부 요원이었다.

“사이코패스 살인마지?”

“과연 정부 요원들은 달라. 벌써 따라왔군.”

G가 한마디를 건넸다.

“나주신. 맞지?”

“…….”

살인마는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요원들은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다.

아니, 예상하고 있었다.

“요즘 계속 혼자만 살아 돌아오는 녀석이 있었으니 수상하잖아. 혹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에어리어 공간은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이곳에 벌어지는 일은 설령 살인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었다.

물론 정부 요원들은 그런 가능성도 항상 대비했다.

“제일 재수 없는 타입이지. 사이코패스인데 은밀한 연쇄살인마…….”

G는 장검을 하나 손에 들었다.

살인마를 향한 적의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데?”

살인마는 오히려 여유를 부리듯이 사바톤 부츠를 신은 발을 툭툭거렸다.

장검을 손에 쥔 G가 기세등등하게 나타났다.

“저항하면 죽여서 잡는다.”

“이쪽도 그럴 생각인데.”

G와 살인마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인질로 잡힌 이소민에게 있어 기적의 순간에 가까웠다.

금속 특유의 마찰음이 귓가에 진동했다.

차가운 소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아…….”

잠시 후.

전투가 끝나고 한 명만이 남았다.

이소민의 바람과는 달랐다.

피 묻은 검을 가진 자는 극한의 속도로 전장을 휩쓴 살인마였다.

“전부 당했어. 말도 안 돼.”

바닥에는 죽은 요원들이 모조리 널브러졌다.

살인마는 피가 묻은 얼굴을 놔둔 채로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의 양손에는 죽은 G의 머리가 안겨 있었다.

“죽음이란 침묵이지.”

조용한 살인.

쾌속의 살인마.

나주신은 그렇게 한참을 쉬었다.

공포에 떤 이소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이 피가 묻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은 녀석들은 셋. 기다리겠어.”

유진하 일행을 기다리며 살인마의 계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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