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외전 : 현덕이가 교복을 입었을 때 (23/36)

5. 외전 : 현덕이가 교복을 입었을 때

그저 평범한 스케줄 중 하나였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 출연.

“이걸로 갈아입으라고요?”

현덕은 건네받은 의상을 들어보았다. 모교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여기 예능 컨셉이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 거야. 복고풍!”

“복고풍이라기엔 제 나이가…….”

“너는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지. 아무튼, 시간 없으니까 얼른 갈아입어.”

스타일리스트는 현덕을 대기실로 밀어 넣으며 재촉했다.

현덕은 더는 반항도 못하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오랜만에 교복을 입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다 갈아입고 벽에 붙은 거울을 들여다보니 지금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낯선 사람이 거울에 비쳤다.

“주민 형?”

현덕은 뒤를 돌아보았다.

“응, 안녕.”

주민이 대기실 문에 비스듬히 기대서 있었다.

까만 정장 차림이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쓰리피스 정장을 완벽하게 갖추어 입고 있었다. 뾰족한 구두코가 반들거리며 빛났다.

‘쓰리피스 정장이 저렇게 잘 어울리다니.’

당장 패션쇼의 런웨이를 걸어도 될 것 같은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으로 문에 기대어 서서는 현덕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노골적인 시선에 현덕은 등골이 오싹했다.

“여, 여기는 어떻게 온 거예요?”

현덕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며 물었다.

“보고 싶어서 잠깐 들렀지.”

주민이 빙긋 웃으며 몸을 바로 세웠다.

문밖에서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주민을 따라갔던 매니저 형도 와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들이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나오라고 성화였다.

주민은 살짝 문을 열고 밖에 얼굴을 비쳤다. 잠깐만 대화를 나눌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아니, 아예 잠궜다.

“형?”

현덕은 의아해 주민을 불렀다. 주민은 답하는 대신 현덕을 꽉 껴안았다.

“윽, 형? 형!”

“응, 현덕아. 김현덕.”

주민이 뒤늦게 대답하며 현덕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한껏 숨을 들이켰다.

“으…….”

현덕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치 피를 빨리는 기분이었다. 주민은 현덕의 목에 코를 묻은 채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갑자기.”

현덕은 주민의 어깨를 마주 껴안으며 말로만 타박했다.

“좋아서. 이렇게 보니까, 너무 좋아서.”

주민은 옷깃을 코로 헤치고는 현덕의 하얀 어깨에 쪽쪽 입을 맞췄다.

“여기선 안 돼!”

현덕이 주민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밀었다.

“…….”

주민이 뚱한 얼굴로 현덕을 내려다보았다. 그 불만 가득한 얼굴을 보자니, 웃음이 나왔다.

“어이구,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요?”

현덕은 두 손으로 주민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주민은 현덕의 손에 제 뺨을 대고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사소한 모습 하나하나가 화보, 그 자체였다.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

주민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현덕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촬영하느라 바쁠 텐데, 뭘 여기까지 와요. 집에서 보면 되지.”

현덕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주민은 현덕이 저를 안쓰러워하는 틈을 파고들어 한껏 애교를 부렸다.

“내내 못 봤잖아. 마침 이 근처에서 촬영 중인데, 네가 여기에 스케줄 있다고 해서 보러 왔어.”

주민이 현덕의 손바닥에 뺨을 비볐다.

“어우, 그래서 나 보러 왔어요? 착하다, 착해.”

현덕은 그런 주민의 뺨을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다 확 잡아당겼다. 동시에 까치발을 들며 주민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쪽. 그 순간 주민의 눈이 돌변했다. 현덕은 아차 싶어 현덕은 얼른 얼굴을 뒤로 물렸다.

“아, 안 돼. 안 돼.”

달려드는 주민의 얼굴을 두 손으로 꽉 붙잡아 막았다.

“왜?”

주민은 으르렁대며 물었다. 당장 현덕에게 입맞추지 않으면 숨막혀 죽는 병에 걸린 사람같았다.

‘역시, 배우.’

현덕은 급박한 와중에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잘생긴 얼굴은 그야말로 천의 얼굴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현덕이 제 얼굴과 연기력에 감탄하건 말건, 주민은 그저 현덕에게 입맞출 생각 뿐이었다. 오랜만에 현덕을 봤다. 품에 안았다. 그런데 현덕이 요망하게도 먼저 입을 맞추고는 쑥- 달아나려 한다. 그걸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있을 리가.

당장 더 도톰한 입술을 깨물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현덕이 대가를 원한다면 시황그룹의 지분을 모두 바칠 수도 있었다.

“자자, 참아요. 우주민 배우님. 여기가 어딘지 잊지 말고요.”

“문 잠갔어.”

“밖에 사람들 기다리고 있잖아요. 형도 잠깐 빠져나온 거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나도 촬영 들어가야 하고.”

“잠깐, 잠깐이면 돼.”

“거짓말. 잠깐일 리가 없잖아요.”

어쩌다보니 현덕의 손이 주민의 다리 사이를 건드리게 댔다. 그곳은 무서울 정도로 두둑했다. 뜨거운 열기가 현덕의 손끝으로 금세 옮았다.

현덕은 기겁하며 손을 뺐다. 하지만 주민이 좀 더 빨랐다. 주민은 도망치는 현덕의 손을 잡아채 다시 자신의 다리 사이로 끌어당겼다. 주민의 것을 움켜쥔 현덕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까부터 서 있었거든?”

주민은 웃으며 현덕의 귓가에 속삭였다.

낮은 저음에 등골이 오싹하게 저렸다. 현덕은 어깨를 떨며, 난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리야, 진짜 무리. 완전 무리예요.”

뭔가 엄청 딱딱한 게 자꾸 허벅지를 찌르더라니. 촬영 소품을 주머니에 넣고 온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다.

“어, 어쩌려고 그래요.. 형, 얼른 애국가 불러요.”

현덕이 울상이 되어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이 주민을 더욱 자극한다는 걸, 현덕은 아직도 몰랐다.

“애국가보다 더 효과적인 게 있는데, 안 도와줄 거야?”

“아, 안 된다고- 윽!”

주민은 제 품에서 도망치려는 현덕을 벽으로 밀쳤다. 현덕은 벽과 주민 사이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게 됐다.

현덕은 재빨리 주변부터 살폈다. 대기실 문은 주민이 들어오며 잠갔고, 탈의실을 겸한 작은 대기실은 창문이 없었다. 카메라나 CCTV가 설치되어 있지도 않았다.

“괜찮아, 아무것도 없어.”

주민은 불안해하는 현덕을 달랬다.

“아무것도 없는 줄 어떻게 알아? 사생이 몰카라도 설치했으면!”

“괜찮아, 내가 누군지 몰라? 네가 여기 촬영하러 오는 데, 내가 그런 거 하나 확인 안 했을 거 같아?”

주민이 현덕의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추며 말했다.

여기는 유명 케이블 방송국의 촬영장이었다. 그 유명 케이블 방송국은 얼마 전, 시황그룹 계열사인 SH.ent에서 인수했다. 즉, 여기는 주민의 것이었다.

“언제나 말하지만 그렇게 쓸데없, 읍, 는 데, 인력을 낭비, 으, 하지, 말라고-”

현덕은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주민은 현덕의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이며 말을 뱉어내는 걸 더는 가만 두고 보지 못했다.

주민이 현덕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현덕이 간지럽다고 입을 벌리기 무섭게 안으로 파고 들었다.

“으…… 흐으…….”

현덕은 주민의 어깨에 두 팔을 두르고 너른 등을 쓸어내렸다. 급하게 구는 주민을 달래려는 것이었으나,

“응, 현덕아, 조금만. 조금만, 응?”

주민은 오히려 그런 현덕을 달랬다. 현덕의 손길에 더욱 흥분해 현덕의 입안을 거칠게 헤집었다.

근 2주 만에 겨우 만났다. 주민은 영화 촬영이, 현덕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겹쳐 둘 다 정신없이 바빴다. TV와 여러 매체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들으며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거로 만족해야 할 정도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주민은 인근 촬영지에서 하루 종일 촬영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현덕은 방송국에서 다섯 시간 정도 예능을 촬영한 후 다른 방송국으로 가야 했다. 주민이 일부러 찾아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터였다.

주민은 현덕에게 제 몸을 바짝 밀어붙였다. 다리 사이의 성난 것이 현덕의 것을 비비며 열기를 일으키려 했다.

“형, 안 돼, 진짜 안 돼.”

현덕은 버둥거렸지만 주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덕의 팔다리를 붙잡은 주민의 손과 발에 힘이 더 들어갔다.

“형, 형은 티가 하나도 안 나지만 나는 아니잖아. 나 그…… 그거 하고 나서, 나가서 촬영하라고? 그 얼굴을 하고?”

현덕은 주민을 말리기 위해 입에 담기 민망한 속마음까지 털어놔야 했다.

“형, 난 내가 느끼는 얼굴, 표정, 그런 거 다 형한테만 보여주고 싶어요. 딴 사람들한테는 조금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응?”

현덕은 제 것이 벌써 반쯤 일어선 걸 느끼며 급히 말했다. 주민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문지르기도 했다. 나름의 애교였다. 그래 봤자 뱃속에 능구렁이가 100마리쯤 들어가 있는 주민에 비할 건 아니었지만.

“젠장.”

잠시 망설이던 주민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현덕과 주민 사이에 새끼손가락만 한 틈이 벌어졌다. 현덕은 안도했다.

“형, 착하지. 우리 나중에 서로 쉬는 날 맞춰서 형네 집에서 하자. 응?”

현덕은 겨우 풀려난 두 손으로 주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올백으로 넘어가 있어서 헤어스타일이 망가질까 봐 마음대로 만지지도 못했다.

“알았어.”

주민이 우울하게 대답했다.

현덕은 착하다, 착하다, 주민을 어르며 두 손으로 주민의 어깨를 밀었다. 좀 더 틈을 벌려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민이 밀려나지 않았다.

“주민 형?”

현덕은 의아해하며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끝까지는 안 갈게. 대신, 내가 가는 걸 좀 도와줘.”

“뭘?”

“너는 몰라도 나는 이대로 못 나가.”

주민이 보라는 듯 다리 사이를 눈짓했다. 현덕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반쯤 일어서다만, 정장을 찢고 나올 듯한 힘찬 기세가 느껴졌다.

“…….”

현덕은 황망히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주민은 그런 현덕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조금만 어울려줘.”

“이, 이 변태야!”

“더 말해줘. 난 네가 나한테 욕하는 게 그렇게 듣기 좋더라.”

주민이 나른하게 숨을 내쉬며 웃었다. 일부러 그러는 게 분명했다.

“으아아.”

현덕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진짜 변태야. 진짜 변태라고.’

내 애인이 이런 변태라니. 현덕은 울고 싶어졌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간절했으나 현실도피는 불가능했다. 변태 애인은 현덕이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도록 놔둘 위인이 아니었다.

바로 문밖에는 촬영 스태프진,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등등 방송국과 기획사 소속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둘이 나오기만 기다리며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얇은 벽과 문을 사이에 두고, 현덕은 주민의 자위 밑반찬이 되어야 했다.

주민은 한쪽 팔을 굽혀 벽에 댔다. 현덕의 얼굴 바로 옆이었다. 서로의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마주하고는 다른 손으로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속옷을 헤치기 무섭게 흉기가 툭, 밖으로 튀어나왔다. 현덕은 슬쩍 눈을 내려 그것을 보았다.

‘으으.’

봐도 봐도 익숙해지질 않는 크기였다. 저것이 툭하면 제 안을 드나든다고 생각하니 새삼 오한이 들었다.

현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주민이 웃었다.

주민이 현덕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 귓가에 주민의 숨이 닿자 몸이 절로 떨렸다.

“흐으…….”

입에서 제멋대로 신음이 샜다. 현덕은 얼른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들려줘. 막지 마. 응?”

주민은 쪽쪽, 일부러 소리를 내며 입을 막은 손등에 입을 맞췄다.

“하지 마, 밖에 소리 들리면 어쩌려고!”

현덕은 제 입을 막던 손으로 주민의 입을 막아버렸다. 주민은 현덕의 손등을 혀로 핥았다.

“으힉!”

현덕은 손을 뗐다. 주민은 그런 현덕을 보며 킥킥, 웃었다.

시황그룹의 신생 계열사인 SH.ent는 톱스타인 주민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연예 사업에 진출했고, 이 방송국을 인수했다. 이후 낡은 시설의 현대화와 혁신을 내세우며 방송국을 전체적으로 고치고 기기를 싹 다 교체했다. 허술하던 대기실을 세련되게 리모델링하며 방음과 인테리어를 신경 썼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현덕은 이곳이 여느 방송국의 대기실처럼 얄팍한 패널 벽으로 구획을 나눈 공간일까 봐 걱정했다. 주민은 현덕에게 굳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주민은 무너지듯 현덕에게 기대며 뜨거운 숨을 뱉었다. 현덕의 몸이 긴장하여 굳는 게 느껴졌다.

주민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제 것을 감쌌고 현덕이 쥐게 했다. 현덕이 움찔 떨며 어쩔 줄 몰라 하자 현덕의 손을 제 손으로 덮었다.

“이……. 진짜, 우주민, 두고 보자.”

현덕이 울상을 지었다. 손끝이 벌벌 떨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사정할 것 같았다.

주민은 현덕의 목을 입술로 깨물었다.

“자국 남으면 안 돼.”

“응. 현덕아. 형 믿어. 안 그럴게.”

주민은 현덕이 좋아하는 목소리로 속삭이며 어서, 만져달라고 허리를 들이밀었다.

현덕의 손이 주저하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손수건에 감싸인 주민의 것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손 안에서 성기가 커지며 박동했다. 뜨겁고 단단했다. 얇은 천 쪼가리 하나를 방패막이 삼아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주민의 것을 잡아 흔들기만 하는데도 덩달아 흥분할 것 같았다.

‘흥분하면 안 돼,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해.’

현덕은 끝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이 변태랑 나랑 동급이 되면 안 돼. 김현덕, 너는 동방예의지국의 사람이야. 공공장소에서 이런 외설적인……. 이씨, 우주민 걸 붙잡고 흔들어주고 있는 걸로 게임 끝 아니야? 망했어, 난 망했다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바로 김현덕인데. 우주민 때문에 자꾸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들킬까 봐 무서워하면서도 막상, 정말 들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무려 재벌 3세이신 우주민이 어떻게든 해주겠지.’하고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장소에서 이런 짓이나 하고 있지.’

공연음란죄로도 모자라 재벌의 재력과 결탁해 완전 범죄를 꿈꾸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웠다. 그마저도 열기에 금새 녹사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하아……. 너무 좋아.”

주민은 현덕의 목에 더운 숨을 그대로 내뱉었다.

“읏, 하, 하지 마…….”

“왜?”

주민은 현덕의 목을 핥으며 되물었다. 목울대에서 절로 신음이 샜다.

현덕의 손안에 제 것을 비비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도 자꾸 목이 말랐다. 부족했다.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손수건 같은 얇은 천 따위는 집어치워 버리고, 현덕의 손에 직접 닿고 싶었다.

아니, 현덕의 몸을 뒤집어서 바지 버클을 풀고, 안 된다고 하는 현덕을 살살 달래 현덕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생각만으로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현덕은 사정하면 나른하게 늘어진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서는 더없이 색스럽다. 그 모습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어야 한다. 여운의 끝자락인들 남들에게 보여줄까 보냐.

주민은 현덕의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댔다. 서로의 코가 맞닿았다.

“좀 더 세게, 응? 하아.”

“흐으……. 마, 말 시키지마.”

현덕은 자꾸 고개를 저으며 주민의 눈을 피했다. 주민은 현덕의 뺨, 귀, 목선을 따라 입을 맞추며 뒤쫓았다. 현덕이 간지러움을 견디다 못해 다시 고개를 돌리면, 눈을 맞추고 놓아주지 않았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물기 어린 까만 눈동자. 그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 욕나올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읏. 주민은 현덕을 똑바로 바라보며 현덕의 손안에서 파정했다. 자신이 사정한 것처럼 신음을 흘리는 현덕에게 거칠게 키스했다.

“읍, 흐읍! 으……아, 혀…… 읍…….”

현덕이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주민은 틈을 주지 않았다. 현덕의 안에 들어가지 못한 걸 대신하려는 듯 현덕의 입안을 파고들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손으로 현덕의 목을 잡고 현덕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제 것을 움켜쥔 현덕의 손안에 허릿짓을 했다. 좋은데 감질났다. 감질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목울대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샜다. 주민은 미처 채우지 못한 욕망을 억눌렀다.

한참, 한참 뒤에야 현덕을 놓아줬다.

현덕은 모자란 숨을 급히 들이쉬었다. 그 급한 숨이 주민의 코와 뺨에 닿았다. 그마저도 달았다.

주민은 현덕을 꽉 끌어안았다.

“형, 주민 형.”

현덕은 주민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그런 주민을 받아주었다.

그게 주민에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만큼의 위안과 구원의 징표인지 현덕은 영원히 모를 터였다. 아니, 주민이 영원히 모르게 만들 셈이었다.

“응, 현덕아.”

주민은 다시 샘 솟는 허기를 견디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현덕은 자신이 사정한 것처럼 몸에 힘을 잃고 비틀댔다.

주민은 현덕을 소파에 앉히고는 뒤처리를 했다. 제 옷매무새를 바로잡고는 손수건을 비닐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현덕은 기겁하며 그걸 거기에 버리면 어떡하냐고 화를 냈지만, 주민은 태연하게 괜찮다고 말하며 환풍기를 돌렸다.

잠시 환기될 동안에도 주민은 현덕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등 뒤에서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물티슈로 손을 꼼꼼히 닦은 현덕은 그런 주민을 토닥토닥 다독여주었다.

주민은 조금 전까지 그런 짓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태연했다.

“나 은퇴할까?”

주민이 불쑥 말했다.

“은퇴하면 뭐 먹고 살려고?”

현덕이 장난스레 대꾸했다.

“평생 먹고살 수 있어.”

“난 밥 많이 먹어서 돈 많이 필요할 텐데?”

“매일매일 만한전석을 차릴게. 나 그 정도 능력은 되니까, 나랑 같이 은퇴하자. 이 세상에서 사라져서 우리 둘만 이렇게 있자. 영원히.”

주민은 현덕이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걸 눈치채고는 그 분위기를 틈타 제 속마음을 토해냈다.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제 촬영 들어가야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건 알겠는데, 회포 그만 풀고 나와주세요!”

여상한 목소리였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말투였다. 현덕은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주민은 그 붉어진 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 가봐야 돼.”

“일주일 뒤에, 너랑 나랑 쉬는 날 겹쳐. 그날 우리 집으로 와.”

주민은 순순히 손을 풀어주며 말했다. 현덕도 아직 모르는 현덕의 미래 스케줄을 꿰고 있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덕은 놀라는 대신 푸스스, 웃었다.

“뭐야, 우리 기획사 사장님. 또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셨나?”

“정당한 사원 복지야. 널 더 못 보면 내가 미쳐버릴 테니까. 내가 미쳐서 회사에 득 될 게 없잖아?”

“무슨 말이 그래요. 아무튼 농담도 재미없게 한다니까.”

현덕은 한 번 열기를 내보냈으면서도 아직도 그 까만 눈으로 자신을 집어삼킬 듯 바라보는 주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는 걸, 그때에는 몰랐다.

***

일주일 뒤. 현덕은 주민의 예언에 따라 하루를 통째로 쉬는 기적의 휴일을 맞이했다. 모처럼 쉬는 날이지만 부모님과 맹덕에게는 쉬는 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 죄송해요. 맹덕 형, 미안.”

현덕은 아침 일찍 스케줄을 핑계로 집을 빠져나오며 조그만 목소리로 사과했다. 부모님과 형이 알면 엄청 서운해 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오랜만에 연인과 함께 하루를 보낼 기회이니.

현덕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민의 집에 찾아 갔다. 그리고 가자마자 후회했다.

‘……그냥 부모님이랑 식사하고, 형이랑 영화나 볼걸.’

다시 현관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거 입어줘, 얼른.”

주민이 옷걸이에 걸린 옷을 흔들며 현덕에게 말했다.

짙은 청색 계열의 긴 면바지와 하얀색 블라우스, 체크무늬 넥타이, 바지와 같은 색의 재킷. 현덕의 모교 교복이었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분명 일주일 전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입었던 것과 똑같은 의상이기도 했고.

“야 이 변태야!”

현덕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응, 사랑해. 현덕아.”

주민은 상큼하게 웃으며 답했다.

주민의 집은 모델 하우스 같았다.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고 꼭 필요한 가구만 있었다. 도무지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았다. 현덕이 와서 숨을 쉬어야 그나마 온기가 돌았다.

주민의 외모도 썰렁한 집 분위기를 만드는 데 단단히 한 몫 했다. 심플한 블랙 컬러의 소파에 앉은 주민의 모습은 말 그대로 화보였다.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은 더 심했다.

검은색 정장 바지에 흰 와이셔츠. 넥타이를 매지 않고 단추를 두세 개 푸른 상태. 머리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하고.

차려입은 듯 차려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입고서는 소파에 기대앉았다.

커다란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주민이 반짝반짝 빛났다. 손에 들린 저것만 아니면 성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을 것 같은데. 손에 들린 저것이 주민의 성스러운 외모를 지상의 야설로 바꾸어버렸다.

원흉은 탁자에 놓인 대본이었다.

‘창가의 푸른 잎사귀(가제)’

얼마 뒤, 주민이 촬영에 들어갈 모 지상파 방송국의 수목 미니 시리즈였다. 주민의 설명에 따르면 학교를 배경으로 교사와 학생의 풋풋한 첫사랑을 담은 내용이라고 했다.

“내 대본 리딩을 도와줘.”

“그런데 왜 내가 그 교복을 입어야 하는 거지?”

“내 몰입을 돕기 위해서?”

“왜 교복을 입는 게 몰입을 돕는 방법인데?”

“현덕아, 넌 연기가 젬병이잖아. 네 로봇 대사를 들으면 내가 몰입이 잘 안 돼. 그러니까 네 겉모습을 보고서라도 몰입할 수 있게 네가 도와줘야지.”

“나랑 대본 연습을 안 하면 되잖아. 모처럼 휴일인데 이럴 거야?”

여전히 현덕은 현관문 근처에 서 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긴 하나 여차하면 도망칠 시도는 해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주민은 언제나 그렇듯, 현덕이 도망칠 기회 따위를 두고 보지 않았다.

주민은 바지 주머니에서 종이 쪼가리를 꺼냈다. 두 번 접은 포스트잇이었다. 샛노란 색이 눈에 쨍하니 들어왔다.

현덕은 단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자, 잠깐!”

그것의 위력을 알았기에 다급히 주민을 막으려 했건만. 주민은 주저없이 그것을 펴서 현덕에게 보였다.

[ 무엇이든 소원 들어주기 1회 ]

익숙한 글씨체였다. 현덕은 제 글씨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얼마 전, 주민의 생일이었는데 둘 다 바빠 만나지 못했다. 생일을 챙기기는커녕 생일이 지난 줄도 몰랐다. 연인인 현덕도 몰랐고 당사자인 주민도 몰랐다.

폭풍 같은 시기가 지나간 뒤 한숨 돌리고야 주민의 생일을 그냥 지나친 걸 알게 됐다. 현덕은 미안해하며 뒤늦게라도 축하해주려고 했다.

주민은 모처럼의 휴일에 선물을 사러 가겠다고 뛰쳐나가는 현덕을 붙잡고 뼈와 살이 불타는 시간을 즐겼다. 현덕이 평소처럼 빼지 않고 열심히 응해주었기에, 주민 역시 모처럼 불타올라 온갖 체위로 현덕을 잡아 먹었다.

그리고는 비몽사몽인 현덕에게 선물로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는 쿠폰’을 선물로 달라고 했다. 현덕은 그 소원이 너무 귀여워서, 잠결에 쿠폰을 열 장이나 만들어주었다.

기껏 해봐야 안마 1시간 해주기, 토스트 구워주기 정도일 줄 알았건만.

“내 소원이야. 너랑 같이 대본 연습하는 거.”

주민은 쿠폰을 이런 방식으로 써먹었다.

“빨리 현덕아, 이걸로 갈아입어 줘. 내 눈앞에서.”

주민이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웃어 보였다.

“윽…….”

현덕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주민이 포스트잇 뒷장을 펴 보였다.

[ 만일 지켜주지 않을 시엔 그 다음 날부터 한 달 동안 우주민의 자택에 스스로 갇혀 있기. 외부와 연락 단절. ]

역시나 현덕의 글씨였다. 잠결에 저 깨알같은 글씨를 어떻게 다 썼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과거의 나, 도대체 저 변태한테 뭘 만들어준 거냐. 어? 어?’

한없이 원망하고 후회한들, 과거의 잘못이 현재를 얽매는 걸 풀어낼 방법이 없었다.

“대본 연습만 도와주면 되는 거지?”

현덕은 우주민의 인성에 그래도 한 가닥쯤 있을지 모를 도덕심을 찾고자 애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주민은 화사하게 웃으며 탁자 위 대본을 가리켰다.

‘그때 내가 교복 입은 걸 보고 새삼 반했나 보지?’

현덕은 애써 좋은 방향으로 생각했다. 우주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변태 애인이 벌일 법한 변태스러운 일이 자꾸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했다.

자신의 연인이 그렇게까지 변태는 아닐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반. 오랜만에 주민과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을 그냥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에휴. 현덕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주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주민은 산뜻하게 교복을 건네주고는 소파에 등을 기대앉았다.

“기다려, 갈아입고 올게.”

현덕이 돌아서자 주민이 그런 현덕을 말렸다.

“내가 말했잖아. 내 눈앞에서 갈아입으라고.”

“뭐?”

“이거, 이거.”

주민이 손에 들린 만능 소원 쿠폰을 흔들었다.

“…….”

“…….”

“…….”

“으주미인.”

현덕이 이를 악다물었다.

“응. 현덕아. 나 너무 기대돼.”

주민은 턱까지 괴고는 더없이 기대된다며 멋대로 설레어했다. 현덕은 어쩔 수 없이, 벌건 대낮에 환한 거실에서 난데없는 스트립쇼를 펼쳐야 했다.

일단 티를 벗고 바지를 벗었다. 여기까지는 쉬웠다. 현덕의 손길을 따라 현덕의 몸을 훑던 주민의 눈이 현덕의 속옷을 향했다. 그마저 벗어주기를 바라는 듯했으나 현덕은 흥, 코웃음을 쳤다.

‘누구 좋으라고? 이 변태야!’

현덕은 바로 교복을 걸쳤다. 삼 년 내내 입고 다녔던 옷이었다. 허물을 뒤집어쓰듯 단번에 입을 수 있었다.

“뭘 그렇게 빨리 입어.”

주민은 쇼가 너무 빨리 끝난 걸 아쉬워하며 앵콜을 요청했다. 현덕은 당연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무슨 내용이야, 내가 무슨 역할을 해야 되는데?”

현덕은 탁자 위 대본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설명해줄게.”

주민은 그 손을 낚아채 손등에 쪽, 입을 맞추고는 상냥하게 말했다. 주민이 상냥하다는 건 시방 그가 겁나 위험한 짐승이라는 신호였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현덕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 대본의 내용은 이러했다.

교생이 5월, 푸릇한 봄날에 학교에 온다. 착하고 얌전하던 학생은 교생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교생이 미술실에 벗어두고 간 재킷을 발견한다. 텅 빈 교실에서 학생은 그 재킷을 껴안고 교생을 그리워하며 자위를 하다가 교생에게 들킨다.

“잠깐. 뭐라고?”

현덕이 스톱을 외쳤다.

“뭘 한다고?”

“자위.”

“……누가?”

“학생이.”

“여학생?”

“그렇겠지?”

“주민 형, 네가 교생이고?”

“그리고 현덕이 네가 그 학생이고.”

“난 남잔데?”

“여자 교복을 입고 싶었어? 난 그것도 상관없는데.”

“지금 내 말뜻을 모르겠어?”

현덕이 황망히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잘 알아듣고 있어.”

주민이 손으로 침실을 가리켰다.

문이 반쯤 열려 있어서 안의 침대가 훤히 보였다. 침대 위에는 검은 재킷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이 인간 작정했잖아.’

덜컥, 겁이 났다.

“그, 그럴 리 없어. 뻥치지 마요. 공중파 방송국에서 이런 걸 방송할 리 없잖아.”

“왜 없다고 생각해? 요즘 케이블 채널이 많아져서 시청률 경쟁이 얼마나 세졌는지 알아? 지상파 방송국도 경쟁력을 갖추려고 점점 파격적인 내용을 소재로 드라마를 찍고 있어. 얼마 전에 종영한 ‘도서관의 왼편’도 스무 살 나이 차이가 나는 대학교 남학생과 여자 의사의 파격적인 멜로를 다뤘잖아. 그것도 공중파 방송이었어.”

주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줄줄이 말했다. 미리 대사를 준비한 듯 더없이 매끄러웠다.

“…….”

‘도서관의 왼편’은 현덕의 아버지와 형, 맹덕이 꼬박꼬박 챙겨보는 드라마였다. 주민은 무척 외설적인 드라마라는 듯 말하지만, 아버지와 맹덕이 펑펑 울며 볼 정도로 감동적이고 깊이 있는 드라마였다. 현덕은 그 점을 지적하고 싶었으나 일단 말을 아꼈다.

“나한테 죽을 때까지 절대로 베드신 안 찍는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보다 더 효과적일 것 같은 패를 던졌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짝다리까지 짚고 껄렁껄렁한 자세를 취했다.

“물론이지. 난 절대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 연기로라도 같이 잘 생각 없어.”

“그런데 잘도 이런 걸 찍겠다고요?”

“말했잖아. 여기엔 베드신 단 한 장면도 없어. 학생의 자위신만 한 번 나올 뿐이지. 난 그걸 보고 놀라는 역할이고.”

주민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다는 듯 담담히 답했다.

“…….”

“방금 말했다시피 나는 너 말고 그 누구도 싫어. 아무리 연기라도 같이 자는 흉내조차 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난 이런 장면이 완전 젬병이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네가 도와줘. 내가 이 장면에서만큼은 그 학생이 너라고 생각하고 연기할 수 있도록.”

이렇게 진정성 있는 호소력을 고작, 애인에게 교복 입히는데 써먹다니. 현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건, 저 연기력에 ‘어? 그런 건가?’라고 생각할 뻔한 자신이었다.

이렇게 홀라당 넘어간 게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이번이 처음이라면 분명 속았으리라. 하지만 우주민은 전적이 화려한 재범이었다. 못해도 전과 100범은 되었다.

현덕은 피해자신 자신을 탓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다 우주민 때문이야.’

왜 신은 우주민에게 저 잘난 외모를 주시고 연기력까지 주신 걸까. 그러면서 인성은 다 빼놓고.

주민이 배우가 된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저 연기력을 나쁜데 써먹었다면 단군 이래 대한민국 최고의 사기꾼이 되었을 게 분명했을 테니까.

“내가 싫다면 어쩔 건데요? 형 소원은 대본 연습을 같이하자는 거였잖아. 나는 여기 소파에 앉아서 아주 평범하게 대본 연습을 도와줄 거예요. 절대 저기로 안 들어가.”

현덕이 제 미모와 연기력에 홀리지 않고 이성을 유지하자, 주민은 보란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리고는 다시 주머니에서 포스트잇을 한 장 더 꺼냈다.

[ 무엇이든 소원 들어주기 1회 ]

만능 소원 쿠폰이 또 한 장 등장했다.

“대본이랑 똑같이 해줘. 현덕아.”

주민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 복장이랑 상황 모두 다.”

“…….”

사실 난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모자란 사람이 아닐까. 현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고민을 해보았다. 하지만 고민은 고민이고 만능 소원 쿠폰은 만능 소원 쿠폰이었다.

현덕은 주민에게 백지 수표를 넘겼고, 주민은 그 백지 수표에 제가 원하는 걸 써넣었다. 계약대로 현덕은 주민이 원하는 걸 들어줘야 했다.

‘저 인간이라면 분명 날, 한 달 동안 여기에 감금해두고도 남을 사람이야.’

애인이라고 특별 취급할 생각은 없었다. 현덕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더없이 객관적으로 자신의 연인을 판단했다. 주민은 현덕이 만능 소원 쿠폰으로 빈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기다렸다는 듯 현덕을 이 집 안에 가둘 사람이었다. 그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르긴 몰라도 온갖 코스튬 플레이를 즐기지 않을까?

남자 교복 하나에도 저렇게 신나서 만능 소원 쿠폰을 두 개나 써 재끼는데. 한 달 동안 어떤 걸 하게 될까.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차라리 한 번 당하고 말지.’

현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삼모사의 오류에 빠졌다.

‘왜 나는 저런 변태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

현덕은 터덜터덜, 침실로 걸어 들어가며 고뇌했다. 영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 이런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현덕은 침대 앞에 서서 주민의 것이 분명한 정장 재킷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이걸, 어쩌라고?”

“내 냄새를 맡으면서 자위를 해주면 돼.”

어느새 뒤따라온 주민이 상냥하게 대답했다.

주민은 침실 문에 기대어선 채였다. 현덕은 기시감을 느꼈다. 일주일 전, 대기실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는 흥분을 참지 못한 주민을 달래며 현덕이 그의 사정을 도왔다.

그 보답으로 주민은 오늘의 이 이벤트를 준비한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진정 은혜를 원수로 갚는 표본이리라. 저놈의 우주민은.

현덕은 이를 갈며 침대 위의 재킷을 잡아챘다.

“서서 말고, 앉아서. 바닥에 앉아서 침대에 몸하고 얼굴을 기대고 해야 돼.”

주민은 계속 문가에 기대 서 디렉팅했다. 현덕이 결코 원치 않았던 도움이었다.

“형……. 나 이거 진짜 해야 돼요?”

현덕은 미인계를 시도해 보았다. 어차피 우주민에게는 이 세상에서 김현덕이 제일 예쁘고 잘생겨 보일 테니까. 한껏 불쌍한 척 흉내를 내며 주민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현덕이 연기에 전혀 재능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연기 실력이 차라리 로봇이 연기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말을 듣는 정도라는 걸 깜빡한 대가는 컸다.

“응, 해야 돼. 현덕아.”

주민이 손에 든 포스트잇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저놈의 종이 쪼가리.’

현덕은 이를 갈았다.

언젠가 주민이 잔뜩 취하거나 깊이 잠든 날 밤, 이 집 안을 모조리 뒤져서라도 남은 만능 쿠폰을 갈가리 찢어버리리라. 오늘 사용한 것까지 셈하면 아직 쓰지 않은 다섯 장의 만능 소원 쿠폰이 주민의 손아귀에 있었다.

현덕은 침대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민의 지시대로 몸을 침대에 기대고는 주민의 재킷을 얼굴에 덮었다. 타조가 수풀에 얼굴을 숨기고는 적들이 자신을 못 찾을 거라 안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겠지만. 그래도 차라리 이렇게 눈을 가려버리는 게 마음이 편할 듯싶었다.

애써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있건만.

“빨리 해야지.”

주민은 그런 현덕의 마음도 모르고 자꾸 재촉했다. 웃음기 섞인 그 목소리가 너무 얄미웠다.

“조용히 해. 지금 집중 중인 거 안 보여요? 대본에서도 그렇게 교생 선생님이 막 학생보고 이래라저래라 해요? 이 장면, 학생이 혼자 하는 걸 선생한테 들키는 거라며. 그러면 들키기 전까지 조용히 하고 있어요!”

현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현덕의 말이 맞는지 주민은 대답이 없었다.

에휴. 현덕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처지가 못내 처량했다.

‘나는 왜 변태 애인을 둬서, 이런 변태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오늘, 벌써 몇 번이나 변태 애인을 둔 것을 후회하고 있는지 주민은 결코 모르리라.

현덕은 주민의 재킷에 뺨을 문질렀다. 주민이 자주 쓰는 향수 냄새가 났다. 주민의 냄새였다.

“아…….”

자각하니 온몸이 오싹해졌다.

2주, 아니 3주 가깝게 주민과 함께하지 못했다. 한창 혈기왕성한 이십 대 청년이 몸이 튼튼한 애인을 두고도 금욕 생활을 했으니 현덕도 쌓일 대로 쌓인 터였다.

비록 만능 소원 쿠폰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강요에 의한 것이나 상황이 이어지니 현덕의 몸도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난 타조인가 봐. 눈 가리고 우주민이 안 보이니까, 정말로 괜찮은 것처럼 착각이 들잖아.’

한편으로는 이런 자조 섞인 생각도 들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주민의 재킷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정말 주민에게 안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주 동안이나 내내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사람. 변태 같긴 하지만 대체로 상냥한 내 애인.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이게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물론 이성은 끈질기게 현덕에게 정신 차리라고 외쳤다. 문제는 그 이성보다 우주민이란 존재가 현덕에게 더 강력한 자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덕은 주저하면서도 제 바지 버클로 손을 가져갔다. 재킷에 밴 주민의 냄새에 몸을 내맡기며 바지 버클을 내렸다. 브리프를 허벅지까지 내리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보이지 않아도 주민의 시선이 느껴졌다. 살갗에 따갑게 와 닿는 집요한 시선이라니.

현덕은 천천히 자신의 것을 두 손으로 잡았다. 벌써 반쯤 일어서 있었다.

‘왜 이래야 하는 거지?’

무섭고 두려웠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게 무서웠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을 주민이 두려웠다. 도대체 어떤 눈으로,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걸까.

일주일 전, 방송국 대기실에서의 주민이 생각났다. 자신을 벽과 팔 사이에 가두고 더운 숨을 내쉬던 얼굴. 두 손으로 움켜쥐었던 그 뜨겁고 단단한 성기.

두 손을 빠듯이 채우던 성기는 언제나 현덕의 안을 헤집던 것이었다. 현덕이 단 한 순간도 정신을 못 차리고 주민에게 매달리도록 만들었던.

현덕은 그것을 제 손에 쥐고 주민이 흥분을 뱉어내도록 도왔다.

주민은 입술을 찢을 듯 거칠게 입맞추며 욕망을 토해냈다. 그 모습을 떠올리자 몸에 불이 붙었다.

“으…… 흐으…….”

현덕은 성기를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주민의 재킷에 코를 박고 한껏 숨을 들이켰다.

상상되었다. 주민의 벌어진 어깨, 돌처럼 단단한 몸. 어느샌가 부쩍 커진 체격 차. 제 허리를 움켜쥐고 놔주지 않던 큰 손.

입술, 쇄골, 배꼽, 그리고 아래로 이어지던 입맞춤. 싫다고 밀어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성기를 입에 물고 빨던 야한 입술. 뒤를 헤집던 긴 손가락. 그 가차 없는 움직임을 견디면 몸속 깊은 곳까지 치고 들어 안쪽까지 짓이기던 흉포한 성기. 거친 움직임.

“아…… 흑…….”

성기가 단단해졌다. 손으로 자극해서가 아니었다. 주민의 냄새를 맡으며, 주민의 움직임을 상상해서였다.

현덕은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욕망에 따라 더 빨리 손을 흔들었다.

“으…….”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사정하고 싶은데, 잘되지 않았다. 몸이 더 큰 자극을 원하는데, 부족했다.

“왜……. 씨이…….”

빨리 편해지고 싶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끝내고 싶은데, 그게 잘되지 않았다. 현덕은 억울한 마음에 몸을 꼬며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아니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바로 등 뒤에서 주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덕은 제 성기를 쥔 채로 굳어버렸다.

주민이 현덕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두 손으로 현덕을 번쩍 들어 제 다리 위에 앉혔다. 현덕은 여전히 상체를 침대에 기댄 채 주민의 허벅지에 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주민은 두 다리를 현덕의 다리 사이로 집어넣어 다리를 벌렸다.

“하, 하지 마.”

현덕이 다리를 오므리려 애썼지만, 주민은 어렵지 않게 현덕의 다리를 벌렸다. 버클만 푼 바지와 속옷을 허벅지까지 끌어내렸다.

한 손으로는 현덕의 성기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로션을 집었다. 익숙하게 한 손으로 뚜껑을 따고 손에 로션을 잔뜩 묻혔다. 로션에 흠뻑 젖은 주민의 손이 현덕의 왼손을 잡았다.

“형?”

“이렇게 해야지, 현덕아.”

주민이 자신의 손가락과 현덕의 손가락을 함께, 현덕의 뒤에 넣었다.

“아!”

현덕의 허리가 요동쳤다.

꽉 닫혀 있던 곳이 억지로 벌어지며, 미끈하고 가는 기둥 두 개가 동시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미꾸라지처럼 안에서 움직여댔다.

그것들 중 하나는 현덕의 손가락이었다. 손끝을 타고 제 안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하, 하지 마. 하지 마!”

현덕은 제 손을 빼내려 했다. 자연히 허리와 엉덩이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주민이 손가락과 자신의 손가락을 조이는 꼴이 되었다.

“윽, 흣.”

그거는 그거대로 기묘한 자극이 되어 현덕을 괴롭혔다.

“이거, 싫어. 빼, 빼, 싫어어.”

현덕이 마구 고개를 저었다.

“알려주는 거야, 현덕아. 우리 현덕이가 자위 같은 것도 할 줄 모르니까, 선생님이 가르쳐주려는 거잖아?”

“아냐, 나, 학생, 읏, 하, 하지 마, 아, 냐. 윽!”

“쉬이, 김현덕 학생. 착한 학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이렇게 선생님 옷 가져다가 자위하면서, 왜 선생님이 도와준다는데 그건 싫어할까? 응?”

“하, 하지 마, 하지 말라니까.”

“먼저 시작한 건 현덕 학생인데 선생님께 왜 이럴까. 그리고,”

주민이 재킷에 덮인 현덕의 얼굴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선생님한테는 존댓말을 해야지. 응?”

그리고는 현덕의 손을 꽉 붙들고 더 깊이 밀어 넣었다. 현덕의 성기를 쥔 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모양을 더듬어 기억하려는 듯 귀두에서부터 음낭이 연결되는 곳까지 쓸며 간지럽혔다.

“아, 아! 아, 안 돼!”

현덕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그건 기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현덕의 손가락이 하나, 두 개, 세 개, 현덕의 안을 헤집었다. 뒤따른 주민의 긴 손가락이 누르는 대로 안을 문질렀다. 추삽질을 하듯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이렇게 뜨겁고, 축축해. 손가락 하나만 넣어도 날 빨아먹을 듯이 이렇게 움직이지. 그래서 내가 멈추질 못하는 거야. 알겠니? 응?”

주민은 정말 선생님이라도 된 듯 말했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은 주민이 말한 대로였다. 뜨겁고 축축했다. 빨아 당기는 감촉이 무서웠다. 그런데 그 감각 때문에 자꾸 현덕의 성기가 꺼떡였다. 현덕의 성기를 쥐고 있는 주민의 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현덕은 제 뒤를 만지는 주민의 손, 그리고 현덕 자신의 손에 흥분해 스스로 허리를 흔들었다. 주민의 손에 제 성기를 비비며 뒤에서 느껴지는 쾌락에 몸서리쳤다.

“아, 아…… 아흐!”

현덕은 재킷에 얼굴을 박은 채 신음만 흘렸다.

뒤엔 주민과 현덕 자신의 손가락이 드나들고 있었다. 로션 때문인지, 아니면 제 안에서 물이 나오기라도 하는 건지, 찌꺽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런데 우리 현덕 학생 손가락이 짧아서, 여기까지는 닿지 못하네.”

불현듯 주민의 손가락이 현덕의 안쪽 깊숙이, 어느 지점을 쿡 찔렀다.

“아!”

현덕의 몸이 요동쳤다.

주민의 말마따나 거기는 현덕의 손가락이 닿지 못하는 곳이었다.

“여기를 만져줘야 우리 현덕 학생이 좋아할 텐데, 그치?”

주민이 계속 그곳을 자극하며 말했다.

“아, 아니, 거기……. 아……흐으……. 그만, 그만……. 형…….”

“형 말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

“그만, 그만해……. 아……흐으……읏……. 윽! 아!”

뒤에 드나드는 주민의 손이 점점 더 빨라졌다. 현덕의 손가락이 자꾸 밀려났다. 주민은 더 이상 현덕의 손가락을 챙기지 않았다. 제 손가락으로 현덕의 안쪽, 조금이라도 더 깊은 곳을 문지르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현덕은 제 안에서 제 손가락을 빼내지 못했다. 주민이 주는 쾌락에 젖어, 주민이 시키는 대로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였다.

쾌락을 주는 지점까지 닿지 못하고 그 근처를 얼쩡거리며 제 안을 간지럽혔다. 현덕은 제 손가락이 그러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머리, 몸, 손이 다 따로 놀았다. 원래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든 게 동강 나서 주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여기를 만져줘야 기분이 좋을 텐데, 현덕 학생은 여길 만질 수 없으니까, 앞으로 자위 같은 건 하면 안 되겠네. 그치, 응?”

주민의 목소리가 현덕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선생님이 만져줘야지 만족하잖아. 응? 이제 자위도 못 하고, 계속 선생님이랑만 해야겠어. 그치?”

주민이 현덕의 성기를 쥐었던 손으로 그 끝을 막았다.

“아! 놔, 놔아…….”

주민이 안쪽을 잔뜩 자극해서, 당장이라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민이 그걸 막았다.

현덕은 앞으로 몸을 움직여 주민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사정감이 몰려와 견딜 수 없었다. 제 성기를 쥔 주민의 손을 떼려 했지만, 주민은 오히려 더 세게 현덕의 것을 쥐었다. 주민의 손안에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덜컥, 들었다.

“놔, 놔줘, 형, 놔줘요, 제, 제발. 제발요.”

“형 아니고, 선생님이지. 그치?”

“아, 선, 선새…… 흑…… 선, 생님, 아, 읏, 응, 응! 선생님, 선생님!”

현덕은 제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몰랐다. 그저 주민이 놔주기를 바라며, 주민이 시키는 대로 말을 따라 했다.

“착하다, 우리 현덕이.”

주민이 나지막히 속삭이며 현덕의 성기를 놓풀어줬다. 그리고 현덕의 안을 거칠게 쑤셨다.

“……아!”

사정은 순식간이었다. 현덕의 몸이 파드득, 튀었다. 주민은 그 떨림마저 제 품에 가두었다.

주민의 손이 흠뻑 젖었다.

현덕은 오랜 괴롭힘 끝에 얻은 탈력감을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하아…… 하아…… 아…….”

현덕은 멍하니, 쾌락의 바다를 유영했다. 다리 사이에서, 엉덩이 안쪽에서 시작된 쾌락이 온몸으로 퍼졌다. 머리끝까지 치솟아 뇌를 녹여버리는 듯했다.

“잘했어. 수고했어.”

주민이 현덕이 머리에 쓰고 있던 재킷을 벗겨주었다. 깜깜했던 세상이 밝아졌다. 흑, 윽. 현덕은 흐느꼈다.

현덕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눈물과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와 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눈물을 쏟아낸 두 눈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술은 벌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민이 가장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주민은 침대에 엎어지다시피 한 현덕을 들어 제게 기대게 했다. 현덕은 주민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주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온몸이 주민의 위에 축 늘어졌다.

주민은 그 상태에서 제 바지 버클을 풀고 속옷을 헤집었다. 성난 주민의 것이 튀어나와 현덕의 등을 툭, 쳤다. 현덕은 지쳐서 그 감촉을 느끼고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었다.

주민이 그런 현덕을 인형 들듯이 들어 제 성기 위에 올렸다. 현덕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형…….”

울먹이는 목소리로 주민을 부르자,

“선생님이랬지.”

주민이 달콤하게 속삭이며 현덕의 안으로 제 귀두를 삽입했다.

“서, 선생님, 잠깐만. 조금만 쉬고, 응? 읏, 흐윽!”

주민의 것은 순식간에 현덕의 안을 쑤시고 들어갔다. 충분히 풀어진 현덕의 안쪽은 기다렸다는 듯 주민의 것을 받아들였다.

“아, 흣!”

현덕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

천천히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시뻘겋게 달궈진 창이 몸을 갈랐다. 피할 수 없었다.

두 손으로 침대를 붙잡고 손톱으로 긁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피하고 싶었지만 소용없었다. 주민은 현덕의 허리를 잡고 아래로 내려, 반쯤 박힌 제 것을 끝까지 박아넣었다.

“아, 아……. 윽, 읏, 윽!”

현덕은 주민의 위에서 제멋대로 흔들렸다. 두 손을 뒤로 돌려 주민의 팔을 잡았으나, 몸을 가누는 데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민은 현덕의 허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는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게 감질났는지 현덕을 침대에 엎었다. 현덕은 상체만 침대에 걸친 채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되었다. 달아나려 뻗은 두 손을, 주민이 놓치지 않고 깍지를 꼈다.

주민이 현덕의 몸을 덮었다. 현덕의 등에 주민의 가슴과 배가 맞닿았다. 체격 차가 여실히 느껴지는 자세였다. 현덕은 침대에 파묻힌 채, 뒤에서 밀려드는 주민을 받아내야 했다.

“윽……. 윽! 처, 천천히. 제발, 선생님, 선생, 님……. 제발요, 제발……힘들어, 힘들어어. 으흣, 윽, 윽. 윽!”

현덕의 엉덩이가 주민의 허벅지에 부딪혀 철퍽, 철퍽, 소리가 났다. 주민의 것이 쉴 새 없이 현덕의 안을 드나들었다.

“나쁜, 학생이네. 거짓말을 하고. 좋으면서, 응? 그치?”

주민이 현덕의 귀를 잘근 씹으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아, 아냐. 아냐.”

현덕이 고개를 저었지만,

“흐으……흐!”

주민이 성기가 구멍에서 다 빠질 정도로 허리를 뒤로 뺐다가 단번에 박아 넣자 현덕의 입에서 신음이 샜다.

주민은 현덕의 뒷목과 어깨에 이를 박으며 현덕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현덕의 손을 으스러뜨릴 듯 꽉 쥐며 현덕의 안에 사정했다.

“아…….”

현덕은 제 안에 퍼지는 정액을 느끼며 몸서리쳤다. 주민은 그런 현덕을 꽉 끌어안았다.

두 명의 거친 숨소리가 침실에 가득 찼다.

현덕의 숨소리가 어느 정도 진정됐을 즈음. 주민은 현덕의 바지와 브리프를 모두 벗겼다. 제정신을 되찾은 현덕이 기겁하며 주민의 손을 찰싹 쳐냈다.

“또, 또 하려고? 싫어, 안 돼. 절대 못 해!”

“아니야, 형 믿어. 씻겨주려고 그러는 거야.”

어느새 선생님에서 형으로 돌아온 주민은 뺨에 쪽쪽 입을 맞추며 현덕을 달랬다.

정말일까, 아니면 평소처럼 달래는 척 하는 속셈일까. 현덕은 주민의 진심을 가늠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살짝 땀에 젖은, 조각상같은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어쩐지 신수가 훤-해 보였다. 원체 잘생긴 얼굴이긴 하지만, 지금은 아주 광채가 나고 있었다.

‘변태력이 충만해서인가?’

평소라면 절대 한 번으로 끝내지 않을 인사건만. 저렇게 더없이 만족한 얼굴을 보이다니.

‘……이 정도에서 끝낼 수 있다면, 교복 입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현덕은 그 얼굴을 믿고 몸에서 힘을 풀었다. 그 얼굴마저 연기라는 걸 깨달은 건 화장실에 들어가서였다.

주민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고는 현덕을 앉혔다. 콘돔을 안 해서 뒤처리를 해야 한다며 다시 현덕의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자신이 하겠다고 도망치려는 현덕에게 씩, 웃어 보이며,

“또 까먹었네.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라고 말했다가 현덕에게 주먹으로 뺨을 얻어맞았다.

한쪽 뺨이 붉게 달아오르고서도 뭐가 좋은지 주민은 자꾸 치근덕댔다.

“나쁜 아이네, 선생님한테 손을 대고. 그런데, 덕분에 새로운 세계에 눈 뜨게 된 것 같아. 너한테 맞는 건 하나도 안 아파. 짜릿하고 새로워.”

“그래? 그러면 그 새로운 세계 닫힐 때까지 맞아 봐!”

“사랑해, 현덕아. 날 때리는 너마저 사랑해.”

“…….”

결국 현덕은 우수에 젖은 주민의 얼굴에 넘어가 욕조 안에서 한 번 더 일을 치렀다.

주민은 실신 직전 지경이 된 현덕을 껴안고 욕실을 나섰다. 커다란 타월로 현덕의 몸을 둘둘 말고는 현덕의 머리를 손수 말려주었다.

“목말라. 배고파.”

현덕은 주민의 시중을 받으며 거실 위 소파에 널브러졌다.

주민은 현덕을 소파에 바르게 눕혀 주고, 서재에서 푹신한 쿠션을 여러 개 가져와 현덕의 등과 허리에 받쳐주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갔다.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워 보였다. 상쾌한 얼굴과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는 덤이었다.

현덕은 억울했다. 똑같이 뼈와 살을 불살랐건만, 자신은 죽을상이고 주민은 산삼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펄펄 날아다니다니.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야겠어.’

이것저것 요리하는 주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중 무심코 앞의 탁자에 눈이 갔다.

‘창가의 푸른 잎사귀(가제)’의 대본이 보란 듯 놓여 있었다.

현덕은 슬쩍 부엌을 보았다. 주민은 콧노래를 부르며 프라이팬을 휘두르고 있었다.

‘정말, 정말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나온다고?’

현덕은 손을 뻗어 대본을 쥐었다. 그리고 한 장씩 넘겨보았다.

주인공 남녀는 주민의 말대로 교생과 학생이었다. 모교로 교생 실습을 온 남자 미대생과 여러 사정으로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인문계로 온 여자 학생.

인물 설정은 뻔했고 둘의 관계도 뻔했으나, 드라마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전개가 풋풋하고 신선했다.

1화 후반부에 대망의 그 신이 등장했다.

교생이 실수로 미술실에 정장 재킷을 놓고 가고. 미술실 청소를 하러 온 학생이 그 재킷을 발견한다. 학생은 재킷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조심히, 손을 뻗어 그 재킷을 만진다. 손끝으로 톡.

그것만으로도 부끄러워서 학생의 얼굴이 화르르- 붉게 달아오른다. 그리고 열린 문밖에서 그 모습을 보게 된 교생. 교생은 저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수첩에 그 모습을 스케치한다.

그 화면 그대로 페이드아웃.

- 1화 끝. -

끝이었다. 그게.

현덕은 다음 장을 넘겨보았다. 마지막 페이지였다. 혹시나 싶어 대본을 탈탈 털어보았다. 숨겨진 페이지가 있나. 물론, 있을 리 없었다.

‘창가의 푸른 잎사귀(가제)’는 더없이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드라마였다. 어디에도 학생이 교생의 재킷 냄새를 맡으며 자위를 하는 막장 19금 전개는 보이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어.”

현덕은 대본을 돌돌 말았다.

“우주민!”

숟가락 들 힘도 없다고 생각했건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건지, 현덕은 자신도 모를 거대한 힘을 발휘하여 주민을 부르짖었다.

“현덕아, 왜? 많이 배고파?”

주민은 국자를 든 채 뒤를 돌아보았다. 현덕과 눈이 마주치고는 더없이 해맑게 웃었다. 현덕은 그 얼굴을 향해, 돌돌 만 대본을 집어 던졌다.

대본은 시속 200km에 버금가는 속도로 날아 주민의 얼굴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퍽-

명중이었다.

“야, 이 변태야! 사기꾼아! 19금 막장 드라마라며! 어디가? 어디가!”

또 한 번 주민에게 당한 현덕이 뒤늦게 분노를 토해냈다.

그렇게 5월 15일, 둘만의 휴일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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