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외전 : 적벽거리 잔혹사
옛날 옛적, 어린 현덕이 열심히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느 날, 현덕이 동네 형들에게 맞고 집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였나, 이 학년 때의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집으로 걸어가는데 교복 입은 형들이 나타나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모르는 형들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하니, 현덕과 친구들은 당연히 싫다고 했다.
그러자 교복 입은 형들은 아이들을 발로 찼다. 아예 아이들 주변을 빙 둘러싸고는 아이들을 발로 툭툭 밟았다.
초등학생 삥이나 뜯는 주제에 그래도 초등학생은 봐준다는 철학은 가지고 있었던 걸까. 현덕과 친구들은 바닥을 뒹굴며 얻어맞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가방과 옷이 엉망이 되고, 얼굴과 머리카락에 흙먼지가 잔뜩 묻었을 뿐.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는 엄청난 경험이었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집으로 가던 아이들은 울상이 되어 입을 꾹 다문 채 터덜터덜, 집으로 갔다. 잘 가, 내일 또 봐. 이런 인사를 하지도 않고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현덕은 옷소매로 얼굴을 슥슥 문질렀다. 닦아도 닦아도 자꾸 눈물이 났다.
“안 울어. 안 울 거야.”
현덕은 이미 울고 있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눈물은 났지만 울지는 않았다. 울면 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현덕은 울음을 꾹 참았다.
‘눈물을 닦아도 자꾸 눈물이 나는 건 옷에 묻은 흙먼지가 눈에 들어가서 그런 거야.’
그렇게 참았던 울음이 집에 가서 터져버렸다.
집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맹덕이 있었다. 시험 기간이라며 일찍 집에 왔던 것이다.
맹덕은 거실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쳐다도 안 볼 ‘물은 생명이다’ 같은 다큐멘터리 재방송을 찾아보면서 낄낄대고 있었다. 늘 맹덕이 말하던 시험 기간 증후군이었다. 시험 기간만 되면 공부하는 거 빼고 뭐든 다 재미있다고.
현덕은 현관에서 맹덕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시 멈칫, 했다. 이대로 안으로 들어가면, 맹덕이 자신을 보고 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시험 기간에 뭐든 웃기고 재미있다고 했으니까, 내가 이런 모습인 것도 어디서 넘어져 뒹굴었다고 생각해서 막 웃겠지?’
여덟 살, 혹은 아홉 살의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맹덕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런 꼴로는 갈 데가 없었다. 이런 상태로 책을 만지면 책에 흙먼지가 묻을 테니까 도서관에 갈 수도 없었다.
현덕은 어쩔 수 없이 맹덕이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방끈을 양손으로 꼭 쥐고 걷는 모습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어, 왔냐. 초딩이 왤케 늦게 들어와. 일찍 집에 들어와서 형이랑 놀아야지. 우리 라면 끓…….”
맹덕은 파란색 추리닝 바지에 목이 다 늘어난 흰 티셔츠를 입고 편하게 누워 있었다. 그 모습으로 리모컨을 든 손을 휘휘 흔들며 현덕을 반겼다.
“씨발! 너 왜 이래!”
그렇게 태평하던 맹덕의 눈깔이 한순간에 뒤집혔다.
맹덕은 중학생이 된 뒤 입이 걸어졌다. 씨발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 어머니께 혼나기 일쑤였다.
‘말 좀 곱게 하고 다녀! 현덕이가 다 듣고 배우면 어쩌려고!’
‘아씨,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가 씨발, 씨발, 한다고 현덕이도 그러겠어요?’
‘또또! 입 다물어! 쟤가 형 하는 건 다 따라 하는데, 그런 것까지 따라 하면 어쩌려고!’
‘아니라니까. 쟤가 얼마나 똑똑한데. 무조건 따라 하는 거 아니고 알아서 잘 거른다니까요? 아씨, 아, 좀 그만 때려요. 내가 맞을 나이는 지났……지 않았지요. 네에, 어머니. 매우 때리십시오. 매우 맞겠습니다.’
맹덕이 어머니에게 매우 혼날 때, 현덕은 두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현덕과 눈이 마주치자 맹덕은 이유 모를 죄책감이 들어 얌전히 어머니가 때리는 걸 다 맞았다.
그날 이후로 되도록 집에서 욕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지금, 그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씨발, 씨발! 씨이발! 어떤 새끼야!”
“형, 욕하지 마. 욕하는 건 나쁜 거야.”
현덕은 어머니가 맹덕에게 말했던 걸 떠올리며 말렸으나,
“씨발, 넌 지금 그 꼴을 하고 그런 소리가 나와?”
그런 현덕의 모습이 맹덕을 더 빡치게 만들었다.
‘저렇게 바른말 잘하고 착하고 예쁜데. 씨발. 저 쬐끄만 걸 어떤 개새끼가 건드린 거야.’
동생이 있는 친구들은 귀찮고 징글맞다고 맨날 투덜대기 일쑤였다. 특히나 남동생 같은 경우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쥐어 팬다고 하지만. 맹덕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현덕이 한 번도 귀찮고 징글맞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현덕이 저를 ‘맨날 공부하는 거 방해하고 놀자고만 하는 형’이라고 싫어할까봐 걱정이었다. 장난으로라도 한 번 때린 본 적도 없었다. 이 작은 게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때린단 말인가. 쥐어 패기는커녕 꿀밤 한 번 때려본 적 없이 고이 길렀건만.
그런 현덕이 누군가에게 ‘잔뜩 얻어맞고 펑펑 울며’ 형에게로 왔다. 실제로는 온몸에 흙먼지가 묻고 옷과 가방에 신발 자국이 나 있고 얼굴이 울락말락한 상태였지만. 맹덕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형인 나도 때려본 적이 없는데, 씨발.’
그냥 친구들하고 놀이터 모래밭에서 뒹굴고 온 수준이 아니었다. 현덕이 그렇게 놀 일도 없겠지만.
“어떤 새끼야. 누가 이랬어. 어? 씨발,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그 새끼들 어딨어. 내가 다 조져버릴라니까, 이 씨발 새끼들이.”
맹덕은 아직 책가방을 맨 상태의 현덕을 덥석 들어 올렸다.
한 팔로 현덕을 걸쳐 안고는 다른 손으로 현덕의 얼굴을 쥐고 이리저리 혹이나 멍, 찢어져 피가 난 상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화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맹덕은 이를 갈며, 현덕의 머리와 몸에 묻은 흙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주었다. 현덕은 그런 맹덕의 손안에서 얌전히 눈만 깜박였다. 그러다가 툭-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형아.”
현덕은 맹덕의 목을 두 손으로 껴안았다.
“뭐야, 씨발. 너 울어? 어?”
“나는, 나는…… 모르는 형들이…… 돈 빌려……. 모르는데, 어떻게, 빌려, 줘……. 히끅……. 흐잉……. 학교에서, 모르는 형들한테, 돈 주지, 말라고, 히끅, 선생님……. 그랬, 는데…… 친구들이랑…… 친구들, 도 맞고…… 발로…….”
참고, 참고, 또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말을 해야 하는데 울음이 나오고, 울어야 하는데 말도 해야 했다.
“흐아앙, 형아아.”
둘 다 마음대로 안 되니 더 서러워졌다.
맹덕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씨발을 연달아 외쳤다.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현덕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래, 그래. 잘했어, 잘했어. 현덕아. 학교 쌤이 시키는 대로 한 거지? 그래, 우리 현덕이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한 거야. 형아가 그 씨발 새끼들 다 때려줄게. 너 맞은 거 백배 천배 갚아줄게. 알았지? 뚝, 그만 울자. 응?”
맹덕은 조심스럽게 현덕을 달랬다. 현덕을 이렇게 만든 새끼들을 족치는 것도 급하지만 그것보다는 놀라 우는 현덕을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맹덕은 현덕을 꼭 안고 집 안을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현덕을 토닥여주었다. 그럴수록 현덕은 더 크게 울었다. 그만 울어야지, 생각하다가도 맹덕의 커다란 손이 어깨에 닿으면 또 주르륵 눈물이 났다. 현덕은 맹덕의 목을 붙잡고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어릴 때, 바닥을 박박 기어 다닐 때도 현덕은 잘 울지 않았다. 맹덕은 현덕이 이렇게 우는 걸 거의 본 적이 없기에 맹덕은 더욱 속이 쓰렸다.
‘씨발, 진짜 다 죽여 버릴 거야.’
맹덕은 속으로 칼을 갈았다.
“우리 현덕이. 그래, 얼마나 무서웠을까. 형이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만 울자. 응? 형이 데리러 갔어야 했는데, ‘물이 생명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생각을 못 했어. 형이 나빴지? 응?”
“아, 냐…… 형, 나쁜 거 아냐…… 흑……. 우리 형, 안 나빠.”
“그래. 그래. 아무튼, 형이 잘못했으니까 그만 울자. 너무 많이 울면 눈 부어서 아파. 내일 개구리 왕눈이 얼굴 된다? 응? 그럼 우리 현덕이 좋아하는 책 볼 때 눈 아프고 그럴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흐엉……. 내일…… 받아쓰기 시험…… 있는 데에…….”
“아이고, 그렇구나. 시험 있구나. 내일 우리 현덕이도 시험이구나. 그럼 진짜 그만 울어야겠네. 우리 현덕이 내일 시험지 쳐다봐야 하는데, 눈 아프게 울면 안 되겠네. 응? 그치? 응?”
현덕을 달래는 데에는 역시 공부만 한 게 없었다. 맹덕은 겨우겨우 현덕을 달래고는 현덕을 화장실로 들여보냈다.
현덕이 세수하는 동안 맹덕은 짜파게티를 끓였다. 원래는 국물 있는 라면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현덕이 저러다 기절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우는 걸 봤으니, 현덕이 좋아하는 짜파게티를 끓여야 했다.
짜파게티를 끓이자 때맞춰 현덕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얼굴이 보송보송했다.
씻으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표정도 평소처럼 차분했다. 애늙은이 같은 표정을 하고는 뽀짝뽀짝 걸어오는 초딩 동생이 귀여워도 너무 귀여웠다.
눈만 발갛게 부어 있지 않았다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건만.
그래서 더 분노가 끓었다.
‘감히 내 동생한테 삥을 뜯어? 저 조그만 걸 건드려? 다 죽여 버린다. 진짜.’
맹덕은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현덕을 식탁에 앉혔다. 현덕은 형이 끓여준 짜파게티를 꼭꼭 씹어 먹었다.
“형…….”
“응? 왜? 짜파게티 맛없어? 불었어?”
“아니, 이거 맛있어. 짜파게티 끓여주셔서 고맙습니다.”
현덕이 짜파게티가 담인 그릇에 얼굴을 박고 냠냠 먹으며 인사했다. 학교에서 남에게 선물을 받으면 꼭 고맙다고 말하라고 배웠다며, 그 뒤로는 라면만 끓여줘도 꼭 저렇게 인사를 했다.
‘진짜, 씨발. 내 동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존나 귀여워. 미쳐버리겠네.’
맹덕은 전투적으로 짜파게티를 씹어 삼키며 다시 한번 저 귀여운 걸 건드린 놈들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설령 고딩이래도 가만 안 둬. 개새끼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놈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저기 있잖아, 현덕아.”
맹덕은 현덕의 눈치를 보며 감히 현덕에게 삥을 뜯으려 했던 교복 입은 형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 걱정했건만. 한 번 울고 나니 괜찮아진 건지 현덕은 다시 울지 않았다. 맹덕은 역시 내 동생이라며 흐뭇해했다.
현덕은 씩씩하게, 자신이 관찰했던 교복 입은 형들의 모습을 말해주었다. 기특하게도 형들 중 한 명의 왼쪽 가슴팍에 붙어 있던 녹색 명찰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었다.
‘아, 누구 동생인데 이렇게 야무지냐.’
맹덕은 똑똑한 동생을 둔 뿌듯함을 만끽하며, 그런 동생의 형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현덕이 말해준 교복의 모양과 머리 모양, 그리고 명찰 색과 이름.
맹덕은 바로 태권도 도장에서 만난 형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저기 이렇게 생긴 교표. 그거 형 학교 옆에 있는 중학교 맞죠? 아, 뭐, 별건 아니고. 그냥 확인해 볼 게 있어서요. 아아, 맞구나. 으음, 그래. 거기가 맞군요. 씨발. 그럼요, 혹시 제가 말하는 이름, 누군지 좀 알아봐줄 수 있어요? 이름이 뭐냐하면-.”
맹덕은 어렵지 않게 그들이 어느 중학교 다니는 누구네 패거리인지 알아냈다. 그 사이 현덕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런 주제에 내일 받아쓰기 시험 준비를 해야 된다고 앙탈을 부렸다.
“딱 두 시간만 자자. 내가 꼭 깨워줄게. 형 믿지?”
맹덕은 그런 현덕을 살살 달랬다.
“진짜?”
“응. 진짜. 받아쓰기 연습하는 것도 도와줄게.”
“……우웅.”
현덕은 형을 믿고 본격적으로 졸기 시작했다.
“자는 것도 존나 귀엽네. 아, 씨발. 근데 이런 애를 건드렸단 말이지. 씨발 새끼들. 응? 아, 아냐. 형 아무 말도 안 했어. 현덕아, 자자. 얼른 자자. 이따 공부하려면 지금 얼른 자야 돼. 옳지.”
맹덕은 현덕을 안아 들고 방으로 가 침대에 눕혀주었다. 이불도 가슴께까지 잘 덮어주었다.
현덕이 곤히 잠든 걸 확인하고 돌아서는 맹덕의 얼굴은 칼을 벼린 듯 시퍼렜다.
“야, 씨발. 다 나와.”
맹덕은 일단 학교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것도 모자라 태권도 도장에서 만난 형들에게도 연락했다.
“형, 일단 나 좀 봐요. 존나, 씨발, 개 같은 일이 생겼거든요. 나 좀 도와줄 수 있죠?”
맹덕의 전화 한 통에 덩치 큰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맹덕은 그들을 끌고 현덕이 삥 뜯길 뻔했던 장소로 갔다.
거기엔 아직 ‘교복 입은 형들’이 있었다. 다음 삥 뜯을 초딩을 기다리는 건지, 거기가 원래 그들이 자리를 잡고 노는 골목인지는 알 바 아니었다. 그들이 아직 거기에 있다는 게 중요했다.
맹덕은 선전포고 없이 한 놈의 등짝을 발로 찍었다. 현덕이 말했던 이름이 적힌 녹색 명찰을 달고 있는 놈이었다.
“씨발, 니가 내 동생 건드렸나?”
“뭐야, 너- 억!”
그놈은 바로 자빠졌다. 맹덕은 사납게 웃으며 그 등판을 발로 잘근잘근 밟았다.
“너냐고, 시발 새꺄.”
그리고는 나머지 교복 입은 형들을 둘러보았다. 대략 일곱 명 남짓이었다.
“뭐야, 왜 이래.”
“어디 새끼들이야. 씨발, 비겁하게스리.”
그들이 어수선하게 일어서며 맹덕의 패거리를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맹덕과 비슷한 덩치들이었다.
아직 꼬꼬마 초딩에 불과한 현덕이 저 덩치들에게 붙잡혀 얻어맞았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 끓었다.
“씨발, 개새끼들아.”
맹덕은 그들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니들이 내 동생 삥을 뜯으려고 했냐? 어? 씨발 새끼들아, 니네 다 죽었어.”
다시 땅을 박차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뒤에 서 있던 맹덕의 친구들도 좋다며 달려들었다.
훗날, 적벽대전으로 불리게 되는 여적 중학교와 양벽 중학교의 패싸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맹덕과 친구들의 활약으로 양벽중 일진 패거리는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털렸다. 그것도 모자라 초딩들 삥이나 뜯고 다니는 새끼들이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일진도, 학교에서 좀 노는 학생도 아닌, 그저 태권도나 배우는 평범한 중학생들이 일군 업적이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간지가 없냐. 죽어도 초딩 삥은 안 뜯는다.”
여적중 학생들은 양벽중 교복을 입은 학생들만 보면 이렇게 이죽대며 놀려댔다. 여적중에서 맹덕과 친구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맹덕은 그 인기도에 정확히 정비례하는 강도로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혼났다.
“태권도 학원 보내 달라고 해서 마음의 수련을 쌓으라고 보냈더니, 패싸움이나 하고 다녀? 니가 깡패니? 왜 엄한 학생들을 쥐어패고 다니는 거야!”
아버지는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맹덕을 쥐 잡듯 잡았다. 재빠르고 날쌘 쥐인 맹덕은 아버지의 손길을 피해 요리조리 잘 도망 다녔다.
“아, 씨바, 그럼 그걸 그냥 놔둬요?”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다니!”
“씨발, 원래 주먹은 법보다 가까운 법이예요.”
“뭐? 너 다시 한번 말해봐라. 어디서 깡패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형……. 아부지…….”
현덕은 울먹울먹한 얼굴로 구석에 서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버지와 맹덕 형의 추격전을 지켜보았다.
TV에서 봤던 ‘톰과 제리’에서는 언제나 제리가 승리했다. 고양이 톰은 제리가 도망가면 한 번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데, 현실에서는 정반대였다. 아버지는 기어이 맹덕을 붙잡았다. 그것도 모자라 맹덕을 매우 때리려고 했다.
빗자루가 허공에서 크게 한 번 돌았다.
“때리지 마요, 우리 형 때리지 마요! 형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보다 못한 현덕이 후다닥 달려 나와 아버지를 막아서며 맹덕의 종아리에 매달렸다. 그 바람에 맹덕을 때리려던 빗자루가 현덕의 어깨를 후려쳤다.
퍽!
소리가 나고,
“……!”
현덕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을 벌렸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졌다.
맹덕은 곧 닥칠 빗자루와의 아픈 스킨십을 예감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매타작 대신 몽글몽글한 감촉이 종아리에 달라붙자 당황했다.
‘뭐지?’
거기에 퍽 소리까지 들리니 눈이 번쩍 뜨였다.
맹덕은 어깨를 감싸 쥐고 바닥에 쓰러진 현덕을 보았다.
“현덕아!”
“김현덕!”
아버지가 빗자루를 집어던지고 현덕을 붙잡았다.
“씨발, 놔 봐요!”
맹덕은 아버지를 밀치고 현덕을 안아 들었다.
“현덕아? 현덕아! 야, 김현덕!”
“……혀엉.”
흑. 현덕은 울 듯 말 듯 했다. 아니 울음을 꾹 참았다. 그러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아프게…… 우리 형을 때리려 했던 거예요?”
“…….”
아버지는 입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미쳤어요? 얘 때릴 때가 어딨다고 때려. 아, 미친, 진짜, 그러고도 아버지 맞아요? 맙소사. 현덕아, 너 잠깐만 티 좀 벗어보자.”
맹덕은 맹덕대로 혼비백산해서는 현덕의 티셔츠를 벗겨 등짝을 확인하였다. 시뻘겋게 빗자루 자국이 나 있었다.
“씨발!”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이게 뭐야. 시뻘게졌잖아. 멍들면 어떡해. 야, 현덕아. 아프지? 많이 아프지? 응?”
“형, 나…… 괜, 찮아.”
현덕이 헐떡이며 말했다. 말을 안 하느니만 못했다. 힘없는 현덕의 목소리를 들은 맹덕은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거 뼈 부러진 거 아냐?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씨이, 이게 가정 폭력이지 뭐가 가정 폭력이야. 내가 어머니한테 이르고 경찰서에도 신고할 줄 알아요. 아버지, 내가 콩밥 먹여 버릴 거야! 판사면 다야? 어? 이렇게 어린 애를 때리고도, 그러고도 판사냐고!”
맹덕은 현덕을 움켜쥐고 벌벌 떨었다. 손안에 잡히는 현덕이 가볍고 얇았다. 숨을 쉬는 것마저 너무 위태로웠다. 날개가 부러진 작은 새가 파닥이는 것 같이 보였다.
“현덕아, 병원 가자. 병원.”
맹덕은 그대로 현덕을 안아 들고는 병원을 향해 뛰쳐나갔다.
“자, 잠깐만. 같이 가자. 나도 가야지! 잠깐, 거기 서! 김맹덕!”
아버지도 뒤늦게 허둥지둥, 지갑을 들고 맹덕의 뒤를 쫓았다.
현덕을 안아든 맹덕이 삼선 쓰레빠를 신은 채 달렸다. 양말만 신은 아버지가 뒤따랐다. 두 분자는 그렇게 병원까지 내달렸다.
맹덕은 무조건 응급실로 달려가 내 동생을 살려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달려 나온 의사와 간호사들이 현덕을 살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있다거나 뼈가 부러졌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맹덕과 아버지는 현덕을 붙잡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둘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맹덕은 정말로 아버지를 경찰서에 신고할 듯 날뛰었다. 아버지는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맹덕의 모습에 더욱 화를 냈다.
“오냐, 그래. 패싸움하는 아들이 뭘 보고 배웠겠냐. 날 보고 배웠겠지. 그래, 신고해라, 이놈아. 신고해!”
맹덕의 성격이 누굴 닮은 건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소란은 어머니가 오고서야 진정되었다.
뒤늦게 집에 온 어머니는 일단 남편도 두 아들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집을 보며 당황했다. 그 다음엔 병원에서 세 부자를 본 이웃의 신고 전화를 받았고, 가정을 지키고자 급히 병원으로 온 것이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왔을 때.
“우리 형, 때리지 마요.”
현덕은 맹덕에게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울고 있었다.
“이거 안 놔요? 놔, 놓으라고!”
“끝까지 애비에게 반항할 셈이냐!”
맹덕과 아버지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내가 아들이 둘이 아니라 셋이구나.’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남편 하나에 아들 둘을 데리고 사는 어머니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녀는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더없이 이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여 세 부자를 단번에 포획했다.
“거기, 김씨 부자. 당장 동작 그만!”
아버지와 맹덕은 삽시간에 얼음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맹덕의 다리에 매달려 울고 있는 현덕을 떼어 내 간호사에게 건넸다. 간호사는 현덕의 이마에 반창고를 붙여주며 치료를 마무리했다.
어머니는 차분히 현덕의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진료비를 내고, 양손을 높이 들어 첫째 아들과 남편, 두 남자의 귓불을 꼬집어 잡고 집까지 질질 끌고 갔다. 현덕은 알아서 맹덕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뒤따라왔다.
집으로 돌아온 뒤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크게 웃으며 맹덕의 등을 힘차게 두드려주었다. 때리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세긴 했지만 혼내는 것은 아니었다.
“잘했어. 이겼지? 치료비든 뭐든 다 물어줄 테니까, 지지만 말고 와.”
어머니의 말을 들은 맹덕이 거보라는 듯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그래도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제 형의 반 토막도 안 될 듯 작은 현덕 때문이었다.
저 어린 것이 이름 모를 남의 집 아들에게 맞고 발로 밟혔다고 생각하니, 아버지 또한 피가 거꾸로 솟았다. 맹덕을 혼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덕이 당한 일이 속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현덕에게 손짓했다. 맹덕에게 꼭 붙어 있던 현덕은 아버지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억지로 떼어내 등을 떠밀고야 주춤주춤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현덕아, 우리 둘째.”
아버지는 현덕을 덥석 들어 안아주었다. 그리고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래도 안 울고 씩씩하게 버텼다면서, 다른 친구들도 지켜주려고 하고.”
“네. 그러니까 형 혼내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니다, 아냐. 넌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나쁜 건 너를 때렸던 그 아이들이지. 그리고 그걸 고대로 갚아준 네 형이고.”
아버지는 현덕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맹덕에게 눈을 부라렸다.
“이번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 치고. 다음부터는 절대 이러면 안 된다. 이런 일이 있으면 나랑 네 엄마한테 말을 해.”
“아, 네에. 네에.”
맹덕은 건성으로 대답하다,
“얘가 매를 벌어요, 벌어!”
결국 어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야 말았다.
“윽, 아, 알았다고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맹덕의 이 외침을 믿었다. 그래서 현덕이 삥 뜯길 뻔했던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되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맹덕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씨발,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맹덕이 시작을 연 적벽대전은 그 후로 약 반년간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맹덕과 친구들은 여적중 일진 패거리와 친해져서는 아예 편을 먹게 되었다.
일단 양벽 중학교를 물리친 뒤, 그 동네 중학교 일진들을 다 휩쓸어 깨부쉈다. 그 동네 절대 강자로 군림하며 중학생들이 초등학생 삥 뜯는 걸 금지시켰다.
감히 중딩들이 깝친다며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나선 고등학교 몇 곳이 발리자 근처 고등학생들이 맹덕의 패거리를 슬슬 피했다.
그렇게 맹덕은 동네를 기반으로 주변 지역 중고등학교를 전부 먹고 해당 도시의 일진 4대 천왕 중 한 자리를 차지했다.
“사대 천왕은 무슨, 아, 씨발. 그런 유치한 말로 나 부르지마. 내 귀에 들리기만 해봐, 다 죽여버린다!”
당사자는 끔찍해했지만, 그런다고 이미 생긴 전설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현덕은 4대 천왕 중 최강자, 가장 지랄 맞은 맹덕의 동생으로서 평탄한 학업 생활을 보장받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삥 뜯길 뻔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학교 안팎에서 시비 한 번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과 현덕은 모르는, 맹덕만의 질풍노도의 중학생 시절의 추억이었다. 딱히 맹덕은 추억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훗날, 여적중 출신의 영화감독이 ‘적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를 찍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맹덕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그 당시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던 어느 신인 배우였다. 그는 아이돌 출신으로, 배우로 전향한 후 몇몇 영화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좋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첫 주연 자리를 따냈고,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그 배우의 이름은 우주민이었다.
[6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