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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3. (222/228)
  • 외전 13.

    “너, 어떻게…….”

    “……!”

    그러자 강유현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나는 흠칫 놀라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강유현은 얼굴을 구긴 채로 다가와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았다.

    “당장 그 몸에서 나와!”

    “뭐, 뭐?”

    “어서!”

    다짜고짜 윽박지른 강유현이 내 양팔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지금 빙의한 몸은 비각성자인지, 아니면 낮은 등급의 능력자인지는 몰라도 강유현이 흔드니까 골수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만두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형편없이 흔들렸다.

    “으윽…….”

    “……!”

    뒤늦게 내 몸 상태를 깨달은 강유현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직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유현은 나를 아무 말 없이 내려다봤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려고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대체 강유현이 어떻게 나를 알아본 거지? 다른 사람 몸에 빙의한 걸 알아볼 방법은 없을 텐데. 아니면 SSS급으로 각성하면서 새로운 스킬이라도 얻은 건가? 나는 떨리는 눈으로 강유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안 거야?”

    “…….”

    내 물음에 강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두 팔을 잡고 있는 강유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걸 꾹 참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 스킬로 아무 정보도 뜨지 않는 건 다른 세계에서 온 너뿐이니까.”

    “……!”

    생각하지도 못한 말이었다. 나는 그제야 강유현의 눈을 파랗게 만드는 스킬에 대해 떠올렸다. 능력자의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절대신의 눈’으로 강유현이 알지 못하는 정보는 없었다. 설마 처음부터 이방인인 나는 강유현의 스킬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건가? 그래서 처음에 나에게 흥미를 가졌던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강유현이 나에게 집착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라고 해도 그런 수상한 인물은 곁에 두고 감시하고 싶어지겠지. 이제야 겨우 강유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내가 수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네.”

    “그래. 네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확신한 건 최근이지만.”

    “아…… 그래.”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요툰헤임 던전 싸움이 끝난 뒤 내가 로키 신과 한 대화를 엿듣고 완전히 확신한 거겠지. 나도 이제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팔을 잡은 강유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계속 내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아니, 이거는…….”

    심단테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한 임시 빙의인데, 이걸 강유현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면 내가 전부터 심단테와 연락하던 것도 전부 말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왜인지 지금 상황이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유현은 이미 내가 다른 세상에서 온 빙의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걸 신경 쓰고 경계하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별 의심을 다 했으니까. 그런 강유현이 내가 빙의한 방법을 추적하지 않았을까?

    나는 설마 하는 눈으로 강유현을 쳐다봤다. 그리고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심단테도 흘끗거렸다. 이채진이 말했던 대로 박윤성이 심단테의 위치를 알아내고, 강유현은 박윤성에게 임무를 받아 심단테에게 자기들을 도우라며 협박하고 있던 중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으악, 저거 완전 미친놈이라구요!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보완한 QED-07를 찾아내 부수려고 했다니까요!”

    “뭐?”

    심단테가 외친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로 강유현이 그 기계에 대해 알고 있었단 말이야? 나는 놀란 얼굴로 강유현을 올려다봤다.

    “내가 모르는 줄 알았어?”

    “……!”

    강유현의 웃는 얼굴이 조금…… 아니, 많이 무서워 보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양팔이 꽉 잡혀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내 말을 먼저 들어 봐. 확실히 처음에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고 그 기계를 보완하는 걸 나도 돕긴 했는데…… 이젠 안 그런다니까? 응?”

    “그래도 그 빌어먹을 기계가 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네 생각이 나중에 바뀔지도 모르잖아.”

    “아니, 그건…….”

    내가 무슨 날개 옷을 빼앗긴 선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대화의 흐름인가 싶었다. 그야 나란 인간은 수틀리면 도망갈 생각부터 하겠지만…… 아니,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강유현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난 너를 못 믿어.”

    “으윽.”

    “역시 그 빌어먹을 기계를 부숴야겠어.”

    “잠깐……!”

    내 팔을 놓은 강유현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기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심단테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으아악!”

    “아니, 심단테는 죽이면 안 되지!”

    “상관없어. 이 새끼가 살아 있으면 또 기계를 만들 테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아니, 잠깐, 잠깐만……!”

    검을 치켜든 강유현은 그대로 심단테와 함께 기계를 부숴 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곤란했다. 심단테가 죽으면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여러모로 심단테는 아이템 제작자로서 유능한 인물이었다. 성격이 좀 괴팍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죽이기엔 아까운 능력자였다.

    하지만 내 힘으로는 분노한 강유현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당황한 채 이를 악물었을 때였다.

    “그쯤 하시죠. 강유현 능력자.”

    “……!”

    누군가가 손을 뻗어 강유현을 막았다. 강유현과는 상반된 기운이 방 안을 꽉 채웠다. 나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박윤성 마스터……?”

    강유현의 앞을 막은 건 박윤성이었다. 서글서글하게 웃던 평소 얼굴과 달리 지금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강유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심단테는 죽이기 아까운 인물입니다. 두 분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능력자죠.”

    “비키십시오. 박윤성 마스터.”

    “정 그러면 계약서를 쓰면 되지 않습니까.”

    “…….”

    계약서. 그 방법이 있었구나. S급 계약서를 종이 뭉치처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니, 아무리 심단테라고 할지라도 S급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심단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악마 같은 인간들……!”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군요. 심단테 능력자. 저는 오딘 길드의 마스터인 박윤성입니다.”

    “알고 있어……!”

    심단테가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이제 꼼짝없이 불공정 거래를 해야 하니 억울한 게 당연했다. 그래도 뭐……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이것만큼은 나도 어떻게 해 줄 수 없었다.

    “윽…….”

    일이 대충 해결되는 걸 보고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시간이 다 된 건지는 몰라도 머리가 핑 도는 느낌과 함께 몸에서 힘이 풀렸다. 땅에 풀썩 쓰러지려는 내 몸을 누군가가 다가와서 끌어안았다.

    “한이진!”

    “그 사람이 한이진 능력자라고요?”

    “으윽.”

    강유현과 놀란 박윤성의 음성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박윤성은 내가 빙의자라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겠지. 이렇게 박윤성에게도 들키고 마는구나.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으악, 그냥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원래 몸이 어딘데!”

    “소, 손 좀…… 으윽…….”

    가물가물해지는 시야로 강유현이 심단테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심단테의 수난은 끝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더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헉……!”

    “아빠!”

    “아빠아!”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다시 한이진의 몸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환자분, 정신이 드십니까?”

    “아, 예…….”

    “다행입니다. 의식을 찾는 게 더 늦으면 집중 치료실로 옮기려고 했거든요.”

    “아하하…….”

    아무래도 병실 안에서 의식을 잃는 바람에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아직도 곁에서 빽빽 우는 용식이와 용순이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다독거렸다. 내 몸을 살피던 의료진들은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모르니 하루 더 입원해 보지요.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더라도 후유증이 남아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그…… 네.”

    몸은 정말 멀쩡한데. 그렇다고 해서 정신을 잃었던 이유를 말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곧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당부한 의료진들이 병실에서 나갔다.

    “후…….”

    엄청난 일이 있었다. 사실은 아직도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타인의 몸에 들어가서 겪은 일이라서 그런가.

    강유현이 기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니. 박윤성과 달리 강유현은 내가 돌아갈 방법을 철저하게 없애고자 심단테를 찾아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기가 몰려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직 몸이 안 좋으십니까?”

    “아, 아뇨. 괜찮습니다.”

    “음…….”

    병실에 남아 있던 연승원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날카로운 눈매가 누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양심에 찔렸다. 아직 심단테의 일을 모르는 연승원은 단순히 내가 아픈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연승원은 박윤성의 측근이니 곧 알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박윤성이 얼마나 얘기를 할지 모르니까 내가 섣불리 말하기는 좀 그렇다. 내적 갈등을 하느라 심각해진 내 표정을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연승원도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띠리링.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전화가 오자 연승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이지만 박윤성의 연락일 것 같았다. 앉은 채로 뒤를 돈 연승원이 전화를 받았다.

    “네, 마스터. 저는 지금…… 네?”

    역시 박윤성의 연락이군. 나는 긴장하며 연승원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하지만 지금은…….”

    곤란한 듯이 연승원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말에 연승원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연승원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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