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화 (1/229)
  • 1화 활용법의 창시자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책 제목이다.

    가장 앞에 있는 서평에는 아주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다.

    -차원문이 나타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지금.

    던전으로의 도전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글.

    “후우.”

    한 소년이 이 책을 가만히 읽어봤다.

    세상에 갑자기 차원문이 생기던 날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었다.

    수많은 전문가와 과학자들이 이 현상의 분석을 시도했다.

    여러 이론과 가설이 나왔으나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차원문에 들어갔다.

    탐사였다.

    “놀라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전세계 라이브 방송에 자신들이 알아낸 사실을 공개했다.

    몬스터가 있고.

    특별한 아이템이 있고.

    새로운 세상과 그곳 어딘가에 던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세계라고?”

    사람들은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졌다.

    차원문은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였고, 거기서 나온 특별한 물건들은 호가가 비싸게 붙었다.

    “돈이 된다.”

    돈벌이 소리를 듣자 사람은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로 가서 돈이 되는 물건을 가져오겠다는 얘기였다.

    마치 대항해시대의 콜럼버스처럼.

    “지원자 모집.”

    차원문은 세상 곳곳에서 생겨났다.

    도시, 공원, 사막, 설원.

    세상 어디에서나 나타났다.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기심과 영광, 욕망에 이끌려 차원 너머의 세계로 향하기 시작했다.

    “에어리어 공간으로 가자.”

    사람들은 차원문 너머의 세상을 에어리어 공간이라고 불렀고, 그곳 어딘가에는 던전이 있었다.

    부와 영광을 찾는 골드러시.

    사람들은 금광을 찾듯이 여러 차원문으로 들어갔다.

    차원문 너머의 새로운 세계.

    이곳을 공략하는 세상이 되었다.

    * * *

    유진하. 17세.

    평범하게 대학 진학하거나 사회 생활하면서 살아갈 학생이었는데, 속으로는 모험을 갈망하는 성향이 있었다.

    학생에서 최연소 던전 탐험가가 된 이유가 그랬다.

    외모도 평범. 운동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평범함 속에서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유진하는 책 하나를 펼쳐서 보고 있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베스트셀러이긴 한데…….”

    저자는 최초의 던전 탐험가이자, 던전 공략전의 기초를 만든 사람이었다.

    가장 많이 참가한 사람이기도 했다.

    던전 공략하는 사람 중에 가장 유명했다.

    “첫 번째 방법, 자신과 팀원의 생존을 우선시하라…….”

    유진하는 첫 번째 공략전을 앞두고 있었다.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려 책을 읽어 내렸다.

    “이게 도움이 되려나…….”

    베스트셀러지만 실제로는 별 효과도 없는 자기 계발서란 흔하게 많았다.

    다행히 이 책은 유진하가 생각했던 가치와 많이 일치했다.

    책 서평부터 그랬다.

    -살아남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이 아니라 ‘활용’하는 방법인 이유입니다.

    공략이 아니라 생존을 중시한다.

    무턱대고 몬스터와 싸울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즐비했는데 발상의 전환과도 같았다.

    “두 번째. 무리하지 말라.”

    저자는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던전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낯선 환경.

    곳곳에 있는 위협.

    강력한 몬스터까지.

    어떤 변수가 터질지 모르니 항상 주의하라고 책에 적혀 있었다.

    “후우.”

    유진하는 책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공략전에 처음 참가하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저자의 이름은 유성하.

    책을 읽고 있는 유진하가 동생이었다.

    둘은 형제 사이였다.

    “동생아, 세 번째는 안 읽냐? 다 읽어야 나처럼 노련한 탐험가가 되지.”

    마침 유성하가 마당에서 검술 연습을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 그러셔. 이제는 유명 작가도 되셨네.”

    유진하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형은 전국 최상위 성적의 천재였다. 뛰어난 두뇌에다 탄탄한 피지컬도 막강했다.

    180이 넘는 훤칠한 키. 24세.

    잘생긴 외모.

    듬직하게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 몸매를 겸비했다.

    검술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수많은 공략전을 돌파했다.

    최초이자 최고의 탐험가라는 명성이 실로 대단했다.

    “제대로 읽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이다.”

    형의 잔소리가 들렸다.

    핀잔을 주는 말투에 유진하는 툭툭거리면서 형을 쏘아봤다.

    “뭐, 형은 완벽하잖아. 내가 뭔 도움이 되겠어.”

    “후후. 잔머리는 그래도 네가 더 낫더라. 공부도 하기 싫어서 그러지 맘만 먹으면 그쪽은 나보다 나을걸?”

    유성하가 살짝 웃었다.

    햇살이 내려오니 형의 등 뒤에서 은은한 조명처럼 보였다.

    젠장.

    유진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형은 웃는 것도 멋있었다.

    솔직하게 인정해야 했다.

    “오늘이네. 너도 처음으로 공략전에 참가하는 날이잖아.”

    형이 다가와서 유진하가 읽고 있던 책을 살짝 가져갔다.

    “1000가지는 다 외운 거겠지?”

    “벌써 수십 번도 넘게 읽었어. 다 알고 있다고.”

    “실전은 전혀 달라. 긴장해 버리면 실수가 생긴다고.”

    형의 말은 묘한 여운이 있었다.

    연습과 실전의 차이.

    말은 들었으나 실제로 체감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유진하가 물어봤다.

    “뭔데?”

    “왜 던전 공략하는 법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이야?”

    “아, 그건 말이지.”

    형은 웃으면서 유진하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책도 슬쩍 가져갔다.

    “자, 책에서 강조한 부분이야. 공략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실패할 수도 있거든. 그런 때는 살아서 돌아오는 쪽이 훨씬 중요해.”

    “살아서 돌아온다?”

    유진하가 눈을 동그랗게 떠서 형의 얼굴을 쳐다봤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형은 평소처럼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유명한 탐험가가 있었지. 남극점 최초 도착을 두고 아문센과 스콧이 경쟁하던 이야기야.”

    유명한 이야기였다.

    “아문센과 스콧은 준비부터 달랐고 판단도 달랐다. 그 결과 아문센은 남극점을 최초로 정복하고 무사히 귀환까지 해냈지. 하지만 스콧은 달랐어.”

    “두 번째로 남극점에 도착했고 결국 돌아오지 못했잖아.”

    “바로 그거야.”

    형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거듭 강조했다.

    “스콧이 가져온 말은 다 얼어 버렸어. 아문센이 추위에 강한 개를 준비한 것과 달랐지. 만약 스콧이 준비 실수를 인정하고 일찍 철수했다면 어떨까? 적어도 목숨은 구할 수 있었을 거야.”

    “…그랬겠지.”

    “공략이 우선이 아니라 활용을 우선하라고 책 제목을 지은 이유가 그거야.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더 중요시하라는 거가 첫 번째다.”

    “응.”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틱틱거리긴 했지만 공략보다 목숨을 소중히 하는 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가졌다.

    “물론 내 책은 생존법만이 아니라 던전에서 활용하기 좋은 기술도 있지. 그래서 1000가지 다 외우라는 거야.”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유진하는 곰곰이 생각했다.

    형한테 매번 들었던 소리였으나, 이제는 진짜 공략전을 앞두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직접 겪으면서 깨달을 일이었다.

    “너에게는 특별히 충고를 하나 더 적어 주지.”

    형은 펜을 가져와서 책의 마지막 장에 가볍게 적었다.

    유진하는 책을 돌려받았다.

    “나중에 보고 지금은 늦었다. 장비를 잘 챙기고 가자.”

    오늘 벌어지는 공략전.

    유진하는 형과 처음으로 함께 공략전에 나서게 되었다.

    이번 차원문은 동대문에 나타났다.

    차원문을 통과하면 바로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일명 에어리어 공간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어이, 오늘은 늦었네.”

    차원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형과는 자주 만나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형의 라이벌인 사람도 있고 동료도 있었다.

    “동생도 처음으로 온다고?”

    “이 녀석이야. 견습이라고 생각하자고.”

    유진하는 형이 소개해 준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들 한가락씩 하는 실력자들이었다.

    “유진하입니다.”

    “반갑다. 형 옆에 매미처럼 꼭 붙어 다녀라. 알았지?”

    가벼운 농담이 오고 갔다.

    베테랑다운 여유였다.

    곧이어 차원문에 돌입할 시간이 되었다.

    공략전 개시였다.

    파아앗!

    사람들이 일제히 돌입했다.

    이번에 한몫 단단히 챙겨오자는 생각이었다.

    다들 익숙하고 능숙했다.

    “우리도 가자.”

    형이 먼저 나섰다.

    유진하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공략전.

    긴장된 마음을 억누르려고 해도 자꾸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호흡이 거칠게 느껴졌다.

    모든 사람들이 차원문에 돌입했다.

    공략전이 시작되었다.

    “흐음. 여기는 어디지?”

    숲이 우거진 장소에 도착했다.

    다른 세계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생명체가 사는 환경은 비슷했다.

    여기도 숲이 있었고 어딘가에는 던전이 있을 터였다.

    “다른 녀석들과는 떨어졌군.”

    유진하와 유성하.

    형제만이 근처에 있었다.

    “가끔 있는 경우야. 차원문은 평범한 통로가 아니니까.”

    차원문은 통로이자 흐름이었다.

    보통은 도착하는 위치가 동일하나, 아주 가끔 통로의 흐름이 심하게 비틀어질 경우에는 무작위로 갈 수도 있다.

    매우 낮은 확률의 경우인데 지금이 하필 그런 모양이었다.

    어쩌면 유진하가 형과 같이 도착한 것조차 다행스러운 정도였다.

    “다들 근방에 있을 거다. 가다 보면 합류하겠지. 베테랑들이니 던전을 찾아가면 거기서 만날 거야.”

    앞장서던 형은 정면을 주시했다.

    멀리 숲 너머의 벌판이 보였고, 언뜻 살피니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높은 건물인데? 탑인가?”

    유진하가 멀리 바라봤다.

    울창한 숲에 있는 건물은 누가 봐도 의심스러웠다.

    “저게 던전일 수 있어. 저쪽으로 가야겠다.”

    형이 앞에 나섰다.

    유진하도 따라가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형은 검을 한 자루 쥐고 있었는데 유진하는 맨몸이었다.

    기껏해야 단검만 가진 정도였다.

    어차피 첫 참가이고, 유진하의 전투 능력은 특출난 편이 아니라서 정찰과 지원을 주로 맡았다.

    “조심해라. 실전에서는 한순간 판단 착오로도 죽으니까.”

    “책에서 나온 세 번째 방법이네.”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들어와서 실감이 나지 않아선지 괜찮았다.

    아직까지는 그랬다.

    “쉿!”

    앞서가던 형이 손을 뻗으며 수신호를 보냈다.

    경계하라는 신호였다.

    근방에는 괴물이 있었다.

    발자국을 보면 대략 몸체 사이즈를 짐작할 수 있는데, 저 커다란 크기를 보니 대략 10미터 이상의 괴물체로 추측됐다.

    “더 있다. 하나가 아니야.”

    형은 카드 하나를 조용히 꺼냈다.

    던전에는 여러 아이템이 있는데, 무기류 말고도 다양한 능력이 있는 카드도 있었다.

    카드는 잘만 사용하면 전황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었다.

    덕분에 카드는 매우 비쌌다.

    ‘웬만하면 카드는 안 쓰고 깨는 편이 좋겠지. 손해를 보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니까.’

    유진하도 카드는 가지고 있었으나 비싼 가치도 알고 있었다.

    웬만하면 쓰고 싶지 않았다.

    한 손에 검, 다른 손에는 카드를 든 형은 긴장한 눈빛을 머금었다.

    “유진하, 몬스터는 최대한 피해간다.”

    네 번째 활용법이었다.

    -전투는 최대한 피해라.

    승리해도 부상을 당하면 위험하다.

    에어리어 공간에는 클리어 조건이 두 가지가 있었다.

    -공간의 주인을 쓰러뜨리거나.

    아니면 주인의 전리품을 찾거나.

    두 가지 중에 하나만 해결하면 클리어되고 공간은 소멸된다.

    “목적만 이루면 되니까 굳이 모든 몬스터를 상대할 필요는 없어.”

    생존법은 간단했다.

    불필요한 위험은 피한다.

    형의 철학이 그랬고, 베스트셀러 책에도 같은 내용이 적혔다.

    “가자.”

    유진하는 형을 따라 조심스레 걸어갔다.

    그때였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던 때는…….

    “바닥이 이상한데?”

    땅에는 커다란 괴물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진짜 발자국이라면 땅에 새겨진 거니까, 살짝 건드려도 으스러지거나 형태가 바뀌게 마련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유진하가 손으로 건드리자 바닥은 강철처럼 딱딱했다.

    “형, 여기는…….”

    그 순간. 바닥이 움직였다.

    쿠구궁.

    유진하와 유성하 형제가 서 있는 곳은 땅이 아니었다.

    거대한 입 큰 괴물의 머리 위였다.

    발자국과 나무는 전부 괴물의 속임수였다.

    “아차!”

    괴물들은 무수한 종류가 있었고 함정을 파는 녀석도 있었다.

    그만큼 몬스터는 위험했다.

    미끼를 던지고 먹잇감을 먹는다.

    녀석들에게도 각자의 사냥법이 있었다.

    ‘생존법 대 사냥법.’

    세상은 두 가지 판단이 맞섰다.

    지금은 형제가 함정에 걸려들고 말았다.

    “젠장, 처음 보는 녀석이야.”

    경험이 많은 형조차 처음 보는 거대한 입 큰 괴물이었다.

    커다란 운동장 급의 얼굴을 가진 괴생명체였다.

    캬아아악!

    땅바닥처럼 위장한 괴물이 커다란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렸다.

    이대로 녀석의 아가리 속에 들어가면 영원한 어둠 속에 잠길 터였다.

    “파이어.”

    형은 카드를 사용했다.

    카드는 주문을 외치면 발동하는 위력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

    형은 당황하지 않았다.

    카드를 사용해서 강력한 불길을 발산했다.

    크아아아!

    괴물은 화상을 입자 커다란 얼굴을 흔들며 비틀거렸다.

    마치 땅이 움직이는 효과처럼 흔들거렸다.

    “우아악!”

    유진하는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잘못 떨어지는 바람에 발목이 다쳤다.

    처음으로 만난 거대한 괴물의 위력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동시에 무력함을 받고 있었다.

    이길 수 없다고 느꼈다.

    “물러서!”

    형이 소리쳤다.

    후퇴가 최선이었다.

    문제는 유진하의 발목이었다.

    다쳐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군.”

    하는 수 없이 형은 입 큰 거대한 괴물과 정면에서 맞서야 했다.

    “저기다.”

    아까 사용한 화염 카드의 효력은 남아 있었다.

    괴물의 얼굴에 불길로 그을린 부분이 약점이 되었다.

    “하압!”

    형은 검을 들어서 돌격했다.

    화상을 입은 괴물의 얼굴에 정확히 검을 꽂았다.

    크아아아악!

    이 정도로는 괴물을 제압하기에 부족했다.

    “더 먹여 주마.”

    더 강하게 검으로 찔러서 괴물에게 대미지를 주었다.

    얼굴에 수십 번의 칼질을 더 먹자 결국 녀석도 쓰러졌다.

    거대한 녀석답게 뒤로 넘어가면서 엄청난 진동이 퍼졌다.

    “허억. 허억.”

    형은 부러진 검을 들고 있었다.

    “다행이야. 전투가 뛰어난 녀석은 아니었어.”

    함정을 파는 괴물은 대체로 전투에 특화된 타입은 아니었다.

    대결에 자신이 없으니 함정을 쓰는 거였다.

    “다리는 어때? 괜찮아?”

    형은 동생의 발목 상태를 살폈다.

    “아야!”

    부러진 상태였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의 공략전이 무리였다.

    “유진하.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자.”

    형은 미련 없이 포기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가장 최우선으로 적힌 1번은 생존이었다.

    “비상 차원문으로 가면 돌아갈 수 있어. 어차피 다른 녀석들이 알아서 공략하겠지. 괜찮아.”

    에어리어 공간에는 차원문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는 비상용도 있어서 그곳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미안해, 형.”

    유진하는 제대로 걷기가 어려우니 형의 의견에 동의했다.

    첫 번째 공략전이라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무리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형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조금 살펴보니 근처에서 비상용 차원문을 발견했다.

    그쪽으로 막 가려는 순간이었다.

    “뭐지?”

    멀리서 한 줄기 빛이 솟아올랐다.

    아까 발견했던 탑 부근이었다.

    엄청난 빛줄기가 치솟더니 이윽고 비명이 들려왔다.

    “동료들인가?”

    형은 불온한 기분을 느꼈다.

    사방에서 매서운 기운이 느껴졌다.

    “몬스터다.”

    매복해 있던 괴물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숫자였다.

    안광에 붉은빛이 가득한 괴물들의 눈빛이 하나둘 늘어났다.

    “여기는 녀석들의 소굴이었나?”

    무려 100마리에 가까운 괴물 떼들이었다.

    거대한 녀석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마저 가렸다.

    낮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곳은 괴물의 숲이었다.

    “이 숲 자체가 함정이었어. 우리가 깊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 거야.”

    비로소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다.

    여기에 들어온 순간.

    괴물들은 협공해서 인간들을 사냥하려 계획했다.

    기다리고 있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 버린다.

    완벽한 계략이었다.

    “보통의 괴물들과 달라. 이렇게 딱딱 맞춰서 움직이는 거는 누가 지휘하지 않고는 불가능해.”

    어떤 지성을 가진 존재가 괴물들을 부리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

    누군가 인간들을 사냥할 함정을 준비했다.

    각개로 들어온 탐험가들은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돌아가야 한다.”

    형은 부러진 검을 움켜잡았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늑대 괴물 무리.

    날아다니는 익룡 몬스터.

    검은 기운을 내뿜는 악령까지.

    마치 군대에 포위당한 기분이었다.

    괴물들은 서로 호흡을 맞춰서 인간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완벽한 사냥이었다.

    “비상용 차원문으로 먼저 가. 내가 시간을 벌어 줄게.”

    “형!”

    유진하가 당황해서 형을 쳐다봤다.

    “오래는 못 버틴다. 네가 먼저 가야 나도 따라갈 수 있어.”

    단호한 말투였다.

    100마리의 괴물 앞에서도 형은 당당했다.

    자신이 쓴 책에 나온 규칙.

    다섯 번째.

    절대 당황하지 마라.

    부러진 검 한 자루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 자신의 말을 시행하고 있었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알았지?”

    “…반드시 와야 해.”

    유진하는 형의 말을 듣고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며 힘겹게 달렸다.

    부러진 발목이 고통스러웠으나 참아냈다.

    한 걸음씩.

    달려갈 때마다 등 뒤에는 괴물들의 고함과 형의 기합 소리가 뒤섞였다.

    꾸에엑!

    파악!

    뒤에서 피 튀기는 처절한 혈전 소리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부러진 검이 분전했다.

    형의 목숨과도 같은 시간이 짧게 흘러갔다.

    파아앗!

    유진하는 간신히 비상 차원문에 들어갔다.

    무사히 원래 세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돌아왔구나.”

    차원문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맞이해 줬다.

    그들은 걱정된 표정으로 한 마디를 해줬다.

    “한참이나 소식이 없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냐?”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유진하는 정신이 멍한 상태여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충격의 여파 탓이었다.

    “더는 없는 건가?”

    웅성거리는 군중들의 음성이 들렸다.

    유진하는 의료진의 치료를 받으면서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마디만 내뱉을 뿐이었다.

    “형은……?”

    이후에 아무도 나오지 못했다.

    1시간 뒤에는 차원문마저 연기처럼 사라졌다.

    기록은 간결했다.

    유진하 단독 생존.

    나머지 복귀 실패.

    원인 불명.

    원정대의 소식은 이게 전부였다.

    형이 포함된 이번 공략전은 대실패로 마무리되었다.

    역사상 최대의 실패였다.

    “형…….”

    유진하는 첫 공략전에서 처절한 실패를 맞봤다.

    남은 건 하나도 없었다.

    형이 써놓은 책. 그것뿐이었다.

    “…….”

    인생에서 항상 함께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소중한 가족이었다.

    형이 사라지자 삶의 반을 잃은 느낌이었다.

    마음이 공허했다.

    한동안 유진하는 의욕을 잃은 채 멍하니 방황했다.

    “책…….”

    이제는 유품으로 남은 형의 책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마치 형이 해주는 충고와 같았다.

    실전을 겪으면서 이제는 모든 걸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마치 슬픈 기록을 보듯이 그렇게 폐인처럼 반복해서 책만 읽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1번째…….”

    책의 가장 마지막 장.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형이 손으로 직접 적어준 글이었다.

    -유진하, 너는 혼자는 어울리지 않아. 두뇌가 있으니 서로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서 그들의 힘을 끌어내는 편이 가장 나아.

    “혼자서는 안 된다. 반드시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함께하라.”

    유진하는 그 문구를 되뇌었다.

    하지만…….

    첫 공략전에서 형을 잃은 상실감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지워지지 않는 낙인과도 같았다.

    동료와 같이하면 결국 동료를 잃는 아픔을 겪고 만다.

    “형을 찾아야 해.”

    트라우마로 남은 형의 죽음.

    유진하는 이제부터 혼자서 던전에 들어가려 했다.

    “혼자서 하는 대신 전투는 최대한 피하겠어. 형을 찾아내려면 그렇게 해야 해.”

    그렇게 모든 공략전에 참여했다.

    단독 참가.

    그렇게 1년이 지났다.

    혼자였던 유진하에게 새 동료가 생긴 것은 바로 이즈음이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운 힘이 되어 줄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