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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8화 (8/229)
  • 8화 불의 지역(2)

    용암 지대는 너무 더웠다.

    “어쩌면 체력이 가장 문제가 될 수도 있겠어.”

    유진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주변을 최대한 살폈다.

    집중력의 최대 적은 체력이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려져서 빈틈을 드러낸다.

    이소민처럼 더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더 약했다.

    “으아, 정말 더워.”

    허덕이는 이소민과 달리 에어리스는 편한 모습이었다.

    “에어리스는 안 더워요? 그러고 보니 땀이 한 방울도 안 흐르네.”

    “그런가요. 저는 괜찮네요.”

    에어리스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기 볼을 간질거렸다.

    “물속에서도 숨쉬기 문제없고 온도 변화에도 상관이 없고. 진짜 좋겠다.”

    모두 휴식을 취하려고 앉았다.

    물병에 담긴 물을 마시면서 주변 풍경을 돌아보니, 바로 옆에서 용암이 펄펄 끓고 있었다.

    “흐음, 용암 근처에서 물 마시기라…….”

    물을 마셔도 더위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유진하는 수첩에 지도를 그리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진하야. 에어리어의 주인을 없애거나 주인의 전리품을 찾아야 클리어되는 거잖아.”

    “그렇죠.”

    “만약 그걸 못 하고 빠져나가려면 탈출구를 찾는 거지?”

    “네, 비상 탈출구는 에어리어에 몇 개 정도 숨겨져 있어요. 벽 너머에 있기도 하고. 잘 찾아야 해요.”

    “그런데 아직 하나도 없나 봐. 나도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있는데요.”

    유진하가 정색했다.

    “있었다고?”

    “네. 오는 길에 두 개는 있었어요.”

    “그러냐. 언제 있었지?”

    “여기 생각보다 비밀 통로 많았어요. 오는 길에 벽하고 천장에 하나씩 봤죠. 거기에 비상 탈출구가 있을 거예요.”

    “…몰랐네.”

    이소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소민 누나. 집중력! 관찰력!”

    “…알았어. 그만 갈궈.”

    에어리스가 소민의 어깨를 살짝 잡아줬다.

    “괜찮아요. 저도 전혀 몰랐거든요.”

    “에어리스는 몰라도 괜찮지만 나는 그거라도 못 하면 안 되거든?”

    이소민이 한숨을 내쉬면서 물을 마셨다.

    “그런데 진하야. 우리 한 번도 몬스터는 안 만났다.”

    “그야 제가 피해서 왔으니까요. 몬스터가 있을 것 같으면 다른 길로 계속 돌아갔어요.”

    “그랬어? 정말 몰랐네.”

    “소민 누나. 집중력 좀.”

    “…노력할게.”

    적당히 쉰 일행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풍경은 다들 비슷했다.

    용암이 흐르는 방끼리 연결된 곳을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식이었고, 바위나 벽돌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저길 징검다리처럼 밟고 지나가면 충분해 보였다.

    이소민은 아까 유진하에게 핀잔을 받은 후로 눈을 크게 뜨면서 사방을 살폈다.

    “여기는 이상한 사람이 두 명인 것 같아. 한 명은 관찰력과 집중력이 최고이고. 다른 한 명은 무지하게 힘이 강한 데다가 물속에서 숨까지 쉴 수 있잖아. 나만 엄청 평범하네.”

    살짝 분한 감이 들었지만 의욕도 생겼다.

    어떻게든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잠깐.”

    유진하가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추게 했다.

    “왜 그래?”

    이소민이 목소리를 죽이면서 유진하의 뒤쪽에 다가왔다.

    “앞에 몬스터가 숨어 있어요.”

    “몬스터?”

    이소민이 살짝 앞으로 바라봤다.

    자기가 보기에는 다른 방과 비슷했다.

    용암이 바닥에 흐르는 장면도 그렇고, 바위와 돌로 이뤄진 바닥도 다른 곳과 같았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펴봤다.

    바위와 돌로 빈틈없이 메꿔져 있었다.

    “숨어 있어요.”

    “으응.”

    이소민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아먹는 시늉을 했다.

    “소민 누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아요.”

    “너 눈치 빠르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안 가? 몬스터는 최대한 피하잖아.”

    “여기는 다른 길이 없어요. 결정해야 해요. 비상구로 나가든지. 아니면 몬스터를 제압하고 계속 가든지.”

    에어리스는 눈만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계속 가겠다는 신호였다.

    “좋아. 모두 동의한 거예요.”

    유진하는 간단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이소민과 에어리스는 귀를 쫑긋 세워서 집중하며 들었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준비는 곧 끝났다.

    먼저 방에 들어가기로 한 사람은 이소민이었다.

    “누나는 재능이 있어요. 미끼 역할에.”

    한 대 때릴 뻔했지만, 이소민은 꾹 참고 자기 역할을 맡았다.

    언젠가는 제대로 재능을 찾아서 코를 납작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몬스터가 숨어 있는 방에 한 발짝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숨어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나와.”

    “…….”

    잠잠했다.

    이소민은 한숨을 쉬면서 귀찮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 있잖아. 너. 바닥인 척하는 돌멩이 녀석아.”

    정확히 집어서 지적하자 살짝 움찔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용암의 방에서 바닥에 길처럼 보였던 돌멩이와 바위는 사실 몬스터였다.

    “…….”

    몬스터가 바닥인 척 위장하다가 걸리자 부들부들 움직였다.

    쿵.

    정체를 들킨 이상 더는 위장이 필요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커다란 몸집을 가진 바윗덩어리가 서서히 정체를 드러냈다.

    용암 골렘 몬스터였다.

    방 중앙의 바윗길 전부가 사실은 이 몬스터의 육체였고, 덕분에 덩치가 거대했다.

    “크오오오오오.”

    녀석은 아마 자기 몸 위로 누군가 걸어오면 확 잡는 식으로 인간을 사냥했을 것이다.

    “역시 정확하네. 관찰력이 정말 대단하구나.”

    이소민은 채찍을 든 채로 거대한 용암 골렘을 바라봤다.

    용암 골렘은 한 발짝 앞으로 움직였다.

    쿵.

    진동이 느껴질 만큼 육중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래, 와 봐라. 이 바윗덩어리 녀석아!”

    살짝 도발하면서 약을 올렸다.

    용암 골렘은 커다란 바위 몸임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바닥의 용암에 바위 손을 넣더니 용암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걸 던지려고? 설마?”

    이소민은 살짝 움찔하더니 채찍을 손에 들었다.

    “크아아!”

    용암 골렘이 큰 소리를 내면서 손에 든 용암 덩어리를 이소민을 향해 던졌다.

    용암 덩어리가 빠르게 날아오는 동안, 이소민은 채찍으로 옆면에 튀어나온 나무를 휘릭 감았다.

    “엇차.”

    이소민은 채찍을 줄로 삼아서 시계추에 매달리듯이 좌우로 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덕분에 용암 덩어리는 피했다.

    “그 정도로는 안 되지. 날 너무 우습게 보면 안 돼. 돌덩어리 몬스터 녀석아.”

    이소민이 더 약을 올리자 용암 골렘은 화가 났는지 앞으로 걸어왔다.

    직접 잡을 생각으로 보였다.

    쿠구궁!

    그때, 흙가루가 후두두 떨어졌다.

    용암 골렘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천장을 보니 에어리스가 거기에 있었다.

    “됐어요.”

    에어리스가 소리쳤다.

    유진하의 작전이었다.

    에어리스는 비밀 통로를 통해 미리 천장으로 올라가서 잠복했다.

    이소민이 미끼 역할로 몬스터를 유인한다.

    상대가 적당한 지점까지 오면 천장을 무너뜨려서 선물을 떨어뜨리는 거였다.

    “하아아압!”

    에어리스는 천장 통로 위에서 대검을 밑으로 휘둘렀다.

    천장이 깨부숴지자 암석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

    무수한 암석이 용암 골렘 몬스터를 향해 낙하했다.

    천장 자체가 거의 쏟아지다시피 하는 바람에 몬스터는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깔려 버리고 말았다.

    “성공이다.”

    이소민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장 돌더미에 용암 골렘은 완전히 무너졌다.

    “대단해. 완벽했어.”

    기쁜 표정의 이소민이 천장의 에어리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이스 타이밍. 우리 호흡 정말 좋았어요.”

    에어리스도 답례의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에어리스가 표정이 돌변했다.

    “아직이에요.”

    바위와 암석에 깔렸던 용암 골렘의 손이 다시 위로 뻗었다.

    녀석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제가 갈게요.”

    에어리스가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를 거꾸로 들고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단숨에 정확히.

    대검으로 용암 골렘의 팔을 찍어 버렸다.

    “크아아아아악!”

    몬스터의 육중한 비명이 귀청을 뒤흔들 듯이 진동했다.

    에어리스의 대검은 계속 움직였다.

    콰과곽!

    용암 골렘은 여전히 돌덩이에 깔린 채로 허우적거렸고, 에어리스는 녀석의 저항을 막을 생각이었다.

    마무리 일격은 골렘의 머리로 향했다.

    강대했던 적은 이제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허억. 허억.”

    에어리스는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대검을 등 뒤에 맸다.

    “후아. 이런 바위 괴물. 진짜 쉽게 죽지도 않는구나.”

    이소민이 채찍을 손에 감으면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은 유진하였다.

    “잘 마무리되었어요. 이 정도 녀석이면 다른 에어리어였으면 주인과 비슷한 급이었을 거예요.”

    “하하, 중간 보스 정도는 된단 거네.”

    이소민이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사방을 돌아봤다.

    바위와 암석이 잔뜩 쌓인 용암 천지였다.

    “진하야, 정말 잘 봤더라. 어떻게 저게 몬스터인 줄 알았냐? 나는 봐도 모르겠던데.”

    “몬스터들에게는 특성이 있거든요.”

    유진하는 천천히 안으로 걸어왔다.

    “잘 숨긴 했는데 여기는 돌바닥이 너무 깨끗했어요. 그게 이상했죠.”

    “그래?”

    “지금까지 왔던 바위는 마모되거나 용암에 닳은 흔적이 꽤 많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유독 깔끔하잖아요. 아마 평소에는 원래 모습으로 있다가 우리가 오면 위장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죠.”

    “관찰과 경험이 중요한 거구나.”

    이소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용암 골렘인 거는 대충 눈치챘다고 해도. 공략은 일부러 이렇게 한 거야? 너 원래 카드만 들고 다니잖아. 빙결 카드는 없었어?”

    “상대가 화염 속성이니까 빙결 속성이 상성에서 우위이기는 해요. 문제는 장소였어요. 여기는 용암 천지라서 얼음으로 해 봤자 효과가 별로 없을 거예요.”

    유진하는 카드를 살짝 꺼냈다.

    “빙결 카드가 몇 장 있긴 한데. 아까 녀석을 상대로는 세 장을 써도 잠깐 멈추는 용도밖에 안 됐을 거예요. 얼음이 금방 녹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환기구 같은 비밀 통로를 통해 에어리스를 천장으로 보낸 거구나.”

    “네, 녀석의 약점은 느린 움직임이니까 유인만 잘하면 이게 더 낫다고 본 거죠.”

    에어리스는 유진하의 옆으로 다가왔다.

    “에어리스가 잘 해줬지만, 만약 제가 위에서 했다면 폭약 카드 정도는 썼어야 했을 거예요. 소민 누나하고 에어리스 덕분에 카드 한 장 안 쓰고 잘 마무리됐어요.”

    “정말 호흡이 좋았지.”

    이소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단점은 용암 골렘한테는 얻을 게 없다는 거겠네. 지나가는 몬스터도 검 한 자루는 주는데 얘는 무슨 돌멩이밖에 없냐.”

    투덜거리는 이소민의 옆에서 에어리스가 살짝 용암 골렘을 살폈다.

    뭔가를 발견한 듯이 등 뒤에서 대검을 꺼냈다.

    “여기 이건 어떨까요?”

    에어리스가 대검을 들어 가리킨 곳은 골렘의 몸통이었다.

    심장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살짝 빛이 감도는 원석 같았다.

    크기는 손 하나만 했다.

    “음. 크지는 않고. 괜찮은 원석 같은데?”

    “그럼 제가 꺼내 볼게요.”

    에어리스는 대검을 힘차게 들어 그대로 내리쳐서, 용암 골렘이 심장으로 삼고 있던 원석을 빼냈다.

    “이거는 어떨까요?”

    “나도 얻어 본 적은 없어서 용도를 모르겠네. 소민 누나가 챙길래?”

    “일단 가져가지 뭐. 빈손보다는 낫겠지.”

    이소민은 가져온 가방에 원석을 챙겼다.

    “제발 쓸모없는 돌멩이가 아니기를.”

    세 사람은 성공적인 용암 골렘 격퇴 후에 다시 길을 걸었다.

    이소민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면서 앞으로 나섰다.

    “이 정도면 우리가 꽤 앞선 거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지만 저런 괴물 상대로 정면에서 싸우기 힘들고 고전할 거 같은데.”

    유진하는 수첩으로 지도를 그려가면서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일단 최대한 가 봐야죠.”

    에어리스는 걸어가면서 손에 낀 반지를 살펴봤다.

    자신의 오른 손등에 있는 문양과 같은 것이 새겨진 반지는 자신도 볼 때마다 신기했다.

    ‘어쩌면 주인의 전리품을 찾으면 비슷한 물건을 더 찾을 수도 있을 거야.’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 작은 정보조차도 희망이 되었다.

    꼭 누구보다 먼저 주인의 전리품을 찾고 싶었다.

    조금 더 안쪽의 방으로 들어가니 처음으로 용암이 없는 방이 나타났다.

    덕분에 뜨거운 열기도 가신 듯했다.

    “이제 살 것 같네.”

    이소민이 온몸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았다.

    “하나라도 쉼터는 있어야지. 정말 사우나 같은 곳이었어.”

    땀에 찌든 수건을 양손으로 쭉 비틀어서 짠 후에 잠시 주저앉았다.

    “좀 쉴래? 아까 바윗덩어리 괴물이랑 싸우고 그냥 왔잖아.”

    유진하는 아직 쉴 생각은 없었다.

    주변이 안전한지 살피더니 뭔가 발견한 듯이 잠시 멈췄다.

    “진하야, 무슨 일 있어?”

    “아직은요. 에어리스랑 잠깐 쉬세요. 저는 앞에만 조금 더 보고 올게요.”

    “혼자 가면 위험하잖아.”

    “조금만 갔다고 돌아올 거예요.”

    “그러든가. 알아서 잘하겠지. 멀리는 가지 마.”

    혼자 걸어가는 유진하의 뒷모습이 보였다.

    “뭐가 있나? 쟤가 저럴 때가 제일 불안해.”

    에어리스는 살짝 웃었다.

    “큰 문제는 아니겠죠. 우리를 두고 갈 리는 없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 비밀 통로에 숨어서 에어리스와 이소민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알아차릴 즈음에는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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