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202화 (179/264)
  • #202

    다시 사는 인생 - 202

    라이스대학에서 진행됐던 정우에 대한 지능검사는 IQ 245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휴스턴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SHJ 회장의 자식이 천재라는 소문과 함께 캘리포니아 공대의 입학제안이 들어오자 라이스대학에선 휴스턴 시 정부와 학교총장이 직접 나서며 정우를 타교에 뺏기지 않기 위해 물밑작업을 치열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경환과 수정은 정우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우와 희수가 방학을 맞이해 한국에서 긴 휴가를 보내기로 한 경환은 SHJ타운의 운영을 부회장인 황태수에게 넘기며 마지막 점검을 위해 모든 경영진을 소집했다. SHJ퀄컴은 애플의 아이폰을 출시 전부터 경계했지만, 애플의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와 경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10%대에서 오르락내리락을 계속하고 있었다.

    “두 달가량 서산 SHJ타운에서 업무를 하겠습니다. 휴스턴은 황태수 부회장님이 경영을 린다 쿡 사장님이 자금을 맡아 주세요. 지금 자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엘리시움의 판매가 급성장하고 SHJ구글과 SHJ플랜트의 영업매출이 급진전하면서 750억 불의 가용자금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된 자금을 더한다면 현 시가로 천억 불이 넘습니다. 이런 와중에 월가에서는 우리가 SHJ퀄컴의 지분 15%를 언제 시장에 풀지 관심이 증폭되고 공시요청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SHJ퀄컴의 주식은 이미 1,500불을 돌파하며 식을 줄 모르는 황제주로 등장했지만, 4천만 주밖에 풀리지 않아 거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SHJ퀄컴과 SHJ구글은 성장을 지속하며 IT업계의 새로운 공룡을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고 새로운 기술개발과 함께 M&A의 큰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R&D(연구개발)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었지만, 가용자금은 매년 증가하는 특이한 상황이었다. 경환은 린다의 보고에 흡족함을 표시했다.

    “가용자금을 적정선에서 확보하고 나머지는 R&D와 직원 복지에 투자하십시오. 특히 서산의 기술연구소는 막대한 투자에도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보니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투자를 요청받기 전에 미리 그 이상으로 지원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가 버는 만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미지를 심어줘야 합니다. 각종 기부와 지역사회 복지에 신경을 쓰십시오. 백악관과 약속한 SHJ퀄컴의 지분 15%는 당분간 시장에 내놓을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알고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SHJ그룹의 적정 가용자금을 다시 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린다는 경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SHJ퀄컴의 상장으로 400억 불가량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백악관은 처음 약속한 사항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가용자금이 넘치는 상황에서 15%를 시장에 풀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경환의 생각에 린다 또한 동조하고 있었다.

    “슈미트 사장님, 인공위성이 5기 발사되었고 내년 말까지 5기를 더 발사하게 된다면 SHJ구글만으로는 운영이 힘들 거 같아 보이는데, 대안은 있습니까?”

    “회장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아직은 운영에 큰 문제가 없지만, 내년 후부터는 특수목적을 가진 위성을 우리 기술로 만들 생각입니다. 따라서 현재 운영 중인 유니버스(UNIVERSE) 팀을 확대해 분사시키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인원을 확보하시고 분사계획을 수립해서 보고해 주십시오.”

    “회장님, 아직 보고드릴 상태는 아니지만, 장기계획으로 자체발사대를 보유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경환은 에릭의 보고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총 백기 이상의 위성 발사계획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체 발사대를 보유한다는 것은 막대한 자금뿐만 아니라, 유지비도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수지타산이 맞겠습니까?”

    “NASA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보니, 자금력에서 밀리는 스페이스X는 우리와의 경쟁에서 현재 한발 물러나 관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NASA에서도 스페이스X가 추진하던 사업을 우리가 진행해 줄 것을 간접적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공위성을 넘어 우주왕복선을 우리 손으로 갖게 된다면 자체발사대는 꼭 필요하다는 분석입니다.”

    미래산업의 동력은 대체에너지와 우주산업이라는 판단에 앨 고어와의 담판으로 얻어낸 결과였다. 경환은 자칫 밑 깨진 항아리에 물만 부어 넣을 수 있는 자체발사대 건설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텍사스 주 정부와 NASA와 협상을 진행하십시오. 정확한 실사 보고서가 나온 후에 다시 검토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보고서를 작성해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엘리시움 후속모델은 언제 출시 예정입니까?”

    중국 외교부의 유감 성명 발표에도 SHJ는 중국 사업에 대한 철수를 결정했고, 베트남과 태국, 인도와 합작을 통해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중이었다. 중국정부는 SHJ구글의 검색을 차단하고 엘리시움의 수입을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해 맞서고 있었지만, 아시아와 유럽의 지속적인 판매성장으로 심각한 영향은 없는 상태였다. 어윈은 경환의 질문에 빠르게 보고를 시작했다.

    “올 4/4분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오성전자가 OS개발을 중단했고, 노키아와 에릭슨이 컨소시엄에 가입하면서 SHJ구글의 영향력이 서서히 증대되고 있습니다. 중국정부가 SHJ구글의 자체 응용프로그램의 구동을 막고 있지만, 이 조치는 중국의 IT 기술을 퇴색시키는 조치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중국정부와는 강경 대응을 유지하세요. 길을 잘못 들여놓으면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백기 투항이라는 판단이 들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시면서 SHJ구글은 빠르게 철수하시고, SHJ퀄컴은 특허사용 중단으로 중국정부를 압박하십시오.”

    경환은 중국정부와의 강 대 강 전략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무대포식의 중국전략에는 더 강한 무대포로 맞서는 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어느 정도 회의가 끝나갈 무렵 황태수가 조용히 의견을 개진했다.

    “앨 고어의 방문은 사전 협약대로 이뤄질 거 같지만, 청와대에서 요청한 노기찬 대통령의 서산방문에 대해서 검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네요. 느닷없이 서산을 방문하겠다는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경환은 청와대의 제안이 달갑지 않았다. 노기찬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을 탓한다기보다 제대로 국정을 이끌지 못하는 주변 인물들의 한계성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SHJ아시아본사는 청와대의 요청에도 답을 뒤로 미룬 채, 분위기 파악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한국정부는 사면초가입니다. 탄핵이 기각되었지만, 국정운영엔 심각한 타격을 받은 상태이기도 하고요. 한국정부는 우리를 이용해 앨 고어와의 협상에 우위를 점하고, 지지부진한 재벌개혁과 경제 활성화를 이끌려는 노림수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뿌리가 약하다는 게 한국정부의 아킬레스건이겠지요. 대통령이 똑똑하다고 밑의 수하들이 똑똑하다고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노기찬 대통령을 만난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뭡니까?”

    전임 정부들과의 협상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SHJ아시아본사는 한국정부의 어떠한 간섭에도 콧방귀를 뀌며 독자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한국의 기업순위 1, 2위를 다투는 오성그룹과 대현그룹의 주식의 상당수가 외환위기를 통해 SHJ의 수중에 떨어졌다. SHJ가 전경련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 영향력까지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경환은 노기찬의 생각과 달리 SHJ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다.

    “현재 한국은 국론분열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아울러 군대의 분위기도 좋지 못한 상황이고요. 또한, 미국정부와의 좋지 못한 노기찬 대통령과 만난다는 건 우리에게 득보단 실이 많다고 봅니다.”

    경환은 황태수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황태수의 말대로 득보단 실이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노기찬 또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순간 떠올랐다.

    "HIGH RISK HIGH RETURN인 만큼, 사면초가인 한국정부를 밀어준다면 더 많은 이익을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득권 세력이 현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노기찬 대통령이 아닌 현 내각과 여당을 믿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의 확답을 받아낸다 해도 그 약속이 지켜지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그럴 바에야 심석우 본부장의 입지를 더 키우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경환은 긴 한숨을 내뿜었다. 한국의 정치만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정치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정치보다도 한국의 정치는 쉽게 발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진흙탕이라는 게 경환을 깊은 고민에 빠트렸다.

    “이렇게 합시다. 몇 가지 퍼포먼스를 준비해 심석우 본부장과 SHJ가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앨 고어의 방한 이후로 해서 심석우 본부장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해 주시고, 청와대의 요청을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노기찬 대통령 방문 후에 서울시장 측의 제안도 받아들이십시오.”

    “차기를 노리는 서울시장과도 만나보실 생각입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은 경제인 출신인 서울시장이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경환은 황태수의 대답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경환의 머릿속엔 청와대나 서울시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환은 두 사람과의 만남에서 확실한 이득을 챙길 생각이었다. 한국정부나 서울시장보다는 SHJ의 이익이 경환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중요한 사항은 서산에서 보고를 받겠습니다. 이번 한국방문은 기술연구소의 연구진행상황을 확인하고 SHJ의 미래를 점검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부회장님은 법정 한도 내에서 존 매케인 캠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마십시오. 앨 고어 대통령이 눈이 뒤집힐 정도라도 상관없습니다.”

    회의를 마친 경환은 전용기가 준비된 사설비행장으로 향했고, 미리 비행기에 탑승한 가족들과 함께 긴 여행을 시작했다.

    경환의 전용기가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을 때, 서산 SHJ타운 내부의 깊숙한 곳에선 에릭과 함께 체포된 존 해밀턴에 대한 심문이 삼엄한 보안 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존 해밀턴의 배후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SHJ시큐리티는 휴스턴의 정예요원까지 파견하며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했다. 초췌한 모습의 존 해밀턴은 양손과 양발이 모두 묶인 채, 사방이 온통 흰 벽으로 된 방의 중앙 책상에 앉아 있었다.

    “지문이나 홍채, DNA를 통해서도 자네의 실체가 파악되지 않더군. 귀신을 만들 정도의 조직이라니 정말 대단해.”

    “카일 디푸어, 당신이 직접 심문을 하다니, 내가 살아나 가긴 틀린 거 같군.”

    존 해밀턴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SHJ시큐리티라고 판단은 하고 있었지만, 수장인 카일이 직접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은 살아서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이었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수갑을 찬 신세가 된 존 해밀턴은 삶의 끈을 놓을 수도 없는 신세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유일하게 어깨의 문신을 지운 흔적이 있더군.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자네의 신분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야. 자네도 우리의 능력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지 않겠어?”

    “우리와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로군. SHJ가 입을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퍽.’

    카일의 눈은 매섭게 빛나며 존 해밀턴의 가슴을 구둣발로 가격했다. 책상과 연결된 쇠사슬로 넘어지진 않았지만, 존 해밀턴은 심한 고통에도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너무 과격한데? SHJ시큐리티의 사장이라 해서 기술이 녹슬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명불허전이야.”

    “후후, 칭찬해줘서 고마워. 웬만한 고문에는 자네에게 효과가 없을 거로 생각하거든. 그래도 해볼 만큼은 해 볼 생각이야. 스코폴라민하고 암페타민, 피프라드롤 중에서 맘에 드는 거로 하나 골라봐. 약물 훈련도 돼 있겠지만, 자네가 밥만 축내는 거보다는 좋잖아?”

    CIA의 자백 유도제로 쓰고 있는 약물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존 해밀턴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약물은 몰라도 스코폴라민은 소량만 사용해도 자의를 상실하게 하여 좀비약으로 불릴 정로도 악명이 자자한 약물이었다. 존 해밀턴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는 걸 목격한 카일은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고 걷어 올렸다.

    “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어. 따라서 쉽게 가든, 어렵게 가든 자네가 가는 길의 목적지는 어차피 한 곳이야. 선택은 온전히 자네 몫이니 알아서 하라고. 우선 쉽게 가 보자고. 이름이 뭐지?”

    “후후, 직접 알아봐.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니까.”

    카일은 음흉한 미소를 건네며 신호를 보냈다. 카일의 뒤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부하가 주사약을 카일에 건네자 카일은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존 해밀턴 곁으로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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