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96화 (173/264)

#196

다시 사는 인생 - 196

“부탁할 일이란 게 무엇인가요? 저는 SHJ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기업인이란 사실을 먼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흠, 이건 극비내용이지만, 제임스 리 회장을 믿고 말하겠습니다. 펜타곤이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운영하는 해커부대에 해킹을 당해 극비자료 일부가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경환은 의외란 표정으로 윌리엄 페리의 답변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SHJ도 중국의 무차별적인 해킹시도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던 중이었다. SHJ는 이런 해킹시도를 방어하기 위해 SHJ구글과 SHJ퀄컴을 통해 화이트 해커를 대거 양성하는 중이었고 이미 수백 명이 SHJ시큐리티 소속으로 SHJ타운의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경환은 펜타곤이 뚫렸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했다.

“NSA만 하더라도 중국 정도는 방어하고도 남을 인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장관님이 SHJ를 찾은 이유를 확실히 모르겠군요.”

“그건, 여기 기븐스 국장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SHJ만큼 보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철저한 기업은 없다고 하더군요. 펜타곤의 보안시스템을 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NSA 기술이라면 충분할 텐데요. 방어가 아니라 근원을 타격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경환은 SHJ의 보안시스템을 외부에 특히 미국정부에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상황이 급박해 SHJ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상황이 정리된다면 그 칼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으로 향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윌리엄 페리는 경환의 완강함에 난처한 표정으로 어거스트 기븐스를 바라봤다.

“제임스 리 회장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압니다. 펜타곤과 NSA, SHJ가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얘깁니다. 좋기는 중국을 제대로 엿먹이는 것이고요.”

경환도 사실 중국의 끊임 없이 이어지는 해킹시도에 역공격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오비이락이란 말이 무색하게 펜타곤이 뚫린 일로 경환은 최대의 이익을 보며 역공격에 대한 명분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두 여우를 상대하기 위해선 적절한 포커페이스가 필요했다.

“중국의 거대시장을 포기할 정도로 SHJ가 아둔하다고 생각했나 보군요. 중국시장을 포기하는 대가가 있습니까? 전 SHJ의 이득이 무엇인지 묻는 겁니다.”

“중국시장에서 제일 자유로운 기업이 SHJ란 걸 모르지 않습니다. 또한, 중국 해커들의 집중 공격대상이 SHJ란 사실도요. 자, 그러니 원하시는 걸 말해 보시죠.”

경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경환은 처음부터 중국을 경계해 왔었다. SHJ타운에는 모든 인종이 모여 있었지만, 유일하게 중국계는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인재 채용 사규엔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중국계 이민 3세까지는 SHJ 입사를 하지 못하는 게 정설로 통용되고 있는 게 현실일 정도로 중국계에 대한 SHJ의 벽은 높았다. 펜타곤 해킹 문제는 윌리엄 페리를 더욱 초조하게 몰아가고 있었다.

“글쎄요. 쌓인 돈이 넘쳐서 돈은 필요가 없을 거 같고. 우선 뭐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NSA는 한국에서의 암살 위협을 사전에 감지하고도 내게 통보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솔직한 대답을 원합니까?”

경환은 어거스트 기븐스를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헛소리라도 지껄인다면 경환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공격을 NSA로 돌릴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어거스트 기븐스 또한, 경환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을 시작했다.

“우린 SHJ시큐리티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아직 서산에 구류 중인 스티븐 조던의 동선을 파악해 미국에서부터 추적했고, 비트까지 확인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체포하려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SHJ시큐리티의 대응이 빨라 개입할 시간을 놓친 거뿐입니다. 그리고 미시즈 리는 서산에서 출발하지도 않더군요.”

말을 마친 어거스트 기븐스는 사진 몇 장을 경환에게 전달했다. 스티븐 조던의 입국장면과 SHJ시큐리티와 대치하는 장면, 구급차에 실려 출발하는 사진이 찍혀져 있었다. 어거스트 기븐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우선은 한 수 접어줄 필요를 느꼈다.

“이번 한국에서의 사건에 대해 정부의 공식논평을 발표해 주시고, 에릭 프린스와 그 상부조직에 대한 처결권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또한,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는 백악관의 약속을 이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흠, SHJ는 이번 해킹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거 같군요. 전화 한 통 하겠습니다.”

윌리엄 페리는 깊은 탄식을 흘렸다. NSA의 애셜린을 통해 펜타곤에 심어진 중국 스파이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해킹을 인지했지만, 체포 직전 스파이가 자결을 하는 바람에 그 실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윌리엄 페리가 백악관과의 전화로 자리를 비우자 어거스트 기븐스가 경환에게 질문을 던졌다.

“백악관의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NSA는 SHJ의 제안에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준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경제력으로 무장한 중국의 다음 행보는 산업기밀 탈취와 미국의 무기, 혹은 방어시스템을 뚫는 데 집중할 것이란 사실은 국장님도 아실 겁니다. 펜타곤뿐만 아니라, 이미 IT기업과 우주항공 분야는 중국의 침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SHJ는 보안과 방어시스템만 가지고 있습니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제 개인적으로는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에 크게 동감합니다.”

베일에 싸인 SHJ시큐리티의 능력을 이번 한국에서의 작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어거스트 기븐스는 경환의 말을 한 귀로 흘릴 수 없었다. 그동안 SHJ란 벽을 깨기 위해 중국을 소홀히 했던 자신의 과오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희석시킬 수 없었고, 중국에 대한 역공격을 위해서도 SHJ의 기술과 정보는 절실히 필요했다. 긴 시간 동안 백악관과의 협의를 마친 윌리엄 페리가 이전보다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두 달 후에 있을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약속은 지켜질 겁니다. 예전부터 리 회장은 남다른 정보라인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제 공은 SHJ로 넘어갔습니다.”

경환은 윌리엄 페리가 넘겨준 문서를 확인했다. 비록 대통령을 대리해 윌리엄 페리가 사인한 문서였지만, 경환은 느긋했다. 어차피 중국에 대한 공격은 미국 정부가 아니었더라도 이미 계획된 작전이었다. 경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알에게 눈짓을 보냈고, 두툼한 서류철 하나를 조심스럽게 윌리엄 페리에게 건네주었다.

“이번 펜타곤 해킹을 주도한 부대는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산하의 전문 해커부대인 61398부대입니다. 90년대 초부터 사이버전을 준비했으며 10년 이상의 IT 전문가와 블랙 해커를 흡수해 비밀리에 운영되는 부대입니다. 보시는 사진은 상하이 푸동에 위치한 본부로 최소 2천 명이 상주하고 있고, 이런 조직은 광동성 광조우에 한 곳 더 있습니다. 상하이 본부로는 차이나텔레콤의 광케이블이 설치되어 있고요.”

“아니, SHJ에서 어떻게 이런 상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까?”

경환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윌리엄 페리는 경환이 건넨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SHJ의 광범위한 정보수립 능력에 어거스트 기븐스는 입을 굳게 걸어 잠갔다. SHJ의 이런 정보수집 능력이라면, SHJ에 대한 분석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해야만 했다.

"정보는 넘겨 드리겠습니다. 그 정보를 활용하는 건 두 분의 몫이라고 보는데요.“

“흠, 정부 차원에서의 대응은 사실 외교적인 문제로 인해 쉽지 않습니다. SHJ가 이 정도로 준비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판단이 되는데, SHJ가 주도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하하, 장관님은 농담도 잘하십니다. 두 분이 꼬리를 자르기라도 한다면, 후폭풍을 SHJ가 다 짊어지란 말씀이십니까? 피해를 입은 건 펜타곤이지 SHJ가 아닙니다.”

경환은 정부의 들러리를 설 생각이 없었다. 과거 딕 체니로 인한 치욕을 입었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최악의 경우 정부의 탄압으로 휴스턴을 포기한다더라도 서산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SHJ를 해킹하기 위해 치졸한 짓을 벌이는 중국을 그냥 보고 넘어갈 수도 없었다. 곤혹스러운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경환이 입을 열었다.

“정부의 공식문서를 통한 요청이라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또한, 장소는 SHJ타운이 아닌 NSA 혹은 정부가 지정한 장소이어야 하고, 펜타곤과 NSA의 기술진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윌리엄 페리와 어거스트 기븐스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SHJ가 아니더라도 중국에 대한 사이버 보복은 가능했지만, SHJ시큐리티만큼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게 두 사람의 고민이었다. 경환은 두 사람의 심각한 표정을 즐기며 여유롭게 커피를 입에 넘겼다.

주당 800불로 시가총액 1,600억 불로 예상했던 SHJ퀄컴이 주식 상장과 동시에 급속도로 오르기 시작해 980불로 마감하자, 경환은 360억 불이라는 거금을 모집할 수 있었다. 모든 언론사가 사상 최대의 IPO 성공을 이룩한 SHJ퀄컴에 대한 심층보도를 방영하고 있을 때, 캘리포니아 스탠퍼드 대학 외곽의 10층 건물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최종 점검을 하겠습니다. 준비사항을 확인하십시오. 다들 프로겠지만, 아마추어 냄새를 풍겨야 합니다.”

이번 작전을 준비하면서 한 달 넘게 휴스턴을 떠나 있었던 케빈 미트닉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대형 콘솔 박스 앞에 섰다. FBI의 연구리스트에 최초의 해커로 이름을 올린 케빈 미트닉은 경환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SHJ시큐리티의 보안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SHJ가 이번 공격을 주관하겠다고 하자, NSA와 펜타곤은 심한 반대를 하며 갈등을 보였지만, 책임자로 케빈 미트닉이 나타나자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SHJ와 NSA, 펜타곤의 전문가가 포함된 이번 작전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작전이었다. 한 달을 넘게 준비한 작전을 시행하려는 케빈 미트닉의 표정에선 긴장감을 찾을 수 없었다. 수백 명의 인원 중에서 세미 엘리트 수준의 해커를 LOCAL ATTACK팀과 REMOTE ATTACK팀으로 분류하고 엘리트급의 핵심 인원은 자신이 직접 통솔할 생각이었다.

“LOCAL ATTACK팀 보고하세요.”

“준비 완료했습니다.”

“REMOTE ATTACK팀 보고하세요.”

“준비 완료했습니다.”

한 달 전부터 치밀하게 분석을 마친 팀원들은 공격 대상 선정과 스캔 작업을 모두 마친 상태로 EXPLOIT 실행만 남겨둔 상태로 ROOT 권한을 획득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좋습니다. 두 팀이 활동을 시작하면, 저와 나머지 팀원들은 제 지시에 따라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시간부로 KILL THE DRAGON을 시행합니다.”

케빈 미트닉의 말이 떨어지자 건물 안에는 자판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고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단하군요. 케빈 미트닉이 SHJ시큐리티 소속이었다니, 이런 사실도 파악하지 못한 FBI가 무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캘리포니아와는 달리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NSA 본부엔 윌리엄 페리와 경환이 사이버전을 수행하는 인원들을 모니터로 확인하고 있었다. 경환 또한, NSA의 사이버 부대를 눈으로 확인하며 그 규모에 놀라며, 그 어마어마한 자원과 물량에 SHJ시큐리티의 자원만으론 장기전을 펼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NSA 사이버 부대도 만만치 않더군요. NSA 혼자서도 충분히 공격할 수 있어 보이는데 우리를 끌어들인 이유는 구글메일과 구글라인의 감청을 원하겠죠?”

“하하하, 당할 수가 없군요. 왜 우리가 SHJ를 뚫지 못했는지 리 회장님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협력하시겠습니까?”

경환은 어거스트 기븐스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국장님의 농담이 대단하십니다. NSA가 무서워서라도 SHJ가 미국을 떠야 하겠군요.”

“하하하, SHJ가 미국을 뜨게 된다면 제일 먼저 제가 옷을 벗게 될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번 작전이 수립된 후부터 SHJ와의 시소게임을 중단했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SHJ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어거스트 기븐스의 말에 사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권이 바뀐 후에도 이 정책이 유지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NSA와의 소모전을 당분간 중단할 수 있게 된 경환은 그 시간을 빌려 보안시스템 강화와 인공위성 발사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국장님이 인정해 주시니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NSA 국장이란 자리가 평생 지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 국장님을 위해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경환은 어거스트 기분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이나텔레콤을 시작으로 차이나유니콤, 바이두, 163이 차례로 붉은 등이 켜졌고, 모니터엔 국방부와 국방연구소, 국무원, 제2포병 부대, 국가안전부로 향하는 화살에 파란색 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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