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51화 (128/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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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인생 - 151

    시애틀 근교에 위치한 레드먼드는 MS의 본사가 있는 도시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1975년 설립된 MS는 IBM PC 운영체제로 MS-DOS를 개발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그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애플이 PC에 처음 도입한 GUI(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 운영체제인 맥OS에 대항하기 위해 1985년 윈도1.0을 출시했지만, MS-DOS를 기반으로 했기에 운영체제라기 보단 소프트웨어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로 내부분열로 기술개발에 힘을 쏟지 못하는 애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하다 MS-DOS를 통합한 최초의 32비트 운영체제인 윈도 95를 출시하면서 PC의 운영체제를 장악해 버렸다.

    MS의 추월을 바라보며 손가락만 빨던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다시 불러들여 반격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이미 MS는 애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진 상태였다. 애플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아이맥이라 하더라도 확고한 소비자층을 형성한 윈도 95를 넘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스티브 발머와 빌 게이츠는 오랜만에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맥에 맞춰 출시한 윈도 98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거 같더군.”

    “하하,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너무 스티브 잡스를 의식한 거 아닌가 싶어.”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애플의 반격을 내심 걱정했던 두 사람은 예상수치 내에서 움직이는 아이맥의 매출보고서를 넘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애플의 반격을 예상하며 준비한 윈도 98은 다중모니터 및 웹TV, USB를 지원하고 FAT32를 지원함으로써 2GB이었던 파티션 제한을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윈도 98은 윈도 98SE가 나오지 전까지 큰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는 없었다.

    “윈도 98의 출시를 좀 앞당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좀 아쉽기는 해. 그때 문제만 발생하지 않았어도 아이맥과의 격차는 더 벌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빌은 4월에 진행된 쇼케이스를 생각하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윈도 98을 시현하는 과정에서 이미지 스캐너를 연결해 자동으로 설치하려하자 아무런 이유 없이 컴퓨터가 다운되는 일이 발생해 두 달 후로 출시일정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동영상은 아직까지도 퍼지고 있었고 윈도 98은 윈도 95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맥으로 죽어가는 애플에 산소 호흡기를 달아 준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봐. 내가 아는 스티브 잡스라면 아이맥으로 기반을 잡고 뭔가를 다시 준비하려고 할 거야.”

    스티브 잡스를 극도로 경계하는 빌을 바라보던 스티브는 따로 준비된 보고서를 빌에게 건네주며 탁자 위로 세틀러와 컴페니언을 올려놓았다.

    “애플도 강력한 경쟁 상대이지만, 난 SHJ가 상당히 신경이 쓰여. 퀄컴을 인수할 때만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작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구글이 나타나면서 판세가 복잡하게 흘러가는 거 같아.”

    SHJ퀄컴과는 WIP 공동개발을 통해 끈을 연결할 때만해도 무선통신과 인터넷의 조화라는 연결고리를 제외하고는 MS의 주목을 끄는 기업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글이 서비스를 시작하고 독립적인 인터페이스인 구글스토어를 무료배포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빌은 컴페니언을 들어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익스플로러를 열어 구글에 접속을 시도했다.

    “자네 말이 맞아. 단순히 검색엔진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야. 아마 애플도 바짝 신경을 쓰고 있겠지.”

    “구글스토어의 호환성이 상당히 눈에 거슬려. 그리고 구글의 사장이 에릭 슈미트라는 건 분명 우리가 주목해야 될 일이거든.”

    구글스토어는 맥과 윈도 환경에 모두 구동될 수 있게 호환성을 강조하면서 개발을 시작한 인터페이스였다. 또한 MS OS의 독점적 운영체제에 반기를 들며 JAVA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에릭이 사장으로 있다는 것은 구글이 독립적인 OS 개발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IBM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PC OS를 장악하며 애플을 밀어낸 빌에게도 스티브 잡스를 통해 반격을 노리는 애플보다도 SHJ가 여러 면에서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스티브, SHJ의 제임스 리란 사람에 대해서 알아봤어?”

    “통 이해가 안 되는 친구야.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군대까지 다녀와서 SHJ를 설립했는데 플랜트에서 갑자기 무선통신과 IT로 사업영역을 확대한 이유가 설명이 되질 않아. 이 정도 성공이면 나스닥에 상장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모든 기업이 비상장이야.”

    스티브의 말에 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린 다음의 순서는 당연히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거라는 논리를 깨는 SHJ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빌은 컴페니언을 손으로 돌려가며 구글스토어를 살피고 있었다. 응용프로그램이면서도 윈도 98과 독립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구글스토어는 빌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이 컴페니언이 IT 시장의 큰 물줄기를 형성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보여준 SHJ라면 여기서 멈출 리가 없겠지. 제임스 리란 친구가 뭘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할 거야. 최악의 경우, 스티브 잡스와 손을 잡는다는 거 까지 포함해서.”

    서로 상극인 MS와 애플의 합작까지 말을 꺼내는 빌에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물과 기름이었기 때문에 두 회사의 합작은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단지 SHJ가 차후 MS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 스티브는 혹시라도 애플과 SHJ가 손을 잡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빌, 적의 적은 아군이란 소리가 있잖아. 애플과 SHJ가 손을 잡기라도 한다면 우리도 고전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교활하고 자기중심적인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봤을 때 우리는 애플과 맞지 않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임스 리란 친구와 친분을 가져 보는 게 어떻겠어? 마침 퀄컴과 공동 개발한 WIP 브리핑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 그 때를 맞춰 자연스럽게 만남을 계획하는 것도 좋지 않겠어?”

    “좋은 방법이네. 퀄컴을 통해 선을 연결해 봐. 내 감이 틀리지 않다면 애플이 아니라 SHJ를 주목해야 될 거 같아.”

    스티브가 전화를 연결하는 동안 빌은 컴페니언과 세틀러를 비교하며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미스터 리, 미국 역사에 대해 조예가 깊으시군요.”

    시민권 마지막 절차인 인터뷰가 경환의 사무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SHJ의 규모가 커지고 그룹경영이 시작되면서 시 정부를 벗어나 주 정부와 각종 협회에서는 시민권을 취득하라는 압력이 들어왔고 경환은 많은 고민 끝에 시민권 취득을 결정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한국국적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휴스턴 이민국은 경환의 사정을 감안해 직원을 직접 SHJ에 파견해 주었다.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미국의 시민으로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충성하시겠습니까?”

    경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시민권의 마지막 절차인 선서식에 있는 충성맹세를 인터뷰 질문에 포함시킨 이유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례적으로 정부직원을 사무실에 파견 보낸 것은 감사할 일이었지만, 경환은 이민국 직원의 의도를 알아야만 했다.

    “선서식도 아닌데 충성맹세를 인터뷰에서 묻는 이유가 뭔가요?”

    느닷없는 경환의 질문에 이민국 직원을 포함해 인터뷰를 참관하던 린다와 변호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룹 회장이라 하더라도 인터뷰에서 통과를 하지 못한다면 시민권 취득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SHJ의 오너가 충성맹세를 거절했다는 소문은 SHJ를 흔들 수도 있는 중대한 사건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 선서식에는 따로 참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 정부의 특별한 요청으로 인터뷰로 선서를 대신하기 때문에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답변을 해 주십시오.”

    선서식의 번거로운 절차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뒷면을 경환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지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딕 체니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환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이민국 직원의 질문에 답변을 했다.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불의에 대항하며 충성을 하겠습니다.”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서식을 생략하기 때문에 시민권 증서는 다음 주에 발급될 예정입니다. 영주권은 그때 반납해 주십시오.”

    경환은 이민국 직원과 악수를 나눠 모든 절차를 마쳤다. 영어 이름으로 전환하면서 통상적으로 최소 2개월 이상이 걸리는 시민권이 바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경환의 시민권 취득을 반기고 있다는 것을 대변하는 일이었다. 직원들의 축하인사에도 경환은 착잡한 심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루나, 알에게 SHJ타운을 방문하고 싶다고 전달해 주세요. 타운을 둘러보고 바로 퇴근할 생각이니 기다리지 말고 하루나도 퇴근하도록 해요.”

    모든 사람이 원하는 시민권 취득에도 기뻐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는 경환을 바라보던 린다는 귓속말을 황태수에 전한 후 모인 직원들을 이끌고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홀로 남은 사무실 창가에 한쪽 어깨를 기댄 경환은, 쏟아지는 태양빛을 몸으로 맞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단지 한국 정부를 미워했을 뿐, 한국인이란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한 기억이 없었던 경환에게는 한국인이 아닌 한국계 미국인이 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 경환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루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회장님, 차량이 준비되었습니다. 제가 동행을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알과 따로 할 얘기도 있고, 하루나는 퇴근하세요.”

    하루나가 건네준 양복 상의를 받아 든 경환은 알의 경호를 받으며 서둘러 사무실을 벗어나 준비된 차량에 몸을 실었다. 차량은 앞뒤로 경호 차량을 대동한 채 다운타운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경환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알, SHJ시큐리티의 채용인원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지원은 필요한 게 없습니까?”

    “정규직으로 직원을 채용하다 보니 특수부대 출신들의 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회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직원들의 사기와 충성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일이 이 분야에선 전문가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딕 체니와 만난 후 경환은 SHJ시큐리티 설립을 다른 법인보다 먼저 강행했다. 용병이 아닌 정규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자 실력 있는 특수부대 출신들이 대거 지원을 했고, 지금은 400명이 넘는 인원을 훈련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SHJ의 주요인물 경호와 SHJ타운과 해외사업장의 외곽경비를 맡길 계획이었기 때문에 400명이란 인원도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직원들의 복지정책에 신경을 써 주시면서 훈련의 강도를 높이는 방안을 찾아보세요. 필요한 장비는 알에게 전권을 드리겠으니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의 화력을 보일 수 있는 장비들로 구입하세요. 그리고 SHJ타운 완공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인원을 채용하시고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알은 자신과 동료들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믿음을 보여주는 경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알은 경환의 만류를 무릅쓰고 사장인 자신이 직접 경환의 곁을 경호하고 있었고 이 결심은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알과의 대화가 마무리 될 무렵 차량은 검문소를 통과해 현장사무실에 다다랐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뜨거운 태양빛에 검게 그을린 최석현이 현장사무실 밖을 서성이다 경환을 맞이했다. 최석현은 SHJ타운 건설이 시작되면서 사무실을 현장사무실로 옮겼고 SHJ매니지먼트마저 현장사무실 임시주소로 등록해 버렸다. 임시 가건물로 지어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SHJ매니지먼트는 최석현의 지휘아래 회사의 체계를 잡아가고 있었다.

    “기분이 다운되어서 최 사장님 얼굴 좀 보러 왔습니다. 퀄컴이 들어 올 건물은 일정상 문제가 없겠지요?”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다음 달부터 이주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현장을 확인하고 싶은데 최 사장님이 안내를 해 주세요.”

    경환의 최석현의 안내를 받으며 퀄컴이 들어설 건물에 들어섰다. 최석현의 설명을 들으며 사무실과 연구실, 생산라인이 들어설 공간을 일일이 확인한 경환은 구글과 그룹 본사건물이 들어서는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퀄컴과 달리 아직 반 정도의 공정률밖에 보이지 않고 있는 건물들은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우울했던 경환의 마음을 풀어주기에는 충분했다.

    “1차 주택단지가 곧 완공이 됩니다. 퀄컴과 시큐리티 직원들에게 우선적으로 입주권을 줄 예정입니다. 1차 주택단지가 완공되면 2차 주택단지와 회장님 저택을 동시에 시공할 예정입니다.”

    아파트가 아닌 자연환경 속에서 정우와 희수를 키우고 싶었던 경환은 시공사인 파슨스에 저택설계를 맡겼고 파슨스는 SHJ 오너인 경환의 저택 설계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경환은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신과 희수의 꿈이 펼쳐질 SHJ타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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