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위 · 촉 · 오
트라이 온 2부 촬영은 호텔 1층의 로비에서 시작되었다. 출연하는 연습생 수는 이제 30명. 로비는 한산했다.
연습생들은 삼삼오오 뭉친 채로, 짐도 풀지 않은 채 서서 대기했다. 얼마 안 있어 MC인 방유진이 모델 워킹으로 걸어 나와 합격자 연습생들을 맞이했다.
합격해 살아남았다는 기쁨과 다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연습생들을 덮쳤다. 연습생들은 견디지 못하고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그 함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환했던 로비가 어두워졌다. 샹들리에 불빛뿐 아니라 촬영팀의 조명까지 모두 한순간에 꺼졌다. 미리 준비한 건지 창문도 모두 커튼이 쳐져 있었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왔다.
“여러분, 트라이 온 2부에서는 삼십 명의 연습생들이 세 개의 데뷔조로 나뉘게 됩니다. 그 선택은 오직 시청자 여러분의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은 내가 응원하는 연습생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데뷔곡을 골라주셨습니다.”
방유진의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연습생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시청자 여러분이 만들어주신, 트라이 온 데뷔조와 데뷔곡을 소개합니다!”
1부 촬영 종료 후 TE엔터테인먼트 연습실에서 질리도록 듣고 연습했던 노래 세 곡이 섞여 어지럽게 들리더니, 이내 한 곡이 스크린 위에 떴다.
시청자들이 선택한, 연습생들의 이름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이어 다음 곡이, 그리고 또 다음 곡이 이어졌다.
세 개의 데뷔곡. 각 곡에 선택받은 열 명의 연습생들. 시청자들의 투표로 결정된 새로운 조 편성이 확정되었다. 사방 곳곳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현덕 또한,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형, 어떡해여.”
멀찍이 서 있던 준비가 무대 불빛의 도움을 받아 현덕에게로 달려왔다. 현덕의 허리에 두 팔을 감고는 답삭 안겼다. 현덕은 준비의 한쪽 어깨에 팔을 둘러 다독여주며 옆에 서 있는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스크린 불빛이 어른어른 비치는 주민의 얼굴은 무시무시해 보였다. 조 편성 결과가 주민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게 분명했다.
‘재벌 3세여도 투표 조작은 안 되는구나.’
현덕은 무대 위 스크린을 올려다보았다.
- 촉! 촉! 촉! : 원소혁, 김현덕, 장준비, 윤피터, 황한승, 박OO, 김OO, 이OO, 정OO, 최OO
- We are, I was…… : 박자룡, 조성환, 사의준, 김OO, 이OO, 이OO, 소OO, 강OO, 진OO, 김OO
- OH MY! : 우주민, 주유호, 손정모, 이완용, 오OO, 김OO, 조OO, 허OO, 민OO, 한OO
***
발표 이후 잠시 촬영이 중단됐다.
연습생들은 촬영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아 데뷔조 편성대로 모였다. 현덕도 ‘촉! 촉! 촉!’이라는 팻말이 서 있는 쪽으로 갔다. 가려는데, 주민이 손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
“형, 형은 저기로 가야죠.”
현덕은 ‘OH MY!’ 팻말이 서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엔 이미 유호와 정모가 도착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주민을 보고 있는 것이리라.
현덕은 제 팔을 꽉 잡은 주민의 손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주민은 더없이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현덕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나 보네?”
“뭐가요?”
현덕은 주변 카메라를 살폈다. 혹시라도 주민이 이상한 소리를 하면 당장에 입을 틀어막을 생각이었다.
현덕이 계속 주변에만 신경 쓰자 주민의 얼굴이 더 사나워졌다.
“빌어먹을. 이 프로그램 빨리 끝내버리든 해야지.”
주민이 중얼거리듯 말한 소리에 현덕의 눈이 둥그레졌다. 아직 마이크를 몸에 부착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못된 소리 하지 마요. 형.”
“뭐가.”
주민은 여전히 인상 쓴 얼굴이었다. 참 띠꺼워 보였다. 그래도 예전처럼 사납다거나 재수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슬그머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멍멍이가 같이 안 놀아준다고 낑낑거리는 것 같달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주민에게 들킨다면 그 후환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건만.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치?”
눈치 백단인 주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주민은 말랑말랑한 현덕의 표정을 보고는 씩, 미소 지었다. 현덕은 그 얼굴에 잠시 넋을 잃을 뻔하다가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을 생각을 하세요. 여기 나온 연습생들, 다 절실한 사람들이에요. 떨어진 다른 연습생들도 마찬가지고.”
“알아, 나도 절실해.”
주민이 심드렁하게 말하며 ‘OH MY!’팀 팻말 아래 서서 세차게 손짓하는 연습생을 바라보았다.
손정모. 트라이 온 1부 때 접점이 거의 없었던 연습생이지만 이름과 얼굴은 알고 있었다.
‘현덕에게 친한 척하고 치근덕거렸던 자식.’
주민은 고개를 돌려 정모를 무시했다. 현덕이 팻말을 등지고 서 정모를 못 본 게 다행이었다. 봤다면 어서 가보라고 더 성화였을 테니.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야죠. 붙어도 부끄럽지 않도록, 떨어져도 부끄럽지 않도록.”
현덕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현덕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바싹 말랐다. 이 갈증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덕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거였다. 현덕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러질 못하니, 더 미칠 것 같았다.
1부 촬영 종료 후 내내 현덕을 만나지 못했다. 현덕에게 일이 생겼을 때 한 번 봤지만, 너무 잠깐이라 감질나 죽을 것 같았다.
이제야 다시 만났는데, 하필이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개된 공간. 주민은 전혀 상관없었으나 현덕이 싫어할까봐 마음껏 치근덕대지 못했다.
같은 데뷔조에 속해서 얼굴이라도 자주 보고, 틈을 봐서 껴안고 입 맞출 흑심을 품었건만. 이번에도 같은 팀이 되지 못했다.
‘도대체 이 프로그램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왈칵 짜증이 치솟다가도,
“형. 힘내요. 파이팅!”
현덕의 순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스르륵, 풀어졌다.
트라이 온은 이래저래 짜증 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오직 ‘김현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모든 게 상쇄되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현덕이 자신을 봐주고, 자신을 걱정해주고, 자신과 입을 맞춰주었으니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곁에서 맴돌며 빙빙 돌기만 했는데. 현덕이 스스로 다가와 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물을 마신 적이 없었던 사람이 처음으로 물을 마셨다. 더러운 구정물만 마셔도 그게 나쁜 건 줄 몰랐을 텐데. 세상에 신이란 게 존재한다면, 그 신이 염병에 걸려 실수한 건지. 시원하고 단 감미수를 주었다.
딱 한 모금.
그제야 갈증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목마른 상태인 줄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 우주민의 처지가 그러하였다.
현덕을 껴안고 현덕과 살을 맞댔을 때 느꼈던 충족감은 마약과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아니, 영원히 계속. 그렇게 자꾸 욕심이 생겼다.
주민은 현덕의 입술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입술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앙 다물려 있을 땐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살살 달래 입술을 열면 그 안엔 얼마나 뜨겁고 질척한 감촉이 담겨있는지.
더운 숨마저도 얼마나 달콤하던지. 질척하게 혀를 섞으면 또 얼마나 달콤하게 울던지. 두 팔로 가둔 몸은 바들바들 떨리는데, 그래도 피하지 않고 두 팔로 자신의 목을 껴안아주는 온기는 어찌나 아찔하던지.
그 황홀함.
그리고 충족감.
고작 하룻밤 맛보았을 뿐이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그 감각을,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저 순진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는 벌벌 떨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목소리가 귀에 새겨졌다. 귀의 고막이 터져 이 세상 모든 소리를 못 듣게 되어도, 그 소리만은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감히 바라건대, 또 현덕을 껴안고 싶었다. 미성년자라서 안 된다는 귀여운 말을 하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그 안에 침범하여 도망가는 혀를 붙잡아 빨고. 하얀 목을 깨물고 어깨에 잔뜩 잇자국을 내고. 안 된다고 바르작거리는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올려버리고.
아니, 그러면 안 되지. 현덕은 두 팔로 자신을 껴안아 주어야 한다. 무서워하면서도 자신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러면 현덕이 좋아하는 목소리로 살살 현덕을 꾀고, 얇은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저 하얗고 말랑한 몸을 만질 수 있을 텐데. 더운 숨을 내뱉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현덕을 몸으로 짓누르고 더 아래로, 아래로…….
“형? 형! 내 말 듣고 있어요? 주민 형!”
현덕이 주민의 팔을 흔들었다.
“아……, 어.”
주민은 눈을 깜박이며 현덕을 보았다.
눈앞에 있는 현덕은 미성년자를 운운하며 사람을 애달프게 만들었던 그날의 현덕이 아니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또 잘 아는 연습생들을 두루 살피면서도 절 걱정해주는 현덕이었다. 참 오지랖 넓어 사랑스럽고, 착하고 순진해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런데 손대면 안 되는.
주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마약까지 손댄 적은 없지만. 또 현덕을 만났으니 손댈 일도 없겠지만.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끊는 게 왜 그리 힘든지 알 것도 같았다.
현덕을 만지고 싶었다.
만지고 싶다.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자꾸 손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현덕이 싫어할 테니까, 또 놀랄 테니까.
저를 걱정하며 이것저것 말하는 현덕 목소리가 더없이 좋았다. 어디든 가둬놓고 싶을 정도였다. 아무도 못보고 못듣게. 오직 자신만 보고 자신만 들을 수 있게.
하지만 그러면 안 됐다. 현덕이 싫어할 테니까.
참아야 했다. 참고 또 참아야 했다. 너무 많이 참아야 했다.
그게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나다가도, 현덕의 말간 두 눈을 보면 마음이 진정됐다. 다 참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주민이 얼마나 참고 있는지 전혀 모를 현덕은 계속, 옆을 지나치는 다른 연습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주민은 현덕의 뺨을 붙잡고 다시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뭐예요, 말할 때는 듣지도 않고. 이것도 놓으라니까 안 놓고.”
현덕이 뚱한 표정으로 다시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현덕아, 다른 연습생들 생각해주느라 바쁘네?”
주민은 생긋, 웃었다.
“인사하는 거잖아요. 인사. 난 형이랑 달리 친구가 많거든요.”
현덕이 자못 도전적으로 나섰다. 그 모습이 주민의 갈증을 더 돋웠다.
“이번만 말하는 거 아냐. 며칠 전에, 너 욕한 새끼들 족치라고 사람 보냈더니 이상한 곳에 힘 빼고 있질 않나. 지금,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난 신경도 안 쓰고 딴 데만 보고 있고. 응?”
“멀리 내다보면 다- 형 잘되라고 하는 거예요. 황새의 깊은 뜻을 우주민 따위가 어떻게 알리.”
현덕이 득도한 표정으로 주민을 보았다. 그 어른스러운 모습에 주민의 심기가 비뚤어졌다.
“오, 먼 미래를 내다보시느라 가까운 과거는 잊으셨나 보지?”
주민이 현덕의 귓가에 속삭였다.
“잊은 거야. 아니면 까먹은 척하는 거야. 나는 그날 이후로, 밤마다 네 생각 하면서 뺐는데.”
“윽.”
현덕이 얼른 고개를 뒤로 젖히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민을 올려다보았다.
현덕이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주민은 나른하게 웃어 보였다. ‘응, 진짜로.’
학교 다니느라 바쁘시고, 또 본인이 악플에 당하면서도 다른 연습생들 걱정하느라 더 바빠지셨던 현덕은 담백하게 살았을지 몰라도. 주민은 전혀 아니었다.
온갖 가족 행사에 끌려다니고 할아버지와 이복누이와의 신경전에 마모되면서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 건, 오직 현덕 때문이었다.
밤마다 그날의 현덕을 떠올리며 제 욕망을 달랬다. 열기가 한풀 꺾이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젖은 제 손을 보며 헛웃음을 짓곤 했다.
누구든 좋아해본 적 없고 사귄 적도 없었다. 타인을 욕정해 본 적도 없었다. 제게 다가오는 사람이 누구든 밀쳐내고, 닿는 것만으로도 끔찍해하며 살아왔건만. 고작 키스만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현덕이 주민의 결백한 세계를 단번에 부숴버렸다.
주민은 밤마다 현덕을 생각하며 자위했다. 주민의 상상 속에서 현덕은 온갖 일을 당했다.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 미치기 직전. 현덕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나, 난 아직 미자야!”
이 절박함. 순진함을 어쩌하면 좋단 말인가.
주민은 매번, 혼자서 미친 듯이 웃었다.
귀여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디서 이런 귀엽고 야한 생물이 나타나서 제 삶 안에 쏙 들어와 버렸을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신의 존재를 믿은 적이 없건만, 현덕 때문에 이 세상에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젠장, 왜 아직도 고등학생인 거야.’
김현덕이 아직 고등학생인 건 분명, 신의 심술이리라.
주민은 현덕이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바른 생활 김현덕 선생께서 절대 용납하실 수 없다 하니. 현덕이 중학생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고 남은 일 년 몇 개월을 참아야 했다.
현덕의 나이를 생각하면 언제 성년이 되나 짜증이 나다가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일찍 만나서. 현덕의 옆에 아직 아무도 없어서.
조금만 더 늦게 만났다면, 분명 현덕의 옆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그게 누구든 죽여 버렸으리라.
그러니 현덕이 자신을, 자신이 현덕을 일찍 만난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 세상 인구가 김현덕 때문에 하나, 혹은 둘, 혹은 여럿- 한순간에 줄어들지 않게 되었으니까.
“현덕아, 넌 진짜로 나 생각하면서 한 번도 안 해봤어?”
주민은 현덕을 보며, 오직 현덕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물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포장했으나 그 안에는 더 질척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주민은 잡고 있던 현덕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대로 넘어가면 주민의 품에 폭삭 안기게 될 터였다.
‘어딜, 이 변태가!’
현덕이 두 다리에 힘을 빡 주고 버티니 주민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이게?’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절대로, 절대 그런 일 없었어요!”
“그래? 그날 봤을 때……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네.”
주민은 현덕의 다리 사이를 흘깃 보았다.
“형, 미쳤어요?”
현덕이 주민의 발을 콱 밟았다. 프로그램에서 PPL로 제공 받은 브랜드 운동화는 더없이 부드러운 재질인지라 현덕의 공격으로부터 주민의 발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윽!”
주민의 몸이 고꾸라졌다.
현덕은 붙잡혔던 손을 빼냈다. 얼마나 꽉 잡고 있었던지 손목에 발갛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형, 현덕 형- 왜 안 와여- 그 싸가지 형 놔두고 언능 와여-”
준비가 멀찍이서 현덕을 불렀다.
“현덕아, 얼른 와.”
“현덕 형! 빨리, 빨리!”
피터와 한승도 합세하였다.
“네, 지금 갈게요.”
현덕은 어느새 팻말 아래 모여 있는 같은 데뷔조 연습생들에게 손짓하고는, 제 앞에 무너져 있는 주민을 내려다보았다.
“김, 현덕. 너어…….”
주민이 발등을 움켜잡고 현덕을 올려다보았다. 빡친 얼굴도 참 아름다워서 문제였다.
“열심히 해요. 나 이번엔 형 못 도와주니까. 최선을 다해서 꼭, 여기서 우승하고 데뷔해야 해요. 알았죠?”
현덕은 그리 말하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촉! 촉! 촉!’ 데뷔조를 향해 걸어갔다.
‘우주민은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해서 데뷔하는 거겠지.’
처음 트라이 온을 출연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TE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로 준비하는 아이돌 그룹이 한 팀 있었고, 주민은 거기에 속해 있었으니까. 트라이 온의 우승자들로 만드는 아이돌 그룹과 TE엔터테인먼트의 데뷔조. 둘 중 어느 쪽이 홀리포스인지 고민됐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프로그램이 이토록 많은 시청자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이렇게 재능 넘치는 연습생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아홉 명이 뽑히는 건데. 여기서 만든 그룹이 바로 홀리포스겠지? 그러니까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겠지.’
현덕은 트라이 온의 우승자로 만들어진 그룹이 홀리포스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불어 자신이 그 아홉 명 중에 포함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자. 조금만 더, 나중에 떨어질 수 있도록.’
언젠가 탈락하리라. 그 시점이 최대한 늦게 오길 바랄 뿐이었다.
주민에게 했던 말은 현덕의 각오이기도 했다. 붙은 게 부끄럽지 않도록. 떨어져도 부끄럽지 않도록. 후회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어. 올라갈 수 있는 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거야.’
그리고 탈락한 뒤에, 보게 되리라. 정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우주민을. 그리고 다른 연습생들을.
현덕은 ‘촉! 촉! 촉!’ 팻말 앞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연습생들을 보았다.
“왜, 이번에 또 다른 데뷔조로 간 우주민 연습생을 도와주려고 모의라도 하고 있었나 보지?”
소혁은 보자마자 틱틱거렸다.
“우리 형한테 왜 그래여. 성격 더러운 거 티 내나.”
준비가 인상을 팍 쓰고 소혁을 노려보더니, 답삭 현덕의 허리에 매달렸다.
아직 마이크를 부착하지 않아서 그런지 다들 말이 걸었다.
“그만, 그만. 우리 이제 같은 조인데, 협력해야지요. 벌써부터 겁박하고 괴롭히면 쓰나.”
피터가 중재하는 척하며 현덕의 편을 들었다.
“맞습니다. 싸우는 건 나빠요.”
한승이 슬쩍 현덕의 뒤에 섰다. 커다란 사람이 등 뒤에 서니 어쩐지 든든했다.
다른 연습생들은 주변에 서서 소혁을 말렸다. 그러나 슬그머니 소혁의 말에 동조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현덕은 그 분위기를 읽고 오해를 풀기 위해 기꺼이 소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주민 형에게도 이번엔 못 도와줄 거라고 말하고 오느라 늦은 거구요. 그때 제 결정과 행동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안 그럴게요. 우리 데뷔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습생들은 현덕이 넙죽 숙이자 당황했다.
“어, 뭐, 그렇다면야…….”
“그거 때문에 악플도 많이 받고 마음고생 심했던 거 같은데, 괜찮아요.”
“뭐, 그리 인사까지 해요. 허리 펴요.”
연습생들은 금방 마음이 풀어져서는 오히려 현덕을 다독였다. 소혁만이 마음에 안든다는 듯 계속 틱틱댔다.
현덕은 허리를 펴고, ‘촉! 촉! 촉!’이라고 쓰인 팻말을 바라보았다.
다시, 시작이었다.
***
연습생들은 데뷔곡으로 구분한 데뷔조별로 모인 뒤 촬영 스태프들이 나누어준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마이크도 착용했다.
모든 연습생이 준비를 마친 뒤에도 촬영은 재개되지 않았다. 긴장감에 젖어 조용히 촬영을 기다리던 연습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할 즈음, 정장을 입은 사람들 한 무리가 호텔의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내내 보이지 않았던 메인 PD가 함께였다. 유일하게 정장을 입지 않았고, 여전히 모자를 꾹 눌러 쓰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 중 일부는 현덕과 구면이었다. 제일 앞에서 씩씩하게 걸어 내려오는 사람은 박지혜 변호사였고, 그 뒤는 시황그룹 법무팀 변호사들이었다. TE엔터테인먼트 소속 변호사는 물론, 다른 기획사의 변호사들도 몇 명 있었다. 모두 가슴팍에 해당 기획사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변호사 군단을 본 연습생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 저 사람 알아. 그 배우, 악플러들 조져버린 변호사잖아.”
“야, 어제 뉴스 난 거 못 봤어? 저 사람이 저기 김현덕 연습생 악플러 잡는다잖아.”
“저 연습생들뿐만 아니고 우리들도 돌봐준다던데? 트윈 트윙클 때 그 사건 있었잖아, 항우영이랑 윤우희랑. 그거 때문에 제작진이 미리 준비해놨던 거래.”
연습생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현덕의 귀에까지 닿았다. 누가 말하나 싶어 고개를 빼고 주변을 둘러보면, 몇몇 연습생들이 후다닥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메인 PD가 두 손을 높이 들어 박수쳤다. 짝짝. 연습생들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여러분, 앞으로의 촬영에 대해 공지할 게 있습니다. 갑작스럽지만 뭐, 여러분께 좋은 쪽으로 바뀌는 거니까 괜찮을 겁니다.”
메인 PD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박지혜 변호사는 두리번거리다가 현덕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 보였다. 현덕은 뜨끔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도 박지혜 변호사는 더 이상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메인 PD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인터넷 등에서 퍼지고 있는 과격하고 도를 넘은 악성 반응에 프로그램 차원에서 대응하여 연습생들을 보호할 거라는 것. 그러기 위해 이쪽 분야의 전문가인 박 변호사를 영입하고, 각 기획사의 변호사들이 연대하여 변호사단을 꾸렸다는 것.
더불어 그 단체에서 연습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촬영장의 환경을 살피고 개선을 요구했다는 것.
우선, 변호사단은 욕실과 숙소에 설치된 카메라 제거를 요구했다. 24시간 촬영은 연습생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짓밟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제작진은 반발했다. 연습생들이 목욕하는 장면과 숙소에서 웃고 떠드는 장면을 내보냈을 때 시청자의 반응이 제일 좋았다. 인터넷 클립 영상 조회 수도 월등히 높았다. 그런데 그 반응 좋은 것을 더는 찍을 수 없다니. 제작진은 순순히 물러설 수 없었다.
메인 PD와 변호사단의 치열한 논의 끝에 일단, 욕실과 숙소 방에 설치된 카메라를 제거하기로 했다. 대신, 연습생들의 동의를 얻은 후 촬영 스태프가 카메라를 들고 숙소 안을 찍는 건 봐주기로 했다.
“어차피 카메라 들고 들어와 찍는다면, 그게 그거 아닌가?”
“난 1부 때 보니까 연습할 때 보다 숙소에 있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오던데, 이거 나한테 손해 아닌가?”
연습생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연습생들은 자신들이 불합리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개선된 것이 자신들에게 이롭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변호사단은 연습생들의 반응에 실망하지 않았다. 박지혜 변호사는 마이크를 넘겨받아 연습생들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앞으로 자신들이 어떤 활동을 하여 연습생들을 서포트할 것인지 밝혔다.
연습생들은 일단 고마워하며 우렁차게 박수를 쳤다. 변호인단은 연습생들의 박수 세례를 받으며 퇴장했다. 이후 별다른 감흥 없이 촬영이 재개되었다.
방유진이 다시 마이크를 넘겨받아 트라이 온 2부의 규칙을 설명해주었다. 이미 연습생들은 귀에 못 박히도록 듣고 외우고 있는 내용이었다.
- 트라이 온 2부는 100% 시청자 투표로 탈락이 결정된다.
- 세 팀의 데뷔조는 2주에 한 번씩 무대로에 서며, 투표 결과로 등수가 결정된다.
- 무대는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현장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연습생은 그 주의 탈락 면제권을 얻는다.
- 3등 데뷔조에서 가장 적은 표수를 받은 3명이 탈락한다.
(만약 그 셋 중 한 명이 탈락 면제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 다음으로 표수가 적은 연습생이 탈락한다.)
- 최종 9명이 한 팀이 되어 데뷔한다. 그 그룹은 11개월 기간 한정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한다.
7번의 무대, 7번의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중 첫 번째 무대와 첫 번째 투표는 데뷔곡 무대였다.
데뷔조 세 팀은 곡의 첫 글자를 따서 각각 위팀, 촉팀, 오팀으로 부르기로 했다. 2주 동안 팀을 이끌 리더도 뽑았다.
현덕이 속한 촉팀에서는 리더 후보로 소혁과 피터가 뽑혔다. 눈을 감고 손을 들어 다수결로 결정하였는데, 피터가 몰표를 받아 리더가 되었다.
피터는 어색해하며 웃었다. 소혁은 대놓고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더가 여러모로 눈에 띄는 포지션이니, 놓친 게 꽤나 아쉬운 듯했다. 위팀에서는 자룡이, 오팀에서는 유호가 리더가 되었다.
리더 선발 후 연습생들은 촬영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숙소를 배정받았다.
이번에는 두 명이 한 방을 썼다. 룸메이트는 데뷔조와 상관없이 구성했다고 했다. 각자 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가는데, 촬영 카메라가 집요하게 연습생들을 찍었다. 왜 그러는 건지는 숙소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현덕은 이미 열려 있는 숙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와 있던 룸메이트가 창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가 현덕을 보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현덕아, 안녕. 또 보네?”
주민이었다.
현덕은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 발 뒤로 물러나 방문에 적혀 있는 번호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열쇠의 번호를 확인하였다.
잘못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현덕은 주민을 노려보았다.
“이거 뭐예요. 설마 돈으로 매수한 거?”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내게 무슨 힘이 있다고?”
주민이 피식 웃으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무슨 힘이 있긴. 재력이 있겠지요.”
“재력만 있겠어?”
“오호라.”
현덕은 그것 보라는 듯 말했다.
“부정이 있었다고 자백하는 건가요?”
“아니, 내가 가진 걸 확인했을 뿐이지. 난 맹세코 절대 손대지 않았어. 이건 제작진에서 알아서 배정해준 거라고.”
“거짓말.”
“진짜야.”
“…….”
현덕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민을 바라보았다.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휩싸여 있는 주민은 화보를 찍는 모델 같았다. 더없이 결백해 보였다.
‘정말인가?’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니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잊지 말아야지. 현덕은 이리 생각하며 의심을 풀었다. 딱히 저 쓸데없이 아름다운 외모에 속아 넘어가는 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말을 싸가지 없게 하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럼에도 섣불리 방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없는 건. 룸메이트가 우주민이기 때문이었다.
“뭐 해, 얼른 들어와. 앞으로 우리 둘이 묵을 곳인데, 얼른 짐 풀어야지.”
주민이 달콤하게 꼬드겼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주민 형.”
현덕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촬영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난 분명 아직-”
“그래, 아직이지. 아직.”
주민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으악!”
복도 저편에서 자룡의 비명이
“아니 왜, 씨-앗! 내 룸메이트가, 왜!”
자룡의 절규가 복도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그쪽을 돌아보니 카메라가 몰려 있었다. 촬영 스태프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어지는 자룡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자룡의 룸메이트는 원소혁인 듯했다. 소혁이 자룡에게 뭐라 뭐라 비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제야 현덕은 제작진의 계략을 눈치챘다.
‘일부러 이렇게 짝을 붙인 거구나.’
트라이 온 1부 촬영 내용을 바탕으로 앙숙, 혹은 브로맨스를 노릴 만한 조합으로 룸메이트를 정한 듯싶었다. 주변의 다른 방에서도 비슷한 비명, 혹은 환호 소리가 들렸다.
현덕이 자룡에게 정신을 팔린 사이, 주민은 발소리를 줄이고 현덕에게 다가갔다.
“어-”
현덕이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주민이 현덕을 방 안으로 끌어당겼다. 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뭐야. 주민 형. 잠깐만.”
현덕이 주민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현덕은 문과 주민의 몸 사이에 껴서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되었다.
주민은 곤란해하는 현덕의 얼굴을 즐거이 바라보며 쪽, 소리나게 입을 맞췄다.
문밖에서는 아직 연습생들의 비명과 환호가 들리고 있었다. 촬영 스태프들의 발소리도 요란했다.
설마 이 상황에서 주민이 스킨십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현덕 당황하여 어버버거렸다. 주민은 그런 현덕을 놀리듯 계속 현덕에게 입을 맞췄다. 이마, 코, 뺨, 그리고 다시 입술. 새털처럼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달달했다. 하지만 그 달달함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당황스러웠다.
“지금, 뭐 하는-”
현덕은 다시 제게 달려드는 주민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밀어냈다. 거의 동시에,
쾅쾅쾅!
누군가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현덕의 등을 타고 문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
현덕이 기겁하며 굳었다. 주민은 그 틈을 타 현덕의 손을 내리고, 다시 현덕의 코에 입을 맞췄다.
“주민, 형!”
현덕이 주민을 말리려는데,
“안에 아무도 없나요? 촬영팀입니다. 잠깐 문 좀 열어주세요!”
문밖에서 촬영 스태프가 소리를 질렀다.
현덕은 입을 벌린 채로 다시 돌이 되었다.
‘어, 어떻게 하지?’
현덕은 순식간에 패닉에 빠졌다.
“자, 잠깐, 잠깐만. 비켜 봐요. 제발. 응?”
현덕은 혹시라도 문밖에 들릴까 봐, 주민에게 매달려서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싫은데?”
주민은 제 품에 안긴 현덕을 오히려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품에서 벗어나 도망치려는 현덕의 턱을 손으로 붙잡아 고정하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지금 제정신……읍!”
쾅쾅쾅.
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현덕은 파드득, 어깨를 떨었다.
주민은 현덕을 문 쪽으로 밀어붙이고는, 그런 주제에 괜찮다고 위로하듯 현덕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혀로는 현덕의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현덕은 입술을 앙다물고 열어주지 않았다.
주민이 다물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자, 현덕의 입술에서 엷은 신음이 샜다.
“흐읏!”
주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현덕의 입술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멋대로 제 안으로 들어오는 혀를 깨물어도 좋으련만 현덕은 그러지 못했다.
주민은 현덕의 턱을 있는 대로 추어올리고 깊이, 깊이 파고 들었다. 그토록 바랐던 해갈이었다.
“이상하다, 안에 들어가는 걸 본 것 같은데. 아닌가?”
문밖에서 촬영 스태프의 말소리가 들렸다. 곧, 다른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그제야 현덕의 어깨에서 힘이 풀렸다.
“흐으…….”
현덕은 주민의 어깨를 주먹으로 퍽퍽 내리쳤다. 주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덕의 혀가 자꾸 도망쳤다. 주민은 끝까지 쫓아갔다.
잠시 엇갈려 틈이 생길 때마다 현덕은 급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때마다 입가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샜다. 주민은 그마저도 아깝다는 듯 핥았다.
잠시 뒤, 현덕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주민이 뒤따라 무릎을 꿇으며 현덕을 따라 내려왔다. 두 손으로 현덕의 양 팔목을 잡아 문에 고정시키고, 숨 막힌다고 칭얼대는 현덕을 달래 연신 입을 맞췄다.
그러기를 한참. 양껏 욕심을 채우고나서야 겨우 현덕을 놔주었다. 그래 봤자 서로의 코가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허억, 헉. 현덕은 숨이 모자라 얼굴이 발개진 채 주민을 노려보았다. 거칠게 내쉬는 숨이 주민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현덕은 숨마저도 달았다. 그래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설마, 이러려고 숙소에 카메라 다 없애라고 한 거는…….”
“왜 아니라고 생각해?”
주민은 일어서며 현덕을 번쩍 들었다.
“……그럼 그렇지.”
현덕은 주민의 어깨에 매달린 채로 축 늘어졌다.
왜 새삼 변호사단이 촬영 장소에까지 나타나 연습생들의 인권을 운운했던 걸까. 현덕은 이제야 깨달았다.
[트라이 온 연습생분들께 안내해 드립니다. 삼십 분 후 촬영이 시작될 예정이니, 시간에 맞춰 1층 로비에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들렸다.
삼십 분.
짐을 풀고 우주민에게 도망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현덕은 고개를 들어 주민을 바라보았다. 주민의 입가에 슬그머니 웃음이 번지는 게 보였다.
주민은 현덕을 조심히 침대에 내려놓고는 대놓고 입맛을 다셨다.
“나-”
“그래, 그래. 알아.”
빌어먹을 미성년자.
현덕은 그를 진정시키고자 입을 열었으나, 주민은 현덕을 밀어 넘어뜨렸다.
주민이 푹신한 침대에 누운 현덕의 위에 날렵하게 올라탔다. 현덕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한껏 애교를 피웠다.
“그러니까 키스만. 응? 현덕아.”
그렇게 잔뜩 굶주린 짐승이 다시 현덕에게 달려들었다.
***
숙소에 짐을 푼 연습생들이 다시 1층 로비에 모였다. 현덕은 하얀 마스크를 쓰고 터덜터덜 내려왔다. 다시 ‘촉! 촉! 촉!’ 팻말 앞에 서니 먼저 와 있던 준비가 현덕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현덕 형, 룸메이트 누구예여? 전 피터 형이에요. 완전 미친 거 있져? 왜 또 피터 형이야, 현덕 형이랑 되길 바랐는데여.”
준비가 우는 소리를 내다가 현덕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어? 형? 감기 걸렸어여?”
“아, 아니. 화장실에서 미끄러져서 세면대에 입술을 부딪쳤어.”
현덕은 준비의 눈을 피하며 어색하게 말했다. 다행히 자신의 룸메이트가 또 피터라는 것에 분노한 준비는 현덕의 어색한 연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찢어졌어여? 피 나여? 보건실 가본 거예여?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여? 어디 좀 봐여.”
준비가 두 손을 높이 들고는 펄쩍 뛰었다. 현덕은 얼른 몸을 뒤로 젖혀 피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부은 정도라서. 오늘 하루만 조심하면 가라앉을 거 같아.”
현덕은 준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준비를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오팀을 바라보았다. 주민이 거기에 있었다.
홍삼 엑기스로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반짝반짝했다.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니, 더욱 보기 좋았다. 저 얼굴을 화면을 통해서 봐야 하는 시청자들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시선을 눈치챈 건지 주민에 현덕이 있는 촉팀을 돌아보았다. 현덕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눈웃음을 흘렸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좋다고 웃어?’
현덕은 발끈하여 돌아섰다. 할 수 있는 저항의 몸짓은 고작 이 정도가 다였다.
매달리는 준비를 껴안고 팻말 근처를 빙글빙글 돌고 있자니, 다른 연습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는 현덕을 걱정했다.
피터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자꾸 준비를 부추겨 현덕의 마스크를 벗기게 시켰다. 준비는 번번이 실패했고, 현덕은 이용당하는 준비 말고 원흉인 피터에게 달려들어 발을 밟았다.
“으악!”
피터는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뭐가 좋은지 소리 내어 웃었다.
트라이 온 1부 때에도 장난기가 많긴 했지만 2부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는 그 장난기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피터는 현덕과 준비에게 좀 더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현덕이 느낀 걸 준비도 느꼈는지 준비도 이전보다 더 과격하게 피터를 구박했다. 피터는 졸지에 현덕과 준비, 두 동생에게 구박받는 형이 되었다.
“현덕이 형 괴롭히지 마여!”
현덕에게 매달려 있던 준비가 날다람쥐처럼 펄쩍 날아 피터에게 달려들었다. 장준비 미사일이 피터의 배에 박혔다.
“으악!”
피터가 다시 한번 뒤로 넘어졌다. 피터는 본능적으로 준비를 껴안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형, 괜찮으세요? 준비야, 괜찮아?”
둘이 투덕투덕 싸우는 걸 웃으며 지켜보고 있던 현덕이 깜짝 놀라 다가왔다.
“하나도 안 괜찮아.”
피터는 바닥에 대자로 널부러졌다. 그 품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은 준비는 고개를 번쩍 들고는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였다.
“내가 피터 형을 이겼어여.”
활짝 웃는 얼굴은 더없이 앳되어 보였다. 현덕은 따라 웃으며 준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준비는 기다렸다는 듯 현덕의 목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이쪽을 죽일 듯 노려보는 우주민과 딱 눈이 마주쳤다.
‘흥, 쳐다보면 어쩔 건데. 현덕 형은 이번에도 우리랑 같은 팀이거든?’
준비는 주민에게 혀를 쭉 내밀었다. 메롱!
현덕은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자신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기싸움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장준비 미사일을 맞고 널브러진 피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 괜찮으세요?”
“으으, 준비 녀석. 머리가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건지 검사해 봐야 해. 내가 반드시 검사하고야 말 거야.”
피터가 현덕의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준비가 정말 피터 형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현덕은 아까부터 이쪽을 찍어대는 카메라를 의식하고는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입을 열었다.
“미친? 형,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져?”
준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쿨럭, 쟤가, 그, 럴, 쿨럭, 쿨럭, 리가.”
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급히 말하다 사례가 들린 건지 계속 기침을 쏟아냈다.
“내가 뭐, 왜. 왜여.”
준비가 입술을 삐쭉삐쭉 내밀며 피터를 째려보았다.
“아주 여유 만만하네. 경쟁 중이란 걸 잊고 있는 거 같은데, 정신 좀 차리지? 팀에 민폐 끼치지 말고.”
분명 아까는 없었는데, 어느새 도착한 건지 ‘촉! 촉! 촉!’ 팻말 아래 소혁이 서 있었다. 데굴데굴 구르며 노느라 팻말과 현덕과 준비, 피터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늦게 왔……읍!”
현덕은 발끈한 준비의 입을 얼른 막았다.
“으읍?”
준비가 억울한 눈으로 현덕을 올려다보았다.
“진정해, 우리가 잘못한 거야. 알았지?”
현덕은 그런 준비를 달래며 팻말 아래로 걸어갔다. 피터는 별말 없이 현덕의 뒤를 따랐다.
“미안합니다.”
현덕은 스스럼없이 소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고 말만 하면 뭐든 다 되는 줄 아나.”
소혁이 대놓고 빈정거렸다.
“읍!”
아직 현덕의 손에 입이 막힌 준비가 또 발끈했다. 현덕은 버둥거리는 준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피터는 소혁에게 눈짓하고는 옆을 가리켰다. 촉팀을 찍고 있는 카메라가 죽 늘어서 있었다.
“뭐, 지금 절 협박하는 겁니까. 촬영 중이니까 알아서 리더에게 순종하라고요? 리더가 팀은 신경 안 쓰고 장난이나 치고 있든 말든 말이죠?”
소혁이 활짝 웃으며 피터에게 말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게 말하고 있는데, 막상 소혁의 얼굴을 보면 ‘내가 괜히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미모의 힘은 놀랍구나. 그것도 웃는 얼굴은 더더욱.’
현덕은 내심 소혁의 재능에 감탄했다. 물론 소혁의 얼굴에 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현덕의 곁에는 소혁보다 훨씬 잘생긴 주제에 인성까지 더 안 좋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어찌나 성격이 안 좋은지, 사람 입술을 팅팅 붓게 만들고는 좋다고 실실 웃고 다니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하게 예쁜 미인과 입술을 맞대기까지 했으니. 소혁의 얼굴은 현덕에게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그저, 감탄 정도나 불러일으킬까.
주민 덕분에 성격파탄자 미인에 대한 면역력이 SSS급에 달한 현덕은 덤덤하게 소혁을 대했다. 소혁 때문에 열불 터져 하는 준비도 제법 잘 다독였다.
“그래, 원소혁 연습생이 말한 대로 내가 리더니까. 부디 이번 무대가 끝날 때까지 날 잘 따라와 줘요. 나도 원소혁 연습생의 조언대로, 장난치는 건 그만두고 팀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피터는 소혁의 태클을 무난하게 넘기며, 촉팀의 연습생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모았다.
총 열 명 연습생들은 레드 기숙사 출신부터 그린 기숙사 소속까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실력과 개성도 천차만별이었다. 피터는 그들을 뭉쳐 앉히고 촬영 스태프들이 준 노트북과 태블릿PC로 ‘촉! 촉! 촉!’의 노래와 안무를 확인했다.
“어?”
피터의 옆에서 영상을 보던 현덕은 깜짝 놀랐다.
영상에서 낯선 노래가 흘러나왔다. 영상 속의 안무팀은 분명 캐스터네츠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춤은 현덕이 외우고 있는 그 춤이 아니었다.
‘뭐지?’
현덕은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예여, 이거. 이러는 게 어디 있어.”
“그럼 그렇지, 제작진이 그렇게 순순히 보여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뭐야, 연습해둔 게 아무 소용이 없잖아.”
“씨발, 이런 게 어딨어!”
다른 연습생들도 현덕과 비슷한 상태였다. 당황, 패닉, 혹은 분노.
현덕은 고개를 들어 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유진이 계속 무대에 서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제까지 유진은 제 몫의 대본을 다 읽으면 곧바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지금은 방긋방긋 웃으며 무대에 서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아직 이번 미션에 대한 설명을 다 안했다는 건가?’
현덕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팀도 둘러 보았다.
“이게 뭐야!”
“완전히 편곡이 달라졌잖아!”
“이걸, 나보고 하라고?”
위팀과 오팀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연습생들은 답을 구하듯 촬영 스태프들을 바라보았지만 카메라 뒤에 숨은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을 대변하는 건 MC인 유진이었다.
“당황하셨죠, 여러분.”
유진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연습생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여러분은 지금 각자의 데뷔조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제 데뷔까지는 딱 한 발자국이 남은 상황이지요.”
유진의 말에 연습생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서른 명의 연습생들 중 데뷔가 간절하지 않은 연습생은 없었다. 자룡처럼 여러 번 코앞에서 데뷔 기회를 놓친 연습생들도. 소속 기획사가 영세해서 제대로 트레이닝도 못 받고 데뷔를 꿈도 못 꿨던 연습생들도.
무대 위에 선 유진은 그들의 꿈이자 목표였다.
“데뷔를 앞둔 아이돌 데뷔조는 종종 자신이 들었던 데뷔 컨셉과 데뷔곡이 한순간에 바뀌고 변하는 걸 여러 번 경험합니다. 그동안 준비해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지요.”
유진이 숨을 가다듬으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트윈 트윙클에 참가했을 때를 생각하는 걸까. 애써 웃고 있는 입가가 잘게 떨렸다.
“그 순간 좌절한다면 데뷔는 신기루가 됩니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고 달린다면,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라고 생각했던 그 빛이 날 내리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좌절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시 일어서 꿈을 향해 나아가겠습니까?”
유진이 자신을 정면에서 찍는 메인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기 서른 명의 연습생들은 어쩌면 자신의 데뷔곡이 될지 모르는 곡을 연습했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 그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 당신의 연습생을 지켜봐 주십시오. 그 연습생의 좌절,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주세요. 트라이 온 2부, 이제 시작됩니다.”
유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인 PD가 큰 목소리로 ‘컷!’을 외쳤다.
“좋았어!”
메인 PD는 실수 없이 한 번에 오프닝을 끝낸 유진을 칭찬했다. 당황한 연습생들에게는 어떤 설명도, 위로도 없었다.
연습생들은 계속 웅성거렸다. 일부 연습생들은 유진의 말을 되짚으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어떤 연습생들은 노트북과 태블릿PC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데뷔곡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대부분의 연습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소리치고 안달복달했다.
촉팀의 연습생 중 절반이 당황하여 피터에게 달려들었다. 소혁은 그들을 비웃고는 피터에게서 태블릿을 빼앗아 영상을 재생했다. 주변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상에 집중했다.
“왜들 난리래요? 뭐, 새로 연습해서 익히면 되지. 어차피 무대는 다음 주잖아여.”
준비는 현덕의 옆에서 손을 깍지 껴 뒤통수에 대고는 느긋하게 말했다. 자룡과 주민도 전혀 긴장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준비와 자룡은 남은 기간 동안 다시 노래와 안무를 익힐 자신이 있었다. 주민은 애초부터 선공개된 데뷔곡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바뀌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
현덕은 그 둘이 차분한 것을 보고는 일단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제 팀을 살폈다.
촉팀은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엉망이었다. 불안에 먹힌 연습생들은 피터에게 매달렸다. 실력에 자신 있는 소혁은 저 혼자 살아남기 위해 태블릿에 고개를 박았다.
방관자 연습생 현덕은 다른 팀의 분위기를 살폈다.
오팀은 촉팀과 비슷했다. 리더인 유호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더 하옇게 질려 있었다. 마이웨이인 주민과 정모는 멀뚱히 서 있었고, 완용만 미쳐 날뛰었다. 나머지 연습생들은 완용의 선동에 휩쓸릴- 뻔했다.
때맞춰 유호가 비틀거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이자,
“어어어!”
“형!”
“리더님!”
연습생들이 화들짝 놀라며 유호에게 몰려들었다. 그들 중 정모가 가장 먼저 유호를 붙잡아 부축했다.
오팀 연습생들은 유호를 싸고돌며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병약한 리더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그러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정모였다. 주민은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는 않았지만 팀 분위기를 해칠 생각은 없는 듯 가만히 있었다. 완용은 눈치를 보다 얼른 정모의 옆에 들러붙었다.
위팀은 자룡이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직 우리에게는 2주가 남아 있잖아요? 그리고 가만 보면 노래랑 안무, 변화 폭이 크긴 하지만 기본적인 라임과 동작은 바뀐 게 없어요. 그러니까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잖습니까!”
자룡은 실력이 탄탄할뿐더러 성격까지 긍정적인 리더였다. 위팀은 자룡의 열정에 휩쓸려 하나로 똘똘 뭉쳤다. 그리고는 바뀐 데뷔곡을 어떻게 함께 익힐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현덕이 속한 촉팀만 아직 혼돈 상태였다. 리더인 피터는 상냥하고 유머러스했다. 하지만 팀 내 최고의 실력자는 아니었다. 팀 내 최고의 실력자는 다른 연습생들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그런 모습이 다른 연습생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리 어떡하면 좋아요?”
“저거, 어떻게 좀 해봐요, 리더님. 원소혁 연습생 혼자서만 저러고 있잖아요.”
“우리 게 제일 많이 바뀌고, 완전 어려워진 거 같은데……. 저 춤 진짜 못 춰요.”
‘촉! 촉! 촉!’은 귀엽고 발랄한 컨셉이기에 옐로 기숙사와 그린 기숙사에 있던 연습생들이 많이 배정되었다. 그들을 응원하는 시청자들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아 보이는 ‘촉! 촉! 촉!’에 투표한 것이었다. 원소혁이 이 데뷔곡에 뽑힌 게 의외라면 의외였다.
또한 대부분 연습생의 분위기는 유하고 밝았다. 그런데 지금 소혁이 보고 있는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촉! 촉! 촉!’은, 더없이 거칠고 강했다.
‘이대로는 절대 안 돼.’
현덕은 흔들리는 촉팀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최종 9인에 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하지만, 최대한 오래 살아 남고 싶었다. 고작 촬영 초반에, 어수선한 팀 분위기에 휩쓸려 자멸하듯 탈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1부의 마지막 무대에서 느꼈던 짜릿함이 손 끝에 남아 있었다. 그 느낌을 한 번 더, 아니, 좀 더 많이 맛보고 싶었다.
현덕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당겨 턱 아래로 내렸다. 손으로 입술을 톡톡 두드려보니, 꽤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어, 형. 이제 괜찮아여?”
“응, 이제 괜찮아. 아니, 괜찮아져야지.”
현덕은 준비를 옆구리에 끼고 소혁에게 갔다. 소혁은 현덕이 바로 앞에 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덕분에 현덕은 수월하게 태블릿을 빼앗을 수 있었다.
“뭐야.”
소혁이 고개를 들었다. 절 방해한 사람이 현덕임을 확인하자 인상을 팍 썼다. 카메라를 등지고 있어서 그런지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
“지금 내가 보는 거 안 보여요, 김현덕 연습생?”
목소리만 듣자면 영락없이 현덕이 소혁을 괴롭히는 모양새였다.
“이건 팀전이예요. 원소혁 연습생.”
“누가 뭐래요? 그거나 내놔요, 어서.”
“혼자서 아무리 들여다본들, 우리 조의 다른 연습생들이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소용없어요. 그렇다고 원소혁 연습생이 우리들 가르쳐줄 생각도 아니잖아요. 그쵸?”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요. 김현덕 연습생.”
“지금은 우선, 우리 팀이 협력해 전략을 세우고 함께 헤쳐 나갈 준비를 하는 게 먼저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현덕은 한 손으로 소혁의 팔을 잡아당겼다. 소혁은 현덕에게 끌려 얼결에 일어섰다.
“이거 놓지 못해?”
“싫어요.”
“놓으라고.”
“싫다고.”
“……뭐?”
“원소혁 연습생, 한국 말 못 알아들어요?”
현덕은 또박또박-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싫다고.”
웃음기 사라진 현덕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
“이제 알아 들었죠?”
무표정한 얼굴은 금새 사라졌다. 현덕은 옅게 웃음 지으며 소혁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갑자기. 정색을 하고, 난리야.”
소혁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덕은 소혁을 질질 끌고 피터에게로 갔다.
“형, 이거요.”
현덕이 피터에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고마워.”
피터의 표정이 급 밝아졌다.
“피터 형, 아니 리더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세요. 그대로 따를게요.”
“난…… 읍!”
현덕은 뭔가 말하려는 소혁의 입을 손으로 막고, 대신 말했다.
“원소혁 연습생도 적극적으로 협력한다고 하네요. 리더는 형이니까요.”
“읍읍!”
소혁이 뒤늦게 현덕을 뿌리치려 했지만, 현덕은 잘 버텨냈다.
달려드는 주민을 감당하지 못해 매번 밀리지만. 현덕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소년이었다.
개복치 같았던 체력도 벌써 2년 전 일이었다. 그동안 현덕은 꾸준히 운동하고 댄스 트레이닝을 받으며 체력을 길러왔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을 위하여.
소혁의 입을 막은 현덕의 팔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맞아요, 무조건 리더 형 말을 따라야져.”
준비는 큰 눈을 데굴 굴리더니, 얼른 현덕의 편을 들었다.
분위기를 바꾸는 건 세 사람으로 충분했다.
“그래, 다른 팀도 리더 중심으로 뭉치는 거 같은데.”
“리더님, 나도 리더님 믿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주세요.”
“일단 리더님 계획을 들어보죠.”
연습생들이 피터에게 얄팍한 신뢰를 보냈다.
“드디어 투명인간에서 벗어나게 됐군.”
피터는 한숨을 내쉬고는 촉팀 연습생들을 둥그렇게 모여 앉도록 했다. 현덕은 소혁을 적극 마크했다. 어째서인지 뒤통수가 매우 따가웠지만, 소혁을 막느라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저 형 뭐야, 완전 눈에서 레이저빔을 쏘네여. 아주 눈이 튀어나오겠어여.”
준비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응? 누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여. 형은 몰라도 돼여. 그냥 갑자기 노래 가사 같은 게 생각나서 불러봤어여.”
준비는 누군가를 약 올리듯 현덕에게 덥석덥석 안겼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있을 테니까 내 입에 손대지 마. 김현덕 연습생.”
소혁은 제 입을 막은 현덕의 손을 찰싹 쳐내며 눈을 부라렸다. 나름 눈에 힘을 빡 주고 협박하려는 것 같았으나 현덕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무튼 협력한다니 좋네요. 우리 이제 계속 한 팀이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요. 원소혁 연습생.”
“한 팀은 무슨, 탈락하면 끝인데.”
소혁은 계속 툴툴거렸다.
“탈락하기 전까지는 계속 한 팀인 거니까. 그리고 탈락하지 않으려면 더더욱 협력해야 하니까.”
현덕은 소혁의 무릎을 꽉 움켜잡고 음산히 말했다.
“이제 그만 말하고 우리 리더님한테 집중 좀 해줄래요, 원소혁 연습생?”
물론 얼굴은 웃는 낯이었다.
“윽.”
소혁이 기겁하며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왜 그렇게 놀라요. 웃어요, 원소혁 연습생.”
현덕은 움켜잡고 있던 소혁의 무릎을 놓고, 피터를 가리켰다.
피터는 촉팀 모든 연습생의 이름과 포지션, 그리고 1부 때 최종 기숙사 색깔이 무엇인지 다 꿰고 있었다. 단지 촉팀에 속한 열 명뿐 아니라, 트라이 온 2부 촬영 중인 삼십여 명의 연습생들의 기본 프로필을 다 외우고 있는 듯했다.
피터는 포지션과 곡 소화력을 기준으로 촉팀 연습생들 중 다섯 명을 골라냈다. 노래를 빨리 익히는 연습생 두 명과 안무 습득력이 높은 연습생 세 명. 준비와 소혁, 현덕이 안무 쪽에 뽑혔다.
“저요?”
현덕은 소혁과 준비가 불려 나가는 걸 멍하니 보고 있다. 제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저번에 우주민 연습생 안무 가르쳐주는 거 보니까, 잘하더라. 춤을 빨리 익혀서 잘 쪼개고, 잘 가르쳤어. 그러니까 현덕이 잠깐 앞으로 나와 줄래?”
‘내가 춤을? 잘 추고 잘 가르친다고?’
현덕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쩐지 피터의 말이 너무 과분하게 느껴졌다. 준비, 소혁과 나란히 서 있으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형 춤 잘 춰여. 저만큼은 아니지만. 우주민 연습생보다 백만 배는 더 잘 춰여.”
준비는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현덕이 쭈뼛거리자 얼른 현덕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자 했다.
“주민 형보다 백만 배라니. 그리 큰 위로는 안 되지만. 뭐, 피터 형 칭찬보다는 현실감이 있네. 고마워, 준비야.”
준비는 ‘어? 이게 아닌데.’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잠자코 현덕의 품에 안겼다. 그사이 피터는 노래를 잘 부르는 연습생을 두 명 더 뽑았다. 그리고 앞으로 연습을 어찌 진행할지 설명했다.
“일단 오늘 하루 동안, 함께 춤과 노래를 연습할 겁니다. 제가 지명한 다섯 명은 일단 자기가 맡은 포지션에 집중해주세요. 세 명은 춤을, 두 명은 노래를, 어떻게 해서든 오늘 안에 완벽히 익혀야 합니다. 다른 다섯 명은 춤이든 노래든 가장 자신 없는 포지션을 연습하세요.”
“노래는 어차피 파트를 나눌 건데, 차라리 파트를 먼저 나눠서 자기 분량만 연습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요?”
지명받지 않은 어느 연습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지금 당장은 그게 효율적일 수 있지만,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파트 구분이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 파트를 나눈다면,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야 할까요? 리더인 제가 마음대로 알아서 나눠도 될까요? 아니면 각자 하고 싶은 걸 선택하고, 선택이 겹치면 가위바위보로 나눌까요? 어떻게 나누든 불만이 나올 겁니다. 그런 불만을 최소화하면, 좀 더 협력해서 멋진 무대를 만들 수 있겠지요. 어느 정도 연습한 후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파트를 분배하고, 또 그걸 다른 연습생들에게 인정받는 게 좋을 겁니다.”
피터는 미리 질문지를 받고 준비한 사람처럼 술술 답변했다.
“둘째, 우린 우승자 9인 안에 들기 위해서라도 곡 전체를 익혀야 합니다. 우리 모두 데뷔를 하고 싶어서 이곳에 있는 거잖아요. 단지 올림픽 정신으로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겠다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요.”
피터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흥, 소혁은 코웃음 쳤다.
“당장 이번 무대만 하고 끝이 아닙니다. 지금 한두 소절, 자신이 맡은 부분만 연습하고 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대에서 부를 이 곡은 우리가 이번 미션에 우승해 데뷔곡으로 결정이 나든, 아니면 데뷔곡이 되지 못하든, 결국 최종 9인으로 만들 아이돌 그룹의 앨범 수록곡이 될 곡입니다. 그러니 다들 이 곡을 아주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익히세요.”
피터의 말에 연습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의에 찬 몇 명은 마치 종교 지도자를 바라보듯 피터를 바라보았다.
피터에 대한 촉팀 연습생들의 지지와 신뢰가 높아졌다. 띠링, 띠링. 게이지가 올라가는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현덕은 시뮬레이션 게임 실황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하루를 삼 등분 하여 사용할 겁니다. 오전에는 노래를, 오후에는 춤을 연습할 겁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춤과 노래를 같이 연습해볼 거고요.”
피터는 연습 진행 방식을 설명했다.
오전에는 노래 포지션에 지명된 두 명이 각각 네 명의 연습생들을 맡아 가르친다. 오후에는 세 팀으로 나뉘어 현덕과 피터, 소혁이 안무를 가르쳐준다. 밤에는 다 같이 모여 전체적으로 춤과 안무를 체크하고 연습한다.
“앞으로 2주 동안 함께 잘해봅시다. 제가 미덥지 않아도 일단 한번 믿고 따라와 주세요. 무대가 끝나면 또 리더를 바꿀 수 있으니까, 제가 정 싫으시면 그때 바꾸시면 됩니다. 그러니 지금은 잘 부탁합니다.”
피터가 손으로 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숙였다.
현덕은 얼른 생수를 따서 피터에게 내밀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박수쳤다.
“우와, 형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봐여.”
준비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피터를 바라보았다.
촉팀이 연습 방법을 정하는 동안 다른 팀들도 각 팀의 상황에 맞게 연습 방법을 정했다.
자룡이 이끄는 위팀은 첫째도 협동심, 둘째도 협동심을 강조하며 함께 모든 걸 해나가기로 했다. 열 명의 연습생이 뭉쳐 서로를 도와주며 노래를 부르고, 또 안무를 익혔다.
동등하게 함께 했지만, 결국 자룡이 튈 수밖에 없었다. 자룡은 나머지 아홉 명의 댄스 선생님이 되어 주도적으로 안무 연습을 이끌어갔다.
오팀은 철저하게 효율을 추구했다. 철저히 노래 파트를 분배하고 안무를 나누었다. 연습생들은 딱 자신이 익혀야 하는 것만 익혀 무한 반복했다. 그건 어쩌면 같은 팀인 주민을 배려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주민은 오팀의 장점이자 약점이었다. 유호는 주민을 보며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일단 춤을 춘답시고 말도 안 되는 몸짓으로 파닥대는 모습을 보노라면 속이 쓰렸다.
‘이런 걸 어떻게 그렇게까지 춤추게 만든 거지?’
유호는 촉팀 진영에 속한 현덕을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새삼 현덕이 존경스러웠다.
트라이 온 1부 마지막 평가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주민의 신들린 춤 실력은 기적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 기적을 또 이루어내야 한다. 그 중압감이 유호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민이 마냥, 팀의 골칫덩이인 건 아니었다. 주민이 가져올 표 수를 생각하면, 저 극악한 춤실력도 예쁘게 보일락말락 했다.
‘우주민이 우리 팀에 있는 한, 우리 팀이 질 일은 없어. 절대.’
주민은 오팀의 절대병기였다. 팀을 살려 우승으로 이끌, 시청자 투표를 책임지는 알파이자 오메가.
‘복이란 이렇게나 싸가지 없는 모습으로 우리의 생에 나타나기도 하는구나.’
유호가 우주민을 보고 한숨짓다가 갑자기 실실 웃고, 또 촉팀 쪽을 보며 고개를 내젓기를 반복하자. 곁에 있던 정모는 유호의 마음을 오해했다.
‘형이 촉팀을 많이 견제하네?’
그걸 가만히 지켜본다면, 유호의 위장병을 걱정하는 참 동생일 수 없었다. 정모는 호기롭게 촉팀을 염탐하러 떠났다. 딱히 연습하는 게 재미없고 딴짓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직 유호를 걱정하고, 오팀의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에서였다.
정모는 슬그머니 촉팀으로 가서,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친해진 촉팀 연습생에게 촉팀의 상황과 분위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피터의 감격스러운 일장 연설을 유호에게 알려주었다.
“내일을 염려하다니, 우리 팀엔 그런 거 없다. 우린 무조건 오늘만 사는 거야. 내일을 걱정하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을 이기지 못해.”
유호는 쓰린 속을 움켜잡으며 코웃음을 쳤다.
“뭐야, 형. 무서워. 왜 갑자기 눈이 광기에 빛나는 건데. 역시 나이가 많으면 사람이 이렇게……. 악!”
훌륭히 적팀을 염탐하고 돌아온 정모는 칭찬을 듣기는커녕, 괜한 말을 해서 매를 벌었다. 유호에게 나이 드립을 치며 얻어맞는 건 이제 정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한편, 현덕은 주민이 걱정되었다. 너무, 너무 걱정되었다. 하지만 1부에서처럼 도와줄 수는 없으니. 그저 주민과 같은 팀인 유호의 리더쉽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을 단칼에 끊어낼 수는 없는지라. 준비, 소혁과 함께 안무를 연습하면서도 자꾸 오팀 쪽을 돌아보게 되었다.
주민은 여전히 기막힌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다. 같은 팀 연습생들의 절망과 비탄이 현덕에게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딴짓도 하고. 참 여유로우시네요. 김현덕 연습생.”
소혁의 싸늘한 눈빛이 덤으로 따라붙었다.
“죄송합니다.”
현덕은 순순히 사과하며 다시 자신의 팀 안무에 집중했다.
“아니, 사람이 좀 피곤하면 목 스트레칭도 하고, 다른 곳 보면서 멍도 좀 때리고 그럴 수도 있지. 왜 자꾸 우리 형한테만 그래여!”
준비는 현덕을 감싸며 소혁을 째려보았다.
“하하, 우리 팀. 분위기가 아주 좋은 거 같네요. 너무 화목해.”
피터는 태평하게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세 팀은 이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대를 준비해 가기 시작했다.
***
트라이 온 2부는 연습생들이 주도적으로 연습을 이끌어가야 했다. 1부 때처럼 트레이닝 수업은 없었다. 1부 때 평가를 맡았던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팀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도움’이었다.
자유는 때로 사람을 방종하게 만든다. 하지만 경쟁 앞에서 자유는 언제나 절실한 사람을 한계까지 쥐어짠다. 트라이 온 2부에 촬영하는 연습생들은 후자의 경우였다.
자룡은 현덕이라는 고삐가 없으니 불타는 열정 머신으로 진화했다.
“우리는 무조건 이번 3일 동안 노래와 춤을 모두 익힐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따라오기만 해요. 쉬는 건 나중에 우승한 다음에 얼마든지 쉴 수 있어요.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으니까!”
자룡이 포효했다.
“그래!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어!”
“무조건 자정까지 연습! 또 연습!”
“가자! 해보자고!”
위팀 연습생들은 자룡에게 전염되어 함께 불타올랐다. 건전지나 에너지 드링크 CF를 찍으면 딱 좋을 법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우주민 연습생이 굼벵이가 걸어가는 것만큼 나아지는 것 같기는 해서, 쿨럭, 쿨럭, 저는, 기쁩니다만, 쿨럭.”
오팀의 리더인 유호는 점점 더 상태가 나빠졌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숨은 가빠졌다. 가슴을 움켜쥔 손등 위로 뼈가 하얗게 도드라졌다. 그런 유호의 모습은 오팀 연습생들의 심금을 울렸다.
“리더님, 죽지 마세요!”
“저희가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우주민 연습생도 잘 챙길게요.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아요.”
“데뷔도 살아서 해야지, 죽어서 데뷔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힘내세요, 리더!”
오팀 연습생들은 자신들의 병약한 리더를 보며 눈물지었다.
“아니, 아니. 유호 형은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라 단지 위경련이 심……컥!”
정모는 모처럼 달아오른 분위기에 초를 치려다가 병약하기 짝이 없는 유호에게 응징당했다.
정모가 유호의 팔꿈치에 명치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건장한 정모가 고작 가느다란 유호의 팔뚝에 밀리다니. 더없이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오팀 연습생들은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으면서도 유호의 병약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손정모 연습생, 장난치지 마세요. 리더님 몸도 안 좋으신데, 그렇게 장난이 치고 싶으십니까?”
“엄살 부리지 말고 빨리 일어나세요.”
“그럴 힘 있으면 우주민 연습생 춤 연습이나 좀 더 도와주세요.”
오팀 연습생들은 아프다고 바닥을 뒹구는 정모를 질질 끌고 주민에게로 갔다.
오팀 연습생들은 돌아가면서 주민을 붙잡고 1:1 안무 과외를 했다. 하지만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다른 연습생들이 주민의 안무 연습를 돕는 만큼 주민은 다른 연습생들의 보컬 연습을 도와주었다. 주민이 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유호의 플랜이었다.
오팀에는 주 포지션이 댄스와 랩인 연습생들이 모여 있었다. 보컬 포지션은 끽해봐야 주민과 유호였다. 그마저도 유호는 음역이 높지 않아 대부분의 보컬 파트를 주민이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팀전이라지만, 한 연습생이 곡의 절반 이상을 혼자 부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호는 보컬과 랩을 구분하지 않고 연습생들에게 고르게 파트를 분배했다.
당연히 보컬이 약한 연습생들은 유호와 주민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유호는 리더의 막중한 임무를 핑계로 주민에게 연습 선생 역할을 전부 떠맡겼다.
유호 나름의 도박이었다.
주민의 인성은 트라이 온에 출연한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알아줬다. 그런 주민이 다른 연습생들을 잘 가르치고, 또 다른 연습생들의 도움을 순순히 받을까. 유호는 파트를 분배하면서도 긴가민가 했다. 분란이 일어나면 그때까지 뒷수습하자는 생각으로 내질러 보았건만.
주민은 의외로 제 몫을 해주었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연습생들의 도움을 받았다. 또 평범하게 다른 연습생들의 보컬 연습을 도와주었다.
주민이 성질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안 하겠다고 난동을 부려서 사건이 일어나 촬영 분량을 확보하지 않을까. 내심 긴장하거나 기대했던 몇몇 연습생들은 아쉬워했다.
‘성질을 부릴 때와 안 부릴 때를 구분하는 건지, 아니면 이번에 진짜 데뷔하고 싶어서 각오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행이네.’
유호는 로또 맞은 심정으로 복덩이 주민을 바라보았다. 긴장이 풀리니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이 더 하얘져서, 같은 팀 연습생들의 불안감을 조장했다.
그렇게 위팀이 불타오르고 오팀이 의외로 평화스러운 가운데, 촉팀은 더없이 모범적으로 굴러갔다.
촉팀에는 자타 공인 모범생이 둘이나 포진해 있었다. 해외파 피터 윤과 국내파 김현덕. 두 범생이는 불타지도, 도박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집중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막상 하려 하면 쉽지 않은 길이었다.
오버페이스로 몸을 축내지 않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만하면 중간중간 휴식을 취했다. 촉팀은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가장 먼저 연습을 끝낸 것도 촉팀이었다. 밤 10시가 되자 칼같이 연습이 종료됐다.
“좀 더 하죠!”
“저기, 위팀은 오늘 거의 밤새운다던데요.”
“오팀도 밤 12시까지는 한대요. 남아서 더 하고 싶은 사람은 더 연습하고 가도 된다고 하고.”
“연습실은 24시간 개방한대요.”
촉팀 연습생들은 불안해하며 피터에게 매달렸다.
“내일 당장 무대에 서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에겐 2주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설령 내일 당장 무대에 선다 해도 잠은 자야 돼요. 밤새우고, 무리해서 달리는 게 좋은 게 아닙니다. 우리 팀은 2주 동안 매일매일 꾸준히 해나갈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른 팀이랑 비교하지 말고, 쉬세요. 오늘 충분히 고생했어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연습했잖아요?”
피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연습생들을 달랬다.
“너무 느긋한 거 아닙니까. 우리 팀 실력이 이렇게 느긋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거 같은데요.”
현덕의 옆에서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은 왜 자꾸 내 옆에서 이러는 거지?’
현덕은 옆 사람을 쳐다보았다. 소혁이었다.
“우리 팀은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현덕은 일단 마음속 의문을 미뤄두고, 일단 피터의 편을 들었다.
“우리 팀 연습생들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리더님이 우리 이 주간의 스케줄을 설명해주셨는데, 그 계획대로 쭉 진행하면 무대 전까지 무리 없이 준비를 끝마칠 수 있을 거예요.”
“저를요? 어떻게 끝마칠 건데요?”
준비가 현덕의 등에 매달리며 물었다. 그 깜찍한 아재 개그에 연습생들의 얼굴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그래, 우리 준비랑 같이 완벽하게 무대에 오를 준비를 끝내야지.”
현덕은 준비를 아예 업어버렸다.
준비는 거북이 등딱지처럼 현덕의 등에 찰싹 붙어 가만히 숨만 쉬었다. 조금 전까지, 안무를 못 따라오는 다른 연습생들을 마구 닦달하며 연습시키던 꼬마 조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촉팀 연습생들은 현덕과 함께 있을 때면 천사처럼 변하는 준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내일 또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쉬어야 해요. 씻고 스트레칭하고, 푹 주무세요. 그리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다시 이어 연습을 합시다. 연습만큼 쉬는 것도 중요해요. 다음번 연습을 위해서.”
현덕은 피터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그렇죠, 리더님? 이렇게 말하고 싶으신 거죠?”
“김현덕 연습생은 독심술을 익혔나 보네요. 김현덕 연습생 말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피터는 현덕에게 눈인사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확실히 옆에서 바람을 잡아주고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팀을 이끌기 수월했다.
현덕이 돕고 준비가 유머러스하게 분위기를 환기해주니, 연습생들의 불만이 금세 수그러들었다. 연습생들은 마음이 다급해 자꾸 대들게 된다며 피터에게 사과했다. 피터는 사람 좋게 그들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리하여 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촉팀은 해산했다. 현덕은 준비를 업은 채로 숙소로 올라갔다. 소혁은 현덕의 옆에서 속도를 맞춰 걸었다.
‘왜 자꾸 내 옆에서?’
소혁은 괜히 현덕의 곁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면 괜히 시비를 걸었다. 하루 종일 현덕을 들들 볶고 툴툴대고 틱틱거렸다.
현덕은 그런 소혁을 그저 받아주었다. ‘그래, 피터 형한테 안 그러고 나한테 이래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었다.
“왜 자꾸 우리 형한테 그래여. 좀 떨어져 봐여.”
준비가 현덕 대신 화를 냈다.
“왜 남 대신 자의식 과잉이신지? 나나 김현덕 연습생이나 너나 셋 다 안무 빨리 익혀서 다른 연습생들한테 알려줘야 되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있는 거뿐이야. 지금도, 숙소가 같은 층이어서 올라가는 길이 같을 뿐이고.”
“굳이 옆에 붙어서 갈 필요는 없잖아여. 다리 긴 거 뭐에 써여? 빨랑빨랑 두 계단씩 올라가 버리라구여.”
“뭔 상관이신지? 내가 한 계단씩 올라가겠다는데. 너야말로, 김현덕 연습생 껌딱지처럼 너무 붙어 다니는 거 아닌가? 왜? 네가 안 붙어 있으면 김현덕 연습생이 우주민 연습생 도와주러 가버릴까 봐 감시하는 건 아닐 테고.”
물론 준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소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여? 지금 뭐라고 했어여! 현덕 형이 안 한다고 했으면 안 하는 거지, 왜 자꾸 과거를 걸고 넘어져여?”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단 말 몰라?”
“아씨, 우리 형이 일본 놈도 아닌데 무슨 그런 말을 같다 붙여여?”
준비와 소혁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고양이와 개처럼 서로 으르렁댔다. 현덕은 둘 사이에서 참으로 난감하였다.
“형, 현덕 형. 가만히 받아만 주지 말고 형도 한 소리 해여. 원소혁 연습생, 진짜 싫어여.”
“왜 김현덕 연습생은 형이고 난 그냥 연습생이야? 아무튼, 김현덕 연습생. 내 말이 틀린 게 있나요? 장준비 연습생이 어리다고 너무 오냐오냐 해주지 말아요.”
둘은 툭하면 제 편을 들어달라며 현덕을 닦달했다.
“내 말이 맞져? 형?”
“김현덕 연습생, 어리다고 받아주지 말고. 혼낼 때는 혼내야 하지 않나요?”
현덕은 허허, 웃고 말았다.
“왜 웃기만 해여! 내가 형 편들어주니까 형은 내 편들어줘야져. 형은 밸도 없어여? 이 형이 자꾸 현덕 형을 짓밟으려 하잖아여! 완전 나쁜 형이에여!”
현덕이 온전히 제 편을 들어주지 않자 준비가 입을 삐쭉거리며 현덕의 목을 와락 껴안았다.
“…….”
소혁 역시 말은 안 했으나, 어쩐지 기분 나빠 보였다.
소혁과 준비는 각자의 방으로 가는 순간까지 현덕을 가운데 두고 으르렁댔다.
현덕은 그들을 달래 겨우겨우 들여보내고 제 방으로 갔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현덕은 숙소 문을 닫고 그 문에 등을 기댔다. 새삼 피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주민이 보고 싶었다.
“……주민 형네 팀은 자정 넘어서까지 연습한다고 했던가?”
두 손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비틀비틀 걸었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쓰러져 눕고 싶었지만 땀에 푹 전 몸이 너무 찝찝했다. 준비와 소혁의 목소리가 아직도 뒷가에 쟁쟁 울렸다.
현덕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샤워를 하고는 머리카락을 말리지도 못한 채 침대로 쓰러졌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현덕을 감싸 안았다. 현덕은 그 감촉을 잠시 즐기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현덕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주민의 침대를 바라보았다.
주민이 속한 오팀은 자정 넘어서까지 연습할 거 같다는 오팀 연습생의 말이 생각났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이야.”
현덕은 주민의 침대에 풀썩- 몸을 던졌다.
살짝, 아주 살짝이지만 주민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현덕은 숨을 가득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그리고 그대로, 주민의 베개를 양손으로 꽉 붙잡고 잠들어버렸다.
***
주민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촉팀이 일찍 해산하는 걸 보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혼자 숙소에 있을 현덕을 생각하기만 해도 몸이 달아 죽겠는데, 오팀 리더인 유호는 주민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오늘도 오늘치로 할당된 안무를 다 가르쳐주고 나서야 연습을 끝냈다.
유호는 연습이 끝나자마자 격하게 기침하며 쓰러졌다. 오팀 연습생들이 놀라 유호에게 달려들었다. 오팀 연습생들은 과도한 연습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펑펑 울음을 터뜨리며, 쓰러진 유호에게 매달렸다.
“죽으면 안 돼요, 리더.”
“아직 우리에게는 오르지 못한 무대가 남아 있다구요.”
“내일은 저희가 좀 더 우주민 연습생을 도울게요. 그러니까 어서 눈을 떠봐요.”
하루 종일 땀을 흘린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서 우는 모습이라니. 주민은 보기만 해도 끔찍해서 뒤로 물러섰다.
옆에서 이온 음료를 마시고 있던 정모가 혀를 쯧쯧, 차며 나섰다.
“자자, 우리 리더님 몸 약한 건 다들 알지?”
정모는 우는 연습생들을 빨래 걷듯 거둬내고는 바닥에 쓰러진 유호를 발굴해냈다.
유호는 반듯이 누워 두 손을 배 위에 올리고 있었다. 얼굴까지 창백하니. 딱 봐도 오팀 연습생들이 울며 죽지 말라 애원할 만했다.
하지만 정모는 다른 연습생들과는 달랐다. 대뜸 유호의 코끝에 손을 가져다 댔다. 유호가 아주 규칙적으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푹 자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형 또 이러고 잠드네. 아무튼 숙소까지 제 발로 걸어가는 꼴을 못 본다니까, 내가.”
정모는 유호를 번쩍 들었다. 푸대 자루 들듯 유호를 어깨에 척-하니 걸쳤다. 종잇장처럼 얇디얇은 유호는 정모의 어깨 위에서 덜렁덜렁 흔들렸다.
정모가 유호를 들고 사라지자 주민도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같은 팀의 모든 연습생에게 들들 볶이며 안무 연습을 했던 터라 피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도 숙소에 가면 현덕을 볼 수 있다는, 그 일념 하나로 꾸역꾸역 버텼건만. 현덕이 주민의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주민의 베개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색색- 고른 숨소리가 주민의 귓가에 쿵쾅쿵쾅 울렸다.
‘아무래도 내가 돌아버린 거 같은데.’
주민은 문 앞에 서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대로 세상이 멸망하면 좋으련만. 그럼 이게 정신병으로 인한 환각이라는 것도 모른 채, 행복해하며 죽을 수 있을 텐데. 잔인한 지구는 주민을 위해 멸망해주지 않았다.
주민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들어 두 눈을 아예 가려버렸다.
“정신 차리자, 우주민. 너 아직 미치면 안 돼. 정신 똑바로 차려.”
주민은 주문을 외듯 스스로에게 말했다.
‘저건 환각이다, 저건 환각이다. 현덕은 저 옆의 침대에 누워 있다. 지금 내가 본 건 환각이다, 진짜가 아니다……. 씨발, 저게 진짜였으면.’
주민은 눈을 뜨고 다시 앞을 보았다. 현덕은 여전히 주민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헐렁한 트레이닝복이 이렇게도 섹시할 수 있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주민은 이제, 자신의 본능과 싸워야 했다.
환각이든 뭐든 좋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현덕을 껴안고 입을 맞출 수만 있다면.
잠들어 힘없이 벌어지는 입안에 혀를 밀어 넣어서 숨을 있는 대로 빨아들이고 싶었다. 오직 내가 불어 넣어준 숨으로만 숨 쉴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헐렁한 셔츠 속으로 두 손을 밀어 넣으면 어떨까. 그 가느다란 허리와 옴폭 들어간 배를 만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자신이 있었다.
유두를 물고 핥고 빨아서 팅팅 붓게 만들고 싶었다. 현덕은 그래도 비몽사몽, 잠을 깨지 못하리라.
현덕의 목덜미를 빨면서, 한 손으로는 현덕의 바지 버클을 풀고 바지와 팬티를 한 번에 벗겨버리고. 다리 밑이 허전해서 잠이 깰락 말락 칭얼대는 현덕을 달래며, 말랑한 현덕의 성기를 한 손에 움켜쥐어 흔들어 서게 만들고. 구멍이 부을 때까지 손가락으로 쑤셔서 풀어주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망상은 끝없이 이어졌다.
머릿속에서 현덕은 끝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주민의 밑에서 흔들렸다.
주민은 힘없이 늘어진 현덕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현덕의 유연한 몸을 반쯤 접어서, 벌름거리는 현덕의 구멍에 단번에 제 성기를 쑤셔 넣었다. 흘레붙은 개처럼 허리를 털어댔다.
그것도 모자라 잠든 현덕을 뒤집었다. 그 위를 짓누르듯 몸을 내리누르고 천천히 삽입했다. 뭉근하게 허리를 돌리며 현덕을 울렸다.
잠결에도 달큰한 신음을 내뱉는 현덕을 보며, 그 가늘고 긴 목을 잘근잘근 씹어서 시뻘겋게 상처냈다.
혹시나 숨이 막힐까 봐 한 줌인 목을 손으로 움켜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입술 밖으로 살짝 나온 혀를 핥아서 제 입안에서 마음껏 굴렸다.
그래도 부족했다. 한참은 더 부족했다.
마른 등뼈를 타고 내려 흔적을 남기고, 엉덩이를 터트릴 듯 움켜쥐고 그사이에 코를 박고, 혀로 핥고 싶었다.
그럼 망상 따위가 아닌, 현실의 현덕은 어설프게 잠이 깨서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 할 텐데. 하지 말라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울면서 애원할 텐데.
제 밑에서, 제가 주는 쾌락에 젖어 울부짖는 현덕을 보고 싶었다.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풀어질 대로 풀어진 구멍으로 제 성기를 받을 때마다 숨넘어가게 울면서 힘들다고 애원하는 그 얼굴이라니.
그런 현덕의 안을 쑤시면서, 그 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다.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주민은 마른 세수를 했다.
일단, 눈 앞의 저 김현덕이 현실인지 환각인지부터 확인해 봐야 했다.
주민은 현덕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침대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문에서 침대까지 거리가 채 열 걸음도 안 되는데, 한 걸음이 천년처럼 느껴졌다. 주민은 만년 동안 열 걸음을 걸어 침대 앞에 섰다.
주민은 현덕에게 손을 뻗었다. 현덕의 하얀 뺨에 손끝이 살짝 닿았다. 닿자마자 주민은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진짜잖아.”
환각 같은 게 아니었다. 진짜, 진짜 살아 있는 김현덕이었다.
주민은 뒤로 물러서서는 어정쩡한 자세로 현덕을 바라보았다.
잠깐 새에 현덕은 주민의 머릿속에서 적어도 다섯 번 이상 사정했다. 여섯 번 째부터는 더는 안 된다며 주민의 손을 밀어내며 엉엉 울었다. 여덟 번 째에는 체념하고, 스스로 주민의 위에 올라탔다. 주민이 현덕의 어깨와 목을 빨며 허리를 치대자, 현덕은 울음을 삼키며 어설프게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다리 힘이 풀리자 주민에게로 고꾸라졌다. 그 바람에 반밖에 안 들어가 있던 성기가 현덕의 안에 그대로 꽂혔다. 현덕이 허리를 꺾으며 괴로워했다. 주민은 톡 튀어나온 현덕의 목젖을 이로 깨물면서, 현덕을 뒤로 밀쳤다. 그대로 현덕의 위로 올라타 현덕을 밀어붙였다.
현덕의 안은 뜨겁고 축축했다. 주민의 성기를 한껏 빨아들이면서 잡아 터트릴 듯 조여댔다. 힘을 풀라고 아무리 말해도 현덕은 펑펑 울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힘없이 흔들리는 현덕을 껴안고 주민은 그 안에 몇 번이고 사정하고, 또 사정했다. 너무 느껴서 경련하며 팔다리를 떠는 현덕을 꽉 껴안고, 그 도톰한 귓바퀴를 씹었다. 그러면서도 참지 못하고 허리를 털었다.
“…….”
주민은 다시 한번 마른세수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 둔 인간의 본능, 아니, 욕정이 얼마나 강력한지 시험당하는 느낌이었다.
하루 종일 안무를 연습했다. 팀의 리더와 다른 연습생들에게 들들 볶여 몸도 마음도 지쳐 너덜너덜해졌다. 그런데도 현덕의 앞에 서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호랑이 기운이 샘솟았다. 호랑이 발정의 기운이.
“나가 죽자, 진짜.”
주민은 스스로를 저주하며 비척비척, 화장실로 걸어갔다.
뒤에 현덕을 놔두고 멀어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잠든 현덕에게 달려들지 않으려면 해야 했다.
주민은 호랑이 발정을 때려잡는 곶감의 심정으로 천근만근 같은 걸음을 떼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지도 않고 샤워기부터 틀었다. 찬물이 쏟아졌다. 찬물을 뒤집어쓰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슬슬 열이 오르던 다리 사이도 금방 진정되었다.
주민은 물에 흠뻑 젖은 채로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지쳐 보였으나 두 눈만은 불덩이라도 들었는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현덕과 함께 숙소를 쓰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
주민은 한참 동안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
현덕은 여전히 주민의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현실이 변하지 않으니 냉수마찰의 효과는 금세 사라졌다.
싱글 침대는 좁았다. 주민은 이성을 유지하고, 비어 있는 현덕의 침대로 가서 잠을 자야 했다. 그게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우주민은 본래 옳은 일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다. 찬물을 뒤집어쓴들 당장의 욕망만 겨우 억누를 뿐, 없는 인성이 생겨나진 않았다.
주민은 슬그머니 자신의 침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현덕의 옆에 누우려다가 멈칫, 뒤로 물러섰다. 새삼 이성이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아니었다.
찬물로 목욕을 해서 몸이 차가웠다. 이대로면 현덕에게 해로웠다.
주민은 현덕의 침대에서 이불만 가져와 몸에 둘렀다. 몸이 식은 뒤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침대는 좁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주민은 현덕의 옆에 비스듬히 누워 현덕의 목 아래에 팔을 집어넣었다.
“으음…….”
현덕은 뒤척이다가 주민의 품으로 데굴, 굴러들어왔다. 주민은 놓치지 않고 현덕을 꽉 끌어안았다. 둥근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다리를 얽었다.
빌어먹을 망상은 언젠가 반드시 현실이 되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그날이 아니었다. 지금 주민에게 허락되는 건, 오직 따끈따끈한 몸을 꽉 끌어안고 잠드는 것뿐이었다.
주민은 처음으로 유호가 고마웠다.
유호가 악착같이 연습시키고 굴린 덕분에 주민은 지금 너무도 피곤했다. 제 품 안에서 꼬물대며 두 손으로 셔츠의 가슴팍을 꼬옥 움켜쥐는 현덕을 안고, 얌전히 잠만 잘 수 있었다.
그래, 잘 수 있다.
잘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현덕의 까만 머리카락 위로, 주민의 숨이 흩어졌다. 그게 한숨인지, 아니면 행복해서 터져 나온 실소인지는 본인도 알지 못했다.
***
현덕은 눈을 번쩍 떴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눈이 바로 뜨일 정도로 개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도저히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가위에 눌린 건가?’
현덕은 손끝을 움직이려 애썼다. 손쉽게 주먹을 쥐었다 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팔다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사슬에라도 꽁꽁 매인 것 같았다. 덕분에 잠이 달아났다.
현덕은 눈을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누군가 자신을 꽉 끌어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얼굴을 확인해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우주민이겠네.’
이렇게까지 현덕을 붙잡을 만한 사람은 우주민뿐이었다.
주민은 문어처럼 현덕을 칭칭 껴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현덕은 제 눈앞에 광활히 펼쳐져 있는 주민의 가슴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마로 톡톡, 그 어깨를 두들겼다. 하지만 주민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현덕은 주민의 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꾸물꾸물, 움직였다.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다리가 얽혀 있었다. 주민이 두 팔로 현덕의 어깨와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잠들었다. 둘의 몸은 한 치의 틈 없이 맞붙어 있었다. 현덕이 빠져나가려 움직일수록 주민의 몸에 제 몸을 비비고 문대는 꼴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아침이라 그런지 주민의 다리 사이가 단단해졌다. 그것이 현덕의 허벅지 안쪽으로 쑥 들어왔다.
“……!”
순간, 현덕의 몸이 굳었다.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다만 허벅지에 닿는 그 길이와 단단함이 믿기지 않을 뿐이지.
‘으아.’
얼굴이 확- 붉어졌다.
현덕은 주민의 다리 사이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썼다. 엉덩이를 뒤로 내밀며 조금이라도 주민과 틈을 벌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음……. 조금만 더, 자자.”
주민이 현덕을 안고 얼렀다.
현덕은 주민과 침대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되었다. 현덕의 허벅지 안쪽에 자꾸 주민의 것이 닿았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했다. 문제는 그 감각 때문에 현덕의 것 또한 슬슬 열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형……. 주민 형……. 좀 일어나 봐요…….”
현덕은 잔뜩 울상이 되어 주민에게 속삭였다. 두 팔까지 주민의 몸에 짓눌려 있어 주민을 밀쳐낼 수도 없었다.
주민이 자신보다 키만 큰 게 아니라 체격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같은 남자끼리인데. 현덕은 주민의 밑에 깔려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게 분해 더 안달하며 자유를 되찾으려 애쓰고 있을 때였다.
머리 위에서 큭큭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현덕은 위를 보았다. 주민이 두 눈을 뜨고 현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깼어요?”
현덕은 잘 잤냐는 말 대신, 언제부터 그렇게 눈을 뜨고 있었냐고 추궁했다. 가벼운 배신감이 현덕을 부추겼다.
“잘 잤어?”
주민은 스윗하게 웃으며 현덕의 이마에 쪽쪽, 입을 맞췄다.
“언제 깬 거냐고요.”
현덕이 이를 꽉 깨물고 다시 물었다. 주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실토했다.
“너 일어나기 전에?”
“젠장!”
결국 다 보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도 모자라 지금 제 허벅지에 닿는 그것조차, 일부러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다리 사이를 파고들던 그것을 떠올리자 현덕의 얼굴이 벌게졌다.
“우주민, 진짜!”
현덕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의 기운까지 빌릴 기세로 주민을 밀어냈다. 싱글싱글 웃으며 방심하고 있던 주민이 삐끗, 몸의 중심을 잃었다.
“윽!”
주민은 그대로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현덕은 벌떡 일어섰다. 아직도 허벅지 안쪽에 주민의 열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얼굴로 몰려온 열기가 영 식지 않았다. 현덕은 손부채를 파닥이며 얼굴을 식히려 애썼다.
그사이 바닥에서 커다란 손이 솟구치더니 침대를 내리쳤다.
“윽. 김현덕, 너…….”
주민이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악당처럼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꽤나 무시무시했다. 이걸 그대로 놔둔다면, 반드시 큰 고난을 겪으리라.
현덕은 지체하지 않고 주민을 꾹 밟고 지나쳤다.
“윽!”
배를 밟힌 주민이 다시 쓰러졌다.
“……!”
현덕은 내심 놀랐다. 배가 말랑말랑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발바닥에 닿은 감촉이 엄청 딱딱했다.
“머, 먼저 씻을게요.”
현덕은 애써 무덤덤한 척했다.
주민을 밟고 화장실로 들어가서는 거울 앞에 섰다. 트레이닝복 셔츠를 걷어 올려 제 배를 확인했다.
현덕의 배는 밋밋하다 못해 홀쭉했다. 마른 근육이 있기는 했으나 주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현덕은 아직 발바닥에 남아 있는 감촉을 떠올리며 자신의 홀쭉한 배를 만져보았다. 상대적으로 너무 말랑말랑했다.
“……운동할까?”
주민이 조금 전 침대에서 저를 민망하게 만든 일 따위는 금세 잊혔다. 원래 우주민은 그런 놈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보다 거슬리는 건 주민의 단단한 복근이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전혀 밀리지 않던 주민의 팔 힘이었다.
‘아무리 체격 차이가 있다 해도 같은 남자끼리, 이렇게까지 밀리는 건 좀 아니지. 앞으로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야겠어.’
현덕은 밋밋한 자신의 배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불과 2년 전, 안무 연습 10분 만에 기절했던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다 우주민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