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다시 사는 인생 - 31
“고생 많으셨습니다. 중국이 접대문화가 좀 유별나서 그런 거니 너무 미안해하거나 현혹되지 마십시오.”
경환은 김창동이 중국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중국의 이런 접대문화에 현혹되어 가산을 탕진한 사람을 부지기수로 봐 왔기 때문이었다.
“차장님의 조언 감사합니다. 저보다는 제 아내가 많이 놀란 눈치라서요.”
아직도 수정은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 입을 굳게 다문 채 경환의 손만 꽉 잡고 있었다. 공항에서 있었던 유별난 환영인사에 아마도 방송에 자주 나오는 북한의 그것을 생각하는 듯 했다. 경환은 수정을 향해 안심하라는 듯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경환 씨 부인께서 많이 놀라신 거 같으시네요. 여기에도 많지는 않지만, 주재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인들의 모임도 있으니 그 모임에 참석을 하시게 되면 많은 정보를 얻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수정은 여전히 불안감에서 해방되지는 않았지만, 김창동이 말한 모임에 꼭 나가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있었다.
“차장님께서 신경을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기가 야윈춘으로 알고 있는데 저희가 살 집을 잠깐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경환은 이곳의 지리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김창동의 안내를 묵묵히 따라갔다. 작년에 있었던 아시안게임을 위한 선수촌으로 조성된 야윈춘은 중국정부가 대외선전용으로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대단위 고급 아파트 단지로 북경의 부촌으로 자로 잡고 있는 신흥구역이었다.
“여긴 북경이 아닌 거 같아요.”
아파트 단지 중앙에 위치한 공원을 지나며 수정은 좀 전과는 다른 풍경에 맘이 살짝 놓이는지 굳었던 얼굴이 서서히 풀어지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단지 내에서도 한 번의 보안 바리케이드를 지나야 고층 아파트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동 18층으로 임대계약을 해 놓았습니다. 제가 잘 몰라 인테리어는 제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정리가 되면 차장님과 사모님을 정식으로 초대를 하겠습니다.”
경환과 수정은 김창동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고 김창동은 아파트 일층의 프런트로 향해 등기를 하고 있었다. 고급 아파트였던 만큼 호텔식 관리를 하고 있어 아파트 동마다 프런트가 설치되어 있는 형태였다. 프런트직원과 함께 18층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파트 내부는 경환이 생각했던 만큼 깨끗하고 가전과 가구가 모두 구비되어 있어 고급스러웠다.
“수정아, 어때?”
“생각했던 거 보다 훨씬 좋아요. 그런데 너무 크지 않아요?”
“경환 씨가 선택하신 이 아파트는 평수가 모두 이렇습니다. 저는 옆 동에 살고 있으니 불편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한국평수로 50평이 훨씬 넘는 크기였기에 사실 신혼부부가 살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었지만, 자신을 이 사지로 밀어 넣은 제일그룹이 괘씸해서라도 이 정도는 받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경환이었다.
“언제부터 입주가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오늘부터 입주가 가능하지만, 하루 사람을 사서 청소를 하고 모레부터 입주 하시는 게 어떨까요?”
“차장님께서 도와 주셔서 힘든 걸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되시면 사모님을 모시고 같이 저녁을 했으면 하는데 어떠신가요?”
김창동은 흔쾌히 동의를 하고 급히 먼저 방을 빠져 나갔다. 수정은 자신과 경환이 처음으로 살아야 되는 집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었다. 경환은 유리 창문 너머로 펼쳐져 있는 뿌연 북경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등 떠밀리다시피 온 북경이었지만, 이곳에 온 이상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미래에 필요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단지 앞에 북한식당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시다면 그곳에서 식사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경환은 김창동의 의견을 구했고, 김 차장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경환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단지 맞은편 골목길에 들어서니 멀찍이 류경식당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수정은 북한식당이라는 말에 좀 전에 풀렸던 긴장감이 들었는지 큰 눈을 더 크게 뜨고는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괜찮아. 돈 벌려고 차린 식당인데, 납치라도 할까 봐서?”
김창동 식구들은 몇 번 와 봤던지 앞서 문을 열고 들어갔고, 수정은 맨 뒤에서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종업원들 또한 낯선 한국 사람들의 방문에 경계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살피기 시작하더니, 가슴 위쪽에 자그마한 배지를 단 여 종업원이 무뚝뚝하게 메뉴판을 테이블에 던지고서는 말도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사모님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곳이 처음이니 음식은 저 대신 주문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리고 김치와 가자미식혜는 꼭 시켜 주세요.”
“이경환 씨 부모님들 고향이 혹시 함경도 분들이신가요?”
경환은 전생 북경에서 연수시절 자주 북한식당을 찾았었다. 북한식 김치와 가자미식혜를 먹고 나서 그 맛에 빠져 매주 북한식당을 다니고는 했었다.
“아닙니다. 북한식당에 가게 되면 꼭 먹어보라고 하신 분들이 계셔서.”
김창동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리를 시켰고, 식당에 설치된 TV에서는 장군님을 찾는 노래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리가 나오고 수정은 김창동 부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경환 씨에 대해서는 이 실장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중국도 잠재력이 대단한 나라인 만큼 지금 선점해 둔다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얼마 동안 머무르실지 모르겠지만 좋은 기회가 생각을 하십시오.”
“원치 않은 중국 유학이긴 하지만, 이왕 왔으니 열심히 해 봐야죠. 기회의 땅이긴 하지만 중국이 만만치 않은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쑤시개를 팔아도 10억 개를 팔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중국이 지금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지만, 머리가 커진 후에는 과연 어떻게 나올지 저는 그게 좀 걱정입니다.”
김창동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대학생답지 않게 전체를 바라보는 경환의 모습에 많이 놀라고 있었다. 이 실장으로부터 어리다고 함부로 생각하지 말고 신중하게 대하라는 전언이 있었기는 하지만 오늘 만나 본 경환에 김창동은 많은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차장님께서는 어떤 업무를 주로 하시는지요?”
갑작스런 경환의 질문에 김창동은 화들짝 놀라며 경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단순하게 연락사무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경환 씨의 말대로 중국이 만만치 않다고 저 개인적으로도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벌이기보다는 관망을 하며 중국의 법체계를 연구하면서 인맥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경환은 김창동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주문한 맥주를 김창동의 잔에 따라 주었다.
“시간이 나면 차차 얘기를 나눠 보죠. 그리고 북경 체류에 필요한 서류는 며칠 후에 처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차량은 일주일 후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거류증이 나오게 되면 중국운전면허증을 한국 면허증과 교환 할 수 있으니 당분간은 운전하시기는 힘드실 겁니다.”
경환은 김창동과 중국에 대해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눈 후, 수정과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이틀을 투숙한 후 경환과 수정은 아파트로 입주 할 수 있었고, 경환도 본격적으로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정은 극구 어학연수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우선은 김창동의 부인에게 수정의 중국생활 적응을 부탁해야만 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지만 경환은 쉽게 중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빠른 성공을 원하는 경환에게 중국의 유학생활은 경환의 행보를 더디게 만들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북경대학 편입신청을 마친 경환은 처음으로 수업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중국의 대학 분위기는 한국의 자유로운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아직 사회주의 국가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획일적인 느낌이 든 경환은 자신이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회귀한 듯 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영문학과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수업이 중국어로 이루어지는 관계로 이 또한 경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였다.
‘내 나이 오십에 이게 뭔 짓이냐고. 후…. 군대에 다시 왔다고 생각하자고. 군대도 버텼는데.’
경환은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경제학부로 마 교수를 찾아갔다.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마 교수의 만행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경환은 급히 마 교수의 사무실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세요.”
경환은 마 교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라는 소리를 듣기도 전에 인사를 하고는 소파에 앉아 버렸다.
“교수님께 쌓인 스트레스나 좀 풀려고 왔습니다. 바쁘시지는 않으시죠?”
경환의 불만 쌓인 얼굴을 보고는 마 교수는 웃으며 경환의 맞은편에 앉아 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제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교수님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학교생활에 얽매이는 거 보단 많은 인맥을 쌓고 싶습니다. 좀 도와 주십시오. 저 이러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경환은 마 교수 앞에서 과장된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경환을 바라보고 있던 마 교수는 경환에게 질문을 했다.
“난 자네의 미래를 예측하는 경제 감각이 마음에 드네, 내가 자네를 여기로 초청한 이유는 단순하게 공부나 하라고 부른 건 아니야. 내가 왜 자네를 북경으로 부른지 알겠나?”
경환은 의미심장한 마 교수의 말을 듣고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해 주십시오.”
“중국은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중이네. 그러나 밑을 받쳐줄 동력이 약한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난 자네의 미래적인 안목을 중국경제에 접목을 시켜 보고 싶은 마음에, 자네를 북경으로 초청을 하게 된 거고. 앞으로 10년 후 중국경제를 이끌어 갈 젊은 인재들이 모인 모임이 있는데, 내 자네를 그 모임에 옵서버로 참여시키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마 교수의 말에 경환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마 교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아니 돈이 들더라도 그런 자리에 참석을 해야만 했다. 경환에게는 인맥을 한방에 쌓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았지만, 쉽게 마 교수의 제안을 받아드릴 생각은 없었다.
“좋은 모임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의 주 무대를 미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떼돈을 벌겠다는 목표는 가지고 있지만, 중국이 제 기대를 충족 시켜 줄 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저를 너무 과대포장 하신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한번 튕겨 보기로 했다. 중국인들과의 협상은 복불복의 자세로 해야만 된다는 게 경환의 이론이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중국인들은 비즈니스로 만날 때부터 머릿속으로는 주판을 튕긴다는 걸 경환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허허, 자네가 미국을 주 무대로 생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네가 예상했듯이 10년이나 15년 후엔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제를 이끌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참에 중국의 젊은 인재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자네에게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아.참, 자네의 수업은 내가 편의를 봐 줄 수도 있네만.”
마 교수는 경환의 아킬레스건을 찔렀다. 수업에 참여하는 게 죽기보다도 싫은 경환은 마 교수의 제안을 뿌리 칠만 한 용기가 없었다. 경환은 수업에 빠지더라도 학점은 정상참작을 받는 조건으로 마 교수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경환으로서도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단지 그 모임에서 쌓을 인맥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지금 경환이 고민을 해야 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