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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인생-71화 (26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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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인생 - 71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해 사무실의 직원들은 모두를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가족들이나 연인들과 이브의 밤을 지낼 생각들인지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 보다는 주위의 직원들과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기에 바빠 보였다. 그런 직원들을 위해 경환은 오전에 간단한 파티를 진행한 뒤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자신은 이미 마몬과의 계약으로 영혼이 저당 잡혀있어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무관하였지만, 크리스마스의 설렘은 남아있었다.

    “이다나, 개인적인 일이 있으니, 바쁘지 않으면 잠깐 들어와요?

    이다나는 경환의 부름에 밝은 미소를 보이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소 자신에게 커피 한잔 달라는 말도 하지 않던 경환이 개인적인 일이라며 자신을 부르자 어떤 일인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다나, 나와 부사장 챙겨주느라 고생 많았어요. 메리크리스마스.”

    경환은 이다나에게 작은 봉투를 건네주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이다나가 경환은 귀엽게 느껴져 어서 봉투를 받으라며 재촉을 했다.

    “홈구장에서 열리는 휴스턴 로켓츠의 경기입장권이에요. 바로 앞좌석이니 애인과 함께 관람을 하도록 해요. 그리고 내년에도 잘 부탁할게요.”

    이다나가 농구팀인 휴스턴로켓츠의 광팬이란 사실을 알고 있던 경환은 어렵게 부탁으로 얻은 홈경기 티켓을 이다나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미리 준비를 해 놓고 있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저는 준비를 못했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미안한 표정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두 손은 빠르게 경기티켓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다나에게 선물을 전달한 후 직원들과 간단히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 경환은 직원들이 퇴근을 지켜볼 새도 없이 황태수와 함께 KBR로 향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사장님, 저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다 돼서요.”

    케이티와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를 뉴욕에서 보내기 위해 최석현은 두 달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경환이 다른 스케줄을 잡을까 걱정된 최석현은 미리부터 뉴욕여행을 가겠노라고 광고를 하고 다녔었다. 마침 홍콩의 에릭이 애인과 함께 뉴욕에 오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며 에릭의 합류문제도 이번에 자신이 확실하게 하고 오겠다는 말로 이번 뉴욕행이 여행뿐만 아니라 공무도 있다고 강조를 하고 있었다. 최석현의 속보이는 행동에 심술이 난 경환은 일을 만들어 볼까라고 생각을 했지만, 실망을 할 케이티의 얼굴이 떠올라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잘 보내고 오십시오. 그리고 올 때는 두 사람만 오지 말고 한 명 더 만들어서 오셔야 됩니다.”

    경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빠르게 돌아서는 최석현을 경환과 황태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지만, 최석현은 누가 잡을 새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급히 사라졌다.

    “내년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SHJ가 비상을 하느냐 지리멸렬하느냐는 내년 일 년 안에 결판이 난다고 봅니다. 부사장님께서 많이 도와 주셔야겠습니다.”

    “린다까지 합류가 된다면 저희에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희야 금융권의 차입금 없이 맨주먹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당분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진밖에 할 수 없습니다.”

    황태수의 합류로 인해 SHJ는 중심을 잡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과격하게 전진하려는 경환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다가도 경환의 망설임에는 뒤에서 밀어주는 있는 황태수는 경환에게 큰 위안을 주는 인물이었다. 경환은 그런 고마움을 눈빛에 담아 황태수를 바라보았다.

    “제임스, 미스터 황, 어서들 오게. 우선 잔들부터 받게나.”

    KBR의 파티에 도착한 경환에게 윌리엄은 샴페인을 한잔 건네주었다. NNPC와 무사히 본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온 윌리엄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 있었다. 물론 저가공세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윌리엄은 특유의 친화적인 성격으로 그런 공세를 무마시켜 가고 있었다.

    “윌리엄, 메리크리스마스. 내년에도 SHJ와 KBR은 함께 할 것입니다.”

    “하하하, 그건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런데 요번에 자네 나한테 좀 심했어.”

    분위기를 감지한 황태수는 안면이 있는 KBR의 임원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슬쩍 자리를 피해 주고 있었다. 많은 임원들과 직원들의 인사를 받은 경환은 윌리엄에 이끌려 조용한 장소로 이동을 했다. 아마도 린다의 일을 추궁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경환은 윌리엄의 반응이 어떨지 몹시 궁금했다.

    “린다가 KBR을 떠나 SHJ에 합류하겠다고 하더군. 린다는 나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직원이네.”

    좀 전의 웃음으로 경환을 반기던 모습과는 달리 정색을 하는 윌리엄을 보며 경환은 인상이 굳어졌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린다에게 제안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윌리엄이 반대를 한다면 그 제안을 취소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윌리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경환은 윌리엄이 반대를 한다면 린다의 영입을 몇 년 뒤로 미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경환의 말에 윌리엄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경환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윌리엄은 시가를 꺼내 한대를 경환에게 넘겨주고는 불을 붙였다.

    “물론 린다가 아까운 재원이긴 하지만, 맘 떠난 사람을 잡을 생각은 없어 동의를 해 주었네. 난 린다가 SHJ로 옮겨 간다면 KBR과 SHJ의 중간자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겠네. 자네에게 직원을 뺏겨 섭섭하긴 하지만, 그 섭섭함을 큰 이익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넘어가 주겠네.”

    윌리엄은 타인을 생각해주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린다가 아니라 잭이라 할지라도 희생을 시킬 인물이라는 건 경환도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이 되면 SHJ와의 거래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은 경환과 윌리엄 모두 내색만 하지 않을 뿐이었다.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황 부사장이 바로 한국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때부터 작업이 시작될 것이고 윌리엄과 SHJ는 많은 이익을 취하게 될 겁니다.”

    경환의 말에 윌리엄은 급히 굳었던 얼굴을 풀며 시가의 찐한 연기를 입 밖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하하하, 난 제임스의 이런 자신 있는 모습이 참 맘에 들어. 아무쪼록 내년에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네.”

    린다의 영입에 대한 동의를 얻은 경환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윌리엄과 끝까지 같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SHJ가 독자적인 기반을 다져 놓고 서로의 이익이 상충되기 전까지는 경환은 최대한 윌리엄의 비위를 맞춰줄 생각이었다.

    파티를 마치고 경환은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서둘러 차를 몰았다. 다른 해와 다르게 두 어머니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된 올해는 수정이를 위해서도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입덧은 사라졌지만, 불러오는 배로 힘들어 하는 수정을 두 어머니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고 있어 수정은 첫 임신이라는 불안감을 서서히 떨쳐낼 수 있었다.

    “엄마, 장모님.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들이 준비한 선물이고요.”

    수정과 며칠을 상의를 해 봐도 마땅히 준비할 선물이 떠오르지 않았던 경환은 여자는 현찰을 좋아한다는 신념으로 이천 불이 들어간 봉투를 선물로 준비를 했다.

    “뭘 이런 걸 준비를 다 했어?”

    경환의 어머니는 말을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이미 눈은 봉투 안의 금액을 확인하기 바빴다. 그건 장모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 서방, 뭐 이리 많이 넣었어? 고맙게 잘 받겠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두 어머니 모두 만족한 듯 한 얼굴을 보며 경환은 안도를 할 수 있었다.

    “참, 아버지가 손자 이름을 지어 보셨단다. 어떤지 네가 한번 보라고 하신다.”

    경환의 어머니는 메모지에 적힌 이름을 경환에게 건네주었다. 한국의 산부인과와는 다르게 미국에선 임신한 아이의 성별을 미리 알려주고 있었다. 의사가 전해주는 아들이라는 소리에 두 어머니들뿐만 아니라 한국에 계신 경환의 아버지와 장인 모두 크게 기뻐했지만, 그럴수록 경환은 희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간절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수정에게나 두 어머니들 앞에선 절대 내색할 생각은 없었다.

    ‘이 정우’

    경환의 아버지는 며칠을 고민하고 옥편을 뒤져가며 자신의 손자이름을 지어 보냈다. 자신의 아들 이름을 확인 한 경환은 나직이 그 이름을 불러 보았다. 애타게 기다리는 희수와 함께 자신이 지켜야 될 자식이었다.

    “좋은데요.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전화를 드려야겠어요. 자기는 어때?”

    경환은 이름을 보여 주었지만, 수정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만 끄떡이고 있었다. 풍성한 음식이 준비된 식탁에서 네 사람은 조용히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화성산업의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박화수는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일에 빠져 있었다. 연말연시의 흥겨움도 박화수에겐 사치에 불과할 정도로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다행히 황태수와 김창동이 업무지원을 와 준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박 부장, 고생 많았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황태수와 김창동의 모습을 확인한 박화수는 눈물이라도 쏟는 심정이었다. 일에 보람은 느끼고 있었지만, 도와줄 직원 하나 없이 혼자서 한국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다 보니, 업무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따라서 황태수와 김창동의 등장은 박화수에겐 사막에서 찾은 오아시스처럼 반갑게 느껴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두 분을 마중 나갔어야 했는데 도저히 발을 뺄 수가 없었습니다.”

    “사장님 지시사항 못 들었나? 앞으로 출장을 다니더라도 마중이나 배웅은 일절 하지 말라는 지시사항 말이야. 우리가 애들도 아니고 길도 못 찾을 거 같아 보여서 그래?”

    경환은 자신을 포함해서 SHJ 출장자에 대한 마중과 배웅을 일절 금지 시켰다. 그럴 시간에 업무에 매진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박화수도 이런 경환의 지시사항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의 부사장을 택시로 이동하게 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김 부장도 같이 왔으니, 잠시 일정을 조율해 보세. 잠깐 회의를 했으면 하는데.”

    “회의실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자리를 옮기시죠.”

    화성산업의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화성산업의 직원들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황태수의 생각과는 다르게 화성산업의 직원들은 SHJ의 인수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자칫 자신들을 점령군으로 생각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을 염려한 황태수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화성산업 직원들의 눈빛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급히 처리해야 될 사항은 화성산업 인수, 중원그룹 합작건, 아동그룹, 대현중공업 이 세 가지로 보는 데 우리 세 사람이 당분간 최대한 빠르게 진행을 시켜 나가야 될 거야.”

    박화수는 황태수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자신이 그 동안 고생했을 것을 알아 달라는 듯이 황태수를 애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 하나, 제대로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분이 오시지 않았다면 일에 치여 급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박화수의 우는 소리에 자신도 북경에서 혼자 일을 처리하고 있어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낀 김창동은 이해한다는 듯 박화수의 말에 공감을 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태수는 그런 두 사람의 죽을상을 무시하고 일침을 놓아 주었다.

    “두 사람 모두 잘 듣게. 올해는 우리 SHJ의 사활이 걸린 한 해가 될 거야.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텐데, 벌써부터 울상을 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사장님께서는 지금 자신의 지분을 우리에게 나눠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계시네. 열심히 하면 그 만큼 보상이 따른다는 거니까. 좀 더 힘들 내.”

    황태수의 말에 두 사람은 입을 쩍 벌리며 놀라고 있었다. 단지 SHJ의 직원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최선을 다해 본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오너인 경환은 자신의 지분까지 나눠주려 하고 있다는 소리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더 이상 SHJ의 직원이 아닌 주주가 된다는 황태수의 말에 두 사람은 초심을 놓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우선 김 부장이 한국통운과 중원그룹의 합작을 맡아 진행하고, 나는 아동건설과 대현중공업을 맡아 처리를 하겠네. 그리고 박 부장은 화성의 인수 작업에 매진을 하도록 해.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일주일 안으로 성과를 만들어 보자고.”

    “알겠습니다. 이상 없도록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이미 오성그룹과 제일그룹에서 업무적으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세 사람은 업무가 분담되자 각자 자신의 역할을 찾아 빠르게 대응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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