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222화 (199/264)

#222

다시 사는 인생 - 222

중국 항주는 13세기까지 남송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도시답게,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들로 도시의 미를 한껏 자랑하는 중국의 중요한 관광명소이기도 했다. 북경공항에서 이륙한 SHJ의 전용기 한 대가 항주공항에 사뿐히 착륙하자, 공항 입국장엔 때아닌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정부와 소원한 관계인 SHJ의 방문은 SHJ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중국정부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중국정부는 SHJ의 방문에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국빈급 방문에 준하는 예우를 보이며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건 미국 대선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성장한 SHJ와의 대립은 대외 외교와 더불어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조치였다.

중앙정부의 실세들, 특히 주석과의 독대까지 성사시킨 린다는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채, 준비된 리무진에 올랐다.

“회장님이 알리바바를 신경 쓰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베이나 아마존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린다와 함께 중국을 방문한 에릭 존슨은 SHJ홀딩스의 부사장으로 승진해 린다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중국 방문 전, 경환의 뜻을 듣지 못했다면, 자신도 에릭의 질문에 답을 해 주지 못했을 거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회장님은 중국을 극도로 경계하고 계세요. 겉으론 야후를 견제하기 위해 벌인 일이지만, 실상은 중국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려는 복안을 가지고 계신 겁니다.”

“미국 정부도 통제하지 못하는 중국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을지 전 솔직히 의문이 듭니다.”

“그건 지금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마윈이 제리 양과 돈독한 관계인 만큼, 이번 협상은 쉽지 않을 수도 있으니 준비를 철저히 점검해 보세요.”

SHJ가 정점을 찍고 있는 지금, 지칠 줄 모르는 경환의 투자 욕심은 안정적인 경영을 강조하는 린다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결정한 일은 무슨 수를 쓰든 밀어붙이는 경환의 성격을 알고 있는 린다는 투자 속도를 조율하는 선에서 돌발상황을 대비하고자 했다. 두 사람이 탑승한 리무진은 항주의 명소인 서호를 지나 항주의 번화가를 향해 향했다.

“마윈이라고 합니다. SHJ의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SHJ홀딩스의 린다 쿡입니다. 항주 날씨처럼 두 회사가 만족할만한 협상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항주는 중국에서도 관광명소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같이 식사도 하시고 편안한 일정을 보내시도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전직이 관광가이드였던 마윈은 특유의 친화력과 영어 실력으로 린다의 일행을 맞이했다. 사업가라기보다 농부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마윈의 외모는 볼품없었지만, 강하게 뿜어나오는 눈빛에서 그의 사업적인 야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중국인의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린다는 처음부터 강하게 마윈을 밀어붙였다.

“SHJ는 알리바바의 지분 매각에 관심이 있습니다. 야후가 지분 40%를 10억 불에 매수한다는 정보다 있더군요. SHJ는 11억 불을 준비했습니다. 협상을 빨리 끝내고 항주에서 유명하다는 걸식계와 동파육을 먹어보고 싶네요.”

“알리바바의 가치를 높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11억 불이라니 SHJ의 배포는 역시 대단하네요. 항주란 도시 매우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는 SHJ를 알리바바의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마윈을 보좌해 회의에 참석한 차이충신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지만, 마윈의 표정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중국인 특유의 화법으로 핵심을 벗어나 주위를 분산하려는 마윈의 의도에 린다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마윈은 린다의 미소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어색한 미소로 답을 보낼 뿐이었다.

“SHJ를 롤모델로 삼고 있으시다니, 제임스 리 회장님이 중국에서 유학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겠군요. 혹시 교통부와 경무부의 의뢰를 받아 컨설팅 업무를 담당했다는 건 들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유학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지만, 컨설팅 참여는 금시초문입니다.”

경환이 북경대에서 유학을 했던 사실은 중국인 모두 알고 있었다. 그건 경환의 중국유학이 SHJ의 성장을 일으킨 원동력이란 내용을 중국정부가 언론을 통해 홍보한 효과였다. 그러나 교통부와 경무부의 컨설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단 사실은 마윈도 듣지 못한 내용이었다. 마윈은 눈썹을 가운데로 몰며 린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SHJ 신입사원의 OJT 중엔 국제역학 관계에서 SHJ의 미래란 교육이 있습니다. 특히, 동북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교육을 하고 있죠.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법률 모든 내용을 망라합니다. 특히 중국인들의 성격, 화술, 교섭 능력 등은 가장 중요한 교육이기도 하죠.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산전수전 거기에 공중전에 잠수전까지 치른 린다를 상대하기엔 아직 마윈의 경험은 미천할 수밖에 없었다. 린다는 중국을 방문하기 전, 마윈이 중국계인 제리 양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해도 개인적 욕심에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거란 경환의 조언을 들었다. 동시에 그 욕심의 끝을 알 수 없는 중국인들의 특성상 SHJ와 야후 사이에서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린다는 이런 진행을 예상한 경환의 철두철미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스터 마윈, 동양의 표현대로 하자면, 우리를 찜쪄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소프트뱅크에 2천만 불을 받고 지분 20%를 넘긴 거로 알고 있습니다. 11억 불에 40%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잘못 보셨군요. 전 돈에 넘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SHJ의 제안은 없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마윈은 차이충신과 눈빛을 교환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SHJ가 11억 불로 알리바바의 기업가치를 부풀려 올렸다면, 야후를 통해 그 이상 받아낼 자신감이 들었다. 혹시 야후가 금액을 높이지 않는다면 그때 다시 SHJ와 협의를 진행하면 된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린다는 마윈의 그런 생각을 이미 읽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오호, 중국이 CNN을 막고 있어 잘 모르시나 본데, 야후는 10억 불 투자도 지금은 곤란한 상황입니다. 야후의 대주주인 써드포인트에서 이사회 교체를 추진하고 있거든요. 그럼 제리 양도 쉽게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겁니다. 제 제안을 일부 수정하겠습니다. 11억 불도 과하다는 생각이네요. 10억 불에 40%입니다.”

“거절합니다. 여긴 SHJ가 함부로 날뛰는 미국이 아닙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걸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중국인의 성격이 마윈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SHJ나 야후가 아니더라도 알리바바의 지분을 인수할 기업은 넘친다는 게 마윈의 자신감이었지만, 이 모든 게 경환의 작품이란 사실은 알 수 없었다. 린다는 여러 장의 문서를 마윈과 차이충신에게 건넸다.

“북경 중앙정부에서 SHJ의 전자상거래 진출을 요청하는 문서니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중앙정부에선 알리바바의 지분을 SHJ가 인수해 주길 바라더군요. 만약 미스터 마윈이 우리 제안을 거절한다면, SHJ는 중국에 전자상거래를 위한 법인을 설립하고 B2B, C2C, B2C에 대한 영업을 시작할 겁니다. 이익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알리바바를 죽이기 위한 법인이 될 겁니다. 아! 그리고 제안 금액은 10억 불에서 9억 5천만 불에 40%로 조정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금액은 계속 내려가게 될 겁니다.”

마윈은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훑으며 린다가 건넨 문서를 살폈다. 국무원의 수장인 총리가 날인한 문서는 린다의 말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중앙정부에서 이번 인수를 SHJ로 결정했다면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마윈에겐 없었다. 중국에서 기업이 정부를 이기는 방법은 자신의 힘으로 쿠데타에 성공하는 길밖엔 없었기 때문이란 걸 마윈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상처 입은 자존심이 마윈의 발목을 붙잡았다.

“지분 40%를 넘긴다면 경영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지분을 조정합시다.”

“뭐가 무섭습니까? 현 주주와 20%를 가지고 있는 소프트뱅크를 백기사로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9억 5천만 불은 9억 불로 수정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생각할 시간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차이충신이 마윈의 독단적인 반대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11억 불에서 시작한 금액은 벌써 2억 불이나 빠져나갔다. SHJ가 중앙정부까지 등에 업고 철저히 지분 인수를 준비했다면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걸 차이충신은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고집을 피우기보다 최대한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할 때였다. 린다는 마윈과 차이충신의 틈을 확인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린다가 입을 열기 위해 의자에서 등을 떼는 순간, 마윈이 급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9억 불에 지분 40%를 넘기겠습니다. 그 대신 SHJ가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원합니다.”

“현명한 결정을 해 주신 미스터 마윈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요구하신 내용은 정식 계약서에 첨가하도록 하죠. 그리고 우리는 투자에 대한 관리 감독을 위해 재무관리 이사 자리를 요구합니다.”

기업을 장악하려면 재무와 인사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건 기본이었다. 인사까지 건드린다면 기세가 꺾인 마윈이라도 극심하게 저항할 것을 예상한 린다는 재무만 확보하는 선에서 이번 인수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서로 좋은 협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주의 명물인 걸식계와 동파육을 빨리 먹고 싶어졌네요. 오늘은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마윈은 아랫입술을 깨물었지만, 린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만큼 중앙정부에서 밀고 있는 SHJ는 마윈에게 있어 철옹성으로 다가왔다. 마윈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써드포인트가 본격적으로 이사회 교체를 주장하며 주주들을 설득하고 나서자, 제리 양은 사면초가로 빠져들었다. 써드포인트의 입장은 명확했다. 자신이 주장한 매년 19%의 매출을 증가시켜 2010년까지 현재 매출을 70%까지 증가시키고 이익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미래계획을 전면으로 반박하며, 현재 8불대에 묶여있는 주가를 25불로 인수하겠다는 SHJ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물고 늘어졌다. 더욱이 S&P는 야후의 미래계획이 허황하고 형편없는 전략이라는 분석을 내놔, 주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 버렸다.

‘주주들의 등쌀에서 자유로운 SHJ가 부럽군.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어.’

믿었던 MS와의 제휴가 SHJ란 변수에 의해 떨어져 나가며 자신을 밀어줄 동력을 잃어버렸다. 야후의 지분 3.6%를 가지고 있을 뿐인 제리 양은 이번 써드포인트의 집요한 공세를 막아낼 힘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티비를 켠 제리 양은 손이 떨리며 쥐었던 리모컨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이런 젠장. 마윈 이 자식이.’

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어 마윈의 이름을 찾아 버튼을 눌렀다. 여전히 티비 화면에선 SHJ가 9억 불을 투자해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지분 40%를 인수하는 MOU를 체결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야후의 자리가 불확실함을 느끼며 제2의 탈출구로 찾은 알리바바가 자신의 손에서 떠났다는 것을 안 제리 양은 분노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제리 자넨가?’

“형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SHJ에게 지분을 팔다니요. 이미 저와 얘기를 끝냈지 않습니까!”

‘일이 이 지경으로 될 줄 나도 몰랐네. 미안하네.’

“소프트뱅크의 미스터 손을 소개해 준 것도 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까? 형님의 성공 뒤엔 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SHJ라니요!”

씩씩거리는 제리 양이 들고 있는 휴대폰에선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휴대폰을 내 던지고 싶었지만, 제리 양은 그럴 수 없었다. 마지막 끈인 알리바바까지 놓친다면 자신이 준비한 히든카드를 잃어버리는 일이었고, 더욱이 회장 자리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사업적 재기를 노릴 기회까지 날리는 치명타였기 때문이었다.

‘제리, 중국정부가 SHJ를 밀어주고 있었네. 만약 내가 SHJ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중국정부의 의사를 거절할 대가로 알리바바는 공중분해 될 수도 있었단 말일세. 더욱이 SHJ는 전자상거래 진출까지 승인받은 상태였어.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나와 약속한 신의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리 양의 언성이 높아졌다. SHJ의 뒤에 중국정부가 있다면, 마윈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자신의 처지를 먼저 걱정해야만 했다.

‘린다와 식사를 하던 중이었네. 긴말 못해 미안하네. 이만 끊겠네.’

“형님! 형님! 야, 이 개자식아!”

제리 양은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산산이 조각난 휴대폰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졌고, 제리 양은 소파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던 제리 양은 자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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