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56화 (13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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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인생 - 156

    98년 연말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 달 뉴욕에서 있었던 세틀러-3와 컴페니언-2의 쇼케이스는 세틀러-1의 화려하고 동적인 이미지를 탈피, 정적인 분위기기를 극대화 시키는 콘셉트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타트렉의 후속 작을 기대하던 일부 언론과 극성팬들의 혹평이 있었기는 하지만, 미국의 전형적인 일반 가정을 등장시켜 세틀러-3에 장착된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뛰노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 모습과 컴페니언-2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센트럴파크를 조깅하는 여성을 등장시킨 영상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컴페니언-2는 기존 컴페니언-1의 콘셉트나 기능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제품으로 젊은 층의 기대감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특히 512MB의 저장 공간 확대와 2.2인치 컬러액정을 사용함으로 MP3의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는 호평이 언론에 잇따라 발표되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SHJ구글은 애드센스 가입자들이 광고수익으로 세틀러와 컴페니언을 구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자 가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애드센스의 효과에 고무된 광고주들은 구글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윈도우 95에 익스플로러3.0을 무료로 배포함과 동시에 컴팩과 IBM, HP 등에 윈도 95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넷스케이프를 3년 만에 시장에서 퇴출시킨 MS의 횡포는 IT기업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 중에는 SHJ구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작업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분류하고 있는 야후는 더 이상 SHJ구글의 경쟁상대라고는 볼 수 없었다.

    빌 게이츠와의 만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경환은 에릭을 불러들였다. 독자적인 OS를 개발 중인 상태에서 MS의 집중견제를 받기라도 한다면 넷스케이프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도 없었고, 컴페니언-2로 애플의 뒤통수를 후려친 상태에서 욕심 많은 스티브 잡스의 다음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슈미트 사장님. 매출이 1억 5천만 불이란 보고를 받았습니다. 큰 적자를 예상했는데 적자 폭이 백만 불 안쪽이란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세틀러, 컴페니언과 구글스토어가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99년은 SHJ구글이 세계로 뻗어가는 해가 될 것입니다.”

    당초 8천만 불로 예상했던 매출이 구글스토어와 애드센스가 결합되면서 두 배 가까운 매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SHJ그룹의 가용자금 대부분을 SHJ구글의 연구개발로 투자되고 있어 아직 적자를 벗어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5천만 불 이상의 적자를 예상했던 폭이 백만 불 이하로 줄였다는 건 상당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10%, 에릭이 5% 소유한 SHJ구글이 급성장을 보이고 있었지만, 적자로 인해 배당금을 줄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했던 경환은 성과급이란 명목으로 300만 불씩 세 사람에게 지급해 주어 그들의 사기를 높여주려 애를 썼다.

    “아직은 R&D에 올인을 해야 될 상황이니, 섭섭하더라도 일이년만 참아 주세요. 독자적인 OS 개발되고 새로운 형태의 무선통신기기가 개발된다면 SHJ 그룹에서 가장 많은 배당금을 가져가게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회장님 덕분에 보람차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에릭은 SHJ구글에 애정을 가지고 물심양면으로 관심을 보이는 경환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의 반대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며 SHJ구글을 성장시킨 장본인이 경환이었고 사실 애드센스의 기본적인 방향을 제공한 것도 경환이었다. 에릭은 경환과의 첫 만남을 생각하며 자신을 잡아 준 경환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컴페니언-2의 출시로 애플이 발칵 뒤집혔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구글스토어를 카피해 독자적인 MP3와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려던 스티브 잡스가 책상을 뒤집어엎었다고 하더군요. 구글스토어의 패치작업은 잘 진행이 되고 있지요?”

    “컴페니언-3가 이미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구글스토어의 패치작업은 다음 달이면 완료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문제는 오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 개발 속도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요.”

    오성전자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던 카메라폰은 세틀러-3의 출시와 함께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후발주자로 MP3에 진출해 컴페니언-1의 한국시장을 일부 잠식하고 있었지만, 컴페니언-2는 오성전자로 빼앗긴 시장을 급격히 SHJ로 돌아서게 만들고 있었다. 전자기기와는 달리 SHJ와의 물량을 받은 휴대폰 칩셋과 플래시메모리의 급성장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SHJ의 투자에 힘을 얻은 플래시메모리는 예정보다 일 년을 앞당겨 1G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년 초에 1G 플래시메모리가 출시된다고 하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다름이 아니라, 애플의 MP3 시장 진출이 확실한 상태에서 MS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슈미트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

    에릭은 쉽게 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IT의 공룡으로 자리 잡고 있는 MS와의 힘겨루기는 백전백패라는 생각이 에릭의 입을 열지 못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급성장을 하고 있는 애드센스나 구글스토어에 MS의 견제가 들어온다면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에릭이 어렵게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회장님도 MS의 횡포에 대해선 잘 아시리라 봅니다. 애플보다도 사실 MS를 더 경계해야 될 곳이긴 하지만, 아직은 서로 부딪히는 접점이 없다보니 관망차원에서 우리와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 게이츠가 만남을 제의한 것을 보면 아마 우리가 독자적인 OS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다고 봐야 되겠군요.”

    담담히 말을 하는 경환과 달리 에릭의 얼굴은 굳어지고 있었다. 익스플로러의 시장성을 높이기 위해 넷스케이프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독자적인 OS 개발은 MS의 집중 포화를 맞을 가능성이 많았다. 이미 막대한 자금이 OS개발에 투자된 상태에서 자신의 꿈을 이뤄줄 OS개발을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 간단하게 볼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눈치를 채고 있다 하더라도 최대한 감춰야 됩니다. 회장님.”

    “감춘다고 쉽게 감춰지겠습니까? 그렇다고 공공연히 MP3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떠드는 애플과 손을 잡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구글도 타운으로 이주를 하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고생을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야후에서 우리의 검색엔진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습니다. 그리고 AOL과의 업무제휴를 다음 달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슈미트 사장님께 맡기겠습니다. 제가 나설 부분은 아니라고 보네요.”

    래리와 세르게이는 절망감을 안겨 준 야후에 검색엔진을 제공한다는 계획을 극구 반대하고 나섰지만, 야후는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에릭의 설득에 동의를 한 상태였다. 에릭은 AOL를 시작으로 구글을 중심으로 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자금력만 해결이 된다면 지분을 매입해서라도 구글의 입김을 강화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여력이 없다는 것을 에릭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허,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네. 도대체 제임스 리란 인간이 외계인이라도 된다는 거야?”

    애플로 복귀 후 개발한 아이맥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스티브 잡스는 경영자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넥스트 시절의 개발인력을 활용해 맥OS X를 개발한 상태였지만, 응용 소프트웨어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MS 오피스를 공급받기로 약속 받은 것이었지만, 스티브는 MS와의 협상에서 굴욕을 맛보며 타도 MS를 위해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컴페니언-2는 충격적이야. SHJ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엑기스를 뽑아간 거 같아.”

    아이맥을 디자인한 조나단 아이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컴페니언-1의 성공을 지켜보며 MP3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며 사내 비밀 프로젝트로 MP3개발을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컴페니언-2는 조나단을 좌절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구글스토어의 패치작업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야. 우리가 지적했던 문제점들이 패치작업을 통해 보완되고 있어. 그 다음 수순은 뭐라고 생각해?”

    “우리가 생각한 디지털허브 전략을 미리 실현해 버렸어. MP3를 포함해 디지털카메라와 CD플레이어, 캠코더까지 구글스토어에서 관리가 가능하도록 패치작업이 이뤄졌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야. 들리는 소문엔 RIAA와 저작권 협의가 곧 성사된다고 하던데 구글스토어가 우리 손에서 멀어져가는 느낌이야.”

    조나단은 심각한 표정으로 스티브를 바라봤다. 독선적이라는 비판에서도 조나단은 스티브의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믿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지만, SHJ의 후발 주자로 MP3 시장에 뛰어든다는 건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치고 달리는 SHJ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MP3 시장을 SHJ가 독식할 수도 없는 거니까. 우선은 아쉬운 대로 SHJ의 빈틈을 노리면서 기회를 엿보는 전략이 가장 현실적이야. 자네는 컴페니언-2와 차별되는 제품을 디자인 해봐.”

    “MS와 공동 전략을 세우는 건 어때? MS와 손을 잡게 된다면 당분간 SHJ구글을 묶어 둘 수 있을 거 같은데.”

    “MS 얘기는 꺼내지 마. 그때의 굴욕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으니까. 차라리 SHJ와 손을 잡는 게 오히려 현실적이니까.”

    말을 끝낸 스티브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SHJ와 손을 잡기 위해 노력을 경주했지만, SHJ는 자신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또한, 자신의 비수로 생각했던 오성전자와의 업무제휴도 CDMA 칩셋을 이용한 SHJ의 물밑작업에 실패를 하고 말았다. 아이맥의 성공을 뒤이을 차세대 제품으로 MP3를 선택한 자신의 계획이 SHJ란 벽에 막혀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00년을 맞이하는 99년은 SHJ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세틀러-3와 컴페니언-2의 성공으로 SHJ는 설립이후 처음으로 자금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영회의가 진행되는 회의실엔 여유 있는 웃음들이 오가고 있었다.

    “98년 매출이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습니다. 퀄컴이나 구글의 성장도 무시할 수 없지만, SHJ엔지니어링의 약진이 매출성장을 이끌었습니다. 98년 그룹 총 매출은 74억 불이며 영업이익은 15억 불입니다. 파슨스에 지급된 10억 불을 제하고 주식으로 확보한 11억 불을 더한다면 그룹의 가용자금은 16억 불입니다. 금년도 총 매출은 퀄컴과 구글이 이끌 것으로 예상되며 총 매출 100억 불 돌파는 확실한 상황입니다.”

    코이치의 활약으로 사우디와 쿠웨이트 입찰을 SHJ엔지니어링이 연이어 성공시킴으로 SHJ플랜트는 당초 15억 불 예상을 뛰어넘어 43억 불의 매출을 달성했다. 플랜트시장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코이치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타케우치 사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경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휴스턴을 방문한 코이치는 경환의 환대에 고개를 숙였다. SHJ엔지니어링의 지분 10%를 가지고 있는 코이치는 이미 갑부대열에 합류한 상태였지만, 43억 불에 만족하지 않았다.

    “내년엔 증시에 큰 변화가 있을 거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IT의 버블이 꺼질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모든 경영전략을 수립해 주십시오. 특히 구글은 광고주들의 이탈을 염두에 두고 애드센스를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상반기 내로 IT 주식을 정리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시스코는 주가의 추이를 지켜 본 후 바닥에서 다시 매집을 하겠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IT주가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경환의 말에 회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단지 린다와 황태수만 경환의 뜻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IT버블은 반드시 깨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우리 SHJ도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성장을 해 왔지만, 위기는 우리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장을 선점했다고 해서 안이함에 빠진다면 들개처럼 달려드는 후발업체들에게 뜯겨 먹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고, 금년 계열사의 R&D 예산을 두 배로 책정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노키아의 40억 불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걸 항상 기억하십시오.”

    매출 신장에 고무되었던 경영진들은 경환의 경고성 발언에 급히 마음가짐을 다시 잡았다. 세틀러에 자극을 받은 휴대폰 업체들은 세틀러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새로운 제품을 수없이 쏟아내고 있었고 MP3 시장에도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무거워질 무렵 SHJ타운을 담당하는 최석현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금년 말에는 구글과 본사의 이전에 시작될 것입니다. 또한, 휴스턴 시 정부와의 협상으로 500에이커의 땅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금액조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걸 한번 검토해 주십시오.”

    최석현이 건네는 자료를 넘기던 경환은 묘한 호기심을 느끼며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 황태수와 린다와는 얘기를 마쳤다는 듯 세 사람은 동시에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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