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98화 (175/264)
  • #198

    다시 사는 인생 - 198

    애플이 엘리시움의 뒤를 이어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출시했지만, 아이패드와 달리 아이폰의 판매는 애플의 주주를 만족시키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엘리시움의 꾸준한 강세와 모토로라와 오성전자, 금성전자 등에서 연이어 사이보그폰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애플의 폐쇄성과 엘리시움과 경쟁할 만한 응용프로그램의 부재가 더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플의 고정 이용자들로 인해 10%대의 점유율을 보이며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었다.

    SHJ퀄컴은 4천만 주의 희소성으로 인해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 지금은 1,300불을 호가하고 있었지만, 시장에 나오는 주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복잡했던 2003년을 어렵게 보낸 SHJ는 새로운 전기가 될 2004년을 맞이해, 나사와 합작한 위성사업으로 이미 3기의 위성을 우주에 띄운 상태였다. 위성 한 기에 2억 불의 높은 비용이 소요되는 사업이었지만, SHJ퀄컴의 상장과 SHJ의 안정적인 수입구조로 SHJ의 자금운용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회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집무실이 아닌 저택의 서재로 찾아온 에릭으로 인해 경환은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슈미트 사장님, 급한 일이라도 생기셨나요?”

    “중국에서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정부에서 중국 국내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인터넷 영업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중국정부의 구글 차단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중국 정부가 행동에 나서자 경환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작년에 있었던 사이버 공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중국은 61398 부대의 재편을 위해 시간을 벌어야만 했고, 그 처음을 SHJ구글로 선정한 듯했다. 한편으론 사이보그OS 컨소시엄에 참여하기 위해 휴스턴을 제집 드나들 듯하면서도 SHJ구글에 칼을 들이대는 중국정부의 이중적인 자세에 어이가 없었다.

    “모든 중국 사업을 접고 철수한다면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중국정부의 견제로 서버를 홍콩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습니다. 단지, 감정싸움이 엘리시움까지 이어진다면 중국판매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끌려가기 시작하면 안방까지 내 달라고 할 겁니다. 중국 시장이 아깝기는 하지만, 강경한 견해를 밝히세요. 그리고 SHJ퀄컴과 상의해 중국으로 수출되는 칩셋을 막고, 컨소시엄에 참여한 제조업체들과 공동전략을 만들어 보세요.”

    “애플이 이 기회를 이용해 중국시장의 판매를 늘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SHJ는 사업 초기부터 중국을 견제하며 언제라도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그 피해는 없었지만, SHJ의 뒤꽁무니를 쫓아오는 애플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을 에릭은 우려했다. 그러나 경환의 생각은 에릭과 달랐다.

    “중국 사업은 양면이 존재합니다. 파이가 커 보인다고 달려들었다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본전이 생각나다 보면 자신이 알몸이 되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곳이 중국입니다. 그런 시장 애플한테 줘 버린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세요. 중국도 쉽게 우리를 치지 못할 겁니다.”

    SHJ가 중국의 협박에 강경한 자세로 중국 사업 전체를 철수할 준비를 하는 것과는 다르게 백악관은 중국의 변화된 경제정책으로 골머리를 썩이기 시작했다. 사이버전으로 한 수씩 주고받은 미국과 중국은 2차전을 경제로 옮겨 상대방에 카운터 펀치를 먹이기 위해 기회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한발 빨리 움직였다.

    “이런 젠장, 왜 하필 지금이냐고.”

    “우려할 정도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중국은 경기과열에 따른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연착륙시킨다는 의미에서 재정과 금융의 긴축재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절묘합니다.”

    앨 고어는 인상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중국의 긴축재정 발표는 바닥을 치고 상승하는 주가를 다시 곤두박질치게 하였고, 특히 미국의 경기 하락은 재선을 준비하고 있는 앨 고어에 악재로 작용할 소지가 농후했다. 다니엘을 바라보는 앨 고어의 미간이 급속도로 좁혀지고 있었다.

    “결국은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을 긴축재정으로 돌파하고 작년에 있었던 사이버전을 보복하겠다는 의미가 강한 거 같은데.”

    “아직 공격의 주체를 파악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심증만 가지고 우리를 지목한 거겠죠. 보복의 성격이 짙지만, 자국의 경제정책에 대해 우리가 간섭할 명분이 없다는 게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후의 진행은 어떻게 될 거라고 분석을 하는 건가?”

    “중국의 금리가 인상되겠지만,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8% 후반대로 조정기를 거치게 될 거란 분석이 많습니다. 아울러 에너지와 원자재 부문에서 중국의 싹쓸이가 예상되고, 우리의 IT 기업의 매출이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 IT버블 붕괴에 못지않은 여파가 있을 것이란 의견이 대세입니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며 머리를 들기 시작한 중국이 괘씸했지만, 마땅한 제지수단이 없는 미국은 중국에 있어 종이호랑이일 수밖에 없었다.

    “IT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면 SHJ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단 소린가?”

    “중국정부가 국내법을 준수하라며 SHJ구글을 압박하고 있지만, 의외로 모든 사업을 중국에서 철수하겠다고 맞불을 피우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SHJ의 주가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습니다.”

    앨 고어는 경환의 경영방침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모든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며 막대한 투자를 집행하고 있던 시기에도 SHJ는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의 투자에 집중할 뿐, 중국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앨 고어는 경환과의 독대에서 나눴던 얘기를 떠올리며 중국에 대한 견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니엘, 다음 달에 있는 한국 방문은 잘 준비되고 있겠지? 제임스와 약속한 일을 이번엔 지켜야 할 거 같아.”

    “한국정부를 길들이기 위해 방한 일정을 연기한 게 한국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한 거 같습니다. 감정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몇 가지 퍼포먼스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임스에게 이런 사실을 통보해 주게.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지금은 SHJ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야.”

    다니엘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대답을 대신했다. SHJ 주도로 비밀리에 수행했던 KILL THE DRAGON 작전은 백악관을 놀라게 하고도 남았다. 말로만 들어왔던 SHJ시큐리티의 정보수집 능력과 작전능력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NSA도 SHJ시큐리티라면 한 수 접어준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각 정보기관은 SHJ시큐리티와의 협조체계 구축을 위해 물밑작업을 하고 있지만, 사이버 공격 이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백악관으로 인해 SHJ는 백악관과 심한 갈등을 보이기까지 했다. 다니엘은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SHJ는 연방 정보기관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백악관에 대한 무언의 항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면, 제임스 리 회장의 협조는 절대 얻을 수 없다고 봅니다. 공화당의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이 SHJ와 선을 대기 위해 은밀히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애국심과 솔직함을 내세워 호감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존 매케인은 앨 고어도 벅찬 인물이었다. 반골성향으로 공화당의 골수 보수주의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공화당으로써는 존 매케인의 지지도를 능가하는 인물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앨 고어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대선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존 매케인이 SHJ를 찾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SHJ의 자금력과 SHJ시큐리티의 정보력과 기획력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SHJ는 우리를 양치기 소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SHJ가 존 매케인과 손을 잡는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겁니다.”

    “방일 일정을 하루 단축하고, 방한 일정을 3박 4일로 늘리는 거를 한국정부와 협의해 보고, 다니엘 자네는 중국의 압력을 받고 있는 SHJ구글을 핑계로 중국에 대한 지원과 협조체계를 통해 SHJ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일본이 반발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일본까지 봐 줄 여력이 없었다. 재선에 실패해 야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너무 많았다. 외교관례에 어긋난 지시를 받은 다니엘은 대통령 집무실을 벗어나며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사이버 공격의 주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해 살얼음을 걷고 있던 국무원은 오랜만에 들리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물증을 확보 못 해 미국을 거세게 압박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작년에 당했던 분풀이는 이번 경제정책 변화로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미국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세계 경제를 위축시킨다며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조용한 편입니다. 자국의 경기 하락이 발등의 불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이 기회에 세계의 공장이란 오명을 떨쳐내야 합니다. 우리의 산업구조를 노동집약형에서 첨단산업 위주로 재편해 세계 경제를 우리 손으로 주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선 SHJ를 끌어들이기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긴 한데······.”

    회의를 주도하던 총리는 각을 세우고 덤벼드는 SHJ를 머리에 떠올리자, 좋았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총리, 문제는 이경환 회장입니다. 북경 유학시절 때의 행적에도 알 수 있듯이 이경환 회장은 지금의 중국 현실을 이미 예측했다고 합니다. 쌈짓돈은 중국에서 벌고 사업은 미국에서 할 정도로 영악한 친굽니다.”

    “혹시 말입니다. 작년에 있었던 사이버 공격에 SHJ가 개입한 정황은 없습니까?”

    “어디에서도 SHJ가 개입됐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총리.”

    냄새는 나는데 실체가 없으니 SHJ를 옭아맬 명분은 없었다. 단지 SHJ구글을 압박하고 있지만, SHJ는 다른 외자 기업과는 달리 인터넷 영업 면허를 취소한다면, SHJ퀄컴과 체결한 무선통신 특허권 사용계약을 취소하고 중국으로 수출되는 칩셋을 중단함과 동시에 중국에서 미련없이 철수하겠다며 역으로 중국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무선통신과 IT 기술이 라이선스로 묶여있는 상태에서 양자택일을 하라며 공세를 취하고 있는 SHJ는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SHJ는 우리 중국시장이 탐이 나지도 않는다는 겁니까? SHJ를 더욱 압박한다면 기세를 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애플과 손을 잡고 SHJ에 대항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총리. 이경환 회장의 성격상 우리가 강하게 나간다면 애플이든 오성전자든 상관없이 사업을 철수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SHJ는 의도적으로 중국시장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보다는 SHJ는 잃은 게 별로 없다는 분석입니다. 한마디로 SHJ의 꽃놀이패에 우리가 걸려든 형국입니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 봅시다. 상대를 지치게 하는 게 최고의 전략 아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총리. SHJ는 다음 달 초로 기한을 못 박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열불이 터지는지 회의를 주도하던 총리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 깊게 마셨다. 미국정부를 상대하는 거보다도 일개 기업인 SHJ를 상대하기가 벅차다는 것이 총리의 인상을 구기게 하고 있었다.

    “총리, 한 가지 소식은 이경환 회장이 다음 달 식구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앨 고어의 방한과 맞물려 있는데 아마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있습니다.”

    “확인된 정보입니까?”

    “많은 인원이 사라졌지만, 아직 한국의 정보라인은 가동 중입니다.”

    사이버 공격으로 빠져나간 정보의 피해는 상상이상으로 정보라인에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정보 거점들이 FBI와 KCIA에 의해 와해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는 게 아쉬웠지만, 미국에 비해 한국은 새로운 거점들을 설치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한국에서 중국의 정보조직이 뚫을 수 없는 곳은 서산의 SHJ타운이 유일할 정도였다.

    “이경환 회장이 방한한다면 어떻게 이용하는 게 우리에게 유리하겠습니까?”

    “미국 주재 대사관을 통해 이경환 회장과 접촉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아직은 SHJ를 중국에서 벗어나게 하면 안 됩니다. 최대한 시간을 번 후에, 중국방문을 제안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산의 SHJ기술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핵융합로와 핵융합에너지는 중국에도 큰 이목이 쏠린 사업이었다. 아직 중국의 기술력으로는 요원했지만, 미래 대체에너지를 가진 자가 미래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접촉을 시도해 보세요. 필요하다면 북한을 이용해 한국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도 생각하시고요.”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화기애애하던 회의실은 애물단지인 SHJ로 인해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국의 전자와 IT 기업을 통해 기술력을 빠르게 쌓아가고 있었지만, 중국의 IT 기업이 세계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SHJ의 앞선 기술과 특허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SHJ를 잡아먹기 위한 전략이 국무원의 회의실에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지만, 떡 줄 사람은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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