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247화 (224/264)
  • #247

    다시 사는 인생 - 247

    보잉에서 인도받은 경환의 개인 전용기는 종전의 전용기에 비해 그 크기나 화려함이 비교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침실과 욕조는 기본이었고 개인 바까지 갖춰진 개인 서재에서 경환은 노트북을 열어 경제뉴스를 읽고 있었다.

    SHJ그룹의 변화시도라는 제목으로 경제란 대부분은 SHJ그룹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테스트나 성능에 대한 기술적 보고서와 논문이 발표되지 않은 아테나-1의 선 구매가 이미 10대를 넘어섰다는 기사와 우주호텔 사업에 막대한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후속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SHJ그룹의 개편이 시작되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는 다시 한 번 여론을 SHJ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자신의 해외방문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란 것을 둘째로 치더라도, 이젠 규모에 맞는 경영스타일로 변화해야 할 시기라고 경환은 생각하고 있었다.

    “회장님, 본사의 보고로는 케냐와 터키로 인터폴에서 추적하는 다수의 테러리스트가 잠입했다고 합니다. 현지 팀원들이 급히 추적하는 중입니다.”

    “케냐와 터키요? 좀 의외긴 하네요.”

    SHJ 전용기 1호는 백악관의 에어포스 원에 맞먹는 첨단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SHJ구글의 위성과 연동, 반경 500KM까지 검색이 가능한 레이더는 물론이고 지대공 미사일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전파 교란장치와 채프 플레어까지 장착되어 있었다. 또한, SHJ퀄컴의 첨단 통신 보안기술로 디지털을 쪼개고 섞어 보내는 기술은 에어포스 원에 장착된 해브퀵을 능가한다는 평가 속에 펜타곤의 집요한 기술 제공 요청과 함께 기술유출이 되지 않도록 특별관리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테러리스트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국경을 넘었다는 건, 뒤를 봐주는 세력이 있다는 걸 뜻한다고 봅니다. 일정 변경을 심각하게 고려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열 명의 경찰로도 한 명의 도둑을 막지 못한다는 걸 알은 염려하고 있었다. SHJ시큐리티에선 경환의 해외방문에 앞서 대규모의 팀을 조직해 방문 국가에 파견했다. 경환의 동선에 맞춰 한 달 전부터 모든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었지만, 모든 구멍을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알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제이콥도 제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테니, 쉽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거로 합시다.”

    “호주와 중국은 무사히 넘겼다고 하지만, 한국부터는 CIA의 입김이 작용하는 나라입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알이 옆에 있는데 무슨 일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던져준다는 생각도 드네요. 오히려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곳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흠, 저도 회장님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좀 시끄럽다고 하니 바로 서산으로 모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습니다.”

    간단히 보고를 마친 알이 빠져나가자 경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호주와 중국 총리와의 면담은 한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었다. 아시아본사를 호주로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서 논의한 내용과 우주호텔 개발에 중국의 참여를 요청받았다는 소식이 한국에 알려지면서, 서산의 SHJ타운이 호주와 합쳐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퍼졌고, 경제계와 정치계는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국정부는 급히 경제 수석을 서산에 파견해 SHJ와의 협의에 들어갔지만, 경환의 지시를 받은 잭에게서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다급해진 정부는 경환의 입국에 맞춰 면담을 요청했지만, SHJ는 빡빡한 일정에 준비되지 않은 일정은 소화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고사했다. 경환의 전용기가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내며, 신한국정치연합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회장님이 막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SHJ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 만큼, 강한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박 대표님. 원내 진입에 성공했으니, 이젠 총선과 대선 준비체제로 변화를 줄 시기란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박화수는 서산지역의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와 여당과 야당 후보를 제치고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런 이면에는 SHJ아시아본사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박화수의 당선에 맞춰, 포럼에서 지원해 당선된 무소속 의원들과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을 규합해 신한국정치연합을 발족했다. 25석이라는 적지 않는 의원들을 규합한 신한국정치연합은 박화수를 당 대표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해, 제2 야당으로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고, 국민들의 관심이 신한국정치연합과 심석우 개인에게 쏠리자, 여당과 야당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 전략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박 대표님께 큰 짐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모든 건 회장님이 준비하신 겁니다. 심 의원님이 우리 당의 대선후보로 나서 승리할 때까진 방심하면 안 됩니다. 정치 9단들의 권모술수는 정치 초년생인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형님과 10년을 넘게 준비한 일입니다. 실수가 있다면 평생 형님 얼굴을 무슨 수로 보겠습니까? 대표님께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박화수는 전부를 말하진 않았다. 경환의 최종목표가 심석우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은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심석우의 대권을 위해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할 때였기에, 박화수는 심석우의 심기를 흔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 의원님의 발언으로 정국은 안개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우리의 정치색이 드러나고 있어 정부 여당과 야당의 견제와 회유는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당파와 계파로 나눠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 모습에 등을 돌린 지 오래입니다. 신한국정치연합이나 심 의원님은 철저히 정책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저도 박 대표님의 말씀엔 동의하지만, 신정연(신한국정치연합)의 뿌리가 약하다는 점이 큰 단점입니다.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는 해도 신정연에도 구습을 답습하는 의원이 많이 있습니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신정연은 정책으로 경쟁한다는 목표로 의원 개개인의 정책연구에 많은 지원을 집행하고 있었다. 그 밑바탕엔 박화수의 지분 매각으로 들어온 2조 원이 넘는 돈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신정연은 박화수의 자금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덤비는 여야의원들과 보수언론들을 돌파하기 위해 박화수의 자금명세를 공개하는 강수를 사용했다. 심석우를 통해 발표한 내용은 1조 3천억 원을 서해 2함대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5천 톤급 중형 이지스함 2척을 건조해 기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신정연의 운영자금으로 투입할 7천억 원의 사용명세도 철저한 회계절차를 거쳐 분기별로 국민에게 공개하겠다는 발표로 의혹의 시선을 돌렸고, 국민들은 심석우가 외쳤던 자주국방을 실천하려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신정연 내부는 아직 어수선하기만 했다.

    “내년 4월에 실시하는 총선이 우리의 첫 관문이 될 것입니다. 신정연의 색깔이 철저한 정책연구에 있는 만큼, 의원들의 옥석은 가려질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치인 80석을 총선에서 얻게 된다면, 심 의원님의 대선 행보에 큰 힘이 실리게 될 겁니다.”

    “좋은 정책을 연구해 만든다 해도 여당과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해 사장되고 있지 않습니까? 전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꾸준해야 합니다. 신정연이 연구하는 정책은 비록 여야의 견제 속에 사장되고 있기는 하지만,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계속 알려졌습니다. 여야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우린 국민들에게 신정연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목적입니다.”

    “박 대표님이 신정연의 중심을 잡아주고 계시기에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창건 이래, 당의 운영자금과 후원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호감도가 상승하고 있으니, 총선과 대선 전략도 말뿐이 아닌 국민들이 수긍하는 실현 가능한 정책들로 만들어야 할 겁니다.”

    박화수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심석우를 대선후보로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석우의 개인적 야망과 구습을 답습하려는 모습을 바꾸기 위해 십 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손을 놓고 싶었지만, 박화수는 한국을 변화시키려는 경환의 기대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서히 대선주자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심석우를 보는 박화수는 그동안의 노력이 성과를 보이는 것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의원님의 의견이 십분 반영된 정책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말뿐인 공약들이 아닌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신정연 산하의 경제연구소가 주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연구는 SHJ홀딩스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얘기는 듣고 있습니다. 총선을 대비해 지역에 맞는 정책들이 곧 나온다더군요. 이젠 SHJ와의 반목을 접을 때군요.”

    신정연이 포럼으로 정치에 모습을 드러낸 때부터, 물밑에서 이뤄지는 SHJ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신정연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외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아직 SHJ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만큼, SHJ아시아본사의 호주 이전 문제와 우주개발 사업의 참여를 통해, SHJ와의 갈등을 푸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기란 심석우의 말에 박화수는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이 만들어 놓은 마지막 작품입니다. 신정연의 최대 약점이 부족한 인적 인프라인 만큼, 이번 서산 방문을 통해 막힌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반드시 보여줘야 합니다. 시간이 되었으니, 출발하시죠.”

    대선 레이스가 일 년 앞으로 다가온 중요한 시기였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처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면담 요청까지 거절한 경환에 의해 SHJ가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하면서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경환이 만들어 놓은 판을 어떻게 키울지는 온전히 심석우의 몫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경환은 약속도 잡지 않고 무작정 공항으로 나온 청와대 경제 수석에 눈살을 찌푸렸다. 경제 수석의 간곡한 요청에 공항 VIP 접견실에서 짧은 면담을 진행한 경환은 SHJ그룹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변화시도는 철저히 SHJ그룹의 이익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한국정부와는 별개라는 점을 강조하며 경제 수석의 입을 막아버렸다. 경환이 한국계란 사실을 들어 SHJ가 한국을 떠날 일은 없을 것이라 안심했던 한국정부는 부랴부랴 후속대책을 제시하며 경환을 설득하려 했지만, 경환은 더는 할 말이 없다며 VIP 통로를 이용해 서산으로 떠나 버렸다.

    “기술연구소가 이 정도로 성과를 보이는 건, 황 소장님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산을 찾은 경환은 부모님께 간단히 인사를 드린 후, 서둘러 SHJ아시아본사를 찾았다. 황정욱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에는 잭과 코이치도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경환의 고마움에 황정욱은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핵융합 장치에서 H모드를 세계최초로 달성했고, 재작년 ELM(핵융합 플라스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의 제어가 성공하면서 ITER와의 차이를 벌렸습니다. 또한, 플라스마 불순물 제거기술이 이미 확보되었고, H모드 플라스마를 50초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20년이 가기 전에는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단지, 제가 그 끝을 보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호주정부는 핵융합실험로 건설에 큰 기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정부와 이번 기술참여를 시작한 중국정부도 자금을 무한대로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우주개발과 더불어 핵융합 기술은 SHJ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동력원이 될 것입니다. 소장님의 노력과 공로는 SHJ의 이름이 남아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70대에 들어선 황정욱의 마음을 경환이 모를 리 없었다. 경환 자신도 대체에너지 사업의 끝을 자기 손으로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모든 것을 자신이 이룰 필요는 없었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이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ITER 프로젝트는 일본과 영국, 러시아가 그 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끊임없는 분란에 와해까지 걱정할 판이었다. 핵융합에너지 연구가 ITER에서 SHJ에너지로 쏠리면서 경환은 자신의 역할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석우의 대선 행보가 시작되면, 그동안 숨겨왔던 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그때까지만 더 고생해 주십시오. 소장님.”

    “허허, 늙은이를 아주 부려 먹을 작성이시군요. 좋습니다.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힘을 내 보겠습니다.”

    “회장님, 심석우 의원과 박화수 의원이 도착했습니다.”

    심석우보다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정아와 조카들이 더 궁금했던 경환은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마음에 빚으로 남아있는 박화수와도 감정을 정리해야만 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식사는 내일 하는 거로 합시다. 그리고 코이치는 언제 떠날 건가?”

    “인수인계를 마치고 사흘 후, 떠날 예정입니다. 너무 큰 짐을 제게 주셔서 부담이 많습니다.”

    “난 코이치 자네가 잘할 거라 믿어. 비록 내가 자네를 회장으로 추천하긴 했지만, 반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걸 명심하도록 해.”

    코이치의 어깨를 두들긴 경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경환과 백년손님인 심석우를 맞기 위해 경환의 어머니는 종일 부산하게 손수 음식을 장만했다. 이미 심석우와 정아가 도착했는지 저택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얼굴에 미소를 띤 경환은 서둘러 저택에 들어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