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227화 (204/264)
  • #227

    다시 사는 인생 - 227

    2010년 3월

    “5, 4, 3, 2, 1. 점화!”

    ‘쿠르르릉.’

    카운트 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우주왕복선 한 대가 로켓과 함께 지상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NASA가 보유하고 있는 우주왕복선에 비해 동체가 작긴 하지만, 민간기업 최초로 발사된 유인 우주왕복선으로 동체 전면엔 NASA의 로고와 함께 SHJ의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주도로 건설되고 있는 ISS(국제우주정거장)에 화물을 실어 나르는 계약을 체결한 SHJ유니버스는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총 사업비 42억 불을 투자해 유니버스로 명명된 우주왕복선 NASA와의 기술제휴로 두 기를 제작하고, 수십 회에 걸친 실험비행을 통해 오늘 플로리다 케이프터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수십 기의 인공위성 발사 경험으로 우주항공에 대한 막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 독자적인 발사도 추진할 수 있었지만, 백악관과 NASA의 간곡한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경환은 발사 시스템 구축을 잠시 뒤로 물린 상태였다. 그러나 NASA의 발사비용이 회당 3억 불이 넘는 고비용을 해결하고, 단순한 화물 수송이 아닌 우주여행 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회당 발사비용은 줄여야만 했다. 우주로 사라지는 유니버스 1호를 끝까지 바라보고 있는 경환의 곁으로 NASA 그리핀 국장이 다가왔다.

    “성공적인 발사를 축하합니다. SHJ가 드디어 우주에 발을 디디게 되었군요.”

    높은 유지비용과 잦은 고장, 사고로 인해 NASA에서 진행했던 스페이스셔틀 사업은 작년 말을 끝으로 퇴역하고 차기로 준비하고 있는 오리온 계획은 2015년으로 예정되어 있어, 미국은 5년 동안 유인우주선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공백을 메꾸고 줄어드는 정부예산을 확충하기 위해서도 SHJ는 NASA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어색한 미소를 보이는 그리핀과 악수를 한 경환이 공치사를 늘어놓았다.

    “NASA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SHJ와 NASA의 협력은 지속해서 확대할 계획입니다. 자세한 건 SHJ유니버스와 협의를 하시면 될 겁니다.”

    “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지요. 이미 우리 NASA와 SHJ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아니겠습니까?”

    SHJ의 지원이 끊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그리핀이 주먹을 굳게 쥐어 보이고는 경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경환은 바쁜 일정에 따라 그리핀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내고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회장님, NASA의 COTS(상업용 궤도 운송서비스)를 지속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NASA는 우리의 경쟁사로 오비털사이언스와 계약까지 했는데, NASA에 퍼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볼튼 사장, 지금은 지켜봅시다. 어차피 지금은 NASA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SHJ가 호구 되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휴스턴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 동석한 찰스 볼튼은 4회에 걸친 우주비행사 경력과 NASA의 연구원으로 일한 경력으로 SHJ유니버스 사장으로 경환이 채용한 인물이었다. 우주선을 제작하고 발사하는 과정에 필요한 기술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나사 하나에서 시작해 최첨단의 컴퓨터 제어시스템까지 어마어마한 기술이 필요했고, 사장으로 임명된 찰스는 NASA와의 합작을 통해 기술력을 쌓으면서 SHJ유니버스를 무리 없이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NASA는 너무 고비용입니다. 회당 발사원가만 보더라도 러시아의 4배에 달합니다. COTS를 떠나 SHJ유니버스 단독으로 상용화를 추진하기 위해선 우리의 독자적인 발사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우린 지금 첫걸음을 뗀 아기 수준입니다. 러시아가 아무리 저비용이라 해도 회당 비용이 1억 불이 넘어갑니다. 1억 불도 상용화를 위해선 사실 너무 높은 비용입니다.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선 획기적인 발사 시스템을 도입해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어요. 그때까진 NASA와 협력하면서 최대한 빼 올 건 빼 와야지요.”

    찰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SHJ유니버스를 맡으면서 마땅한 수입을 발생하지 못한 채, 그동안 우주왕복선 제작에 들어간 42억 불을 포함, 총 100억 불이 넘어가는 돈을 쏟아 붓고 있었다. 자본금이 잠식된 건 오래전 얘기고 SHJ홀딩스를 통한 경환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수십 번은 망하고도 남았다. 하루라도 빨리 수익을 창출하고 싶은 찰스의 마음을 모를 리 없던 경환은 찰스를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볼튼 사장, SHJ의 미래는 SHJ유니버스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은 내부로 기술을 축적하고, 더욱 넓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있다 해서 위축될 필요 없습니다. SHJ유니버스의 목표는 독자적인 우주정거장과 호텔을 건설해 우주여행과 병행하는 겁니다. 그때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니 너무 작은 거에 얽매이지 말고, 소신껏 SHJ유니버스를 이끌어 보세요.”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경환은 찰스의 어깨에 손을 얹어 신뢰감을 전달해 주었다. 우주정거장과 호텔만 하더라도 최소 500억 불이 넘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었다. SHJ 단독으로 사업을 벌이기엔 현재의 자금력으로는 어불성설이었지만, 경환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찰스가 물러나고 경환은 창밖으로 보이는 기기묘묘하게 흩어져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바쁘게 보낸 5년간의 세월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니버스 1호가 발사에 성공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자네는 내 이름으로 제임스에게 축전을 보내도록 하게.”

    펜타곤의 보고서를 살피던 존 매케인은 안경을 내려놓고 프레드 톰슨이 건넨 보고서를 받으며 깊은 회상에 빠져들었다. 재임 초기인 2005년 말 주택 시장의 거품은 최고조에 달했다. 2001년 FRB(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 국채에 대한 정책을 바꿀 것임을 시사했고, 이 발언에 위축된 전 세계의 투자은행과 펀드회사는 40%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CDO(부채담보부증권)로 몰려들었다. 신규 CDO를 찾아 헤매던 은행들은 기존 프라임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대출인 서브프라임 대출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경제 대국인 중국과 신흥 국가들의 자금까지 CDO로 몰리자, 새로운 모기지가 필요했던 은행들은 마침내 NINA(NO INCOME, NO ASSET) 대출이 나오면서 마침내 재앙이 시작되었다.

    “그때 SHJ경제연구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는 버락 오바마가 앉아 있었겠지?”

    “그, 그건.”

    프레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 2006년 백악관을 찾은 경환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심각성을 설명하며 대응이 늦어지게 된다면 심각한 경제위기와 함께 재선은 어려울 것이란 경고와 함께 조기에 사태를 잡지 않는다면 3조 불에 달하는 손실을 보게 될 거라는 SHJ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존 매케인은 FRB와 정면으로 대립하며 금리를 인하해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을 감소시키고, 금융권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금융감독위원회를 동원, 부실 은행을 정리하는 초강수를 통해 대규모 부실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려 했었다. 그러나 FRB는 존 매케인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이 아니었다. 백악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워싱턴포스트의 주도로 언론이 백악관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자 마지못해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7년 쌓였던 뇌관은 결국 폭발했고, 다수의 서브프라임 고객들이 디폴트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대규모의 도미노 현상은 막았다 치더라도, 자산 대부분을 CDO로 가지고 있던 투자은행들은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제임스는 생명줄과 같았어. 문제는 FRB가 나와 제임스에 대해 칼을 갈고 있다는 거겠지. 그건 제임스가 풀어야 할 몫이니,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라고 보지만 말이야.”

    “FRB는 전부터 SHJ에 우호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버락 오바마를 물밑에서 지원한 것도 FRB란 소리가 있습니다.”

    백악관과 FRB의 2차전은 리먼 브러더스 처리 과정에서 다시 격화되었다. 유동자금에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던 리먼 브러더스를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이 인수하기 위해 FRB와 협상을 벌였다. 300억 불의 잠재적 부실을 미국 정부가 보증해 달라는 인수조건을 내밀자, FRB는 강한 어조로 이를 거절하며, 파산을 종용하고 나섰다. 그러나 백악관은 FRB가 보증을 거절하면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발생하게 될 구제금융은 정부에서 승인하지 않을 거란 논평으로 FRB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AIG 보험의 파산으로 연결되고 구제금융도 최소 7천억 불이 넘어갔기에 FRB는 울분을 삼키며 리먼 브러더스의 인수조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받은 건 받은 거고, SHJ가 추진하는 핵융합에너지 사업에 지분을 갖는 건 추진을 해야 하겠지?”

    “그렇지 않아도 펜타곤에서 접촉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그 금액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분 15%를 넘기는 조건으로 750억 불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뭐? 750억 불을 요구하고 있다고?”

    “SHJ는 이미 작년에 H-모드 플라스마를 30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또한, 불순물 제거기술과 플라스마 형상 제어기술, 거기에 더불어 레이저를 이용한 관성밀폐방식까지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ITER의 참여 요청을 거절하고 현재 호주정부와 50 대 50으로 핵융합실험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독일과 노르웨이의 SHJ타운이 3년 만에 완공한 것에 비해 호주의 SHJ타운은 5년이 다 돼가는 지난달에서야 완공할 수 있었다. 농지를 개간한다는 목적이 의심스럽긴 했지만, 존 매케인은 개의치 않았다. 단지, 미래 대체에너지 역할을 할 수 있는 핵융합에너지 사업에 대한 지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발등의 불이었다. 미국의 대체에너지를 확보한 대통령으로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도 SHJ의 지분은 반드시 필요했다. 존 매케인의 얼굴에 불쾌감이 퍼졌다.

    “아무리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무턱대고 퍼 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제임스 이 친구 욕심이 너무 과하구먼.”

    “형평성이라고 하는데, 노르웨이 정부가 원유와 셰일가스 50%, 현금 50%로 핵융합에너지 사업의 지분 5%를 250억 불에 매입했다고 합니다. 현재 호주정부도 풍부한 유연탄과 우라늄을 가지고, 노르웨이와 같은 조건으로 지분 5%를 매입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첩보도 있고요. 2005년도에 확보를 해야 했는데, 너무 덩치가 커졌습니다.”

    존 매케인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상용화에 성공만 한다면 750억 불은 한낱 숫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용화가 미지수인 현 단계에서 750억 불을 투자해 15%의 지분을 확보하겠다고 한다면 FRB는 둘째 치더라도 의회의 반발에 부딪힐 게 뻔했다. 곤혹스러워하는 존 매케인의 표정을 읽던 프레드 톰슨이 몸을 숙였다.

    “SHJ가 현재 필요한 부분을 우리가 해결해 준다면, 금액을 낮추고도 지분을 확보할 방법이 있을 거 같습니다.”

    앉아서 떼돈을 벌고 있는 한국정부를 생각할 때마다,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던 존 매케인은 프레드 톰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백악관 집무실은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오성그룹 회의실엔 정적이 흘렀다. 오전부터 소집된 계열사 임원들은 점심시간을 한참 지났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 회의에는 오성전자 전무로 복귀한 이철승의 모습도 보였다. 노쇠해지는 이형우는 그룹의 경영을 서서히 이철승에게 넘기고 있었지만, 물가에 내놓은 자식처럼 이철승의 행보는 이형우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다들 아실 겁니다. SHJ가 단독으로 핵융합로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비웃음을 보였다는 것을요. 정부가 23%의 지분을 SHJ에 되팔았을 때, 우린 단돈 200억 원에 지분을 모두 넘겼어요. 그런데 노르웨이와 호주가 SHJ에너지의 지분 5%를 250억 불, 즉 27조 원에 사들였습니다. 느끼는 거 없습니까? 왜 다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가만히들 있는 겁니까?”

    임원진 모두 고개만 숙인 채, 이형우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이형우는 답답했다. 믿었던 오성전자의 사이보그폰인 갤럭시 시리즈는 한국에서만 근소하게 엘리시움 시리즈를 앞설 뿐, 전 세계적으로는 10%를 밑도는 점유율을 보일 뿐이었다. 건설과 중공업 역시 SHJ엔지니어링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이형우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철승 전무, 이 상황을 어떻게 보나? 오성그룹의 생존과 관련된 질문이란 걸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거야.”

    SHJ로 인해 호되게 당했던 경험이 있는 이철승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계속된 실수를 봐주지 않을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헛기침을 내 쉰 이철승이 탁자 위에 놓인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SHJ는 글로벌경영이 아닌 SHJ를 세계의 중심에 놓으려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판단합니다. 호주와 독일, 노르웨이의 SHJ타운이 완공되자마자, 바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의 유치전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성그룹이 살기 위해서라도 경쟁상대가 아닌 협력상대로 SHJ와의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SHJ는 오성그룹이 뛰어넘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습니다.”

    “그럼 SHJ의 하수인이 되자는 얘긴가?”

    “오성그룹이 살 수만 있다면 SHJ의 하수인이 되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이미 오성전자의 지분 18%는 SHJ의 수중에 있습니다. 심석우를 통해 이경환 회장이 한국 정치에 관여할 여지가 많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SHJ가 나서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오성이 SHJ를 대신해 심석우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만만하던 이철승의 입에서 하수인이 되겠다는 말이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심석우에 대한 분석은 이형우도 동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본격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이철승에게 넘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형우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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