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132화 (109/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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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인생 - 132

SHJ 회의실엔 샌디에이고에서 올라온 어윈과 디자인 팀원 전체가 모여 있었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 디자인팀을 구성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경환이 원하는 획기적인 기능을 탑재한 디자인이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디자인 팀에서 제출한 기획 안을 보면 기존 경쟁업체들의 모델들을 따라 잡을 만한 획기적인 모델들은 없다고 봅니다. 제가 지난번 말씀드렸던 새로운 기능이나 획기적인 디자인들은 도대체 연구를 해 보시긴 한 겁니까?”

평소의 모습과 달리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 경환의 모습에 회의실은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디자인 안이 올라 올 때마다 경환은 자신의 의견을 담아 다시 내려 보냈지만, 개선된 점이라고는 전혀 보이질 않고 있었다. CDMA 2000 1X의 개발에 맞춰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려던 경환의 계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있었다.

“여기 오성전자의 단말기가 있습니다. 외형은 노키아나 모토롤라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성전자의 단말기에는 SEND와 END가 자판의 상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디자인 팀장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새롭게 채용된 디자인팀장은 경환의 질문을 받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기술팀과의 회의를 획기적인 디자인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는 것을 들어 최대한 휴대폰의 크기를 줄이는데 중점을 두고 작업을 해 왔지만, 경환을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자판의 상단에 있든 하단에 있든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디자인 팀장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저, 그, 그게.......”

대답을 못하는 모습에 경환의 얼굴은 굳어져 갔다. 물론 경환은 오성건설 시절 그룹사에서 홍보차원으로 발간한 휴대폰 변천사의 홍보물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이었지만, SHJ-퀄컴의 기술팀과 디자인팀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깰 필요가 있었다.

“자판의 하단 면에 위치함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자주 떨어트린다는 것을 확인하고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상단으로 올린 것입니다. 앞으로의 제품은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앞으로의 모든 제품은 소비자의 편의에 우선순위를 두어 기술과 기능 디자인이 따라가야 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 소홀 하는 기업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경환은 마음먹었다는 듯이 회의에 참석한 인원을 깨기 시작했다. SHJ-퀄컴이 적자에서 벗어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보니 예전과 같은 절박한 모습이 경환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안주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경환은 그동안 보여 왔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회의에 참석한 모든 직원들을 질책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만 안주하려는 직원과는 같은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 지시가 계속 진행이 되지 않는다면 저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문제가 계속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QCP 라인은 과감하게 포기할 생각입니다. 휴대폰의 생산은 매각을 하거나 OEM 방식을 전환을 하게 될 겁니다.”

직원들을 가족과 같이 생각하던 경환의 입에서 해고의 의미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말이 나오자 회의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고 있었다. 비온 뒤의 땅이 굳어지듯 이번의 경고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면 경환은 과감히 정리할 생각이었다. SHJ-구글이 곧 서비스를 시작하고 플랜트 단독입찰과 SHJ타운 건설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모른척하고 이번 건을 넘길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회사를 잘 이끌지 못했습니다. 사장님의 질책을 받아들여 심기일전하겠습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어윈은 경환의 표정에서 굳은 의지를 확인하고는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자신이 먼저 나섰다. 경환은 어윈에게 수정이 만든 기획 안을 건네주었다.

“제 아내가 만든 디자인 안입니다. 두 가지 종류로 디자인 되었고, 현재 사출능력이나 기술력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장기계획을 통해 이 디자인을 기반으로 신제품을 개발하도록 하세요. 저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어윈과 디자인팀장은 경환이 건네준 디자인 도안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는지 눈만 껌뻑였다. 경환이 건네준 디자인은 사실 2000년이 넘겨서 나올 오성전자의 휴대폰을 참고한 것이었지만, 어윈과 디자인팀장은 비전문가인 수정의 창의력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디자인은 폴더 형과 슬라이드 형 두 가지 종류입니다. 물론 올해 출시되어 히트를 치고 있는 모토롤라의 스타텍을 참고한 폴더 형이긴 하지만, 스타텍과는 무게나 디자인, 기능에서 차별화를 두었습니다.”

기존의 직사각형의 획일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린 일체형 폴더형으로 안테나를 내장형으로 디자인하고 검정색을 탈피, 휴대폰 전체를 은색으로 마감하여 마치 소형 우주선을 보는 듯 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경환은 오성전자에서 2002년 공전의 히트를 친 모델을 카피한 것이지만, 1996년인 지금은 문제를 삼을 기업은 아무 곳도 없었다.

“정말 획기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능상 컬러액정이나 내장형 스테레오 기능은 아직은 기술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슬라이드 형이라고 명시된 모델은 아직은 무리입니다.”

회의에 참석한 기술팀장은 기술적인 한계를 들어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경환은 그런 모습을 더욱 강하게 질책하고 나섰다.

“안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남들과 같아서는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기술력을 확보하세요. 분명 누군가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기술적인 한계만 탓하고 계실 겁니까?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디자인과 기능을 보완해서 일주일 간격으로 성과물을 보고하세요.”

경환도 이 제품이 CDMA 2000 1X가 정착을 하는 2000년 후에나 상용화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기술팀장과 디자인팀장은 경환이 건네준 두 가지 형태의 모델을 살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이콥스 사장님, MS와의 WIP 공동개발과 CDMA 2000 1X는 언제 완료됩니까?”

회의의 분위기를 무겁게 잡아가고 있는 경환의 태도에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질 못하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중인 린다와 황태수 또한 평소와 다른 경환의 모습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WAP 진영과 속도를 맞출 수 있을 거 같습니다. WIP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개발 중에 있고 CDMA 2000 1X는 테스트 예정입니다.”

“아시겠지만, 그동안 본사가 희생을 하더라도 SHJ-퀄컴에 대한 자금지원은 거의 무한대로 제공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지만, 그에 따른 결과물을 이젠 보여주셔야 됩니다.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과는 절대 같이 가지 않겠습니다. 이 점 항상 기억해 주세요.”

퀄컴을 인수하면서 기술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있었고 CDMA 2000 1X는 빠른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경환은 SHJ의 무한대의 자금지원이 SHJ-퀄컴의 직원들을 나태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오늘같이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긴장감과 목표의식을 잃게 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환의 생각이었다. 또한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보니 잘못된 인수합병이었다는 목소리가 SHJ-퀄컴 내부에서 끊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경환은 강공을 통해 분위기를 다시 잡을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상반기 내로 새로운 기능을 탑재한 모델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모님을 디자인 고문으로 모시려고 하는데 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SHJ-퀄컴 직원들은 어윈을 회의실에 남기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모습들을 한 채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회의실에 남아있는 린다와 황태수는 아직도 인상을 풀지 않고 있는 경환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너무 서두르시는 거 같습니다.”

설득과 타협으로 회사를 이끌던 모습과는 달리 SHJ-퀄컴 직원들을 질책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낀 황태수가 조용히 경환에게 조언을 하고 나섰다.

“일부러 그랬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에 살아남으려면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SHJ-퀄컴뿐만 아니라 SHJ 모든 부서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실패를 모르고 이 자리까지 왔기 때문에 한 번의 실패로도 큰 좌절감에 빠질 수 있다고 봅니다.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이콥스 사장님은 제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윈의 고개를 끄떡여 경환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SHJ-퀄컴은 자극이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CHINA UNICOM과는 어떻게 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장성공사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협상에 입하고 있습니다. 단지 로열티 부분에서 4.5%로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4개 지역을 선정 테스트를 하겠다는 기본계획이 세워져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로열티 협상은 경환의 지시에 의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시장성을 들어 시간을 끌고 있었지만, 정작 SHJ-퀄컴은 중국의 시간 끌기에 일절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시간이 급한 건 우리가 아니니 중국보다 더 시간을 끌도록 하세요. 시스템 장비선정은 반드시 우리가 따 내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과도 협의가 잘 되고 있습니다. 내년도 시장 확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될 거 같습니다.”

SHJ-퀄컴은 내년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SHJ-퀄컴을 휴스턴으로 이전시킬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SHJ-퀄컴이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SHJ의 영역 권으로 불러들여야만 했다.

“최 부장님, SHJ타운은 잘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 요번 주에 조감도를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준비는 되셨나요?”

경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최석현은 탁자 위에 도면을 펼쳤다.

“리 브라운 측의 요청으로 공식적인 행사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는 내년 1월로 합의를 한 상태입니다. 시 정부에서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긴 하지만, 낙후지역인 롱포인트의 개발에는 동의를 한 상태입니다.”

중앙에 20층의 건물이 배치되고 좌우로 퀄컴과 구글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은 경환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감도를 바라보던 경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최석현을 찾았다.

“뒤쪽에 배치된 건물은 어떤 용도 인가요? 그리고 직원들의 주택용지가 너무 작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그에 대한 보안책은 있습니까?”

“보안 팀의 실내 훈련장입니다. 알의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와 주택을 분리해서 보완을 해 나갈 예정입니다.”

경환은 직원들의 형평성을 고려해 주택을 무료로 제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시세보다 약간 저렴한 수준에서 공급을 하게 되겠지만, 강제가 아닌 직원들의 선택에 맡길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SHJ타운의 주택들에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택의 매매에 SHJ가 관여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부 시설에 대한 설계는 SHJ-퀄컴과 SHJ-구글의 의견을 100% 반영시키세요. 각 회사의 근무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시고요. 그런데 이쪽에 보이는 긴 공터는 무슨 용도입니까?”

시 정부에서 받은 250에이커 밖으로 빈 공간이 남아있는 것을 본 경환은 무슨 의미가 있는 땅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용도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SHJ가 발전하게 된다면 250에이커도 사실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50에이커 주변의 공간이 개발이 되지 않도록 시 정부와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공간은 사설 비행장 공간입니다. 지금은 무리겠지만, 준비는 해 둬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환은 어이가 없는 듯 최석현을 향해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경환도 자가용비행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상태라 내년쯤 한두 대 구입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최석현은 경환의 생각에서 더 나가 사설 비행장 운영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장기계획으로 추진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부장님께서 진행을 해 주세요. 그리고 자가용비행기 두 대를 운영했을 때의 비용과 기종선정에 대해 검토를 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사겠다는 것은 아니니 서둘지는 마시고요.”

“자기용비행기는 내년 정도면 우리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의 잦은 출장과 기동성을 살리기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고요.”

린다까지 거들고 나서자 자기용비행기 구매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6년 전 군대동기인 석우와의 술자리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소리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경환은 감회에 빠져들었다. 96년의 12월도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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