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고백 (35/36)

5. 고백

뮤직비디오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동안. 위, 촉, 오 세 팀의 연습생들은 마지막 생방송 콘서트를 위해 연습에 매진했다. 이번엔 일주일 내내 합숙 촬영이었다.

현덕은 초반 이틀 정도는 연습에 참여하지 못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열이 내려 바로 합류했다. 연습해야 하는 곡들은 모두 이전에 무대에서 선보인 곡들이어서 익숙했다. 현덕은 어렵지 않게 다른 연습생들의 진도를 따라잡았다.

연습 스케줄은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오전엔 트라이 온 1부에서 했던 무대를, 오후엔 트라이 온 2부에서 선보였던 무대를 다시 연습했다.

그러다보니 같이 연습하는 멤버와 장소가 휙휙 바뀌었다. 연습생들은 아침마다 스태프들이 나눠주는 하루 일정표를 받아 들고, 연습실을 찾아다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쁜 일정 속에서 현덕은 약간의 외로움을 느꼈다. 오전에도 오후에도, 하루에 여덟 번씩 옮겨 다니는 연습실 중 어디에서도, 보고 싶은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민, 그리고 자룡. 트라이 온 촬영 내내 이들과 한 조로 묶인 적이 없으니, 같은 연습실에서 만날 수 없었다. 복도를 오가며 마주치는 게 고작이었다.

한 차례 연습이 끝나고 쉬는 시간. 현덕은 준비와 함께 다음 연습실로 이동했다. 긴 복도를 지나다 우연히 자룡을 마주쳤다.

“여어-.”

자룡이 반가이 손을 들었다. 현덕 역시 반가워하며 짝- 소리 나게 마주쳤다.

“나도여, 나도!”

준비가 폴짝 뛰었다. 자룡은 준비의 키에 맞게 손을 내려 또 한 번 찰싹- 마주쳐주었다. 현덕은 그런 자룡에게 물었다.

“형, 혹시 주민 형 못 봤어요?”

“몰라. 잘 있겠지. 야, 김현덕. 넌 나 보면 그 싸가지 밖에 생각 안 나냐?”

자룡이 섭섭해 하며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형, 미안해요. 오늘도 파이팅!”

현덕이 등 뒤에 대고 소리치자, 자룡은 돌아보지 않고 주먹 쥔 손만 번쩍 들어올렸다.

“형, 저 좀 챙겨줘여.”

“응. 미안, 미안.”

현덕은 답삭 안겨오는 준비를 챙겨들고 다음 번 연습이 진행될 연습실로 들어갔다. 먼저 와 있던 피터가 둘을 반겼다.

두 시간 남짓,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로 격렬하게 춤 춘 뒤. 현덕은 준비를 피터에게 넘기고 먼저 연습실을 나섰다.

“씻고 싶다.”

잠깐 올라가서 샤워나 하고 나올까. 젖은 티셔츠를 손으로 잡아 팔랑이며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코너를 도는데 불쑥, 팔이 뻗어 나와 현덕의 허리를 감쌌다.

“어- 읍!”

놀라 비명을 지르기 전, 다른 손이 현덕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읍!”

현덕은 속절없이 끌려 들어갔다.

복도 구석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문이 하나 있었다. 거의 쓰지 않는 비품을 쌓아놓는 창고 겸 청소 직원 휴게실로 사용되는 공간이었다. 트라이 온 합숙 촬영 중에는 기밀 유지를 위해 청소 직원이 출근하지 않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한 마디로 촬영의 사각지대였다.

두 손은 그 문 안쪽에서 튀어나왔다. 현덕을 잡아채서는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현덕은 문 너머의 어둠에 잡아먹히듯 사라졌다. 달칵. 현덕을 삼킨 문이 닫혔다.

“으읍!”

문 쪽으로 밀쳐진 현덕은 뒤늦게 저항했다. 하지만 현덕을 끌어안은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아.

현덕의 어깨로 지은 한숨이 쏟아졌다. 죽기 직전까지 숨 막혀하던 중에 겨우 한 모금, 숨을 얻은 것 같았다.

그 한 번의 숨. 그것만으로 현덕은 저를 이 어둠 속으로 끌어들인 게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우으읍(우주민)?”

그러고 보니 허리를 감싼 팔이, 맞댄 가슴의 감촉이 익숙했다. 아니, 애초부터 현덕을 이런 곳으로 끌고 올 사람은 그 뿐이었다.

현덕은 두 손으로 주민의 팔이라 추정되는 것을 더듬어 올라갔다. 넓은 어깨가 만져졌다. 그것을 끌어안으니, 입을 막고 있던 손이 느슨하게 풀렸다.

우주민이 맞았다.

하아. 현덕은 안도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맞붙는 상대방의 입술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쪽, 쪽. 소리 내며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던 입술이 곧 진하게 맞붙었다. 현덕의 윗입술을 핥은 혀가 입술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현덕의 혀가 그를 맞이했다.

살짝, 살짝. 두 사람의 혀가 장난치듯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아, 주민의 숨이 현덕의 입 안으로 쏟아졌다. 현덕은 그 숨을 받아먹으며 주민에게 좀 더 매달렸다. 그러자 허리가 아플 정도로 팔에 힘이 들어갔다. 주민의 혀가 다급히 현덕의 입천장을 쓸어내리며 더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흐으…….”

허리가 아파서인지, 아니면 입 안을 헤집는 움직임이 거칠어서인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음이 샜다. 주민은 그마저도 아깝다는 듯, 목을 꺾고 각도를 달리해가며 더 깊게, 더 깊게 쏟아져 내렸다.

“우응, 으응.”

신음이 입 속에서 뭉그러졌다.

현덕은 코로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까치발을 들고 주민과의 키스에 열중하다가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주민은 현덕을 바짝, 벽에 밀치고 들어 올렸다. 현덕의 발이 허공에 동동 떴다. 주민의 다리가 현덕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현덕을 지탱하면서, 제 허벅지와 성기를 현덕의 허벅지 안쪽에 비벼대며 자극을 더했다.

“흑, 흐우…….”

현덕은 주민의 어깨를 손끝으로 긁으며 몸을 떨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키스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주민은 잠깐 입을 떼 현덕이 숨 쉴 수 있게 해주고는, 현덕이 숨을 몰아쉬기 무섭게 다급히 다시 입을 맞췄다.

어둠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입 속 점막의 접촉, 그리고 뜨겁게 맞닿은 서로의 몸을 더듬는 것뿐이었다. 주민은 물론이거니와 현덕마저도, 숨을 헐떡이며 주민의 어깨와 등을 쓸어내렸다. 손바닥에 닿는 단단한 근육의 감촉이 아찔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그리 얽혀있던 두 사람은,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정신을 차렸다.

바삐 걷는 발걸음 소리, 또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목소리 속에 두 사람의 이름이 끼어 있었다.

“둘 다 어디 간 거야. 같이 땡땡이 친 건가?”

“화장실 간 거 아냐?”

“위층 화장실엔 없던데.”

“트레이닝 선생 빡쳐서, 정신 해이해졌냐고 엄청 혼내는 연출로 영상 하나 따자.”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은 채로 숨을 죽였다. 문 밖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킥, 웃었다.

현덕과 주민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더듬으며, 웃는 입술을 확인했다. 손끝에 닿은 입술이 뜨끈했다. 상대적으로 서늘한 손끝이 입술에 닿으니, 얼음찜질하는 것처럼 시원했다.

“아…….”

현덕은 긴 숨을 내쉬며, 주민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주민은 현덕의 정수리에 얼굴을 묻고, 현덕의 허리를 지분거렸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깜깜한 창고. 보이지 않으니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맞댄 몸의 온기, 손끝에 닿는 감촉 뿐. 상대방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볼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건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 이 어둠 속에서 둘이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납치해 입술부터 들이댄 애인을 혼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좋다.”

현덕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는 진심을 툭, 말했다. 주민이 낮게 웃었다.

현덕은 주민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어쩐지 저번보다 더 마른 듯 해서 속상했다.

“많이 힘들죠.”

“그럭저럭 할만 해.”

“형 춤 못 추잖아요.”

“……저번에 췄던 거니까.”

“다 까먹지 않았어요?”

“…….”

“힘내요.”

현덕은 킥킥 웃으며 두 팔로 주민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매일매일 전장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췄던 춤을 또 추고 추고, 불렀던 노래를 또 부르고 불러야 했다. 그런 와중에 방송 분량을 생각해 적절히 웃긴 모습도 보여야 했다. 어설픈 개인기를 선보이고, 카메라 뒤 스태프들의 요구대로 가학적인 게임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벌칙을 받고.

지쳤다고 말할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일정 속에서, 애인과의 밀회는 꿀보다 달콤했다.

“다음엔 내가 납치할게요. 순순히 따라와요.”

현덕은 주민의 귓가에 속삭였다.

***

이후 두 사람은 비밀 사내 연애를 하는 사람들처럼 동료 연습생과 제작진의 눈과 카메라를 피해 여기저기 구석진 곳에서 밀회를 가졌다. 잠깐이라도 좋았다.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추다 보면 그 하루가 얼마나 고단하든, 피로가 싹 가셨다.

그렇게 함께 한 일주일 후.

열두 명의 연습생들은 1만여 명 관객이 기다리는 무대에 올랐다. 생방송 콘서트였다.

콘서트 무대는 지금까지 그들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응원해준 팬들에게 바치는 무대였다. 1부에서 처음 선보였던 평가 곡부터 위, 촉, 오 각 팀의 타이틀 곡. 그리고 각 미션에서 선보였던 곡들까지, 그동안 트라이 온에서 올랐던 무대를 재연했다.

연습생들은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누구 할 것 없이 마지막일지 모를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함성을 지르며 연습생들을 응원해주었다.

두 시간 남짓 진행 된 콘서트의 마지막 순서는, 최종 합격자 9인을 선발하는 선택의 시간이었다. MC 유진은 실시간으로 집계된 투표 결과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열두 명의 연습생들이 무대 위에 일렬로 올라섰다. 다들 팀 구분 없이 편안하게 섰다.

주민은 당연하게 현덕의 옆에 섰다. 현덕은 주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그들을 비췄다.

유진은 트윈 트윙클 때를 떠올리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투표 결과를 든 손도 파르르 떨렸다. 관객들은 긴장한 유진을 응원하고자 크게 박수쳤다.

“저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 연습생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제가 출연했던 트윈 트윙클이 생각날 수밖에 없더군요. 전 아직도 제게 저기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유진이 웃으며 연습생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연습생들과 관객들, 그리고 집에서 TV로 지금, 이 순간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최종 투표 순위를 발표했다.

그렇게 아홉 명이 최종 선발되었다.

9위 사의준

8위 조성환

7위 손정모

6위 장준비

5위 피터 윤

4위 주유호

3위 박자룡

그리고, 2위 김현덕. 1위 우주민

누군가는 예상했을 테고, 누군가는 예상하지 못했을 순위였다. 최종 9인 안에 든 연습생도, 들지 못한 연습생도 한동안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관객들이 연습생들을 대신해 울고 웃어주었다.

눈 부실 정도로 쨍-한 스포트라이트가 최종 9인을 비추었다.

“…….”

현덕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래도 스포트라이트를 피할 순 없었다.

수만의 관객들, 그들의 함성과 눈물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세상은 숨 막힐 정도로 적막해졌다.

들리는 거라고는 자기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모든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지만 정작 무엇도 볼 수 없는 스포트라이트 속은, 현덕이 앞으로 감당해내야 하는 미래였다. 서른셋에서 다시 열여섯. 같은 삶을 또 한 번 살아가게 됐으나, 이전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였기에 이후 그의 삶은 도통 짐작해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주민을 만났으니까. 주민을 사랑하고, 주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현덕은 고개를 돌려, 주민을 바라보았다. 눈부셔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덕의 세상 속에서 단 한 사람, 주민만은 선명히 보였다.

현덕은 빙긋, 웃었다. 주민은 언제나 현덕에게만 보여주었던 그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감히 어떤 말로도,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벅찬 마음이 끓어올랐다. 현덕은 등 뒤로 손을 빼서 마이크 전원을 껐다.

현덕은 손을 뻗어 주민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남들에게는 멱살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모습이었다.

주민을 확 잡아당겼다. 주민이 휘청이며 허리를 접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꺄아아아악!

현덕에게는 들리지 않는 환호성과 비명이 콘서트장에 가득 차올랐다.

“현덕아?”

마이크를 타고 주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 주민 형.”

현덕의 목소리는 오직 주민에게만 닿았다.

“안녕, 우주민. 정말 고마워. 꼭 네게, 말하고 싶었어.”

네가 날 구했어.

스물여덟 살 이후, 내내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이었다. 서른셋의 김현덕이, 다시 열여섯으로 돌아와 열여덟 열아홉이 된 김현덕이, 서른 살의 우주민과 서른다섯의 우주민에게 품었던 마음이었다.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겠지. 날 구해주었던 너를.

이제 영원히 말할 기회는 없겠지. 날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현덕은 내내 과거의 기억, 혹은 미래의 기억-그 우주민에게 묶여 있던 마음을 흘려보냈다. 그 빈자리를 열아홉의 우주민, 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채웠다.

앞으로의 인생은, 이전에 살아왔던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때때로 이전과 다른 삶에 이질감을 느끼게 될지도. 누군가의 빛나는 미래를 방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삶을 기꺼이 버티겠노라 마음먹었다.

이 삶에 주민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민의 삶에 자신이 끼어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알량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우주민. 나는 분명 너와 함께하기 위해 여기에 서 있는 거야.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고, 나를 믿고 나랑 계속 함께 있자. 좋아해. 정말로 좋아해.”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함성과 이어링에서 흘러나오는 MR에 파묻혀 주민에게 닿지 않는다고 해도 좋았다.

내일, 또 내일.

앞으로의 삶에서 함께하며 증명해낼 테니까. 계속, 계속 말할 거니까.

나는 오직, 너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서 있음을.

스물여덟, 우주민을 알게 되었고

다시 열여섯, 우주민을 만났다.

그리고 이제,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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