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1. Hello, Yellow (14/36)

다시 한 번, 이번엔 3

다시 한 번, 이번엔

3

두고

목차

1. Hello, Yellow

2. 누구를 위한 드림팀?

3. 나의 우주

4. 그의 우주

5. IF 외전 : 주민이 길들기 전에 현덕이 크게 다치게 되면

1. Hello, Yellow

세 번째 평가 무대는 2월 둘째 주 금요일이었다.

호텔의 1층 로비에 마련된 무대 앞에 백여 명의 연습생들이 모였다. 연습생들은 자신의 평가 등급에 따라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티셔츠를 입고 기숙사별로 앉았다. 현덕은 피터, 준비와 함께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오렌지 기숙사 연습생들 틈에 앉았다.

눈은 절로 블루 기숙사를 향했다. 현덕은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수십 명의 연습생 속에서 단번에 주민을 찾았다.

주민은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주변에 앉은 다른 연습생들은 서로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무도 주민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주민은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동떨어져 있었다.

주민의 표정은 웃음기 없이 메말라 있었다. 현덕은 그런 주민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울컥했다.

할 수만 있다면 가서 주민의 옆에 앉고 싶었다. 외로이 있는 주민에게 말을 걸고, 안무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함께 동작을 맞춰보고 싶었다.

평가 무대 이틀 전부터는 주민과 새벽에 만나지 못했다. 현덕이 속한 팀에서 밤샘 연습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한 번만 더, 맞춰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함께 땀 흘리고 연습한 주민을 믿고 있음에도 걱정이 되었다.

현덕은 주민의 평가곡 안무를 자신의 평가곡처럼 익혔다. 눈을 감고도 동선을 맞춰 출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완성도를 그대로 주민에게 전송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하던 현덕은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일단, 지금은 내 걱정부터 하자, 김현덕. 정신 차려!’

오늘은 주민뿐만 아니라 현덕 자신도 평가 무대에 선다. 주민을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부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잘할 수 있을까?’

주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 새삼 불안했다. 첫 번째, 두 번째 평가 무대를 준비할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폭풍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기분이랄까.

겉으로 티 안 내려 애를 썼지만 눈치 빠른 피터를 속일 순 없었다.

“왜 그래. 이번엔 특히나 긴장을 많이 하는 거 같네.”

피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현덕을 감싸주었다.

“그러게요. 이상하게 이번엔 걱정이 돼요.”

현덕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가,

‘이상하게 걱정이 된다니…….’

자신의 입에서 방금 튀어나온 말을 견디지 못하고 혀를 깨물었다.

‘나 거짓말 잘하네.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순수하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피터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현덕은 자신이 왜 불안한지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평가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막판 이틀 동안 꼬박 밤새며 연습했다지만, 연습량이 너무 부족했다.

현덕은 이 주 동안 두 개의 평가곡을 준비한 셈이었다. 낮에는 자신의 평가곡을, 새벽에는 주민의 평가곡을.

현덕의 평가곡과 주민의 평가곡은 템포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안무는 전혀 달랐지만 순간순간의 동작과 박자가 비슷했다.

이런 점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현덕은 두 곡의 안무가 헷갈렸다. 아니, 정확히는 낮에 추는 현덕의 평가곡 안무에 자꾸 주민의 평가곡 안무 동작이 섞였다.

때문에 팀 리더에게 여러 번 혼이 나기도 했다. 벌써 정신이 빠졌냐고, 항상 B 평가를 받으니 해이해졌냐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현덕은 고개를 푹 숙이고 팀의 다른 연습생들에게 사과했다.

실수하면 팀 평가곡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단지 현덕만 나쁜 평가를 받고 말 일이 아니라 다른 팀원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하지만 주민을 버려둘 순 없었다.

‘내가 좀 더 잘하면 돼.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난 아직 십 대야. 펄펄 날뛸 수 있는 젊고 어린 나이야. 게다가 고작 몇 주야. 잠깐만 버티면 돼.’

현덕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2주의 강행군을 버텨 나갔다. 그리고 그 강행군의 끄트머리에 섰다.

첫 번째, 두 번째와 달리 최선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라가는 세 번째 평가 무대.

무대를 바라보는 현덕의 얼굴이 유독 창백했다. 보다 못한 피터가 현덕에게 말을 걸었다.

“우린 항상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야.”

만년 B 평가 삼총사 중 한 명, 피터의 자신감이었다.

“피터 형, 설마 현덕 형 힘내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에여?”

현덕의 옆에 앉아 있던 준비가 톡 끼어들었다.

“너무 긴장하는 거 같아서. 어차피 우리는 항상 B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거나 떨 필요는 없잖아.”

피터가 차분하게 말했다.

“헐.”

준비가 어이없어하며 피터를 바라보았다.

“이럴 땐 형이 해외파라는 게 실감나여. 형, 한국말 좀 다시 배워야겠어여.”

“난 한국말이 매우 능숙하단다, 준비야.”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사람이 격려의 말을 그렇게 해여?”

“그렇게라니?”

피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덕이나 준비를 놀리기 위해 꾸민 표정이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게 그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헐, 형……읍!”

현덕은 준비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으읍?”

준비가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덕을 보았다. 왜 날 막느냐고, 억울함이 그득 담긴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오늘은 여기까지. 응?”

현덕은 준비에게 웃어 보이고는 피터에게 고개를 돌렸다.

“형도요. 고마워요. 형 말대로 긴장하지 않고 잘할게요.”

준비와 피터 사이에 앉아서, 현덕은 스스로에게 속으로 말했다.

‘B만 유지하자.’

그렇게 평가가 시작되었다.

무대는 블루 기숙사부터 시작했다. 주민이 속한 팀은 블루 기숙사의 일곱 팀 중에 세 번째였다. 주민이 무대에 오르자 다른 기숙사 연습생들이 웅성거렸다.

“오늘은 또 무슨 춤을 출까?”

준비가 잔뜩 기대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하, 현덕은 허탈하게 웃었다.

자리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구십 명 넘는 연습생들과 그 뒤의 촬영 스태프들까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백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준비와 비슷할 터였다. 오직 단 한 명, 현덕만을 제외하고는.

‘오늘은 반드시 그 기대를 저버릴 거야.’

자신의 무대에 대한 걱정은 잊고 주민을 응원했다.

주민은 역시나 가장 끄트머리에 섰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의 눈은 센터가 아니라 제일 뒤에 선 주민을 향했다.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데도, 주민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주민은 당당히 고개를 들고 관객석을 내려다보았다.

현덕은 어쩐지 주민이 오렌지 기숙사를, 자신이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물론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곧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현덕이 수백 번, 수천 번 들었던 그 노래였다.

중앙에 선 제순과 옆에 선 지용은 각각 메인 보컬과 서브 보컬을 맡았다. 둘이 가장 많은 파트를 담당했고, 계속 중앙에 있었다. 주민은 두 소절 가량 단독 파트를 부를 때 한 번 중앙에 나오는 게 전부였다. 그 외에는 곡이 끝날 때까지 내내 대열 끝에 섰다.

중앙의 제순이 오버하며 과하게 몸을 꺾고 폼을 잡았지만 사람들의 눈은 중앙이 아니라 끝을 향했다.

곡의 절반이 지나기 전에, 관객이 된 연습생들은 환호했다.

“미친? 우주민 연습생 맞아?”

“갑자기 왜 저렇게 춤을 춰? 정상인 같잖아!”

“이거 몰카 아니야? 다른 연습생이 얼굴에 우주민 가면 쓰고 춤추는 거 아냐?”

사방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헐, 대박. 현덕 형, 저것 좀 봐여!”

준비가 현덕의 팔에 매달려 소리를 질렀다.

피터는 웃음기 없는 눈으로 무대 위의 주민과 제 옆에 앉아 피곤해 죽으려 하는 현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놀라는 대신, 오히려 인상을 찡그렸다.

현덕은 그런 피터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주민이 어려운 안무 동작을 무난히 해낼 때마다 박수를 쳤다. 정확히 안무가 끝나는 순간마다 박수를 쳤기 때문에, 그걸 보는 피터의 미간엔 더 깊은 골이 생겼다.

그렇게 삼 분이 지나 평가곡이 끝났다.

연습생들의 뒤쪽엔 여섯 명의 선생님들과 MC 방유진이 앉아 있었다. 유진은 마이크를 블루 기숙사의 댄스 담당 선생님에게 넘겼다.

“아, 내가 진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선생님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눈을 뜬 심 봉사를 본 심청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연습생들도 쉬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떠들썩해진 로비를 잠잠하게 만들기 위해 MC인 유진이 여러 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였다.

“이번엔 또 어떤 해괴한 춤을 보여줄까 기대했는데, 아쉽네여.”

특히나 준비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열심히 연습했거든. 많이 나아졌지?”

현덕이 준비에게 물어보았다.

“어어어어어엄청여. 저렇게 할 수 있으면서 그동안 왜 못 했는지 신기할 정도로여.”

준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 그런데, 잘 춘다는 건 아니에여. 이전에 워낙 못 춰서 그거에 비하면 엄청 나아졌다는 거져.”

춤에 관해서는 탈락과 합격을 결정하는 심사 위원처럼 단호했다. 준비의 말이 이 상황의 핵심이었다.

그 우주민이 평범하게 춤을 춘다. 다른 연습생들과 박자를 맞춰 춤을 춘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준 것이다.

댄스 선생님은 단상 위로 손을 뻗어 PPL이 분명한 물티슈를 뽑아 눈가를 콕콕 찍고는 마이크를 쥐었다.

“이렇게 할 수 있으면서 그동안 왜 그랬나요?”

다른 선생님들은 동감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거친 숨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주민은 평소처럼 차분했다.

“제발 남은 기간도 열심히 연습해주세요.”

오히려 댄스 선생님이 격하게 대꾸했다.

이후 블루 기숙사 일곱 팀의 무대가 모두 끝난 뒤, 선생님들은 기숙사 재조정에 들어갔다. 열 명 정도가 블루 기숙사에서 벗어나 다른 기숙사로 가게 되었다. 주민은 처음으로 F가 아닌 다른 평가를 받았다. B였다.

연습생들 사이에 떠도는 ‘트라이 온 합숙 촬영의 3대 미스터리’란 게 있다.

첫째는, 우주민 연습생이 왜 블루 기숙사에 있는 것인가.

둘째, 오렌지 삼총사는 도대체 언제 헤어질 것인가.

셋째, 이완용 연습생의 이름 한자는 정말 그 역사 속의 매국노 이완용과 같을까 다를까.

그 3대 미스터리 중 하나가 깨졌다.

주민은 파란색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오렌지 기숙사 연습생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현덕은 반갑게 주민을 맞이했다.

“축하해요. 이번엔 진짜 잘 될 줄 알았어요!”

주민은 현덕의 축하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의 눈은 꽉 들어찬 현덕의 양옆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허여멀건 피터와 얼굴을 팍 구긴 준비. 둘 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좀 더 마음에 안 드는 건, 현덕의 팔에 나무늘보처럼 들러붙어 있는 준비였다. 주민은 발끝으로 준비의 다리를 툭툭 쳤다.

“왜여.”

“비켜.”

“……내가 왜여?”

준비가 불퉁하게 대답했다. 주민이 화답하듯 웃었다. 주민 특유의 재수 없어 보이는 웃음이었다.

‘오랜만에 보네.’

현덕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헉!”

자유로운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주민의 얼굴 앞에 손을 쫙 펼쳤다.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주민의 얼굴을 가리려 한 것이었다.

주민은 쯧, 혀를 차고는 현덕의 손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뺐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준비의 뒷목을 잡아챘다.

“으와악!”

준비가 허공에 붕 떠올랐다. 주민은 준비를 번쩍 들어 올려 피터를 향해 던졌다.

준비가 피터의 품 안에 뚝 떨어졌다.

“아이쿠야! 이게 뭐지?”

상황을 즐겁게 관람하고 있다가 예기치 않게 준비를 얻게 된 것이다.

준비는 피터의 얼굴에 드리운 장난기 그득한 웃음을 보았다. 의뭉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피터의 짓궂은 장난의 희생양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솟구쳤다.

“으아, 뭐야! 피터 형 싫어여.”

준비는 바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이미 발동이 걸린 피터는 준비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다.

“섭섭하네. 평소에 현덕 군한테 하는 거 반만큼이라도 나한테 해주면 참 좋을 텐데.”

피터가 두 손으로 준비의 보드라운 양 볼을 쫘악 잡아당겼다. 벌써부터 식단 관리를 한다며 마른 몸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볼에 젖살이 남아 있었다.

“아으지마여!”

준비가 키만큼이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자신의 뺨이었다.

어서 빨리 젖살이 빠지고, 주민이나 피터처럼 날카로운 턱을 가지는 게 소원이건만. 피터는 그런 준비의 마음을 알면서도, 감히 준비의 양 뺨을 건드렸다.

준비의 뺨이 쭈욱- 늘어났다.

“피자 도우에 뿌린 치즈 같아. 준비야.”

그 말랑말랑하고 쫙쫙 늘어지는 감촉에 피터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사이 주민은 현덕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잘했어요. 완전 잘하던데요?”

현덕은 주민을 마구 칭찬해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출 수 있냐고, 감탄하는 척도 했다. 실수로라도 우리가 함께 연습한 덕분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주민은 그런 현덕을 가만히 바라보다 웃었다. 준비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과 미소였다.

“다 네 덕분이야, 현덕아.”

지난 새벽 연습 때마다 들었건만. 환한 대낮에 들으니 또 새로웠다.

‘김현덕 연습생’이 아니라 ‘현덕아.’

현덕은 잠시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 평소에도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웃으니 정말 잘 생겨 보였다.

오늘은 아예, 내가 잘생긴 걸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고 멍석을 깔아주는 것 같았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거…… 뭐지?’

현덕은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째서인지 부끄러웠다. 계속 주민을 쳐다보고 싶은데, 주민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현덕아?”

다시 귓가에 주민의 목소리가 닿았다.

피터의 음성에 비하면 그리 부드럽지는 않았다. 준비처럼 미성도 아니었고, 자룡처럼 거칠거칠하지도 않았다.

남의 속을 박박 긁는 주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고.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어째서인지 그 목소리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쿵쿵, 심장 소리가 울렸다. 왜 심장이 머리 위로 올라가 있는 걸까.

‘왜 이러는 거지?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아니면, 부정맥?’

현덕은 자신의 건강 상태까지 의심하며 오랫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주민과 피터는 그런 현덕을 바라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

“…….”

둘은 서로를 탐색하듯 혹은 경계하듯 날카로운 눈빛을 교환했다.

***

블루 기숙사에서 다른 기숙사로 옮긴 연습생들이 새로운 기숙사에 자리를 잡자 촬영이 이어졌다.

그린 기숙사와 옐로 기숙사에 이어 오렌지 기숙사가 무대에 올랐다. 오렌지 기숙사는 세 팀으로 나뉘었다. 현덕이 속한 팀의 무대 순서는 세 번째였다. 준비, 피터도 같은 팀이었다.

무대에 서니 잠시 잊고 있던 긴장이 다시 몰려왔다.

‘잘할 수 있을까.’

이번 무대는 유독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현덕은 평가 무대를 망쳤다. 자잘한 실수는 셀 수도 없으려니와 중앙으로 나와 자신의 파트를 부를 때는 잠시 가사를 헷갈려 박자를 놓치기까지 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반대로 움직여 대열을 이탈했다.

두 개의 안무를 익힌 몸은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제멋대로 움직였다. 앗차 하는 순간마다 실수를 했다.

구경하던 연습생들은 아까 주민 때와는 다른 의미로 웅성거렸다. 단상 위 선생님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현덕은 바로 제 팀의 다른 연습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용서를 구했다. 그것 외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같은 팀 연습생들은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표정은 말과 달랐다. 그들의 비난 어린 눈빛을 받으면서 현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형, 계속 피곤해하더니……. 어디 아프거나 한 건 아니죠?”

준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현덕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피터는 굳은 얼굴로 현덕의 옆에 섰다. 큰 손은 어깨동무하듯 현덕의 어깨를 감싸 토닥여주었다.

오렌지 삼총사는 현덕의 실수를 덮어주고자 꽁꽁 뭉쳤지만, 단상 위 선생님들은 그런 셋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하루 만에 ‘트라이 온 합숙 촬영의 3대 미스터리’ 중 두 개가 사라졌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미스터리가 깨진 것이다.

오렌지 삼총사로 불리던 세 명 중 두 명, 준비와 피터는 또 B를 받았다. 나머지 한 명, 현덕이 C 평가를 받았다. 항상 안정적으로 B 평가를 받던 현덕이 아래로 쑥 꺼진 것이다.

C 평가를 받았을 때, 현덕은 담담했다. 평가가 낮게 나오리라는 걸 예감했기에, 오히려 C 정도밖에 안 떨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D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현덕의 팀에선 현덕만이 기숙사를 이동하게 되었다.

“이거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랬나요?”

오렌지 기숙사의 댄스 수업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배신감에 떨며 소리쳤다. 딱히 대답을 바라는 질문은 아니었다.

“연습 부족입니다. 안무를 제대로 숙지하지도 않고 무대에 오르다니. 부끄러운 줄 아세요!”

선생님의 꾸중에 현덕의 목이 절로 꺾였다. 현덕은 단상 위 선생님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깊이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그때였다.

“잠시만요. 이건 뭔가 잘못된 겁니다.”

단상 아래서 누군가 소리쳤다.

어수선했던 로비가 쨍-하니 얼어붙었다.

기획사의 주간 평가를 본뜬 트라이 온의 주간 평가는 지엄한 심판대였다.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평가로 결정되는 이 시간에 함부로 나댔다가 단상 위 선생님들과 촬영 스태프들에게 밉보이면? 통편집을 당하거나 괘씸죄로 낮은 성적을 받고 탈락할지도 모른다. 연습생들에겐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누구도 단상 위 평가에 항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신성한 평가에 이의를 건 것이다.

텅 빈 오렌지 기숙사 자리엔 다른 기숙사에서 오렌지 기숙사로 온 연습생들 네댓 명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현덕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 목소리만 들었다. 그 목소리가 더없이 익숙했다.

‘설마…….’

현덕은 제발 아니길 바라며 고개를 들어 레드 기숙사 쪽부터 확인했다.

자룡이 보였다. 부리부리한 두 눈은 당장 굴러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커다래져 있었다. 얼굴엔 경악, 두 글자가 선명했다.

그는 현덕을 보고 있지 않았다. 현덕은 자룡의 시선을 따라 텅 빈 오렌지 기숙사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우주민이 우뚝 서 있었다.

이럴 땐 도대체 어떤 신을 믿어야 하는 걸까. 현덕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거기 앉아들 계시는 건 전문가라는 뜻일 텐데. 사람을 제대로 평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김현덕 연습생은-”

주민의 탐스러운 입술이 열렸다. 오 팀장의 애절한 당부와 그간 현덕의 노력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무자비한 입술이었다.

그 입술을 막기 위해 현덕은 움직여야 했다.

“자, 잠깐!”

현덕은 단숨에 무대에서 뛰어내려 주민에게 달려갔다. 학교 체육 시간에 100m 달리기 수행 평가를 받을 때도 이처럼 다급하게, 빨리 달리지는 못했다. 현덕은 그야말로 날 듯이 뛰어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주민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읍!”

달려온 현덕의 가속도를 받은 두 손은 주민의 입에 철썩 들러붙었다. 주민의 이가 현덕의 손에 부딪쳤다. 혀도 닿았다.

현덕은 그 감촉을 느낄 여력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현덕은 두 손으로 주민의 주둥이를 움켜쥔 채로, 단상 위 선생님과 유진을 향해 꾸벅 허리를 굽혔다.

“우읍!”

주민은 주둥이가 잡혀 있기에 함께 어정쩡하게 허리를 접어야 했다.

현덕은 자꾸 제 손안에서 우물거리며 제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재앙의 주둥이가 미웠다. 그래서 일부러 더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우읍!”

주민은 허우적거리며 더 깊이 허리를 접어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형이 인간성이란 게 없습니다. 아주 없는 건 아니고 조, 조금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러는데, 절대 나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현덕이 애절하게 외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룡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짜입니다. 김현덕 연습생의 말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룡이 단상 위 선생님들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읍!”

주민이 입이 막혀 괴로워했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현덕과 자룡은 ‘죄송합니다.’를 이중창 부르듯 외쳤다.

그리하여, 로비는 더없이 고요해졌다. 누군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모든 사람이 방송 사고라 생각해 촬영 카메라 뒤에 선 메인 PD를 바라보았지만 메인 PD는 촬영 중단을 외치지 않았다.

메인 PD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촬영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연습생들에게 남은 희망은 단 하나, MC를 맡은 유진뿐이었다.

모두들 숨소리마저 죽인 채 단상 위에 앉아 있는 유진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을 느낀 유진은 눈을 댕그랗게 뜨고는 메인 PD에게 입을 벙끗거렸다.

‘나? 나아? 나?’

그녀의 표정과 입 모양은 매우 다급하고도 절박해 보였다.

호텔 로비의 침묵은 점점 더 길어져 가고 있었다.

“읍읍!”

주민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현덕은 그의 주둥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세상 멸망의 날까지 이 주둥이를 놓지 않으리라.

‘자룡 형 말이 맞았어. 재앙의 주둥이!’

과연 주민은 자룡의 말마따나 재주 있는, 아니 재주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자, 여러분!”

결국 유진이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짝, 쳤다.

“거기 세 연습생은 한 기획사 출신이죠? 세 연습생의 우정, 아주 잘 보았습니다. 서로 다른 기숙사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마음은 계속 간직하고 있었군요. 아주 보기 좋아요.”

유진은 유려하게 멘트를 쳐나갔으나 가만히 들어보면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갑작스러운 방송 사고에 대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멋있었으며,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방송 사고에 당황하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노력 덕택에 현덕과 자룡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비로소 깨달았다.

‘아……. 망했다.’

자룡은 두 눈을 감으며 현실 도피를 시도했다.

‘……죄송해요, 오 팀장님.’

현덕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촬영 카메라를 때려 부숴서라도 촬영 분량을 없애려 시도했을지 모를 오 팀장을 떠올렸다.

현덕과 자룡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 위로 쏟아지는 유진의 칭찬 아닌 칭찬 세례를 견뎠다.

정작 방송 사고를 일으킨 주민은 담담해 보였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듯했다. 그저 제 입을 오리 주둥이로 만들려는 듯 꽉 잡은 현덕을 못마땅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당황하여 횡설수설 하던 유진은 금세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그녀는 이내 트윈 트윙클을 촬영하던 당시 일어났던 깜찍한 방송 사고를 말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러는 동안 촬영 스태프들은 촬영 카메라 뒤에서 십수 개의 스케치북을 들고 흔들었다.

자룡과 현덕 옆에 있던 연습생들이 슬쩍, 자룡과 현덕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그들 덕분에 자룡과 현덕은 고개를 들어, 자신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스케치북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김현덕 연습생! 입 놔!!!

- 김현덕 연습생, 무대 위로 go go!

- 빨리 제자리에 그냥 앉아요.

- 서 있지 마! 앉아!

- 우주민, 앉아!

하나같이 휘갈겨 쓴, 다급함이 묻어나는 메시지였다.

스케치북을 보자마자 자룡은 후다닥 자리에 주저앉았다. 현덕은 주저하며 주민의 주둥이를 놓아주었다.

“너-”

주민은 입이 자유로워지자마자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뗐다.

“하지 마!”

현덕은 기겁하며 주민의 발을 콱 밟았다.

“윽!”

주민이 제 발을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현덕은 그런 주민의 양어깨를 꾹꾹 눌렀다. 그 잠깐 새 현덕은 간절히 소망했다. 지금 이 순간 이 우주민이라는 인간이 자룡이 그토록 외쳤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이렇게 꾹 눌러주는 것만으로도 땅에 박혀 다시는 고개를 내밀지 못할 텐데.’

시간을 거슬러 다시 십 대가 된 삼십 대도 있는데, 왜 우주민은 여전히 인간 우주민인걸까.

“아므 마도 하지 마요.”

현덕이 이를 꽉 깨물고 입술을 움직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발음이 괴상한 게 한국말처럼 들리지 않았지만, 현덕은 주민이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므니 있어요.”

그야말로 공기 반, 소리 반을 섞은 협박이었다.

현덕은 다시 한번 주민의 양어깨를 힘주어 꾹 누르고는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형아.”

준비가 현덕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현덕은 아무 생각 없이 준비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지금 현덕의 머리는 그야말로 텅 빈 상태였다.

‘무상무념이 이런 느낌일까. 난 무교인데 이대로 해탈을 할 수도 있을까?’

겨우 드는 생각이라고는 이 정도가 고작이었다.

옆에 선 피터는 작게 한숨을 내쉴 뿐, 현덕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주민과 현덕과 자룡, 셋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촬영은 다시 물 흐르듯 이어졌다. 세 사람으로 인한 소동이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유진은 단상 위 선생님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선생님들은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현덕이 속한 팀의 무대를 평가했다. 모두 현덕의 오늘 무대를 아쉬워했다. 주민이 태클을 걸기 전처럼 쎈 피드백은 없었다.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평가들이었다.

현덕은 무대 피드백을 멍하니 들었다. 이전까진 손에 펜과 노트가 없는 걸 아쉬워하면서 피드백을 집중해서 듣고, 자신이 고칠 점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지금 현덕의 정신은 온통 주민에게 가 있었다. 혹여나 주민이 또 일어서 소리칠까 싶어, 노심초사하며 주민만 쳐다보았다.

무대 위로 오르기 전 이를 악물고 경고한 게 통했는지, 다행히도 주민은 얌전했다. 물론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현덕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주민을 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리에 매달린 준비가 버거울 만치 피곤했다.

현덕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무심코 오렌지 기숙사 쪽으로 가려다가 몸을 돌렸다.

주민과 현덕, 자룡이 기운을 한 번 빼준 덕분인지, 이후 촬영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레드 기숙사의 무대가 이어졌고, 자룡은 무난하게 A 평가를 받았다.

레드 기숙사 팀의 무대는 가장 완성도가 높고 멋있었다. 자룡도 실수 하나 없이 완벽했다. 단상 위 선생님들은 당장 이 팀 그대로 데뷔해도 될 것 같다고 칭찬했다.

현덕도 눈이 즐겁고 귀가 호강하는 무대를 즐기며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쳤다. 다만 무대의 완성도에 감탄한 것과는 별개로, 현덕은 무대 중앙에 소혁이 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란색 티를 입고 옐로 기숙사의 공용 연습실로 들어가자, 기존의 옐로 기숙사 연습생들이 박수치며 환영해주었다.

옐로 기숙사의 기숙사장은 손정모였다. CG인가 의심이 들 만큼 오뚝한 코가 인상 깊은 외모였다. 잘생긴 호남이었지만 주민에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현덕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정모의 머리는 강철 스프링 수준의 반곱슬 머리였다. 고데기로 억지로 펴 내린 상태였는데, 고데기의 열기도 머리카락의 찰진 웨이브 파워를 이겨내기 힘든지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의 반곱슬 머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분명 로비 무대에서 봤던 머리는 찰랑찰랑한 생머리였는데, 연습실에 와서 보니 다시 돌돌 말려 있었다.

“여, 반가워. 김현덕 연습생. 열여덟 살 맞지? 난 스물셋이니까, 말 놓을게. 너도 마음 편할 때 아무 때나 말 놔. 형이라고 불러. 어색하면 계속 존댓말 써도 되고.”

정모는 현덕을 거리낌 없이 환영했다. 태평하니 웃는 얼굴을 보니 조금 전까지 주민 때문에 얻었던 마음의 병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현덕은 그가 내민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맞잡은 손아귀 힘이 꽤 세서 손바닥이 아팠다.

정모는 사람 좋게 웃으며 제 옆에 있는 다른 연습생을 소개해주었다.

“난 기숙사장이라 바쁘니까, 뭔가 궁금한 게 있다거나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하면 이 형한테 부탁해.”

정모는 현덕과 키가 비슷했는데, 그 옆에 선 연습생은 정모보다도 훨씬 컸다.

운동선수인가 의심이 될 만치 건강해 보이는 정모와 달리, 옆의 연습생은 병약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비쩍 말라서 안 그래도 큰 키가 더 커 보였다.

‘예쁘다.’

현덕은 내심 감탄했다. 더불어,

‘어디 아픈가?’

초면에 걱정이 될만큼 안색이 창백했다.

그는 병약미 넘치는 미청년이었다. 머리는 현덕과 같이 흑발이었다. 머리카락이 먹처럼 새까맸다. 얼굴은 몸에 피가 없는 사람처럼 창백했다. 까만 머리에 창백한 얼굴의 조화가 예술이었다.

두 연습생은 무척 대조적이었다.

정모는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를 자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한여름의 바닷가를 생각나게 했다.

그와 반대로 정모 옆의 연습생은 눈보라가 내리는 겨울에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막상 그런 겨울날 내놓으면 단번에 죽어버릴 것 같은 사람이었다. 늦가을, 커다란 나뭇가지에 달랑달랑 매달린 마지막 잎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주유호. 우리 기숙사에서 제일 형이야.”

정모가 창백한 안색을 한 연습생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현덕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반가워요.”

그는 작게 웃으며 현덕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당장이라도 아스라이 사라질 듯 위태로워 보여, 현덕은 여러 번 눈을 깜박여야 했다.

“나이는……. 읍!”

정모가 유호의 나이를 말해주려 할 때였다. 유호가 번개같이 정모에게 날아들었다. 조금 전까지 안쓰러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병약미를 자랑하던 사람답지 않았다.

유호는 정모의 입을 찰싹, 찰싹 내려치고는 다시 현덕을 돌아보았다.

“딱 봐도 내가 나이가 좀 많아 보이지요?”

“아, 아니요. 절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덕은 군기가 바짝 들어 고개를 붕붕 저어 보였다.

“고마워요.”

유호는 현덕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중에도 계속 정모의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읍! 그만해, 읍! 아파! 형, 압! 파!”

정모는 어떻게 해서든 유호의 나이를 알려주려고 애썼으나 유호는 방어율 100%를 자랑했다.

“으윽, 두고 봐. 오늘의 치욕은 잊지 않겠다.”

정모는 퉁퉁 부은 입술을 내밀고는 다른 연습생들 속으로 쏙 사라져버렸다.

유호와 둘이 남게 된 현덕은 유호의 손을 살짝 경계했다. 현덕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는지, 유호는 자신은 아무나 함부로 때리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얼마나 친해져서 저렇게 찰지게 입술을 때리고 얻어맞을 수 있을까. 궁금해진 현덕은 유호에게 물었다.

“손정모 연습생이랑은 같은 기획사세요?”

“아니요. 여기 와서 처음 만났어요.”

“아…….”

현덕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유호와 현덕도 여기 와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

현덕은 걱정과 달리 쉽게 옐로 기숙사에 적응했다. 정모와 유호 덕분이었다.

더불어 룸메이트와도 금세 친해졌는데, 룸메이트의 이름은 황한승이었다. 한승은 앞서서 D와 F 평가를 번갈아 받아 그린 기숙사와 블루 기숙사를 왔다 갔다 하다가 이번에 C 평가를 받아 옐로 기숙사로 올라온 연습생이었다.

한승을 처음 봤을 때 현덕은 두 번 생각 할 것 없이 허리를 푹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현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같은 평가 등급의 연습생이라고는 하나 나이 차이는 존중해야 할 마땅한 예의범절이었다. 현덕은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승에게 정중하게 먼저 인사를 하며, 어른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했다.

“저…….”

그런 현덕에게 한승은 머뭇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동생이에요, 형.”

“……네?”

현덕은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앞에는 스물일곱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청년이 서 있었다. 맹덕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느낌이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근육 진 가슴이 빵빵한 게, 지금 입고 있는 노란색 티가 너무도 작아 보였다. 차라리 슈트가 잘 어울릴 듯했다. 슈트를 입고 주민과 함께 서면 잘 빠진 양복 화보를 찍는 것처럼 보일 듯하건만.

“저 아직 열일곱 살인데…….”

청년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현덕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했네요.”

현덕은 다시 허리를 굽혔다.

가볍게 사과를 하고 악수를 청해도 될 텐데. 이상하게도 한승 앞에만 서면 나이 차 많이 나는 어른을 대하듯 절로 허리가 굽혀졌다.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편하게 해주세요. 저 외동이라서 여기서 형들 많이 사귀고 싶었거든요.”

한승은 현덕의 양어깨를 잡고 쑥- 무를 뽑듯 현덕을 들어 올렸다. 양복이 더없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원숙미가 느껴지는 얼굴이 발그레했다.

“아, 네에. 네.”

현덕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승의 진심이 느껴졌으나 그의 비주얼이 아직은 버거웠다.

한승은 그 외모 때문에 그린 기숙사의 첫 기숙사장이 되었다. 하나 외모와 다른 내향적이고 부끄러움 많은 성격 탓에 고생이 심했다. 그 때문에 실의에 빠져 기가 죽어 있다가 F 평가를 받고 블루 기숙사로 내려갔다. 블루 기숙사에서는 괜히 제순과 지용의 견제를 받으며, 다른 연습생들과 친해지지도 못한 채 묵묵히 연습만 했다.

한승이 과묵하게 연습만 하는 모습을 보고, 블루 기숙사 연습생들은 ‘저 형님이 블루 기숙사로 떨어진 게 열 받아서 완전 칼을 갈며 연습에 매진하시는구나. 우리가 감히 어슬렁거리며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겠다.’라며 더욱 그를 멀리했는데. 사실 연습생들과 친해지지 못해 잔뜩 의기소침해져 있는 상태였다.

열일곱 살이 스물일곱 살로 보이는 인상. 노안이라면 노안이겠으나 무척 근사한 노안이라 이 노안을 노안이라고 말해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한 고민과는 별개로 현덕은 한승과 금방 친해졌다. 둘 다 다른 기숙사에서 갑자기 툭, 옐로 기숙사로 떨어진 연습생들이었다. 친한 연습생 한 명 없는 낯선 기숙사에서 같은 숙소를 쓰는 룸메이트가 되기까지 했으니. 친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한승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한승에게 말을 놓는 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현덕은 한승, 정모, 유호와 함께 팀을 꾸렸다. 이 주 뒤에 있을 마지막 평가에서 최소한 C 등급을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막판에 A 등급을 한번 받아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옐로 기숙사에 합류한 지 채 하루가 되지도 않아, 현덕은 정모와 유호가 꽤나 유명인사임을 실감했다.

기숙사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습생들이 있었다. 레드 기숙사는 원소혁과 박자룡, 두 앙숙이 유명했다. 오렌지 기숙사에는 B 평가 붙박이 오렌지 삼총사가 있었다. 비록 현덕이 떨어져 나오긴 했지만.

옐로 기숙사에는 일명 퉁퉁이와 비실이로 불리는 정모와 유호가 메인 캐릭터였다. 보기만 해도 건강한 정모와 누가 봐도 아파 보이는 유호는 함께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났다. 정모는 더욱 씩씩해 보였고, 유호는 더욱 병약해 보였다.

“내가 퉁퉁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난 살찐 게 아니라, 다 근육이라고.”

정모가 자신의 팔뚝을 접어 알통을 자랑하며 투덜댔다.

“그럼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뭉치와 세모는 어때요?”

한승이 수줍게 건의했으나 정모가 단호히 거절했다.

“걔도 그거 다 살이잖아.”

그런데 옐로 기숙사에는 정모와 유호만큼이나 튀는 연습생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이완용 연습생.

오랜만에 들어보는, 듣기만 해도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수많은 독립투사 조상님들이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소재로 꽤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세트장 촬영에서의 첫인상을 기억하고 있던 현덕으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우리 부모님께 물어봐요, 한자가 다르다니까! 이 이완용이 그 이완용이 아니라고요. 만약에 한자가 똑같으면 제가 이완용 말고 저완용 할게요. 네?”

독특하다면 독특한 자신의 이름을 개그 소재로 삼고 있었다. 누구나 들으면 한 번쯤 피식, 웃게 만드는 소리였다.

완용은 옐로 기숙사에 온 현덕을 보고는 대번 인상을 찡그렸다. 괜히 옆으로 지나가며 어깨를 툭, 치곤 하였으나 그런 텃세는 한 번뿐이었다. 현덕이 기숙사장인 정모와 기숙사 최고령자인 유호, 기숙사 최고 노안인 한승과 함께 다니자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완용과 카메라가 없는 사각지대에서 한 번 더 말다툼하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긴장하던 현덕은 허탈했다.

하지만 곧, 현덕은 완용따윈 신경 쓸 수 없게 되었다. 점심 식사 시간 후 자유 시간. 현덕은 무시무시한 오라를 뿜어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룡을 보았다.

“아……. 형, 아, 안녕하세요.”

현덕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도망쳐야 한다는 위험 신호가 머릿속에 울렸다. 현덕은 본능의 경고에 충실히 따랐다. 문제는 현란한 댄스로 날렵하게 다져진 자룡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망 시도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김현덕, 튀냐?”

자룡은 돌아서는 현덕의 뒷덜미를 단숨에 붙잡았다.

“아, 아뇨.”

현덕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트, 트림이 나올 거 같아서. 형 앞에서 그러기 싫어서 돌아선 거였어요. 형, 오늘 저녁밥 엄청 맛있던데, 저녁 맛있게 먹었어요?”

“…….”

자룡은 현덕의 물음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현덕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는 그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현덕을 쏘아 보았다.

“너지. 니가 우주민 그 자식 춤 가르쳐준 거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정치인들은 이 말만 하면 대부분 무사통과던데. 자룡 앞에 선 현덕에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고개 돌리지 말고 나 똑바로 봐라.”

자룡의 목소리가 팍 낮아졌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았다. 맹덕에게 속아 귀신의 집을 처음 들어갔을 때 경험했던 것과 비슷했다.

“김현덕, 형이 우습냐? 눈 돌리지 말고 똑바로 나 보고 말해.”

고개를 돌릴 수 없으면 눈이라도 피하자 싶은 마음에 눈을 굴렸건만.

“아, 아뇨.”

현덕은 얼른 자룡과 눈을 마주쳤다. 부리부리한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기까지 하고 있었다.

“너 이번 평가 준비 기간에 뭐 했어. 니 거 연습 안 하고 우주민, 그 자식 거 도와줬지?”

“이, 이미 끝난 일인데요. 형. 우리 과거는 흘려보내고 진취적으로 다음번 평가를 준비하-”

“야, 김현덕!”

“넵.”

“뭐? 이미 끝난 일? 김현덕, 너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내가 너 연습 도와준다니까, 어? 내가 원소혁 그 자식한테 메인 파트 빼앗길까 봐 안 되겠다고, 괜찮다고 그랬지.”

“형, 그러고 보니 이번 무대에서 메인이 형이 아니라 원소혁 연습생이던데-”

“말 돌리지 마라.”

“…….”

“나한테는 그렇게 말해놓고 넌 나 몰래 우주민 도와주고, 니 평가를 떨어트려? 야, 김현덕. 넌 내가 우습냐?”

다가오는 자룡을 피해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던 현덕은 어느새 복도 벽까지 몰렸다. 자룡이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퍽 소리가 났다.

“형! 손, 손 다쳐요!”

현덕이 기겁하며 자룡의 손을 붙잡았다. 자룡은 현덕의 손을 거칠게 털어냈다.

“자꾸 말 돌릴래? 지금 내 손이 문제야? 고개 돌리지 말고 나 봐라.”

자룡의 목소리가 빈 복도에 낮게 깔렸다.

평소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자룡의 모습에 현덕은 얼떨떨했다.

자룡은 뜨거운 사람이었다. 언제나 열정에 가득 차 있었고, 목표를 향해 제 몸을 불태워 달려갔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 줄 알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 자룡이건만.

눈앞의 자룡은 차가웠다. 불이 뜨겁다 못해 너무 뜨거워지면 차가워지기라도 하는 걸까.

“너, 하- 씨발.”

자룡이 숨을 푹 내쉬며, 한동안 입에 담지 않던 욕을 말했다.

“헉, 형!”

“야- 흡!”

“욕하면 안 돼요.”

현덕은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자룡의 입을 막았다.

“아!”

그리고는 당황했다.

‘지금 이럴 타이밍이 아닌데…….’

분명 지금은 자룡에게 혼나는 상황이었다. 미안하다고 백번 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욕을 하냐고 입을 막고 말았다.

“아, 저, 형……. 그게요. 형 말하는 게 듣기 싫다는 게 아니라. 형, 욕하면 안 되니까.”

현덕은 슬그머니 손을 내리며 하하, 웃었다.

몸에 익은 습관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평소 자룡의 500원을 지키기 위해 자룡의 씨앗 뿌리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도왔던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고 보면 난 두 형의 입마개인가.’

주민의 재앙의 주둥이. 자룡의 씨앗 뿌리는 입. 언제나 현덕은 이 작은 두 손으로 그 두 재앙을 막아오지 않았던가.

‘그간의 공로를 봐서라도 지금 화내고 싶은 마음을 한 번만 참아주면 좋겠다.’

현덕은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슬쩍 고개를 숙였다.

“나 원, 참.”

그런 현덕의 머리 위로 자룡의 김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형?”

현덕은 슬그머니 눈을 들어 자룡을 보았다.

“왜, 인마.”

여전히 거칠었지만 아까처럼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화 좀 가라앉았어요?”

“내가 화난 건 알겠어?”

“그럼요. 제가 잘못했는걸요.”

“뭘 잘못했는데?”

“……그냥, 전부 다요?”

현덕이 자룡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자룡은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서,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댔다. 화가 한풀 꺾여서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넌 모를 거야.”

자룡이 스르륵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현덕은 자룡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웅크려 앉았다.

“형, 미안해요.”

“그러니까 뭐가 미안한데.”

“그냥, 전부 다요.”

“정말 잘못한 거 같고 미안한 거 같기는 해?”

“네.”

현덕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덕아.”

자룡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현덕을 불렀다.

“네, 형.”

“나는 너한테 항상 고마워. 그리고 꼭, 너랑 같이 데뷔하고 싶어.”

“…….”

현덕은 대답할 수 있을 만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자룡은 현덕의 대답을 기다리다 못해 고개를 들었다. 착 가라앉은 까만 눈동자가 현덕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처럼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눈이 아니었다. 식어버린 용암이 덮인 호수처럼 딱딱하고 차가웠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꼭 말해줘.”

“형, 저는요-”

“하지 말라고는 안 할게. 니가 하지 말라고 안 할 녀석은 아니잖냐. 순해 빠져서는 묘하게 고집이 세, 너는.”

자룡이 픽, 웃었다. 어쩐지 힘이 빠진 웃음이었다.

“뭔 깡으로 너 혼자서 우주민 자식을 감당해내려고 했냐.”

“음, 그러게요.”

혼자서는 버겁다고 생각해서 자룡을 찾아갔었다. 끝내 자룡에게 도와달라고는 말하지 못했지만.

아마 자룡이 안다면 꽤나 자책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믿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구나, 하고. 그렇기에 현덕은 사실 셋이서 같이 연습하고 싶었다는 말을 꾹 삼켰다.

“꼭 같이 데뷔하자, 현덕아.”

“……네, 형.”

자룡이 손을 내밀었다. 현덕은 그 손을 잡았다.

자룡의 손은 크고 단단했다. 그 손이 보호하듯 현덕의 손을 감쌌다. 거칠지만 조심스러운 온기에 현덕은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

세 번째 평가 무대에 서고 이틀 뒤.

기숙사마다 마지막 평가 무대를 준비하기 위한 팀이 결정됐다. 각 팀은 무대에 올릴 곡을 정하고 안무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각 기숙사에 미션 봉투가 도착했다.

연습생들은 각 기숙사의 공용 연습실에 모였다. 기숙사장은 촬영 스태프에게서 미션 봉투를 받아 들었다. 모두 평소처럼 인터뷰라든가 보물찾기, 담력시험 등 가벼운 미니 게임일 거라 예상했다. 현덕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연습생들이 두두두두두두- 입으로 북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정모는 다른 연습생들에게 미션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연습생들 앞에 선 채로 미션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안에 든 미션 내용을 확인하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말도 안 돼!”

어쩐지 다른 기숙사의 연습실에서도 비슷한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뭐야, 뭔데!”

맨 앞에 앉아 있던 완용이 번쩍 일어서더니, 자신을 찍는 촬영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그려 보이고는 정모에게서 미션 카드를 빼앗았다.

그리고는

“미친 %$#!”

방송으로 나간다면 분명 ‘삐-’로 처리될 욕설을 내뱉으며 미션 카드를 집어 던졌다.

미션 카드가 팔랑팔랑 허공을 날았다. 현덕의 앞에 앉아 있던 한승이 손을 뻗어 미션 카드를 잡았다. 한승은 미션 카드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다시 정모에게 건네주었다.

정모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미션 내용을 연습생들에게 읽어주었다.

이번 주 금요일. 그러니까 정확히 5일 뒤.

여러분은 마지막 평가 무대에 서게 됩니다.

이전 평가보다 일주일 앞당겨졌지요.

D-5.

여러분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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