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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6화 (6/229)

6화 공략의 ABC(3)

호수는 물이 대부분 지하로 빠져서 빈 그릇처럼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는 호숫가라기보다는 텅 빈 땅이 더 어울리는 이름이었고, 심한 가뭄이 들어 완전히 말라 버린 호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에어리스가 나오지를 않는데?”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이소민이 걱정스러운 듯이 주변을 서성거렸다.

나오려면 진작에 나왔어야 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유진하는 잠시 팔짱을 끼면서 주변을 응시했다.

“푸아!”

마침내 에어리스가 빠져나왔다.

“에어리스!”

이소민과 유진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갔다.

“왜 그러시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에어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소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니. 지금 저 물속에 들어간 지 10분이 넘었다고요.”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오래 기다리셔서 그런가요. 죄송해요. 저도 빨리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소민이 황당하다는 듯이 이어서 말했다.

“10분이나 들어가면 대부분 숨 막혀 죽어요.”

“아, 그런가요?”

에어리스는 볼을 살짝 간질거리면서 눈만 방긋방긋 떴다.

“인간은 보통 1분도 참기 어려워. 에어리스는 괜찮았어?”

“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왜 힘들다고 하는지.”

에어리스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됐어. 무사하면 됐지요, 뭐.”

이소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유진하는 에어리스의 손을 잡아주며 일으켰다.

“이제 가자.”

“고마워요. 그리고…….”

에어리스는 천천히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마지막에 도와준 것도요.”

창을 던져서 미노타우로스를 끝장낸 일을 얘기했다.

유진하는 살짝 미소만 지었다.

“무사했으면 됐어.”

서로가 힘을 합쳐서 해냈다.

형이 쓴 던전을 활용하는 방법에서 믿음직한 동료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됐다.

-훌륭한 동료는 목숨을 맡길 수도 있다.

유진하는 그 표현의 의미를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어.’

반드시 동료가 필요했다.

“혹시 다른 옷은 있나요?”

에어리스는 물에 젖어서 옷이 착 달라붙었다.

옆에서 보기에 불편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없어. 금방 밖에 나갈 테니까 거기서 갈아입으면 돼.”

“그럴게요.”

에어리스는 대검을 살짝 휘둘러서 물기를 털어냈다.

붕붕.

힘찬 소리가 들렸다.

이소민은 대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두르는 에어리스를 보면서 기가 질려 버렸다.

“아니, 무슨 저렇게 무거운 거를 장난감처럼 휘두르고. 물속에서도 숨이 안 막히냐.”

“인간은 아니잖아요.”

유진하는 처음 궤짝에서 에어리스를 꺼내던 장면을 생각했다.

신기한 빛과 함께 궤짝에 잠들어 있던 여인.

평범하지 않은 만남이었고, 앞으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조금씩 기대가 됐다.

아직 형에 대한 실마리를 못 찾아냈지만, 에어리스와의 이상한 만남으로 인해 약간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어쩌면…….

형도 궤짝 속에서 생존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이제 모두 나가자.”

에어리어의 주인을 쓰러트린 후라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차원문이 생겼다.

콰아아아.

출구가 검은 회오리처럼 요동치는 동안 에어리어도 조금씩 붕괴할 징조가 나오고 있었다,

“공간이 무너지고 있어요. 늦으면 안 돼.”

유진하는 부상이 있는 에이전트 요원을 부축하려고 했다.

“됐다.”

요원은 유진하의 손을 뿌리쳤다.

도움을 극구 거절하더니 비틀거리면서 기어코 혼자 일어섰다.

“알아서 갈 수 있어. 괜찮다.”

“갈비뼈 나갔잖아요. 걷기 힘들 거예요. 통증이 심할 텐데.”

“지금 아픈 거는 몸이 아니야.”

에이전트 요원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도움은 끝까지 거절했다.

이소민이 유진하의 어깨를 잡고 말렸다.

“놔둬. 알아서 하라고 그러자.”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어리스와 이소민, 그리고 유진하까지 모두 탈출구 차원문에 빨려 들어갔다.

에어리어를 클리어하고 귀환했다.

* * *

다시 돌아온 도시의 풍경은 정말 맑았다.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 지저귀는 참새 소리만 들릴 만큼 평온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유진하 일행이 출구를 빠져나왔다.

“나왔더니 당 떨어져. 커피라도 마시고 싶다.”

이소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커피숍 어딨지? 어디에 있지?”

구부정하게 걷는 모습이 마치 좀비처럼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유진하가 구해 준 에이전트 요원은 응급처치를 받은 후에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떠나면서도 별다른 말을 남기지는 않았다.

“저 녀석, 고맙다는 말 정도는 우리한테 해야지. 우리가 목숨까지 걸었는데.”

이소민이 투덜거리면서 계속 커피숍을 찾아다녔다.

에어리스는 조용히 유진하에게 다가왔다.

“에어리스, 무슨 일 있어?”

“그때 미노타우로스를 제압하고 주인의 전리품도 가져왔거든요.”

“그랬구나.”

이제야 이해가 갔다.

물속에서 오래 안 나왔던 이유가 전리품을 가져오느라 늦었던 거였다.

“여기 있어요.”

에어리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천천히 펼친 손에는 반지 하나가 보였다.

“반지?”

“네, 이거예요.”

반지를 본 유진하는 잠시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에어리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별로인 건가요?”

“상점에다 팔 때 기본인 아이템이 무기나 방어구이고 가장 높은 가격이 나오는 거는 카드야. 반지 같은 장신구는 가치가 많이 떨어져. 우리 세계에도 금이나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귀중한 보석이 많이 있어서 그래.”

유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내가 쓴 카드만 해도 파이어 투 파이어. 화염 카드에다 A급 카드인 게이트웨이 통로 카드. 이거면 계산해도 웬만한 아파트 가격은 넘는데.”

파산 수준이었다.

유진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반지를 대충 만지작거렸다.

“저번에는 빌딩 가격 손해. 이번에는 아파트 가격 손해. 이거 적자만 계속 뜨네.”

“죄송해요. 좋은 물건인 줄 알았는데요.”

“아니야. 에어리스는 최선을 다했어. 그냥 운이 좀 없던 거지.”

에어리스가 의기소침한 듯 어깨를 푹 숙이자 유진하가 달래줬다.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반지를 만지다가 문득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이 반지. 특이한 문양이 있네.”

반지의 문양은 방패와 검이 합쳐진 모습이었다.

분명 본 적이 있는 거였다.

유진하는 에어리스의 오른손을 잡았다.

“어머?”

“잠깐만.”

에어리스는 얼굴이 벌게졌다.

“다 쳐다봐요.”

순간적으로 온 힘을 다해 유진하를 밀어 버렸다.

마치 곰이 밀어 버린 듯한 충격이 유진하에게 전해졌다.

그 힘에 의해서 데굴데굴 저 멀리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아야야야. 에어리스, 무슨 짓이야.”

“죄, 죄송해요. 순간적으로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유진하는 엉거주춤 자리에 일어섰다.

“그냥 오른손을 보려던 거라고. 이 반지. 에어리스의 손등의 문양과 같은 거잖아.”

“아!”

에어리스는 오른손을 확인했다.

손등의 문양은 반지의 것과 정확하게 같았다.

“정말 똑같아요. 이게 뭘까요?”

“그걸 나한테 물어봐야 당연히 모르지. 에어리스가 알지 않을까.”

에어리스는 눈동자만 깜빡거렸다.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 이 반지. 제가 가지면 안 될까요?”

“에어리스가?”

“왠지 마음에 들어요. 어쩐지 오래전부터 항상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그래, 뭐. 어차피 반지는 값도 안 나오는데.”

유진하는 반지를 에어리스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에어리스는 아주 밝게 웃었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밝고 행복한 표정 같았다.

“다행이네. 그렇게 좋으면.”

유진하는 가볍게 웃었다.

“너희들 커피 먹을래? 내가 살게.”

골목 안까지 들어가서 결국 커피숍을 찾은 이소민이 멀리서 외쳤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잘 먹을게요.”

세 사람은 잠시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에어리스는 새로 얻은 반지를 보면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날이 점점 저물었고 평범하지 않았던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 * *

한동안은 특별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침 햇빛이 내려오는 낮에 유진하는 집 마당에 있는 마루에 누워 있었다.

“심심하다.”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교차하는 치열한 에어리어 속과 달리 세상은 너무 평온했다.

따분할 정도로 지겨웠다.

“간식 드실래요?”

에어리스가 빨래를 걷어오면서 말했다.

“별로. 난 배 안 고프니까 에어리스 혼자 먹어도 괜찮아.”

유진하는 누운 상태에서 몸을 옆으로 빙글 돌렸다.

만사 귀찮은 듯이 눈을 감았다.

옆에서 보면 마치 애벌레 꾸물거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흐음. 별로 할 일이 없으니 게을러지는 것 같아요.”

“휴식은 원래 지겨워.”

에어리스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서 빨대를 꽂아 마셨다.

쪼르륵.

“요구르트 드실래요?”

“아니.”

유진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청소할까 하는데 같이 할래요?”

“귀찮아. 청소 같은 거 안 해도 돼. 먼지 좀 있으면 어때?”

“티비를 보니 깨끗한 환경도 중요하대요. 너무 불결하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하고요.”

“…….”

유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어리스가 자세히 살펴보니 살짝 잠이 든 모습 같았다.

“이렇게 움직이기 싫어하는데 에어리어 안에서는 참 부지런하다니까.”

전에 같이 들어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에어리어 안에서의 유진하는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폈고, 바닥을 만지거나 벽을 두들겼다.

함정에 걸리지 않으려고 집착했다.

지금 모든 일이 귀찮다며 낮잠을 자는 모습은 전혀 연상되지 않았다.

“흐음. 집중할 때와 아닐 때가 확실히 다르구나.”

에어리스는 유진하의 잠이 깨지 않도록 천천히 나왔다.

좋아하는 티비를 켜기도 그랬다.

“연습이나 할까?”

창고에 넣어둔 대검을 살짝 가져왔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버스터 슬레이어.”

대검을 판 상점 주인이 꼭 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검날에 이름을 새길 수 있었는데 버스터 슬레이어라는 명칭을 새겨주면 값을 확 깎아 준다고 했다.

에어리스에게 이 검을 사주려던 유진하는 바로 받아들였다.

“콜. 그렇게 해요.”

할인 가격이 붙은 대검의 이름은 결국 상점 주인의 뜻대로 지어졌다.

왜 그런 일에 집착하는지 몰라서 에어리스가 유진하에게 귓속말로 물어봤다.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이해하지 마.”

어쨌든 대검은 에어리스의 마음에 쏙 들었다.

무식하게 커다란 검이지만 딱 손에 잡히는 감각이 좋았다.

“왠지 검도 익숙한 느낌이야.”

에어리스는 검을 휘두르면서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 이런 식의 검술 연습을 하지 않았을까?

이소민과 대련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말했던 시오류라는 검술.

과연 시오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검을 휘두르는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아직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앞으로도 에어리어는 계속 가게 될 거야. 거기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어.”

반지에 새겨진 문양은 에어리스의 손등에 있는 것과 같았다.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비밀이 풀릴 거라 믿었다.

“날씨가 좋구나.”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 에어리스는 대검을 하늘로 높이 들며 연습을 마무리했다.

“덥네.”

에어리스가 수건으로 이마를 닦는 동안 마루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흐아암. 잘 잤다.”

유진하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섰다.

“이제 일어나셨어요?”

“으응. 할 일이 없으면 이상하게 잠만 자게 되네.”

유진하가 입이 늘어지게 하품했다.

“그러고 보니, 에어리스는 별로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네?”

“편의점이나 마트는 가 봤고. 동네 공원도 가봤어요. 다른 데는 딱히 간 적이 없네요.”

“흐음. 티비를 많이 봤잖아. 혹시 가고 싶은데 있어? 지금 시간 남는데 같이 가자.”

“정말요?”

에어리스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가고 싶은 데 정말 많아요. 티비에서 봤던 모든 곳이요.”

“그래? 티비에서 주로 뭘 봤는데.”

“드라마요.”

유진하는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혹시 가고 싶은 곳이 많으면 종이에 적어도 되는데.”

“그게 좋겠어요.”

에어리스는 단숨에 들어가더니 안에서 북적북적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에 종이 한 장을 가져와서 유진하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많아?”

목록이 무려 백 개는 되어 보였다.

“이거 오늘은 다 못 가겠는데?”

“생각나는 대로 다 적기만 한 거예요. 하나씩 갈 수 있을 만큼만 가도 좋아요.”

“그래, 뭐. 쉬운 데도 있네.”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장소는 영화관이었다.

“영화나 보러 갈까?”

“좋아요. 저는 준비됐어요.”

“그래. 가자.”

유진하와 에어리스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에 나왔다.

“날씨는 좋네. 에어리스는 보고 싶은 영화 있어?”

“으음. 아무거나 다 좋아요.”

“그래? 그럼 내가 보고 싶은 거 봐야지.”

유진하는 영화관에서 티켓을 끊었다.

“슈퍼 히어로 랜딩 영화 두 장이요.”

팝콘과 콜라를 가지고 극장 좌석으로 들어갔다.

“무슨 영화인가요?”

“그냥 싸우는 거.”

영화가 시작됐다.

두 시간이 쉴 새 없이 흘러가자 팝콘과 콜라는 빈 상태가 되었다.

“재밌었다.”

유진하는 극장에 나오면서 말했다.

“에어리스는 어땠어? 재밌었어?”

“네, 특히 싸우는 액션 모습이 기억에 남았어요.”

에어리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다음에 꼭 몬스터한테 저렇게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런 멋진 격투 장면은 많은 참고가 됐어요.”

“아, 그래…….”

유진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뭔가 이상한 소감평이긴 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었다.

“다음에는 뭐 할까나? 배고프지. 레스토랑도 가고 싶다고 적었던데 거기로 갈까?”

“네, 좋아요.”

에어리스는 밝게 웃었다.

슬슬 저녁이 되어 가는 시간이라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스테이크 두 개요.”

주문을 마치고 잠시 테이블에서 기다렸다.

에어리스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뭐 찾아?”

“그게 티비에서 볼 때는 붉은 주스 같은 거를 따르던데요. 컵에요.”

“와인 말하는 거구나.”

유진하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런데 술은 괜찮아? 못 마시는데 괜히 마셨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어.”

“괜찮아요. 저는 먹는 걸로 탈이 나지는 않을 거예요.”

에어리스의 포즈는 당당했다.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상체를 쭉 내밀었다. 충분히 자신 있다는 소리였다.

“알았어. 대신 별로인 거 같으면 마시지 마.”

“알겠어요.”

주문을 받은 웨이터는 와인을 가져와서 천천히 따랐다.

유진하가 잔을 들고 마시려는데 에어리스가 말렸다.

“드라마에서는 서로 짠. 컵을 맞대면서 하더라고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뭐.”

서로 잔을 건배했다.

유진하는 와인을 음미하면서 마시다가 에어리스 쪽을 몰래 바라봤다.

생각보다는 잘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드라마에서 봤던 건데요. 영화관 가고 레스토랑 가고. 이거 데이트 코스라고 하던데요. 데이트 코스가 뭔가요?”

풉!

유진하는 실수로 와인을 뿜어 버렸다.

“아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깜짝이야.”

에어리스는 멀뚱멀뚱 아무것도 모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여기를 쳐다보는 바람에 유진하는 일단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너무 시끄러워서 주변에 피해를 준 거였다.

“나중에 말해 줄게. 그냥 조용히 먹자. 지금은!”

“잘 먹을게요.”

“하아…….”

유진하는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어.”

유진하는 술에 취한 에어리스를 등에 업은 채로 길을 걸었다.

“그러니까 못 마실 것 같으면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흐에에에엥.”

에어리스는 술에 만취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술주정이었다.

“하아… 이럴 거 같았어.”

유진하는 땀에 흠뻑 젖어 에어리스를 등에 업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불을 다 끄고 나왔는데 집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누가 있나?”

조심스레 열쇠로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천천히 마당을 거쳐 마루로 올라갔더니 거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의문의 불청객. 누군가 집 안에 숨어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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