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74화 (5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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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인생 - 74

    아동건설과는 다르게 대현중공업과 KBR과의 협상은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두 회사 모두 FPSO에 대한 절박한 심정이 맞아 떨어져서인지 SHJ의 제안을 특별한 거부 없이 수용을 했다. 세 회사의 계약이 이뤄짐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대현과 KBR의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설계와 기술개발을 위해 T.F팀을 조직했고,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KBR의 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경환은 대현중공업의 실무 팀을 이끌고 온 정상길 사장보다는 설계와 기술팀을 이끌고 있는 민인식이란 인물을 보고 이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정상길이야 그룹회장의 자식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현그룹이 이 프로젝트를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 이해 할 수 있었지만, 민인식은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버클리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민인식은 군함을설계하는 리튼 사에서 많은 구축함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보잉사로 스카우트되었었다. 그 이후 대후조선에 입사한 민인식은 OEM방식을 고수하고 기술개발을 하지 않는 대후조선에 실망하였고, 대현그룹 회장의 끈질긴 구애 끝에 대현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다른 건 몰라도 대현중공업의 기술적 기반은 민인식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경환은 민인식이 T.F팀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에 따라 대현중공업과 KBR의 T.F팀 구성에서도 경환은 강력하게 윌리엄을 설득하여 민인식을 설계와 기술팀장으로 임명하도록 만들었다. 내일 돌아가는 정상길을 위해 경환은 자리를 마련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 사장님의 빠른 결정이 이 프로젝트를 원만하게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경환은 2000년 이후 정계로 진출하는 정상길과 개인적인 친분을 갖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 민인식도 함께 초대를 해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저는 이 사장님의 추진력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저야 대현그룹이라는 배경이 많이 작용을 했지만, 이 사장님은 단시간에 맨주먹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SHJ와 저희 대현중공업과 장기적인 파트너로 업무 협조를 했으면 합니다.”

    아직 한국 업체들과의 장기적인 거래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환은 쉽게 답변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특히 대현그룹의 경우 그룹 회장이 정치일선에 나섰다 현 정권으로부터 큰 제재를 당하고 있는 사실이 경환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는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건 민인식 팀장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민 팀장님의 노력여하에 따라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팀장님께서는 설계에 대한 초안이 언제쯤 가능 하리라 보십니까?”

    경환의 질문에 민인식은 쉽게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일에 자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였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느냐는 눈으로 경환을 바라보던 민인식은 고개를 저었다.

    “이 사장님께서 급하신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대형 선박에 대한 설계는 가지고 있으니 이를 응용하고 KBR의 기술을 융합해 간다면 반년 이내로 초안이 나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금년 10월부터 입찰이 시작되니 급하긴 하지만, 시간에 맞출 수는 있어 보였다. 경환은 민인식을 SHJ에 합류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다 포기하고 말았다. 민인식이란 인물 자체가 쉽게 말을 갈아탈 사람이 아니었고, 민인식을 SHJ 품에 안게 된다면 한국의 조선업의 퇴보를 초래하는 일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정 사장님이 많이 부럽습니다. 민 팀장님 같은 뛰어난 엔지니어이자 경영자를 모시고 계시니까요.”

    “하하하, 이 사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인복이 워낙 많아서요.”

    경환은 모시고 계신다는 라는 말로 정상길의 인물됨을 확인하려 했지만, 정상길은 전혀 개의치 않고 화통하게 받아 넘겼다. 경환은 정상길의 대답을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현중공업으로도 이번 FPSO 참여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SHJ도 입찰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기분 좋게 저녁을 마친 세 사람은 조선업계의 미래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 후 아쉬운 자리를 마무리 했고 다음날 정상길은 귀국길에 올랐다.

    대현중공업과 KBR의 FPSO 프로젝트는 두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예정보다 빠르게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퀄컴은 SHJ의 제안을 받아들여 린다는 투자에 따른 법적인 문제를 보완하느라 경환보다도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장님, 북경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돌려 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런 김창동의 전화에 경환은 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중국에서 진행되는 일에 대해 전권을 준 김창동이 휴스턴의 출근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다면 자신의 결정을 받아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김 부장님, 늦은 시간일 텐데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안부를 묻지도 않고 경환은 급히 김창동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경무부에서 저희가 진행하는 ONE-STOP SERVICE를 확대해 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 선에서도 처리가 가능한데, 화동의 장 사장이 사장님을 한번 만나고 싶어 합니다. 의중은 알 수 없지만, 제 생각으로는 홍콩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거 같습니다.”

    원하는 한국기업에 한해서 투자에 대한 조언과 인허가 절차를 위탁 받아 진행해온 사업이 큰 호응을 보이고 투자유치에도 일조를 한다는 보고를 받은 경무부에서는 이 사업의 확대방안에 대해 SHJ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지만, 크게 이익을 남기는 사업도 아니었고 자칫 투자에 실패한 기업들의 원성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경환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성궈의 요청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현재 고정적인 수입을 보이고 있는 것은 화동과의 유연탄 사업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성산업의 인수가 마무리 되었기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북경도 같이 방문을 하겠습니다. 장 사장과의 만남을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유연탄 거래에서 발생하는 비자금은 정확히 장성궈가 원하는 구좌에 넣어 주고 있었다.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장성궈가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자신의 방문을 원하고 있는지 경환은 무척 궁금했다.

    3월이 되자 수정의 배는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나와 있었다. 출산예정일이 두 달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부득이 수정을 장모님과 어머니에게 맡기고 한국과 중국출장에는 경환 혼자서만 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박화수의 진두지휘 아래 화성산업의 인수를 마무리하고 SHJ-화성 플랜트란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이 부장을 포함한 몇몇 인물이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직원들의 동요는 없어 보였다. SHJ가 인수비용이 홍콩에서 투입되자마자 제일 먼저 밀려있던 직원들의 급여를 보너스까지 포함해 일시불로 지급을 했다. 직원들의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한 박화수의 건의를 경환이 승인을 했던 것으로 이로 인해 화성산업 직원들은 SHJ의 인수를 반기는 분위기로 돌아서게 되었다.

    “사장님, 미국에서 오시는 이 사장님을 마중 안 나가도 되겠습니까? 마중을 나오지 말라는 이 사장님의 지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좀 찝찝하네요.”

    “강 부장님, 저도 부장님과 같은 생각을 했다가, 부사장님께 욕만 바가지로 먹었습니다. 앞으로 SHJ 그룹은 외부손님을 제외하고 열외 없습니다.”

    부장으로 승진한 강동원은 박화수의 말에도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경환은 화성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마산공장은 현행대로 최승호 전무 체제로 움직이게 했고 중단 되었던 KBR과의 기술이전에 속도를 주고 있었다. 또한 나이지리아 석유화학단지에 들어가는 일반 철 구조물 물량과 일부이기는 하지만, 시범적으로 특수플랜트를 발주 받은 상태로 마산공장은 이전의 모습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마침 경환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강동원의 눈에 띄었다.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강 부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새롭게 회사가 시작되는 만큼 부장님께 거는 기대가 많습니다. 박 사장님을 도와 회사를 키워 주십시오.”

    강동원은 경환의 가방을 받으려 했지만, 경환은 이를 극구 사양하고 자신이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경환은 사장실에 들어가 박화수의 보고를 받기를 원했다.

    “이번 인수를 원만하게 처리해 주신 것은 박 사장님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제 부탁은 마산공장의 최 전무님과의 기술회의를 소홀히 하지 말아 주십시오. 본사에서는 FPSO 사업을 마무리 하고 컨설팅업무를 확대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SHJ-화성의 물량도 많아 질 것으로 판단되니 그때를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최 전무님도 이번 인수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분과 함께 회사를 키워 보겠습니다.”

    박화수가 아니었다면 이번 인수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경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박화수는 플랜트 제작에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최승호의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였다.

    “최승화 사장님은 섭섭해 하지 않던가요?”

    경환은 불가피한 상황이었기는 했지만, 최승화로부터 회사를 뺏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저희가 아니었다면 오성에 통째로 먹힐 상태였습니다. 인간적으로야 섭섭해 하겠지만, 최 사장님도 불가피한 결정으로 생각하고 계실 거라고 봅니다.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경환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박화수는 조심스럽게 경환을 위로했지만, 최승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서 그런지 경환의 표정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지분 정리는 다 끝난 상태로 봐도 되겠죠?”

    “네, 그렇습니다. KBR이 23%, 최전무가 5%, 우리사주 5%를 제외하고는 확보를 마쳤습니다. 금융권의 총 차입금 30억 중에서 제 1금융권의 15억은 기간 연장을 받은 상태고 제 2금융권과 사채에서 들어온 15억은 전액 현금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담보로 설정된 지분과 어음 모두 회수를 했습니다. 최 사장님에겐 지분 인수 조건과 위로금 명목으로 10억을 지급을 했습니다.”

    자신이 근무했을 때만해도 제2금융권과 사채는 없는 상태였다. 권기철과 오성엔지니어링의 화성 죽이기 작업은 교묘하게 진행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경환이 인수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화성의 몰락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저희 SHJ는 무차입금 경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아직 15억의 차입금이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 돈을 변제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시고 경영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콩에서 급히 투입된 7백만 불이면 제 1금융권의 차입금도 해소 시킬 수 있었지만, 나이지리아 물량이 발주되기 전까지의 운영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이자를 지불하면서까지 기간연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차입금 청산을 목표로 삼고 노력하겠습니다. 오성엔지니어링 측에서 업무협조를 제안해 오고 있지만, 직원들의 사기를 감안해서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는 하지만, 상당히 뻔뻔하군요. 차입금을 청산하기 전까지는 거절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 후의 일은 박 사장님이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하십시오.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거래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시간이 된 거 같은데 같이 나가 보시죠.”

    경환은 최준석과의 약속된 만남을 위해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힘든 몸을 이끌고 서둘러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정 사장이 보기에 이경환이라는 친구는 어떻습니까?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사업을 일으킨 것을 보면 만만치는 않은 친구인 거 같긴 한데 말이죠.”

    자신과 마찬가지로 KBR 사장의 해외출장을 핑계로 삼아 혼자서 방문을 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최준석은 SHJ의 젊은 사장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KBR에서도 SHJ를 무시 못 하는 분위기를 읽었습니다. 특히 대현중공업과의 합작을 이끌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추진력 또한 대단해 보였습니다.”

    최준석은 한편으로 경환을 괘씸하게 여기고 있었다. 대현중공업과는 빠른 협상을 하면서도 아동건설과의 일은 질질 끌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였다. 그렇다고 자기 성질에 못 이겨 SHJ의 제안을 거절할 입장도 되지 못했다. 아동건설의 경우 리비아를 제외하고는 다른 해외건설에 많은 참여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번 제안을 성사시켜 돌파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술력을 검증하겠다고 하는데 준비는 해 놓고 있습니까?”

    “네, 회장님. 그 동안의 해외공사 위주로 정리를 해 놨습니다. 특히 리비아 공사에 대한 자료를 중점으로 했습니다. KBR에서 원하는 수준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이번 회의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비서실장이 급히 들어와 경환의 도착을 최준석에게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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