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다시 사는 인생 - 134
“하하하, 리 사장님. 날씨가 매우 화창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브라운. SHJ는 휴스턴에 뿌리를 내리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또한 휴스턴은 우주산업과 석유산업 더불어 무선통신과 IT산업을 선도하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휴스턴 시 정부와의 조인식에 앞서 리 브라운이 경환에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많은 기자들이 경환과 리가 악수를 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연신 사진기 셔터를 누르고 있었지만, 정작 현 휴스턴 시장은 뒷전에 물러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리와의 밀약이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현 시장은 경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파격적인 제안을 추가했지만, KBR이 가지고 있는 SHJ-화성플랜트의 지분 23%를 대신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제임스, 오래간만일세. SHJ는 나날이 성장을 하는구먼.”
약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경환에게 말을 건네는 윌리엄은 기자들과 리를 의식한 듯 과장된 모습으로 경환과 포옹을 나누었다. 윌리엄의 출현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경환도 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속 보이는 윌리엄의 행동에 싫은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아직 KBR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지분 23%를 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SHJ-화성플랜트는 제가 잘 키워보겠습니다. 아! 제가 경황이 없어 말을 전하지 못했는데, JSC의 LNG기술과 정유플랜트 기술이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조만간 SHJ이 KBR과 직접적인 승부를 보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윌리엄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경환은 가시 돋친 말로 윌리엄을 자극하고 나섰지만, 윌리엄은 얼굴만 붉힐 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경환과 윌리엄의 날 선 대화가 거북했던지 리가 중간에 끼어들자 윌리엄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리 사장님. 좋은 날 아닙니까. 오늘은 제 얼굴을 봐서라도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별 뜻 없이 한 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이 모인 거 같습니다. 절 보러 온건 아닐 테고,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미스터 브라운.”
SHJ와 휴스턴 시 정부와의 조인식에는 기자들 외에도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로 빈자리 하나 없을 정도였다. 250에이커라는 넓은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된 것이 이슈가 되긴 했지만, 차기 시장이 유력한 리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론조사는 아직 과반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지만, SHJ가 롱포인트로 이주를 결정하자 멕시칸단체와 중국인단체에서 환영의 뜻을 밝히며 브라운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나섰다.백인사회의 지지표가 분열된 상태에서 두 단체의 지지는 중심에 맞춰가던 저울추가 급격히 리 쪽으로 기울게 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조인식이 끝나고 시간을 한번 만드세요. 딕 체니가 리 사장님을 한번 만나고 싶어 하더군요.”
홀리버튼의 사장이라는 사실보다도 미국의 보수주의와 군수업체를 대표하는 네오콘의 대표주자인 딕 체니는 경환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또한, 부시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되는 그와 아직은 척을 질 수는 없었다. 그런 딕 체니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리를 통해 알게 된 경환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출장을 다녀온 후에 시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인식이 체결되면 부지에 대한 절토 및 성토작업이 바로 시작될 것입니다. 약속된 연결도로와 전기, 상하수도 공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추가예산을 확보해 두었으니 일정에 문제가 없을 겁니다.”
확실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건물들보다도 SHJ-퀄컴의 사옥을 먼저 시공할 생각으로 SHJ-퀄컴만큼은 빠른 시간 내 휴스턴으로 이전을 해야만 했다.
“사장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SHJ타운의 중책을 맡아서 동분서주한 이유 때문인지 초췌해진 최석현을 따라 경환이 자리를 잡자 컨벤션센터의 불이 꺼지며 SHJ타운의 조감도가 화면에 펼쳐졌다. 친환경을 테마로 삼아서인지 조감도를 시작으로 각 구역별로 들어설 건물과 공원, 복지시설과 주택 등은 최대한 자연과 어우러지게 설계되었고, 휴스턴의 더위를 감안해 다운타운과 같이 지하공간으로 각 건물을 연결이 되도록 했다. 화면이 넘어가면서 최석현의 설명이 가미되자 참석자들은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경환은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땅을 무상으로 제공 받았다 하더라도 최소 30억 불에 달하는 총공사비는 경환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계적으로 타운을 조성해 유동자금에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계획이지만, 그만큼 완공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상으로 SHJ타운에 대한 개요를 마치고 조인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 성공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무리하고 경환은 시 정부와 거창한 조인식을 마친 후, 리의 요청에 따라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가진 후에야 공식적인 조인식을 끝낼 수 있었다. 석유산업과 플랜트업계의 불황으로 위축되어가는 휴스턴경기가 이번 SHJ타운 건설로 다시 활성화 될 것이라는 호의적인 여론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SHJ타운이 SHJ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그러나 SHJ는 이런 두 종류의 여론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조인식이 끝난 후 시 정부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대한 측량을 시작으로 최석현의 주관 하에 기초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SHJ본사에서는 그토록 기다리던 검색엔진인 구글의 최종 점검이 진행되고 있었다.
“슈미트 사장님, 수고 많았습니다.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우선은 화면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에릭을 비롯해 래리와 세르게이, 수석 연구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는 비장함마저 흐르고 있었다. 에릭은 경환을 가운데 두고 구글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대형 모니터엔 에릭의 조작에 의해 빠르게 화면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옆 화면으로 야후의 검색결과와 동시에 모니터링 되면서 구글의 차별성이 강조되고 있었다. 래리의 추가설명으로 이상 없이 가동되는 모습을 확인한 경환과 참석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내일 서비스 시작엔 이상이 없을 거 같군요. 초기 홍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이에 대한 지원은 잘 이뤄지고 있겠지요?”
“네, 현재 본사의 대대적인 지원 하에 홍보에 전념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서비스가 시작되면 2차 홍보와 함께 에드센스에 대한 기대심리를 심어주며 출시일자를 조율해 보겠습니다.”
경환의 아이디어를 근거로 세상에 일찍 선보이게 된 구글과 에드센스는 마케팅과 경영의 귀재인 에릭이 합류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경환은 부족한 자금상황에서도 SHJ-구글에 대한 지원은 아끼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세요. 에릭 존슨 부장이 SHJ-구글에 대한 지원업무를 당분간 맡아 주시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슈미트 사장님 선에서 처리를 하십시오.”
경환은 아쉽기는 하지만, 린다와 코이치 그리고 실무팀을 이끌고 서울 출장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글의 서비스 시작은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랜딩페이지로 무장된 구글은 초기 홍보에 집중하면서 기존 검색업체들이 놓치고 있는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었다.
“래리, 세르게이. 수고 많았어. 요새도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지는 않겠지? SHJ타운에 들어 설 구글관은 자네 둘의 의견을 백프로 반영했다고 하더군. 오락실부터 시작해서 사우나 체육시설까지 모두 갖춰진 구글관이 사실 나도 기대를 많이 하고는 있어. 그러니 건강에 신경 쓰라고.”
두 사람의 의견이 반영된 구글관을 통과시키기 위해 최석현은 린다과 황태수의 잔소리를 감수 해야만 했다. 회사의 고급간부 입장에서 놀이터나 다름없는 구글관이 마음에 들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경환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는 것을 이유로 구글관을 수정없이 통과시켜버렸다. 물론 구글관이 완공되려면 최하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래리와 세르게이는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제임스, 영양사와 트레이너까지 배치된 덕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에 2시간은 꼼짝없이 헬스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할 수 있는데.......”
경환은 햄버거와 피자로 식사를 때우면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원들을 위해 특별히 영양사와 트레이너를 고용해 식단과 건강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몇 번 경환에게 항의를 해 보긴 했지만, 경환의 강경한 태도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자네 두 사람의 건강이 곧 SHJ-구글의 재산이란 사실을 항상 기억하도록 해. 지분 10%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골골거리고 싶은 건 아니겠지? 최종점검은 이걸로 마치도록 하죠.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이 한마디로 두 사람의 투정을 잠재운 경환은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했다. 린다와 황태수만 대동한 채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경환은 좀 전의 회의 때와는 다르게 굳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번 한국 방문은 한국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이익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쿡 부사장님은 어윈 사장과 함께 휴대폰 단말기 제조업체와 미팅을 진행 해 주십시오.”
“물론 OEM방식을 채택하게 된다면 비용절감에는 큰 성과를 볼 수 있겠지만, QC(품질관리)와 기술유출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OEM방식은 양면의 얼굴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린다의 지적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SHJ-퀄컴의 QCP라인부터 대대적으로 증설하는 거 또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QCP라인만 가지고는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OEM 생산업체의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구형 모델을 생산하는 거로 하고 최신모델은 QCP라인을 자체 생산하는 거로 방향을 잡아 주세요.”
수정을 통해 디자인한 휴대폰은 극비리에 기능을 추가하는 설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 남아있었지만, 경환은 한국방문에 앞서 문기석과의 담판을 통해 얻어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경환의 계획을 듣고 있던 황태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이번 한국방문에 코이치를 대동한 건 엔지니어링 법인을 설립하기 위한 사전 조사차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설경비업체까지 법인 설립을 준비하는 마당에 그룹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현재 SHJ의 경영방식은 기형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경환은 물끄러미 황태수를 바라보며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경환도 황태수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SHJ-퀄컴이나 SHJ-구글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경환을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조직이 늘어나면서 부사장이 사장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인해 간혹 혼선이 생기기도 했다.
“황 부사장님의 말씀이 맞는 거 같긴 합니다만, 고민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황 부사장님께서 우선 그룹화에 따른 조직체계 구성을 만들어 주십시오. 결정은 한국에서 돌아온 후 하겠습니다.”
부족한 자금에도 불구하고 SHJ타운을 서둘러 착공하려는 이유도 SHJ-퀄컴과 SHJ-구글의 지배력을 확고히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이런 경환의 의도를 알고 있던 황태수는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지배구조를 확실히 챙길 준비를 하려고 했다.
“사장님, 저는 딕 체니와의 만남이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윌리엄은 딕 체니와 비교하자면 어린애 수준 밖에는 되지 않으니까요.”
경환도 딕 체니와의 만남이 부담이 되고 있었지만, 한번은 부딪혀야 될 사람이라면 미뤄봐야 머리만 아플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린다는 보수주의자이면서 자신의 앞길에 지장을 초래할 인물이나 기업들은 철저하게 제거하는 딕 체니가 경환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도 야심가인 딕 체니를 경계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면 마냥 피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윌리엄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람이 딕 체니라면 아직은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하게 그와의 만남을 추진할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사장님, 차량과 출장자들이 대기 중에 있습니다. 출발할 시간입니다.”
경호팀의 준비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하루나의 보고에 대화는 중단되었다. 이번 한국방문에 SHJ는 각 분야의 전문가팀을 조직해 경환을 수행하게 했고, 코이치가 이끄는 실무팀은 이미 한국에 도착해 경환의 한국방문에 대한 정지작업을 하고 있을 정도로 경환은 이번 한국방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고마워요. 하루나. 제가 없을 동안 회사를 잘 부탁드립니다.”
황태수에게 SHJ를 맡긴 경환은 알의 경호를 받으며 차량에 탑승했고 경호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차량은 공항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