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다시 사는 인생 - 131
11월 27일 경환은 어제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거실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희수가 태어나는 날이었지만, 수정은 큰 진통을 느끼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들어 경환의 마음은 초조해져만 갔다.
“이 서방, 조급해 한다고 아기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조급해 하나?”
수정의 산달이 다가오자 부탁을 드리지도 않았지만, 장모님은 수정과 정우를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다.
“그게 잘 안되네요. 제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들어가 쉬세요.”
아침이 다가올수록 경환은 심장은 급히 뛰기 시작했다. 희수가 태어나야 될 시간은 11시 10분이었지만, 수정의 산통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혹시라도 시간을 넘기게 된다면 자신이 기다리던 희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경환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을 때 안방 문이 열리고 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기 안자고 계속 거실에 있었어요?”
“난 괜찮아. 자기 몸은 좀 어때? 아직 소식이 없어?”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씩 산통이 시작되는 거 같아요.”
수정의 말이 떨어지자 경환은 급히 담당의사에 전화를 걸어 준비를 요청했고, 자는 정우를 안아들고는 최석현의 집으로 향했다. 이미 최석현에게 부탁을 해 놓은 상태라 정우를 급히 맡기고 온 경환은 미리 챙겨놓은 짐을 들고는 천천히 수정을 부축하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제 아내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분만실로 옮기는 중입니다. 미스터 리도 들어올 준비를 하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를 해서 뒤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경환은 장모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급히 옷을 갈아입고 분만실로 들어섰다. 분만용 의자위엔 수정이 급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경환은 수정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나 왔어. 힘들더라도 기운 내. 내가 옆에 있어 줄 테니까.”
“알, 알았어요. 허억, 어디 가지 마세요. 헉, 헉.”
수정은 서서히 찾아오는 고통에 아랫입술을 깨물은 채 힘들어 했고, 경환은 11시로 향하는 시계의 바늘을 쳐다보며 수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시즈 리, 조금만 힘을 내요. 아기의 머리가 보이고 있어요.”
“흡......, 흡....., 헉, 헉.”
수정은 사력을 다해 힘을 주고 있었지만, 희수의 울음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고 있었다. 경환은 수정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주며 고통스러워하는 수정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순간 수정의 손에 힘이 가해지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헉, 헉, 아아악.”
비명과 함께 경환의 손을 잡고 있던 수정의 손은 맥없이 떨어지려 했고 경환은 수정의 손을 더욱 세게 감싸 쥐며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경환은 차마 태어난 희수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분만실 안에 희수의 울음소리가 퍼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경환은 감았던 눈을 뜰 수 있었다.
“응애, 응애”
“수고했어요. 예쁜 공주님을 안아 보세요.”
담당의사의 손에서 수정에게 건네진 희수는 언제 울었냐는 듯 울음을 그치고 수정의 품에 안겼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경환은 시계를 바라보았고 시계는 11시 1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몬, 고맙다. 내 소원을 들어줬으니, 나도 너와의 약속을 지키마.’
경환은 진심을 다해 마몬에게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었다. 희수를 다시 만났다는 생각에 경환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환은 급히 눈물을 감추고 희수를 안고 행복해 하는 수정에게 말을 건넸다.
“자기야, 수고했어. 고생했고. 그리고 너무 고마워.”
“자기도 고생했어요. 희수 한번 안아 보세요.”
수정의 품에 안겨있는 희수를 조심스럽게 안아든 경환은 희수의 손가락에 검지를 가져다대자 희수는 급히 경환의 검지를 감싸 쥐었다. 순간 희수의 눈이 경환과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보이는 거 같았다.
‘희수야. 앞으로 너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거야. 아빠가 꼭 그렇게 만들어 줄게. 전생에서 못한 모든 걸 이루게 될 거야. 약속할게.’
수정과 희수를 살피느라 며칠 동안 출근을 미뤘던 경환은 에릭 슈미트의 전화를 받고 집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대기 중인 승용차엔 알과 몇 명의 대원들이 정장을 입은 채 경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호를 받는다는 것에 적응하기 힘들어 시기를 미루려 했지만, 희수가 태어난 후 지킬 것이 하나 더 생겼다는 생각에 경환은 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의 경호를 받으며 SHJ-구글에 도착한 경환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사장님, 축하합니다. 예쁜 공주님을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슈미트 사장님의 합류로 마케팅 부분이 많이 강화됐다는 보고는 이미 받았습니다.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에릭은 경환을 반갑게 맞아 주며, 래리와 세르게이가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에릭은 래리와 세르게이의 열정에 감복해 노벨의 사장자리를 마다하고 SHJ에 합류했고 경환은 어윈과 같은 조건으로 에릭의 합류를 진심으로 반겼다. 경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수익창출이라는 문제에 대해 에릭은 경환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놓고 있었다.
“래리, 세르게이. 요새 지내는 건 좀 어때? 건강에 신경 쓰라는 말 잊지 말고. SHJ타운 건설이 시작되면 최우선으로 SHJ-구글의 사업장부터 만들 테니까 그때까지만 좀 참어.”
“제임스, 그렇지 않아도 최 부장이 찾아와서 의견을 묻고 갔어요. 어마어마한 규모던데 밥값 못할까봐 은근히 걱정까지 되던데요. 하하하.”
“밥값하려면 건강부터 챙겨. 출퇴근 시간은 내가 관여할 생각은 없지만, 슈미트 사장을 포함해서 세 사람의 운동시간은 매일 챙길 테니까 알아서들 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경환의 말을 에릭은 흐뭇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경직되고 보수적인 플랜트업종의 대표라는 선입견은 합류한 첫날부터 깨져버렸다. IT 업계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경환의 모습에 에릭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앉으십시오. 우선 구글은 테스트를 마치고 서비스 개시 일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사장님께 검색엔진이 구동되는 것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래리, 준비해 주겠나?”
래리는 능숙하게 컴퓨터를 조작했고 깔끔하게 디자인된 구글의 메인화면이 화면에 나타났다. 경환은 구글의 검색능력 보다는 에릭이 어떻게 마케팅을 수립해 수익을 창출시킬 것인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에릭을 독촉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페이지랭크가 장착된 구글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이 한참 동안 진행되고 래리의 조작에 따라 화면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묵묵히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던 경환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을 때에릭은 경환이 가장 궁금해 하는 수익창출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구글의 검색능력은 기존의 검색엔진과는 차별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검색엔진의 수익창출은 아직까지는 광고를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은 검색엔진 서비스를 시작해 페이지랭크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집중을 하고 한 달의 시간을 두고 네트워크마케팅을 활용한 광고 전략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이름이 좋아서 네트워크마케팅이지 쉽게 말해 피라미드 사업을 하겠다는 에릭의 말에 경환은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트워크마케팅이라면 가입자의 추천을 받아 신규가입자를 확보해 나간다는 전략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사장님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방법입니다. 광고주와 가입자를 연결시켜 광고수익을 가입자와 배분한다는 전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가입자의 수를 필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추천인에 일정의 수익을 보장해 주는 네트워크마케팅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일정기간 우리의 플랫폼에 가입자를 끌어들여 판을 벌릴 준비를 해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신규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광고주를 끌어들일 수 있고 광고주가 많아짐으로 가입자는 더 늘어난다 이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경환은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네트워킹마케팅 즉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는 에릭의 마케팅 능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수익창출에 대한 아이디어만 제공한 상태에서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에릭의 마케팅 전략은 기존의 검색엔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두 번째, 수익창출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은 수익금 지급 지연방식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운용한다는 전략입니다.”
“고객의 수익금 지급을 지연한다면 신뢰에 타격을 입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입자를 확보하기 전 일정금액이 도달한 후에 수익금을 지불한다는 공시를 미리 해 둔다면 신뢰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령 수익금 지급 금액의 기준점을 100불로 설정한다면 가입자의 수익이 100불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가입자가 백만 명이라면 반만 계산을 하더라도 5천만 불의 운용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경환은 열린 입이 닫히지 않았다. 수익금 지급지연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은 장부상 부채로 남아있겠지만, 실제 현금은 장부와는 다르게 움직일 테니 상당한 자금을 가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경환은 마른침을 삼켰다.
“좋습니다. 우리의 플랫폼에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일정기간동안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겠네요. 조만간 SHJ-퀄컴에서 새로운 휴대폰 모델을 발표할 생각이니 그 광고를 구글에서 하면서 네트워크마케팅에 필요한 자금을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집행을 하겠습니다. 슈미트 사장이 절 부른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다른 게 또 있습니까?”
“하하하, 사장님을 속일 수는 없네요. 다른 부탁은 신규 가입자의 확대에 따라 서버를 확충해야 될 필요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서버의 과부하가 걸리기 전에 미리 확충을 하도록 안을 만들어 선집행하시고 후결제를 받으세요. SHJ-구글에 필요한 자원은 무한대로 공급을 하겠습니다.”
경환은 SHJ-퀄컴과 SHJ-구글에 투자를 망설일 생각이 없었다. 경환이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두 회사의 성공은 반드시 필요했고 투자에 소홀해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는 미련할 짓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제가 IT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SHJ의 미래는 IT 산업이 이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따라서 SHJ의 모든 역량을 여러분들에게 쏟아 부을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슈미트 사장님은 이런 제 생각을 이해하시고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비스 일정이 나오면 따로 보고를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사장님. 올해를 넘기지 않도록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정확한 일정은 따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직원들의 건강에도 꼭 신경을 써 주십시오. 연구에 매진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휴식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슈미트 사장님을 믿고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기분 좋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경환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질 않고 있었다. 승용차에 탄 후에도 미소를 짓는 경환에게 알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사장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댁으로 모실까요?”
“그렇게 보이나요? 기분이 좋습니다. 제 딸도 태어났고 기다리던 SHJ-구글의 사업도 가시권에 들어 왔네요. 알은 최대한 보안 팀 인원을 확충해 주세요. 회사가 커지다 보니 지킬 것이 많아지네요. 제가 욕심이 많은 가 봅니다. 오늘은 집에서 쉬겠습니다.”
아직 산후조리 중인 수정을 가볍게 안아 준 경환은 수정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희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희수야, 역시 넌 복덩어리야. 네가 태어나고 아빠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단다.”
경환의 말이 끝나자 자고 있던 희수는 희한하게 눈을 떠 경환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경환은 화들짝 놀라며 수정을 흔들었다.
“자기야. 봤어? 희수가 나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웃었어. 정말 신기하네.”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희수가 어떻게 자기하고 눈을 맞춰요? 아무리 딸이 좋다고 하지만, 자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 분명 눈을 마주쳤는데, 내가 착각을 했나 보네. 그리고 자기가 디자인한 휴대폰 모델들은 내일 정식으로 안건에 올릴 생각이야.”
수정은 경환의 도움을 받으며 틈틈이 휴대폰 디자인 작업을 해 왔었다. 물론 경환의 아이디어가 곳곳에 숨겨져 있었지만, 수정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수정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정식 디자인 팀이 있다면서 제가 만든 게 유용할까요?”
“내가 보기엔 자기가 디자인한 모델이면 휴대폰 시장에 충분히 먹히고도 남을 거야. 기대해도 좋으니까 앞으로도 부탁할게.”
디자인 도안을 서류가방에 챙겨 넣은 경환은 수정 옆에 잠들어 있는 희수와 정우를 번갈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