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50화 (127/264)
  • #150

    다시 사는 인생 - 150

    다음날 브리핑 자리는 기존의 회의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되고 있었다. 회의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SHJ구글의 분위기에 맞춰 대학의 스터디모임과 같은 토론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경환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어 그룹 회장이란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르게이, 깔끔한 디자인이 사람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한 거 같은데, 음악을 브라우징 하는 방식이 좀 복잡한 거 같은데.”

    심각한 부도설에 휩싸였던 애플은 넥스트스텝을 4억 불에 매입해 스티브 잡스를 전면에 배치, 경영난을 해소하고 반전을 노리기 위해 불철주야 고심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일체형 컴퓨터인 아이맥을 개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어 SHJ와는 부딪힐 상황은 아니었지만, 아이맥의 성공으로 MP3 시장에 스티브가 눈을 돌리기 전에 이 시장을 선점해야 했다. 적어도 MP3와 인터페이스에 대한 특허출원을 서둘러 라이선스로 아이팟과아이튠즈에 제동을 걸 생각이었다.

    “이 정도의 인터페이스라면 획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운영체계와 독립적으로 운용되도록 설계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운영체계의 응용프로그램의 관계가 아닌 완결적 프로그램입니다.”

    “세르게이, 거 잘난 척 좀 그만하지. 내가 비전문가라고 너무 어려운 말만 골라 쓰는 거 아냐?”

    “하하하.”

    회의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되고 있었지만, 끝자리에 앉아 있는 승연은 웃음마저 사라진 얼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경환은 힐끗 승연을 한번 쳐다 본 후 말을 이어갔다.

    “난 소비자의 입장에서 인터페이스를 평가하는 거야. 음악을 고르고 찾는 방법을 세분화 한다면 소비자가 접근하기가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예를 들자면 노래의 장르, 작곡가, 가수, 제목 혹은 유행했던 연도 이런 식으로 말이지.”

    “흠, 그건 어렵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컴페니언의 출시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업데이트를 통해 구글스토어를 수정하면 괜찮을 거 같네요. 패치작업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인터페이스의 이름은 구글스토어로 정해졌다. 음악을 시작으로 동영상과 서적 등 전반적인 미디어 분야까지 진출할 뜻이 있었고 환경이 조성되면 온라인 판매로 연결을 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데이트를 통해 단점을 보완해 가겠다는 세르게이의 답변에

    “슈미트 사장님, RIAA(음반저작권협회)와의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직 P2P 방식의 음원 다운로드에 대한 기본 틀이 없는 상태입니다. 계속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큰 문제로 비화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구글을 통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작업을 하세요. 후발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RIAA에 우리 입김을 불어 넣어야 됩니다.”

    경환은 부문별하게 생기게 될 파일공유서비스 업체의 범람으로 저작권 문제가 큰 이슈가 될 거란 사실에 주목하고 미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RIAA와의 협상을 지시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저작권 문제라기보다는 아이튠즈를 선보일 애플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런 경환의 생각을 스티브 잡스가 알았다면 땅을 치고 통곡을 하겠지만, 스티브는 아이맥 개발에 애플의 사활을 걸고 있는 중이었다.

    “일주일 남았습니다. 세틀러에 이어 세상을 다시 한 번 놀라게 만들어 봅시다. 그건 그렇고 저기 끝에 앉아 있는 친구는 뭐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회의 시작부터 좀비가 앉아 있는 거 같아 아주 무섭기까지 하네요.”

    모두의 시선이 끝자리에 앉아 있는 승연에게 쏠렸다. 경환의 말이 들리지 않은 듯 승연의 얼굴은 아직까지도 구겨져 있자 옆에 있던 직원이 급히 승연의 어깨를 건드렸다.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는 걸 느낀 승연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회장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제임스, 이 친구는 인터페이스 개발과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도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쪽 일을 생각하느라 그런 거 같네요.”

    래리가 나서 승연을 두둔하자 경환은 크게 개의치 않고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경환의 지적에도 승연의 시선은 경환의 뒤에 서있는 하루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 시선이 마주쳤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식하지 않고 태연한 모습으로 서있는 하루나를 보며 승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볼펜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깊게 찍어 누른 승연은 하루나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며 다시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프린트 매장은 세틀러의 인기에 힘입어 SHJ와 함께 동반성장을 하고 있었다. 매장엔 여전히 손님들로 가득했고 대부분의 손님들은 세틀러를 구매하기 위해 SHJ 부스에 몰려들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까지 발생해 한국에서 생산되는 세틀러를 급히 수입하는 사태까지 발생할 정도로 세틀러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스프린트 매장을 찾은 존은 오랜 망설임 끝에 세틀러의 구입을 결정했다. 스타텍과 세틀러를 사이에 두고 고민에 빠져 있었던 존은 여자 친구의 강권과 주위 친구들이 모두 세틀러로 갈아타는 것을 보고 고민을 끝낼 수 있었다.

    “저, 세틀러 후속 시리즈가 출시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지금 세틀러-1을 구입하는 게 솔직히 망설여지네요.”

    SHJ부스의 직원은 존의 망설임을 이해하며 밝게 웃으며 존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 말은 사실이에요. 아직 일정이 잡히긴 않았지만, 연말 정도가 될 거 같습니다. 세틀러-1 구입이 망설여지신다면 연말에 후속 모델이 출시될 때까지 기다리셔도 되고요. 그러나 세틀러 시리즈의 후속모델은 계속해서 나오게 될 텐데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실 건가요?”

    반년 이상을 기다려야 후속 모델이 나온다는 소리에 일찍 세틀러를 구입하지 않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후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말이 맞네요. 세틀러를 구입하겠어요.”

    직원이 세틀러 박스를 꺼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큰 광고판이 존의 눈에 들어왔다. 세계 최초의 MP3P라는 타이틀과 함께 컴페니언-1이라고 써져 있는 광고판엔 이어폰과 연결된 담배케이스 크기의 기계가 찍혀 있었다. 그제야 주변을 살핀 존은 세틀러를 손에 든 고객들이 컴페니언이란 제품을 사기위해 줄을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이 세틀러 박스를 손에 들고 돌아오자 존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저기 광고판에 나와 있는 컴페니언-1이 무슨 기계입니까?”

    “아, 손님은 구글을 이용하지 않으시나 보군요? 얼마 전부터 구글에서 대대적으로 광고를 시작한 제품인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구글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야후를 검색엔진으로 이용하고 있던 존은 직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직원은 홍보용으로 매장에 비치되어있던 컴페니언을 꺼내 이어폰을 존에게 건넸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직원이 건넨 이어폰을 귀에 꽂은 존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CD플레이어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의 음색이 이어폰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버튼을 눌러 다른 음악을 틀자 존은 직원의 양해를 구하며 직접 컴페니언을 조작해 보기 시작했다. 담배케이스보다 얇아 와이셔츠 주머니에 들어가도 표시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존은 또 다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 음악을 즐겨 듣던 존은 휴대가 불편한 CD플레이어를 대체할 수 있는 컴페니언을 구입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세틀러와 컴페니언 모두를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은 어떤 방법으로 저장이 되는 건가요?”

    “컴페니언을 구입하시면 구글스토어란 응용프로그램을 같이 드려요. 자세한 설명은 구글을 통해 확인하시는 게 빠르실 거 같네요.”

    존의 결정이 길어지자 직원은 존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음 손님과 상담을 시작하려하자, 존은 급히 직원을 불러 세웠다.

    “컴페니언을 구입하겠습니다.”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 세틀러를 한 달 늦게 구입한다고 치더라도 크게 불편한 건 없어 보였다. 세틀러로 당한 설움을 컴페니언으로 만회하겠다는 생각에 존은 망설임을 끝낼 수 있었다. 컴페니언을 손에 든 존은 구글에 접속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세틀러와 더불어 컴페니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SHJ는 또 한 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GSM의 영역인 유럽의 진출이 노키아와의 협상지연으로 늦어지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컴페니언의 소문은 구글을 통해 빠르게 전달되고 있었다. 아직 미국과 한국에만 출시를 하고 있는 컴페니언을 수입하기 위해 유럽의 대형 무역회사들이 앞 다퉈 SHJ퀄컴의 문을 두드렸고 어윈은 한국의 생산라인을 확충하기 위해 서둘러 한국을 찾을 정도로 컴페니언의 인기는 세틀러와 함께 고공행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경환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주말을 한가롭게 보내고 있었다. 희수는 보행기를 벗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정우의 뒤를 졸졸 쫒아 다니고 있었다. 정우는 그런 희수를 귀찮아하지 않고 희수의 손을 잡아 주었다. 경환은 정우와 희수를 안아 들었다.

    “우리 엄마가 뭐하는지 같이 가 볼까?”

    주말인데도 수정은 서재에 들어가 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모전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경환보다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을 안고 서재에 들어서자 경환의 예상대로 수정은 작품들을 보며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좀 쉬면서 하지 그래? 그러다 몸 상할까 걱정이네.”

    “난 공모전 하나 처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자기는 어떻게 SHJ를 키운 거예요? 참, 이 작품 한번 살펴 봐 주실래요? 좀 특이해서 눈에 들어오네요.”

    경환은 수정의 노트북으로 눈을 돌려 모니터에 나와 있는 작품을 살폈다. 기존의 휴대폰과는 확연히 다른 기능과 함께 세틀러-2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슬라이드 폰이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눈에 들어오는데? 잘하면 작품하나 만들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그만 정리하고 아이들 데리고 허먼파크에 가서 산책이나 하자.”

    정우까지 나서 수정을 끌어당기자 수정은 노트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세틀러의 후속 모델의 디자인 작업은 지연되고 있었다. 그만큼 세틀러의 인기는 미국과 한국을 넘어 CDMA를 테스트하는 중국에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급한 대로 컬러액정의 화소를 높이고 16POLY의 벨소리를 장착시키는 선에서 세틀러-1.2 버전을 선보일 생각이었다. 공모전을 통해 수석 디자이너를 선정하기 전까지는 세틀러-3의 출시는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경환은 좀 전에 확인한 작품을 머릿속에 주입시키며 차기 모델의 윤곽을 잡아가고 있었다.

    “형수님 문 좀 열어 주세요.”

    “와! 삼촌이다.”

    수정이 외출준비를 하러 방으로 들어가 있을 때 승연의 목소리가 들렸고 정우가 먼저 반응하며 현관을 향해 뛰어 나갔다. 희수는 뒤뚱거리며 정우의 뒤를 쫒았고 승연은 정우와 희수를 안아들었다.

    “자식, 한동안 안 오더니 뭔 바람이 분거야? 오려면 전화라도 하고 왔어야지.”

    “구글스토어 패치작업 하느라 정신없었어. 그리고 형이 얄밉기도 했고. 언제 안거야?”

    승연은 몇 주 전 있었던 회의를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회의가 끝나고 래리에게 깨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겼지만, 자신이 구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은 경환이 얄미워 그동안 찾지 않았지만, 정우와 희수가 눈에 밟혀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척 했으면 상황이 달라지기도 했을까봐서 그래? 넌 초짜 연구원일 뿐이야. 그리고 구글은 내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인데 내 작품에 손대는 너를 몰랐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당분간 모른 척 넘어갈 테니까, 래리나 세르게이 섭섭하지 않게 기회 봐서 잘 설명해. 미국 애들 은근히 뒤끝 심해.”

    “도련님, 구글에서 일하셨던 거예요?”

    승연의 등장에 외출준비를 서두르던 수정은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며 내심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승연은 두 부부의 작당이 못마땅했던지 입을 한자나 내밀어 보였다.

    “형수님까지 그러 시기에요? 형이 꽉 잡혀 살고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적어도 형수님은 저에게 귀띔이라도 해 주셨어야죠.”

    “야, 사내자식이 쫀쫀하게 아직도 안 풀었냐? 그러게 진작 말했으면 좋잖아.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패치작업에 정신없다는 놈이.”

    승연은 한참을 망설이면서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관문을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넘쳐있었지만, 막상 경환과 수정의 얼굴을 마주지차 자신감은 급격히 사그라졌다. 오랜만에 만난 삼촌과 놀 생각에 마음이 급한 정우가 승연을 잡아챘다.

    “동생이 형 집에 오는 게 뭐 잘못 되기라도 했어? 사랑하는 조카들 얼굴도 보고 밥 한 끼 얻어먹으러 온 거야. 형수님, 저 애들 데리고 놀러 나갔다 올 테니 밥 좀 차려 주세요.”

    도둑질 하다 들킨 도둑처럼 급히 정우와 희수를 데리고 사라지자, 경환은 승연을 바라보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구글에 퍼진 소문은 이미 자신의 귀에까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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