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53화 (130/264)
  • #153

    다시 사는 인생 - 153

    휴스턴으로 이전을 완료한 SHJ퀄컴은 체계를 잡아가고 있었고 경환은 이주한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교육이었는데 경환은 아직 학생 수가 많지 않았음에도 퀄컴의 이주에 맞춰 SHJ 직원 자제들을 위한 유치원과 초중고 사립학교를 SHJ타운에 설립하였다. 동시에 미국 전 지역에서 선생들과 교직원을 선별해 초빙했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며 최대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최신식 설비에 자금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다.

    경환은 초대 재단이사장 자리를 수정에게 맡기긴 했지만, 학교를 개인 사유물로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로 재단기부금 모금에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기존 이사진을 20명으로 확대하면서 이사진을 학부모들의 선출로 임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기 위해서 무료로 하려던 수업비를 변경해 기존 사립학교의 1/5 수준인 년 3천 불을 수업비로 책정해 학부모들의 참여의식을 고취시켰다. 현재는 교직원이 학생들보다 많은 기형적인 구조였지만, 이주한 퀄컴직원들의 큰 호응과 함께 SHJ 직원들의 때 아닌 전학 열풍으로 학교는 제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SHJ타운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퀄컴은 계속되는 공사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직원들의 근무환경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설계한 새로운 사옥에 만족하며 휴스턴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SHJ퀄컴을 찾은 경환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직원들을 보며 그동안의 우려를 지울 수 있었다.

    성황리에 공모전을 마친 SHJ퀄컴은 디자인팀을 연구소로 승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 작업에는 SHJ플랜트와 구글까지 참여하고 있었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디자이너들이 연구소에 소속되면서 세틀러의 후속 모델작업에 활력이 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이끌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SHJ 디자인 연구소의 가장 큰 약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SHJ의 제임스 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프랭크 누오보라고 합니다. 프랭크라고 불러 주십시오.”

    간편한 복장으로 SHJ퀄컴을 찾은 경환은 30대 중반의 프랭크를 유심히 바라봤다. 공모전에 출품한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노키아의 디자이너인 프랭크의 경력을 확인한 순간 경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 무선통신업계의 최강자인 노키아의 수석디자이너가 SHJ 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했으리라고는 상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프랭크. 궁금해서 묻겠습니다. 왜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셨나요? 프랭크의 경력이라면 서로 모셔갈 기업들이 줄을 서고 있을 텐데요.”

    경환의 질문은 프랭크를 간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노키아의 수석디자이너라는 명성만으로도 그를 스카우트하려는 기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경환은 프랭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환의 질문을 받은 프랭크는 조용히 얼굴에 미소를 보였다.

    “저를 높게 평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제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에 제가 있다는 걸 보면 감각이 무뎌진 건 아닌가 봅니다.”

    자신감 넘치는 프랭크의 답변을 들으며 경환은 슬쩍 웃음을 보였다. 프랭크 노오보란 인물이 노키아의 핵심 디자이너란 사실은 기억에 없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어 최강자의 자리를 애플과 오성에 넘겨주며 MS에 인수되는 처지에 놓인다는 것은 분명 기억에 남아있었다. 또한, 노키아 제품에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경환은 프랭크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다.

    “솔직히 프랭크가 디자인한 휴대폰은 특별한 기능이 추가되었다고는 하지만, 세틀러-2를 모티브로 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이해를 해 주세요.”

    “하하하, 모티브라뇨. 천만의 말씀입니다. 노키아가 한발 늦었을 뿐입니다. 자체 보안시스템을 점검하는 소동이 벌어질 정도였으니까요. 노키아 8100 후속 모델이 세틀러-2와 비슷했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키아 8100 모델은 노키아가 선보인 최초의 슬라이드 폰이었다. 그러나 세틀러-2는 바나나형의 노키아 8100 모델과는 근본적으로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고 노키아의 후속으로 나오는 모델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프랭크의 답변은 경환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SHJ가 디자인을 도용했다면 칼을 세우고 있는 노키아에서 관망만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저도 실수한 부분이 있으니 비겼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작품으로 돌아가서 휴대폰 상단에 디지털카메라를 장착한 것과 휴대폰 숫자판을 일체형으로 디자인 된 것만 본다면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기 보단 엔지니어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는군요. 왜 노키아의 제품으로 출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SHJ 공모전에 출품을 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SHJ퀄컴은 경환의 지시에 따라 출시를 준비 중인 세틀러-1.2의 후속 모델에 디지털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을 연구 중에 있었다. 경환은 프랭크가 무슨 의도로 공모전에 디지털카메라가 장착된 슬라이드 폰을 출시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세틀러의 대항마로 노키아가 준비하는 모델이라면 휴대폰 시장의 후발주자인 SHJ에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웃음기를 거둔 경환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 프랭크는 꼬았던 다리를 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노키아와는 결별을 했습니다.”

    “뭐라고요?”

    의외의 대답에 경환은 허리를 의자에서 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노키아라는 수석 디자이너를 버릴 만큼 공모전이 프랭크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경환은 공모전이 아닌 다른 이유가 궁금했지만, 프랭크의 사생활에 대해 물을 수는 없었다.

    “공모전 때문에 결별한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노키아는 R&D에 연간 40억 불 이상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세틀러에 장착된 컬러액정이나 벨소리,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터치스크린 방식을 이용, 무선통신이 가능한 노트형 PC를 포함해 여러 형태의 전자기기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완료한 상태입니다.”

    경환은 숨이 턱 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키아의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이 SHJ의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보다도 7년 후에나 애플에 의해 개발이 시작되는 스마트 폰을 노키아가 이미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프랭크의 말이 사실이라면 컴페니언으로 MP3 시장을 선점한 후 구글의 OS개발을 통해 스마트 폰을 개발하려던 경환의 계획은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나 스마트 폰을 처음 시장에 선보인 것이애플이라고 알고 있던 경환은 프랭크의 말을 믿어야 될지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프랭크의 말이 사실이라면 혁신적인 제품이 탄생할 거 같은데 노키아의 기밀일 수도 있는 사항을 이 자리에서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SHJ도 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환과 프랭크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같이 인터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어윈과 에릭은 경환이 스쳐지나가듯 말한 인터넷과 무선통신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통신기기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말을 떠올리며 두 사람의 대화에 숨죽이고 있었다. 프랭크는 당황하는 경환의 모습을 살피며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퀄컴으로 무선통신에 진출하며 세틀러를 출시하고, 구글을 통해 인터넷에 진출한 후, 구글스토어와 컴페니언을 만든 SHJ가 다음 작품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지 답이 나오더군요. 당황하는 회장님의 얼굴을 보니 제 예상이 맞은 거 같습니다.”

    “SHJ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확히 핵심을 파고드는 프랭크는 경환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경환은 뛰는 심장을 최대한 다독거리며 프랭크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노키아는 좋은 기술과 인재를 가지고도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조 자체가 관료화 되면서 단기간의 이익을 볼 수 없다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제품이라도 사장되는 구조라고 보면 될 겁니다. 이로 인해 기술과 아이디어,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인재들의 노키아 탈출러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제가 말한 제품들도 관료화된 경영진들의 헤게모니에 제품화 되지 못한 것들입니다. 저희 팀원들은 혁신적인 제품에 주저하지 않는 SHJ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모전은 통과의례라 생각했고요.”

    노키아의 몰락은 타성에 빠져 기술개발에 등한시한 결과라고 생각했던 경환은 미래를 주도할 모든 제품을 연구해 놓고도 이를 제품화 하지 못해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프랭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 아닌 노키아를 선택했다면 스마트 폰은 90년대 말 노키아를 통해 선보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프랭크, 팀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인원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흐르지 않고 썩어가는 노키아에 환멸을 느껴 저와 같이 행동한 직원들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같이 일을 했으면 합니다.”

    프랭크가 어떤 실력을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노키아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경환의 머리를 스쳤다.

    “SHJ의 디자인 연구소는 바닥에서 시작을 해야 됩니다. 만약 프랭크가 우리와 손을 잡게 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디자인 연구소를 운영할 생각입니까?”

    “제품의 기능은 기본이라는 가정 하에 차별화된 디자인이 소비자의 구매력을 자극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소비자의 취향에 디자인을 맞춰가는 거 보다는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 자신이 차별화된 계층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경환은 두말없이 프랭크와 악수를 나누며 그의 합류를 공식화 했다. 자신의 결정이 성공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적어도 프랭크의 합류로 컴페니언의 후속 모델과 스마트 폰의 진출을 서두를 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경환은 프랭크의 합류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휴스턴 정경을 바라보던 딕 체니는 물고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 걸쳐 놓고는 신문을 펼쳐들었다. 핵이라는 위험한 수단을 가지고 거래를 시도하던 북한은 8월 인공위성을 탑재했다고 주장하는 광명성 1호를 발사해 미국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북핵에 강경한 자세를 보이던 클린턴 행정부는 서서히 대북 포용정책으로 돌아서고 있었고 공화당과 네오콘이 주장하는 금창리 핵시설의 선제 파괴 제안을 묵살해 버렸다. 한국 정부는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끊임없이 주장하고 나섰고 북한은 금창리와 광명성 1호를 통해 판돈을 키우고 있는 상태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주변국들을 설득하며 금창리 사찰을 관철시키기 위해 페리를 조정관으로 삼았다는 기사를 보던 딕은 보던 신문을 바닥에 내 던진 후 시가를 다시 입에 물었다.

    “안 좋은 기사라도 난 겁니까?”

    “클린턴이 한국과 북한 놈들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기사야.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대통령은 운이 참 좋아.”

    사임까지 예상하며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한 클린턴의 섹스스캔들은 단지 레임덕을 빨리 오게 만들었다는 성과만 있을 뿐 클린턴을 끌어내리지는 못했다. 북핵을 포함해 코소보사태와 이라크의 후세인 처리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는 클린턴이 눈에 가시였지만,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끌어내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라크는 손을 봐 줘야 될 텐데, 앞으로 2년이나 더 기다려 된다니 답답해.”

    네오콘의 자금줄인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손에 떨어져야 했지만, 클린턴은 매파의 지속된 압력에도 움직이질 않아 딕의 속을 끓게 만들고 있었다.

    “자네에게 부탁한 일은 처리를 하고 있나?”

    블랙워터를 서서히 성장시키고 있었던 에릭은 딕의 부탁을 모른 체 넘길 수 없었다. 딕의 신임을 얻지 못한다면 백악관 재입성이 확실한 딕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의 동선은 확보를 해 두었습니다. 알과 카일에게서 훈련을 받았는지, 근거리에서 경호를 뚫기는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그리고 SHJ의 홍콩 자금내역을 확보하는 건 은행의 비협조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홍콩은 내가 따로 준비를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너무 티내면서 쫒아 다니지는 말도록 해. 제임스가 우군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SHJ가 딕은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아직 아군인지 적군인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SHJ를 자신의 손에서 벗어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환이 말한 정보조직이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펜타곤의 비선조직을 이용해 경환이 말한 정보조직을 파악하려 했지만, 어떠한 혐의나 비밀조직과 연결된 고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은 상태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딕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딕, 어쩐 일인가?’

    “조지, 이제 슬슬 기지개를 펴야 되지 않겠나? 다름이 아니라 SHJ의 제임스와 자리를 한번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자네가 알아서 하게. 자네가 필요하다면 만나는 것도 좋겠지.’

    간단한 통화를 마친 딕은 재떨이에서 타들어가는 시가를 다시 집어 입에 물었다. 그의 머리엔 백악관에 재입성해 강한 미국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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