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4화 (4/229)
  • 4화 공략의 ABC(1)

    이소민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유진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 턱 하니 막혀 버렸다.

    분명 에어리스와의 검 대결에서 지면 파트너를 시키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누나는 저번에 에어리스한테 졌잖아요. 나랑 파트너 안 하기로 했고. 약속 안 지킬 거예요?”

    유진하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야야. 목소리가 왜 이렇게 커. 다들 우리를 쳐다보잖아.”

    이소민이 주변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누가 뭐래? 너랑 파트너 아니야. 대신 단독 참가. 그건 되잖아.”

    아차!

    유진하가 속으로 움찔했다.

    방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만약 에어리어 안이었다면 빈틈을 찔려 죽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걱정 마. 나도 배운 점은 있다고.”

    잘 보니 등 뒤에 새로운 무기를 메고 있었다.

    “석궁.”

    이소민의 석궁을 꺼내서 보여 줬다.

    유진하는 그 물건을 받아서 이리저리 살폈다.

    “검으로는 졌잖아. 대신 장거리로 해 보려고 했지.”

    “소민 누나. 사격은 쉬운 게 아닌데 연습은 했어요?”

    “물론이지. 백발백중은 아니지만 해 봤어.”

    이소민은 석궁을 받아서 화살을 끼우고 조준했다.

    “저기 옆에 빈 깡통 맞춰 봐요.”

    유진하가 가리킨 방향에 깡통이 보였다.

    이소민은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조준에 집중했다.

    팍!

    빠르게 나아간 화살은 정확히 깡통을 빗나가 버렸다.

    유진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하아.”

    이소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화살을 재장전했다.

    “아아, 실수야. 실수. 네가 옆에서 지켜보니까 긴장돼서 그래.”

    “실전도 아닌데 긴장하면 어떡해요? 누나는 방금 몬스터한테 죽은 거예요.”

    “한 번만 더. 숨을 참고 잘하면 돼.”

    “사격이나 검이나 재능이 중요해요. 누나는 이런 쪽이 아니에요.”

    유진하는 소민의 석궁을 뺏어서 가져갔다.

    대신 근처에 나온 잡화상에게 가져가서 그걸 팔아 버렸다.

    “야, 주인 허락도 없이 팔면 어떡해!”

    “이거나 받아요. 석궁 대용이에요.”

    유진하가 내민 물건은 방패였다.

    “이걸로 우리를 지켜주면 돼요. 공격은 에어리스가 하고 방어는 소민 누나가 하는 식이죠. 실전에 차차 적응되면 그때 무기 들어요.”

    “그래, 일단 잘 받을게.”

    물론 자기 몸이나 잘 지키라는 의미였다.

    유진하의 속뜻은 이소민이 당장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참가할 사람은 이제 모여라.”

    에이전트 요원이 이번 에어리어 공략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모두 준비는 끝났으면 바로 진입한다. 명심해라. 개인적인 행동은 금물이다. 하이에나 같은 녀석은 팀에 해만 끼치지.”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유진하는 그런 비웃음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주 당해서 나름 면역된 편이었고, 지금은 긴장감을 떨쳐내려고 집중해야 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당한다.”

    집중력은 냉철한 판단을 내린다.

    공포와 패닉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돌입 시작.”

    참가자들은 일제히 에어리어 안으로 진입했다.

    “우리도 가요.”

    유진하와 이소민, 에어리스는 마지막에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새삼 느끼곤 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 * *

    도착한 곳은 군데군데 벽이 무너졌다.

    오래된 유적지 같은 곳이었다.

    “내부에서 시작이네요.”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곳곳에 벽은 갈라져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좁은 공간과 통로가 으슥해서 쉽게 나서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다들 무사하냐?”

    먼저 도착한 에이전트와 이십 명의 사람들도 각자 준비 태세를 갖췄다.

    “우리는 에어리어의 주인을 잡는다. 누구처럼 주인의 전리품만 몰래 빼가는 얌체 짓은 안 해.”

    주변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소민은 화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언제까지 그런 소리만 할 거야. 그냥 다들 집중하자고.”

    “우리는 이미 그러고 있어. 다만, 팀워크를 해치는 녀석들은 아예 없는 편이 낫지.”

    에이전트가 대놓고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은 뒤로 빠지라는 손짓을 보냈다.

    유진하는 굳이 다툴 생각은 없어서 주변을 돌아봤다.

    “마침 길이 두 개군요. 서로 나뉘어서 가죠.”

    “바라던 바야. 나중에 도와달라고 질질 짜지는 말라고.”

    에이전트 일행은 유유히 먼저 걸어갔다.

    이소민은 투덜거리면서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발로 찼다.

    “재수 없네. 저것들.”

    “상관없어요. 어차피 주인의 전리품을 먼저 찾는 쪽이 이기는 거니까요.”

    유진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에이전트 일행이 간 곳과 반대쪽 길로 향했다.

    “이쪽으로 가요.”

    수첩과 펜을 든 유진하가 앞장섰다.

    에어리스는 유진하가 지도를 기록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도를 만드는 건가요?”

    “응. 이런 곳은 미궁과 비슷한 형태로 분류되거든. 길을 잃지 않도록 벽에 표시하거나 지도를 작성해 가면서 가는 편이 좋아.”

    유진하는 수첩에 기록하면서 앞으로 걸었다.

    이소민이 뒤를 따라오면서 주변을 살폈다.

    “아직까지는 괜찮네? 저번에는 석상이 움직이고 그랬는데.”

    “언제 어디서 확 변할 수도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작은 몬스터가 하나 나타났다.

    키는 사람 무릎 크기로 작았는데 언뜻 보면 다람쥐처럼 생기기도 했다.

    나무막대기 하나 들고 발발거리듯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쟤 뭐야? 귀여워.”

    마치 재롱을 부리는 듯한 다람쥐 몬스터의 모습에 이소민이 폭소를 터트렸다.

    “조심해요.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어요.”

    “나도 알아.”

    이소민은 걸어가면서 등에 맨 커다란 방패를 천천히 꺼냈다.

    “한 방에 때려잡으려는 거야.”

    이소민이 천천히 접근하는 동안 다람쥐 몬스터는 가볍게 뜀뛰기만 했다.

    “요놈!”

    방패로 확 내리쳤다.

    다람쥐 몬스터는 살짝 옆으로 뛰어서 그 공격을 피했다.

    “어쭈! 제법인데.”

    이소민은 살짝 약이 오른 듯이 방패를 다시 들어서 휘둘렀다.

    몸놀림이 재빠른 다람쥐 몬스터가 쉽게 잡혀 줄 리가 없었다.

    “소민 누나한테는 안 잡힐 것 같은데. 에어리스한테 도와달라고 할까요?”

    “됐거든.”

    이소민과 다람쥐 몬스터 간의 숨바꼭질이 계속 이어졌다.

    다람쥐 몬스터는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버리더니 도망갔다.

    “야! 어디 가!”

    이제 조금씩 짜증이 나던 이소민이 부들부들 떨었다.

    농락당한 기분이 들어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서둘러 다람쥐 몬스터를 뒤쫓아 따라갔다.

    “절대 안 놓칠 거야.”

    몬스터를 쫓아 달려간 곳은 넓은 방이었다.

    “어디 갔지? 이 도망 잘 가는 꼬맹이?”

    그때, 음산한 눈빛이 느껴졌다.

    그 불길한 눈동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마리의 몸집이 커다란 몬스터가 사방에서 나왔다.

    손에는 검과 창, 활까지 전부 살상력이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소민은 뒤늦게 아차 했지만 이미 함정에 빠진 뒤였다.

    “소민 누나, 너무 뻔한 유인책이었잖아요.”

    통로에서 유진하와 에어리스가 다가왔다.

    “소수가 유인해서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몬스터들의 기본적인 속임수예요.”

    이소민은 긴장한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알았는데 어떡하지?”

    “괜찮아요. 저희가 구해드릴게요.”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를 꺼낸 에어리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한 걸음.

    박차고 나간 에어리스의 전진이 빨랐다.

    대검을 휘둘러서 단숨에 세 마리의 몬스터들을 통째로 베어 버렸다.

    “소민 누나, 방패!”

    유진하가 외치자 이소민은 방패로 에어리스의 뒤에서 에어리스를 향한 몬스터들의 공격을 전부 막아줬다.

    “녀석들 숫자만 많아요. 호흡만 맞추면 우리가 제압할 수 있어요.”

    몬스터 중에서 세 마리가 유진하 쪽으로 향했다.

    “지금 여기 올 때가 아니지.”

    유진하는 손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파이어 투 파이어.”

    카드의 이름을 외치면서 던지자 순식간에 화염이 나오더니 몬스터들을 활활 태워 버렸다.

    “카드를 또 썼어. 이 한 장이 자동차 한 대 값인데.”

    남은 것은 네 마리의 몬스터였다.

    이소민은 아까 몬스터가 죽으면서 떨어뜨린 창을 즉석에서 주웠다.

    “에어리스, 같이 가요!”

    “네.”

    에어리스는 대검으로 베고 이소민은 창으로 찔렀다.

    남은 몬스터는 전의를 상실했는지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다.

    아까 유인 역할을 맡았던 다람쥐 몬스터조차 재빠르게 쥐구멍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겼다.”

    긴장이 풀렸는지 이소민은 살짝 몸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위험했어. 위험했어.”

    유진하가 옆에 와서 이소민에게 말했다.

    “상대 유인에 빠졌는데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에요.”

    “그래. 도와줘서 고마워.”

    말을 마친 이소민이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거 유인인 거 알았는데 왜 안 말렸어? 큰 소리로 불렀으면 다 들렸을 텐데.”

    “아, 그건. 몬스터가 유인을 하길래 미끼를 보내준 거라서요.”

    고개를 끄덕이던 이소민이 순간 멈칫했다.

    “잠깐만. 내가 미끼였어?”

    “네, 대부분의 인간도 그렇고 몬스터도 그렇고. 자기가 건 계략에 상대가 빠졌다고 생각하면 방심을 해 버리거든요.”

    간단한 수법이었다.

    저쪽이 미끼를 보냈으니, 이쪽도 미끼를 보낸 거였다.

    “미끼를 보내서 일부러 걸린 척하니까 숨어 있던 녀석들이 모두 튀어나왔잖아요.”

    유진하의 순간적인 작전이었다.

    “만약 걸린 척을 안 했으면 녀석들은 다르게 나왔을 거예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면 그게 훨씬 위험하죠.”

    유진하가 손가락을 들면서 휘휘 흔들었다.

    “한마디로 역이용.”

    “야! 미끼를 하려면 네가 하든가.”

    이소민이 화를 버럭 내면서 유진하에게 달려들었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에어리스가 싸우는 둘 사이를 힘겹게 뜯어말렸다.

    “다 잘됐잖아요. 아직 갈 길도 멀고요.”

    “유진하, 이용당하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는 건 알아 두라고. 안 그러면 동료는 없어.”

    이소민이 핀잔을 주었다.

    유진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소민 누나의 아까 움직임은 괜찮았어요. 상대가 떨어뜨린 창을 들어서 반격한 거.”

    “네가 웬일로 칭찬이냐.”

    “첫 실전을 드디어 치른 거잖아요. 소감은요?”

    이소민은 움찔했다.

    유진하는 옆의 벽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사실 여기는 갈라진 벽이 많아서 돌아갈 만한 길이 좀 있었어요.”

    “너 설마,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이쪽으로 간 거야? 나한테 실전 경험을 시켜 주려고? 넌 원래 몬스터랑 잘 안 싸우는 스타일이잖아.”

    “그건 소민 누나의 생각에 맡길게요.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이만 가죠.”

    유진하는 천천히 수첩을 챙기면서 앞으로 먼저 걸어갔다. 에어리스는 소민의 옆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면서 웃었다.

    “빨리 가요. 늦기 전에.”

    “아, 그래요.”

    유진하와 에어리스가 가는 뒷모습이 멀리 보였다.

    이소민은 콧잔등을 살짝 만지면서 따라갔다.

    “다음에 또 날 미끼로 쓰면 죽는다.”

    “알겠어요.”

    서둘러 이소민이 따라왔다.

    에어리스는 그런 소민을 바라보다가 문득 등에 멘 대검을 만져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행이야. 지킬 수 있었어.

    기억이 없는 나에게.

    내 주인이 되어 준 사람을.

    * * *

    “이건 뭐. 학살 아닌가?”

    한편, 다른 길로 간 에이전트 일행도 순조롭게 탐험에 집중했다.

    주변에는 다량의 몬스터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에이전트는 선글라스를 여전히 낀 채로 주변을 살폈다.

    “어이, 어이. 뭐 하냐? 여기서 땅에 떨어진 물건이나 챙길 거냐.”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줍던 사람들이 순간 머쓱해져서 서로 말없이 쳐다봤다.

    “우리의 목표는 에어리어의 주인을 물리치고 전리품까지 차지하는 거야. 하이에나가 먼저 가져가면 개망신이라고.”

    에이전트가 말하자 바닥에서 물건을 줍던 녀석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하하. 그 녀석들은 잔뜩 쫄아서 제대로 오지도 못할 텐데요.”

    “얕보지 마!”

    에이전트는 선글라스를 벗고 방금 말을 한 남자를 째려봤다.

    “그 녀석은 백 개 이상 에어리어를 경험한 자야. 도망을 잘 가서 문제인 거지 녀석의 감은 상당히 뛰어나다는 거야.”

    같은 부분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는 법이다.

    “여기서 그 녀석만큼 많이 에어리어에 들어가서 살아남을 녀석이 몇 명이나 될 거 같냐. 바닥에 떨어진 껌이나 줍는 얼빠진 녀석들이 될 거 같아?”

    모두 조용해졌다.

    에이전트는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선글라스를 끼면서 앞으로 걸었다.

    “내 말대로 해. 아니면 너희들은 따로 가도 된다. 그 하이에나 녀석들처럼.”

    “아, 알았어.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사람들은 모두 줍던 아이템을 버려 두고 에이전트를 따라갔다.

    “같이 가자고.”

    에이전트는 통로로 먼저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통로의 양쪽 벽에는 희미한 빛줄기가 핏줄처럼 나오고 있었다.

    벽을 살피니 살짝 파동의 흐름으로 보이는 빛의 움직임이 서려 있었다.

    그 파동에 손을 대니 맥박처럼 뛰는 감촉도 느껴졌다.

    “에어리어의 주인이군.”

    멀리 통로 끝에는 맥박의 끝이 보였다.

    커다란 대리석에 앉아 있는 황소 머리를 한 육중한 몬스터가 보였다.

    미노타우로스.

    녀석의 뒤에는 커다란 궤짝이 보였는데 주인의 전리품이 확실했다.

    “이기고 가져가라는 건가?”

    에이전트도 서서히 검을 뽑았다.

    반갑지 않은 손님의 방문을 눈치챈 에어리어의 주인 미노타우로스도 옆에 놓아 둔 거대한 도끼를 움켜쥐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녀석은 건물 삼 층 높이는 되어 보였다.

    “너, 너무 크잖아. 이런 녀석이 상대일 줄은 몰랐는데.”

    뒤에 따라온 다른 녀석들이 겁을 집어먹었는지 우물거렸다.

    에이전트가 서둘러 외쳤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무조건 움직여!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그 순간, 에어리어의 주인이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면 돌격했다.

    도끼 한 방에 몇 명이 단숨에 갈라졌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피투성이를 만들자 공포감이 삽시간에 휩쓸었다.

    “달아나지도 못하는 거냐. 이대로는 전투는커녕 각개격파 당한다.”

    에이전트가 한탄하듯이 말했다.

    순식간에 이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 자르듯이 베어졌다.

    미노타우로스가 휘두를 때마다 우수수 썰렸다.

    “크윽!”

    에이전트가 도끼를 검으로 막아봤지만 몬스터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버렸다.

    고무공 튕기듯이 나동그라져서 귀퉁이 쪽에 처박혔다.

    “젠장.”

    벽에 기대어 쓰러진 에이전트가 자신의 가슴을 만져봤다.

    대충 봐도 갈비뼈 몇 대는 나간 거는 확실했다.

    “이 황소 자식.”

    멀리서 미노타우로스가 에이전트 쪽을 바라봤다.

    코 평수를 거칠게 움직이던 녀석은 냉소적인 눈빛을 에이전트에게 보냈다.

    잠시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도끼를 들었다.

    몸을 빙글 돌려 미노타우로스는 본래 있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갔다.

    ‘이 자식. 방금 날 봐준 거야?’

    에이전트는 황망한 기분이었다.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동정받았어. 괴물 자식한테…….’

    굴욕감이 온몸으로 번져가자 물 먹은 스펀지처럼 점점 더 무거워졌다.

    괴물에게 받은 동정과 절망이 이미 독버섯처럼 온몸에 퍼져갔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어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