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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7화 (7/229)
  • 7화 불의 지역(1)

    의문의 침입자가 집에 있었다.

    멀리 거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유진하는 그쪽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왜 여기 있는 거야?”

    거실에는 운동복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서, 아이스크림 통을 끌어안고 숟가락으로 퍼먹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소민 누나.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유진하가 소리치자 아이스크림을 먹던 이소민이 고개를 돌렸다.

    “그냥 문 열고 들어왔는데.”

    “열쇠는? 내가 준 적이 없잖아.”

    옆에 있던 에어리스가 눈치를 보면서 살짝 손을 들었다.

    “제가 드렸어요.”

    “에어리스가? 왜?”

    “아, 이소민 씨가 부탁해서요. 자주 올 텐데 매번 벨 누르기 귀찮다고 해서…….”

    유진하는 한숨을 쉬면서 이소민에게 나가갔다.

    “소민 누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지? 열쇠는 주고.”

    “아, 나 여기서 잠깐 신세 지면 안 될까? 지금 돈이 없거든.”

    “그건 누나가 알아서 해야지.”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나 때문이라고?”

    “그래, 원래 공략전에 들어가서 아이템 가져오려고 했어. 가져가서 상점에 팔려고 했는데 네가 다 버리라고 해서 그랬잖아.”

    유진하는 잠시 멈칫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소민이 가져왔던 방패.

    모두 버리라고 하긴 했다.

    창은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하다 던져 버렸다.

    “맞지? 그거 내 전 재산인데. 너 때문에 다 버리고 왔잖아.”

    “하아.”

    한숨을 내쉬는 유진하에게 이소민이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음에 크게 한 번 먹으면 되잖아. 그럼 네 집에서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갈 거야. 그때까지만 신세 지자. 너도 책임이 있으니까.”

    에어리스는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옆에 조용했다.

    유진하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대신에 돈 벌면 꼭 나가야 해요.”

    “나도 자취가 좋다고. 조금만 신세 질게.”

    이소민은 아이스크림 통을 안은 채로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혼자 살던 집이 어느새 두 사람이 더 늘어서 북적북적했다.

    “에어리스, 같이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방금 레스토랑에서 먹고 와서 아직 배불러요.”

    “오호라, 데이트였구나.”

    이소민이 스윽 눈빛을 날카롭게 보내자 유진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거든요.”

    “일단 친구 사이라고 알게. 내가 눈치는 빠르니까 방해는 안 할게.”

    “이소민 누나는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마저 먹어요.”

    평소보다 바쁜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활발해진 환경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조금이 아니라 꽤 시끌벅적한 집이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

    * * *

    일주일 뒤.

    차원문이 다시 나타났다는 뉴스 속보가 나왔다.

    “뉴스에 나왔어.”

    이소민이 급하게 달려와서 외쳤다.

    가장 먼저 반응한 쪽은 부엌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에어리스였다.

    “유진하는 어디 있어요?”

    “일어날 시간일 거예요.”

    “왜 안 내려오지? 내가 가봐야겠다.”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 이 층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문을 보니 평소보다 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유진하, 들어가도 돼?”

    똑똑.

    문을 두드렸더니 안에서 대답이 들렸다.

    “들어와요.”

    “빨리 일어나지 않고 뭐 해? 에어리어가 다시 나타났잖아.”

    유진하는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뉴스 속보를 보고 있었다.

    “뭐 하니? 빨리 가야지.”

    “이번에는 안 가려고요.”

    “뭐? 무슨 소리야.”

    “이거 보세요.”

    유진하는 화면을 가리켰다.

    이번에 등장한 에어리어의 모습이었는데 평소보다 굉장히 컸다.

    “에어리어는 크기에 따라 난이도 달라져요. 이거는 타이푼 급이에요.”

    “타이푼 급?”

    “크기에 따라 소형, 중형, 대형으로 나뉘는데 이거는 대형급이죠. 타이푼이라고 따로 불러요.”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하는 방송 화면 속에 보이는 거대한 차원문을 의식했다.

    “이런 데는 위험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피하는 편이 낫죠.”

    “그래?”

    이소민은 팔짱을 낀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에어리스는 갈 생각이던데.”

    “네?”

    유진하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제가 한 얘기 못 들었어요? 굉장히 위험하다고요.”

    “아는데. 에어리스는 상황이 좀 다르잖아.”

    이소민이 이어서 말했다.

    “애초에 에어리어 안에서 네가 꺼낸 존재이고. 정체고 기억도 몰라. 그래서 에어리어에서 기억을 되찾을 만한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고.”

    “그렇긴 하죠.”

    “아마 네가 안 간다고 해도 혼자 갈 거야.”

    “흐음. 그건 위험한데.”

    “에어리스 혼자 가면 생존율이 꽤 떨어질걸? 너도 알다시피 아무리 강하다 해도 혼자서는 만만치 않으니까.”

    유진하는 잠시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갈 거지?”

    “누나는요?”

    “난 너만 가면 콜.”

    “알았어요.”

    결론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타이푼 급이라 했지? 너 들어간 본 적은 있던 거야?”

    “네, 한 번 정도.”

    “어땠는데?”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정도요.”

    “이해가 금방 되네.”

    이소민은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준비를 잘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그래도 보상은 크겠지.”

    “네, 레어도가 높은 물건이 많죠. 과연 얼마나 가지고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층에서 에어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 식사 준비됐어요. 오늘은 간단하게 먹고 나가요.”

    유진하와 이소민, 그리고 에어리스까지 셋은 가볍게 토스트를 먹은 후에 현장에 나갈 준비를 했다.

    “다 됐으면 가자.”

    셋이 드디어 움직였다.

    타이푼 급의 대형 에어리어는 도시 중심부에 나타났다.

    현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취재하는 기자들과 구경하는 사람. 차단하는 경찰들까지.

    서로 뒤엉켜서 복잡했다.

    질서가 잘 유지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너희들도 온 건가?”

    멀리서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다가왔다.

    “에이전트 요원.”

    유진하가 나와서 인사했다.

    “몸은 괜찮았어요?”

    “그럭저럭.”

    에이전트 요원은 살짝 자신의 상체를 만졌다.

    저번에 미노타우로스에게 당한 부상 부위였다.

    “일주일 만에 회복될 부상은 아니었는데요?”

    “돈을 좀 썼지. 카드.”

    카드 중에는 신체적 부상을 회복할 수 있는 종류도 있었다.

    물론 값은 굉장히 비싼 편이었다.

    “전에 얻었던 단 한 장이었다. 아끼다가 오늘 에어리어가 새로 나타났다고 해서 썼지.”

    “다른 요원들도 많을 텐데. 굳이 무리할 이유가 있나요?”

    “아아, 지금 내 상황이 쉴 때가 아니라서…….”

    그때, 멀리서 다른 에이전트 요원이 다가왔다.

    “M이로군.”

    새로운 에이전트 요원은 유진하와 M이라 불린 요원 사이로 끼어들었다.

    M은 새로운 요원을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G인가.”

    “M. 자네가 저번 작전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을 잃었잖아. 그래서 이번에 내가 파견 나왔지.”

    G의 말에 선글라스를 낀 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그 책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서 자네는 징계 상태고. 여기 참가해서 지휘할 권한도 없지.”

    M은 대답하지 않았다.

    G는 M의 어깨를 꾹 잡아 쥐었다.

    “무려 이십 명이나 잃었으면 최소한 반성이라도 해야지. 책임자로서 가질 양심 아니겠나.”

    G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떠났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소민이 뚱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저 재수 없는 사람은 누구죠?”

    “G이다. 나는 M이지. 에이전트 요원의 코드명이야.”

    M은 의외로 침착했다.

    G의 도발적인 멘트에도 그다지 자극받지 않은 듯했다.

    “녀석의 말대로 나는 징계를 받았다. 여기서 지휘를 할 수 없지. 대신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기로 했다.”

    유진하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랑 같이 갈래요?”

    “아니. 나는 혼자가 편해. 지금은 저번에 너희가 도와줬던 것에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거야.”

    M은 몸을 돌렸다.

    “만약 필요하면 그때 협력하기로 하자. 저번 도움은 반드시 갚아 주도록 하지.”

    천천히 M이 걸어갔다.

    에어리스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저 사람 나름의 방식 같아요. 고맙다는 인사도 그렇고요.”

    “뭔가 의지가 보인다고 할까. 명예 회복을 하려는 생각 같기도 하고.”

    유진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상황을 살폈다.

    “대략 오십 명인가? 역시 참가하는 규모도 많아요.”

    “저는 준비됐어요.”

    에어리스는 등 뒤의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를 살짝 손에 잡았다.

    대검을 잡을 때마다 평소의 발랄한 미소와는 다른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에어리스의 실력은 항상 기대하고 있어. 문제는 저쪽이지.”

    막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으로 가져오는 이소민이 보였다.

    “너희들 커피 마실래?”

    “소민 누나는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네요.”

    “마시면 왠지 기분이 침착해지고 차분해진다고 할까. 피곤도 풀리고. 직장인들도 아침에 많이 마시잖아. 집중력도 생기는 느낌이고.”

    “집중력 때문이라면 누나는 커피 10리터를 원샷으로 쭉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진하야. 집중력 있게 한 대 맞아 볼래?”

    “아뇨. 커피는 잘 마실게요.”

    셋은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다.

    빨대 소리만 들려왔다.

    “소민 누나. 이번에는 뭐 준비했어요? 마당에서 계속 뭘 하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이거야.”

    이소민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채찍이었다.

    “채찍?”

    “열심히 훈련해 봤어. 에어리스가 많이 도와줬지.”

    이소민의 옆에 있던 에어리스가 웃으면서 손을 살짝 흔들었다.

    “둘이 의외로 쿵짝이 잘 어울리나 보네.”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유진하가 이소민에게 물었다.

    “누나 돈 없잖아요.”

    “대출도 받고. 상점 주인이 잔금은 나중에 갚아도 된다고 했어. 에어리스가 대검을 사간 후로 맘에 들었나 봐. 같이 가서 얘기해 줬더니 외상도 해 주네. 이번에 잘 챙겨서 한 방에 갚아야지.”

    “그 아저씨… 나는 외상 국물도 안 해줬는데.”

    유진하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에어리스는 고개를 돌려 모인 사람들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특이한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타이푼 급 에어리어는 상위 공략자도 참가하는 규모거든.”

    유진하가 수첩을 꺼내서 가만히 필기했다. 이소민은 살짝 곁눈질로 스윽 그 모습을 바라봤다.

    “너 그거 무슨 만능 수첩이니? 맨날 꺼내더라.”

    “목숨은 하나뿐이라고 했잖아요. 기록과 조사는 필수예요.”

    수첩에는 인명사전 같은 정보도 있었다.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까 에이전트 G와 M도 그렇고. 정부 쪽 사람은 열 명 정도. 회사 소속 용병팀도 7명이 있네요. 나머지는 우리처럼 개인 참가자고요.”

    “흐음. 이번에는 프로들이 꽤 왔다는 소리군.”

    이소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벌떡 일어섰다.

    “경쟁 치열하겠는데. 우리가 주인의 전리품을 차지하는 거야.”

    “소민 누나. 목표는 항상 생존이 우선이라고요.”

    유진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시간이 지나자 요원 G가 전원을 소집했다.

    “각자 소속이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회사 소속 용병은 알아서 할 테고. 프리랜서 중에 저와 함께하고 싶으면 제 명령을 따른다는 조건으로 오시면 됩니다.”

    경고와 주의 사항까지 알려 준 다음, 입장 시간이 되었다.

    “시작합시다.”

    소용돌이처럼 휘어지는 에어리어의 입구는 조용했다.

    모두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마치 검은 죽음의 유혹과 같은 길이었다.

    많은 부를 얻을 수 있지만,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전장과도 같았다.

    유진하는 항상 같은 마음이었다.

    ‘이번에도 무사히 나올 수 있기를.’

    모두 저마다의 긴장감을 가지고 돌입했다.

    * * *

    “덥다.”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나온 소리였다.

    “무슨 끓는 물 속에 들어온 것 같네. 공기까지 뜨거워.”

    이소민이 너무 더운지 손부채를 마구 부쳤다.

    유진하는 냄새를 맡더니 불쾌한 표정으로 눈을 찡그렸다.

    “유황 냄새. 좋지 않네요. 여기 용암 지대예요.”

    “용암?”

    이소민은 깜짝 놀랐다.

    “타이푼 급의 대형 에어리어는 환경부터 불리한 경우가 많아요. 이건 그중에서도 제일 안 좋은 케이스네요.”

    “그런 것 같네. 정말 더워. 아이스크림 생각난다.”

    “아니, 더운 거 말고요. 여기는 적도 전부 화염 계열일 거예요.”

    유진하는 주변을 돌아봤다.

    거대한 건축물 내부에 들어온 것 같았다.

    통로로 연결된 길을 통해서 방과 방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기본 몬스터도 어려운데 속성이 있는 녀석이면 더 까다롭죠. 길까지 복잡하면 미궁인데 그건 확인해 봐야겠어요.”

    “그 소리였어? 그런데 난 더운 게 더 싫다.”

    이소민과 유진하가 아웅다웅하는 동안, 에어리스는 주변을 살펴봤다.

    “에어리스, 왜 그래?”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요.”

    에어리스는 위화감을 느낀 듯이 두리번거렸다.

    “소민 누나처럼 너무 더워서 그런 거 아냐?”

    “모르겠어요. 그냥 조금 이질적인 기분이 들어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에어리스의 예민한 반응이 신경 쓰였지만, 유진하는 일단 클리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언제나 첫 번째 목표는 생존이야.”

    형의 소식에 대한 실마리.

    에어리스의 기억을 되찾는 일.

    생존보다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오십 명의 참가자들도 저마다 길을 가기 시작했다.

    정부 에이전트 G와 요원들.

    용병회사 소속.

    프리랜서끼리 이룬 팀.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M까지 전부 떠났다.

    모두의 목표는 에어리어의 주인을 퇴치하고 주인의 전리품을 챙기는 거였다.

    같이 들어왔을 뿐이지 서로 경쟁자였다.

    “우리도 가요.”

    유진하가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면서 말했다.

    이소민과 에어리스도 뒤를 따랐다.

    순탄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행은 탐험에 나섰으나, 이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곧 서로 죽고 죽이는 전투가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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