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253화 (230/264)
  • #253

    다시 사는 인생 - 253

    전 세계가 CNN의 속보에 촉각을 기울이며 경악했다. 생생한 화면에는 두 발의 총성과 함께 SHJ시큐리티 직원들이 근위병을 제압하며 왕궁으로 뛰어드는 모습과 얼마 지나지 않아 경호원에 업혀 나오는 두 명의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사건의 경위와 총격을 당하고 경호원에 업혀 나오는 남녀에 대한 인적사항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기자의 보도에 뒤를 이어, 인상착의가 SHJ 회장인 경환과 SHJ유럽본사 사장인 하루나와 비슷하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었다.

    이런 추측성 보도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월가였다. 끝을 모르고 몇 년째 고공행진을 하던 SHJ퀄컴의 주가는 개장과 함께 3%나 빠지며 경환의 사망설에 무게를 싣는 모습을 보였고, 매도 물량이 서서히 증가하며 주가를 더욱 끌어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시장에 나온 주식을 매입하던 SHJ는, SHJ유니버스의 우주호텔 사업과 SHJ타운의 확대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SHJ홀딩스와 뮤추얼 펀드로 투자된 미국 국채를 매도해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월가와 FRB는 SHJ가 소유한 국채의 규모가 1,000억 불이라는 사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린다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SHJ홀딩스가 소유한 400억 불 상당의 국채가 시장에 풀리면서 상황은 매우 급하게 돌아갔다.

    “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지금부턴 카일과 부회장님의 지시를 절대 따라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당분간은 SHJ타운을 빠져나오지 말고.”

    SHJ타운으로 돌아온 경환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눈물을 쏟아내는 수정을 겨우 안심시킨 경환은 왼쪽 가슴의 뻐근한 통증으로 인해 힘들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골절로 인해 경환의 가슴엔 여러 갈래의 테이프가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회장님, 안정을 취하십시오. 방탄조끼로도 회장님의 늑골 2대는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SHJ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신소재를 이용해 SHJ시큐리티가 자체 개발한 방탄조끼는 외형상 착용 여부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얇았다. 그러나 탄환이 방탄조끼를 뚫지 못한다더라도 흉부에 가해지는 충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숨을 내쉬는 것도 힘들었던 경환은 긴 숨을 쉬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었다.

    “하루나는 어떻습니까? 안드레스가 권총을 꺼내 들기 전, 저를 덮쳤습니다.”

    경환은 첫 탄환이 하루나의 왼쪽 손바닥을 관통해 자신의 가슴에 박히는 충격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자신의 품에 안기며 쓰러지는 하루나의 미소를 경환은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독촉에도 대답하지 못하는 알의 표정에서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루나를 봐야겠습니다. 앞장서세요. 으읔!”

    “회장님, 몸이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안정을 취한 후에 상황을 들으십시오.”

    병상에서 일어나던 경환은 왼쪽 가슴에 찐하게 전해지는 통증에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급히 달려온 알의 부축이 없었다면 병실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 알의 부축에 병상에 앉은 경환의 마음은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쓰러지며 자신에게 미소를 보낸 하루나의 얼굴이 생생하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통증이 있었을 뿐입니다. 내 눈으로 직접 하루나를 봐야겠습니다. 어서 앞장서세요.”

    경환의 분노에 서린 눈빛을 바라본 알은 긴 한숨과 내쉬며 경환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 경환의 휠체어는 외부가 철저히 차단된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불안감에 경환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심장을 짓누르는 통증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마침내 휠체어가 멈추고 서서히 몸을 일으킨 경환이 유리 벽 건너로 하루나를 마주 대했다.

    인공호흡기로 힘겹게 호흡을 유지하는 하루나의 모습에 경환은 하루나를 마주 대할 자신이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유리 벽에 머리를 박은 경환은, 마스크를 벗고 다가오는 담당 의사를 향해 힘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떤 상태입니까?”

    “첫 번째 탄환은 하루나의 왼손을 관통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탄환이 흉추에 박혀 신경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겨우 위기는 벗어났지만, 빠른 수술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현재 환자는 이동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외과 수술팀이 휴스턴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수술이 성공한다 해도 장애가 동반할 가능성이 많고, 장애의 정도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든 걸 다 취하시고, 반드시 살리셔야 합니다.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반드시. 으읔!”

    유리 벽을 손으로 내리치던 경환은 쓰나미처럼 파고드는 통증에 바닥에 쓰러졌다. 알의 부축에 겨우 휠체어에 다시 앉은 경환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깨물고 있었던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서 회장님을 병실로 다시 모셔!”

    “알! 시간이 없습니다. 회의실로 갑시다. 당한 만큼 이젠 철저히 돌려줄 시간입니다.”

    경환은 하루나를 뒤로하고 알이 끄는 휠체어는 방향을 돌려 회의실로 향했다. 경환이 들어선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다. 경환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듯이 SHJ홀딩스의 사장으로 임명돼 이번 방문을 수행한 에릭 존슨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릭,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시장에 내놓은 국채 400억 불은 FRB가 빠르게 매입했습니다. 추가로 내놓을 600억 불도 FRB와 FRB의 입김이 작용하는 금융권의 매입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중국이 국채 250억 불을 매도하고 이를 통해 금을 매입하거나 유로화와 엔화로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주가와 환율이 널뛰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놀란 백악관이 직접 600억 불의 추가매도를 중지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고 합니다.”

    경환은 SHJ퀄컴의 상장과 SHJ에너지, SHJ테크놀러지 등 지분을 교환하며 취득한 자금을 미국 국채와 금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분산해 왔었다. 단 한 번의 승부를 위해 십 년을 넘든 기간 동안 준비를 해왔고, 이젠 분출할 시기였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흔들어 FRB를 공격하려는 생각은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 계획과 맞물려 FRB를 곤혹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가 시작된다는 소문은 한국을 비롯한 기타 국가들까지 술렁이게 하는 효과를 보고 있었다.

    “우린 불만 지피면 됩니다. 그 이후는 시장이 알아서 움직이게 될 거고요. 우리의 칼이 FRB를 향하는 이상, 백악관의 요청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이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회장님의 저격과 우리의 발 빠른 조치에 많이 당황하는 듯 보입니다. 회장님의 상태에 대한 문의만 계속 들어올 뿐, 다른 움직임은 없다는 보고입니다.”

    제이도 당황했을 거란 걸 모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암살계획을 사전에 감지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격이 발생함과 동시에 SHJ홀딩스의 국채매각을 시작으로 CIA에 대한 공격은 제이도 예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명분을 손에 쥔 경환은 참았던 분노를 표출해야만 했다.

    “알, SHJ시큐리티는 준비되었습니까?”

    “회장님의 저격과 동시에 휴스턴의 공격을 분쇄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대전차 로켓까지 무장하고 있어 자칫 큰 위험이 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10개 팀은 이미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경환은 왕궁으로 출발하기 전, 변경된 휴스턴 작전보고서를 확인했었다. 정확한 공격지점까지 지목하는 희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경환은 착잡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번 공격의 주체가 헨리와 마이클 헤이든으로 확인된 이상, 수백 배의 이자를 받아낼 생각이었다.

    “우리는 뒤가 없습니다. 작전이 시작되면 제이콥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끝없는 소모전을 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정보기관을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합니다.”

    “회장님에 대한 공격으로 직원들은 더욱 단결하고 있습니다.”

    “믿고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어떤 조치를 하고 있습니까?”

    “안드레스 스벤손과 우리가 제압한 무장인원을 취조하고 있지만, 묵비권을 행사하며 저항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콘 왕세자와 에르나 총리가 SHJ타운을 방문해 직접 사과와 해명을 하겠다고 요청하는 중입니다. 우리가 확보한 자료를 넘겨주면 어떻겠습니까?”

    노르웨이도 결국은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지만, 피해자라 해서 책임 소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게 경환의 생각이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지금 노르웨이와 SHJ에 쏠리고 있는 지금, 경환은 자신과 하루나의 희생으로 얻는 명분을 최대의 이익으로 환산해야만 했다.

    “그건 천천히 해도 상관없습니다. 왕세자와 총리의 방문은 승인하겠습니다. 최대한 은밀하게 연락을 취하세요. 두 사람과 만나고 난 후, 저는 바로 영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회장님,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으십니다. 안정을 취하시고 영국을 가셔도 늦지 않습니다.”

    골절상을 당해 몸이 완전치 않은 건 사실이었지만, 경환은 하루라도 빨리 끝장을 봐야만 했다. 시간이 길어지고 SHJ와 제이, 제이콥이 서로의 계산기를 두들기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부딪히게 된다면, 불리한 건 SHJ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나의 희생을 덧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환은 서둘러야만 했다.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해졌다고 해서 시간이 우릴 기다려 주진 않습니다. 제이콥이 냉정한 판단을 하기 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내일 아침엔 영국에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고, 알은 SHJ시큐리티의 작전이 차질 없어야 한다는 제 뜻을 카일에게 전달하세요.”

    버지니아 랭리에 위치한 CIA 국장실엔 마이클 헤이든 초조한 듯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육 개월을 넘게 준비한 계획이 제대로 성공했는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마이클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맥스, 제임스 리의 생사는 아직도 확인이 안 되고 있는 건가?”

    자신의 오른팔로 CIA 특수활동 부차장인 맥스 휴겔은 이번 작전을 총지휘하면서 MI6와 BND를 끌어들인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외곽에 대기하던 팀들이 일시에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현재는 CNN의 화면이 유일한 상태입니다. 화면을 분석한 바로는 최소 중상 이상의 타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는 의견입니다.”

    맥스의 답변에도 마이클의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만큼 SHJ시큐리티의 대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현장을 일시에 제압하고 SHJ타운으로 귀환하는 시간까지 총 20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미리 준비하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마이클의 생각이었다.

    “MI6도 사태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양이야. 백악관과 NSA에서도 압박해 오기 시작했으니 자네도 입단속 잘해야 할 거야.”

    “저도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 NSA가 우리가 연관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마이클은 종일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악관과 NSA에서 시달려야만 했다. 아직 증거를 손에 쥐고 있지는 않은 듯 보였다. 비밀은 일 년만 지키면 된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는 일 년만 버티면 자신의 입지는 탄탄한 반석 위에 올라앉을 수 있었다. 제이콥과의 문제는 헨리가 맡아 주기로 한 이상, 자신은 이번 작전을 끝까지 책임져야만 했다.

    “내일 일찍 워싱턴으로 가야 하니, 오늘은 여기서 정리하자고. SHJ에 대한 정보가 입수되면 바로 소식을 주게.”

    “알겠습니다. 국장님. SHJ시큐리티가 움직일 수도 있으니, 경호차량을 강화하겠습니다.”

    존 매케인의 호출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평소와 같이 장황한 설명만 늘어놓고 올 생각이었다. NSA가 눈에 걸리긴 하지만, 서로 약점을 쥐고 있는 마당에, 같이 죽자고 달려들기는 힘들 거였다. 적당히 조작된 정보를 건네주고 타협을 시도할 생각을 하며 마이클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띠리리, 띠리리’

    피곤한 눈을 붙이려던 마이클은 울리는 사이보그폰을 꺼냈다. 발신자가 표시되지 않은 전화에 마이클의 미간이 좁혀졌다. 작전을 위해 사용하는 번호를 아는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누구야.”

    ‘마이클 헤이든. 선물을 준비했는데, 잘 받아줬으면 좋겠군.’

    기계음으로 변조된 목소리에 마이클의 인상이 구겨졌다. 옆의 비서가 재빠르게 전화를 추적하기 위해 본부에 연결을 시도해 봤지만, 계속 먹통이었다. 고개를 가로젓는 비서를 바라보던 마이클은 앞 뒤의 경호차량을 확인하며 사이보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정부 요원을 협박했다간, 지구 끝까지 추적당한다는 걸 모르나 보군.”

    ‘역시 CIA 국장다운 말이군. 협박이 아니라 받은 걸 돌려주려는 것뿐이야. 잘 가게, 마이클 헤이든.’

    급히 승용차 손잡이를 당겨봤지만, 잠겨있었다. 당황한 기사가 속도를 높이려는 순간.

    ‘꽝!’

    마이클이 탄 승용차가 폭발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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