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인생-50화 (49/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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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인생 - 50

경환의 지시로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북경으로 돌아온 김창동은 경환과 한 건물에 와 있었다. 김창동이 합류하긴 했지만, 아직 사무실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환은 김창동이 출장을 간 사이 사무실을 마련하기 위해 북경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결국은 집과 가까운 야윈춘 단지 내에 있는 CATIC이라는 오피스건물을 맘에 두고 있었다.

“부장님이 일을 하실 공간이니 결정은 부장님이 하십시오. 한번 들어가서 살펴보시죠.”

경환은 김창동과 함께 아무런 장식이 되어 있지 않은 빈 사무실을 살피고 있었다. 80M2의 면적으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공간활용만 잘 한다면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거 같아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화려하게 사무실을 꾸미는 거 보다는 작더라도 실속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집과도 가깝고 여러 가지로 괜찮아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크고 화려하게 해 드리고 싶은데, 아직 제 능력이 이정도 밖에는 안 되네요.”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어 주려는 경환의 마음을 읽은 김창동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김창동의 동의로 경환은 관리사무실과 임대계약을 그 자리에서 체결을 하고 인테리어 문제는 비용을 추가하는 조건으로 관리사무소에 위탁을 해 버렸다.

“팀장님, 최 차장 말로는 북경은 단순한 연락사무소로 운영을 하시겠다고 하셨다는데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중국의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마당에 북경을 홍콩법인의 연락사무소로 운영을 한다는 말이 김창동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고 있었다.

“당분간은 중국에 돈을 투자해서 법인화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중국에서 손쉽게 빠져 나갈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99년까지는 연락사무소로 운영을 해 주십시오. 최 차장이 미국으로 빠지게 되면 홍콩도 부장님이 관리를 하셔야 됩니다. 인원선발이나 파견은 부장님께 위임을 해 드리겠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북경사무소 등기작업을 마무리 해 주시고 사무실 현지 직원은 북경호구를 가지고 있는 한족위주로 선발을 해 주십시오.”

중국은 외화가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어려운 나라였다. 짧게는 10년 최대 15년 내에는 중국에서 사업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경환은 무리하게 중국에 돈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99년 이후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하기 전까지는 연락사무소로만 운영을 할 생각이었다.

“모든 계약은 홍콩법인 명의로 진행을 하시고, 북경사무소가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서류를 만들어 주세요. 지금은 이해를 못하시겠지만 나중에 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경무부에 부탁을 해 놓았으니 사무소 등기절차는 빨리 진행이 될 것입니다. 차는 등기절차가 완료되면 구입을 하도록 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서류는 최 차장이 준비를 해 놓아서 내일이라도 당장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유연탄은 어떻게 처리를 하면 좋겠습니까?’

김창동은 난처한 표정으로 경환에게 답을 구하고 있었다. 홍콩에서 만나 다시 협의를 하자는 제일그룹 김세동 부장의 간곡한 요청을 받았지만, 경환은 이를 무시하고 자신을 북경으로 불러들였다. 황규동이 괘씸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제일그룹을 매정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 차장에게 따로 지시는 했습니다. 제일그룹에서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우리도 방법을 달리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부장님의 마음으로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우리만 생각을 할 때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은 잠시 접어주십시오.”

김창동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나서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더 이상 자신은 제일그룹의 사람이 아니었다.

홍콩사무실은 오전부터 찾아와 진을 치고 있는 황규동일행과 급히 홍콩에 도착한 김세동일행으로 작은 사무실이 앉아 있을 공간도 없이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황규동은 거의 울상으로 최석현에게 사정을 하고 있었지만, 최석현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었다.

“최 차장님, 어제 있었던 일은 담당부장인 제가 백 번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이경환 씨….아니, 사장님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세동 부장은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경환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통 연결을 할 수가 없었다. 믿었던 김창동도 경환의 지시로 아침 일찍 북경으로 돌아갔다는 연락을 받고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 몹시 불안했다.

“부장님, 죄송하지만 저도 사장님과는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제일그룹과의 모든 업무를 중단하라는 지시만 받아서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한번 뱉은 말은 절대 바꾸실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저에게 말씀을 하셔도 제가 도와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얼굴 마주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 제발 데리고 좀 가주십시오.”

최석현은 황규동을 힐끔 보며 김세동에게 난처하다는 얘기를 꺼냈다. 김세동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황규동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었지만, 누워서 침을 뱉을 수는 없었다.

“실사 팀을 다시 꾸려 왔습니다. 북경은 제가 직접 들어 갈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사죄를 드립니다.”

“저희 사장님 말씀은 이미 제일그룹과는 틀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생긴 상태에서 일을 진행을 하다 보면 앞으로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하시네요. 황 차장님이 한국으로 들어가신다 하더라도 업무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건 제 생각입니다.”

황규동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의 목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안 황규동은 거의 울상으로 최 차장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황 차장 자네는 더 이상 추태부리지 말고 데리고 온 인원들 수습해서 바로 귀국하도록 해. 부서의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고 내가 들어갈 때까지 대기하도록 해.”

죽을상을 하고 있던 황규동은 김세동의 지시에 자신이 데리고 온 인원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최석현은 사무실을 나가는 황규동 일행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최 차장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번 신세는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머리를 조아리는 김세동을 보며 최 차장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전화기를 들어 경환과 통화를 시도했다. 경환과 한참을 통화를 한 최석현은 수화기를 김창동에게 전해 주었다.

“이 사장님, 어제 일은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실사 팀을 다시 선정해서 제가 직접 들어가겠습니다. 제 부하직원의 잘못은 북경에서 직접 사죄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장님이 그러시니 저도 만나는 뵙겠습니다. 그러나 제 결심이 달라진 건 아닙니다.’

통화를 마친 김세동은 최석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북경으로 들어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시간이 늦어 경환이 다른 곳과 계약이라도 하게 된다면 큰 낭패였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을 빠져 나가는 김세동 일행을 보며 최석현은 희미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김세동이 홍콩사무실을 빠져나갈 무렵 경환은 김창동과 함께 진황도로 향하고 있었다. 석탄부두에서 장성궈를 만나기로 한 경환은 실사를 하기 전 미리 석탄을 확인하고 싶었다. 도착한 진황도는 목이 칼칼할 정도로 날리는 석탄가루로 인해 숨 쉬기 조차 힘들었다. 이미 부두 입구엔 장성궈가 도착해서 경환을 맞이하고 있었다.

“샤오 리, 오느라 고생 많았어. 자네가 온다고 해서 내가 일부러 내려 온 거야.”

“감사합니다, 형님. 실사 팀 보다는 제가 먼저 눈으로 봐 둬야 안심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제 북경사무소 수석대표를 형님께 인사를 시켜 드리고 싶었고요.”

김창동은 경환의 소개에 장성궈에게 고개를 숙여 자신을 소개했다. 장성궈 또한 데리고 온 자신의 직원을 경환과 김창동에게 소개를 시켰다. 김창동과 장성궈의 직원이 석탄에 대해 대화를 할 무렵 장 사장은 슬쩍 경환의 소매를 잡았다.

“샤오 리, 자네가 소개시킨 수석대표란 사람은 자네와 어떤 관계인가?”

질문의 뜻을 이해한 경환은 장성궈를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형님이 저를 믿어 주는 만큼 저도 김 대표를 믿습니다. 형님이 필요한 부분은 제가 직접 관리를 할 생각이니 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자네 날 좀팽이로 만드는 건가? 자네가 신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나도 걱정은 하지 않겠네. 이번 30만 톤이 시작이 되면 양을 더 추가 시켜 주겠네. 자네가 계속 작품을 잘 만들어봐. 그리고 당분간은 잘 보관 좀 해 주고.”

장성궈의 말에 경환은 고개를 끄떡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경환과 김창동은 장성궈의 안내로 석탄이 보관되어 있는 야적장과 선적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홍콩에서 오는 김세동과의 협상을 위해 빠르게 북경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북경으로 들어 온 김세동은 제일그룹 북경지사장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이 실장과는 다른 라인인 북경지사장은 김세동으로도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아직 회장님은 이 사실을 모르시네. 김 부장이 원만하게 해결을 하겠다고 하니 내 그때까지는 기다려 주겠네. 내가 새파랗게 젊은 친구에게 망신을 당한 걸 생각하면…..”

김세동을 못 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북경지사장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이영수 라인인 김세동이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북경지사장은 즐기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상무님. 이 은혜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부하직원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해 이런 사태를 만들어 정말 상무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이경환이라는 친구 북경에서 제법 인맥이 좋아 보이더군. 인맥만 보자면 나도 그 친구를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야. 중국 사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친구와 척을 지지 않도록 하게. 이건 나도 제일그룹에 몸을 담고 있어서 하는 소리니까.”

김세동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을 때 경환과 김창동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세동은 빠르게 일어나 경환을 맞이해 회의실로 향했다.

“홍콩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제가 다시 사과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회의실 의자에 앉자마자 김세동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장님이 잘못하신 게 아니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저야 그렇다 치더라도 제일그룹 식구였던 여기 김 대표님을 조롱했다는 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군요. 이 일을 어떻게 처리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 일은 본사의 이영수 실장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김세동의 어깨는 무거워져 갔다. 자신이 왜 이 지경까지 와 있는지 머릿속이 텅 비어가고 있었다.

“황 차장은 조사를 해 본 뒤 잘못한 부분이 명백히 들어나게 되면 인사조치가 뒤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김 부장, 내가 대신 미안하게 생각하네.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자네가 너그럽게 황 차장을 용서해 주게나.”

경환의 강경한 태도와 김세동의 사과를 받는 김창동도 맘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황규동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인사 조치를 당하게 된다면 결국은 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김창동은 한참을 고민 한 뒤 경환을 향해 말을 꺼냈다.

“팀장님, 아니 사장님. 사장님이 저를 생각해 주시는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황 차장의 인사 조치는 제가 마음이 너무 안 좋습니다. 김 부장님의 말씀대로 사장님께서 너그럽게 용서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창동의 말이 의외라는 듯 경환은 김창동을 바라보았고, 김창동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세동은 경환에게 다시 한 번 이해를 구했다. 경환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한참을 고민한 뒤 김세동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좋습니다. 이번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차후라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장님이 약속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본 계약이 체결되면 저희 김 대표님의 파트너로 황 차장을 북경지사로 파견을 보내시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교육은 철저히 시키셔야 되겠지만요.”

김세동은 경환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석탄수입이 시작되면 자신의 부서에서 인원을 파견할 생각이었다. 경환이 왜 황규동을 지목했는지 정확한 의도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김세동으로서는 지금 이 순간을 원만하게 넘겨야 했다.

꼬였던 문제를 푼 경환과 김세동은 세부일정에 대해 협의를 해 나갔고, 김 대표와 함께 광산이 있는 산서성 대동 시와 선적이 이뤄지는 진황도를 방문하여 원만하게 실사 작업을 마친 뒤 북경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경환은 김세동과 함께 화동진출구총공사를 방문 장성궈와의 미팅을 주선해 주었고 장성궈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 김세동은 실사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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