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221화 (198/264)

#221

다시 사는 인생 - 221

야후와의 인수협상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300억 불을 제시한 SHJ의 제안을 야후는 매몰차게 거절해 버렸다. 디스플레이 광고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시도에서 추진된 야후의 인수가 초반부터 큰 벽에 부딪힌 형색이었다. 오랜만에 SHJ구글을 찾은 경환은 자유롭게 연구에 매진하는 직원들과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래리, 오랜만이야. 혈색이 좋은 걸 보니,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나 보지?”

“어? 언제 오셨습니까? 회장님이 붙여준 트레이너 무서워서라도 운동은 빼먹지 않고 있습니다.”

경환은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래리와 악수를 한 후, 래리의 책상 앞에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를 끌어 주저앉았다. 래리와 열심히 토론하던 금발의 연구원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환에게 인사를 건넸다.

“래리, 자네 사무실이 왜 이렇게 빛나나 했더니 이유를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어. 소개 좀 해 주겠나?”

“스탠퍼드에서 기호 시스템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친구입니다. 현재 구글맵과 구글서치, 구글메일, 구글툴바의 핵심 연구원이고, 검색 홈페이지의 레이아웃을 감독하고도 있고요. 그런데 이 친구의 전문분야는 인공지능입니다.”

20대 후반으로 앳돼 보이는 여성의 화려한 경력에 경환의 눈은 커지고 있었다. 더욱이 전문분야가 인공지능이란 말이 경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SHJ구글만 하더라도 25,000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어, 직원의 프로필을 일일이 파악하는 건 예전에 포기한 상태였다.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마리사 앤 메이어라고 합니다. 앤이라고 불러 주세요.”

“앤, 반가워요. 혹시 전에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안을 제출한 적이 있었지요? 인상 깊었습니다.”

자신을 경환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앤의 얼굴은 홍조로 물들었다. 경환이 건넨 악수를 받은 앤은 경환이 내어 주는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고, 경환은 래리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래리, 디스플레이 광고가 야후에 뒤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야후에서 인수제안을 거절한 거 때문에 찾아오신 거군요? 저보다는 앤이 더 전문가니 앤에게 물어보는 게 정확할 거 같네요.”

경환은 20대 후반의 앤이 연구뿐만 아니라, 사업적 분석에도 탁월하다는 래리의 답변에 큰 관심을 보이며 앤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미 린다를 통해 분석자료를 넘겨받았지만, 현장의 직접적인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경환은 앤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크게 심호흡을 한번 내쉰 앤이 경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우린 수입모델을 다각화해 수익을 창출하고 야후는 디스플레이 광고에 올인을 하고 있는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색점유율은 우리가 60%, 야후가 21%, MS가 10%입니다. 인터넷광고 점유율은 우리가 35%, 야후 15%, MS가 7%로 경쟁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스플레이 광고는 우리가 야후와 MS에 뒤지는 형편입니다.”

경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앤이 말한 내용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암기된 수치와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경환은 앤의 사업적 기질을 확인하고 싶었다.

“구글스토어, 구글라인, 구글유투브를 통한 온라인 판매와 특허권 관리 등으로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보네요.”

“그렇습니다. 구글애드센스의 한 부분이지만, 야후는 디스플레이 광고가 무너지면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봅니다. 굳이 야후를 인수하는 거보단, 애드센스에 속한 디스플레이 부분을 구글라인과 연동해 확대하는 전략을 취한다면 점유율을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가 신경을 집중한다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야후보단 이베이와 아마존을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환은 앤의 사업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로 인해 경험이 부족하다는 단점만 보강한다면 SHJ에서 한몫할 인물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러나 그녀가 제출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연구도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래리, 앤, 두 사람 모두 나와 같이 슈미트 사장을 찾아가 보자고.”

래리와 앤이 서두르는 경환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300억 불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야후를 먹는 거보단, 야후의 사족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백기를 받아내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총리! SHJ와 협의한 내용을 승인할 수 없다니, 분명 제게 전권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총리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에르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분데빅을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SHJ의 긍정적인 답변을 가지고 노르웨이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탄탄대로인 자신의 앞날에 대한 환상으로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총리는 에르나의 협상 내용에 대해 제동을 걸어버렸다.

“전권을 준 건 사실이지만, 적용 세율을 에르나 마음대로 하란 소리는 없었어요. 그리고 셰일가스에 국한한 조건이 왜 석유와 가스 부분으로 확대된 겁니까!”

“SHJ도 바보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북해의 셰일층 지질이 복잡해 단기적으론 경제성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단 말입니다. 영국과 독일, 스페인까지 SHJ타운을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상황에서 우리가 내세울 게 도대체 뭐가 있단 말입니까!”

에르나는 분데빅의 얄팍한 속내에 분노를 분출하고 있었다. 정치적 영향력이 급격히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벌인 치졸한 짓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속한 보수당의 대표자리를 맡고 있었지만, 영향력은 분데빅을 따라 잡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두 사람의 신경전이 불꽃을 튀기면서 총리 집무실엔 한기로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우리는 독재국가가 아니에요. 국민들에게 모든 정보가 공개되면 SHJ에 주는 혜택에 대해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될 겁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에르나 장관이 질 수 있겠습니까?”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의회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SHJ타운의 유치 필요성을 피력하고, 모든 내용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공개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 기회를 차버릴 국민들이 결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르웨이는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높은 나라였다. 에르나는 분데빅의 말꼬리를 잡아 국민들에게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SHJ에 대한 호감도는 높았고, 방송을 통해 SHJ타운에 대한 환상 또한 가지고 있다는 점이 에르나의 자신감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분데빅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파고들어 오는 에르나의 거센 저항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총리, 만약 이 문제를 총리 독단으로 처리하려 한다면, 장관이 아닌 보수당의 대표 자격으로 총리에게 맞서게 될 겁니다. 또한, 저는 이 순간부터 SHJ타운 유치에 대해 노동당에 협조를 요청할 수도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SHJ의 의중이 영국과 독일로 기울고 있는 마당에, 우리의 답변이 늦어진다면 일말의 기회도 사라지는 겁니다. 그 책임은 모두 총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겁니다.”

에르나의 확신에 찬 모습에 분데빅의 인상이 구겨졌다. 국민들의 지지도가 노동당으로 급속히 기울면서 정권 재창출은 점점 물 건너가고 있었다. 분데빅은 에르나의 강한 저항에 자신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노동당의 동의를 얻는다면, 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할거요.”

“알겠습니다. 지금 하신 말씀 반드시 이행하시리라 믿겠습니다. 이번 총리의 결정은 노르웨이의 백 년 미래를 준비하는 현명한 판단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국영회사인 STATOIL의 전폭적인 지지가 이미 자신의 손에 떨어진 상황에서 노동당의 협조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총리실을 벗어나는 에르나의 입가에 미소가 퍼지고 있었다.

“슈미트 사장님, 뭘 그리 고민하고 있습니까?”

“회장님 오셨습니까? 쉽게 생각했던 야후 인수가 난항에 빠져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에릭은 느닷없는 경환의 출현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환은 에릭의 맞은 편에 놓인 회의용 의자에 걸터앉았다. 에릭은 경환의 뒤로 래리와 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이유가 궁금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능력 있는 앤을 그냥 썩힐 생각입니까?”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앤을 썩히다니요?”

에릭의 당황한 모습에 경환은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농담을 받아주지도 못하는 에릭을 불쌍한 듯 바라보던 경환은 두 사람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 서둘러 설명을 해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환의 말을 끝까지 듣던 에릭은 앤을 천천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제안을 언론을 통해 흘린다면, 야후 지분 5.5%를 가지고 있는 써드포인트가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물론 야후의 주가가 계속 빠진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하겠지만요. 우린 그 틈을 노려 디스플레이 광고를 대대적으로 손본다면 쉽게 목적을 이룰 수도 있겠군요.”

헤지펀드인 써드포인트는 철저히 주주의 이익을 위해 투자를 집행하고 있었고, 실적 부진과 주가의 하락이 지속한다면, SHJ의 인수 제의를 거절한 경영진을 두고 볼 위인들이 아니었다. 자중지란에 빠트릴 수만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기회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야후가 10억 불을 준비해 중국 알리바바의 지분을 인수하려는 계획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린다에게 따로 지시는 했지만, 야후를 몰아세워 알리바바의 지분 인수계획을 막을 필요가 있습니다."

경환의 주위에 있던 세 사람은 알리바바에 관심을 보이는 경환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계인 제리 양이 중국업체인 알리바바의 지분 40%를 인수하기 위해 10억 불에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세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일이었다.

“B2B(기업 간 전자상거래) 알리바바를 시작으로, 2003년에 C2C(소비자 간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위해 TAOBAO를 런칭했다고 알고 있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제리 양과 알리바바의 마윈이 친밀한 관계라고 알고 있는데요.”

“중국이란 나라가 워낙 인구수가 많다 보니, 전자상거래는 성공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우선 야후를 먹지 못하더라도 야후가 추진하는 알리바바의 지분은 우리가 먹을 생각입니다. 저는 알리바바의 성공을 중국 한곳에 국한할 생각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밀접하더라도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겁니다.”

세 사람은 경환의 음흉한 미소에 서늘함이 뒷목을 당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알리바바의 성공보다는 미국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만든다는 계획에, 중국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환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세 사람의 반응을 무시한 채, 경환은 소프트뱅크가 야후가 가진 알리바바의 지분을 갉아먹기 전에 작업을 서두를 생각이었다. 이미 린다를 중심으로 SHJ시큐리티가 움직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네요. 슈미트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여기 있는 앤에게 독자적인 연구를 맡겨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앤은 지금도 많은 업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까지 할당한다면 너무 과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맡은 업무는 다른 연구원에게 이관을 시키고, 앤에겐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구를 시키는 게 어떨까 해서요. 사업적 성과를 보인다면 부서를 분사시켜 법인을 설립해도 되고요. 그럴 경우, 회사는 앤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자신의 얘기가 흘러나오자 귀를 세워 듣고 있던 앤은 성과에 따라 회사를 맡기겠다는 경환의 말에 저절로 입이 벌려졌다. 전문분야가 인공지능이었긴 하지만, SHJ구글 입사 후, 자신의 분야와는 상관없는 업무를 맡아 왔었다. 그러나 일에 대한 보람과 고속 승진으로 큰 불만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최고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에릭과 래리, 세르게이가 존재하는 SHJ구글 안에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앤은 경환의 제안에 침을 삼켰다.

“앤, 회장님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앤의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SHJ구글의 한 개 부서로 시작해 지금은 독립 법인체로 운영하는 SHJ유니버스를 떠올리고 있을 때, 경환의 부드러운 음성이 앤의 야망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앤, 앞으로의 미래 사업은 대체 에너지와 우주 산업, 그리고 인공지능이 대세를 이룰 거로 판단합니다. 기존의 인공지능 사업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획기적인 사업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지 않나요?”

한번 믿고 결정한 투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밀어준다는 경환의 투자 철학을 잘 알고 있던 앤은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회, 회장님. 믿고 맡겨 주신다면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미모만 상당한 게 아니라, 자신감도 대단하네요. 기대가 큽니다. 세부계획은 슈미트 사장과 상의해서 보고해 주세요.”

SHJ구글의 방문으로 경환은 뜻밖의 수확을 얻었지만, 야후는 제2의 성장기를 놓치는 불운을 맛봐야 했다. 네 사람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즐기고 있을 때, 중국 항주에서도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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