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응
한 주, 편집본을 방영하기로 결정이 나 트라이온 2부 촬영 시작일까지는 약 열흘간의 휴식기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정말 ‘휴식기’는 아니었다.
열흘간, 현덕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살았다. 차라리 합숙을 하며 촬영을 했던 기간이 휴식기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무심코 TE엔터테인먼트 오 팀장의 전화를 받은 게 시작이었다.
[당장 회사로 튀어오지 못해! 김현덕!]
오 팀장이 포효했다. 현덕은 찍소리도 못하고 TE엔터테인먼트로 달려가야 했다.
오 팀장은 퇴소 날, 현장에 왔었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도 자룡도 현덕도, 오 팀장은 생각도 않고 가족들과 떠나버렸다.
아무도 연락이 되질 않으니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팬들 사이를 헤치며 셋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장장 세 시간이나. 겨우 연락이 닿은 자룡 덕분에 그 세 시간의 노력이 헛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그 뒤로도 현덕은 내내 연락이 안 되었으니, 오 팀장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절대로 전화 끊지 말고 나랑 계속 전화 통화하면서 회사로 들어와, 현덕 씨.]
현덕이 계속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오 팀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덕이 기획사에 도착하기 전까지, 30초에 한 번씩 현덕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슨 역을 지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렇게 기획사에 가니, 자룡은 이미 와 있었다. 주민은 집안일 때문에 2부 촬영 시작 날에나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오 팀장의 성화도 성화지만, 기획사에 오면 주민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서둘렀던 현덕은 어쩐지 김이 빠졌다. 물론 기획사는 그런 현덕의 마음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현덕은 개학 전까지 매일같이 기획사에 출퇴근 도장을 찍었다.
현덕과 자룡은 오 팀장과 다른 회사 직원들과 함께 트라이 온 1부 방송의 출연 분량을 모니터링하고 자아비판의 시간을 가졌다. 현덕은 3화 이전까지 공기보다 존재감이 적었던 것에 대해 매우 반성해야 했다.
그리고 트라이 온 2부 촬영을 준비했다. 어느새 자란 머리를 다듬고, 데뷔 후보곡 세 곡의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회사의 보컬 선생님과 안무팀은 이미 방송에 나온 ‘촉! 촉! 촉!’과 ‘We are, I was…….’, ‘OH MY!’를 완벽히 습득해 놓은 상태였다. 방송 다시 보기가 뜨자마자 데뷔 후보곡 소개 부분을 무한 반복하며 분석했다고 했다.
“세 곡을 모두 다요? 어느 걸 할지 모르는데?”
현덕은 그 무식함에 당황하였고,
“좋았어! 어느 곡을 하게 될지 모르니까 다 외워 놔야지!”
자룡은 의욕에 불탔다.
말이야 세 곡 다 완벽히 외우라고 하지만, 기획사에서는 나름 현덕과 자룡, 주민이 세 곡 중 어느 곡을 하게 될지 짐작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촬영 당일 전까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열흘 동안 세 곡의 춤과 노래를 익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쉬운 일도 아니었다. 현덕과 자룡은 매일, 성실히 기획사에 드나들며 연습했다. 그러는 동안 현덕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자꾸 맞닥트리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게 되었다.
기획사 앞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고 개학한 후 학교 교문 앞에서,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팬이라고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고, 좋아한다며 수줍게 말하고 편지나 선물을 놓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개학 날에는 교복 입은 현덕을 보러 왔다며 학교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몰려 있었다. 현덕은 그들을 피해 학교 후문까지 달려가야 했다.
학교에 가서도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불러 교무실을 찾아가야 했고, 복도에 다닥다닥 붙어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 보는 학교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학생들은 괜히 소변을 보는 현덕의 옆에 서서는 현덕의 것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고3 선배들까지 아래층 화장실로 내려왔다.
어느 날은 복면을 쓴 외부인이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현덕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옆에 있던 민철이 막아주어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덕은 급히 교무실로 도망가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했다.
사는 아파트 근처에도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들이 어슬렁거렸다. 팬, 아니면 기자였다. 그들이 밤낮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현덕에 대해 묻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덕분에 경비실로부터 민원 전화가 쏟아졌다.
오 팀장이 함부로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했다. 때문에 현덕은 부모님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어머니는 이웃들에게 잘 좀 부탁한다며 떡을 돌리고 사과하러 다녔고, 집의 인터폰 전선을 뽑아버렸다.
현덕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때 친구라며 날아오는 연락을 피해 핸드폰을 꺼버렸다. 집 전화로 자꾸 기자들이 전화를 해서 아예 선을 뽑아버렸는데, 전역일이 며칠 안 남은 맹덕이 매우 서운해했다.
그래도 겨우겨우 평정심을유지하고 버티고 있었건만.
“야, 어제 우리 집에 무슨, 어디랬더라……. 아무튼, 기자가 찾아어. 너에 대해서 좀 말해달라고. 너 외고 가고 싶어 했는데 못 간 거 알고 있더라고. 그거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달라고 해서, 개식겁한 거 있지. 아, 물론 절대 말 안 했다.”
현덕은 민철의 말을 듣고는 망연자실했다.
현덕은 물론이거니와 현덕의 주변까지, 현덕과 관련된 모든 게 다 까발려지고 있었다.
세상 모두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데 나만 그걸 모르고 있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라는 게 이렇게 큰 거였나?’
현덕은 방송의 파급력을 뼛속까지 시리도록 실감했다. 기쁘기 이전에 당혹감이 먼저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공부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밥을 먹는 그 보통의 일상 하나하나까지 관심을 가졌다. 현덕은 그걸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평소처럼 행동하자. 괜히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그나마 서른세 살까지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의 평정할 수 있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자신까지 함께 미쳐 돌아가선 안 된다는 자각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흔들리는 마음은 겉으로 드러났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는 저녁 식사 후 현덕을 서재로 불렀다. 현덕과 마주 앉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또 어른으로서 네게 말해주고 싶어서 말이다.”
“네, 아버지.”
“옛날에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신문에 기사도 나고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기도 했단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소년 급제니 뭐니 추켜세움을 당했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지라 현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네 할아버지께서 날 불러 앉히시고는 대뜸 혼을 내셨단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회초리로 대뜸 때리셔서 그걸 고스란히 맞았지.”
“때리셨다고요?”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 여기저기서 칭찬하는 소리만 들으니까 내가 우쭐해지고 기고만장해져서는 겁 없이 굴까 봐 걱정되셨던 게 아닐까싶구나. 너 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험 합격해도 여전히 흙 무지렁이인 내 앞에서 무릎 꿇고 혼나고 그래야 한다고. 그러면서 이제 더 고개를 숙이고 다니라고 신신당부 하셨지. 예전에 길을 걷다 마을 어르신을 보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했다면 이제는 허리까지 반 접으면서 인사를 하라고 하시더구나.”
아버지가 허허, 웃었다.
“시험에 합격하든 유명해지든, 뭐가 어찌 됐든 나 자신은 변하지 않는 거란다. 세상이 변덕스러워 갑자기 변하고 바뀌고 내게 관심을 가진다 하더라도, 나는 내 마음의 중심을 잃으면 안 돼. 풍랑을 만난 배가 뒤집히지 않고 떠 있을 수 있는 건 중심을 잃지 않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네 할아버지는 내게 그걸 말씀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구나. 그리고 나는 지금, 내게 그 말을 똑같이 해주고 싶고.”
아버지가 현덕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나는 네 할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널 때리고 싶지는 않구나. 현덕아, 넌 나보다 똑똑하니까 분명, 이 아비처럼 얻어맞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맞잡은 현덕의 손을 꼭 쥐며, 아버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잠깐 바뀌었을 뿐이란다. 그러니 놀라지도 말고 겁먹지도 말고 흔들리지도 말고, 그저 평소의 너인 채로 있으려무나. 다만 좀 더 겸손해지렴. 사람들은 갑자기 잘나가는 사람을 보면 색안경을 끼게 된단다.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도 거만하게 보게 되지. 비굴할 정도로 굽힐 필요는 없겠지만, 네 주변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네 마음의 중심을 아래로 내리려무나.”
아버지의 말이 현덕을 붙들어주었다. 현덕이 어렴풋이 생각하며 버티고 있던 것을 아버지가 분명히 세워주었다.
“네, 말씀해주신 것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할게요!”
현덕은 단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는 현덕의 얼굴을 살피고는 마음이 놓인다는 듯 웃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난 이후에도, 변해버린 자신의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감당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현덕은 계속 아버지의 말을 되새기며 혹시나 자신의 발밑이 둥둥 떠 있지는 않은지 경계했다.
가끔 자신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이 무섭고 상대하기 지치기도 했지만 마냥 외면하거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가까이 다가와 수줍게 사인을 해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물어보면, 현덕이 사는 곳에서 대여섯 시간 거리에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직 현덕을 보기 위해 하루 일정을 비우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 정성이 감사하고 고마워서 그들이 내미는 선물을 받지는 않았지만 편지는 받았다. 또 사인 요청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받아들이되 무리한 요청은 거절했다.
집요하게 사생활을 침범하려는 사람들한테는 단호하게 굴었다. 더욱 겸손하되 비굴해지지는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어 시련을 겪는 건 비단 현덕만이 아니었다. 트라이 온 2부 참가 자격을 얻은, 합격자 서른 명의 연습생들이 현덕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었다.
자룡은 오랜 연습생 생활 끝내 날아오른 불굴의 연습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고생 중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개천용이니 불굴의 용이니 어쩌니 하며 이상한 별명이 자꾸 더해졌다.
몇 번이고 데뷔 기회를 놓치고 고된 시련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아름다운 청년.
이 이미지에 제멋대로 취한 사생들이 자룡에게 들러붙었다. 연예계에서 유명한 악성 스토커까지 자룡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퇴소 후 사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자룡은 늦게까지 기획사에서 연습을 하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곤히 자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소리는 현관문 쪽에서 들렸다. 자룡이 막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을 때.
달칵-
현관문 따는 소리가 들렸다.
“……!”
잠이 단번에 달아났다. 자룡은 도둑인가 싶어서 손을 더듬어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걸 찾았다. 영 잡히는 게 없어 눈만 부릅뜨고 현관문 쪽을 바라봤다. 도둑이면 맨손으로라도 달려들어 붙잡으려 했건만.
한 여자가 자신의 집인 양 당당히 들어왔다. 순간, 자룡이 이집이 제 자취방이 아니라 저 사람의 집인가 햇갈려 할 정도였다.
불이 꺼져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여성의 실루엣이었다. 침입자는 검은 생머리에 검은 셔츠, 검은 바지, 검은 구두. 온통 검은색 일색이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온 여자가 자룡을 보고는 히죽- 웃었다.
“어머, 우리 자룡이 아직 안 자고 있었네?”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마른 오징어를 들어 보였다.
“오징어 구워 줄까?”
오징어에 라이터를 대고는 착- 불을 켜는 그 모습을 본 순간.
“우와아악!”
자룡은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기 서! 내가 구워 준 오징어 먹고 가야지이이이이!”
등 뒤에서 들리는 비명에 더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려 가까운 경찰서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전화를 빌려 오 팀장에게 연락해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오 팀장은 한밤중에 경찰서로 와서 자룡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갔다. 하필이면 그 모습이 기자의 카메라에 찍혔다. 기자는 기삿거리를 찾아 며칠째 자룡의 집 근처를 맴돌고 있다가 특종을 발견한 것이었다.
- 트라이온 출연자,악성 스토커에 시달려…….
- JD, 자택에 사생 무단침입해 한밤 중 경찰서 난동
- [종합] 트라이 온 JD 인기 증명, 연예계 유명 스토커 타켓…….
- 트라이온 연습생 J군, 악질 스토카에시달리다 한밤 중 경찰서…….
자룡의 일은 기삿거리가 되어 포털 메인에 올랐다.
다음 날, 자룡은 침낭을 들고 기획사로 들어왔다. 2부 촬영이 시작할 때까지 자취방에 돌아가지 않았다. 아예 기획사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트라이 온의 후폭풍이 이 정도였다.
‘소년 프로젝트 : 트라이 온’은 제작진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공했다. 전 시즌 ‘트윈 트윙클’이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으나 항우영-윤우희 사건으로 인해 세간의 질타를 받았던 터라, 후속작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비난과 우려를 받았다.
방유진, 항우영 같은 스타급 연습생이 또 등장해 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기획사들이 A급 연습생들을 내주기는 할까. 그저 그런 연습생들을 데리고 그저 그런 후속작을 찍다 마는 건 아닐까.
방송 전부터 걱정을 빙자한 조롱이 쏟아졌다.
그런 우려 속에서 시작된 트라이 온은 국민 예능이라 불릴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직 절반 정도 방송된 시점이라 성공 여부를 논하기는 이르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더더욱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지지 적어지지는 않을 터였다.
방송국에서는 방송 기간을 늘리고자 급히 총 편집본을 한 주 더 방송했다. 인터넷 포탈에는 트라이 온 촬영 연습생들을 다룬 기사들로 도배되었다. 2부 출연이 확정되니 연습생들의 기획사들은 하나같이 잔치 분위기였다.
단연 화제가 된 연습생은 우주민이었다. 우시영의 아들이자 시황그룹의 손자. 그가 1부 마지막 방송에서 내뱉은 폭탄 선언은 지상파 방송국의 9시 뉴스에 보도될 정도였다.
현덕은 내내 보지 못한 주민의 소식을 뉴스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연락이 안 될 거라고 TE엔터테인먼트 측에 통보했다던 주민은 보란 듯 매체에 찍히고 다녔다.
이복 누나와 다정하게 브런치를 즐기는 사진. 시황그룹의 왕회장,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진. 쫙 빼입은 모습으로 시황그룹 본사 건물을 드나드는 사진 등. 매일같이 주민이 아침엔 뭘 했고, 점심으론 무얼 먹었으며 저녁엔 누굴 만났는지 기사로 떴다.
시황 그룹은 마음만 먹는다면 열흘 내내 주민의 머리카락 하나 안 보이게 숨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주민을 이렇게 노출시키는 것 역시, 시황 그룹의 힘이었다.
오 팀장은 기획사와 상의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길길이 날뛸 법도 했건만. 어째서인지 별말이 없었다. 그 때문에 현덕은 더욱더 확신했다. 시황그룹과 우주민이 일부러 더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처음엔 반가웠다. 잘 살아 있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섭섭한 마음이 쌓였다.
뉴스 사진 속 주민은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녔다. 스토커를 피해 기획사에 숨은 자룡이나 학교-기획사-집을 오가는 현덕에 비하면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그렇게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현덕에게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오 팀장님한테 물어보면 내 연락처를 알 수 있을 텐데, 연락 안 한다 이거지?’
분명 오 팀장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오 팀장을 통해 현덕에게 연락할 수도 있을 텐데. 주민은 현덕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지난번 말년 휴가를 나온 맹덕은 미리 현실 생활에 적응하겠다며 핸드폰을 되살리고 군대를 들어갔다. 현덕은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맹덕의 핸드폰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었다.
현덕은 일부러 오 팀장에게 맹덕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다. 하지만 며칠째 맹덕의 핸드폰은 깨끗했다. 부재중 통화도, 메시지도 없었다.
어쩐지 자신만 안달복달하고 열을 내는 거 같아서 오기가 생겼다. 현덕은 오 팀장에게 주민의 연락처를 물어보지 않았다.
‘먼저 연락하면 지는 거야.’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왜 그리 유치했는지 모르겠다고 이불을 찰 일이겠지마는. 지금 당장, 현덕은 매우 진지했다.
***
시간이 자꾸 흘러 일주일이 지났다. 방송국에서 트라이온 1부와 2부 사이에 끼워 넣은 편집본이 방영되었다. 서른 명의 합격자 위주로 편집된 방송분이었다. 합숙하며 매주 진행했던 미션과 인터뷰가 주로 편집되어 나왔다. 현덕의 분량은 많지도, 적지도 않고 딱 중간이었다.
다음 날인 토요일, 현덕은 기획사에서 연습을 하다 쉬는 시간에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제일 먼저 우주민을 검색하고 그다음 박자룡, 김현덕 등을 검색해보았다. 새로 뜬 기사가 있는지 보고 블로그나 카페, 커뮤니티 글들을 찾아보았다.
매일 찾아봐도 다 못 볼 만큼 매일매일 많은 글이 쏟아졌다.
*
[테두리] 룡민덕 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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왤케 사랑스럽니.
ㅅㅂ심장이 너무 아파.
셋 중 하나를 고를 수가 없다. 그냥 셋다 내꺼하자.
오늘 막내가 둘째 춤알랴준다고 뒤에서 껴안는데 나 숨멎
첫째는 그냥 본투비춤존잘이라 둘째셋째가 꼬물락거리며 춤추는거 보며
같잖다고 웃는데 나 심장마비
아……오늘도 행복했다
(덧글 23)
└ 의문의 간장 : 걔들의 의사는?
└ 의문의 호두 : 공지 다시 읽고 와 테두리 글 올릴때사진모두 똑같아야돼 왜 룡만 세장이신지?
└ 의문의 호두 : (이미지) 하트 표시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니머리를 두쪽 내버릴 거란 뜻이야
└ 의문의 신발 : 아ㅠㅠㅠㅠ예쁘다 내새끼들ㅠㅠㅠㅠㅠㅠ
└ 의문의 분무기 : 티이엔터 이 새끼들은 어떻게 저런 애들을 연습생으로 몇 년 동안 굴리기만했대?보는눈삐었냐?
└└ 의문의 벽지 : 보는 눈이 있으니까 연습생으로 뽑은 거 아닐까?
└└ 의문의 타일 : 보는 눈이 있으니까 연습생으로 뽑은 거 아닐까222222
└└└ 의문의 분무기 : 데뷜ㄹ 안 시키고 박아만 놨는데 무슨
└└ 의문의 수영복 : 룡룡이 데뷔 몇 번이나 엎어진 줄 아냐 알면 이런 말 못하지
└└ 의문의 참빗 : 괜히 룡이 개천룡이 아니지…….
└ 의문의 수박바 : 아 출근하며 개우울했는데 갑자기 행복해졌어
└ 의문의 생수 : 우리 멍뭉이드류ㅠㅠㅠ 오구오구ㅠㅠ이뿐것드류ㅠㅠ
└ 의문의 생수 : 덕아ㅜㅜㅜㅜㅜㅜ둘째형이글케 걱정되쩌여? 아구아구
└ 의문의 양파 : 내 이상형이 춤못추는나ㅁ자가될줄이얔ㅋㅋㅋ저건허수아비도아니고진짴ㅋㅋㅋ근데존나멋있어ㅋ
[테두리] 아무리 생각해도 개빡침 ㅅㅂ ‘카페주인’ 이거
(이미지)
잊을만하면 열받어
두달 개고생하고 막 딱 나왔는데 바로 눈앞에 보인 게 저딴 거엿다니
현덕이 개멘붕했을 게 눈에 보여서……
그때 현장 갔던 후기 보니까 자꾸 그 쪽 힐끔힐끔 봤다잖아 저거 룡민+덕
ㅅㅂ대놓고 너 쩌리라고 그런 거 아냐
진짜 이때 이딴짓했던 사람들 양심있으면 테두리파지 마라 어디가서
테두리 좋아한다고도 하지 말고
(덧글 554)
└ 익명의 갈치 : 이거 룡팬카에서 주도한거라고 하지 않았어?ㅋ첫째형이니 뭐니 치켜세우면서 대놓고 막내 따돌리네 싶었는데
└ 익명의 보리 : 루머생성하지마 그때 자색 여의주에서 입장 표명하고 해명문 올렸잖아
익명의 보리 : 일부 팬들이 재밌으라고 했던 거고 다 강퇴시키고 했어
└└ 익명의 맥주 : 자색 여의주 운영자님 여기와서 이러심 곤란합니다
└└ 익명의 목도리 : 사과문 올리고 미안하다고 하면 단가? 애초부터 대놓고 그러는 게 문제 아냐? 상식이 없는 거잖아
└└└ 익명의 독수리 : 옹호하는 건 아닌데…… 예전엔 저런 게 당연시됐던 시기도 있었거든 요즘 좀 과도기가 아닐까 싶은데 난 오히려 저게 논란 됐다고 해서 좀 신기했어 오랜만에 아이돌 좋아해서 그런가 문화 바뀐 게 적응이 안 되네 분명 나같은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해
└└└└ 익명의 사진기 : 옛날엔 팬픽같은 거 써서 직접 아이돌 멤버한테 주기도 하고 그랬어
└└└└└ 익명의 바위 : 어르신들 나이 많으신거 티내지 마세요 그때 됐다고 지금도 된다는 법 없어요 요즘 안 되는 거면 하지 말아야죠
└└└└└ 익명의 젓가락 : 어르신들 나이 많으신거 티내지 마세요2222
└└└└└ 익명의 물오징어 : 이건 나이 문제 이전에 예의지 고딩 앞에 세워두고 저게 뭔짓?
*
처음 봤을 때 생소한 용어들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이를테면 ‘테두리’는 TE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인 자룡과 현덕, 주민을 묶어서 부르는 말.
이전 글을 계속 찾아보니 테두리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잠깐 다툼이 있었던 듯했다. 그래도 큰 싸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고 잘 마무리된 듯한데. 그때의 앙금이 아직 남아 있는지 자신들끼리 몇 가지 규칙을 만들어 놓고 잘 지키는지 무척 꼼꼼히 따졌다.
하지만 몇몇 용어에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현덕은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싸움이라든가, 고등학생을 두고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할 때의 그 짓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아리송했다.
자신과 관련된 일인 것 같아 파악은 해두어야겠다 싶어서 오 팀장에게 물어봤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괜한 걸 찾아본다고 혼이 났다.
“왜 그런 걸 찾아봐. 보지 마. 기사 떠도 댓글 읽지 마. 너희 관련되어 인터넷에 뜨는 글이나 댓글 같은 건 회사 모니터링 팀에서 다 보고 있으니까. 뭔가 이상한 거 뜨거나 너희가 알아야 할 내용, 동향 파악되면 어련히 알아서 안 알려주려고. 회사 못 믿어?”
오 팀장의 질문에 현덕은 잠시, 트윈 트윙클 때 항우영과 윤우희 사건을 떠올렸다. 하지만 오 팀장에게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고개를 내젓기만 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호기심이 사람 죽인다. 지금은 대부분 좋은 글 올라와서 그럭저럭 볼만할 건데, 이 분위기가 어느 순간 바뀔지 몰라. 한순간에 욕으로 도배되고 악플 달리고, 이상한 글 막 올라오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런 거 보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미리 안 보는 연습 해둬. 난 분명히 경고했다.”
오 팀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현덕은 오 팀장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건 별개였다.
오 팀장의 말대로 호기심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 호기심에 사로잡히면, 바로 눈앞에 있는 게 불구덩이인지도 모르고 뛰어드는 나방이 되는 게 사람이었다. 현덕도 그랬다.
‘오늘까지만 봐야지.’
‘하지 말아야지.’
‘딱 이거만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현덕은 인터넷 검색을 끊지 못했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부담스러웠지만, 인터넷에 자신과 관련된 사진과 글이 자꾸 올라오는 건 어쩐지 신기했다.
현덕은 본 김에 자색 여의주 카페를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검색 결과에 뜨지 않았다. 어느 게시글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주 비공개로 돌려버린 것 같았다.
“무슨 싸움이 있었기에 그런 거지? 자룡 형 팬들인데, 그런 분들이 뭔가 나쁜 일을 했을 리는 없을 텐데.”
현덕은 아쉬워하며 테두리 팬카페나 오렌지 삼총사 팬카페, 그리고 김현덕 개인 팬카페에 접속해보았다. 다른 연습생들의 펜카페도 종종 구경했다.
오 팀장은 팬카페에 실명으로 가입해 팬들께 감사 인사도 하고 응원 부탁한다는 글도 남기라고 권했다.
자룡은 호기롭게 가입해서 오 팀장의 말대로 활동했다. 하지만 현덕은 맹덕 아이디로 가입해서는 일반 회원인 척 했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카페에 가입해 고맙다고 말하는 게 부끄럽고 쑥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쓰는 글을 읽는 건 재미있어 하다니.
‘나 얌체 같아.’
현덕은 속으로만 생각하며 멋쩍게 웃었다.
*
오늘도 편집본 정주행♡♡♡♡
ㅣ트온 감상방ㅣ현나빛(gusejrgu****)
트온1~4회 현덕이 편집본 올려주신 DUck사마님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요즘 사는 낙은 덕이 정주행^^ㅋ
댓글 22|조회수 201
└ 진달래덕이 : 착하고 예쁘고 귀엽고 노래도 잘부르고 춤도 잘추고 부족한 게 없네요
└└ 현나빛 : 진짜 부족한 게 한 개도 없어요 어쩜 저렇게 완벽할까요?
└ 현덕맘22 : 1,2화가 좀 아쉽긴해요 왤케 현덕이 분량이 없는 거죠?
└└ 현나빛 : 저도 그게 아쉬워요 이번주 방송분에서 좀 더 나올까 기대했더니 인터뷰 영상 뿌닝라 아쉽
└└└ 현덕맘22 : 수줍게 인터뷰하는 모습 본 것도 좋지만 1,2화 때 모습을 좀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제작진이 그런 쪽으론 좀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 같더라고요(이모티콘)
└ 현덕꽥꽥 : 전 3화 4화만 무한 정주행 매일 한번씩 꼭봐요
└└ 현나빛 : 그것도 좋네요. 아무래도 우리 덕이는 다른 연습생들이랑 관계성이 두루두루 좋아서 보는 맛이 있지요. 3화 4화만^^
└└ 현덕꽥꽥 : 네(이모티콘) 3화 4화만^^
└└ 현짝덕 : 전 3화 4화 다시 못 보겠더라고요 얼마나 맘 고생이 심했을까여……
*
“맘고생 별로 안 했는데.”
현덕은 웃으면서 스크롤을 마구 내렸다. 팬카페에 올라온 글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보았다.
방송 캡처나 기사에 나온 사진을 예쁘게 보정해서 올려놓은 게시글을 보는 건 조금 용기가 필요했다. 포토샵 처리한 사진은 자신의 얼굴이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너무 뽀샤시하고 예뻤다.
“으으, 입술이 완전히 빨개졌다.”
현덕은 오늘도 갤러리 사진을 모두 보는 건 실패하고 서둘러 도망나왔다. 그러면서도 잠시 씻으러 간 자룡이 돌아올 때까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해 보조배터리를 연결했다.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다니. 현덕의 인생에 있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뭐 보냐?”
찬물로 씻고 온 자룡이 냉기를 폴폴 날리며 현덕을 덮쳤다.
“으! 차가워. 형, 차가워요!”
“차갑긴, 시원한 거지!”
“으악!”
자룡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장난을 치다 오 팀장에게 들켜 한바탕 혼났다.
“시간이 남아돌지, 어?”
얼른 장난 안 친척 정신없이 연습하다 오 팀장 눈을 피해 편의점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고, 결국 들켜서 또 혼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며, 현덕은 집업 후드를 깊이 눌러써 얼굴을 숨기고 뒷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트라이 온 게시글을 검색해서 읽었다.
*
트라이 온) 현덕이 얜 뭐냐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찰떡이야
(이미지)
같은 기획사 형들이랑 묶으면 테두리
(이미지)
같은 기숙사 애들이랑 묶으면 오렌지 삼총사
(이미지)
같은 나이대 애들이랑 묶으면 모찌모찌 사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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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티 중에는 가입을 안 하면 글을 볼 수 없거나, 가입하고 활동을 오랫동안 해야 글을 전부 볼 수 있는 곳들이 있었다. 가입도 막혀 있고. 일 년 이상 꾸준히 활동해야만 글과 댓글을 전부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은들 아쉽지만 보는 걸 단념해야 했다.
현덕은 다른 곳에 들어가 슬렁슬렁 글 목록을 넘기며 눈에 띄는 제목만 찾아 클릭했다. 연습이 끝난 후라 피곤해서 눈이 자꾸 감겼다. 아직 못 본 글이 많은데,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에 올라온 글을 놓쳐버렸다.
*
트라이 온) 나 이번 방송보고 열통 터질 뻔
대형은 좋겠다 뭘하든 오케이네?ㅋ
서바이벌에서 대놓고 같은 회사 연습생 도와줘도 착한 거로 포장되고 방송 분량 받고
내새끼는 작은 기획사에서 데뷔 한 번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다 겨우 트온나온건데
처음 무대에서 실수해서 오렌지내려갔다가
계속 위축되서 실력발휘 못하고 오렌지 오랜지 오렌지에 있었는데
같이 협업해야 할 오렌지 연습생 동료는 지네 대형 동료 도와줘야된다고 블루 도와주고
그거 도와준거 반만 내새끼 도와줬어도 내새끼 이번에 합격했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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