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95화 (172/264)

#195

다시 사는 인생 - 195

엘리시움은 SHJ퀄컴의 마케팅과 무차별적인 광고전략에 힘입어, 영향력이 적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분석을 무색하게 만들며 기존 휴대폰 시장의 패러다임을 급속도로 바꾸기 시작했다. 휴스턴과 한국의 생산공장에서는 24시간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노키아를 벤치마킹한 세틀러 시리즈 구매자에 한해 시행한 5%~30%의 보전 전략이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한 것도 한몫했지만, 구글스토어와 구글라인 등 그동안 개인용 컴퓨터에서 접속이 가능하던 응용프로그램들을 휴대폰으로 간단히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이 구매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엘리시움의 급격한 판매는 기존 모바일 경쟁업체를 긴장시키며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모바일 업체들은 사이보그폰 개발에 열을 올리게 만들었다. 또한,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았던 노키아와 에릭슨은 부랴부랴 중단했던 모바일OS를 개발하며 엘리시움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SHJ는 애플의 아이패드의 성장세에 주목하며 다음 달에 출시될 아이폰을 주목하고 있었다.

“제이콥스 사장님, 슈미트 사장님, 두 분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것은 두 분의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시움 실적 보고서를 살피던 경환은 고무된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가족들과 함께 서둘러 미국으로 귀국한 경환은 블랙워터의 잔존 세력을 의식하며 식구들의 SHJ타운 밖 외출을 자제시키고 있었다.

“저희도 이 정도의 성과를 보일지는 사실 몰랐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은 절대 아닙니다. 전 두 분의 공로를 잊지 않을 겁니다. 사이보그는 모바일OS의 대세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사이보그가 해킹에 취약할 수도 있다는 점이니, 슈미트 사장님은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연구하셔야 합니다.”

“저희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플스토어를 개방형으로 운영하다 보니 해킹 앱에 취약한 건 사실입니다. 우선 어플스토어를 통해 앱을 관리하고 사이보그를 사용하는 제조업체의 통솔력을 확대해 보안프로그램 개발에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경환은 스마트폰의 해킹으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OS를 오픈소스로 제공하고 있지만, 예전의 구글과는 달리 제조업체에 대한 통솔력과 지배력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경환은 에릭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슈미트 사장님, 노키아와 에릭슨이 모바일OS 개발을 선포했고, 이 문제는 오성전자와 MS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애플도 벅찬 상태에서 우후죽순으로 모바일OS가 개발된다면 결과적으로 우리의 의도와 다른 만큼 강압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도 있습니다.”

“노키아와 에릭슨은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아 우리의 통솔력이 미치지 못하지만, 오성전자와 MS만큼은 컨소시엄에서 탈퇴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확실히 기선을 제압하겠습니다.”

아버지인 이형우와 다르게 이철승의 주도로 모바일OS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환은 오성전자를 손아귀에서 놓아 주고 싶지 않았다. OS 개발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컨소시엄의 탈퇴는 대세로 잡아가는 사이보그폰 시장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오성전자로써는 잔인한 선택을 강요받게 할 생각이었다.

“회장님, 애플에서 구글라인과 구글어스 등 우리의 앱을 아이폰과 호환시켜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지들 좋은 것만 받아내겠다는 생각이군요. 거절하세요. 우리가 아이폰의 매출에 기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5년 넘게 응용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출시한 엘리시움과는 달리 애플의 준비는 아직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시움의 놀라운 성공을 옆에서 지켜보는 애플은 아이폰 출시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이런 내부적인 고민에 빠져있었다. 경환의 단호한 지시에 에릭은 입을 굳게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콥스 사장님은 SHJ홀딩스와 상장 준비를 시작하십시오. 이번 엘리시움의 성공으로 SHJ퀄컴의 시가총액은 아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으로 보는데.”

“그렇습니다. 시가총액 1,600억 불은 넘어설 거란 분석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총 2억 주 중에서 4천만 주만 풀리게 되면 곧 품귀 현상으로 주가는 더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SHJ퀄컴의 지분 중 20%가 시장에 풀리게 되더라도 경환의 지분은 80%로 안정적인 경영엔 큰 문제가 없었다. 경환은 SHJ퀄컴 주식을 황제주로 만들기 위해 발행 주식을 주간사의 의견을 무시하고 최소화했다.

“SHJ퀄컴의 소유지분 중에서 5%를 전 직원의 보너스로 내놓을 생각입니다. 매매할 수 없는 우리사주 형태로 조합을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SHJ구글은 그 정도의 금액을 현금으로 직원들에게 지급하시고요.”

두 사람의 놀란 표정과는 달리 경환은 담담했다. 미국과 한국의 재단에 SHJ홀딩스 지분 2%씩을 이미 기부한 상태에서 경환의 기부는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휴스턴 시 정부는 이런 경환의 기부에 시 정부가 주관하는 복지프로그램을 사전에 SHJ와 협의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SHJ를 키우기 위해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했기에,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실천할 생각이었다.

오성전자 경영기획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SHJ구글에서 느닷없이 들어온 한 통의 공문으로 인해 이철승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이세일 사장을 퇴진시킨 오성전자는 김선중 부사장을 사장으로 임명해 이철승으로 넘어가는 후계체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쾅.’

공문을 읽던 이철승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잇지 못하는 이철승을 대신해 이학승 부장이 SHJ구글의 공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상을 내려친 이철승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학승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SHJ구글이 칼을 빼 들었군요. 예상은 했지만, 대응이 무척 빠르네요.”

“이 공문이 회장님께 보고된다면 이 부장이나 나나 온전치 못할 겁니다.”

이철승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온라인 게임 개발을 위해 자신이 설립한 오성IT를 통해 개발하려던 모바일OS는 아버지인 이형우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추진하려던 사업이었다. 자신과 동년배인 경환과 사사건건 비교를 당하던 이철승은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생각이었지만, SHJ의 정보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세일 전임 사장이라면 모를까, 김선중 사장은 상무님의 눈치를 보는 인물입니다. 잘 마무리 한다면 회장님께 올라가는 보고는 막을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모바일OS를 개발하려면 컨소시엄에서 탈퇴하라는 SHJ구글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겠습니까?”

경환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개발하려던 모바일OS는 아직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SHJ의 치밀한 정보망에 이철승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직 회장님이 건재하신 관계로 상무님의 운신 폭은 넓지 않습니다. 회장님께 보고가 들어가기 전 SHJ구글의 요청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못한 중국기업과 손을 잡고 모바일OS를 개발하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OS개발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닌데, 그동안 엘리시움의 독주는 막을 수 없게 됩니다. 더욱이 중국과 손을 잡는 건 회장님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십니까?”

아버지인 이형우는 SHJ와의 경쟁보다는 상생을 지시했다. SHJ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인 이형우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본 이철승은 이번 문제로 SHJ와 갈등이라도 벌어진다면 아버지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SHJ퀄컴의 칩셋과 플래시메모리 그리고 초전도도체까지 SHJ와의 합작은 오성그룹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고, 혹시라도 SHJ가 합작을 철회한다면 오성그룹이 받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모바일OS 개발을 중단하도록 지시를 내리세요. 그리고 SHJ구글엔 잘못된 정보로 인해 오해를 사게 돼 유감이라는 공문을 보내시고요.”

“그보다는 상무님이 이경환 회장을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찌 되었건 우리와 SHJ는 다방면으로 합작을 추진하고 있고, 후계자인 상무님과 교분을 쌓는 걸 이 회장도 반대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이철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다. 성장 배경이 자신과 판이했지만, 지금의 경환은 자신이 쳐다볼 수 없는 위치에 올라있었다. 또한, 시티은행이 소유한 오성전자의 지분 일부를 인수한 SHJ홀딩스는 오성전자 우리사주의 11%를 제외하고 두 번째로 많은 9.3%를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였다. 경환의 입김에 오성전자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였지만, SHJ는 오성전자의 경영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철승은 사태를 파악하고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SHJ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 분께서 갑자기 휴스턴에 오신다고 해서 제가 많이 놀라고 긴장했나 봅니다. 제가 제임스 리입니다.”

겉으로 웃고 있었지만,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경환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두 사람과 악수하는 경환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갈 정도로 반갑지 않은 인물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비밀리에 방문한 만큼 우리들의 방문 사실이 새어나가지 않게 협조 부탁합니다.”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된 미국에서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최대한 노력은 하겠지만, 100% 자신 있는 대답은 드릴 수 없겠군요.”

처음부터 날이 선 대화를 할 정도로 경환은 좋은 감정으로 두 사람을 맞이할 수 없었다. 특히 얼마 전 한국에서의 사건으로 두 사람에 대한 경환의 감정은 격해지기 시작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펜타곤과 NSA 수장이 아무런 이유 없이 SHJ타운을 방문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네요. 참고로 여기에서 대화는 도청과 녹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흠, 걱정하지 마십시오. SHJ시큐리티의 능력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NSA 어거스트 기븐스 국장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NSA와 SHJ는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소리 없는 치열한 전쟁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는 단계까지 도달해 있었다. 경환은 미소를 보이는 어거스트 기븐스의 면상을 후려치고 싶은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기븐스 국장님이 인정해 주신다니 감사하다고 표현해야 하겠죠? 요샌 SHJ타운 위로 인공위성까지 떠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전 금시초문입니다. 알아봐야 하겠군요.”

120여 개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정보를 입수하는 NSA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SHJ를 감청할 수 없게 되자, 인공위성까지 투입하는 강수를 쓰고 있었지만, 동영상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정보를 입수할 수 없어 NSA의 자존심에 또 한 번 상처를 입혔다. 인공위성을 꺼내 어거스트 기븐스를 궁지에 몬 경환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어거스트 기븐스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SHJ가 한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큰일은 아닌 거 같아 다행이군요. 도움을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찾아 주십시오.”

“그러게 말입니다. NSA에선 제가 죽기를 바라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명이 좀 깁니다. 그리고 막기만 한다고 우습게 보다간 되려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겁니다.”

“이곳이 SHJ타운이라 해도 엄연히 미 합중국의 영토입니다. 연방요원을 협박했다간, 아무리 명이 길다 해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할 겁니다.”

“그럼 한번 해 보시죠. 자국민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 상태에서도 이를 이용하려는 연방정부가 무슨 꼴을 당할지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한국에서의 암살테러를 NSA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경환은 죽일듯한 눈빛으로 어거스트 기븐스를 노려보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NSA 국장을 서슴지 않고 위협하는 경환의 발언은 뒤에 서 있는 알의 입술을 바싹 마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경환의 명령이라면 NSA 국장이라도 숨통을 끊을 자신이 있지만, 미국 정보기관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경환과 가족들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알은 긴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치가 길어지면서 접견실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만두세요. 그리고 기븐스 국장은 남의 집에 와서 무슨 실례입니까? 제임스 리 회장이 말한 내용은 워싱턴에 올라가 내 손으로 다시 조사하겠습니다. 기분이 언짢았다면 내가 대신 사과를 하겠습니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나서 중재를 하는 바람에 경환은 어거스트 기븐스와의 대치상황을 풀 수밖에 없었다.

“장관님이 사과하실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점 사과합니다. 이곳을 찾아 주신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NSA와 SHJ의 일은 비공식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NSA가 유일하게 뚫지 못하는 곳이 SHJ란 사실을요. 이런 이유로 긴히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온 겁니다.”

윌리엄 페리를 바라보는 경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부와 엮이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던 터라 장관과 국장이 만사를 제치고 휴스턴에 온 사실 자체가 경환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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