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54화 (131/264)
  • #154

    다시 사는 인생 - 154

    프랭크 누오보의 SHJ 합류는 노키아와의 관계에 있어 심각한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노키아는 언론을 통해 SHJ를 맹비난하고 나섰지만, 자의에 의해 공모전에 참여를 했다는 프랭크의 인터뷰가 언론에 기사화되고 SHJ가 법적인 대응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노키아의 맹공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노키아가 맹공을 중단한 이면에는 아시아와 동유럽으로 급격히 퍼지는 CDMA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데 이런 점은 GSM시장에 세틀러를 출시하려는 SHJ의 의도도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싸운 뒤에 정든다는 소문대로 프랭크로 시작된 노키아와의 분란이 해소되자 SHJ와 노키아의 라이선스 교환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 세틀러의 GSM시장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급하게 설립된 SHJ디자인연구소는 마땅한 거처를 찾지 못해 당분간 SHJ퀄컴의 유휴공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옥이 들어서기 전까지 외부에서 임대건물을 찾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던 경환은 이런 제안을 모두 반려시켰다.

    SHJ퀄컴이 휴스턴으로 이전을 한 후부터 SHJ 계열사 간의 의견교환과 업무진행은 원활하게 소통되었고 디자인연구소의 첫 작품을 확인하기 위해 SHJ구글의 경영진들이 SHJ퀄컴을 처음 찾았다. 이들 중에는 특이하게 승연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있었다.

    “SHJ타운이 이정도 일 줄은 몰랐네. 이거 은근히 배 아프고 부러운데.”

    SHJ타운 입구와 퀄컴의 정문, 사옥 입구의 철저한 보안인증을 통과한 세르게이는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며 엄청난 규모의 SHJ퀄컴의 사옥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부러워하지 마. 구글 사옥도 이보다 못하지 않은 수준이니까.”

    부러움에 촌티를 내고 있는 세르게이의 어깨에 래리의 손이 얹어졌다. 래리도 세르게이의 부러움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마무리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SHJ구글의 사옥을 방문했던 적이 있어 세르게이를 위로할 수 있었다.

    “빨리 서둘러 가자고. 요즘 회장님 심기가 별로 좋지 못해.”

    에릭은 지난번 경영회의에 참석해 SHJ합류 처음으로 경환의 불같은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틀러와 컴페니언의 성공에 나태해진 경영진들을 질책하며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라는 경환의 지시를 받았다. 에릭은 구글의 경영진들을 독촉하며 디자인연구소를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디자인연구소에 마련된 회의실에는 경환이 이미 도착해 회의에 참석하는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하고 있었다.

    “래리, 세르게이 오랜만이야. 패치작업이 완료된 구글스토어 아주 보기 좋더라고. 그런데 세르게이 너 요새 헬스장에 자주 가지 않는다고 하던데 트레이너를 한명 더 붙여줄까?”

    “제임스, 아니 회장님. 자, 자주 가겠습니다. 트레이너가 한명 더 붙으며 저 죽을 수도 있다니까요.”

    반갑게 맞아주던 경환의 말에 세르게이는 경기를 일으키며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패치작업에 정신이 없어서인지 래리와 달리 세르게이는 운동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경환이 자신들의 건강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 세르게이는 두 명의 트레이너가 자신을 학대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 친구는 지난번 회의에 딴 생각을 하던 스캇이라는 친구 아닌가? 이번 회의는 보안이 중요한 만큼 밖에서 대기시키도록 해.”

    퉁명하게 말을 던진 경환은 먼저 회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승연은 황당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경환의 뒷모습을 쳐다봤지만, 경환이 친형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승연은 신분의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승연의 굳어있는 표정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래리가 승연의 곁으로 다가왔다.

    “스캇, 네가 이해해라. 계급이 깡패란 소리도 있잖아.”

    래리의 위로에 승연은 썩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승연의 그런 모습에 회의실에 들어가던 세르게이가 발걸음을 멈췄다.

    “스캇, 회의 끝나고 맥주나 한잔 하자. 그리고 미스 야마시타 하루나, 이 친구 구글에서 도망가면 절대 안 되는 친구니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잘 좀 살펴 주세요.”

    세르게이는 하루나를 향해 윙크를 날리고는 재빨리 회의실에 들어갔고 어색한 표정의 두 사람만이 회의실밖에 남겨졌다.

    “이상으로 후속 모델에 대한 디자인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세틀러-3와 컴페니언-2의 모습이 프로젝트를 통해 회의실 스크린에 투영되었고 프랭크는 긴 시간을 활용해 디자인에 대한 브리핑을 마쳤다. 노키아와의 합의로 중국과 유럽에 GSM 칩을 장착한 세틀러-1이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일 년 넘게 세틀러-1을 뛰어 넘을 후속모델을 선보이지 못한 SHJ는 디지털카메라를 장착한 세틀러-3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경환은 시제품으로 나온 세틀러-3를 만지작거렸다.

    “세틀러-3가 출신된다면 디지털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이 대세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입수한 정보로는 오성전자에서도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을 개발 중입니다. SHJ퀄컴에서는 디지털카메라를 소형화 시키는 작업과 화질을 상승시키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십시오.”

    “세틀러-3는 35만 화소에 32POLY, 3인치 256컬러 TFT-LCD로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게 될 것입니다. 오성전자가 후속모델을 출시할 즈음엔 우리는 달나라에 가 있을 겁니다.”

    어윈의 자신 넘치는 말에도 경환은 걱정이 앞섰다. 2000년 후반 오성전자에서 출시한 최초의 플립형 카메라폰을 그룹의 강요에 의해 구입했던 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제품은 시장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동종업계에 콘셉트만 유출시킨 후 사라져 갔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틀러-3가 오성전자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의 심리를 면밀히 모니터링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틀러-3의 후속모델을 빠른 시간 내에 개발을 해야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화소를 극대화 시키는 연구를 협력업체들과 진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디자인연구소와 후속모델 작업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경환은 세틀러-3 보다는 컴페니언-2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수정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랭크에게 전달했고 SHJ퀄컴은 SHJ홀딩스에서 소유하고 있는 원천기술과 외부 협력업체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컴페니언-1보다 훨씬 얇아지고 획기적인 제품을 설계할 수 있었다. 경환은 스티브 잡스에 미안한 감정이 들긴 했지만, 아직 스티브 잡스의 머릿속엔 아이팟의 디자인은 들어가 있을 시간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구글스토어의 트리구조의 카테고리를 적용한 게 상당히 특이하군요. 원형의 조작버튼도 획기적인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고요.”

    “2.2인치 컬러 액정을 사용하며 256MB/512MB 두 가지 모델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오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 개발에 우리가 참여하면서 개발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형우와의 합의로 플래시메모리 개발에 투자와 참여를 하게 되면서 플래시메모리 개발 속도는 빨라지고 있었다. 컴페니언이 워크맨과 CD플레이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자 후발주자들의 연구가 본격화 되고 있었다.

    “우리가 선두에 있다 해서 방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후발주자들에게 선두를 뺐기지 않도록 연구개발에 집중해 주십시오. 컴페니언-3는 연구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후속모델은 동영상을 지원하는 제품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구글스토어가 동영상을 지원하는 패치작업이 완료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환은 컴페니언-2로 애플을 PC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묶어버리고 싶었지만, 애플이 아니더라도 컴페니언과 구글스토어에 자극받은 기업들은 서서히 SHJ를 벤치마킹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IMT-2000 선정 작업에 오성그룹과 제일그룹, 금성그룹과 연합전선을 피기로 했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솔직히 GSM의 WCDMA에 우리의 CDMA2000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CDMA를 상용화 시킨 첫 국가이니만큼 IMT-2000에 우리가 선정될 수 있도록 그룹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 주십시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3세대 무선이동통신망 구축작업에 WCDMA와 CDMA2000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지만, 기반이 약한 CDMA2000이 밀리고 있는 형세였다. SHJ퀄컴의 기반이 되었던 한국도 대부분의 이동통신업체들이 WCDMA로 갈아타기 때문에 경환은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오성과 제일, 금성과의 협조구축에 남다른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한국을 한번 방문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침 한국정부에서도 회장님을 모시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SHJ 부회장으로 그룹기획실을 맡고 있던 황태수가 넌지시 한국방문을 제안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에서는 외환위기를 예상하고 정부에 큰 도움을 준 경환의 방문을 끊임없이 요청하고 있었지만, 경환은 대북사업이란 늪에 빠지는 한국 정부와 관계를 갖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경환의 깊은 곳엔 네오콘의 정신적 지주인 딕 체니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자칫 자충수를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한국 방문은 신중하게 검토해 보겠습니다. 퀄컴과 구글은 상호 협조체계를 하시고 다음 달 출시할 세틀러-3와 컴페니언-2의 쇼케이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열띤 회의가 장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었지만, 회의실 밖은 냉랭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하루나는 회의 이후의 스케줄에 대해 알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 승연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승연도 준비해 온 회의 자료에만 온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승연이 스토커 취급을 당한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두 사람은 구글스토어 브리핑 자리에서 다시 얼굴을 마주칠 수 있었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승연은 더 이상 하루나의 관심을 끌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길게 이어지는 회의는 승연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회의실 밖을 지키고 있는 하루나를 시선에 두지 않기 위해 노력할수록 승연의 시야엔 하루나의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회의 자료를 뒤척이고 있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료를 덮어버린 승연은 갑자기 몰려드는 피곤함에 커피메이드가 설치된 주방으로 향했다.

    ‘젠장. 뭐가 이리 어려워?’

    최고급 커피메이드는 피곤함을 잊기 위해 커피를 마시려던 승연에게 좌절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복잡한 조작법에 주방을 서성이던 승연은 음료수를 마시러 하루나가 들어오자 잔을 내려놓고 서둘러 주방을 벗어나려 했다.

    “최신 제품이라 어려운 거예요. 기다려 보세요.”

    주방을 나가려던 승연의 뒤로 하루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승연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나는 커피메이드를 조작해 내린 커피를 승연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하루나가 건넨 커피를 손에 든 승연은 하루나의 시선을 무시한 채 주방을 벗어나려 했다.

    “지난번엔 미안했어요. 구글에서 일하는 분인 줄 몰랐습니다.”

    승연은 지난번과 다른 하루나의 나긋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주방을 벗어나기 위해 발을 옮기려 애썼지만, 승연의 머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아 승연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알 오랜만이야. SHJ시큐리티가 너무 독식하잖아. 나한테도 좀 남겨 줘.”

    딕이 준비한 만찬에 초대를 받은 경환이 예약된 장소에 들어가자 에릭이 알의 신경을 건드리고 나섰다. 자신이 점찍어둔 인력을 SHJ시큐리티가 싹쓸이 하다시피 쓸어가 버리자 에릭의 신경은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블랙워터 인력을 빼온 것도 아니잖나. 다들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는 걸 어쩌겠어? 카일이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군.”

    에릭의 도발을 되받아 친 알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기 위해 경환이 들어간 방을 주시하며 자리를 이동했다. 에릭은 알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하하하, 반갑네. 요즘 SHJ가 너무 잘 나가는 거 같더군. 그리고 시민권을 취득한 거 축하하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선 준비가 시작 되겠군요. 준비는 잘 되시고 있습니까?”

    딕은 경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얼굴에 큰 미소를 지으며 깊은 포옹으로 경환의 반겼다. 딕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형성하느냐에 대한 고민으로 한동안 밤잠까지 설쳤던 경환은 딕이 건네는 위스키 잔을 마다하지 않았다.

    “식사 전에 가볍게 위스키 한잔 하는 것도 좋겠네요. 자리에 앉기 전에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어느 조직인지는 모르겠지만, SHJ 홍콩 자금내역을 캐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에겐 미행까지 붙였고요. 제 경호원들이 미행한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작전을 짜려는 걸 제가 막았습니다.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데 딕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경환은 홍콩 H은행 출신이 에릭의 정보원들을 통해 홍콩 자금내역을 입수하려는 조직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SHJ의 주거래은행인 H은행에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한편 왕샹첸에 이를 통보했다. 정권 실세의 비자금내역이 빠져 나갈 수도 있다고 판단한 왕샹첸은 홍콩 H은행에 압력을 통해 자금내역이 유출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경환이 처음부터 강하게 밀고 들어오자, 딕은 어이가 없는 듯 경환을 노려보며 위스키를 급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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