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6. (225/228)
  • 외전 16.

    “뭐, 뭐가 괜찮아?”

    “…….”

    당황한 나는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러자 강유현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나는 그 얼굴을 애써 외면했다.

    “말했잖아. 더는 못 기다린다고.”

    “읏……!”

    강유현의 손이 어깨를 꽉 잡았다. 흥분한 강유현에게서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결국 고개를 돌려 강유현의 얼굴을 마주하자, 형형한 두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더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내가 좋다고 했잖아.”

    “그건……!”

    좋다고 했지, 이렇게 갑자기 섹스 한다고는 말 안 했어!

    곧바로 반박하려고 했는데, 묘하게 풀이 죽은 강유현을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흉흉한 얼굴을 하더니.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그건…… 맞는데.”

    어쨌든 나도 강유현이 좋아서 고백한 건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유현의 얼굴이 바싹 다가왔다.

    “그럼 더 밀어 내지 마.”

    “그…….”

    갑자기 저렇게 처량한 얼굴을 하니까 더는 밀어 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전처럼 강압적으로 굴면 억지로 밀어 내기라도 할 텐데. 언뜻 강유현에게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몸은 경직되었다.

    “흡…….”

    게다가 왜 키스는 이렇게 부드럽게 하는 건데. 항상 거칠게 하더니, 지금은 새가 쪼듯이 깃털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간질간질한 느낌에 몸 안쪽이 저릿해질 정도였다.

    “으, 야, 그만…….”

    하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며 강유현을 밀어 냈다. 그러자 키스를 멈춘 강유현이 나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처량한 표정을 짓는 강유현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지금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우리 이런 건 처음……이잖아? 안 그래?”

    “……그래서?”

    “그러니까 조금 더 준비하고…… 응? 나도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 하고…….”

    “괜찮아. 나한테 맡겨.”

    “뭐…… 맡기긴 뭘 맡겨. 너도 처음이잖아!”

    나는 씩씩대며 외쳤다. 내가 아직 동정인 것처럼, 강유현도 그럴 게 뻔했다. 나는 강유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설에서 히로인 손도 겨우 잡았던 강유현인데.

    비록 시스템에게 휘둘려 나와 스킨십을 이것저것 하긴 했지만, 그래도 동정인 건 맞다. 지금은 나한테 푹 빠져서 앞뒤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은데, 그럴수록 우리는 신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강유현이랑 하게 되면…… 내가…… 밑일 거 아니야? 당연히 해 본 적은 없지만 남자들이 섹스 할 때 어떻게 하는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설마하니 내가 강유현에게 넣을 리는 없고, 내가 넣어지는 입장일 텐데, 섣불리 하다가 다치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괜찮다니까.”

    강유현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점점 더 미덥지 못했다. 나는 눈살을 팍 찌푸렸다.

    “읏…… 야……!”

    다시 몸을 숙인 강유현이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간지러운 느낌에 짜증을 내며 강유현의 어깨를 밀어 냈다. 그러자 강유현의 눈썹이 또 축 내려갔다.

    “너는…… 나랑 하기 싫어?”

    “뭐?”

    “나랑 그렇게 하기 싫냐고.”

    “아니…….”

    강유현의 말에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성적 호기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좋아하는 상대와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다. 내가 강유현을 밀어 내는 건 당연히 싫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울컥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자꾸 밀어 내기만 하잖아.”

    “그건, 싫은 게 아니고 준비가 안 된 거 같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잘하면 되는 거잖아.”

    “……!”

    얘는 대체 아까부터 왜 이렇게 자신감에 차 있는 거지?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강유현을 쳐다봤다. 저 진지한 얼굴은 자신이 실패할 경우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정도 소양은 기본으로 갖춰야 남자 주인공을 할 수 있는 건가? 너무 자신감에 차 있어서 어디부터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던 나는 강유현이 손으로 슥 밀자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으앗!”

    “넌 가만히 있어도 돼.”

    “뭐……!”

    “내가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

    강유현의 손이 옷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판판한 가슴을 더듬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왜 볼 것도 없는 남자 가슴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이러는 건 그저 간지럽기만 할 뿐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가슴을 더듬는 강유현의 손을 내려다봤다.

    티셔츠를 반쯤 올리고 가슴을 만지는 손은 컸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섬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정말 간지럽기만 할 뿐인…….

    “흣……!”

    손가락이 가슴 끝을 비틀자 마치 전기가 감전된 것처럼 찌릿했다. 순간 이상한 신음이 터져 나와 다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당황하며 가슴을 보다가 고개를 들자 강유현의 검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 아니, 이건…….”

    “…….”

    “잠깐…… 그만…… 흐읏……!”

    손가락이 집요하게 젖꼭지를 비틀었다. 계속해서 가해지는 자극에 몸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일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젠장, 이게 뭐야. 그냥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서 기분이 더 이상했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최대한 신음을 참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한 신음이 나올 것 같았다.

    “으읏, 으…… 잠깐……!”

    더 환장하는 건 그다음의 일이었다. 가슴을 만지던 강유현이 붉은 혀를 내밀어 핥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따끔거리는 통증이 남아 있는 젖꼭지를 물컹한 혀가 핥으며 쓸어 올리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서 강유현의 머리를 치우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을 빠는 힘이 더 강해졌다. 쯉쯉거리는 민망한 소리가 귀를 울렸다.

    “윽…… 흐읏…… 그만…….”

    빨리는 건 가슴인데 자꾸만 허리가 떨렸다. 나는 강유현의 머리를 밀어 내다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꽉 잡았다.

    “헉……!”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강유현이 급기야는 이를 드러내 가슴과 유두를 깨문 것이다. 손가락으로 비틀었을 때와는 다른 감각이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나는 신음이 터져 나올 뻔한 입을 한 손으로 막으며 머리를 뒤로 꺾었다.

    “……기분 좋았어?”

    “하아, 하…….”

    짓궂게 묻는 강유현의 입술이 젖어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침 범벅이 된 입술을 보자 괜히 민망해져 차마 강유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강유현은 나를 아래에 깔아뭉갠 채로 옷을 벗었다. 코트는 어느 사이엔가 증발하듯이 사라져 있었고, 목 끝까지 갑갑하게 채우고 있던 검은색 폴라티를 벗어 침대 밖으로 던졌다.

    소설에서 강유현은 누구의 앞에서도 옷을 벗지 않았다. 유일하게 코트를 벗은 건 성유빈과 세(Sæ) 던전에서 둘만 다른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중간 보스 몬스터의 디버프 스킬에 추위를 느낀 성유빈에게 코트를 벗어 주었던 것이 전부였다.

    물론 숙소에서 코트까지 풀 장착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답답해 보이는 저 목 폴라티는 한 번도 벗지 않았다. 나는 놀란 눈으로 강유현의 맨몸을 쳐다봤다.

    “너도 벗어.”

    “뭐? 야……!”

    강유현은 무드도 없이 다짜고짜 내 옷을 벗겼다. 어차피 반쯤 벗고 있었던 티셔츠는 간단하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고, 사수하고 싶었던 하의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벗겨졌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내 몸을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윽…… 제길.”

    내 몸보다는 드러난 강유현의 몸을 더 똑바로 보질 못하겠다. 알몸이 된 거에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데, 왜 같은 남자의 몸이 더 야하게 느껴지는 거지. 나는 두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강유현의 몸을 흘끗거렸다.

    생각보다 강유현의 몸은 막 우락부락하지 않았다. 대신 보기 좋게 자리 잡은 잔근육이 많고 탄탄해 보였다. 그리고 상처가 많았다. 몸이 회복되어도 다 사라지지 못한 상처 자국들이 목 끝까지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목티를 고수하는 건가 싶었다.

    다른 것보다도 강유현의 몸을 보는 게 나뿐이라는 생각에 흥분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강유현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긴 상처 자국을 살짝 쓰다듬었다.

    “……!”

    “아…… 아파?”

    “……아니.”

    가슴에 있는 흉터는 강유현의 몸에 남은 상처 자국 중에서 제일 컸다. 이 정도면 상처를 입었을 당시 치명상에 가까웠을 것 같은데, 처음부터 SS급으로 각성한 강유현이 그런 상처를 입은 게 의외였다.

    “이 흉터는 내가 게이트 안에서 처음 입었던 상처야.”

    “……그래?”

    “그때 처음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

    “…….”

    처음 입은 상처가 치명상에 가까운 공격이었다면, SS급의 패시브 스킬을 뚫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였을 것이다. 적어도 강유현과 비슷한 등급이었을 텐데. 어떤 몬스터였는지 짐작이 돼서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때 강유현이 입은 상처는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었을 테니까.

    “……이제 아프지 않은 거지?”

    “그래.”

    그렇게 대답한 강유현은 홀가분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도한 내가 손을 밑으로 내렸을 때였다.

    “그러니까 마음껏 만져도 돼.”

    “……!”

    밑으로 내렸던 내 손을 잡고 끌어 올려 손바닥에 입을 맞춘 강유현이 씩 웃었다. 나는 당황한 눈으로 강유현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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