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대 아래에서
오늘, 현덕은 지각했다. 낮잠을 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두어 시간 눈을 붙였을 뿐이지만, 등교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졸음이 덕지덕지 붙은 눈을 뜨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침대를 빠져나왔다.
아직 군대 물이 덜 빠진 김 병장이 새벽 조깅을 갔다 돌아와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현덕을 발견했다. 군대에서 만든 근력이 남아 있던 김 병장은 제 동생을 번쩍 들어 화장실까지 옮겨주었다. 현덕의 입에 치약을 바른 칫솔을 물려주는 서비스도 아끼지 않았다.
맹덕의 도움을 받아 정신을 차린 현덕은 늦지 않게 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그럼에도 지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교문 앞에서 현덕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현덕이 다니는 고등학교 교문 앞에 몰려들었다. 현덕을 응원하러 온 팬도 있었고, 현덕의 등굣길 사진을 찍으려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현덕에 대한 악플을 달아 고소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멀리서 걸어오는 현덕을 보자마자 우르르 달려들었다. 현덕은 순식간에 사람들에 휩싸였다. 가장 적극적인 건 고소당한 사람들이었다.
현덕은 악플에 강경 대응하기로 정했고, TE엔터테인먼트와 변호사단은 그에 맞춰 대응했다.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심한 욕을 한 사람들부터 차례대로 고소를 진행했다.
그들은 TE엔터테인먼트에 연락하여 선처를 구했다. 그래도 고소가 취하되지 않자 어떻게 해서든 현덕에게 접촉하려 했다. 현덕이 SNS를 하지 않으니 직접 만나러 온 것이었다.
사람이 워낙 성실하여 학교, 집, 연습실만 오가니. 제일 만만한 학교 앞을 지키고 서 있다 달려들었다. 그들은 잘못했다며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매달렸다. 현덕이 이러지 말라고 말하며 물러서려 해도 놓아주지 않았다.
여자도 있었고 남자도 있었다. 현덕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고 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제발 한 번만 봐달라며, 현덕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도 있었다. 기자들이 사진 찍기 딱 좋은 구도였다.
기자들은 특종이라도 잡은 듯 주변에 몰려들었다. 무슨 타이틀로 기사가 나갈지는 안 봐도 뻔했다. 고압적인 현덕과 사정사정하는 불쌍한 악플러.
지금 무슨 기분이냐고, 현덕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도 있었다. 현덕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기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짜증을 내거나 비키라고 밀치지 않았다. TE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며 배운 처세였다.
오 팀장은 기자 앞에선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쳤다. 특히나 주민과 자룡에게 신신당부했다.
‘제발, 성질 죽여라. 박자룡, 너한테 하는 말이야. 모르는 척 하지 말고. 욱-해서 기자들 도발에 넘어가지 말란 말이야!’
그리 말하던 오 팀장도 설마, 제 가르침이 현덕에게 도움이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지 마세요. 이런다고 제 마음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제게 찾아와서 이렇게 행동하시는 게 그 쪽에 더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만 일어나세요.”
현덕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고 무릎을 꿇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용서해주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진 않았다.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내고 떼어내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현덕에게 원하는 말을 끄집어 내지 못하자, 매달리던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현덕의 앞에 무릎을 꿇었으면서. 그게 현덕 때문에 억지로 한 것인 양 화를 냈다.
“어이, 적당히 좀 하지?”
“이 정도 했으면 용서를 해줘야지. 어린 게 왜 이렇게 뻣뻣해. 야, 너희 부모는 너 이런 거 아냐?”
“인기 좀 있다고 겁나 잘난 척하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고소야, 고소는. 시발, 나는 너 무고죄로 고소할 거거든. 그래, 어디 법대로 해보자.”
“네가 계속 이렇게 인기 있을 거 같냐? 한순간이야, 너 금방 인기 떨어지고 완전 떨거지 될 텐데, 그땐 어쩌려고 이러냐?”
선처받지 못한 사람들의 말이 거칠어졌다.
“아씨, 이런 건 찍지 말라고요”
“저리 안 가?”
이제 와서 기자들을 밀치며 카메라를 빼앗으려 하고, 현덕을 협박했다.
“뭐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 현덕이 건드리지맛!”
현덕을 보러 온 팬들은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현덕에게 주려 예쁘게 포장해 왔던 선물을 두 손 가득 들고 있었다. 현덕의 등굣길을 최고의 화질로 담아내려 비싼 렌즈를 끼운 카메라도 들고 있었다.
그것들은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팬들은 손에 든 것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교문 앞은 금세 엉망이 되었다.
“그러지 마세요. 큰일 나요, 이러시면 안 돼요.”
현덕이 깜짝 놀라 팬들을 말렸다. 고소당한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힐 때는 가만히 있었으면서, 막상 팬들이 그들을 응징하려 하자 그걸 두고 보지 못했다.
몸을 던져 팬들이 던지는 선물을 대신 막기까지 했다. 그러다 팬이 던진 뭔가에 이마를 얻어맞았다.
퍽-.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꺄아악!”
팬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딱딱한 선물을 던진 팬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현덕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저, 전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찡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오히려 팬을 달랬다. 팬은 오히려 현덕의 위로를 받자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우는 팬들, 고소당한 악플러들, 플래시를 터뜨려대느라 정신없는 기자들까지. 모두들 현덕을 중심으로 몰려들어 엉켰다. 사방에서 비명과 울음, 욕설이 난무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학교 선생님들이 연락을 받고 달려 나왔다. 옆 골목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장정들도 우르르 뛰어 나왔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물러서십시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옷에 묻은 보푸라기를 떼어내듯, 현덕에게 매달린 사람들을 휙휙 떼어냈다. 넓은 등으로 현덕을 가려주기도 했다. 매우 전문적인 몸놀림이었다.
현덕은 그들의 검은 양복 재킷에 달린 새끼손톱만 한 배지를 보았다. 시황 그룹의 마크가 달려 있었다.
‘우주민이구나.’
현덕은 안도했다.
“김현덕 학생!”
“이리로, 어서 이리로 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 덕분에 학교 선생님들은 수월히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현덕을 구해낼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현덕을 보호하듯 빙 둘러싸 교문 안으로 쑥 들어갔다. 현덕은 학교 안으로 밀어 넣고, 선생님들은 교문 앞에 쭉 늘어섰다.
“학교는 학생들만 들어오는 곳입니다. 다들 들어오지 마십시오.”
“거기, 좀 비켜주시지요. 우리 애들이 등교를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이든 선생님들이 왕년에 교문 지도를 섰던 경험을 되살며 교통정리에 들어갔다. 현덕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 안전해지자,
“모두, 다시 대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은 썰물 빠지듯 우르르 사라졌다.
현덕은 그렇게 험난한 등굣길을 겪고야 교실로 갈 수 있었다.
먼저 등교한 학생들은 교실 창문에 다닥다닥 매달려 교문 밖의 사건을 구경하고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 줌을 최대한 늘여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학생들도 있었다.
현덕의 반 친구들은 현덕이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오자 일제히 박수를 쳤다.
짝짝짝.
현덕과 제일 친한 민철이 현덕에게 다가와 머리를 털어주었다. 다 흘러내린 교복 재킷도 끌어 올려주었다.
현덕은 그제야 얻어맞았던 이마를 더듬어보았다. 살짝 튀어나오긴 했는데 피가 나지는 않았다.
“넥타이는 어디다 버려두고 왔냐?”
“……어?”
현덕이 멍하니 민철을 바라보았다.
민철은 어휴, 한숨을 내쉬고는 현덕의 손을 잡았다. 소를 끌고 외양간으로 가듯 현덕을 데리고 가 자리에 앉혀 주었다. 그제야 현덕은 정신을 차렸다.
“맙소사.”
“맙소사는 무슨.”
“나 완전……. 우와.”
현덕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래도 고소당한 사람들이 매달릴 때까지는 제정신을 유지했건만. 그 뒤에 사람들이 엉키고 난리가 난 뒤로는 정신이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멀쩡하게 학교 책상에 앉을 수 있다는 게 너무도 감사했다.
“넥타이 안 하고 왔냐고. 너 벌점이다?”
민철이 현덕의 교복 여기저기를 손으로 툭툭 털어주며 다시 물었다. 민철은 무엇보다도 현덕이 복장 불량으로 벌점을 받을까 봐 걱정했다. 그 사소하고도 현실적인 지적 덕분에 현덕은 좀 더 빨리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현덕은 제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제야 제 꼴이 폭풍을 헤치고 나타난 카우보이처럼 엉망이라는 걸 깨달았다. 목에 멨던 넥타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민철이 걱정할 만했다. 현덕도 덜컥, 걱정이 들었다.
“매점에서 교복 넥타이 팔까?”
“글쎄. 학교 배지랑 검은 양말은 파는 거 같던데, 넥타이는 모르겠다.”
“으아. 넥타이 안 하면 벌점이 몇 점이지?”
현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몸을 수그렸다.
“지각으로도 모자라 복장 불량이라니!”
“야, 걍 얼른 체육복으로 갈아입어. 교실 수업 중에 체육복 입는 것도 걸리긴 하지만. 뭐, 등교 중에 교복 찢어져서 갈아입었다고 하면 되겠지. 저 난리 난 거 선생님들도 다 아니까 봐줄지도 몰라. 야, 현덕아. 근데, 너 가방에 그건 다 뭐냐?”
애써 현덕을 위로하던 민철이 가방을 가리켰다.
“어?”
그러고 보니 가방이 묵직했다.
현덕은 여태껏 메고 있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렸다.
“헐?”
헐렁했던 가방이 빵빵했다. 지퍼란 지퍼는 다 열려서, 무언가 잔뜩 꽂혀 있었다. 열쇠고리 같은 게 연결되어 현덕의 가방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자도 있었다.
현덕이 제 한 몸 추스르지도 못 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던 그 때, 현덕의 팬들은 꿋꿋이 자신들이 현덕을 찾아온 목적을 달성해낸 것이었다.
그저 신기하고, 고마웠다. 선물을 뜯어보기 전까지는.
열여덟 살 현덕의 몸속에 들어 있는 서른세 살 현덕은 여전히 아이돌에 대해 무지했다. 그저 자신의 기준으로 선물을 생각했다. 편지나 종이학, 손수 그린 그림, 아니면 작은 인형 등. 그런 선물을 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서 풀어 보라는 친구들의 부추김에 넘어가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현덕에게 한마디씩 했다.
“야, 네가 그 소동의 주인공이구나.”
“몸은 좀 괜찮니?”
“이따가 하교할 때는 부모님께 연락이라도 해서, 차를 타고 가렴. 너 그러다가 큰일 나겠다.”
쉬는 시간이면 다른 반 학생들까지 몰려와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현덕이 화장실에 가려 일어서면 모르는 학생들이 슬금슬금 따라왔다. 현덕은 거북한 기분이 들어 화장실 가려는 걸 포기했다.
“야,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해. 너 수업 빠진 거 다 따라올 수 있겠냐?”
민철은 결석했을 동안의 수업 내용 필기 복사본을 건네주며, 현덕의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현덕은 쉬는 시간마다 민철과 붙어 앉아 수학 문제를 풀며 주변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같이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해달라는 부탁도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지금 너랑 똑같이 이 학교에 공부하러 온 거야. 난 네 친구지, 연예인 같은 게 아니야. 내가 여기서 너한테 사인을 해주거나 사진을 찍으면,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될까? 어색해질 거 같아. 그래서 거절하는 거야. 난 그냥 너랑 내가 계속 친구였으면 좋겠어. 이해해줄래?”
현덕이 곤란하다는 듯 웃으면 대부분은 현덕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미안.”
“아니, 내가 더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나, 너 뽑을 거야.”
“우리 가족들 핸드폰으로 다 너 뽑을 테니까. 현덕아, 힘내.”
현덕이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서면, 학생들은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야, 근데, 김현덕이 저렇게 예쁘게 생겼었나?”
“겁나 잘생겼다고 생각은 했는데, 시발, 오늘 보니까 완전히 연예인이네.”
“카메라 마사지라는 게 정말로 있나 봐.”
“뭔 소리야, 쟨 원래 저랬어. 중학교 때도 존나 유명했다니까. 내가 쟤랑 같은 중학교 나왔는데, 주변에 여중 여고에서 인기 장난 아니었어. 본인은 완전 범생이어서 신경도 안 쓰는 거 같지만. 그러고 보면 신기하긴 하다. 쟤가 공부를 안 하고, 외고도 안 가고, 나랑 같은 일반고 와서 연예인을 하겠다고 하다니?”
현덕은 뒤에서 들리는 말을 고스란히 들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파란만장한 학교생활이었건만. 클라이맥스는 따로 있었다.
점심시간에 학교 화장실에서 외부인이 발견됐다. 그는 몰래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현덕의 화장실 모습을 찍으려 숨어든 것이었다.
오늘따라 3층 화장실의 맨 끝 칸이 하루 종일 잠겨 있었다. 1교시부터 4교시가 끝난 점심시간까지 내내. 호기심과 폭력성이 넘치는 혈기왕성한 학생들은 그냥 보고 넘기지 않았다.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에게 알리는 대신, 발로 문을 까 잠금쇠를 망가트렸다.
그러자 화장실 안에서 수염이 숭숭 난 삼십 대의 남자가 뛰쳐 나왔다.
“우왁, 이거 뭐야!”
“누구야!”
화장실에 몰려든 학생들이 와글와글 떠들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다 학생들을 밀치고 도망가려 했다.
“잡아!”
“도망간다!”
“변태다, 변태가 나타났다!”
학생들은 놀란 마음에 화장실 한편에 놓인 대걸레 자루를 들고 외부인을 두들겨 팼다. 학교에 경찰이 출동하고, 하도 얻어맞아 얼굴이 팅팅 부어오른 외부인은 경찰서로 끌려갔다.
외부인은 트라이 온의 애청자로, 특히나 현덕에게 광적으로 열광하는 사람이었다. 현덕을 좋아하다 못해 현덕의 모든 것을 자신이 알아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서는, 현덕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겠다며 학교 화장실에 숨어든 것이었다.
방과 후, 현덕은 담임선생님을 통해 외부인의 사연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자신이 학교 화장실에 들르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
더불어 자신 말고 다른 학생들의 피해가 있었을까 염려했으나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외부인의 목표는 오직 현덕이었기에, 다른 학생들이 화장실을 쓰는 모습은 찍지 않았다고 했다.
트라이 온 연습생들을 위한 변호사단, 그중에서도 박지혜 변호사가 즉각 경찰서로 날아가 뒷일을 처리했다.
현덕은 집으로 가며 박지혜 변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앞으로 현덕의 사방 300m 이내에 접근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 밖에도 그가 받게 될 처벌을 말해주었다.
“죄질이 나쁘나 초범이고 미수에 그쳤기에 그 같은 처벌이 나오긴 힘들 텐데요?”
[누가 선배님 아들 아니랄까 봐 똑 부러진 것 보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니, 아니. 현덕아. 네 말이 맞아. 처벌이 가벼울 거 같아서 나도 화딱지 났었거든. 그런데 시황그룹 법무팀 쪽에서 완전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서, 처벌이 좀 세질 거 같아. 언제 조사한 건지, 그 범인의 노트북에서 다른 범죄가 성립될 증거들을 발견했나 봐. 아무튼, 대단하다니까.]
박지혜 변호사가 혀를 내둘렀다.
“그렇군요.”
현덕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과 돈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하교했다.
하교할 때에는 등교했을 때와 같은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현덕을 학교에서 집까지 완벽하게 호위해주었다. 길바닥에 깔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아침보다 몇 배는 많았다. 현덕을 찾아온 고소당한 사람들이나 팬, 기자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현덕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과 함께 돌아오자 맹덕이 무슨 일이냐며 난리쳤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현덕을 현관까지 무사히 배달하고는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맹덕을 진정시키는 건 현덕의 몫이었다.
현덕은 준비와 피터에게 한 시간쯤 연습에 늦을 거 같다고 문자를 보낸 뒤, 맹덕과 함께 밥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맹덕은 길길이 날뛰며, 내일부터는 자신이 등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현덕은 맹덕을 말리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나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웃어. 너 지금 엄청 진지한 타임이다. 어?”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뭐?”
“나 초등학교 때, 삥 뜯길 뻔했잖아. 그때 내가 맞고 들어오니까 형이 뛰쳐나가서 그 사람들 때려주고 왔었지, 아마?”
“뭐, 너 초딩 때? 아마는 무슨. 내가 다 조져버렸지. 아무튼 가만두고 볼 수가 없다니까. 초딩 때는 삥 뜯기고 맞고 다니질 않나, 고등학생이 돼서는 이상한 놈들이 붙질 않나.”
에휴. 맹덕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가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어, 초딩 때 삥 뜯기지는 않았어. 삥 뜯길 뻔했던 거지. 그리고 딱 그때 한 번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그런 일 없었어.”
현덕은 억울한 기분이 들어 맹덕의 말을 받아쳤다.
‘듣자 하니 내가 너무 약해 보이잖아. 내가 그 정도는 아닌데. 물론 서른 살 넘어서까지 사시 준비하면서 형한테 믿음직한 모습을 못 보여주긴 했지만…….’
사법고시에 십삼 년을 쏟아 부었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자 억울한 마음은 금세 쪼그라들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얼굴에 나타났다.
맹덕은 현덕의 표정을 보고는 픽, 웃었다.
“어구어구, 그러세요? 그게 다 누구 덕인 줄은 아십니까? 형을 잘 둔 덕에 삥 안 뜯긴 줄 알어, 임마.”
“형이 뭐라고? 형이 우리 동네 짱이었어?”
“우리 동네 짱만 먹었겠냐. 내가? 나 완전 전국구로 놀았다?”
맹덕이 으스대며 말했다. 현덕은 맹덕이 농담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대꾸했다.
“헐, 조폭?”
“야, 야, 그건 너무 나갔다.”
한때 선량한 웹툰 작가 지망생이었던 맹덕은 발로 동생의 등을 쭉- 밀었다. 그렇게 형제는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맹덕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현덕은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다가 빵빵한 책가방을 발견했다.
“아, 맞다. 이거.”
현덕은 가방을 거실로 들고 나왔다. 가방에 든 선물 보따리를 주섬주섬 꺼내고 있는데, 맹덕이 젖은 손을 현덕에게 털며 물었다.
“그게 뭐냐?”
“으, 차가워.”
“차갑긴. 시원한 거지. 근데, 그거 뭐야?”
“차갑다니까. 이거 내가 받은 선물.”
“선물? 팬들한테서 받은 거야?”
“응.”
현덕은 어쩐지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얼굴을 붉혔다.
“오, 나도 같이 보자. 벌써 이런 것도 받는 거야? 대단하네.”
맹덕은 그런 현덕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현덕이 포장을 열고 선물을 꺼내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헐, 이게 뭐야.”
“너…… 누구한테 뭘 받아온 거냐?”
현덕과 맹덕은 심히 당황했다.
거실에 잔뜩 펼쳐진 선물들은 하나같이 번쩍번쩍했다. 선물은 명품이나 사치품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값비싼 것들이었다. TV에서나 봤던 명품 시계, 조던 운동화, 명품 브랜드의 볼펜과 샤프, 명품 브랜드의 옷 등.
“설마 몰래카메라? 아니면, 다 짝퉁?”
맹덕이 두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그 역시 아이돌보다는 만화책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았던지라 아이돌 팬 선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음…….”
현덕은 굳은 얼굴로 제 앞에 늘어진 것들을 내려다보았다. 현덕도 맹덕만큼이나 잘 몰랐지만. 그래도 이게 몰래 카메라나 이미테이션 상품은 아닐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
그날 저녁.
TE 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가 떴다.
‘트라이 온’ 출연 연습생들을 향한 과도한 선물은 받지 않을 것이며, 일부 팬들이 연습생들에게 선물한 것들은 기획사에서 보관하고 있으니 돌려보낼 수 있도록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하단에는 트라이 온에 출연 중인 세 연습생의 이름으로 짤막한 사과의 글이 공개되었다.
주시는 마음에는 더없이 감사하며, 보내주신 정성을 거절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더없이 죄송하게 생각하며, 부디 변함없는 사랑으로 응원해달라고. 자신들이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로 글이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행보는 개념 있는 행동이라는 칭찬과 너무 나댄다는 핀잔을 동시에 받았다. 이걸 욕하면 이것도 고소할 거냐는 주르륵 달렸으나 하루가 지나기 전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