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97화 (17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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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인생 - 197

    중국 국무원은 오전부터 시작된 비상회의가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참석한 국무위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회의를 주관하는 총리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서인지 독한 담배만 뿜어대고 있었다. 매년 10%를 넘나든 경제성장률로 체력을 비축한 중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재래식 무기의 열세를 극복해야 한다고 판단했었다. 10년을 넘게 준비한 사이버 전력으로 큰 성과를 보이고 있는 지금 생각하지도 못한 타격에 국무원은 초비상사태였다.

    “츠아이핑 부장! 국방부의 피해가 가장 컸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상대의 공격이 너무 치밀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차이나텔레콤 등 정보통신업계를 해킹하면서, 주공은 국방부와 국무원, 국방연구소, 국가안전부 등 국가안보에 관한 자료를 탈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츠아이핑은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치며, 국무원의 수장인 총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달 전 펜타곤을 성공리에 해킹하면서 어마어마한 미국의 신무기 설계도를 빼돌렸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츠아이핑 부장, 제2포병 부대에서도 기밀자료가 빠져나갔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왜 말이 없습니까? 어떤 자료가 탈취당한 겁니까?”

    츠아아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차이나텔레콤과 차이나유니콤의 해킹으로 인해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인 IRC BOT으로 인해 지금도 수천 대의 PC가 감염되고 있었지만, 제2포병 부대에서 빠져나간 기밀문건과는 비교 자체가 되질 못 했다.

    “정확한 피해는 확인 중이지만, 정황을 보자면 동펑-31A와 동펑-21D의 개발자료가 빠져나간 거 같습니다.”

    ‘쾅, 쾅.’

    “뭐요! 지금 동펑-31A와 동펑-21D의 핵심자료가 빠져나갔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보안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했길래, 이런 일이 발생한 겁니까!”

    재떨이를 집어 책상을 내려치는 총리의 굳은 얼굴을 보는 츠아이핑는 눈을 감았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디코이와 채프를 통과하는 기술과 대기권 재돌입시의 조종기술을 포함한 동펑-31A은 중국의 차세대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으로 올해부터 실전 배치된 중국의 핵심 미사일이었다. 아직 15기밖에 배치가 안 된 첨단 미사일시스템이 유출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미국의 항모를 잡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사거리 2,000KM의 동펑-21D가 개발도 완료되기도 전에 유출된 게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국가안전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분석합니까?”

    국가안전부 역시 이번 해킹을 피해갈 수 없었던 관계로 펑더화이 부장은 총리의 질문에 쉽게 입을 열 수 없었지만, 날카로운 총리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추적하고 있지만, 쉽게 그 꼬리를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관공서와 국가의 핵심부서가 심각한 피해를 보았는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총리의 시선을 마주칠 수 없었던 펑더하이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잘못했다간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고 판단한 펑더하이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이런 대규모 공격을 진행할 곳은 미국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의 현장요원들과 곳곳에 심어둔 조직들을 움직이는 중입니다. 펜타곤의 전산망에 침투한 것을 문제 삼아 같은 방법으로 공격해 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61398부대의 보안을 담당한 소교(소령급)와 상위(대위급), 두 명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두 명의 신병을 확보하세요. 십 년 넘게 들인 공이 쥐새끼들로 인해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얼마만큼 적들의 수중에 떨어졌는지 철저하게 분석하시고 필요하다면 의심되는 곳부터 발본색원하도록 조치를 취하세요. 그리고 미국을 경제적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전략수립에 박차를 가하십시오.”

    상하이와 광저우의 61398부대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이유는 내부 인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은 두 사람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명줄이 끊어지게 될 것임을 알고 있는 펑더하이의 얼굴색이 급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중국의 중남해가 발칵 뒤집혀 있을 시각,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가롭게 위스키 잔을 기울이고 있는 경환이 이번 일을 설계한 케빈 미트닉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SHJ시큐리티의 능력이 외부로 노출되는 상황이 반갑지는 않았지만, NSA나 펜타곤도 이번 중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으로 SHJ의 사이버 전력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해줬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케빈, 수고가 많았습니다. 케빈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네요.”

    “괜찮습니다. 언제까지 지하에 숨어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경환은 케빈 미트닉의 빈 술잔에 위스키를 가득 부었다. 북미공군방어시스템과 DEC사를 해킹해 수감생활을 했던 케빈 미트닉은 출소 후에도 모토로라와 노키아 등 기업체를 해킹하면서 해커 세계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FBI의 추격을 받는 중에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SHJ로 정한 케빈 미트닉은 SHJ퀄컴의 휴대폰 제조 프로그램을 해킹하다 SHJ시큐리티에 발각되어 FBI보다 먼저 경환에게 끌려오는 처지가 되었었다. 경환은 그의 해킹 실력에 탄복하며 지루한 설득 끝에 95년 그를 SHJ시큐리티의 보안팀장에 임명할 수 있었다. 현재도 FBI의 추적을 받고 있던 그를 경환은 철저히 보호했고, 이번 중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미끼로 그에 대한 면책권을 백악관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FBI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백악관이 면책을 받았긴 했지만, FBI에선 케빈을 잡아넣기 위해 수를 쓰고 있을 겁니다.”

    “제가 여기에 남아 있게 되면 FBI와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하하, 난 내 식구는 무슨 수를 쓰든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이번 작전으로 케빈이 따로 뺀 기밀이 우리 손에 있다는 걸 NSA가 알게 된다면 면책이 취소될 수도 있어요.”

    “아셨습니까?”

    경환은 술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국방연구소와 제2포병 부대를 해킹하면서 모든 자료를 미 정부에 넘기기로 약속했지만, 케빈 미트닉은 NSA와 펜타곤의 눈을 피해 따로 정보를 빼돌렸다. 그러나 경환은 케빈 미트닉의 행동을 알아차리고도 그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중국의 최첨단 무기 체계를 SHJ기술연구소에 제공할 생각이었습니다. 회장님의 조건을 백악관이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칼은 하나 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확보한 정보에는 펜타곤에서 유출되었던 기밀도 포함됩니다.”

    “압니다. 난 케빈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참에 서산 SHJ타운으로 옮기는 건 어떻겠습니까? 기술연구소도 서산에 있고, 여기보단 케빈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목이 탄 케빈 미트닉은 40도가 넘어가는 위스키를 단번에 입에 부어 넣었다. 7년 넘게 경환의 보호 아래 지냈던 시간은 케빈 미트닉을 SHJ에 동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케빈 미트닉은 경환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습니다. 한국은 IT 기술이 발전한 나라이긴 하지만, 보안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더군요. 휴스턴과 비교해 서산은 보안에 취약할 수도 있으니 제가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당분간 MSS(국가안전부)에서 얻은 스파이 색출로 NSA나 펜타곤이 케빈에게 눈을 돌릴 시간이 없을 때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전용기를 바로 준비할 테니,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세요. 그리고 서산에 도착하면 SHJ기술연구소와 정보를 분석해 우리 것으로 만듭시다.”

    이번 사이버 공격으로 중국의 신무기 체계와 핵시설의 보안시스템, 더 나아가 MSS에서 운영하는 스파이 명단을 해킹할 수 있었다. 각계각층에 퍼져있는 조직을 확인한 NSA와 펜타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일망타진을 위해 서서히 올가미를 죄고 있었다. 경환이 케빈 미트닉과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때, 알이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회장님, 상해와 광저우에서 무사히 서산으로 도착했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고, 필요하다면 성형수술을 포함해 신분을 철저히 세탁시키세요. 61398부대를 발가벗긴 건 두 사람이 공이 컸으니까요.”

    케빈 미트닉은 경환의 말을 이해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61398부대는 애당초 공격대상에 설정하지 않은 점이 의문이었지만, 내부로부터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케빈 미트닉은 경환의 용의주도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국이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SHJ시큐리티는 더욱 보안을 강화하세요. 이제부턴 우리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사이보그OS의 컨소시엄에 가입하기 위해 중국 정보통신부를 위주로 중국기업의 프러포즈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해커를 동원해 하루에도 몇 번씩 해킹을 시도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국에 경환은 아직 그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여보, 정부가 발표한 말이 사실이에요?”

    케빈 미트닉과 가볍게 저녁을 마친 경환이 집에 들어서자, 수정은 불안한 얼굴로 경환을 맞이하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NAVY SEAL 출신인 스티븐 조던이 경환과 가족에 대한 납치를 시도했고, 이를 FBI가 사전에 발각해 저항하는 스티브 조던을 사살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거스트 기븐스와 조율한 내용으로 발표된 테러 미수 사건은 미국 전 지역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납치를 사전에 방지한 FBI의 능력에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크게 걱정 안 해도 돼. 이미 다 끝난 일이니까.”

    “그래서 당신이 급히 한국으로 온 거군요. 난 그것도 모르고.”

    불안에 눈물까지 글썽이는 수정을 살포시 안아 주었다. 수정의 낮은 흐느낌을 느끼는 경환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자기하고 아이들은 지구가 망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내 손으로 지킬 거니까, 나만 믿어. 그리고 부모님들께도 연락을 드렸으니까 나중에 자기가 다시 한 번 전화 드리고.”

    경환은 수정의 불안함을 이해하면서도, 아직 그 행방이 묘연한 에릭 프린스를 향해 이를 갈았다. 정부와의 협상으로 에릭 프린스와 그 배후에 대한 처결권을 확보했기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아빠, 우리를 납치하려는 나쁜 놈을 FBI가 잡았데.”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부쩍 자란 희수가 정우와 함께 2층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알이 붙여준 교관에게 매일 경호술을 배우고 있어선지, 희수는 발차기까지 선보이며 경환과 수정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희수가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 공부도 중요하지만,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경환이 희수의 머리를 쓰다듬자, 희수는 냉큼 경환의 품에 안겼다. 또래와 비교하면 성숙해 보이기까지 한 정우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경환의 앞에 섰다.

    “아빠, 괜찮으신 거죠? 저도 많이 걱정했어요.”

    “정우야, 아빠가 집에 없으면, 네가 엄마와 희수를 지켜야 하는 거야. 아빤 널 믿는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가족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경환은 의젓해 보이기까지 한 정우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사내라는 이유 하나로 희수보단 경환의 직접적인 사랑을 덜 받아 삐뚤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우려와는 달리 정우는 잘 성장해주고 있었다. 좋아하던 미술을 손에 놓지 않았지만, 정우의 관심은 미술에서 우주와 물리에 관심을 보이면서 정우의 방은 전체 망원경과 우주 관련 과학서적으로 꾸며질 정도였다.

    “여보, 아직 중학생도 안된 애한테 너무 부담 주지 마세요. 아직은 뛰어놀 나이인데, 너무 방에만 틀어박혀서 책만 읽어대니 걱정이 많단 말이에요.”

    경환은 엄마의 핀잔에도 아무 대답 없이 입을 다문 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성장하면서 말수가 줄어드는 정우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틀에 박힌 공간에 빠져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안되지. 정우하고 희수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아빠와 같이 수영하러 가자. 당신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아빠와 같이 수영한다는 게 좋았던지, 희수는 정우의 손을 잡아끌고는 환호성을 지르며 2층으로 뛰어갔고, 경환은 음흉한 눈빛으로 수정의 몸을 아래위로 훑었다.

    “왜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는 거예요?”

    “몰라서 물어? 아직도 당신을 보면 설레거든. 아이들 일찍 재우고 오늘 밤은 우리만의 시간을 좀 가져 보자고.”

    경환의 엉큼한 손이 수정의 둔부를 훑어 내리자, 불안감이 많이 가신 수정은 눈을 흘기며 경환을 째려보았지만, 경환의 손놀림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수정이 몸을 돌려 수영복을 챙기러 사라지자, 경환은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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